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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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게이트에서 사출되자마자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루크는 실망했다.
전투는 그의 생각보다 꽤나 먼 거리에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멀리서 이전에 13지구에서 봤던 브론테스라고 생각되는 기체가 PGB의 APM들과 윤무를 추고 있었는데, 그는 그곳에 끼어들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다. 거기다 현재 스컬들에 비해 출력이 높다고 들었으니 벌레들과 한바탕 거하게 벌이고 싶은 것은 당연했다.
-어이, 네 놈이 갑작스레 끼어든 콜로니언이냐? 마릴린 오퍼레이터에게서 미리 얘기를 들었을 거야. 난 올카 소대 리더인 크리스 중위다. 옆의 놈은 렘버트 중사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니스 상사가 정보 통제를 맡고 있다. 지금부터 네 놈은 올카4로서 내 소대에 편입된다. 그러니 내 명령을 따라 행동해야 한다. 알겠나!
툭 튀어나온 주걱턱을 가진 짧은 금발의 정력적인 남자가 화면에 나타나 떠벌렸다.
그가 소개하는 대로 덩치 좋은 호인과 보기 좋게 그을린 피부를 가진 파란 눈의 미녀가 차례로 떠올랐다.
그들이 그다지 좋다고 할 수는 없는 반응으로 갑자기 끼어 든 불청객을 반겼지만 루크는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멀리서 전해져 오는 전장의 메아리는 그에게 자장가였고, 가끔씩 밀려오는 충격파는 요람이었다.
그의 심장이 고동쳤다. 그것에 맞추어 스컬의 엔진도 기분 좋게 울었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신경을 집중하자 스컬의 매니퓰레이터가 격하게 움직였다. 충혈된 눈을 들어 사방을 돌아보자 스컬의 모노 아이가 좌우로 움직이며 주위의 풍경을 투영시켰다.
루크는 걸었다. 무릎의 신경을 움직여서 걸었다. 스컬도 걸었다. 거대한 거인의 인공근육이 육중한 다리를 움직여서 대지를 흔들었다.
아무 명령도 하달하지 않았는데 U타입이 움직이자 크리스 중위가 당황해서 통신을 보냈다.
-이봐, 올카4! 듣고 있나! 올카4!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호흡기로 들어오는 공기가 뜨거웠다. 엔진에서 덥혀진 산소가 폐부를 태우는 것 같았다. 그저 걸었다. 걸을수록 자장가가 귀를 간질이고 요람이 기분 좋게 흔들렸다.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던 루크는 달렸다. 그가 달리는 도로 양 옆으로 모래 벌판과 사구가 고속으로 스쳐갔다.
그의 머리 위에 떠있는 암리타Amrita급의 전함이 점점 가까워졌다. 거대한 전함 주위로 13지구에서 봤던 브론테스를 위시한 APM05D3 한 기가 눈에 들어왔다. 왠지 익숙한 느낌에 루크는 달리는 것을 멈추고 장비되어 있는 150mm의 RC18-LHAL(Large Hardron Accelerate Launcher)을 꺼내어 들어 스코프로 확인해보았다.
브론테스 사이에서 고속 기동을 하며 같은 스컬들을 유린하는 사막색의 스컬은 분명 아군이 아니었다.
IFF감식 센서에 적으로 나타난 그것은 바로 감마2였다!
루크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흥분된 그의 입 안에서 단내가 퍼지고, 급격하게 올라간 생체 리듬이 그를 거칠게 숨쉬도록 만든다.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 각도에서 오퍼레이터와 올카 리더, 올카 3이 정신 없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올카4! 응답해! 후방에 대기하고 있으라 했는데 어째서 마음대로 튀어 나간 거야!
-올카4! 응답해라! 명령에 불복할 경우 내가 네 놈을 칠 수도 있다!
-올카4 주위로 3개의 에너지 반응! 데저트웜입니다!
그들에게 뒤질세라 스컬의 메인 시스템도 3방향에서 달려드는 기생충들에 대한 경보를 계속해서 알리고 있었다.
“후욱… 후욱… 내가 바라던 때가 왔구나. 후후훗!”
혼자 미친놈처럼 중얼거린 루크는 호버 추진기를 작동시켜서 뒤로 조금 물러난 다음, 공중에서 춤추는 감마2의 스컬을 향해 LHRL을 발사했다.
포신의 안쪽에서 고속으로 하전 된 사트라 에너지의 입자가 강력한 에너지를 머금고 하얀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콰아앙! 고막을 박살 낼 것 같은 굉음과 함께 화면이 진탕 쳤다.
입자 가속 포에서 발생된 반동에 기체가 균형을 잃어 뒤로 물러나다가 넘어져버린 것이었다.
다행히 OMG덕분에 충격이 많이 흡수되었지만 생전 처음 CR을 조종해보는 루크는 그 가공할 중력 가속도의 펀치 앞에 속이 메스꺼워짐을 느꼈다. 그렇다고 방금 전의 포격이 제대로 성공한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패러사이트와 전투를 많이 치렀더라도 전장에 처음 나서는 초보 퍼핏티어가 초탄으로 적을 명중시킬 리가 없었다. 그것은 공상과학물에서나 나오는 과장이다.
오히려 그의 행동은 적들의 주의를 끌었고, 브론테스 2기의 호위를 받으며 감마2가 고속으로 접근해왔다.
13지구에서 감마 리더가 패러사이트에 감염된 브론테스와 함께 자폭할 당시, 그 폭압에 휘말려 기체가 많이 손상된 상태 그대로였다.
손상된 장갑과 구동부 사이사이로 비어져 나온 흉측한 살점들이 끔찍하게 꿈틀거렸다.
첩첩 산중이라고 했던가? 올카3의 통보대로 땅 속에서 3마리의 데저트웜이 튀어나왔다. 무려 6마리의 기생충에게 표적이 되어버린 루크는 아직 제대로 자세를 바로잡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기침이 간신히 멎자마자 재빨리 옆으로 몸을 굴렸다.
감마2의 열추적 미사일이 간발의 차로 루크의 U타입이 쓰러져 있던 도로를 엉망진창으로 헤집어 놓았다.
-야, 이 망할 개자식아! CR도 처음 몰아보는 애송이 주제에 어쩌자고 혼자 튀어나가서 그 지랄 블루스를 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라! 네 놈은 자세를 바로 잡자 마자 뒤로 물러서라. 장갑이 월등한 나와 렘버트가 방어를 맡겠다.
크리스 중위는 루크의 응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명령을 들을 것이라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바닥을 굴러서 도로 밑으로 몸을 날린 U타입이 미처 자세를 잡지 못한 그 때를 노려서 데저트웜 한 마리가 덤벼들었는데, 푸른 빛 줄기가 반월을 그리며 튀어나와 그 육중한 몸을 두 동강 낸 것이었다.
-그 명령. 받도록 하지.
대형 입자 가속 포를 버리고 왼쪽 고관절 부에 장착된 사트라 블레이드를 뽑아서 패러사이트를 베어 버린 루크가 자세를 바로 잡으며 응답했다.
아직 전투에 대한 흥분이 완전히 가시지 않아서 크리스 중위의 화면에 나타난 그는 마치 도깨비 같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올카 리더는 자신의 D타입을 앞으로 돌진시켜서 U타입을 막아 섰다.
안면부가 잿빛인 올카 리더기가 RI03-APS T-004 방패를 들고 얇게 벌어진 틈새 사이로 RG16-Storm을 집어넣어 사격을 시작하자 올카2가 뒤이어 접근해, 똑같이 방패를 들어 엄호했다.
뒤쪽 6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머리에 레이돔을 쓴 APM03-Witch가 최고로 효율적인 방어 포지션을 통보하고 함재 CR 편대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에 감마2가 이끄는 공격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진 구축함과 전함 소속의 함재 CR들이 적은 수나마 모여들었다.
감마2가 멈칫하는 사이 루크의 기체가 올카 리더의 명령대로 뒤로 물러나 왼쪽 어깨에 탑재된 4연장 미사일 포드의 해치를 열었다.
“후우욱… 후우욱…”
충혈된 눈으로 천천히 화면에 나타난 조준자를 움직였다. 그를 노리는 감마2가 고속 기동을 하면서 올카 리더와 올카2를 뚫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냉각이 힘들어 보일 정도로 덕지덕지 장갑을 증강시키고 CR의 몸체에 버금가는 대형 방패로 무장한 데다가 뒤쪽의 올카3, 위치에게서 정보 지원까지 받은 D타입 2기는 그야말로 철벽이었다.
감마2는 목표를 다시 구축함과 전함의 함재 CR들에게로 전환하고 날아올랐다.
올카 소대가 방어적으로 막강하기는 했지만 역시 화력의 부족으로 결정타를 내기가 힘들었기에 역시 물러났다. 그러나 루크는 포기하지 않았다. 열추적 미사일 4기를 감마2를 향해 발사했던 것이다.
상당한 규모의 후폭풍을 일으키며 날아간 미사일은 감마2의 꽁무니를 쫓았고, 감마2는 플레어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피해를 모면했다. 그러나 지원을 왔던 다른 CR들이 발사한 미사일과 총탄에서까지 온전할 수는 없었다. 루크의 미사일을 피하느라 플레어를 썼기에 다른 미사일을 피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벌이나 개미들의 연계처럼 감마2를 호위하던 브론테스 2기가 플레어를 투하해서 직격은 피했지만, 폭압으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너덜너덜한 감마2가 스러스터팩에 손상을 입어 기동성이 현저하게 하락했다.
-때를 놓치지 마라! 지금이 기회다. 올카 소대, 전 탄 발사!
그저 방해물이라고만 생각했던 콜로니언이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만들어내자 크리스 중위는 신이 나서 외쳤다.
사실 전 탄 발사라고 해도 원거리 지원 무장을 갖춘 루크의 APM05D1과 전자전 장비를 탑재한 아니스의 위치만이 장거리 포격이 가능했다.
올카 리더와 올카2가 앞에서 덤벼드는 데저트웜을 견제하는 동안 루크가 오른쪽의 미사일 포드를 통해 남아있는 4기의 열추적 미사일을 모두 쏘아내고, 뒤에서는 아니스의 위치가 엉치 쪽의 테일에서 앵커를 뽑아내어 대지에 몸체를 고정시킨 뒤, RG11-Reaper 대구경 스나이퍼 라이플의 방아쇠를 당겼다.
백팩의 손상으로 기동성이 떨어진 감마2는 그 상태에서도 브론테스 2기의 호위 덕분에 왼쪽 팔과 다리만을 잃고 살아남았다. 크리스 중위가 정말 끈질긴 놈이라고 이를 가는 사이, 루크가 백팩의 스러스터를 가동시켜서 날아올랐다.
잘 나가다가 갑자기 루크가 또 돌발행동을 하자 크리스 중위는 화가 치밀었다. 공중으로 치솟는 루크의 기체를 향해 총탄을 날리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아내느라고 손을 떨었다.
만일 스컬의 신경 신호 전달 체계가 좀 더 정교했다면 그의 손 떨림 까지 재현했을지도 몰랐다.
루크는 아군에게 노려지고 있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소를 지은 채 고속으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스스로 공중으로 날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신경을 집중시킬 수 있겠는가? 제 아무리 집중력이 뛰어난 인재라 할 지라도 경험의 부족은 어쩔 수 없었다.
APM05D3에 비해 출력이 높은 대신 안전성이 떨어지는 루크의 U타입은 미숙한 주인을 만난 덕분에 기세 좋게 허공으로 날아올랐다가 우스꽝스럽게 제어를 잃고 흔들려야 했다.
마치 공중에서 트위스트를 추는 것 같아서 총탄과 미사일, 그리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페이탈 윙이란 명칭의 패러사이트들이 뿜어내는 각질 탄환들의 위협 속에서도 각 부대의 일원들은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수 없이 쏟아지는 욕설과 비웃음, 조롱이 뒤섞인 통신 윈도우를 띄우느라고 U타입의 시스템은 정신이 없는데, 루크는 아직도 스러스터 제어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결국 정신 집중을 방해 받는다고 생각한 루크가 통신 자체를 끊어버린 뒤에야 C2 안은 고요해졌다. 하지만 올카3으로부터 전달되는 정보 지원마저 끊어졌기에 그는 홀로그램 디스플레이에 나타나는 각종 경보 때문에 또 다시 골머리를 썩여야 했다.
상당한 손상을 입고도 아직 격추될 생각을 하지 않는 감마2의 열추적 미사일이나 브론테스가 쏘아낸 능동 레이더 미사일, 각종 탄환과 입자 가속 포가 그의 U타입을 노리고 있었다.
급하게 등에 신경을 집중해서 애프터 버너를 가동시켜 회피해냈지만 강력한 입자 포와 열추적 미사일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U타입 브론테스의 어깨에서 발사된 입자 포가 스쳐서 루크의 기체의 왼쪽 발이 날아가고, 열추적 미사일 한 발이 왼쪽 상완부에 명중해서 고도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애프터 버너를 켠 상태였기 때문에 망가진 기체의 균형을 잡지 못해 불규칙한 곡선을 그리며 상승한 U타입은 아슬아슬하게 전함과의 충돌을 피하고 가까스로 상부 갑판에 내동댕이쳐지는 것으로 대파를 면했다.
“크으윽…”
고통에 신음하며 한가하게 죽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기체에 손상을 입어서 갑판 위에 추락한 브론테스 한 기가 그를 발견하고 서서히 기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브론테스의 대파된 오른쪽 다리와 장갑이 상한 틈에서, 아직 뭐라고 정의 되지 않은 패러사이트의 수많은 눈이 마치 그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꼴 좋군. 아직도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겠어? 킬킬킬!]
에어 스트라이더에서 꿨던 꿈속에 나온 그 거대한 눈이 생각났다.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자를 내려다보는 오만한 허풍선이의 깔보는 듯한 그 눈!
“더러운 벌레. 죽여버린다!”
충혈된 눈으로 소리친 루크가 왼쪽 발을 잃어서 걷지 못하는 U타입을 움직여, 오른쪽 고관절 부위에 수납된 RP18A2-Blam mmg를 꺼냈다.
꺼내는 순간에 자동으로 안전 장치가 풀린 권총의 총구에서 불빛이 번쩍이며 CR전용의 CSP탄이 날아가 브론테스의 머리에 명중했다.
두부가 폭죽처럼 터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브론테스는 계속해서 그를 향해 다가왔다. 계속 권총을 갈겼지만 아무래도 입자 포나 미사일 등의 병기에 비해서 권총의 화력이 많이 부족했기에 결정타를 날리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그는 아까 타격을 받을 때 잃어버린 소총 생각이 났지만 다시 가져올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그저 기생충이 가까이 다가올 때를 노려서 블레이드로 끝장을 내는 것 말고는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권총에 타격을 입어서 거의 너덜너덜해지기는 했지만 아직 완전히 박살 나지 않은 브론테스, 아니 브론테스를 조종하는 패러사이트가 그 그로테스크한 몸체를 거의 드러낸 채 지척으로 다가왔다.
루크는 오른팔을 움직여 블레이드를 꺼냈다. 큰 움직임에 공기 저항을 받아 전함의 뒤로 밀려나는 기체의 스러스터를 작동시켜서 순식간에 접근한 그는, 검을 휘둘러 적을 두 동강 냈다.
운이 좋은 것인지 어떤 것인지 핵이 파괴된 패러사이트는 움직임을 멈추었고, 간신히 잡아 먹힐 뻔한 위기를 넘긴 루크는 숨을 몰아 쉬다가 욕설을 내뱉었다.
“젠장! 망할 벌레들 같으니!”
탄환도 모두 소진하고 남은 것이라고는 블레이드 한 자루뿐인 U타입으로는 더 이상 전투를 지속하기가 힘들었다.
왼쪽 발과 왼쪽 팔 전체를 잃은 기체는 균형이 맞지를 않아서 지금의 루크로서는 제대로 제어해서 접근전으로 몰아갈 재주도 없었다.
타격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도 공중에서 트위스트를 춰서 웃음거리가 된 마당에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다행이라면 적들이 공격을 중지하고 물러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아군도 많은 피해를 입었고, 적들도 꽤 많은 기체와 동족들을 잃었다. 사실 네차크 기지를 침공하기 위한 병력이라 하기에는 초라한 규모인 것이 사실이었다. 무엇이 목적인지 애매했다.
‘뭐, 그 딴 것을 내가 굳이 머리 아프게 생각해볼 필요는 없겠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눈을 감으며 루크는 시트에 머리를 기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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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에 들러붙은 기생충들의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