폭력이 인간을 얼마나 쉽게 굴복시키고 변화시키는 지에 대해서 한국의 성인남성들의 대부분이 군대에서 뼈저리게 배우고 나옵니다.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의 폭력이 개인의 인성을 얼마나 쉽게 파괴하는지 개인의 존엄을 얼마나 쉽게 짓밟을 수 있는지 느껴보지 못한 군인은 별로 없을겁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폭력을 통한 대화법은 군대에서나 가능한 것이지만 그 수위를 낮추면 실상 일반사회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앞서의 리플들에서 예를 든 것도 그러할 뿐더러 하나의 예를 들자면 두셋의 중고생이 한 명을 에워싸고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했다고 가정합시다. 이 경우에 무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경찰에 신고하던가 못본 체하던가 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상황을 제압할 무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두가지 방법 외에도 직접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선택할 수 있겠지요. 길가다가 어깨가 부딪혔다고 상욕을 내뱉는 녀석에게
한소리 따끔하게 해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선택문도 가능해집니다. 상대의 폭력에 대해서 저항할 수 있거나 제압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것이고 그것이 개인의 성격형성에 긍정적인 결과를 미치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그다지 틀린 예상은 아닐겁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폭력에 저항하거나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으로서 무술보다 근본적인게 있을까요?
사실 무술의 탄생배경도 크게 이 목적에서 다르지 않는데다가 무술이 추구하는 힘이야 말로 딱 이 조건에 들어맞는 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들을 어려서부터 태권도장이나 검도장에 보냅니다.
어렸을 때 싸움잘한다는게 얼마나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는지 겪어본 분들은 적지 않을겁니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라고 도장에 보낸다지만 맨날 맞고 다니는 녀석이 씩씩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나와 너의 대화가 이루어지려면 우선 '너'라는 대상을 나와 동등하다고 여겨야 합니다.
사회에서의 관계는 '너'의 사회적 지위-학벌 재산 권력등등-가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길거리의 구걸하는 거지를 자신과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상대를 사람으로 여긴다해서 그것이 자신과 동등하다고 평가하는건 아닙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구걸하는 거지를 대하는 태도는 고압적이며 거지는 낮은 위치에 머무름으로서 자신의 지위가 낮음을 보여주어 반감을 사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높은 자리에서 구걸하는 거지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거지에게 동정을 표할 때조차 그 거지와 같은 눈높이에 서려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이는 스스로 상대를 동등한 지위라고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상대와 지위가 동등하지 않은 경우 대화는 일방적이며 소통의 의미보단 명령에 가까워집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적 지위 대신에 상대의 신체적인 능력으로 서로의 지위를 평가하는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될까요? 대개의 사람들이 폭력에 노출되는 상황이 바로 위와 같은 상황입니다. 나의 신체적인 능력이 '너'보다 못하거나
'너'에게 미치지 못함을 자인할 때 '너'는 폭력을 대화의 수단으로 선택하려는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폭력이 대화의 수단으로 선택되었을 때 받는 신체적 정신적인 충격과 후유증은 때론 개인의 성격을 바꾸거나 삶의 방향을 바꾸어버릴 만큼 강렬한 것입니다.

폭력이 대화의 수단으로 선택되는 극단적인 상황이 그리 흔한 것은 아니지만 늘상 그런 이야기가 우리 주변을 떠돌정도는 됩니다. 그리고 폭력으로 전이되지는 않았지만 폭력을 암시하는 대화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겪게될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술이란 이러한 상황에서 폭력으로 전이되는 것을 억제하고 폭력으로 이루어지는 대화에서 상대에게 저항하거나 우위에 설 수 있는 힘을 제공합니다.
한 번 더 말하지만 우리나라의 부모들이 자식들을 도장에 보내는 이유는 그러한 힘이 또는 그런 힘을 가졌다는 자신감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유용한지 잘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힘을 가졌다는 자신감은 실력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그저 환상으로 비롯될 수도 있습니다. 즉 스스로의 역량을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런 경우 환상에서 비롯된 힘을 믿었던 사람들은 큰 낭패를 볼 확률이 높습니다. 이렇게 환상을 파는 경우 그것을 믿고 산 사람이 잘못일까요? 아니면 판 사람이 잘못인 걸까요? 그것이 환상인지 아닌지 밝혀달라는 요구는 가당치도 않게 주제넘는 짓인걸까요? 얼마나 효과적인지 보여달라는 요구가 헛소리여야 할까요? 그리고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판매자들의 상품을 불신하는게 과연 틀린걸까요?

'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라는 말은 아직도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유용한 격언 중의 하나입니다.
사람들의 이상대로 폭력이 근절된 사회라면 더없이도 좋겠지만 실상은 알게 모르게 수많은 폭력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에게 무술이란 단순한 취미 외에도 좋은 인생의 반려자가 될 수 있을겁니다.
그 무술을 신뢰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