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과학 포럼
SF 속의 상상 과학과 그 실현 가능성, 그리고 과학 이야기.
SF 작품의 가능성은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상상의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SF에 대한 가벼운 흥미거리에서부터 새로운 창작을 위한 아이디어에 이르기까지...
여기는 과학 소식이나 정보를 소개하고, SF 속의 아이디어나 이론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상상의 꿈을 키워나가는 곳입니다.
( 이 게시판은 최근에 의견이나 덧글이 추가된 순서대로 정렬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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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역사라는 것은 역사를 바탕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가는 ‘지적 유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랬으면 좋겠네.”라는 기대를 담고 있기도 한 대체 역사는 조금만 어긋나도 스스로를 만족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자위(自慰)적 작품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대체 역사를 쓰는 이들이 ‘기대’ 만 넘쳐서, 대체 역사에 필요한 기본적인 요건, 그리고 제약 조건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지요.
잘 만들어진 대체역사는 ‘왠지 가능하다’는 느낌을 주어야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아 그럴 수도 있구나.’라고 느낄수록 그 작품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이렇게 ‘가능성 있는’ 대체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인을 감안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첫째. 역사(연대)적인 문제
우리나라의 고전 소설 중에서 이른바 대체 역사 같은 느낌을 완성된 것 중에 “임진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에 쓰여진 이 작품은, 임진왜란 시기에 있었던 여러 전투들을 우리들이 이긴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지요.
사실적인 면은 존재하지 않고, 도술이 등장하는 것은 보통, 어떤 점에서 자위적 소설의 극치라고 할만한 이 작품에서 정말 인상적인 것은 “관우”가 등장하여 왜군을 물리친다는 점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민간 신앙에서도 받아들이긴 했지만, 명백하게 중국의 인물인 그가 등장해서 돕는다는 점에서 ‘사대주의적인 양반들의 사고 방식’을 느끼게 하지만, 동시에 “관우는 이미 죽었잖아? 아무리 신이래도 너무 한 거 아냐?”라는 딴지를 걸고 싶게 합니다.
(물론 임진록은 이른바 ‘딴지’를 걸만큼 완성도가 높은 소설 작품은 아닙니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간혹 대체 역사라고 하는 작품에서는 연대적인 문제로(혹은 지리적인 문제로) 절대로 만날 수 없는 두 사람이 서로 만나거나, 도움을 주는 이야기가 나오곤 합니다. 그 중에는 역사책을 조금만 뒤져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을 틀리는 경우도 있지요.
대체 역사라는 이름으로 가볍게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는 50세에 죽은 사람이 사실은 150살까지 살았다는 말 정도로 넘어갈 수도 있겠지요. 혹은, 원래 미국에서만 살았던 사람이 일본에도 여행을 갔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고...
하지만, 이 경우에도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정도로 이야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기술적인 문제
역시 ‘대체 역사’일지도 모르는 작품 중에, 마트 트웨인의 “아더왕과 코네티컷 양키”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양키 한 명이 아더왕 시대로 가 버리는 바람에 상황이 바뀐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기술적인 문제에서 이의를 제기하게 만듭니다.
이 작품 속에서 양키는 기관총을 만들고 전선을 만들어 전신 기술을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작품을 보다 보면, –아더왕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제쳐두고- 둔탁한 망치로 한참을 두들여 검 하나를 만들 수 있는 시대에, 기관총을 작동시키는데 필요한 정밀한 부품을 만들 수 있는가? 어떻게 전선을 뽑을 수 있으며, 전기를 쓸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접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이 작품은 정치적 풍자 소설로서 대체 역사 작품도 시간 여행 작품도 아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는 지나친 딴지가 되겠지요.^^
하지만, 이른바 ‘대체 역사(또는 역사 판타지)’를 주장하는 많은 작품 속에서도 이토록 기술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상황을 전개해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듭니다.
전국 시대 일본에서 철포라는 물건이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을 만들기에 충분한 기술적인 바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모든 기술 문명 역시 그러하지요.
(가령 진공관을 만들고자 한다면, 진공 상태를 유지하도록 유리를 가공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진공 상태를 만드는 펌프를 제작할 수 있어야 하고, 여기에 코일 등을 만들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러한 기술적인 가능성을 무시하고 무작정 중세 시대에서 기관총을 만들고 비행기를 날리게 하는 건 대체 역사라고 부를 수 없을 겁니다.
또 하나, 설사 기술적으로 탁월하다고 해도 그것이 실용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고대 시대 전지가 만들어졌지만 사라졌고, 그리스 시대 계산기가 만들어졌다가 사라진 것은, 그것이 실용적인 물건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단순히 물건 하나 만든다고 역사가 바뀐다는 생각은 상당히 순진한 이야기가 될 지도 모릅니다.
셋째, 사회적인 문제
“히미코전”이라는 작품에서 주인공은 그 세계에서 ‘신의 사도’라고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세계의 사람들은 주인공의 예상치 못한 언동에 당황하면서도 받아들이게 되고, 도움을 받게 되지요.
그 중에서 그들이 가장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신의 사도’임에 분명한 주인공이, 신분이나 계급을 가리지 않고 편하게 대하고 의견을 묻는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히미코전의 무대는 –비록 평행 세계이긴 하지만- 3세기 정도의 일본. 신분과 계급이 매우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던 시대이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사회적인 관습이나 풍습은 –흔히 무시하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 굉장히 중요한 제약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탁월한 역량을 가진 소녀가 임진왜란 시대에 등장합니다. 그녀는 전략적 식견이 뛰어나서 사령관을 맡아 왜군을 물리치고 심지어는 일본 원정까지...
그런데 이 이야기는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선시대는 남존여비의 시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여성이라도 사람들 앞에 나서서 사령관 같은 자리를 맡는다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지요.(아니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그녀의 능력을 인정하는 몇 사람이 존재할 수는 있습니다. 잔다르크를 따랐던 일부 귀족들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여성이 활동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튀는 여성이 좋게 보이지 않을 것은 당연한 법. 그렇게 사회적인 역류를 넘어가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넷째, 대체와 유일의 가능성
이른바 대체 역사라는 것을 쓰는 이들 중에는 한 사람의 발명가, 발견자를 증발시키는 방법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전화기를 만든 그레이엄 벨이 사라져서 전화가 발명되지 않은 역사...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에는 아주 큰 실수가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전화기를 만든 것은 벨 하나 만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를테면, 전화기의 경우, 그레이라는 사람이 불과 한, 두 시간 뒤에 특허를 신청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벨은 전화의 실용화에까지 노력을 기울여서 전화의 가능성을 극대화시켰다는 차이가 있지만, 벨이 없었다고 전화 자체가 발명되지 않았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겠지요.(물론, 벨이 아니었다면, 전화의 실용화에 조금 어려움이 있었을지는 모릅니다. 테슬러가 아니었다면 교류 전기가 널리 사용되지 않고 전기의 실용화가 조금 뒤졌을 지도 모르는 것처럼... 이런 것은 충분히 ‘대체 역사의 가능성’을 주게 되지요.)
대항해시대 3라는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콜롬부스나 바스코 다가마 같은 수많은 발견자들과 경쟁하게 됩니다. 그들은 역사적인 사실 그대로 희망봉이나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는데, 플레이어가 그들보다 먼저 발견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들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술집에서 싸움을 붙여서 부상시키는 겁니다. 그러면 그들의 발견 그 자체가 늦어집니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 다른 사람이 희망봉을 발견하고 아메리카를 발견해 버립니다.
대항해시대라는 상황에서 최초의 발견자가 될 수 있는 것은 비단 역사 속의 그 사람들만은 아니라는 것이 되겠지요.
그리고 이러한 가능성은 또 다른 대체 역사를 낳을 수 있습니다. “C&C :적색경보”에서 히틀러가 사라져 스탈린이 대두되지만, 히틀러를 대신하여 다른 이가 독일의 권력을 장악하고 행동한다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C&C:적색경보”와는 또 다른 대체 역사 이야기가 되겠지요.
대체 역사를 ‘사실적으로’ 정말로 그럴 수도 있다는 느낌으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실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역사에 대해서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역사의 가능성에 대해 좀 더 많은 상상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대체 역사를 쓰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는 부족합니다.
물론, ‘역사가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보다 재미있게 그리고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소재 그 자체로 만족하지 않고 더욱 더 갈고 닦아서 가공해야 하지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대체 역사는 ‘역사가 바뀌어서 이렇게 되었다.’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가 바뀌어 이렇게 되었는데, 이 세계에서 이러이러한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것이지요.
대체 역사는 대체 역사 그 자체가 아니라, ‘대체 역사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대체 역사를 이야기하면 흔히 역사가 바뀌는 과정 만을 기술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가령, 아담이 가인과 아벨을 낳고, 가인이 누굴 낳고... 같은 식으로 말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아무리 길어봐야 ‘이야기’가 되지 못합니다. 어디까지나 배경 설정에 불과하고 흥미를 끌 수 있는 요인은 되지 않지요.
모든 이야기가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여야 하듯, 대체 역사 이야기는 ‘역사가 바뀐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현재 진행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이며,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여야 합니다.
그리고 ‘대체 역사 이야기’란 바로 우리의 눈 앞에서 펼쳐지는 ‘역사의 가능성’이기 때문에(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재미가 있는 것이지요.
흔히 인터넷을 보면 '이런 일이 있었으면 어떤 역사가 펼쳐졌을까?'라는 무한 발상 스타일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역사가 바뀌는 과정 그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도 어떤 점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지요. 중요한 것은 그 '바뀐 세계'에서 어떤 이들이 어떻게 활약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좋은 배경 설정은 좋은 이야기의 가능성은 될 수 있지만, 결국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은 좋은 배경이 아니라, 좋은 이야기인 것이지요.
그리고, 좋은 이야기를 위해서는 앞서 말한 여러가지 제약을 다소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가능한 어느 정도 맞추어 피해가는 정도로 그치는게 더 낫겠지만)
왜냐하면, SF에서, 과학보다는 상상이 더 중요하듯, 대체 역사 이야기에서도 중요한 것은 대체 역사 그 자체보다는 이야기이니까요.
모 소설가의 말처럼 대체 역사는 역사책 한 권만 있으면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체 역사에 이야기의 살을 입히는 것은 뛰어난 이야기꾼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P.S) 하지만, 아래에서도 이야기했듯, 대체 역사 설정을 만들어보는 것은 상상력을 키우는 지적 유희로서 도움이 됩니다. 잘 만 쓴다면 인터넷에서 인기를 끄는 글이 될 수도 있고...
그런 점에서, 창작 마당에서 자신만의 대체 역사 설정을 써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설정을 쓸 때는 항상 그 안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에 대해 염두를 두고 생각하는게 좋겠지요.
빌 게이츠가 윈도를 만들지 않았다면, 그것은 대체 역사가 됩니다. 그런데 그런 세계에서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요?
대체 역사 만으로 끝나지 않고,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될때, 여러분은 이야기꾼으로서의 가능성을 내딛게 될 것입니다.
P.S) 대체역사물(代替歷史物)이라고 보통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物은 物語의 약자라고 보는게 더 맞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대체역사물이라는 말이 보다는 '대체 역사 이야기'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대체 역사 이야기"라는 말이 좀 더 근본에 가까운 단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앞서 말했듯, 여기서 중요한 건 상상... 즉 '이야기'니까요.
p.s) 대체 역사를 쓸 때 검토해야 할 다른 제약 요인이 있을까요? 일단 제가 알고 있는-그리고 생각한- 것은 이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분들이라면 또 다른 가능성, 또 다른 생각을 하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것은 대체 역사를 쓰는 이들이 ‘기대’ 만 넘쳐서, 대체 역사에 필요한 기본적인 요건, 그리고 제약 조건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지요.
잘 만들어진 대체역사는 ‘왠지 가능하다’는 느낌을 주어야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아 그럴 수도 있구나.’라고 느낄수록 그 작품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이렇게 ‘가능성 있는’ 대체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인을 감안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첫째. 역사(연대)적인 문제
우리나라의 고전 소설 중에서 이른바 대체 역사 같은 느낌을 완성된 것 중에 “임진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에 쓰여진 이 작품은, 임진왜란 시기에 있었던 여러 전투들을 우리들이 이긴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지요.
사실적인 면은 존재하지 않고, 도술이 등장하는 것은 보통, 어떤 점에서 자위적 소설의 극치라고 할만한 이 작품에서 정말 인상적인 것은 “관우”가 등장하여 왜군을 물리친다는 점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민간 신앙에서도 받아들이긴 했지만, 명백하게 중국의 인물인 그가 등장해서 돕는다는 점에서 ‘사대주의적인 양반들의 사고 방식’을 느끼게 하지만, 동시에 “관우는 이미 죽었잖아? 아무리 신이래도 너무 한 거 아냐?”라는 딴지를 걸고 싶게 합니다.
(물론 임진록은 이른바 ‘딴지’를 걸만큼 완성도가 높은 소설 작품은 아닙니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간혹 대체 역사라고 하는 작품에서는 연대적인 문제로(혹은 지리적인 문제로) 절대로 만날 수 없는 두 사람이 서로 만나거나, 도움을 주는 이야기가 나오곤 합니다. 그 중에는 역사책을 조금만 뒤져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을 틀리는 경우도 있지요.
대체 역사라는 이름으로 가볍게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는 50세에 죽은 사람이 사실은 150살까지 살았다는 말 정도로 넘어갈 수도 있겠지요. 혹은, 원래 미국에서만 살았던 사람이 일본에도 여행을 갔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고...
하지만, 이 경우에도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정도로 이야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기술적인 문제
역시 ‘대체 역사’일지도 모르는 작품 중에, 마트 트웨인의 “아더왕과 코네티컷 양키”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양키 한 명이 아더왕 시대로 가 버리는 바람에 상황이 바뀐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기술적인 문제에서 이의를 제기하게 만듭니다.
이 작품 속에서 양키는 기관총을 만들고 전선을 만들어 전신 기술을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작품을 보다 보면, –아더왕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제쳐두고- 둔탁한 망치로 한참을 두들여 검 하나를 만들 수 있는 시대에, 기관총을 작동시키는데 필요한 정밀한 부품을 만들 수 있는가? 어떻게 전선을 뽑을 수 있으며, 전기를 쓸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접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이 작품은 정치적 풍자 소설로서 대체 역사 작품도 시간 여행 작품도 아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는 지나친 딴지가 되겠지요.^^
하지만, 이른바 ‘대체 역사(또는 역사 판타지)’를 주장하는 많은 작품 속에서도 이토록 기술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상황을 전개해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듭니다.
전국 시대 일본에서 철포라는 물건이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을 만들기에 충분한 기술적인 바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모든 기술 문명 역시 그러하지요.
(가령 진공관을 만들고자 한다면, 진공 상태를 유지하도록 유리를 가공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진공 상태를 만드는 펌프를 제작할 수 있어야 하고, 여기에 코일 등을 만들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러한 기술적인 가능성을 무시하고 무작정 중세 시대에서 기관총을 만들고 비행기를 날리게 하는 건 대체 역사라고 부를 수 없을 겁니다.
또 하나, 설사 기술적으로 탁월하다고 해도 그것이 실용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고대 시대 전지가 만들어졌지만 사라졌고, 그리스 시대 계산기가 만들어졌다가 사라진 것은, 그것이 실용적인 물건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단순히 물건 하나 만든다고 역사가 바뀐다는 생각은 상당히 순진한 이야기가 될 지도 모릅니다.
셋째, 사회적인 문제
“히미코전”이라는 작품에서 주인공은 그 세계에서 ‘신의 사도’라고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세계의 사람들은 주인공의 예상치 못한 언동에 당황하면서도 받아들이게 되고, 도움을 받게 되지요.
그 중에서 그들이 가장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신의 사도’임에 분명한 주인공이, 신분이나 계급을 가리지 않고 편하게 대하고 의견을 묻는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히미코전의 무대는 –비록 평행 세계이긴 하지만- 3세기 정도의 일본. 신분과 계급이 매우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던 시대이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사회적인 관습이나 풍습은 –흔히 무시하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 굉장히 중요한 제약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탁월한 역량을 가진 소녀가 임진왜란 시대에 등장합니다. 그녀는 전략적 식견이 뛰어나서 사령관을 맡아 왜군을 물리치고 심지어는 일본 원정까지...
그런데 이 이야기는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선시대는 남존여비의 시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여성이라도 사람들 앞에 나서서 사령관 같은 자리를 맡는다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지요.(아니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그녀의 능력을 인정하는 몇 사람이 존재할 수는 있습니다. 잔다르크를 따랐던 일부 귀족들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여성이 활동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튀는 여성이 좋게 보이지 않을 것은 당연한 법. 그렇게 사회적인 역류를 넘어가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넷째, 대체와 유일의 가능성
이른바 대체 역사라는 것을 쓰는 이들 중에는 한 사람의 발명가, 발견자를 증발시키는 방법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전화기를 만든 그레이엄 벨이 사라져서 전화가 발명되지 않은 역사...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에는 아주 큰 실수가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전화기를 만든 것은 벨 하나 만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를테면, 전화기의 경우, 그레이라는 사람이 불과 한, 두 시간 뒤에 특허를 신청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벨은 전화의 실용화에까지 노력을 기울여서 전화의 가능성을 극대화시켰다는 차이가 있지만, 벨이 없었다고 전화 자체가 발명되지 않았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겠지요.(물론, 벨이 아니었다면, 전화의 실용화에 조금 어려움이 있었을지는 모릅니다. 테슬러가 아니었다면 교류 전기가 널리 사용되지 않고 전기의 실용화가 조금 뒤졌을 지도 모르는 것처럼... 이런 것은 충분히 ‘대체 역사의 가능성’을 주게 되지요.)
대항해시대 3라는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콜롬부스나 바스코 다가마 같은 수많은 발견자들과 경쟁하게 됩니다. 그들은 역사적인 사실 그대로 희망봉이나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는데, 플레이어가 그들보다 먼저 발견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들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술집에서 싸움을 붙여서 부상시키는 겁니다. 그러면 그들의 발견 그 자체가 늦어집니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 다른 사람이 희망봉을 발견하고 아메리카를 발견해 버립니다.
대항해시대라는 상황에서 최초의 발견자가 될 수 있는 것은 비단 역사 속의 그 사람들만은 아니라는 것이 되겠지요.
그리고 이러한 가능성은 또 다른 대체 역사를 낳을 수 있습니다. “C&C :적색경보”에서 히틀러가 사라져 스탈린이 대두되지만, 히틀러를 대신하여 다른 이가 독일의 권력을 장악하고 행동한다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C&C:적색경보”와는 또 다른 대체 역사 이야기가 되겠지요.
대체 역사를 ‘사실적으로’ 정말로 그럴 수도 있다는 느낌으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실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역사에 대해서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역사의 가능성에 대해 좀 더 많은 상상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대체 역사를 쓰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는 부족합니다.
물론, ‘역사가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보다 재미있게 그리고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소재 그 자체로 만족하지 않고 더욱 더 갈고 닦아서 가공해야 하지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대체 역사는 ‘역사가 바뀌어서 이렇게 되었다.’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가 바뀌어 이렇게 되었는데, 이 세계에서 이러이러한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것이지요.
대체 역사는 대체 역사 그 자체가 아니라, ‘대체 역사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대체 역사를 이야기하면 흔히 역사가 바뀌는 과정 만을 기술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가령, 아담이 가인과 아벨을 낳고, 가인이 누굴 낳고... 같은 식으로 말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아무리 길어봐야 ‘이야기’가 되지 못합니다. 어디까지나 배경 설정에 불과하고 흥미를 끌 수 있는 요인은 되지 않지요.
모든 이야기가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여야 하듯, 대체 역사 이야기는 ‘역사가 바뀐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현재 진행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이며,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여야 합니다.
그리고 ‘대체 역사 이야기’란 바로 우리의 눈 앞에서 펼쳐지는 ‘역사의 가능성’이기 때문에(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재미가 있는 것이지요.
흔히 인터넷을 보면 '이런 일이 있었으면 어떤 역사가 펼쳐졌을까?'라는 무한 발상 스타일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역사가 바뀌는 과정 그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도 어떤 점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지요. 중요한 것은 그 '바뀐 세계'에서 어떤 이들이 어떻게 활약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좋은 배경 설정은 좋은 이야기의 가능성은 될 수 있지만, 결국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은 좋은 배경이 아니라, 좋은 이야기인 것이지요.
그리고, 좋은 이야기를 위해서는 앞서 말한 여러가지 제약을 다소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가능한 어느 정도 맞추어 피해가는 정도로 그치는게 더 낫겠지만)
왜냐하면, SF에서, 과학보다는 상상이 더 중요하듯, 대체 역사 이야기에서도 중요한 것은 대체 역사 그 자체보다는 이야기이니까요.
모 소설가의 말처럼 대체 역사는 역사책 한 권만 있으면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체 역사에 이야기의 살을 입히는 것은 뛰어난 이야기꾼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P.S) 하지만, 아래에서도 이야기했듯, 대체 역사 설정을 만들어보는 것은 상상력을 키우는 지적 유희로서 도움이 됩니다. 잘 만 쓴다면 인터넷에서 인기를 끄는 글이 될 수도 있고...
그런 점에서, 창작 마당에서 자신만의 대체 역사 설정을 써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설정을 쓸 때는 항상 그 안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에 대해 염두를 두고 생각하는게 좋겠지요.
빌 게이츠가 윈도를 만들지 않았다면, 그것은 대체 역사가 됩니다. 그런데 그런 세계에서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요?
대체 역사 만으로 끝나지 않고,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될때, 여러분은 이야기꾼으로서의 가능성을 내딛게 될 것입니다.
P.S) 대체역사물(代替歷史物)이라고 보통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物은 物語의 약자라고 보는게 더 맞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대체역사물이라는 말이 보다는 '대체 역사 이야기'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대체 역사 이야기"라는 말이 좀 더 근본에 가까운 단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앞서 말했듯, 여기서 중요한 건 상상... 즉 '이야기'니까요.
p.s) 대체 역사를 쓸 때 검토해야 할 다른 제약 요인이 있을까요? 일단 제가 알고 있는-그리고 생각한- 것은 이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분들이라면 또 다른 가능성, 또 다른 생각을 하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SF&판타지 도서관 : http://www.sflib.com/
블로그 : http://spacelib.tistory.com
트위터 : http://www.twitter.com/pyodogi (한글) http://www.twitter.com/pyodogi_jp (일본어)
2008.03.19 15:43:38
저질 내셔널리스트 자위행위가 되더라도 재미있고,
또한 개연성과 합리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대체 역사라는 거 조금만 어설퍼도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되기 쉬운 것이
자신이 살아보지 않은 역사는 불과 수십년전이라 하더라도 제대로 묘사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금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올바른 묘사도 힘든데 과거의 역사 공간을
실감나게 만들어가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제약이 되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저질 내셔널리스트 자위행위가 되지 않는
글이라면 정말 좋겠지만, 저질 내셔널리스트 자위행위가 되더라도
합리적 가능성을 찾는 것만으로도 정말 힘든 일일 것 같습니다.
또한 개연성과 합리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대체 역사라는 거 조금만 어설퍼도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되기 쉬운 것이
자신이 살아보지 않은 역사는 불과 수십년전이라 하더라도 제대로 묘사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금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올바른 묘사도 힘든데 과거의 역사 공간을
실감나게 만들어가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제약이 되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저질 내셔널리스트 자위행위가 되지 않는
글이라면 정말 좋겠지만, 저질 내셔널리스트 자위행위가 되더라도
합리적 가능성을 찾는 것만으로도 정말 힘든 일일 것 같습니다.
2008.03.19 15:43:38
대체 역사가 과거의 역사 이야기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체 역사란 "역사가 바뀐 세상의 이야기"이지. 역사가 바뀐 과거의 이야기는 아니거든요. "풀 메탈 패닉"이나 "건퍼레이드 마치" 역시 대체 역사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세계는 우리 세계와 비슷한 시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대체 역사는 어떤 점에서 우리 세계와 닮았지만 다른, 이세계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역사적인 제약'이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새로운 세계라고 생각하고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대체 역사란 "역사가 바뀐 세상의 이야기"이지. 역사가 바뀐 과거의 이야기는 아니거든요. "풀 메탈 패닉"이나 "건퍼레이드 마치" 역시 대체 역사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세계는 우리 세계와 비슷한 시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대체 역사는 어떤 점에서 우리 세계와 닮았지만 다른, 이세계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역사적인 제약'이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새로운 세계라고 생각하고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2008.03.19 15:43:38
대체역사 물로서 가장 재미있게 본것은 아마도 "우르다"라는 애니메이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일종의 타임트러블 애니)이것은 아마도 예전에 본 필라델피아 프로젝트라는 미국영화의 2번째 편과 비슷한 구조를 지닌 애니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만 우르다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3D모델링혹은 모션에 2D의 카툰렌더링 방식을 도입한 당시로서는 비교적 획기적인 방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캐릭터의 모션은 그래서 셀애니메이션에 비해서 부자연 스러운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이런 기술들이 발전해서 오늘날의 애플시드나 벡실같은 작품으로 이어진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소설이나 문학보다는 기법서를 많이 보는 편이기 때문에 대체역사의 이런저런 부분에 대해서는 잘 설명할수 없지만, 그런 작품을 연출시키려고 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관을 기본으로 해서 작가의 상상력을 더하는 부분을 이해하면 비교적 쉽게 접근할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ps..대체 역사물로 고전적인 것에는 "시공의여인"이라는 작품도 감상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개인적으로 대체역사물의 근간을 이루는것은 대부분 타임트러블이 그 원인이 아닌가 생각을 하며, 그런 의미에서는 백튜더퓨처라는 작품을 대체역사물의 범주에 놓고 세세한 부분까지 비교를 하면서 감상을 해보시는것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
다만 우르다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3D모델링혹은 모션에 2D의 카툰렌더링 방식을 도입한 당시로서는 비교적 획기적인 방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캐릭터의 모션은 그래서 셀애니메이션에 비해서 부자연 스러운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이런 기술들이 발전해서 오늘날의 애플시드나 벡실같은 작품으로 이어진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소설이나 문학보다는 기법서를 많이 보는 편이기 때문에 대체역사의 이런저런 부분에 대해서는 잘 설명할수 없지만, 그런 작품을 연출시키려고 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관을 기본으로 해서 작가의 상상력을 더하는 부분을 이해하면 비교적 쉽게 접근할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ps..대체 역사물로 고전적인 것에는 "시공의여인"이라는 작품도 감상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개인적으로 대체역사물의 근간을 이루는것은 대부분 타임트러블이 그 원인이 아닌가 생각을 하며, 그런 의미에서는 백튜더퓨처라는 작품을 대체역사물의 범주에 놓고 세세한 부분까지 비교를 하면서 감상을 해보시는것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
2008.03.19 15:43:38
대체역사물이라고 하니까..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는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이문열의 <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는 실패했습니다.
발표 시점에서 두 작가의 위상과 지명도는 비할 바가 아니었구요.
두 작품이 다루는 대체역사의 무대는 거울과 같이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을 뿐
사실상 일제 시대와 그 이후라는 거의 유사한 시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문열은 대한민국에서 이야기를 가장 능란하게 구사하는 작가였고
또 솔직히 <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는 상당히 재미있게 읽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는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작가 본인도 자신의 작품 리스트에서 곧잘 빼놓고 넘어가는 실패작입니다.
어쩌면 대체역사 소설은 비교적 쉽게 써내려 갈 수 있을런지는 몰라도
제대로 잘 쓰기 위해서는 '이야기'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한 분야로 보이기도 합니다.
작가의 철학과 메세지 역사 의식 이런 게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 아닐까요.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는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이문열의 <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는 실패했습니다.
발표 시점에서 두 작가의 위상과 지명도는 비할 바가 아니었구요.
두 작품이 다루는 대체역사의 무대는 거울과 같이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을 뿐
사실상 일제 시대와 그 이후라는 거의 유사한 시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문열은 대한민국에서 이야기를 가장 능란하게 구사하는 작가였고
또 솔직히 <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는 상당히 재미있게 읽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는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작가 본인도 자신의 작품 리스트에서 곧잘 빼놓고 넘어가는 실패작입니다.
어쩌면 대체역사 소설은 비교적 쉽게 써내려 갈 수 있을런지는 몰라도
제대로 잘 쓰기 위해서는 '이야기'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한 분야로 보이기도 합니다.
작가의 철학과 메세지 역사 의식 이런 게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 아닐까요.
2008.03.19 15:43:38
대체역사물에는 크게 두 가지 부류가 존재합니다. 어떤 이유로든, 혹은 개연성으로든 과거의 한 분기점에서 역사가 어긋나는것이 미래에 주구장창 이어지는것이 첫번째고, 두번째로는 '시간여행'이 개입되어 과거의 존재가 미래로 가거나, 미래의 존재가 과거로 가는 것입니다.
첫 번째 부류로는, 비록 소설은 아니지만 "만약에What if"시리즈, 소설 "당신들의 조국" 정도가 생각나는군요. 이것들(?)은 역사의 선택의 갈림길에서 '만약에 그때 그 사람들이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실제로 역사상 사건들을 보면 그런 개연성 있는 분기점이 있기 마련이지요. 예를 들자면 최고지도자의 괜한 고집이나 알 수 없는 사건들로 인해서 말입니다.
두 번째 부류로는 시간여행을 통해 당대에 존재할 수 없거나 존재해서는 안되는 무언가가 역사에 개입하는 것이지요. 생각나는 소설로는 "한제국 건국사"나 영화 "로스트 인 메모리즈", 게임 "커맨드 앤 컨커" 정도가 있겠군요.
어느 부류를 선택하든지, (모든 미디어가 그러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개연성이겠지요. 예를 들어 1945년 8월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대체역사소설을 쓴다고 할 때에 '어느날 천황폐하의 신묘한 ESP로 미국을 방법했다.'는 스토리가 개연성을 얻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스토리의 포커스가 분기점 자체에 맞춰저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일례로 "당신들의 조국"은 꽤나 정교한 대체역사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나치스가 2차대전을 승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총통의 신묘한 전술'정도로만 서술하고 있으니까요.
대체역사소설에서 개연성을 확보하는 정도는, 역시 실제 벌어졌던 역사에 대체역사가 얼마나 개입할 것이며, 또한 그것이 얼마나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느냐 정도일 것입니다. '한제국 건국사'의 경우, 21세기 군인들이 21세기의 장비와 지식을 가지고 19세기로 넘어가지만, 그들의 장비나 지식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타임슬립한 이들이 가진 장비와 지식의 한계를 분명히(그리고 엄밀히) 설정하고 그들의 장비와 지식이 어느정도까지나 실제 역사에 개입할 수 있느냐의 가이드라인을 만들게 됩니다. 이러한 가이드라인이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었기에 '한제국건국사'는 인기있는 소설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반면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자위적 소설들, 조회수 1천을 못 넘기며 사라져가는 텍스트들은 이러한 가이드라인의 엄밀함과 독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였기에 버림받았겠지요.
첫 번째 부류로는, 비록 소설은 아니지만 "만약에What if"시리즈, 소설 "당신들의 조국" 정도가 생각나는군요. 이것들(?)은 역사의 선택의 갈림길에서 '만약에 그때 그 사람들이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실제로 역사상 사건들을 보면 그런 개연성 있는 분기점이 있기 마련이지요. 예를 들자면 최고지도자의 괜한 고집이나 알 수 없는 사건들로 인해서 말입니다.
두 번째 부류로는 시간여행을 통해 당대에 존재할 수 없거나 존재해서는 안되는 무언가가 역사에 개입하는 것이지요. 생각나는 소설로는 "한제국 건국사"나 영화 "로스트 인 메모리즈", 게임 "커맨드 앤 컨커" 정도가 있겠군요.
어느 부류를 선택하든지, (모든 미디어가 그러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개연성이겠지요. 예를 들어 1945년 8월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대체역사소설을 쓴다고 할 때에 '어느날 천황폐하의 신묘한 ESP로 미국을 방법했다.'는 스토리가 개연성을 얻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스토리의 포커스가 분기점 자체에 맞춰저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일례로 "당신들의 조국"은 꽤나 정교한 대체역사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나치스가 2차대전을 승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총통의 신묘한 전술'정도로만 서술하고 있으니까요.
대체역사소설에서 개연성을 확보하는 정도는, 역시 실제 벌어졌던 역사에 대체역사가 얼마나 개입할 것이며, 또한 그것이 얼마나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느냐 정도일 것입니다. '한제국 건국사'의 경우, 21세기 군인들이 21세기의 장비와 지식을 가지고 19세기로 넘어가지만, 그들의 장비나 지식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타임슬립한 이들이 가진 장비와 지식의 한계를 분명히(그리고 엄밀히) 설정하고 그들의 장비와 지식이 어느정도까지나 실제 역사에 개입할 수 있느냐의 가이드라인을 만들게 됩니다. 이러한 가이드라인이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었기에 '한제국건국사'는 인기있는 소설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반면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자위적 소설들, 조회수 1천을 못 넘기며 사라져가는 텍스트들은 이러한 가이드라인의 엄밀함과 독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였기에 버림받았겠지요.
2008.03.19 15:43:38
우리나라 대체역사소설들중의 대부분이 안타깝게도 '미래의 한국인'이 관련되지요. 그게 전생으로 가거나, 타임머신으로 가거나, 시간이동 사고로 가거나 말이죠. 일본의 가상전기에서도 미래 일본인들이 당시의 일본의 제국해군을 돕는 것도 있고요.
저는 대체역사 소설중에 한제국건국사를 아주 좋아합니다. 원래 제가 미래인들이 등장하는 쪽을 좋아하는터라 그런 것들을 찾다보니 다른 대체역사물보다 리얼한 면이 있다는 점에서 좋았습니다. 게다가 작가본인이 소설내의 설정중에 무리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고요.('백근 선재포:후장식 함포'와 같이 이야기의 전개를 위하여 무리한 설정을 채용한 것.) 작가이신 윤민혁씨가 전쟁소설의 작가인 이유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는군요.
'환생군주-조선왕조실록 선조'라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만 선조로 태어난 미래의 한국인인 주인공이 조선의 권력을 틀어쥐기 위한 작업은 재미있었습니다. 이것도 무리한 설정들이 많아 보이지만 개혁을 이끌어나가는 군주의 입장에서 개혁을 막는 기존의 기득권층들을 견제해가면 권력을 잡아가는 이야기는 좋았습니다.
저는 대체역사 소설중에 한제국건국사를 아주 좋아합니다. 원래 제가 미래인들이 등장하는 쪽을 좋아하는터라 그런 것들을 찾다보니 다른 대체역사물보다 리얼한 면이 있다는 점에서 좋았습니다. 게다가 작가본인이 소설내의 설정중에 무리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고요.('백근 선재포:후장식 함포'와 같이 이야기의 전개를 위하여 무리한 설정을 채용한 것.) 작가이신 윤민혁씨가 전쟁소설의 작가인 이유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는군요.
'환생군주-조선왕조실록 선조'라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만 선조로 태어난 미래의 한국인인 주인공이 조선의 권력을 틀어쥐기 위한 작업은 재미있었습니다. 이것도 무리한 설정들이 많아 보이지만 개혁을 이끌어나가는 군주의 입장에서 개혁을 막는 기존의 기득권층들을 견제해가면 권력을 잡아가는 이야기는 좋았습니다.
2008.03.19 15:43:38
개인적으로 역사학을 전공해서 대체역사물을 굉장히 혐오합니다.... 아무리 읽어봐도 비판 안 할 구석이 없거든요. 역사의 정설조차 뒤집어 엎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한 현대 역사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대체역사물은 판타지 소설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그저 허무한 자기만족에 불과하다고.... 그래도 재미만 본다면 그럭저럭 볼 만 하지만, 제 개인적인 심정으로는..... [그 시대에 최선을 다해서 살아온 사람들을 문장 몇 개로 멋대로 고쳐대지 말아!!!!]라고 하고 싶습니다....
2008.03.19 15:43:38
황제님께//
아마도 "대체 역사"와 "대체 역사 이야기"를 구분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리고 "대체 역사 이야기"와 "자위적 작품"을 구분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시는게 아닐까 합니다.(대체 역사 이야기를 싫어한다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이들을 구분하지 않고 구별하지 못하시더군요.)
왜냐하면, "대체 역사"는 단순히 역사의 가정에 지나지 않지만, "대체 역사 이야기"는 우리와는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대체 역사 이야기는 우리와 닮은 어떤 세계이긴 하지만, 결국 다른 세계... 그냥 하나의 가능성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잘 만들어진 "대체 역사 이야기"는 평행 세계의 삶의 이야기로서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 중에는 실제로 역사학자가 쓴 경우도 있어서 대단히 자연스럽고 '가능할 것 같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지요.([비잔티움의 첩자] 등을 쓴 해리 터틀 도브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만일 이렇게 다른 세계가 되었다면, 이런 이야기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 대체 역사 이야기의 근본이며, 재미입니다. 단순히 "이랬으면 좋겠네."라는 자기 만족의 자위적인 대체 역사와는 차이가 있지요
P.S)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대체 역사는 역사책 하나만 있으면 쓸 수 있는 반면, 대체 역사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 만이 아니라 많은 상상과 노력을 통해서만 완성할 수 있습니다. 같은 관점에서 살펴보면 안 되겠지요.
P.S) 물론, 대체 역사 중에도 "만약에(What if?)"처럼 뛰어난 역사학자들이 쓴 것도 존재합니다. 왠지 가능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완성도 높은 '역사의 가정'이지요. 하지만, 이들 역시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대체 역사 이야기와는 차별됩니다.
p.s) 역사는 우연과 인위적 판단이 짜여져 만들어진 것으로 이들은 아주 사소한 차이로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역사는 어떤 점에서 비선형적인 카오스 체제이고, 단 한개의 돌맹이가 세계 멸망을 좌우할 수도 있으니까요.
저 역시 역사에 '만약(if)'이라는 가정을 붙여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세계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바로 대체 역사 이야기는 좋아합니다. 그것은 또 다른 세계의 상상, 가능성의 이야기니까요.
p.s) 끝으로 한마디만 더하자면, "전쟁과 평화"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것도 넓은 관점에서 보면, 대체 역사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작품의 배경은 물론 실제의 역사이지만, 그 안에서 그려지는 세계(그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주변 세계)는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작가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이기 때문이지요. "허준"이나 "대장금", "연개소문"이나 "용의 눈물" 같은 작품도 그러합니다. 이 작품들의 주역은 실존 인물이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 그리고 그들 자신들은 모두 작가의 창작이고 '가상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대체 역사 이야기"에만 딱히 반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가공의 세계 이야기. 우리의 세계와 닮았을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다른 세계의 이야기이니까요.(다만, "전쟁과 평화" 같은 작품이 그렇듯, 그 속의 인물들은 -그 세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야 합니다. 부자연스러운 세계, 부자연스러운 캐릭터로 만들어진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대체 역사 이야기"가 될 수 없지요.)
아마도 "대체 역사"와 "대체 역사 이야기"를 구분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리고 "대체 역사 이야기"와 "자위적 작품"을 구분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시는게 아닐까 합니다.(대체 역사 이야기를 싫어한다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이들을 구분하지 않고 구별하지 못하시더군요.)
왜냐하면, "대체 역사"는 단순히 역사의 가정에 지나지 않지만, "대체 역사 이야기"는 우리와는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대체 역사 이야기는 우리와 닮은 어떤 세계이긴 하지만, 결국 다른 세계... 그냥 하나의 가능성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잘 만들어진 "대체 역사 이야기"는 평행 세계의 삶의 이야기로서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 중에는 실제로 역사학자가 쓴 경우도 있어서 대단히 자연스럽고 '가능할 것 같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지요.([비잔티움의 첩자] 등을 쓴 해리 터틀 도브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만일 이렇게 다른 세계가 되었다면, 이런 이야기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 대체 역사 이야기의 근본이며, 재미입니다. 단순히 "이랬으면 좋겠네."라는 자기 만족의 자위적인 대체 역사와는 차이가 있지요
P.S)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대체 역사는 역사책 하나만 있으면 쓸 수 있는 반면, 대체 역사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 만이 아니라 많은 상상과 노력을 통해서만 완성할 수 있습니다. 같은 관점에서 살펴보면 안 되겠지요.
P.S) 물론, 대체 역사 중에도 "만약에(What if?)"처럼 뛰어난 역사학자들이 쓴 것도 존재합니다. 왠지 가능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완성도 높은 '역사의 가정'이지요. 하지만, 이들 역시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대체 역사 이야기와는 차별됩니다.
p.s) 역사는 우연과 인위적 판단이 짜여져 만들어진 것으로 이들은 아주 사소한 차이로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역사는 어떤 점에서 비선형적인 카오스 체제이고, 단 한개의 돌맹이가 세계 멸망을 좌우할 수도 있으니까요.
저 역시 역사에 '만약(if)'이라는 가정을 붙여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세계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바로 대체 역사 이야기는 좋아합니다. 그것은 또 다른 세계의 상상, 가능성의 이야기니까요.
p.s) 끝으로 한마디만 더하자면, "전쟁과 평화"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것도 넓은 관점에서 보면, 대체 역사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작품의 배경은 물론 실제의 역사이지만, 그 안에서 그려지는 세계(그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주변 세계)는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작가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이기 때문이지요. "허준"이나 "대장금", "연개소문"이나 "용의 눈물" 같은 작품도 그러합니다. 이 작품들의 주역은 실존 인물이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 그리고 그들 자신들은 모두 작가의 창작이고 '가상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대체 역사 이야기"에만 딱히 반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가공의 세계 이야기. 우리의 세계와 닮았을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다른 세계의 이야기이니까요.(다만, "전쟁과 평화" 같은 작품이 그렇듯, 그 속의 인물들은 -그 세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야 합니다. 부자연스러운 세계, 부자연스러운 캐릭터로 만들어진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대체 역사 이야기"가 될 수 없지요.)
2008.03.19 15:43:38
사실 개인적으로는 미래인 같은 외부 요인에 의해서 변화되는 역사 이야기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타임머신" 같은게 등장할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세계 그 자체에도 무한한 가능성과 상상의 여지가 있는데, 굳이 타임머신 같은 외부 요인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는가 하는게 한가지 이유이며, 또 하나는, 타임머신이 존재한다는 사실 만으로 어지간한 문제는 다 해결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개는 '한번만 갈 수 있다.'거나, '타임머신이 고장났다.'는 등 제약을 두지요.)
마지막으로, 미래인은 그 세계에서 자연스러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세계 모험물이 그렇듯, 그들은 완전히 다른 사고 방식을 가진 세계에서 온 존재이며 당연히 그 세계의 자연스러운 삶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떨어진 관찰자가 되기 쉽지요.(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더욱 이상한 것일까요? 말하자면, 현대 문명인이 아마존의 오지에 갔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상황이 되니 말입니다.)
물론, 앞서 말한 여러가지 문제를 극복하고 있는 작품도 존재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무작정 반감을 가질 수는 없지만, 저로서는 역시 세계 그 자체의 가능성에서 파생되는 "대체 역사 이야기"를 더 좋아하고, 타임머신 등에 의한 역사 변이는 "대체 역사 이야기"라기보다는 "이세계 모험물"로서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계 그 자체에도 무한한 가능성과 상상의 여지가 있는데, 굳이 타임머신 같은 외부 요인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는가 하는게 한가지 이유이며, 또 하나는, 타임머신이 존재한다는 사실 만으로 어지간한 문제는 다 해결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개는 '한번만 갈 수 있다.'거나, '타임머신이 고장났다.'는 등 제약을 두지요.)
마지막으로, 미래인은 그 세계에서 자연스러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세계 모험물이 그렇듯, 그들은 완전히 다른 사고 방식을 가진 세계에서 온 존재이며 당연히 그 세계의 자연스러운 삶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떨어진 관찰자가 되기 쉽지요.(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더욱 이상한 것일까요? 말하자면, 현대 문명인이 아마존의 오지에 갔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상황이 되니 말입니다.)
물론, 앞서 말한 여러가지 문제를 극복하고 있는 작품도 존재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무작정 반감을 가질 수는 없지만, 저로서는 역시 세계 그 자체의 가능성에서 파생되는 "대체 역사 이야기"를 더 좋아하고, 타임머신 등에 의한 역사 변이는 "대체 역사 이야기"라기보다는 "이세계 모험물"로서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2008.03.19 15:43:38
역사학도라서 대체역사물을 싫어한다는 것은 물리학도가 마법 세계관이나 스팀펑크는 헛소리이기 때문에 혐오한다는 것과 비슷하게 들리는군요. 뭐 좀 까칠하게 들리겠다만 자기만족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허무한 자기만족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과연 몇개나 될까 생각됩니다.
복서나 이종격투기를 열심히 연마하는 선수들이나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고 기능상 큰 차이도 없을 건물을 아름답게 꾸미려는 건축가도 사실 자기 만족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 일로 돈을 번다는 점에선 대체 역사를 쓰건 환상소설을 쓰건 운동을 하건 행정 업무를 하건 다 동일 하다면, 남는건 그 작업에서 얼마나 자기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머 내 생각일 뿐이긴 하지만)
이것은 위트이고 유머라고 생각합니다. 매우 진지한 어느 사람이 '그런 소리는 다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고 할 수도 있지요. 그게 말도 안되고 헛소리라는 건 다 알지 않습니까? 하지만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즐거워 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분석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더 그럴듯하게 재미있는 헛소리를 만들어낼까를 연구할 때라고 생각하는군요.
판타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 안되므로 그저 자기 만족이라면 순수 소설은 일단 배경은 현실이고 등장인물이라던가 이야기는 허구니까 한 절반쯤 자기 만족일 뿐이고 팩션은 애매모호 하니까 자기만족은 25%쯤 되며 나머지는 쓸모 있는 이야기일까요? 어차피 구라는 다 구라죠. 재미있으면 된거 아닐까요? 그것으로 의미가 충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그런 용도로 만들어지는 거니까 말이죠.
만약에 아인슈타인이 히틀러를 시공간으로 던지면 그 후 유럽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히려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면 더 재미있을 거 같습니다만... 그만큼 즐길 수 있는 배경지식이 있잖습니까?
복서나 이종격투기를 열심히 연마하는 선수들이나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고 기능상 큰 차이도 없을 건물을 아름답게 꾸미려는 건축가도 사실 자기 만족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 일로 돈을 번다는 점에선 대체 역사를 쓰건 환상소설을 쓰건 운동을 하건 행정 업무를 하건 다 동일 하다면, 남는건 그 작업에서 얼마나 자기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머 내 생각일 뿐이긴 하지만)
이것은 위트이고 유머라고 생각합니다. 매우 진지한 어느 사람이 '그런 소리는 다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고 할 수도 있지요. 그게 말도 안되고 헛소리라는 건 다 알지 않습니까? 하지만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즐거워 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분석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더 그럴듯하게 재미있는 헛소리를 만들어낼까를 연구할 때라고 생각하는군요.
판타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 안되므로 그저 자기 만족이라면 순수 소설은 일단 배경은 현실이고 등장인물이라던가 이야기는 허구니까 한 절반쯤 자기 만족일 뿐이고 팩션은 애매모호 하니까 자기만족은 25%쯤 되며 나머지는 쓸모 있는 이야기일까요? 어차피 구라는 다 구라죠. 재미있으면 된거 아닐까요? 그것으로 의미가 충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그런 용도로 만들어지는 거니까 말이죠.
만약에 아인슈타인이 히틀러를 시공간으로 던지면 그 후 유럽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히려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면 더 재미있을 거 같습니다만... 그만큼 즐길 수 있는 배경지식이 있잖습니까?
2008.03.19 15:43:38
그리고 그 사람들이 그 시대를 열심히 살았겠지만 현재의 우리 역시 열심히 살고 있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도 열심히 삽니다. 순수소설을 쓰는 사람도 열심히 삽니다. 판타지 소설을 쓰는 사람도 열심히 살고 있지요. 당연히 대체 역사를 쓰는 사람도 열심히 삽니다. 뭐 그런 사람들 중에 알콜 중독자나 마약 중독자라던가 하루에 12시간씩 자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겠지만 분명한 건 그럴듯하고 재미있는 구라를 치려면 열심히 그 활동에 몰두해야 합니다. 비단 소설이나 창작물 뿐 아니라 어느 작업이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젠장 남 말 할 때가...)
뒤집어 생각해봐서 미래의 소설가나 영화 제작자가 현대를 배경으로 대체 역사물을 만들어 낸다고 한들 우리가 살았던 행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겁니다. 저로서는 미래의 누군가가 그런 것을 만들어 낸다고 해도 '뭐임마!! 내가 오늘 하루하루를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이렇게 말할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대체 역사물을 판타지로 구분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판타지 장르로 편입시키면 그 시대 사람들에게 모욕이 되지 않고 이건 대체 역사물입니다. 라고 하면 모욕이 될까요? 그건 그냥 사람들끼리 규약을 정하는 것으로 옳다 그르다 하는 것 뿐 아닌가요?
대체 역사물은 '대체' 역사물입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이것이 구라임을 알고 즐기게 되면 되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이건 '진짜' 입니다. 라고 하면 문제가 생기겠죠.
다빈치 코드를 가지고 '이건 진짜임.' 이라고 하면 욕을 먹겠죠. '이건 소설입니다.'라고 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뒤집어 생각해봐서 미래의 소설가나 영화 제작자가 현대를 배경으로 대체 역사물을 만들어 낸다고 한들 우리가 살았던 행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겁니다. 저로서는 미래의 누군가가 그런 것을 만들어 낸다고 해도 '뭐임마!! 내가 오늘 하루하루를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이렇게 말할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대체 역사물을 판타지로 구분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판타지 장르로 편입시키면 그 시대 사람들에게 모욕이 되지 않고 이건 대체 역사물입니다. 라고 하면 모욕이 될까요? 그건 그냥 사람들끼리 규약을 정하는 것으로 옳다 그르다 하는 것 뿐 아닌가요?
대체 역사물은 '대체' 역사물입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이것이 구라임을 알고 즐기게 되면 되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이건 '진짜' 입니다. 라고 하면 문제가 생기겠죠.
다빈치 코드를 가지고 '이건 진짜임.' 이라고 하면 욕을 먹겠죠. '이건 소설입니다.'라고 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2008.03.19 15:43:38
위키페디아에서 보니 고대 축전지는 부정적인 견해도 있더군요. 단순한 포도주 저장통이라는 설도 있던데.... 또 고대 그리스의 계산기는 동양의 천구의와 같은 천체 계산기라는군요.(...)
2008.03.19 15:43:38
현대인이나, 미래인등 대체역사소설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시대보다 미래의 주민이 관련된 대체역사소설은 자위적 요소가 가장 강한 대체역사물중에 하나입니다. 일단 이 부류가 아마추어들을 중심으로 쓰여지고 있다는 것만 봐도 쉽게 알수 있습니다.
시대를 앞서는 존재가 기폭제가 되는 만큼 감정이입도 쉽고, 그다지 지식이 없어도 읽기 쉽고, 전개가 빠른데다가,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쉬운 내용(고구려, 신라, 백제, 고려, 조선, 대한제국만세! 팍스 코리아틱한 스토리...)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니 미래인같은 존재없이 실제 역사인물들만이 역사와는 다른 행동을 함으로써 일어나는 변화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대체역사물에 비하여 유행할수밖에 없습니다.
판타지건, 무협이건, 대체역사물이건 양산형이 많은 것은 어쩔수 없겠죠. 아니, 양산형이라기보다는 일본에서 드림 소설이라고 부르는 창작자 개인의 몽상적인 욕구와 희망이 그대로 드러난 창작물(1차, 2차 창작물 모두 포함.)처럼 몽상계 소설이라고 해야할까요?
수많은 우민중에 한 사람인 저로서는 그런 몽상계를 손에서 떼버릴 수가 없더군요. 이것도 일단 중독이긴 한 모양입니다. 카타르시스를 충족하는 것은 정신적 마약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시대를 앞서는 존재가 기폭제가 되는 만큼 감정이입도 쉽고, 그다지 지식이 없어도 읽기 쉽고, 전개가 빠른데다가,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쉬운 내용(고구려, 신라, 백제, 고려, 조선, 대한제국만세! 팍스 코리아틱한 스토리...)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니 미래인같은 존재없이 실제 역사인물들만이 역사와는 다른 행동을 함으로써 일어나는 변화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대체역사물에 비하여 유행할수밖에 없습니다.
판타지건, 무협이건, 대체역사물이건 양산형이 많은 것은 어쩔수 없겠죠. 아니, 양산형이라기보다는 일본에서 드림 소설이라고 부르는 창작자 개인의 몽상적인 욕구와 희망이 그대로 드러난 창작물(1차, 2차 창작물 모두 포함.)처럼 몽상계 소설이라고 해야할까요?
수많은 우민중에 한 사람인 저로서는 그런 몽상계를 손에서 떼버릴 수가 없더군요. 이것도 일단 중독이긴 한 모양입니다. 카타르시스를 충족하는 것은 정신적 마약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2008.03.19 15:43:38
호환마마님 //
사실, 편하게 접할 수 있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을 선호하는 이들이 많게 마련이지요.
하지만, 저는 고구려가 세계를 정복하는 '자위적인 카타르시스'보다는, 잘 쓰여진 대체 역사의 감동이 훨씬 더 즐겁고 좋더군요. 잘 쓰여진 대체 역사물은 깊이 있는 감동을 제공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좋은 대체 역사물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뭐, 제가 못 본 작품도 너무 많지만...)
nang01님 //
네. 그도 그렇습니다만, 일단 그것을 만들면 전기가 나오는 건 사실입니다.(과거에 "미스버스터"에서 실제로 실험을 해 보기했지요.) 그러니, 전지라고 생각해도 이상할 것은 없을 듯...^^
사실, 편하게 접할 수 있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을 선호하는 이들이 많게 마련이지요.
하지만, 저는 고구려가 세계를 정복하는 '자위적인 카타르시스'보다는, 잘 쓰여진 대체 역사의 감동이 훨씬 더 즐겁고 좋더군요. 잘 쓰여진 대체 역사물은 깊이 있는 감동을 제공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좋은 대체 역사물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뭐, 제가 못 본 작품도 너무 많지만...)
nang01님 //
네. 그도 그렇습니다만, 일단 그것을 만들면 전기가 나오는 건 사실입니다.(과거에 "미스버스터"에서 실제로 실험을 해 보기했지요.) 그러니, 전지라고 생각해도 이상할 것은 없을 듯...^^
대체역사는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이야깃거리가 되는 흥미 이상으로 밀접하고 오늘날, 현재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유의미한 것입니다. 게다가, 역사의 흐름은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지요.
대체된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은, 동시에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이런저러한 영향을 겪은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릴 수도 있는 위험한 지경에 발을 담구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적 자유를 보장받은 만큼, 그 자유가 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저질 내셔널리스트 자위행위가 되지 않도록 책임감 있는 글을 써야 한다....
.. 는 제약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