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

일이야 어찌 되었건, 결국 시험은 대충 성공적으로 끝났다. 뱀파이어들은 대부분 쓸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애송이Cub를 벗어나는 것에는 성공했다. 마법사와 접촉했다는 사실에 다들 놀랐지만, 어떻게 무사히 위기를 넘겼기 때문에 별 탈 없이 시험은 완수되었다.

내 멘토(Mentor - 스승)인 맥브라이드가 직접 내 상처에 재를 바른다. 이렇게 재를 발라 흉터를 남김으로서, 이것을 자랑거리로 삼는 의식이다. 총에 상처를 입건, 칼에 상처를 입건, 입은 상처는 많고 많지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는 얼굴의 상처를 남기기를 택했다. 맥브라이드는 술까지 들고 와 버렸다. 내가 아직은 나이가 안 된다며 거절을 해도 계속 권하는 바람에 결국은 마시게 되었다.

“아직 완전히 인정받으려면 한참은 멀었지만, 최소한 앞으로 불신을 살 일은 적을 걸세. 기뻐하게나.”

아메리카 대륙의 토착부족인 웬디고Wendigo, 욱테나Uktena 들이 거의 전부인 Sept of Glacial에서, 나와 대부는 유일하게 유럽인 러시아에서 유래된 실버 팽Silver Fang인 탓에, 유럽인들에게 많은 피해를 본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인 이들은 유럽에서 유래된 부족인 우리들을 곱게 볼 리가 없었고, 그것이 이유인지, 나는 몇 배는 어려운 시험을 쳐야 했던 것이다. 운이 좋았던 탓에, 시험의 성과는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시험 전이건, 후이건 내가 등장하면 주변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리는 모습은 그다지 다를 바가 없었다. 그것이 조금 줄어들었다고 믿고는 싶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돌아가고 싶어도,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 설령 그것이 절망이라고는 해도, 그것이 숙명 이니까.’

처음 이 Sept에 왔을 때, 알파Alpha가 나에게 한 말이다. 나는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설령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지금처럼 다시 망가질 테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이 손에 들어온 힘을 다시는 잃고 싶지 않다. 그렇게나 갈망한 힘을 손에 넣었다. 그것이 내가 쟁취한 것이 아니라, 우연으로 내 눈앞에 굴러들어온 것 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내버릴 생각은 없다. 그 날, 나에게서 죽음이라는 안식을 앗아간 것의 대가로 생각하자. 그래, 그것이면 충분하다. 어차피 나 자신에게 의미가 남았다면 얼마나 남았겠는가.
*) Alpha - 무리의 우두머리.

“너… 그거 정말 사실이야? 각성하면서 가족을 다….”
“야!”

‘그 날’의 일을 물으려는 내 동기의 질문을 옆에서 누군가가 끊는다. 나는 그다지 물어도 상관은 없지만, 이들은 그 사실을 꽤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그래, 나에게 있어서 가족은 이들의 가족과는 의미가 틀릴 테니까. 자신의 핏줄을 죽인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분명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로 보였을 것이다. ‘가족에 대한 분노로 인한 각성’이란 사실이 흔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질문을 했던 이는 나를 매우 놀랍다는 듯이 바라보며, 무언가를 더 묻고 싶어 하지만, 옆에서 계속 저지하는 이 때문에 결국은 포기한 것 같다.

“미안… 애들이 네 소문이 호기심이 많은가봐….”

다른 애들이 옆에서 나에게 묻는 것을 계속 저지하던 그녀는, 이제는 나에게 대신해서 사과까지 한다. 이것도 내 이기심일까. 비난받는 것도, 홀로 남겨지는 것도 익숙한 나이지만, 결국은 이렇게 예기 해 주는 것이 기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 상처… 괜찮아? 아팠겠다….”

중재자이자, 판결자인 필로독스인 그녀는 나처럼 전투에 굳이 임할 필요가 없다. 그녀는 보나마나 공정성을 가리는 그런 머리를 쓰는 시험을 쳤을 것이다. 그다지 불만은 없다. 단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것인데, 그것을 누가 비난하겠는가. 이런 그녀에게 얼굴에 크게 난 칼자국은, 비록 칼 한번 정도는 별게 아닌 가로우의 육체이지만, 걱정스러운 일 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쩌면 그녀의 심성이 그럴 수도 있겠지.

무표정한 표정이 바뀌려는 것을 애써 참는다. 기쁘다고 해야 할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녀에게 걱정해 줘서 고맙다는 말이 하고 싶은데, 그 말이 입에서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을 할 때를 잡지 못한 것 일까, 아니면 내가 말 할 용기가 없던 것일까. 결국 내 입에서 튀어 나온 말은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뿐이었다. 무언가를 더 말하고 싶었지만, 멘토의 부름을 받았다. 그 말을 하지 못한 나 자신을 자책하며,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난다.

우리가 사는 곳은 그다지 도시와 떨어진 곳은 아니다. 주변의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시가지가 눈에 들어올 정도의 거리이기 때문에, 조금만 가면 도시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가끔은 도시가 그립기는 하다. 주변에서 알고 지내던 이들도 기억나고, 도시적인 현대생활의 편리함을 가끔씩은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아무래도 이 예기들을 멘토에게 한다면 욕을 좀 먹겠지만 말이다.

Sept에 늑대태생의 루퍼스Lupus는 드물기 때문에, 일단은 평소 인간처럼 생활하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다. 거기다 하필이면 운수도 없게 집을 만들 나무나, 장작 째는 일은 꼭 내가 맡곤 한다. 그것도 하필이면 이 오밤중에. 덕분에 운동이나 좀 한다고 위안을….

“나무. 여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누가 루퍼스 아니랄까, 두 마디씩 딱딱 끊어 말하는 것, 거기다 그 부자연스러운 음색. 의사소통이 능숙하다 못해 그냥 자연스러운 인간태생과는 너무 다르다. 궁금한 점이라면, 이들은 언어의 활용을 어떻게 익혔을까. 늑대도 집단생활을 하고,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지만, 인간처럼 언어를 활용하진 않지 않는가. 분명, 그는 언어 활용을 익히기 위해서 머리 뽀개질 정도로 고생했을 터인….

“꺄악!”

언덕 아래에서 들려오는 쉰 음색의 비명소리, 갑작스러운 밤의 찬 공기를 따라 울려 퍼지는 소리에, 나와 그는 동시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아래에서 누군가가 안 좋은 상황이 벌어진 듯하다.

“두 발?”

이 녀석도 여김 없이 인간을 ‘두 발’이라 부른다. 고개를 끄떡이고 언덕을 그대로 뛰어 내려간다. 이 녀석은 나를 그대로 앞서가더니, 알아서 뛰어서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간다. 딱히 근원지로 생각되는 곳은 외곽에 홀로 떨어져 있는 주택가. 담을 뛰어 넘어 진입하지만, 소리는 이미 끊겨있었다.

“여기.”

냄새라도 맡았는지, 아니면 내가 듣지 못한 소리를 들었는지. 그가 가리키는 문에 귀를 대고 들어보니, 희미한 신음소리와 제법 강한 피 냄새가 퍼지고 있었다. 들어가려 했지만, 문은 잠겨있었다. 창문을 깨고 들어가 보려 하지만, 그 전에 문의 잠금은 쇳소리를 내면서 풀렸다.

“열었다.”

문 앞에서 뚝 떨어져 있는데다가, 늑대 형상의 발로 어떻게 연다는 것인가…. 능력을 보아하니, 이 녀석, 라가바시였군….

열린 문 안에 들어서자 피 냄새는 더 진해졌다. 무언가 불안하다. 인기척이 없으니까.

“두 발. 이제는 없다.”
“응?”
“두 발. 한 명 죽었다.”
“혹시 여기서 빠져나간 게 있어?”
“없다.”

희생자가 났다는 사실은 눈앞에 있는 노인의 시체를 봐도 알겠지만…. 내 느낌에 여기서 아무도 빠져나간 것 같지 않다. 깨어진 창문도 없고,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

“위험!”

단순한 두 음절의 외침과 동시에, 암석 재질의 바닥이 긁히는 소리가 났다. 시야 바깥에에 놓여있던 허리 높이의 목재 선반이 이쪽을 향해 돌진하는 것을 알아챘지만, 피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당황한 나머지 몸을 변형조차 할 수 없었기에, 단순한 인간의 몸은 선반에 부딛쳐 벽 사이에 끼어버렸다. 복부에 목재 선반이 부딛친 통증에 거의 정신을 잃을 뻔했다. 거기다가 이 선반은 계속 압력을 가해 내 몸을 조여오고 있었다. 몸이 짓눌려 가는 와중에 옆의 녀석이 Crinos화 되어 선반을 밀쳐 내 주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빛나는 전등은 어느새 불규칙적으로 깜빡이기 시작 했고, 시야에 열려진 창문은 눈에 띄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방향에서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열려 있는 문은 어느 새 전부 닫혀버렸고, 밀폐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집 내부에서는 벽면을 때리며 울려오는 웃음소리, 울음소리, 한술 더 떠서 들려오는 드럼연주소리가 내 청각을 점점 압도해가고 있었다.

“유령.”

이 녀석은 딱 잘라서 말 했다. 유령? 이 단어가 그렇게 가장 신뢰성 있는 단어가 될 줄이야. 형상도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아니, 애초에 유령 같은 것이 있을 줄이야….

“온다.”

이번에는 의자다. 한 개도 아니고 3개는 날아오고 있다. 몸을 바꾸어 발톱으로 잘라버렸지만, 의자에 가려진 시야에서 날아오는 책상을 부수지 못해 피하다가 왼쪽 어께에 부딛쳤다.

“그 유령이 어디 있는데?”
“여기.”

‘여기’라고는 지칭하고 있지만, 딱히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지는 않다. 아무래도 이 집 안에 깃든 유령인 것일까. 형상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어디를 공격해야 때려잡을 수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도망가야 한다.

“나가자! 이러고 있다가는 당하겠어!”

문고리를 돌려 보지만, 역시나 공포영화에서 보던 대로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떻게 할 방도가 없을까 주변을 둘러보다가, 벽에 걸린 전신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페눔브라에 들어가면 피신 할 수 있을까?

“어이! 여기로!”

내가 거울을 가리키자, 이 녀석도 내 의도를 알아들은 것 같다. 하지만 거울의 표면을 응시해도, 페눔브라로 넘어 갈 수가 없었다.

“여기.”

옆에 다가온 이 녀석은 나를 자신의 방향으로 끌어당기더니, 어느 이상으로 밀려나가지 않도록 반대쪽에서 몸을 붙잡는다. 그 순간, 깜빡거리는 전등 빛이 거울의 표면에서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본능적으로 패눔브라로 넘어 올 수 있었다.

페눔브라의 이 집은 약간 불완전한 형태였다. 새까만 안개 같은 것이 집 전체를 두르고 있었다. 이것도 그 유령 때문인 모양인데, 그 유령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도가 서지….

“저기.”

뒤늦게 들어온 그가 낮게 그르렁 거리는 말투로 무언가를 가리킨다. 그 곳에는 무언가 새하얀 기체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차차 뭉쳐가 거의 인간의 상반신을 이루어 냈다.

“어이, 저건 대체….”

말을 하려는 순간, ‘그것’이 무언가 알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새하얀 기체로 이루어진 듯한 팔을 휘두르면 다가오는 그것에게 나는 멋모르고 손톱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것은 정말 연기가 퍼지듯이 사라져 버렸다.

“어엇….”

지금 내가 손톱을 휘두르니 없어진 건가? 이걸로 유령은 끝인 건가?

“이게… 끝이야?”

옆에 있던 녀석도 잘 모른다는 반응이다. 잘은 모르지만, 싱겁기까지 하다. 현실에서 그렇게 애를 먹고 있는 유령인데, 페눔브라에서 눈에 보일 정도로 거의 실체적으로 존재하질 않나, 그냥 손톱으로 한번 그으니까 없어진다고?

“운이 좋았군. 아마 그 영혼이 약한 것일 거다. 원한이나 의지가 더 강한 영혼 일수록 네 피해에 더 많이 견뎠을 꺼다.”
“그렇지만 왜 현실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데, 페눔브라에서는 보이는 겁니까?”
“간단하게 말하면, 움브라는 영적인 공간이다. 정령도, 유령도 그 곳에서 실체하는 것이지. 그 중에서 페눔브라는 현실을 감싸거나, 혹은 덮고 있는 공간이라 현실과 가장 가깝다. 그렇게 때문에, 현실을 떠나지 못하며 영향력을 부리는 영혼들은 영적인 공간인 페넘브라에서 머물고, 그 안에서 형상화 되는 거야.”

수수께끼도 이런 수수께끼가 따로 없다. 그런데, 그 유령은 정말 사라졌을까? 나름대로 상당한 능력을 부리는 것 같은데, 고작 그것 한번으로 사라진다는 게 싱겁지 않은가.

“그것 참 이상하군.”

내 이야기를 자세히 들은 씨어지 선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시했다.

“사람을 죽였다고?”
“네.”
“일반 유령이라면 극히 드문 일인데. 보통 유령은 사람을 괴롭힐지언정 죽이지는 않아. 그들은 기억 해 주는 이들이 없으면 그대로 사라져 버리거든. 그렇게 때문에 꿈에서 나타난다던가, 초자연적 현상으로 인간에게 두려움을 심음으로서 피해를 주지, 자신이 사라지게 될 짓은 하지 않거든.”
“그럼….”
“아무래도 그 유령은 이미 현실에 존재 할 매개체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야.”
“하지만 그 근처에 다른 사람은 없었습니다만….”
“꼭 굳이 사람을 홀리지 않아도 되지. 사물에 깃드는 경우도 있으니까.”
“물건 말입니까?”
“그래, 다만 공산품 보다는 인간 손으로 만들어진 수제품에 더 자주 깃들어, 거기다 죽은 영혼 자신과 관련이 있으면 더 가능한 일이지.”
“무슨 저주받은 물건 같군요….”
“비슷한 거다. 아무래도 그 집에 다시 가 봐야겠어.”
그 집에 다시 간다고? 그냥 내버려 둬도 되지 않나?

“다시 간다고요?”
“당연하지. 유령들도 Wyrm의 일부, 어떻게 보면 Bane들과 비슷한 존재들이니까. 처치하는 게 당연하지.”

나는 아직 이르지만, 선배들은 이미 자신의 싸움에 대한 당위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부럽다고 해야 할까. 힘이 있지만, 그것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면, 그 힘은 망나니가 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나는 언제쯤에서야 그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이런, 나도 참 욕심도 많다. 힘을 손에 넣으니 이제는 의미까지 요구하니 말이다.

다시 찾아간 그 집의 주변에는 수사 중인 경찰들이 대기 중이어서 쉽사리 들어갈 수 없었다. 그때 동행했던 루퍼스가 이번에도 동행해 주어서 안에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기에, 섣불리 뒤로 돌아들어가는 실수는 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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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뭔가 잊어먹은 듯 한 느낌이 드는 건 뭘까...

ㅇㅅ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