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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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좀 외설적이긴 한데, 괜찮겠죠. 어차피 여기 분들은 이미 볼 거 다 보셨으니까. 그리고 19금 이야기도 아닌 걸요.
소설 <노인의 전쟁>은 우주 전쟁물이면서 연애 이야기입니다. 행성 개척 방위군에 입대한 병사가 사별했던 아내와 만나는 줄거리니까요. 둘이 함께 하면서 추억을 되새기고, 다시 알콩달콩 사랑을 시작하죠. 아내 역시 방위군 병사인데, 그만큼 여군도 많다는 뜻입니다. 현대 군대가 대개 남성으로만 구성한 것과 큰 차이죠. 여군이 많은 이유는 설정상 외계인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일 겁니다. 개척 방위군은 지구에서 입대자를 받는데, 이것만 가지고 외계의 적을 상대하기는 턱없이 부족하거든요. 우주선끼리 어뢰 쏘는 시대라지만, 결국 행성에 깃발 꼽는 건 보병이잖아요. 작중 전투 묘사도 대개 보병 전투고요. 게다가 유전 공학으로 신체를 강화하고, 장비빨이 좋아서 굳이 성별을 가리지 않아도 됩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신체 능력이 약한지라 현대 전장에 나갈 일이 드물죠. 소설에서는 초인적인 육체를 얻으며, 다목적 전술 소총도 지급하는 등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싸웁니다.
그래서 개척 방위군은 남녀를 혼성으로 섞습니다. 남녀가 한방을 쓰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어요. 당연히 썸씽(!)이 일어나겠죠. 그것도 대원들이 많으니까 돌아가면서 뜨거운 파티를 벌입니다. 오예~, 신나는 섹스 파티입니다. 살아있다는 기쁨을 느끼고, 육체의 생동감을 맛보는 과정이죠. 사실 우주 군대가 광란의 섹스 파티를 벌인다는 설정은 제법 오래 되었습니다. 고전적인 밀리터리 SF 소설인 <영원한 전쟁>에도 비슷한 묘사가 나오죠. 여기서도 외계 종족과 싸우는데, 지구에서 신체 건강한 젊은이들을 대량으로 징집합니다. 전쟁 때문에 사회가 파탄 날 정도로 뽑아대는데, 당연히 남녀가 붙어 다니기 마련이죠. 군대에서 아예 이런 문화를 장려하기까지 합니다. 장교와 사병이 사귀는 것은 물론이요, 적적한 우주 기지에 새로운 우주선이 도착하면 한바탕 난리 납니다. 인기 좋은 병사들은 하도 잠자리에 끌려 다니는지라 피곤하다고 하소연해요. 저렇게 기운을 빼서 나중에 어떻게 싸우려는지.
그렇다고 우주 군대 병사들이 아무하고나 관계하는 건 아닙니다. 육체적 관계는 맺을지언정 마음에 두는 사람은 따로 있어요. 그래서 소설 끝은 커플 탄생으로 마무리합니다. <노인의 전쟁>도 그렇고, <영원한 전쟁>도 마찬가지죠. 한쪽은 죽음을 넘어 유전자 수준에서 만나는 연애고, 다른 한쪽은 시간을 거슬러 영원히 짝을 기다립니다. 오오, 우주 군대의 커플은 만남조차 대장정입니다. 그렇다면 <노인의 전쟁>과 <영원한 전쟁>의 모티브, 그러니까 원조 우주 군대물인 <스타십 트루퍼스>는 어떨까요. 원조답게 저 두 소설보다 훨씬 진하고 끈적거리는 섹스 파티를 벌일까요? 병사들이 멀고도 광대한 우주를 건너뛰어 연애할까요? 천만에요, 정반대입니다. 소설에 나오는 기동보병은 사실상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부대입니다. 우주 군대에 여군이 없는 건 아니에요. 실제로 함장은 대부분 여성이고, 주인공 리코가 탄 로저 영의 함장도 여성이며, 친구인 카르멘 역시 미모의 함장으로 이름값이 높습니다.
하지만 저건 어디까지나 해군 이야기이며, 기동보병은 여자 구경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리코가 훈련병 시절에는 하도 구경을 못해서 ‘이 세상에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농담까지 떠돌았죠. 어쩌다 여성 행정병을 보면 좋아서 죽을 지경입니다. 자대 배치를 받아도 마찬가지라 보초 근무를 설 때나 가끔 여군을 보는 정도죠. 격벽 너머에 여성 전용 구역이 따로 있거든요. 장교로 올라가면 조종사들과 함께 식사하니까 자주 보기는 하는데, 병사들은 그것도 안 됩니다. 덕분에 소설 끝날 때까지 리코는 솔로로 지냅니다. 뭐, 뼛속들이 강철 같은 군인이니까 본인이야 이성에 그리 관심 없겠죠. 정 원한다면 결혼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소설에서 리코가 연애하는 이야기는 하나도 안 나옵니다. 후배인 <영원한 전쟁>과 <노인의 전쟁>이 신나고 즐거운 섹스 파티를 벌이고, 마지막까지 커플들의 애정으로 끝나는 것과 천지차이죠. 군인의 이상을 논하느라 바빠서 연애도 못해요.
아, 영화판에서 남녀 혼욕 장면이 나오긴 합니다. 그런데 그건 영화판 설정이지, 소설과는 전혀 달라요. 강화복이 있으니까 신체 차이를 무시할 수 있고, 따라서 여군이 있어도 되긴 할 겁니다. 그러나 가뜩이나 인류의 자유의지를 떠들기도 바쁜 마당에 연애 이야기까지 집어넣으면 복잡하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따라서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스타십 트루퍼스>는 섹스 파티 같은 거 없습니다. 물론 로버트 하인라인이 고지식한 꼰대라서 섹스를 싫어한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양반은 너무 개방적이라 남녀 관계를 거리낌없이 묘사하는 쪽이죠.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을 보세요. 가족들이 돌아가며 관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름대로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따라서 기동보병에 남정네만 득실거리는 이유는 순전히 주제를 부각하기 위함입니다. 흠, <영원한 전쟁>과 <노인의 전쟁>은 군대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강하니, 성향 차이도 한몫 하겠어요.
개인적으로는 <영원한 전쟁>과 <노인의 전쟁> 쪽이 더 좋습니다. 보다 자유분방한 분위기라고 할까요. 이왕이면 솔로보다 커플이 낫잖아요. 아무리 원조라도 아저씨들만 우글거리는 기동보병은 좀…. 으음.
하인라인이 보수적이라기 보다는 50~60년대에 스스로 남녀의 역활에 대해 선을 긋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66년작인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에서도 여성의 지적 능력에 대해서는 남자보다 낫다고 찬양하면서도 육체적인 능력에 대해서는 남자가 낫다는 묘사가 나오고, 특히 직접적인 전투를 하는 경우는 남자들로 구성합니다.
아마도 마초기질이 좀 있는 하인라인은 여성이 남성보다 못할건 전혀 없지만, 그래도 직접적인 살육행위에 여성을 보내는 것은 '신사'로서 할일이 못된다고 생각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82년작인 프라이데이에서는 여자 주인공이 직접 무력을 쓰는 묘사가 있는걸 보면 이 양반도 나이 먹으면서 변했나봐요
그 섹스 파티 쪽 대목은 잘 읽어봤습니다. ^^ 나중에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 진다면, 그 부분은 어떻게 영상화될까 생각하다가 혼자 크게 웃어버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