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함대의 본대가 도착할 때까지는 잠시 쉬어도 되겠군. 정찰기를 발진시키고 함대에 3종 경계태세 발령.”

토그라가 간단히 마친 후 그는 지휘석에서 일어나 개인실로 향했다. 역시나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쿠퍼가 그를 따라왔다. 이 두 사람이 부관과 제독의 관계가 된 지는 언 1년 반이었으며 격동의 세월의 한중간에 있던 이 두 사람은 여전히 죽이 잘 맞았고 공화국내에서도 이 정도의 효율을 내는 조합은 잘 없다고 한다.

“적 함대의 본대가 도착하면 본격적으로 공격하실 예정이십니까? 당초의 계획과는 다르군요. 원래는 그냥 밀어치는거 아니었습니까?”

“그렇지. 사실 지금 커미노를 점령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어. 하지만 내가 지금 커미노를 점령하지 않는 이유는 적을 최대한 끌어내서 한번에 잡아버리겠다는 심산이네. 제국황제의 등장이면 제국에 일어나던 민란은 단숨에 끝났을 것이고 시간을 주면 그들에게 유리해져. 커미노를 점령한다는 것은 우리 함대가 행성에 대한 공격을 감행해야 한다는 것이 되고 행성에서도 최소한의 반격은 일어날 것, 그렇다면 그 사이에 ‘사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우리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네. 어쩌면 ‘사기’는 그것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르네.”

“알겠습니다 각하. 그렇지만 적 함대의 항행속도를 70속도로 잡고 여기와 코렐리아와의 거리를 생각해보면 적 함대는 지금으로부터 4시간쯤 후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사기’가 현재 공화국함대 최대의 적이었지만 로엔그람의 제국함대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지난번 두 번째 충돌 당시에 5만 척의 함대를 제국함대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적 함대는 현재 모두 합쳐도 4만 척이 안 될 것으로 전략컴퓨터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3만 척이 일시에 쏟아내는 화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 공격에 ASDⅢ에서 쏟아지는 공격이라면 더욱 더.
개인실로 들어간 그는 커피포트에서 달인 커피를 먹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어쨌든 토그라는 예나 지금이나 지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코렐리아를 점령한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의 생각 따위를 하고 있었다. 커피를 마신 그는 잠시 자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고 그는 눈을 붙였다.

-각하. 적 함대가 탐지되었습니다. 거리는 5억Km입니다.

“으응??”

졸음에서 깬 토그라가 멍청하게 있는 모습을 발견한 쿠퍼는 다시 말했다.

-혹시 방해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만 적 함대의 본대로 추정되는 다수의 적함이 출현, 현재 전 함대 명령 대기 중입니다.

“알겠네. 그럼 함대에 1종 전투태세를 급히 갖추게. 적 함대와의 충돌 예상시간은?”

-지금으로부터 2시간 20분쯤 뒤입니다.

“오케이.”

충실한 부관의 모습이 디스플레이에서 사라진 후 토그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세면실에서 세수를 한 후 방을 나섰다. 그의 모습에는 잠에서 깬 멍청한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으며 냉철하기 그지없는 현재 우주 최고의 지휘관의 모습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가 특수유리로 제작된 창으로 밖을 잠시 바라보고 있을 때 공화국함대에서 불빛이 치솟았다. 전투함이 일렬로 쓸려나갔다.

-각하! ‘사기’로 추정되는 전투함급 물체가 출현했습니다! 숫자는 단 한척! 피해가 이백 척에 달합니다!

부관의 다급한 목소리가 통신기에서 흘러나왔다. 군복의 기장에 달려있는 통신기에서 흘러나오는 쿠퍼의 목소리는 다급했으며 긴박했다. 이것이 어쩌면 공화국함대의 현재 상황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재차 불꽃이 저편에서 터져 나왔다.

“전 함대 전술번호 BB-34AS실시!”

말을 마친 토그라가 급하게 뛰었다. 이 날을 위해 토그라가 제작한 전술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너무 갑작스러웠다. 제국함대와의 접촉은 2시간이 넘게 남은 상황에서 갑자기 ‘사기’의 공격이 시작된 터라 비록 공화국 함대의 기계들이 1종 전투태세를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1종 전투태세를 갖추지 않았다. 이것이 가장 문제였다.

어쨌든 공화국 함대의 전술컴퓨터가 가동되었다. 피해가 410척으로 집계되었고 기함 SEII' Slayers의 함교에서는 상황이 매우 바쁘게 돌아갔다. 하지만 지금 최고지휘관인 토그라가 도착하지 않았다. 아직 1분은 기다려야 했지만 그 사이에 또 수백의 함대가 깎여나갈지도 몰랐다. 빨리 최고지휘관이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자신의 지휘에 합당한 권리를 행사해야했다. 아무리 사전에 설정된 전술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직접적으로 관리하거나 실행시키는 자가 없다면 그 효과는 상당히 떨어질 것이다.
공화국함대에 다시 파멸의 그라비티 블래스터가 한 번 더 지나간 뒤에야 토그라가 Slayers의 함교에 도착했다. 토그라는 급히 지휘석에 앉아 전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피해는 천여 척에 미치지 못했다.

“각하께서 명하신 대로 지금 작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타이밍에 적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한시름 놓은 쿠퍼가 말했다. 토그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하네. 어쨌든 저 ‘사기’는 우리의 발목을 항상 잡는군. 저것 때문에 우리 공화국함대의 사기가 떨어지고 있네. 단 한척의 배에 함대가 쩔쩔매고 있으니 원..”

토그라가 혀를 차고 다시 말을 이었다.

“하긴, 지금의 상황은 거의 필승이네. 나는 ‘사기’가 90속도로 이동할 것에 대비해 전술을 세웠고 여러 번 시뮬레이터로 돌려 그것이 합당함을 확신했네. 이번에야 말로 공화국함대의 최대 적인 ‘사기’를 물리칠 수 있을 거니 자네도 기대해보게.”

믿지 않는 자는 가질 수 없는 눈을 한 쿠퍼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각하. 각하께서는 항상 공화국함대를 승리로 이끄셨고 앞으로도 그러실 겁니다.”

“쑥스럽군.”

토그라가 어설프게 말했다.

‘사기’는 기종의 그라비티 블래스터와 상전이포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퍼부으면서 공화국함대를 유린해나갔다. 90속도의, 경악을 불러일으킬만한 속도로 움직였지만 이미 공화국함대는 이것에 익숙해져있었다. 그리고 저 괴멸적인 그라비티 블래스터와 상전이포에 대해서도 약간 익숙해져 있었으나 생리적인 죽음에 대한 공포에는 그들이 익숙해질 수 없었다. 철저히 계산된 토그라의 함대운용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 움직임에는 미묘하나마 불안감이 내재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포위망은 완성되어가고 있었다고 양측의 거리가 근거리에 접어들자 공화국함대가  일거에 폭격기를 발진시켰다. 시커먼 우주를 푸른색의 공화국폭격기가 뒤덮는 듯 했다.

“적 함대, 현재 본 함을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폭격기가 현재 접근중. 3분뒤면 뒤집어 쓸 것 같군요.”

“이제 이걸 써볼때가 왔군.”

아무로가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텐카와가 즉시 받았다.

“이런 것이 있는 줄은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만 정말 쓸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이거는 진짜 사기가 아닙니까? 물론 타격력은 상전이포를 능가하겠습니다만.”

“자네도 잘 알겠지만 이것은 상전이포와 같이 한번에 때려넣는다기 보다는 그 지역에 적 함선의 접근을 막음으로써 적 함대의 함열을 붕괴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네. 제국함대와 연동을 기본으로 하는 우리 배에 있어서는 상당히 유효한 것이네.”

아무로가 보충했다. 텐카와는 수긍한다는 듯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함장님. 그건 그렇고 이제르론의 소식은 없습니까? 함장님께서도 말하셨지만 이제르론 회랑은 절대 Nautilus와 이제르론 요새만 가지고는 지킬 수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텐카와의 물음에 대답한 사람은 함장이 아닌 부함장이었다. 금발의 엘렉트라가 입을 열어 말했다.

“텐카와. 함장대리가 마음에 걸리나요?”

“으음 부함장님도..부정하기는 곤란하군요. 그래도 나머지 승무원들이 걱정되기도 하고..하하”

텐카와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로도 씩 웃더니 말했다.

“됐어! 어차피 이 배로 지금 육탄전을 벌일 것은 아니니 지금까지 자동전투시스템으로 잘 싸워왔지. 그럼 두방만 냅다 쏘고 이제르론으로 돌진하도록 하자! 부함장! 지금 우리의 좌측으로 돌진해오는 적 함대의 선두를 조준해 쏴버리게! 조타수. 이제르론으로의 퇴로를 무조건 확보하도록.”

“알겠습니다 함장님! 조준완료되었습니다.”

엘렉트라가 긴급하게 외쳤다. 드디어 XSD' Nu-Nautilus에 탑재된 신무기가 사용될 참이었다.

“오케이. 블랙홀 클래스터 발사.”

예상외로 담담하게 외친 아무로가 턱을 괴고 앉았다. 지난번 상전이포를 쏴댈때와 마찬가지로 죽어가는 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조의를 표하는 것을 기본수칙으로 삼은 아무로였다.

Nu-Nautilus에서 발사된 검은 구체가 공화국함대 방항으로 날아가다 멈추었다. 즉시 팽창을 시작한 구체는 근처로 지나가던 공화국전투함과 보급함을 무자비하게 끌어들였고 그들을 빛나는 빛으로 바꾸어 불귀의 객으로 만들어버렸다. 급히 지나가던 배들이 항로를 수정하려고 했으나 강력한 인력이 그들을 끌어당겼고 최대출력으로 인력을 벗어나려고 했으나 그 강력한 인력에 의해 끌려갈 수 밖에 없었다. 공화국함대의 함열이 다시한번 무너졌다.

“다음은 우측으로 돌진해오는 공화국 함대의 선두를 조준해서 명령대기없이 발사하게.”

“알겠습니다...조준 완료..발사하겠습니다.”

엘렉트라 부함장의 보고와 동시에 Nu-Nautilus에서 다시 검은 구체가 공화국함대를 향했다.

급히 속도를 감소한 배들이 뒤편의 배와 충돌하여 본의아니게 빨려들어갔다. 토그라도 함교에서 이 기괴한 현상을 멍하니 지켜볼 뿐이었다.

“저건 또 무슨 사기인가?”

토그라의 멍한 대답에 함교의 오퍼레이터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현재 공격형태를 알 수 없습니다! 근처 수 Km내에 강력한 인력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5함대의 피해가 백여척에 달합니다!”

“20함대에서도 급전입니다! 강한 인력이 작용! 배가 빨려들어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피해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함대 폭격기에 의한 폭격도 효과가 없습니다! 적함 여전히 건재!”

“각하!”

쿠퍼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토그라를 쳐다보며 외쳤다. 토그라가 목소리가 살기를 담아 외쳤다.

“저 놈을 당장 없애버려! 공화국 함대의 명예를 걸고 저 자식을 박살내란 말이다!”

토그라가 이렇게 감성적으로 대한 것을 쿠퍼는 처음 대했고 그는 당혹해 했지만 일단 토그라를 말려야 했다. 함대의 최고사령관이 이렇게 비이성적으로 된 것은 도움이 전혀 안될 것이다.

“각하. 진정하십시오. 저것은 지금 블랙홀처럼 우리함대를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피해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후퇴를 명하셔야 합니다! 여기서 더 피해가 늘어나면 안됩니다. 후퇴를 명해주십시오!”

“여기서 퇴각은 안돼!! 또 다시 저 단 한척의 배에 의해 우리가 물러서야 한단 말이냐!”

거의 이성을 잃은 토그라가 말했다. 주먹으로 콘솔을 내려친 토그라가 씩씩거렸다.

“11함대의 괴멸. 그리고 얼마 전 승리의 목전에서 물러나야 했고, 지금 또 물러난다면 내 자신이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기회는 있습니다. 각하. 우리에게는 아직 수십만의 함대가 있습니다. 지구에 있는 나머지 함대와 지금 있는 함대를 교대하십시오. 장기적으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쿠퍼가 다시한번 그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함교의 벽을 발로 차버린 토그라가 내뱉으며 지휘석이 앉았다.

“후퇴. 자세한건 각 함대의 제독에게 위임한다. 별도의 명이 있을때까지 재정비와 후퇴를 지속하도록.”

“알겠습니다.”

토그라가 다시 한번 물러났다. 공화국함대 불패의 신화며 전 승무원의 우상인 토그라가 그의 치밀하며 완벽한 전술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블랙홀 형식의 공격에 그는 또 허무하게 물러나야만 했다. 비록 커미노를 수비하던 5천여척의 제국함대를 손쉽게 파괴한 업적도 있었으나 그것은 지금 그의 머릿속을 전혀 차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해진 토그라가 군복의 앞을 풀어헤쳤다.




전술 차원에서의 우연은 전략 차원에 있어서의 필연이 남긴 잔광(殘光)의 파편에 불과하다. --- 자유행성동맹 이제르론 방어사령관 겸 함대지휘관 양 웬리 퇴역원수 -출처 : 은하영웅전설 10권 낙일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