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SF, 판타지, 무협 등 다양한 장르의 창작 소설이나 개인의 세계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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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7
Episode 04
발바닥이 눈 속에 빨려 들어가듯 박힌다. 인간의 발이 닿는 넓직한 감촉과는 다르게, 발끝부터 눈 속에 박히는 이 4족보행의 감각이 언젠가는 익숙해 졌으면 하지만, 그런 바램과는 다르게 네발걸음은 여전히 편하지가 못하다. 가끔씩 좌측과 우측의 다리가 따로 노는 기우뚱거리는 몸을 천천히 옮긴다.
걷는 것은 어느 정도 능숙하게 할 수 있지만, 애석하게도 달리는 것은 아직도 편하지 않다. 바뀌어 버린 시야,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음에도 수평으로 움직이기는 많이 어색한 허리, 그리고 더 굽은 뒷다리는 인간의 모습이었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을 느끼는 것에 자잘한 불편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수북히 난 털 사이로 냉기가 흘러 들어왔다. 눈 아래의 지면의 물기가 얼어 있었지만, 거친 발바닥과 발톱으로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걸었을까, 어느새 부두 앞에 도착해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던지는 눈뭉치를 피해 마을로 다가갔다. 평소에 그다지 높지 않다고 생각했던 2,3층 건물들이 지금은 2배는 더 높아보였다.
“엄마! 저것 봐!”
어머니가 만무함에도 불구하고 달려와서 내 털을 이리저리 만지는 어린아이, 평소면 내 머리보다 30cm 자 하나 길이만큼 낮은 것 같은 어린애이건만, 지금은 내가 올려다봐야 할 높이이다. 방금 외투 주머니에서 꺼낸 차가운 손, 얼은 모양인지 만지작거리는 손놀림이 딱딱하기만 하다. 조금 연한 색의 화사한 금발. 바람에 휘날리는 그 긴 머리칼을 보는 것이 좋았던 탓일까, 이것을 어떻게 하여야 하나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손!”
어이쿠, 이거야 원, 애완견이 따로 없다. 그렇다고 웃는 아이 앞에서 이것을 외면 할 수도 없었기에, 눈에 젖은 거칠한 발바닥을 조그마한 손 위에 얹어주었다. 그것이 그렇게나 즐거운 것인지, 그 웃음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다.
작별인사로 손을 흔들어 주는 그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려니, 지금은 그것이 손이 아니라 발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그 아이는 못내 아쉬운지 가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백화점의 벽에 걸린 커다란 시계의 바늘은 아직 5시를 가리키지도 않았는데, 벌써 해가 다 떨어졌다.
월요일인 탓일까, 교회 앞은 불빛 하나 없이 인적이 뜸한 상태였다. 이오니아식으로 보이는 기둥의 옆에 조그맣게 자리 잡은 금속 육면체에는 내 눈높이에 맞추어 조그만 구멍이 나 있었다. 훙터의 모양을 하고 내 몸에 숨겨져 있던 서신을 입에 물어 그 안에 떨어뜨려 넣었다.
돌아가는 길의 바다에서는 소금냄새가 평소보다 옅어져있었다. 빈틈도 없이 얼어있는 것 같은 바다는 허전했다. 부동항이 아닌 이곳에서는 가을이 시작되면 자연히 선박들은 뜸해진다. 그나마 무인의 등대만이 여기서 어둠을 밝히고 있을 뿐이었다.
숲속에도 쌓인 눈들은 높은 침엽수림에 갇혀 촉감만이 그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지만, 그늘지지 않은 케언의 뜰에서 달빛에 비치는 그 눈의 섬광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드러눕고 싶은 충동을 선사한다. 밤에 비치는 눈빛을 보고 공부를 했다고 어떤 성인이 그랬는가, 아마 우리도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다녀왔습니다.”
내 인사가 벽난로에서 장작이 타들어가는 요란한 소리에 묻힌 것일까, 한동안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대답은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에 돌아왔다.
“들어와라.”
조금은 강압적으로 느껴지는 이 목소리가 어느 새인가 익숙해 졌는지, 지금은 움츠러들지도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전히 어려운 목소리라는 것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장로가 손으로 가리키는 자리에 앉아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자니, 장로는 불빛만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몇 년이지?”
“예?”
난데없는 대답에 나 자신도 반문했지만, 실은 장로가 무엇을 묻고 있는지는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네가 여기로 온 지 몇 년이나 지났느냐?”
“2년입니다.”
과거회상이라도 하자는 것인가, 그런 엄숙하던 목소리가 치명적인 사실을 들추었다.
“2년이나 된 녀석이 루퍼스폼(Form)에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다니….”
“장로님, 저 일하고 왔다고요….”
“그것도 일이라고 하는 것이냐, 이 녀석아.”
“서신 전달은 라가바시들에게 시키시지 왜 하필이면 접니까?”
“왜긴, 하도 게으름 피기에 기왕 시켰지.”
뭐, 평소에 하던 사냥에 비하면 잔업 축에도 못 끼지만, 그렇게 부려먹고서 마지막은 좀 아름답게 칭찬으로 끝내주면 안 되는 것인가.
“서신은 잘 전해두고 왔느냐.”
“예, 함에 잘 넣어두고 왔습니다.”
나에게 맡길 때에는 그렇게 신신당부했던 모습 치고는 무관심한 모습이었다.
“엘더(Elder), 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음?”
“그 서신이 무엇입니까?”
“그냥 단순한 편지란다.”
그래서 대답도 그리 단순하군.
“농담이시죠?
“네가 ‘무엇’이냐고 묻지 않았느냐?”
한 방 먹었다. 그늘에 표정을 자세히 볼 수는 없지만, 보나마나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장로를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별 수 없는 나 자신의 말재간을 탓할 뿐이다.
“곧 있으면 이곳에 오실 손님에게 보내는 편지란다.”
“그런 방식으로 서신을 보내다니, 손님이 어디 첩보기관에라도 계시나요?”
“아니, 하지만 그런 취미를 즐기시긴 하지.”
첩보가 취미라, 매우 고상한 취미이군. 그럼 혹시 손님은 피어스 브로스넌 일지도 모르겠군. 사인 받을 종이나 준비해 놓는 것은 어떨까?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제니퍼 가너 라면 더 좋겠는데 말이다.
“왜 하필 그 교회입니까?”
“그곳 사람이 그분과 친분이 있는 사이기 때문이지.”
이런, 너무나 당연해서 뭐라 반문할 거리도 없는 대답이다. 손님을 초대할 거리라면 아마 몇 주 남지 않은 동짓날 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고, 여태 의식을 치를 때 그다지 객이 들지 않았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공적인 성격이 강한 손님일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겠다.
“그 분에게 우리들이 도움을 많이 받고 있지.”
“흠… 부자이신가 보군요.”
“우리들 중에서 인간들 사이에서 경제적 활동을 하시는 분들은 그다지 많지 않지 않느냐.”
그건 그렇다. 딱히 무리(Pack)에서 번듯한 직장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 한 명뿐이고, 설마 대부 혼자서 40여 명의 무리의 생활비를 다 감당할 수도 없으니까 말이다. 어딘가에 후원자가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번 손님께서는 꽤나 정성스럽게 접대를 받을 것 같군.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바깥으로 나가 이번에는 신발 밑창으로 눈을 밟는다. 아까와는 다르게 귀에 선명하게 들려오는 뽀드득 거리는 소리를 조금 더 듣고 싶어서 찬바람을 따라 빨라져 가는 걸음을 늦추었다.
몇 분이 지났다. 암흑 사이에서 그나마 도로를 비추고 있는 가로등이 시야에 들어왔을 때, 평소에 사냥하던 것들의 냄새를 맡았다. 부조리의 느낌, 오염의 느낌. 실은 냄새라고 해야 할지, 무엇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는 이 감각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눈에 보이는 것도, 귀에 들리는 것도 아닌 이것을 그냥 나는 후각으로 표현한다.
하나가 아니었다. 숫자가 어느 정도 되어 보이는 그 목표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가 근처의 거목에 올랐다. 무엇을 하려는지 는 모르지만, 그들은 깨진 가로등의 어둠 아래에서 몇 채 안 되는 작은 건물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7명이었다. 각자 손에 무기를 거머쥐고 있었고, 몇몇은 아주 작은 소리로 킬킬대고 있었다.
섣불리 달려들 수는 없었다. 숫자는 숫자이니까, 거기다 그들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고. 섣불리 건드려서 다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물론 몸 사리는 짓은 그다지 어울리지는 않지만 말이다.
안 좋은 느낌이 지난 것은 몇 분이 지나고 나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이가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였다. 눈앞의 무리들과 비슷한 느낌을 내뿜는 것들이 뒤에서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설령 아니라고 해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 일단 들키면 봉변을 당할 테니까.
일단 눈앞의 무리들은 떠나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등 뒤의 다른 일행들에게 집중할 여유가 생겼다. 그렇지만 나무 위에서의 시야 내에서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위치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3명의 일행 중 2명은 내 좌우를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한명만 넘기면 된다고 안심했을 무렵, 등 뒤의 한 명이 움직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지나쳤던 두 명 역시 멈추어 있었다. 포위당한 것이다.
“그만 내려오시지.”
비웃는 듯 하는 가벼운 목소리는 좌측 전방에서 들려왔다. 더는 숨어도 소용이 없는 것, 일단은 내려갈 수밖에는 없는 듯 했다.
“사바트 녀석들은 왜 왔는지는 뻔하고, 너는 또 누구나?”
살짝 건들거리는 그 자세가 왠지 기분 나쁘다. 실실거리는 그 웃음도 마찬가지. 우측의 나머지 한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짜증나는 그 표정에서 달빛에 비치는 두 송곳니가 눈에 들어왔다.
“넌 뭐 하러 왔냐니까?! 몇 대 맞고 싶나보지?”
“누가 맞을 것 같나?”
“뭐?”
굽어가는 무릎, 온 몸에서 돋아다는 털과, 늘어나는 발톱들. 마치 고릴라가 주먹으로 가슴을 쿵쿵거리듯, 나 자신이 즐겨 사용하는 위협의 행동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대부분 효과 만점이다.
“어, 어이.”
“저, 저 녀석 늑대(Lupine)야.”
등 뒤의 녀석은 아무런 움직임도,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별 일이라며 생각하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어디선가 낯이 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비록 2년 전의 덥수룩한 수염과 헝클어진 머리칼은 달라져 있었지만, 그 모습에서 느껴지던 야성만큼은 내 기억 속에서 어렴풋이 남아있었다.
“아, 흰색 털을 보고 혹시나 했건만, 역시 자네였군. 이 주변에서 흰색 털은 딱 한번 보았거든.”
조금 퉁명스러운 그 어둑한 목소리 역시 여전했다. 비록 표정만큼은 그때처럼 사납지 않아도, 과거 그 무서운 싸움의 기억을 떠올리면 충분히 위협적일 만하다.
“그냥 말로 대답을 해 주어도 되지 않나. 설마 정말 난리를 칠 생각은 아니겠지?”
이 목소리에는 알아차리기 힘든 위협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물론, 나도 그 앞에서 섣불리 난동을 부릴 만큼 바보는 아니다.
“물론 아닙니다.”
“못 본 사이 꽤나 파란만장하게 살아왔나 보군, 몸이 왜 그리 흉터투성이인가?”
“뭐, 그렇게 되었습니다.”
[[HR:COLOR=#FFFFFF,SIZE=1,WIDTH=95%]]
격주연재... 시스로드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연재! 언리미티드 연재!! (이제는 별 생각을 다 하는구나...)
발바닥이 눈 속에 빨려 들어가듯 박힌다. 인간의 발이 닿는 넓직한 감촉과는 다르게, 발끝부터 눈 속에 박히는 이 4족보행의 감각이 언젠가는 익숙해 졌으면 하지만, 그런 바램과는 다르게 네발걸음은 여전히 편하지가 못하다. 가끔씩 좌측과 우측의 다리가 따로 노는 기우뚱거리는 몸을 천천히 옮긴다.
걷는 것은 어느 정도 능숙하게 할 수 있지만, 애석하게도 달리는 것은 아직도 편하지 않다. 바뀌어 버린 시야,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음에도 수평으로 움직이기는 많이 어색한 허리, 그리고 더 굽은 뒷다리는 인간의 모습이었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을 느끼는 것에 자잘한 불편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수북히 난 털 사이로 냉기가 흘러 들어왔다. 눈 아래의 지면의 물기가 얼어 있었지만, 거친 발바닥과 발톱으로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걸었을까, 어느새 부두 앞에 도착해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던지는 눈뭉치를 피해 마을로 다가갔다. 평소에 그다지 높지 않다고 생각했던 2,3층 건물들이 지금은 2배는 더 높아보였다.
“엄마! 저것 봐!”
어머니가 만무함에도 불구하고 달려와서 내 털을 이리저리 만지는 어린아이, 평소면 내 머리보다 30cm 자 하나 길이만큼 낮은 것 같은 어린애이건만, 지금은 내가 올려다봐야 할 높이이다. 방금 외투 주머니에서 꺼낸 차가운 손, 얼은 모양인지 만지작거리는 손놀림이 딱딱하기만 하다. 조금 연한 색의 화사한 금발. 바람에 휘날리는 그 긴 머리칼을 보는 것이 좋았던 탓일까, 이것을 어떻게 하여야 하나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손!”
어이쿠, 이거야 원, 애완견이 따로 없다. 그렇다고 웃는 아이 앞에서 이것을 외면 할 수도 없었기에, 눈에 젖은 거칠한 발바닥을 조그마한 손 위에 얹어주었다. 그것이 그렇게나 즐거운 것인지, 그 웃음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다.
작별인사로 손을 흔들어 주는 그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려니, 지금은 그것이 손이 아니라 발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그 아이는 못내 아쉬운지 가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백화점의 벽에 걸린 커다란 시계의 바늘은 아직 5시를 가리키지도 않았는데, 벌써 해가 다 떨어졌다.
월요일인 탓일까, 교회 앞은 불빛 하나 없이 인적이 뜸한 상태였다. 이오니아식으로 보이는 기둥의 옆에 조그맣게 자리 잡은 금속 육면체에는 내 눈높이에 맞추어 조그만 구멍이 나 있었다. 훙터의 모양을 하고 내 몸에 숨겨져 있던 서신을 입에 물어 그 안에 떨어뜨려 넣었다.
돌아가는 길의 바다에서는 소금냄새가 평소보다 옅어져있었다. 빈틈도 없이 얼어있는 것 같은 바다는 허전했다. 부동항이 아닌 이곳에서는 가을이 시작되면 자연히 선박들은 뜸해진다. 그나마 무인의 등대만이 여기서 어둠을 밝히고 있을 뿐이었다.
숲속에도 쌓인 눈들은 높은 침엽수림에 갇혀 촉감만이 그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지만, 그늘지지 않은 케언의 뜰에서 달빛에 비치는 그 눈의 섬광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드러눕고 싶은 충동을 선사한다. 밤에 비치는 눈빛을 보고 공부를 했다고 어떤 성인이 그랬는가, 아마 우리도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다녀왔습니다.”
내 인사가 벽난로에서 장작이 타들어가는 요란한 소리에 묻힌 것일까, 한동안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대답은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에 돌아왔다.
“들어와라.”
조금은 강압적으로 느껴지는 이 목소리가 어느 새인가 익숙해 졌는지, 지금은 움츠러들지도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전히 어려운 목소리라는 것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장로가 손으로 가리키는 자리에 앉아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자니, 장로는 불빛만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몇 년이지?”
“예?”
난데없는 대답에 나 자신도 반문했지만, 실은 장로가 무엇을 묻고 있는지는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네가 여기로 온 지 몇 년이나 지났느냐?”
“2년입니다.”
과거회상이라도 하자는 것인가, 그런 엄숙하던 목소리가 치명적인 사실을 들추었다.
“2년이나 된 녀석이 루퍼스폼(Form)에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다니….”
“장로님, 저 일하고 왔다고요….”
“그것도 일이라고 하는 것이냐, 이 녀석아.”
“서신 전달은 라가바시들에게 시키시지 왜 하필이면 접니까?”
“왜긴, 하도 게으름 피기에 기왕 시켰지.”
뭐, 평소에 하던 사냥에 비하면 잔업 축에도 못 끼지만, 그렇게 부려먹고서 마지막은 좀 아름답게 칭찬으로 끝내주면 안 되는 것인가.
“서신은 잘 전해두고 왔느냐.”
“예, 함에 잘 넣어두고 왔습니다.”
나에게 맡길 때에는 그렇게 신신당부했던 모습 치고는 무관심한 모습이었다.
“엘더(Elder), 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음?”
“그 서신이 무엇입니까?”
“그냥 단순한 편지란다.”
그래서 대답도 그리 단순하군.
“농담이시죠?
“네가 ‘무엇’이냐고 묻지 않았느냐?”
한 방 먹었다. 그늘에 표정을 자세히 볼 수는 없지만, 보나마나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장로를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별 수 없는 나 자신의 말재간을 탓할 뿐이다.
“곧 있으면 이곳에 오실 손님에게 보내는 편지란다.”
“그런 방식으로 서신을 보내다니, 손님이 어디 첩보기관에라도 계시나요?”
“아니, 하지만 그런 취미를 즐기시긴 하지.”
첩보가 취미라, 매우 고상한 취미이군. 그럼 혹시 손님은 피어스 브로스넌 일지도 모르겠군. 사인 받을 종이나 준비해 놓는 것은 어떨까?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제니퍼 가너 라면 더 좋겠는데 말이다.
“왜 하필 그 교회입니까?”
“그곳 사람이 그분과 친분이 있는 사이기 때문이지.”
이런, 너무나 당연해서 뭐라 반문할 거리도 없는 대답이다. 손님을 초대할 거리라면 아마 몇 주 남지 않은 동짓날 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고, 여태 의식을 치를 때 그다지 객이 들지 않았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공적인 성격이 강한 손님일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겠다.
“그 분에게 우리들이 도움을 많이 받고 있지.”
“흠… 부자이신가 보군요.”
“우리들 중에서 인간들 사이에서 경제적 활동을 하시는 분들은 그다지 많지 않지 않느냐.”
그건 그렇다. 딱히 무리(Pack)에서 번듯한 직장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 한 명뿐이고, 설마 대부 혼자서 40여 명의 무리의 생활비를 다 감당할 수도 없으니까 말이다. 어딘가에 후원자가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번 손님께서는 꽤나 정성스럽게 접대를 받을 것 같군.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바깥으로 나가 이번에는 신발 밑창으로 눈을 밟는다. 아까와는 다르게 귀에 선명하게 들려오는 뽀드득 거리는 소리를 조금 더 듣고 싶어서 찬바람을 따라 빨라져 가는 걸음을 늦추었다.
몇 분이 지났다. 암흑 사이에서 그나마 도로를 비추고 있는 가로등이 시야에 들어왔을 때, 평소에 사냥하던 것들의 냄새를 맡았다. 부조리의 느낌, 오염의 느낌. 실은 냄새라고 해야 할지, 무엇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는 이 감각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눈에 보이는 것도, 귀에 들리는 것도 아닌 이것을 그냥 나는 후각으로 표현한다.
하나가 아니었다. 숫자가 어느 정도 되어 보이는 그 목표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가 근처의 거목에 올랐다. 무엇을 하려는지 는 모르지만, 그들은 깨진 가로등의 어둠 아래에서 몇 채 안 되는 작은 건물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7명이었다. 각자 손에 무기를 거머쥐고 있었고, 몇몇은 아주 작은 소리로 킬킬대고 있었다.
섣불리 달려들 수는 없었다. 숫자는 숫자이니까, 거기다 그들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고. 섣불리 건드려서 다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물론 몸 사리는 짓은 그다지 어울리지는 않지만 말이다.
안 좋은 느낌이 지난 것은 몇 분이 지나고 나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이가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였다. 눈앞의 무리들과 비슷한 느낌을 내뿜는 것들이 뒤에서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설령 아니라고 해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 일단 들키면 봉변을 당할 테니까.
일단 눈앞의 무리들은 떠나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등 뒤의 다른 일행들에게 집중할 여유가 생겼다. 그렇지만 나무 위에서의 시야 내에서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위치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3명의 일행 중 2명은 내 좌우를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한명만 넘기면 된다고 안심했을 무렵, 등 뒤의 한 명이 움직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지나쳤던 두 명 역시 멈추어 있었다. 포위당한 것이다.
“그만 내려오시지.”
비웃는 듯 하는 가벼운 목소리는 좌측 전방에서 들려왔다. 더는 숨어도 소용이 없는 것, 일단은 내려갈 수밖에는 없는 듯 했다.
“사바트 녀석들은 왜 왔는지는 뻔하고, 너는 또 누구나?”
살짝 건들거리는 그 자세가 왠지 기분 나쁘다. 실실거리는 그 웃음도 마찬가지. 우측의 나머지 한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짜증나는 그 표정에서 달빛에 비치는 두 송곳니가 눈에 들어왔다.
“넌 뭐 하러 왔냐니까?! 몇 대 맞고 싶나보지?”
“누가 맞을 것 같나?”
“뭐?”
굽어가는 무릎, 온 몸에서 돋아다는 털과, 늘어나는 발톱들. 마치 고릴라가 주먹으로 가슴을 쿵쿵거리듯, 나 자신이 즐겨 사용하는 위협의 행동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대부분 효과 만점이다.
“어, 어이.”
“저, 저 녀석 늑대(Lupine)야.”
등 뒤의 녀석은 아무런 움직임도,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별 일이라며 생각하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어디선가 낯이 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비록 2년 전의 덥수룩한 수염과 헝클어진 머리칼은 달라져 있었지만, 그 모습에서 느껴지던 야성만큼은 내 기억 속에서 어렴풋이 남아있었다.
“아, 흰색 털을 보고 혹시나 했건만, 역시 자네였군. 이 주변에서 흰색 털은 딱 한번 보았거든.”
조금 퉁명스러운 그 어둑한 목소리 역시 여전했다. 비록 표정만큼은 그때처럼 사납지 않아도, 과거 그 무서운 싸움의 기억을 떠올리면 충분히 위협적일 만하다.
“그냥 말로 대답을 해 주어도 되지 않나. 설마 정말 난리를 칠 생각은 아니겠지?”
이 목소리에는 알아차리기 힘든 위협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물론, 나도 그 앞에서 섣불리 난동을 부릴 만큼 바보는 아니다.
“물론 아닙니다.”
“못 본 사이 꽤나 파란만장하게 살아왔나 보군, 몸이 왜 그리 흉터투성이인가?”
“뭐, 그렇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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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연재... 시스로드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연재! 언리미티드 연재!! (이제는 별 생각을 다 하는구나...)
ㅇㅅㅇ?
나의 몸은 글로 되어 있다...... 고유결계! 무한말빨!
왠지 탐나는군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