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4년 15일 1사이드
-여기는 1사이드 1번치 항만관리소입니다. 4번 항으로 입항이 허가되었습니다.

“제국의 XSD II Nadesico. 접수했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나름대로는 공손하게 통신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텐카와가 통신을 마쳤다. 함교의 창밖너머로 1사이드 1번치의 모습이 보였다. 겉보기에는 이곳저곳에 땜질을 해서 누더기같은 모습이었지만 이곳은 100여년 동안 명실상부한 한공화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새 국가에서 이곳을 수도로 사용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이곳 말고는 딱히 다른 곳을 수도로 정할 곳도 없었다.

물론 제국과 새 국가의 평화협정이 맺어진다면 바깥성계에 대한 탐험도 본격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때까지 초공간도약이 군사적으로만 사용되었다면 이제는 평화적으로 사용될 시대도 오는 것이다.

초공간항해가 시작되고 언 500년 동안 인류가 이루고 있는 2개의 거대국가, 제국과 한공화국사이에 만성적인 전쟁상태가 지속되었으므로 타 성계에 대한 탐사가 이루어 질 여유가 없었다. 물론 소규모로 탐사가 지속되어 상당수의 성계에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행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인류가 살기에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린 행성도 많았다. 하지만 그곳으로 옮겨갈 여유가 없었다. 양국의 전쟁은 주로 하이퍼 부이가 있는 근처에서 벌어졌으므로 국력을 다른곳으로 분산할 수가 없었다. 이번일을 계기로 실제로 제국에서도 황제의 직접지도아래 황제직속기구인 외곽성역탐사국, 줄여서 탐사국이 만들어져 외곽성역에 대한 탐사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10분 남았습니다. 10분 후면 우리는 아마 우리시대에 태어난 사람들 중에서는 처음으로 구 공화국땅에 발을 딛게 되는 사람이 되겠죠.”

이석현이 웃으면서 말했다.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그를 면밀히 관찰해본다면 그가 완전히 웃지만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구공화국함대 만여척을 넘게 침몰시킨 Nadesico가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리라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또한 한편으로는 걱정해야 하겠지. 우리는 이러나 저러나 공화국쪽에서 보면 ‘적’이니까 말이야.”

로엔그람이 조용히 말했다. 사실 처음에 아셀로즈가 화평을 청했을때도 제국정부내에서도 반대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었지만 그가 직접 나서서 가기를 청했고 자신만 가겠다고 당당히 말하는 모습에는 정부요인들도 할 말이 있을 턱이 없었다. 결국 황제와 최고국무위원의 동의를 얻어냈고 그는 자신이 타고 갈 배를 자신의 기함 Brunhilde가 아니라 Nadesico로 선정했다. 아무래도 안정성이라는 면에서 이 배는 적어도 확실한 보장을 받을 수 있었다.

제국에서는 총사령관 로엔그람과 정보부장 도깃과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황제의 외교전권을 위임받은 외교부장관 율리어드가 참석했고 이들을 보좌하는 보좌관 약 20명이 참석했다. 공화국에서는 당연히 아셀로즈가 나올테고 제국측에서 가장 궁금해하는 올페우스 토그라의 참석여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는 공식적으로는 사망이었으므로.

“그렇지만 정부를 뒤집는 일을 성공할 정도면 이 정도 경비야 충분히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쉽게 당할까요. 안 그렇습니까, 함장님?”

텐카와가 아무로를 바라보면서 장난스럽게 말했다.

“글쎄. 쉽게 당하기야 하겠냐만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게 내 진심이네.”

이 말에 모두는 침묵으로 긍정을 나타냈고 1사이드 1번치가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4번 외항에 배가 접항을 시도했고 텐카와의 실력으로는 매우 간단한 일이었다. Nadesico는 안전하게 4번 외항에 도착했다.

구 한공화국 함대에 있어서 최고의 적이자 최고의 맞수였던 ‘사기’가 도착했다. 일부 과격단체의 공격을 우려한 임시정부의 아셀로즈는 경찰 14개 중대를 동원해서 접선 장소를 완전하게 방어하고 있었다. 1사이드 1번치 콜로니의 외항에 안전하게 접항한 Nadesico는 콜로니 내부로 진입하기 위해 작은 셔틀에 옮겨탔다. 아셀로즈가 직접 나와서 그들을 맞이했다. 아무로마저도 아셀로즈가 직접 나타날 것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적지않게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아셀로즈는 몸을 당당히 펴고 손을 내밀어 로엔그람에게 악수를 청했다.

“처음뵙겠습니다. 저는 아토브 아셀로즈입니다.”

로엔그람이 그 손을 잡으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제국의 슈테가르트 로엔그람입니다.”

“저와 임시정부의 일원 모두는 여러분들의 방문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또한 환영합니다. 그럼 필요한 사항이 있으면 제게 말해주십시오. 저는 앞쪽의 셔틀에 있겠습니다.”

아셀로즈는 말을 마치고 다시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앞쪽의 셔틀로 걸어갔고 제국인들은 2대의 셔틀 중 뒤쪽의 것으로 이동했다.

“1사이드 1번치. 공화국에 살았던 저도 이곳에는 처음 와 보는군요. 여기는 워낙 중요한 곳이라서 정부의 관리나 그의 가족이 아니면 거주가 불가능하니까요."

셔틀에 탄 텐카와가 말했다. 로엔그람은 셔틀내부에 장비된 접촉형 컴퓨터를 이용하여 1번치의 DB를 검색하곤 말했다.

“그렇군. 상주인구 340만이라..보통 일반 주거콜로니에서 700만가까이 사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곳에는 확실히 사는 사람이 적군. 또 이곳은 사실상 구 공화국의 수도였다고 하는군. 하긴. 지구가 빙하기가 와서..”

“네. 지구에는 빙하기가 온다, 온다라는 말은 많았습니다만 실제로 사람들이 체감은 잘 못하죠. 사실 5만년전과 비교해 볼때 겨우 4~5도 정도의 차이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간에도 외항을 벗어난 셔틀은 콜로니의 레일 궤도에 안착하여 지상궤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궤도근처에는 목초지가 펼쳐저 있었으며 저 먼곳에는 산도 보였다. 현재 제국의 중심지이며 이들이 생활하는 코렐리아 행성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산뜻한 모습이었다.

이들이 만날 장소는 1사이드 중심가에서는 약간 떨어진 한적한 교외에 자리한 ‘드라마 호텔’이었다.

“콜로니는 지구와 환경이 유사하군.”

“그게 아닙니다. 지구는 이미 빙하기가 와서 뒤덮여 버렸거든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던 이상적인 지구라고나 할까요.”

로엔그람의 말에 텐카와가 씁쓸하게 대꾸했다. 13만년 전 한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으로 시작된 인류의 역사는 지구에서 시작되었으며 8만년 동안 인류는 지구에서만 계속 생활했지만 이제는 지구는 스스로 쉴 시간을 찾고 그 위에 사는 생물체를 정중히 거절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구에는 여전히 일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은 부분적으로나마 지구의 환경을 여전히 파괴하고 있었다.

궤도를 약 30분간 달린 셔틀은 이제 ‘드라마 호텔’이 보이는 곳까지 도달했다. 텐카와가 셔틀에 달린 조망창으로 호텔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번화가는 아닙니다만 나름대로 좋은 곳이군요. 공화국 관리들이 주로 단기휴가를 묵는 곳이라고 했던가요?”

-그렇습니다. 물론 지금은 모두 비워두었습니다만.

셔틀의 조종사가 내부 회선으로 응답했다. 잠시 뒤 셔틀의 속도가 서서히 감소했고 2대의 셔틀은 ‘드라마 호텔’에 도착했다. 사실 콜로니 내부 셔틀은 따로 정착역이 필요없었다. 상온에서 초전도현상을 밝혀낸 지 이미 2만년이 지났고 셔틀형 자기부상열차가 개발된지도 만년이 지났다. 자유자재로 멈출 수 있으며 사실 역은 사람들의 통행이 많으므로 만들어둔 일종의 건물에 불과했다.

-제국분들. 도착했습니다. 왼쪽으로 내려주십시오.

“그나저나 원수님께서는 말이 없으시군.”

“그래요. 뭐 안좋은 일이 있으신지..”

로엔그람을 따라 내린 유리카가 대답했다. 목초지에서 불어오는 은은한 바람-물론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기는 했으나 엄연히 자연적으로 부는 바람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므로 차이를 느낄 수는 없다-을 한껏 들이키며 이석현이 내렸다.

“음. 좋은 건물입니다. 우리가 제국에서 묵던 건물과는 확연히 비교되는군요.”

코렐리아의 어두침침한 행성에서 생활하던 이들에게 확실히 이 고풍스럽게 지어진 건물은 상당한 흥미를 주었다. 5만년 전 우주개척시대 건물인 ‘드라마 호텔’은 지상 13층, 지하 3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리로 오십시오. 제국분들. 지금은 이미 날이 저물었으니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게 좋을 듯 싶군요. 그럼 여기 제 경호원들이 여러분들의 호위를 맡을 것입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주십시오.”

아셀로즈가 정중히 말했다. 로엔그람이 제국인을 대표해서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의원.”

아셀로즈의 경호원이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했다.

“저는 앨러그 디스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의 경호를 맡게 되서 진심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덕분에 과도한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만. 다행히 협상을 방해하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군요.”

“걱정마십시오. 우리 임시정부에서는 이 협상장소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공개는 했지만 그 공개된 장소는 거짓이죠. 여러분들과 여기 있는 사람들의 대역이 지금 그곳에서 꾸며진 협상을 펼치고 있을 것입니다.”

아셀로즈의 준비성은 칭찬할 만했다.

“그렇군요. 으음. 의원의 선견지명에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이렇게 공식적이고 사무적인 말투가 오고가는 장소 뒤편에서는 극히 개인적이 말들이 오고 가고 있었다.

“아니 기자들이나 공화국 시민들이 헷갈릴 정도면 여기가 진짠지 저기가 진짜인지 어떻게 알지?”

“그럼 우리는 진짜니 우리가 손해보는군.”

경호원들의 안내를 받아 호텔 내부로 들어온 제국일행은 각자 방을 배정받았다. 한 사람 당 한 방씩 배정받았고 각 층에는 경호원들이 대기하는 방이 따로 있었다. 제국인들은 4층과 5층, 두 층에 걸쳐 묵게 되었고 아셀로즈의 배려인지 Nadesico에서 아무로 함장을 따라올 수 있었던 함교의 3인방은 같은 층에 배정되었다. 그들은 각자 개인인식을 마치고 방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저녁을 먹은 후 함교 3인방과 함장은 함장의 방에 모여 말을 나누고 있었다.

“어제는 또 내일부터라고 했지만 오늘은 또 내일부터가 되겠군요. 진짜 재미있는 일은.”

“어차피 우리는 참석도 못하지 않습니까?”

“나는 갈 수 있어. 자네들은 못 가지만.”

아무로가 덤덤하게 말했지만 텐카와 내외나 이석현은 대단히 놀랐다.

“회의 명단에 함장님은 없었습니다만?”

“로엔그람에게 말해놓았어. 내가 가지 않으면 위험한 곳이야.”

아무로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어둡게 말했다. 이렇게 우울하면서도 심각한 얼굴은 함교 3인방도 본 적이 없어 그들은 상당히 놀라워했다. 아무로는 자신의 갈색 머리를 한번 쓸어올리고 창 밖을 쳐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들에게는 옛날 이야기를 해 줘야 겠군. 얼핏 알겠지만 이 세상은 사람만 사는 세상은 아니야. 여기 은하계에는 인간이 살고 있지만 저 천계에는 이곳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지. 그들이 속히 말하는 ‘신’이야! 나도 그 일족이지만.”

아무로는 일찍이 구 Nautilus의 승무원들에게는 어느정도 말해놓았다. 자신은 완전한 인간이 아니며 인간의 능력을 훌쩍 뛰어넘는 존재라고. 그에 대한 이야기가 본인의 입을 통해 다시 한번 나오고 있었다. 함교 3인방은 바짝 긴장했다.

“원래 누군가 모든 공간을 창조하였을 때는 천계만이 생명체가 존재했지. 천계에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2명의 신, 그러니까 ‘거신’ 나와 오필리아는 서로의 운명을 걸고 전쟁을 했어. 수만년의 전쟁으로 천계가 황폐화되었고, 천계에 생활하는 일반 천사나 요정의 고통이 심각했지.

전쟁 개시 당시 내 휘하에는 6명의 신과 140명의 전투천사가 있었고 오필리아의 밑에는 역시 6명의 신과 145명의 전투천사가 있었지. 하지만 전쟁이 심화되면서 전쟁의 규모는 전 천계를 아울렀고 수천명의 천사가 전투에 참여했지.

이대로 가면 천계는 끝장이었어. 사실 그 누구의 세력도 강하지 않았고 서로의 세력이 매우 팽팽했으므로. 그래서 오필리아와 내 휘하의 12명의 신은 오필리아 휘하의 천사 티라엘의 중재아래 비밀리에 협약을 하고 2명의 ‘거신’을 밀어내기로 했고 나와 오필리아는 완전히 궁지에 몰렸지.

하지만 ‘거신’은 쉽게 소멸되는 존재가 아니야. 그들의 배신에 나는 매우 격렬히 저항했고 결국 30명의 전투천사가 소멸된 후에 나는 완전히 힘을 잃었지. 그리고 나는 내 기억을 완전히 잃은 후에 봉인되었고 그로부터 수십만년의 시간이 흘렀지.“

아무로의 이야기는 잠시 쉬었지만 그것은 끝내기 위해 쉰 것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표정은 더욱 어두워졌으며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해갔다.

“으음..소설로 써내도 될 법한 내용이군요. 물론 저는 믿습니다만 사실 함장님이 그렇게 대단한 존재라고는 이 때 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석현이 어깨를 으쓱 하며 말했다. 아무로는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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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별로 좋지 않은 글 실력에 space fantasy와 '신'의 존재를 연결시키는 것에 대해 상당한 고민을 했거든요. 하지만 초지일관을 택했고 다음 글 정도까지는 아마도 옛날이야기가 될 듯 하군요. (애초의 이 글의 제목이 '진정한 퓨전' 아니었겠습니까 -_-;;)
전술 차원에서의 우연은 전략 차원에 있어서의 필연이 남긴 잔광(殘光)의 파편에 불과하다. --- 자유행성동맹 이제르론 방어사령관 겸 함대지휘관 양 웬리 퇴역원수 -출처 : 은하영웅전설 10권 낙일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