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내 손을 떠난 세라믹 컵이 책상에 부딪쳐 박살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 이유는 나도 알 수 없지만, 꽤나 오래 전부터 가끔씩 있어 왔던 일이다. 여태까지는 내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오늘은 끝장을 보기로 결심했으니까.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밥이나 아가리에 처넣어, 밥값도 못하는 자식을 애써 먹여주는데 감지덕지 해야지.”

평소에 자주 쓰지도 않던 비속어를 내뱉은 탓인지, 내 입술은 그 희열에 아주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이렇게 속이 후련할 수가 없었다.

“뭐야?! 이 자식이 또 버르장머리 없게!”

또 이 소리다. 지겹게도 이 소리가 아니면 할 말이 없다보군, 하기사, 그 꼴통 머릿속에 돈 좀 벌어보겠다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주식 그래프나 보고 앉아있으니, 다른 생각이 들겠나.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아빠가 가족의 경제에 도움이….”
“아마 지금 라스베가스 도박장에서 슬롯머신 앞에서 혼 빠져 있을 많은 불행한 가족들의 가장들께서도 그렇게 말하시겠지.”
“뭐야?! 이 자식이?!”

  꼴에 열 받아서 덤빈다고 해 봐야, 이제는 소용없다.

가소롭게 달려드는 그 게을러빠진 몸뚱아리를 돌로 만들어진 거실 바닥에 때려눕힌다. 주제에 덤벼보겠다고 애를 써봐야, 지금은 자신이 뿌린 것들을 다시 되돌려 받을 뿐이다.

“컥!”

거실에 있던 동생과 어머니는 이미 말을 잃은 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다. 아마 언젠가는 말리려 들겠지, 뭐 상관은 없다. 어차피 다 오늘로 인생 종치는 거니까. 네 녀석들도 그리고 나도.

눈앞에 쓰려져 있는 이 바퀴벌레 자식은, 나에게 온갖 욕을 다 퍼부으면서 달려들지만, 어차피 다시 쓰러지고 만다. 그래, 이래야 조금 밟는 재미가 있지.

“안돼!”

왜 말리는 거지? 이제 와서 살려두자고? 그건 안 되지, 암. 대가를 치러야지, 대가를. 설마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는 건 아니겠지?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버르장머리 좋아하고 있네,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두는 거다. 그 지랄 같은 권위주의적 태도, 오늘은 작정하고 밟아준다고 마음먹은 내 자신이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기쁘다고 해서 눈앞에서 지껄이는 이 자식이 조금이라도 좋아 지는 게 아니다. 이 새끼만 보고 있어도 밥이 목구멍으로 안 넘어 간단 말이다!

“히익!”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나를 향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뭐, 자기도 지금쯤 상황파악이 된 것이겠지.

감정에 휩쓸려 멋대로 움직이던 몸을 추슬러 보니, 하얀 페인트로 칠해진 나무 벽은 이곳저곳 붉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내 몸은 본적 없는 하얀 털로 여기저기 덮여 있었고, 눈의 시야도 예전보다 미묘하게 틀려있었다. 무슨 일인지 놀랄 새도 없었다. 이 바퀴벌레가 그 모습을 보고 공포에 떤다는 것 자체가 나는 더 기뻤으니까.

“사… 살려줘!”

인간이 아닌 내 모습을 바라보다가, 바퀴벌레의 비명에 다시 정신이 돌아온다. 뭐 마침 잘되었다. 덕분에 저 녀석을 더 괴롭혀 줄 수 있겠구나! 저 공포에 떠는 얼굴. 두려움에 설설 기는 모습. 얼마나 멋진가!

손가락, 발가락부터 하나씩 밟아 으깬다. 단지 밟기만 하려고 했는데, 내 힘이 얼마나 늘어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뼈가 부서지는 소리까지 난다. 손에 난 이 손톱으로는 이 녀석을 찢어 발길수도 있을 것 같다. 나중에 그렇게 해야겠다. 처음부터 피를 흘리면 빨리 죽어버리니까. 양팔, 양다리의 뼈를 다 으깨면, 그 다음은 이 손으로 신나게 으깨줄 생각이다.

정신을 잃지 않게, 그러면서도 고통은 확실히 느끼도록 몸의 끝부분부터 복부까지 손톱으로 군데군데 구멍을 뚫는다. 무슨 약력분으로 만든 케이크를 자르듯 푹푹 들어가는 느낌이 이상하긴 하지만, 최고다.

한참을 그렇게 하다 보니, 그 자식에게서 튄 피가 내 눈까지 튄다. 팔에 듬성듬성 나 있던 흰 털은 대부분 피로 얼룩져 있었다.

이제는 지쳤다. 슬슬 끝장을 보자.

“아아악!”

자신의 팔 다리가 토막 나는 꼴을 보고 외치는 이자식의 목소리는 거슬리지만, 듣고 보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그대로 양 폐를 꿰뚫는다.

“그만 뒈져.”

목소리가 무슨 일인지, 제대로 발음도 나오지 않는다. 뭐 상관없지, 어차피 제대로 말해도 이 멍청한 자식은 알아도 못 듣잖아? 스페인어 수업시간에 주워들었던 이 말을 이제야 써먹는구나. 그만 뒈져라, 이 바퀴벌레 자식아.

목에 마지막 일격을 날리려는 내 몸은, 무언가에 가격당해 밀려나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몇 초를 굳어 있었을까, 몇 마리의 짐승이 내 눈 앞에 있었다. 개? 코요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무리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가운데의 하얀색의 털을 한….

“이제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마지막을 치루지 않아도 그는 어차피 죽을 터다.”

처음 들어보는 언어였다. 처음 들어보는 말 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이 무슨 뜻 인지를 알 것 같다. 그저 잠시 잊어버리고 있던 무언 가처럼, 나는 그 언어에 그리움을 느끼고 있는 것도 같았다. 그 탓에 나는 내 편협한 지식 안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이 조그마한 비상식적 현상이, 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때에 맞추어 놀라지 못했다.

갑자기 내 앞에 널부러진 어머니와 동생의 시체로 가, 목을 자신의 입으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피를 자신의 발에 묻히고, 그 피로 핏자국을 내어가며, 바퀴벌레의 앞으로 간 그는, 죽어가는 눈을 잠시 지켜보더니, 그 목도 물어뜯었다. 입가에 피를 가득 묻힌 채, 나를 항해 묻기 시작했다.

“죄책감을 느끼느냐?”
“?”
“기쁜 것이냐?”
“무, 무슨….”
“아까의 표정은 기뻐 보이 더구나…. 그렇다면, 행복 하느냐?”
“….”

나와 마찬가지로 그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기쁨’과 ‘행복’의 차이를 말이다. 부디 나는 그가 알아주었으면 했다. 가족들을 베기 전에도, 그 후에도 나는 행복할 수 없었다. 아마 이 이후로 시간이 어떻게 흐르더라도 행복 따위는 없을 거라는 것을 나는 벌써부터 믿고 있었다. 나에게 기쁜 표정을 보았다면, 그것은 나 자신이 쓸모없다고 정의내린 쓰레기를 이 세상에서 없애버렸을 때의 희열일 뿐이었다.

“그렇지는 않은 듯하구나…. 그럼 되었다. 지금은 데려갈 수 없구나. 조금만 기다리려무나.”

내가 영문을 모른 채로 멍하니 서있는 동안, 그들은 떠나버렸다. 옆집에서 부른 경찰 때문에 결국 나의 밤은 끝나 버리고 말았고, 도착한 경찰들은 그것을 야생동물의 소행으로 결론짓는 것 같았다.

경찰의 보호를 받아 피투성이가 된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섰을 때, 이미 몸 주변에 났던 털과, 손톱은 온데간데없고, 원래의 모습이 되어버린 내 눈에, 평상시에 볼 수 없었던 별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어디선가 본 블랙홀을 보는 듯한, 불길할 정도로 붉은색으로 빛나는 별. 마치 나를 비웃듯이 내려 보는 듯했다.

“유감이구나.”

보호소의 복도에서 어느새 인가 나를 데리러 온 대부께서 서 계셨다. 다만 그 표정이 왠지 모르게 차가워 보였다. 가끔씩 내가 진절머리를 치던 어른의 표정,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그런 위선이 담긴 것만 같은 표정. 나는 그런 표정들이 너무나 싫었지만, 지금 터질 것 같은 내 머리는 그런 사실을 신경도 쓰고 있지 않았다.

“대부….”
“너는 아직 미성년자이니, 일단은 보호자는 내가 맡기로 되어있다. 유언장에도 그렇게 써져있었고.”
“예….”
“따라오너라.”

보호소를 나와 대부께서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북서쪽의 부두의 끝부분 이었다. 마을의 끝, 그리고 그 건너에는 알래스카의 드넓은 침엽수림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 왔을 때부터 나는 이 숲을 자주 찾았다. 돌아가도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곳이 그저 좁은 나만의 방이었던 집에는 돌아가기 싫었던 나날들, 그것이 단지 한때의 반항기인지는 모르지만, 나 자신은 그럴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렴풋이 인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렇지 않다고, 그저 한순간의 철없는 반항이 아님을 부정하고 싶어 하며 일어나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식히기 위해, 나는 내가 필요한 때에 언제나 이 숲을 찾았었다.

“이쪽이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게, 대부는 나를 숲속으로 데리고 가셨고, 나는 말없이 그 분을 따라갔다.

“대부, 어디까지 가시려는 거죠?”
“….”

수풀은 이곳저곳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눈에 뜨이는 격렬함도, 부자연스러움도 볼 수 없는 그 모습은 그저 바다에서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 모습이 풍향과는 맞지 않았던 탓일까, 전혀 어색하지 않게 흔들리는 그 모습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안에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채었다. 그 수풀 사이에서, 그때 밤에 보았던 동물들이 튀어나오자, 나는 상황파악이 안되어 멍하니 멈추어 서 있었다.

“대부? 이게 무슨….”

대부는 그저 이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고, 어쩔 줄 모르는 나를 앞에 두고 이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아마 너는 모르겠지만, 너는 너의 대부와는 한 부족이다.”
“부족?”

부족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지? 그건 그렇고, 도대체 이들은 무슨 말로 이야기를 하는 거지? 나는 이걸 어떻게 알아듣는 거야?

“여기가 너의 부족의 땅은 아니지만, 곧 너도 너의 부족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실버 팽(Silver Fang)이여.”
“대부… 대부도 이 말이 들리시나요?”
“필로독스Pholodox여. 이 아이가 준비가 되었는가? 아직까지 분노에 휩싸여 있는 것은 아닌가?”

설령 내가 모르는 언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동물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그 음색에 몇 초간을 머뭇거리고 나서야, 나는 그 낮선 언어의 질문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내가 아닌, 대부의 대답이었다.

“보시다시피, 분노는 이미 가라앉은 것 같소. 허나,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는 어차피 지나칠 수는 없지 않겠소?”
“그것은 섣불리 정할 문제가 아니라네, 자네처럼 다른 부족이긴 하나, 같은 가로우로서 그는 우리의 동족임은 틀림없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무리에 들일 수는 없지 않다는 것을 자네도 알지 않는가?”

대열의 앞에서 나와 있던 그 동물은, 나를 향해 다가와 앞발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하는 것 이라고는 생각을 할 수는 없었지만, 경계심이었는지 나는 바지에 찔러 넣었던 두 손을 빼 내었다. 온순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 커다란 동물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나는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이상할 정도였다. 당연히 안다고 생각하는 그 느낌, 그나마 그 느낌이 나의 호기심을 누르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Cub이여. 너는 차차 알게 되겠지만,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야. 애석하지만, 너에게는 선택의 여지도 없단다. 그 날, 우리가 너무 늦었던 것에 미안하구나. 하지만, 이제 너는 가로우(Garou)로서의, 그리고 전사로서의 숙명을 지고 살게 될 것이야.”

그들은 나를 이끌고 숲속의 더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들만의 장소, ‘무리’들의 장소로. 후에 나는 그곳이 ‘케언’이라 불리는 장소임을 알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러한 것도 모른 채 그저 갈 곳이 없는 몸을 이끌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어둠의 세계로 발을 디뎠다. 그의 말대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어둠의 세계로.


*)가로우(Garou) - 워울프가 자신들을 칭하는 말.
*)Cub - 아직 성인으로서 인정받지 못한 가로우.
*)필로독스Pholodox - 가로우의 중재자이자, 판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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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야 원... 세계관 이해가 완벽하지 못한 탓에 뭔가 어색한 내용인데...
문제가 있으면 딴지를 걸어주세요. 다만, 혹시 일부 설정은 저의 재량에 의해 뒤틀릴 수 있으므로...(이런 무책임!!)

ㅇㅅ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