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브론테스를 맞이한 디터 일행은 루크처럼 수월하게 마을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바이크에 비해서 험비의 기동성이 많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크를 추적하던 브론테스가 미사일에 파괴 당하는 것을 보고 적들의 주의가 쏠리는 틈을 이용해 후문으로 큰 저항 없이 돌파해나갈 수 있었다.


 
괴한들과 브론테스의 퍼핏티어들은 여럿이면서도 하나의 생명체인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마치 누군가 절대적인 명령자가 텔레파시로 그들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여왕 개미와 다른 개미들의 연대 관계처럼 말이다.

 여하간 무사히 마을을 빠져 나온 것 까지는 좋았으나 곧 괴한들 쪽에서 대응에 나섰다. 브론테스가 공중으로 비상하고, 마을에 침략해온 괴한들이 뒤를 따라 몰려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숫자가 꽤 많아보였지만 퍼스널 컴퓨터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브랜든은 자신감에 가득찬 미소를 지어보였다. 비록 정체를 알 수 없는 집단이었지만 적들은 고작 폐기된 지 오래된 브론테스 1기에 버기 몇 대를 지니고 있을 뿐이었다. 그에 반해 이쪽은 철저히 훈련된 기갑분대원 10명과, 불과 1년 전에 양산형으로 배치된 최신예 APM 05D3-Skull 3기나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친위대의 일원인 디터들을 지켜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한 브랜든은 스컬의 감마 리더에게 구출 작전을 지시했다.

 스컬 특유의 사람 해골을 닮은 두부의 색이, 다른 2기와 달리 잿빛인 대장기에 탄 감마리더가 감마2 3에게 지시를 내렸고, 3기의 스컬들은 동시에 날아올랐다. 대장기가 상대의 브론테스를 향해 낮게 비행하며 열추적 미사일을 발사했고, 조종이 미숙한 브론테스의 퍼핏티어는 당황했는지 채프니 플레어니 뿌릴 생각도 못했다.

 컴퓨터에 미리 입력된 대로 플레어가 투하되지 않았더라면 미사일에 어김 없이 직격 당해서 사막에 처 박혔을 것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플레어로 2기의 미사일을 피해낸 브론테스는, 그러나 스컬의 사격 마저 피해낼 수는 없었다.


 
백팩의 전방위 기동 노즐을 이용해, 반동 때문에 벗어나는 조준을 조정해가면서 사격하는 것이 역시 숙련된 퍼핏티어 다웠지만 브론테스의 퍼핏티어가 정신이라도 차린 것인지 제법 회피 기동을 하면서 총탄을 피해내었다.

 감마리더는 당황했다. 미사일을 간신히 피해낸 상대의 퍼핏티어가 뒤이은 사격을 이렇게 근거리에서 피해낼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브론테스의 퍼핏티어는 리더기()에 접근할 수 있었고, 들고 있는 코일건으로 사격하는 대신 비어있는 왼손을 휘둘러 일격을 날렸다.


 
강력한 출력을 지닌 CR의 주먹은 비록 원시적이더라도 총탄에 버금갈 만큼 효과적인 파괴 수단이다.

 브론테스의 주먹은 SHT타입 세라믹 복합제 티타늄 합금으로 이루어진 스컬의 오른쪽 흉부 장갑을 꿰뚫고 들어가 사트라 엔진에 손상을 주었다. 왼쪽에 남아있는 엔진만으로도 기동하는데 크게 지장은 없었지만 감마리더가 받은 정신적 충격은 결코 가볍지 않아서 이미 승부가 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밑에서 디터 일행이 탄 험비를 뒤쫓고 있던 버기들을 향해 엄호 사격을 하고 있던 감마2가 리더기의 위험을 알아차리고 급히 솟아올랐다. 막 주먹을 뽑아내는 동시에 총으로 마무리 일격을 날리려던 브론테스가 고속 기동으로 급히 물러나 감마2의 사격을 피했다. 거의 7G에 해당하는 기동이었는데도 퍼핏티어는 충격이 심하지 않았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감마2기를 향해 사격을 해대는데 처음에 미사일을 회피해낼 때의 미숙한 움직임하고는 전혀 달랐다.


 
감마2는 소대장에게 정신 차리라고 소리치고는, -온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제로 8기의 미사일을 전탄 발사했다. 하지만 원래 기동성 위주로 설계된 브론테스였다. 제대로 정신차린 것으로 보이는 퍼핏티어가 플레어를 신속하게 투하하고 회피 기동을 하자 락-온도 되지 않은 열추적 미사일은 모두 공중에서 허무하게 산화되었다.


 
정신적 공황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감마리더와 감마2가 연계 사격으로 간신히 왼쪽 상완부와 흉부에 피해를 입혔지만 브론테스는 여전히 기체 특유의 전광석화와도 같은 기동성을 자랑하며 히트&런의 전술로 두 기의 최신예 APM을 농락했다.

 감마3은 험비를 엄호하느라 도와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루크가 상황을 지켜보다가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브랜든에게 텔레파시를 전하며 바이크로 달려나갔다.


 
[
지상에 있는 CR의 퍼핏티어에게 나머지 둘을 도우라고 해! 내가 험비를 엄호하지!]


 
갑작스레 튀어나가는 루크의 행동에 자극받은 병사들이 발포를 하려고 하자 브랜든이 제지했다.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오래 전에 폐기된 기체 1기가 최신예 기체 두 기를 농락하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그럴수록 사태파악을 냉정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 브랜든은 감마3에게 엄호를 중지하고 감마리더와 감마2를 도우라고 명령했다.

 자존심이 있는 데로 구겨진 감마리더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발악했지만 브론테스의 총탄에 한 번 더 맞아서 기체의 왼쪽 팔이 완파 된 뒤로는 침묵했다.

 루크는 감마3의 스컬이 공중으로 날아오르자 험비의 측면을 지나쳐 달려나가면서 총을 난사했다. 감마3이 들쑤셔준 덕분에 버기 몇 대가 박살 난 상태였지만 아직 꽤 많은 무리들이 남아서 험비를 뒤쫓고 있었다.


 
[
역시 당신은 좋은 사람이라니까요! 무리하지 말아요!]


 
험비의 창 안쪽에서 스쳐 지나가는 루크를 본 라일라 소령이 상기된 표정으로 텔레파시를 전해왔다.


 
[
웃기지마. 나는 단지 싸우고 싶어서 나왔을 뿐
]


 
앞쪽으로 보이는 버기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에 전율 같은 것이 흐르고 지나갔다.

 군에 들어가면 그야말로 질리도록 싸울 수 있었는데 왜 지금까지 그것을 깨닫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바운티 헌터로서 맛볼 수 있는 자유에 너무 취해서 이렇게 간단한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자유를 박탈 당하는 것은 확실히 기분 나쁘고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대신에 그는 지금 공중에서 치고 받는 저런 엄청난 거인을 몰아서 마음껏 싸울 수 있는 것이다. 

 빗발쳐 오는 총탄들과 로켓을, 묘기와도 같은 드리프트로 피해내는 루크의 입가에 지금까지의 비웃음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여기서 살아 남으면 기꺼이 퍼핏티어가 되어주지. 마음대로 날 써먹으라고! 난 싸울 수만 있으면 돼. 내게 무기를 줘. 전장을 달라고!


 
하늘에서는 4명의 거인이 춤을 추고, 지상에서는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서부극에서나 나올만한 총격전이 벌어지는 속에서, 루크는 라이더스 하이에 빠져 희열에 가득찬 광소를 내뿜었다.

 이보다 더 좋은 무도회장이 일찍이 있었던가. 만일 군에 들어간다면 이보다 더 화려하고 거대한 무도회장에서 춤을 출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단지 싸우기 위해 마련된 무도회장에서…’


 
바이크가 총탄에 맞아서 고꾸라질 때에도 루크의 얼굴에서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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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머드 코어-포 엔서의 동영상을 봤는데 감탄이 절로 나오더군요. 그 박력 넘치는 장면처럼 생동감 넘치게 묘사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저의 현재 실력으로는 작중과 같은 허섭한 묘사가 한계네요...ㅠ.ㅠ 등장 기체들의 그림도 그려보고 싶은데 그림 실력이 일천해서 슬플 뿐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