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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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70
“그러다가 얼마간의 시간, 물론 매우 긴 시간이었겠지. 어쨌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간 후 오필리아가 나를 찾아와 나를 묶은 봉인을 깨고 나를 풀어주었지. 그리고 오필리아는 나에게 자신은 한 은하계의 구석진 성계의 3번째 행성에 자신의 세력을 만들었다고 하더군.
물론 ‘거신’이라면 원래 천사정도는 쉽게 만들 수 있었겠지만 오필리아 역시 힘을 잃은 상태였지. 그래서 오필리아가 천사는 만들지 못하고 자신의 세력이라고 만든 것이 라기어스인이다. 오필리아는 구석진 성계의 3번째 행성. 그러니까 막 생성되어 마그마의 바다로 뒤덮혀 있던 지구의 마그마를 식혀버리고 나름대로 행성 지하 깊은 곳에 거대한 세계를 만들어 그곳에 라기어스 대륙을 만들었다.
오필리아는 자신의 계획을 나에게 말해줬는데, 자신은 다시 천계로 돌아갈 것이며 그 때를 위해 힘을 모아두고 있다고 하더군. 그리고 오필리아는 나에게 충격을 줘서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기억을 소거시켰지. 그리고 오필리아는 라기어스를 제작하고 나에게 충격을 준다고 소모했던 힘 덕분에 자신이 만든 라기어스인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근데 갑자기 어떻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까?”
텐카와 아키토가 질문했다.
“글쎄. 뭐 이야기 하자면 긴데. 일단 라기어스 이후의 역사부터 알아보자고. 라기어스에 제국이 성립되었는데 문제는 제국초기에 반대하던 사람이 많았지. 뭐 황제..라는 존재를 싫어하는 어느정도 민주주의자라고 해야 하나. 그 사람들은 제국군의 추격을 받으면서 힘겹게 도피생활을 지속했는데, 그 자들은 이동문을 발견하게 된 거지.”
“이동문..이라고요?”
“그래. 이동문. 라기어스 대륙과 지상을 이어주는 이동문이야. 그것을 발견한 일부의 라기어스인이 지상으로 나섰고 그것이 지구인의 시작이야. 게다가 최초의 지구인들은 라기어스에서도 지식층에 속하지 못한. 완전 ‘원시인’이었지. 그들은 금속이나 면직물, 건축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어. 그래서 완전 원시적인 생활을 해야만 했었지. 그리고 그들은 나름대로의 ‘진화’를 시작했어.
오필리아는 자신이 만든 라기어스 대륙의 성향을 ‘항상성 유지’로 못 박았지. 덕분에 라기어스에서는 수백만년에 걸쳐 사람이 살았지만 발전단계는 고작 화약의 개발단계에서 끝났어. 뭐 지상에서는 오필리아의 영향을 받지 않았으므로 무한대로의 발전이 일어났지.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거기까지 하는 게 좋을 것이네.”
무거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기를 듣던 세 명은 즉시 고개를 돌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화자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티라엘. 여기에는 사람들이 있으니 모습이나 좀 보여주지 그러나? 그리고 남의 말을 끊는 건 예의가 아닌데.”
“그건 내가 실수했군.”
역시나 재미없는 말을 내뱉고는 ‘그것’이 나타났다. 문쪽에 나타난 ‘그것’은 처음에는 검은 색이었지만 차츰 색이 나타나더니 금색의 옷을 입은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히 그것이 사람과 다른 이유는 황금색 두건안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며 등쪽에 흰색의 날개 비슷한 것이 있었다. ‘날개 비슷한 것’은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었다.
“저...저건...”
이석현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상식을 벗어나는 전투함에서 수년간 생활했으므로 나름대로는 비상식적인 일에 면역이 되어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분명히 착각이었다. 그는 자신의 눈에 비치는 것을 믿지 못했다.
“아..아름다워!”
유리카의 상황파악안되는 한 마디가 잠시간의 정적을 깼다.
“사람들 중에도 꽤나 담력이 있는 자가 있군.”
“어쨌든...왜 갑자기 나타났지?”
아무로는 품 속에 손을 넣으며 물었다. ‘티라엘’이라고 불린 인간형의 물체는 입은 없었지만 말을 했다.
“제국과 공화국이 합쳐지면 힘이 강대해진다. 그 말은 자칫하면 천계의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단 말이지. 우리는 그것을 저지해야 한다.”
“웃기는군. 왜 사람이 천계의 지배를 받아야 하지?”
“지배가 아니다. 사람이란 것 자체가 천계에서 추방당한 오필리아가 만든 것이므로 원래는 제거되어야 하나 우리가 아량을 베풀어 주고 있는 것이다.”
티라엘은 말했다. 아무로는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일어서서 티라엘에게 다가갔다.
“이 정도의 일은 예상했다. 천계의 그 오만함은 나도 예상하던 일이니까..그래서 나는 보험을 들어두고 있는 중인데 자네가 방해를 하는구만..”
“보험이라고?”
“그래! 보험이다. 방해한다면 어쩔 수 없이 양측이 힘을 써야겠지.”
티라엘의 표정은 없었지만 잠시 고민하는 듯 했다. 잠시 뒤 그가 말했다.
“좋아. 보험을 들든 말든 그건 자네 마음이지. 여기서는 물러나겠다. 자네가 무슨 보험을 드는지 알 필요도 없다. 어차피 자네의 보험 따위는 천계의 권위를 벗어날 수 없으니까..”
“역시 오만하군, 티라엘..”
티라엘은 나타날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사라졌다. 아무로는 다시 돌아보고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세 명에게 말했다.
“정신차려. 내 말은 계속되네. 잘 들어주길 바라네.”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티라엘’이라고 하셨습니까? 그 자에 대해서 먼저 말씀해 주십시오.”
텐카와가 말했다. 아무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군. 좋아. 저 자는...”
534년 16일 1사이드
“풀내음이란게 이런것인가 봅니다. 저는 정말 오랜만에 맡아보네요.”
“그렇나보군. 코렐리아에는 도대체 풀이 없어서...코루스칸트는 그나마 낫지만..”
막 일어난 텐카와와 이석현은 드라마 호텔의 바깥에 나와 잠시 아침의 상쾌한 공기를 즐기고 있었다. 비록 이곳이 원산지는 아니지만 지구에서 우송해온 잔디나 이곳에 펼쳐진 잔디나 잔디는 잔디였던 탓에 둘은 쾌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이제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정상적으로 살기는 틀린 것 같군요.”
“비뚤어져 있던 인생이다! 텐카와 자네가 자기 편이 압도적으로 이기는 전투에 홀로 패배해 제국에게 붙잡혔듯이 나도 미노리아대를 졸업하지 못하고 아무로 함장의 배에 탄 것처럼 말이지.”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렇게 된 것도 재미있군요. 이 인생에 도대체 재미란 녀석이 떨어지지 않으니 말입니다. 다음에는 어떤 재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텐카와는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인물이었지만 방금 전의 말투는 비꼬는 말투였다. 어제 긴 옛날이야기를 듣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다 날이 밝아오자 피로가 쌓인 탓이리라.
“글쎄. 함장의 말대로 천계가 제국과 구 공화국이 합쳐지는 걸 원치 않는다면 무슨 수작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분명히 천계는 은하계에 간섭을 하지 못할텐데요?”
“간접적인 방법이 있지. 왜, 양의 탈을 쓴 늑대란 말도 있지 않나?”
이석현은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어제 들었던 말을 모두 전적으로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야기는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 ‘티라엘’의 출현은 아무로의 말에 신빙성을 더했다. 이들은 이제 아무로가 하는 말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일을 하지 못하리라.
“둘이 무슨 재미있는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냥 잠도 안오고 해서..너는 계속 주무시지 왜 나왔어?”
잠시 표정이 우울해진 텐카와 유리카가 대답했다.
“그거야 뭐..나도 어제 들은 얘기가 있고 하니까 잠이 올 리가 없잖아? 근데 아키토. 그 얘기가 진짜일까?”
“그걸 내가 알겠냐. 어쨌든 4시간 뒤부터는 본격적인 일이 시작되니까 아침이라도 먹어야 겠네. 들어가자. 형도 같이 들어가요.”
“아니..나는 좀 있다가 들어갈께. 먼저 들어가라.”
“알겠습니다. 밥이 준비되면 부르겠습니다.”
“알았어.”
이석현은 짧게 대꾸하고 드라마 호텔 밖으로 나갔다. 그의 시야에 저 멀리 보이는 푸른 산과 그 밑을 흐르는 개울이 들어왔고 그는 그것을 보기 위해 다가갔다. 그가 근 25년을 살아왔지만 줄곧 코렐리아에서 생활한 그로써는 이런 풍경을 감상할 기회가 적었다.
‘대단하군. 이게 정말 인공적으로 만든 자연이란 말인가?’
이석현은 감탄했다. 코렐리아도 이런 환경을 만들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코렐리아의 기후와 토지환경에 이런 목초지와 산지는 불가능했는데 다만 이끼류나 간단한 식물들만이 작은 군락을 이루어 생활할 수 있었다. 이런 식물들은 소위 ‘잡초’라고 해서 천대받고 있었지만 그런 것들이 코렐리아 유일의 자생식물이란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몇 분간 걸은 뒤, 그는 개울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손을 집어넣자 그의 손에서 차가운 감각이 느껴졌다. 두 손을 모아 물을 받은 그는 얼굴로 물을 가져가 세수를 했다. 개울에 놓여 있는 나무다리를 건너 그는 산으로 향했다. 산에는 소풍온 사람들을 위한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었고 그는 잠시 기분좋게 산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형. 슬슬 돌아오세요.’
텐카와의 통신이 도착하자 이석현은 돌아가리라 마음 먹고 그의 발길을 돌려 내려갔다. 그가 산을 거의 내려와 호텔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을 때 호텔로 급히 달려가는 몇 개의 차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놀랐다.
‘아니?’
그는 안경을 꺼내 쓰고 확대모드로 전환했다. 분명히 차에서 내려 호텔로 향하는 자들은 총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호텔쪽에서 총탄이 발사되어 접근하는 자 중 하나를 바닥에 쓰러뜨렸다.
‘이럴수가!’
이석현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짐작하지 못했다. 급히 뛰어내려가던 그는 개울가에 도착하자 생각이 바뀌었다. 어차피 그가 간들 호텔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사살당할것이다, 그렇다면 여기 잠자코 있는게 낫다..라고 생각한 그는 가까운 나무 뒤로 숨어 호텔의 상황을 지켜봤다.
드라마 호텔
샤워를 하고 이석현이 오기를 기다리던 텐카와 내외는 갑자기 울려퍼지는 총성에 놀랐다. 어쨌든 그들은 빨리 활동하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무슨 일의 변고가 있기를 기다렸다. 총성은 계속 울리고 간간히 폭발음도 돌려왔다. 그리고 그들 방 문이 갑자기 열렸다.
“빨리 가야 해! 내가 길을 뚫을 테니 잘 따라오도록.”
“함장님!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천계가 손을 쓴 것이겠지. 아마 구공화국의 과격파들을 티라엘이 무의식적으로 부추긴 모양이다. 빨리! 시간이 없다. 이거라도 들고 따라와. 실탄전투라서 전반사는 별 필요가 없다.”
텐카와 내외에게 소형 매그넘을 하나씩 건네준 아무로는 이미 완벽하게 준비된 상황이었다. 물론 그가 이런 일이 일어날지 알리는 없었지만 어쨌든 그는 항상 준비가 되어있는 인물이다. 방문을 나가면서 그가 물었다.
“이석현의 방은 어디지?”
“석현 형 방은 우리 옆 방입니다만 형은 지금 요 앞의 산에 잠시 산책을 갔습니다.”
“한가하구만! 어쨌든 빨리 석현에게 통신을 보내서 거기서 대기하라고 말하게!”
아무로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텐카와는 즉시 실행했다. 아무로는 몸을 돌려 걸어나갔다.
“이거 참. 내가 지상에서 싸움을 할 줄이야!”
텐카와가 푸념하면서 아무로의 뒤를 따라갔고 유리카도 그와 바짝 붙어 방문을 나섰다.
“지금 녀석들은 3층까지 침입했다. 계단을 이용할 예정이니까 내가 따라오라고 하면 따라오도록.”
아무로는 스스로 주의도 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나갔고 텐카와는 그게 약간 걱정스러운 모양이었으나 아무로는 신경쓰지 않았다. 계단을 이용해 4층에 도달한 그들은 총격전 소리를 더욱 확실히 들을 수 있었다. 폭음도 훨씬 크게 들려 호텔이 진동할 수준이었다.
“그럼 여기서 대기. 오라고 하면 오도록.”
“혼자 가셔도 되겠습니까? 무기도 없으신 것 같은데..”
“나는 무기가 따로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아무로의 자신있는 표정에 텐카와는 할 말을 잊었다. 잠시 멍하게 서있는 텐카와 내외를 한번 쓱 본 후 아무로는 내려갔다.
“함장님께서 무사하실까?”
“글쎄..유리카, 아무로 함장이 아무리 맹하다지만 설마 무기도 없이 내려갔을까만은. 아무쪼록 살아오기를 기대해야지.”
밑에서 총소리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벌써 3층의 점거가 끝난 것인가? 그렇다면 함장은? 그 때 아무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안전하다 내려와!”
둘이 내려간 3층의 모습은 놀라웠다. 수 많은 자들이 거의 상처없이 쓰러져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게..어떻게 된 거죠?”
“내가 몰락했다지만 이 정도는 장난이야. 그럼 잘 따라와. 빨리 석현을 찾아서 지구로 가야 한다. 천계가 이 협상의 장을 방해하기로 했다면 협상은 끝난거야. 천계놈들은 자신들의 목표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절대 멈추지 않는 독종들이니까.”
“아..그렇다는건 함장님도 그렇다면 말씀입니까?”
다시 전진하기 시작한 아무로를 따라가며 텐카와가 제법 여유를 부리며 말했다.
“몰라. 어쨌든 자네들 세명은 지금 당장 지구로 가야 한다.”
“지구요? 지구는 얼음덩어리 밖에 없을텐데 그곳엔 왜?”
사실 텐카와의 ‘얼음덩어리 밖에’는 아니었다. 여전히 상당수 부분의 지구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으며 바다도 아직 상당부분이 얼지 않은 채였다.
“시간을 이동할 수 있는 곳은 지구 말고는 없으니까.”
물론 ‘거신’이라면 원래 천사정도는 쉽게 만들 수 있었겠지만 오필리아 역시 힘을 잃은 상태였지. 그래서 오필리아가 천사는 만들지 못하고 자신의 세력이라고 만든 것이 라기어스인이다. 오필리아는 구석진 성계의 3번째 행성. 그러니까 막 생성되어 마그마의 바다로 뒤덮혀 있던 지구의 마그마를 식혀버리고 나름대로 행성 지하 깊은 곳에 거대한 세계를 만들어 그곳에 라기어스 대륙을 만들었다.
오필리아는 자신의 계획을 나에게 말해줬는데, 자신은 다시 천계로 돌아갈 것이며 그 때를 위해 힘을 모아두고 있다고 하더군. 그리고 오필리아는 나에게 충격을 줘서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기억을 소거시켰지. 그리고 오필리아는 라기어스를 제작하고 나에게 충격을 준다고 소모했던 힘 덕분에 자신이 만든 라기어스인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근데 갑자기 어떻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까?”
텐카와 아키토가 질문했다.
“글쎄. 뭐 이야기 하자면 긴데. 일단 라기어스 이후의 역사부터 알아보자고. 라기어스에 제국이 성립되었는데 문제는 제국초기에 반대하던 사람이 많았지. 뭐 황제..라는 존재를 싫어하는 어느정도 민주주의자라고 해야 하나. 그 사람들은 제국군의 추격을 받으면서 힘겹게 도피생활을 지속했는데, 그 자들은 이동문을 발견하게 된 거지.”
“이동문..이라고요?”
“그래. 이동문. 라기어스 대륙과 지상을 이어주는 이동문이야. 그것을 발견한 일부의 라기어스인이 지상으로 나섰고 그것이 지구인의 시작이야. 게다가 최초의 지구인들은 라기어스에서도 지식층에 속하지 못한. 완전 ‘원시인’이었지. 그들은 금속이나 면직물, 건축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어. 그래서 완전 원시적인 생활을 해야만 했었지. 그리고 그들은 나름대로의 ‘진화’를 시작했어.
오필리아는 자신이 만든 라기어스 대륙의 성향을 ‘항상성 유지’로 못 박았지. 덕분에 라기어스에서는 수백만년에 걸쳐 사람이 살았지만 발전단계는 고작 화약의 개발단계에서 끝났어. 뭐 지상에서는 오필리아의 영향을 받지 않았으므로 무한대로의 발전이 일어났지.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거기까지 하는 게 좋을 것이네.”
무거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기를 듣던 세 명은 즉시 고개를 돌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화자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티라엘. 여기에는 사람들이 있으니 모습이나 좀 보여주지 그러나? 그리고 남의 말을 끊는 건 예의가 아닌데.”
“그건 내가 실수했군.”
역시나 재미없는 말을 내뱉고는 ‘그것’이 나타났다. 문쪽에 나타난 ‘그것’은 처음에는 검은 색이었지만 차츰 색이 나타나더니 금색의 옷을 입은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히 그것이 사람과 다른 이유는 황금색 두건안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며 등쪽에 흰색의 날개 비슷한 것이 있었다. ‘날개 비슷한 것’은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었다.
“저...저건...”
이석현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상식을 벗어나는 전투함에서 수년간 생활했으므로 나름대로는 비상식적인 일에 면역이 되어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분명히 착각이었다. 그는 자신의 눈에 비치는 것을 믿지 못했다.
“아..아름다워!”
유리카의 상황파악안되는 한 마디가 잠시간의 정적을 깼다.
“사람들 중에도 꽤나 담력이 있는 자가 있군.”
“어쨌든...왜 갑자기 나타났지?”
아무로는 품 속에 손을 넣으며 물었다. ‘티라엘’이라고 불린 인간형의 물체는 입은 없었지만 말을 했다.
“제국과 공화국이 합쳐지면 힘이 강대해진다. 그 말은 자칫하면 천계의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단 말이지. 우리는 그것을 저지해야 한다.”
“웃기는군. 왜 사람이 천계의 지배를 받아야 하지?”
“지배가 아니다. 사람이란 것 자체가 천계에서 추방당한 오필리아가 만든 것이므로 원래는 제거되어야 하나 우리가 아량을 베풀어 주고 있는 것이다.”
티라엘은 말했다. 아무로는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일어서서 티라엘에게 다가갔다.
“이 정도의 일은 예상했다. 천계의 그 오만함은 나도 예상하던 일이니까..그래서 나는 보험을 들어두고 있는 중인데 자네가 방해를 하는구만..”
“보험이라고?”
“그래! 보험이다. 방해한다면 어쩔 수 없이 양측이 힘을 써야겠지.”
티라엘의 표정은 없었지만 잠시 고민하는 듯 했다. 잠시 뒤 그가 말했다.
“좋아. 보험을 들든 말든 그건 자네 마음이지. 여기서는 물러나겠다. 자네가 무슨 보험을 드는지 알 필요도 없다. 어차피 자네의 보험 따위는 천계의 권위를 벗어날 수 없으니까..”
“역시 오만하군, 티라엘..”
티라엘은 나타날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사라졌다. 아무로는 다시 돌아보고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세 명에게 말했다.
“정신차려. 내 말은 계속되네. 잘 들어주길 바라네.”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티라엘’이라고 하셨습니까? 그 자에 대해서 먼저 말씀해 주십시오.”
텐카와가 말했다. 아무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군. 좋아. 저 자는...”
534년 16일 1사이드
“풀내음이란게 이런것인가 봅니다. 저는 정말 오랜만에 맡아보네요.”
“그렇나보군. 코렐리아에는 도대체 풀이 없어서...코루스칸트는 그나마 낫지만..”
막 일어난 텐카와와 이석현은 드라마 호텔의 바깥에 나와 잠시 아침의 상쾌한 공기를 즐기고 있었다. 비록 이곳이 원산지는 아니지만 지구에서 우송해온 잔디나 이곳에 펼쳐진 잔디나 잔디는 잔디였던 탓에 둘은 쾌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이제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정상적으로 살기는 틀린 것 같군요.”
“비뚤어져 있던 인생이다! 텐카와 자네가 자기 편이 압도적으로 이기는 전투에 홀로 패배해 제국에게 붙잡혔듯이 나도 미노리아대를 졸업하지 못하고 아무로 함장의 배에 탄 것처럼 말이지.”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렇게 된 것도 재미있군요. 이 인생에 도대체 재미란 녀석이 떨어지지 않으니 말입니다. 다음에는 어떤 재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텐카와는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인물이었지만 방금 전의 말투는 비꼬는 말투였다. 어제 긴 옛날이야기를 듣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다 날이 밝아오자 피로가 쌓인 탓이리라.
“글쎄. 함장의 말대로 천계가 제국과 구 공화국이 합쳐지는 걸 원치 않는다면 무슨 수작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분명히 천계는 은하계에 간섭을 하지 못할텐데요?”
“간접적인 방법이 있지. 왜, 양의 탈을 쓴 늑대란 말도 있지 않나?”
이석현은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어제 들었던 말을 모두 전적으로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야기는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 ‘티라엘’의 출현은 아무로의 말에 신빙성을 더했다. 이들은 이제 아무로가 하는 말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일을 하지 못하리라.
“둘이 무슨 재미있는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냥 잠도 안오고 해서..너는 계속 주무시지 왜 나왔어?”
잠시 표정이 우울해진 텐카와 유리카가 대답했다.
“그거야 뭐..나도 어제 들은 얘기가 있고 하니까 잠이 올 리가 없잖아? 근데 아키토. 그 얘기가 진짜일까?”
“그걸 내가 알겠냐. 어쨌든 4시간 뒤부터는 본격적인 일이 시작되니까 아침이라도 먹어야 겠네. 들어가자. 형도 같이 들어가요.”
“아니..나는 좀 있다가 들어갈께. 먼저 들어가라.”
“알겠습니다. 밥이 준비되면 부르겠습니다.”
“알았어.”
이석현은 짧게 대꾸하고 드라마 호텔 밖으로 나갔다. 그의 시야에 저 멀리 보이는 푸른 산과 그 밑을 흐르는 개울이 들어왔고 그는 그것을 보기 위해 다가갔다. 그가 근 25년을 살아왔지만 줄곧 코렐리아에서 생활한 그로써는 이런 풍경을 감상할 기회가 적었다.
‘대단하군. 이게 정말 인공적으로 만든 자연이란 말인가?’
이석현은 감탄했다. 코렐리아도 이런 환경을 만들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코렐리아의 기후와 토지환경에 이런 목초지와 산지는 불가능했는데 다만 이끼류나 간단한 식물들만이 작은 군락을 이루어 생활할 수 있었다. 이런 식물들은 소위 ‘잡초’라고 해서 천대받고 있었지만 그런 것들이 코렐리아 유일의 자생식물이란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몇 분간 걸은 뒤, 그는 개울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손을 집어넣자 그의 손에서 차가운 감각이 느껴졌다. 두 손을 모아 물을 받은 그는 얼굴로 물을 가져가 세수를 했다. 개울에 놓여 있는 나무다리를 건너 그는 산으로 향했다. 산에는 소풍온 사람들을 위한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었고 그는 잠시 기분좋게 산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형. 슬슬 돌아오세요.’
텐카와의 통신이 도착하자 이석현은 돌아가리라 마음 먹고 그의 발길을 돌려 내려갔다. 그가 산을 거의 내려와 호텔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을 때 호텔로 급히 달려가는 몇 개의 차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놀랐다.
‘아니?’
그는 안경을 꺼내 쓰고 확대모드로 전환했다. 분명히 차에서 내려 호텔로 향하는 자들은 총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호텔쪽에서 총탄이 발사되어 접근하는 자 중 하나를 바닥에 쓰러뜨렸다.
‘이럴수가!’
이석현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짐작하지 못했다. 급히 뛰어내려가던 그는 개울가에 도착하자 생각이 바뀌었다. 어차피 그가 간들 호텔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사살당할것이다, 그렇다면 여기 잠자코 있는게 낫다..라고 생각한 그는 가까운 나무 뒤로 숨어 호텔의 상황을 지켜봤다.
드라마 호텔
샤워를 하고 이석현이 오기를 기다리던 텐카와 내외는 갑자기 울려퍼지는 총성에 놀랐다. 어쨌든 그들은 빨리 활동하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무슨 일의 변고가 있기를 기다렸다. 총성은 계속 울리고 간간히 폭발음도 돌려왔다. 그리고 그들 방 문이 갑자기 열렸다.
“빨리 가야 해! 내가 길을 뚫을 테니 잘 따라오도록.”
“함장님!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천계가 손을 쓴 것이겠지. 아마 구공화국의 과격파들을 티라엘이 무의식적으로 부추긴 모양이다. 빨리! 시간이 없다. 이거라도 들고 따라와. 실탄전투라서 전반사는 별 필요가 없다.”
텐카와 내외에게 소형 매그넘을 하나씩 건네준 아무로는 이미 완벽하게 준비된 상황이었다. 물론 그가 이런 일이 일어날지 알리는 없었지만 어쨌든 그는 항상 준비가 되어있는 인물이다. 방문을 나가면서 그가 물었다.
“이석현의 방은 어디지?”
“석현 형 방은 우리 옆 방입니다만 형은 지금 요 앞의 산에 잠시 산책을 갔습니다.”
“한가하구만! 어쨌든 빨리 석현에게 통신을 보내서 거기서 대기하라고 말하게!”
아무로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텐카와는 즉시 실행했다. 아무로는 몸을 돌려 걸어나갔다.
“이거 참. 내가 지상에서 싸움을 할 줄이야!”
텐카와가 푸념하면서 아무로의 뒤를 따라갔고 유리카도 그와 바짝 붙어 방문을 나섰다.
“지금 녀석들은 3층까지 침입했다. 계단을 이용할 예정이니까 내가 따라오라고 하면 따라오도록.”
아무로는 스스로 주의도 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나갔고 텐카와는 그게 약간 걱정스러운 모양이었으나 아무로는 신경쓰지 않았다. 계단을 이용해 4층에 도달한 그들은 총격전 소리를 더욱 확실히 들을 수 있었다. 폭음도 훨씬 크게 들려 호텔이 진동할 수준이었다.
“그럼 여기서 대기. 오라고 하면 오도록.”
“혼자 가셔도 되겠습니까? 무기도 없으신 것 같은데..”
“나는 무기가 따로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아무로의 자신있는 표정에 텐카와는 할 말을 잊었다. 잠시 멍하게 서있는 텐카와 내외를 한번 쓱 본 후 아무로는 내려갔다.
“함장님께서 무사하실까?”
“글쎄..유리카, 아무로 함장이 아무리 맹하다지만 설마 무기도 없이 내려갔을까만은. 아무쪼록 살아오기를 기대해야지.”
밑에서 총소리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벌써 3층의 점거가 끝난 것인가? 그렇다면 함장은? 그 때 아무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안전하다 내려와!”
둘이 내려간 3층의 모습은 놀라웠다. 수 많은 자들이 거의 상처없이 쓰러져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게..어떻게 된 거죠?”
“내가 몰락했다지만 이 정도는 장난이야. 그럼 잘 따라와. 빨리 석현을 찾아서 지구로 가야 한다. 천계가 이 협상의 장을 방해하기로 했다면 협상은 끝난거야. 천계놈들은 자신들의 목표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절대 멈추지 않는 독종들이니까.”
“아..그렇다는건 함장님도 그렇다면 말씀입니까?”
다시 전진하기 시작한 아무로를 따라가며 텐카와가 제법 여유를 부리며 말했다.
“몰라. 어쨌든 자네들 세명은 지금 당장 지구로 가야 한다.”
“지구요? 지구는 얼음덩어리 밖에 없을텐데 그곳엔 왜?”
사실 텐카와의 ‘얼음덩어리 밖에’는 아니었다. 여전히 상당수 부분의 지구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으며 바다도 아직 상당부분이 얼지 않은 채였다.
“시간을 이동할 수 있는 곳은 지구 말고는 없으니까.”
전술 차원에서의 우연은 전략 차원에 있어서의 필연이 남긴 잔광(殘光)의 파편에 불과하다.
--- 자유행성동맹 이제르론 방어사령관 겸 함대지휘관 양 웬리 퇴역원수
-출처 : 은하영웅전설 10권 낙일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