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카와는 시계를 쳐다보고는 이미 아무로가 준 3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초조해했지만 지금은 석현의 일이 급했다. 하릴없이 텐카와는 석현을 데리고 가까운 도시의 병원으로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긴 했지만 걱정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석현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는 있었지만 그도 현재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압박을 견뎌내느라 꽤 힘들어하고 있었다.

“이거 참. 쉽지 않겠는데요?”

“솔직히 말해서 이런 데서 죽고 싶지는 않은데. 콜로니가 이렇게 넓은가? 밖에서 보니 몇 km되지 않는 것 같던데..”

“여기는 1사이드 1번치니까 뭐 유서깊은 콜로니예요. 그 만큼 크기도 크겠죠. 이곳저곳 땜빵한 곳이 워낙 많으니까요.”

다친 사람은 재우면 안된다는 속설을 생각하고 텐카와는 과도하게 떠들어댔다.

“여기가 제국이었다면 다친 순간에 구급호버가 날아왔을텐데.”

“어쨌든..빨리 병원을 찾아 줘. 너도 내가 안아프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형이야 워낙 표정연기가 좋은 사람이니까 뭐..”

텐카와가 씩 웃었지만 그 웃음은 완벽하지가 않았다. 석현이 시선이 풀리더니 갑자기 의식을 잃었기 때문이다.

“형!”

텐카와가 놀라서 소리쳤지만 석현은 깨어나지 않았다.

“이건 과도한 출혈에 의한 충격 때문에 기절한거니 죽지는 않았어. 너무 걱정하지 말게.”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소리에 텐카와는 고개를 돌렸다.

“함장님!”

“내가 건네준 총도 썩히 도움이 되지는 못했군. 석현은 오래 버티지 못할 거야. 빨리 가도록 하지.”

텐카와는 잠시 아무로의 뒤쪽을 기웃거리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 따로 타고 온 건 없어. 자네가 어디있는지만 알면 움직일 수 있으니까. 그리고 화기관제장은 Nadesico에 어떤 녀석들이 장난 쳐둔 걸 수리하고 있어 오지 못했네.”

“여기서 부두까지는 얼마 안 걸리나 보죠? 걸어오신 걸 보면.”

텐카와가 쓰러진 석현을 들어 등에 업으면서 물었다.

“차를 타고 한 30분?”

텐카와는 아무로의 말에 놀라 되물었다.

“네? 걸으면 수시간 걸리겠는데 석현 형이 견딜 수 있을까요?”

“걱정할 게 없지. 잠시 눈 좀 감아보겠나?”

“네? 아.. 알겠습니다.”

그는 눈을 감았다. 풀벌레 소리가 간간히 들려오는 가운데 함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눈을 뜨게.”

이게 무슨 장난인지, 라고 생각한 텐카와는 속으로 내심 불만스러워하며 눈을 떴다. 그리고 그는 자신앞에 펼쳐졌던 넓은 초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떤 밀폐된 공간안으로 들어온 것을 알아챘다.

“엑?”

“Nadesico의 함장실이다. 빨리 석현을 의무실로 옮기게.”

“....”

텐카와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믿지 못하고 멍하게 있었다. 온 몸에 힘이 풀려 업고 있던 석현을 떨어뜨리려는 찰나, 아무로가 석현을 받아 업었다.

“정신차리게. 그럼 잠시 쉬도록.”

말을 마친 아무로는 석현을 업은 채로 함장실을 지나 두 구역 옆에 있는 의무실 쪽으로 걸어갔다. 텐카와는 그 뒤에도 얼마동안은 멍하니 함장실 안에 서있기만 했다.

“어서오십시오. 부상병입니까?”

“그래. 빨리 손봐주게. 부상당한지 시간이 꽤 지났으니.”

제국함대 소속이었다가 새로 창설된 13독립부대, 즉 Nadesico에 발령받은 군의관은 총상을 입은 환자를 보고는 매우 놀랐다.

“이 사람은 어디서 다쳤습니까?”

“바깥에서 총에 맞았어. 맞은 지는 한 30분쯤 지났을거네.”

군의관은 잠시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바로 자신의 본분을 깨달았다. 죽어가는 부상병이 자신 앞에 있었다.

“알겠습니다. 거기! 의료프로그램 틀어!”

“네!”

“이 정도의 총상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옆구리에서 꽤 깊숙이 스쳤다고는 하지만 아시다시피 일단 살아서 병원까지만 간다면 죽을 확률은 없으니까요.”

의학의 혁신적인 발달은 인체의 자연치유능력을 생화학적으로 극대화시키는 방법조차 알아냈다. 이 방법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으로 부작용이 없으며 일시적으로 사람이 피곤해지기는 하지만 영양제투입으로 인해 피곤함조차 없앨 수 있었다. 현재 인류가 사용하는 의료기술중에 최상위에 속했다.

“치유가속화와 직접시술을 병행하면 완치에는 대략 열다섯시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소속이 어딥니까?”

“함교의 오퍼레이터 이석현.”

“알겠습니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수고하게.”

아무로는 의무실을 나와 함교로 걸어가던 도중 텐카와를 만났다. 텐카와는 방금전의 멍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눈은 매우 심각해보였으며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함장님. 말씀해주십시오.”

“미안하지만 텐카와, 지금은 시간이 정말 없네. 자네가 시간을 좀 까먹는 바람에 일정에 문제가 생겨서 말이지. 이대로가면 부두가 봉쇄당할지도 모르니 양해해주게. 조용해질 때 나를 다시 찾아오면 내가 자세히 말해주지.”

“그럼 한가지만 말해주십시오.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갑니까?”

“....”

텐카와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 아무로는 아무말 없이 함교로 걸어갔다. 등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텐카와의 외침에도 아랑곳없이 그는 자신의 걸음을 계속했다.

“어서오십시오!”

함교로 돌아온 아무로를 가장먼저 맞이한 것은 유리카였다.

“고맙네. 텐카와도 돌아왔으니 잠시 뒤 만나볼 수 있을거야.”

“예? 언제 함내로 들어왔죠? 저는 아무것도 보고받지 못했는데요?”

“어쨌든 그는 돌아왔지. 그게 중요한 것 아니겠나?”

아무로의 말이 끝나자마자 함교의 문이 다시 열렸고 텐카와가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아키토!”

“유리카! 이거 오랜만인걸!”

유리카가 반가워 뛰쳐나갔고 텐카와도 밝은 얼굴로 그녀를 맞이했다. 그 밝은 얼굴속에는 무수한 의문과 의심이 있었겠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과 만난 것으로도만 충분했다.
“석현씨는 좀 다쳤다던데 넌 괜찮아?”

“그래. 여러 가지 일이 있긴 했지만...”

텐카와는 아무로를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유리카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쨌든 사지에서 돌아온 그로써는 유리카의 존재는 매우 큰 위안이 되었다.

“널 만난게 이렇게 기쁜 적도 잘 없는 것 같은데!”

“두 사람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 말을 좀 들어주겠나?”

기뻐서 얼싸안고 있는 두 사람에게 말을 건넨 것은 슈테가르트 로엔그람이었다.

“아니 살아계셨습니까? 아, 실례했습니다.”

텐카와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사과했다. 로엔그람은 손을 들어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아니, 나도 살아온게 신기할 정도니까 그 정도의 말은 얼마든지 해도 좋네. 사실 원수님께서 나를 좀 도와주셨지. 원수께서 나를 찾아오지 않으셨다면 나는 지금쯤 그 정체불명의 놈들에게 당했을지도 몰라.”

“혹시 다른 사람의 행방은 알고 계십니까?”

로엔그람이 잠시 대답이 없자 아무로가 나서서 말했다.

“일단 살아남은 사람 중에 가장 핵심적인 사람은 여기 있는 로엔그람 함대사령관 밖에 없어. 안타깝게도 도깃은 이미 사망했고 아셀로즈 또한 사망했네.”

“아셀로즈 의원까지 말입니까? 도대체 이 일은 누구의 소행이죠?”

“말했을텐데. 이건 반아셀로즈세력의 일이긴 한데 그들은 오직 실행도구였을 뿐이야. 실제로 지시한 것들은 천계의 놈들이다.”

아무로는 예의 그 천계를 들먹이며 말했다.

“천계는 은하계가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지. 물론 천계의 세력은 지금 은하계의 전 생명체를 압도할 정도로 강력하긴 하지만 언젠가 은하계의 힘이 천계보다 강해진다면 그들은 자신의 지위를 빼앗기게 되겠지.”

“우리는 천계가 어디있는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나 천계는 걱정하고 있지. 그들은 너무 걱정이 많아. 어쨌든 저기 젊은 로엔그람이 대화에서 너무 소외된 것 같으니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함을 로엔그람에게 맡기고 싶다는 것이다.”

아무로가 주로 써먹는 놀라운 일을 아무생각없듯이 내뱉는 화술을 사용하자 역시 함교의 여러 사람이 놀랐다. 심지어 로엔그람까지.

“왜죠?”

유리카가 제일 먼저 정적을 깨뜨리고 말했다. 아무로는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면면을 한번씩 훑어보고 대답했다.

“이제 나는 이 배와 함께 할 일은 모두 끝났고, 석현이나 텐카와 내외는 또 다른 할 일이 있기 때문이지.”

“도깃의 원수라도 갚습니까? 천계로 돌진합니까?”

텐카와가 약간의 비아냥거림을 섞어 말했다. 그는 아무로가 보여주는 여러 가지 말도 안되는 일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오직 신기함과 호기심만이 있었지만 슬슬 그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진정 아무로가 자신의 편일까, 자신은 뭔가 이용당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쌓여가고 있었다.

“아니 그런 짓은 나도 하지 않아. 은하계는 언젠가는 천계를 능가한다. 다만 그 능가하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발전이냐, 아니면 오필리아가 부리는 농간이냐에 따라서 결말이 달리 나겠지. 내가 해야하는 일은 오필리아의 농간을 막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발전의 유도하는 것이지. 어떻게 보면 내가 자네들을 이용한 것일지도 모르지..”

첨예한 긴장이 함교를 감쌌다. 로엔그람이 그 깨기힘든 정적을 간신히 깨고는 말문을 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는 잘 모르겠으나 함장의 명령이라면 어쩔 수 없군요. 제가 함을 맡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부터 일을 하면 되겠습니까?”

“나와 방금 그 3명이 지구의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자네는 이 배의 함장이 되는 것이네. 그 다음은 로엔그람, 자네의 판단에 달린것이지. 공화국함대를 때려잡을 수도 있고 제국으로 돌아가 수비를 할 수도 있겠지. 그럼, 출발하도록 하지. 텐카와, 위치로 가게!”

말없이 텐카와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콘솔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목표지점 지구. 소요시간은 통상항해로 45분, 단거리 초공간항해로 20분입니다. 어떻게 가시겠습니까?”

단거리 초공간항해가 20분이나 걸리는 이유는 초공간벡터 설정에 시간이 매우 많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사이드간 퀵서비스나 택배에서는 고속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주로 중, 단거리 초공간도약을 사용하는데 사이드란 것들이 원래 지구를 중심으로 구형으로 형성된 것이라 지구쪽을 향해 도약하려면 충돌하지 않게 세심한 항로설정이 필요하다. 이 설정에 시간이 매우 많이 걸리는 것이다.

초기 초공간도약시대에는 사이드 간의 단거리 도약이라는 개념조차도 없었던 만큼 지금의 발전은 놀라운 것이다. 비록 우주를 양분하는 거대한 세력이 500년동안 전쟁을 펼치면서 무수한 물자를 소비한 결과 순수과학이나 응용과학의 발전이 빨라지지는 못했지만 느리나마 성장은 있었다. 이 사이드간 단거리 항해의 개념이 등장한게 200년 경이었고 실제로 행해진 것이 그로부터 10여년 후였다.

“단거리 초공간항해로 가자. 시간이 없으니까. 그리고 조타수와 화기관제장, 그리고 의무실에 알려서 오퍼레이터가 깨어나는대로 함장실로 오라고 알려주게. 그럼 나는 잠시 자리를 비울테니 필요하면 부르도록.”

“알겠습니다.”

텐카와는 아무로의 말에 대답한 후 아무로가 함교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본 후 정해진 순서에 따라 출항허가를 요청했다.

“부두관리소, 출항허가를 요청한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른 뒤 저쪽에서 교신이 들어왔다. 음성전용통신이었다.

-출항허가를 내줄 수가 없다. 현재 상황이 복잡하여 잠시만 부두에 기다려주기를 바란다.

“함장님. 부두관리소에서 출항허가가 나지 않습니다.”

텐카와가 긴급통신으로 함장을 불러내어 물었다. 함장의 대답은 역시나 간단했다.

-강행돌파한다. 안될 것 같으면 이 상황에서 디스토션 필드 전개도 가능하다.

“공화국 재산을 함부로 부숴도 되겠습니까? 우리는 화평을 위해 온 것이 아닙니까.”

-아셀로즈가 죽은 이상 화평은 의미가 없다. 이미 끝난 협상이야. 미련갖지 말게.

“알겠습니다. 강행돌파하겠습니다. 유리카! 디스토션 필드를 전개해야겠는걸.”

아마 많은 인명피해가 나겠지만 이들이 살아남기위해서는 별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은 텐카와나 유리카 또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그들의 선택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유리카의 눈에 한결 깊은 수심이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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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다음편 쯤 되면 다시 배경이 바뀔 겁니다 -_-;;
전술 차원에서의 우연은 전략 차원에 있어서의 필연이 남긴 잔광(殘光)의 파편에 불과하다. --- 자유행성동맹 이제르론 방어사령관 겸 함대지휘관 양 웬리 퇴역원수 -출처 : 은하영웅전설 10권 낙일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