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운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툴툴대며 걸어갔다. 그리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자신의 핸디 롤켄네스를 펼쳐들었다. 문자 그대로 한손에 딱 잡힐 만큼 작은 초소형 롤켄네스였지만, 성능과 기능에서는 기존의 롤켄네스와 비교해 전혀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하이엘프들은 일찍이 양자의 중첩간섭현상을 이용한 복합연산이 가능한 롤켄네스라는 장치를 만들어냈다. 이것은 수백만 자리의 부동 소수점 계산도 단 몇 초 만에 끝낼 수 있는 실로 혁명적인 기기였다. 만약 이것의 도움이 없었다면 초공간 도약은 고사하고 하이엘프들의 지상제패 역시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뛰어난 롤켄네스에게도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다.

“ 핸디 롤켄네스라... 말로만 들었지만 실제 보기는 처음이네? 이거 아직 파는 것도 아니잖아. ”

유리아는 신기한 듯 호운의 롤켄네스를 바라보았다. 이러한 롤켄네스는 정말 최근에 개발 된 것이었다. 약 1년전만 해도 롤켄네스 하면 떠오르는 것은 집채만한 크기의 '촉매장치' 와 그에 필적하는 연산 장치였으니 말이다.  
롤켄네스의 핵심기술은 양자의 중첩현상을 유지시키는 것이었다. 이것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촉매장치' 라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 ‘촉매장치’라는 것은 기술 적인 문제로 최근까지 소형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1년전 어느 한 무명의 아크라션이 촉매장치의 소형화에 성공한다. 우연찮은 사고에 의해 발견된 이 신기술은 실로 혁명과 같은 일이었다.
기존의 롤켄네스는 그 촉매 장치란 것 때문에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해도 웬만한 집 한체 보다 큰 크기였다. 그러나 새로 개발된 이 기술로 만들어진 롤켄네스는 기존의 롤켄네스에 비해 1000/1 수준으로 줄어들었던 것이다. 바야흐로 한 손에 쥘 수 있는 헨디 롤켄네스의 시대가 도래 한 것이었다.

“ 이거... 아빠가 선물로 주신거야... 생일 선물로... ”
“ 아...  ”

유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닫았다. 호운은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땅을 향한 마음으로 가다 이런 변을 만난 것이다. 아직 시신을 확인 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그의 아버지지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 했다. 유리아는 뭐라고 위로라도 해주려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침묵이 더 어울릴 듯 했으니까... 호운역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자신의 롤켄네스를 조작할 뿐이었다.  

“ 쳇 시간이 걸리겠는걸. 보안장치가 모조리 작동해 버렸어. 후우... 다른 방법을 사용해볼 수밖에... 아 그리고 이 격벽이 왜 초진동 나이프로도 부서지지 않는지 물었지? ”
“ 그래. 하지만, 무리할 건 없어. 보기에 안쓰러우니... ”

원래 드워프란 종족은 말이 별로 없는 종족이었다. 물론 노움 보다는 성격이 쾌활하며 융통성있는 종족이었지만, 호비트에 비한다면 정말 얌전한 종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드워프 출신인 호운이 한눈에 표시가 날정도로 극성스럽게 행동한다는 것은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이유는 유리아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 괘... 괜한 참견 하지마. 다크엘프에게 동정 받는다고 기분이 나아질리 없자나? ”
“ 훗 언제까지 종족 타령이나 하고 있을 생각이냐. 그러니 드워프들은 키가 안 크는 거야. ”
“ 뭐, 뭐라구! ”

그렇지 않아도 자기 또래에 비해 키가 작아서 고심 중인 호운은 유리아의 말에 저도 모르게 그만 발끈하고 말았다. 드워프 키야 커봤자 거기서 거기였지만... 드워프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키는 1m 40cm. 이거보다 더 커도 꺽다리란 소릴 면하기 어려웠고 이보다 작아도 그리 좋은 소린 듣긴 힘들었다. 이 때문에 드워프들은 실제 지신의 키에 매우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키란, 곧 외모와, 품의를 대표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 아아, 미안. 미안. 자아 어서 이야기해줘. 뜸들이지 말고. ”
“ 쳇 미안할 것 없어. 나도 다크엘프라고 무시를 했으니 피장파장이지. 하지만 한번만 더 내 키를 가지고 놀리면, 용서 못해! "

호운은 여전히 불퉁한 얼굴이었지만, 화는 많이 풀렸는지 목소리가 많이 밝아져 있었다. 그는 잠시 무언가 생각을 하는 듯 이제 겨우 나기 시작한 자신의 턱수염을 만지다 입을 열었다.

" 흠... 그럼 어디서 부터 설명을 해야할까? 일단 '오리하르메이드'란 금속에 대해 들어봤어? "
“ 그쯤은 나도 안다구.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경도(硬度)를 지닌 금속이라지? ”
“ 그렇구말구. 이론적으로는 따진다면 블랙홀에 집어넣어도 끄떡없는 금속이지. 내 생각으로는 이 격 벽은 바로 그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 같아. 초진동에 영향을 받지 않는 금속은 그 외에는 없을 테니까. 아마도 너의 그 초진동 나이프도 '오리하르메이드' 로 만들어졌을걸. 그리고... ”

호운의 말을 듣던 유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리하르메이드에 관한 이야기는 이전에도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실제 네피시스의 교육과정에서 이것의 원리 따위를 배운 수차례 배운적이 있었지만, 이런 것에 관심이 별로 없는 유리아는 그저 흘려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금속의 뛰어난 내구성에 대해서는 정말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바였다.

“ 아,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구. 격벽이 열린다. ”
“ 이봐. 잠깐. 하던 이야기는 마저 해줘야지. ”
“ 싫어. 복수닷. 이 천하의 아크라션을 홀대하고서 그냥 넘어가려 했어? ”

호운은 이렇게 외치며, 쏜살 같이 격벽쪽으로 달려가 버렸다. 순간 할 말을 잃은 유리아는 그저 쓴웃음을 지을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