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주검으로 가득찬 귀빈실을 벗어난 유리아와 호운은 곧바로 이배의 실질적인 제어를 담당하고 있는 하이브 컨트롤러로 향했다. 귀빈실에 더 이상 생존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유리아는 우선 이배의 현 상황을 알 필요가 있음을 절실히 느꼈던 것이다.

지금 이 배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상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 한 일 들 뿐이었다. 사인마저 추측이 불가능 할 정도로 처참하게 찢겨진 탑승객들의 주검들 하며, 뒤이어 나타난 ‘투명괴물’의 출몰... 이 모든 것은 가히 초자연적 현상이라 말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 선내는 거의 8할 이상의 전자기기가 작동을 중지한 상태였다. 그 때문에 다른 곳과의 통신은 고사하고 발광석이 없이는 걷기마저 힘들 지경이었다.

“ 정말 엄청나군. 셔틀 안이 이렇게나 넓었다니... 믿기지 않아. ”
“ 당연하지. 이 피닉스 에로우는 전장 1km가 넘는 헤비 쿠르저(Heavye cruiser)급 셔틀이란 말야. 최대 탑승인 수는 1200명. 현재 연방에서 운영되는 셔틀 중 가장 큰 녀석이지. 잘못하면 셔틀 안에서 길도 잃을 수 도 있다구. ”
(역주:쿠르저-험한 원양(대양[大洋])을 항해할 수 있도록 건조된 배를 쿠르저 급 배라 칭한다. 여기서는 초공간 도약이 가능한 중, 대형 우주선의 총칭함)

이 자그마한 키의 드워프 족 꼬마는‘ 호운 랑케로트’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건방진 꼬마 드워프라고만 생각했지만 그의 아이벳을 살펴본 유리아는 이 녀석의 건방짐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이 드워프 꼬마는 그 유명한 ‘아크라션’의 칭호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연방에서 직접 선발하는 이들의 명성은 익히 알려진 것이기에 더 이상 언급할 가치도 없는 거였지만... 그래도 놀라웠다. 이런 꼬마 드워프가 아크라션이 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 으로도 말이다.

사실 아크라션이란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기능직이었다. 자격 요건은 단 한 가지. 연방에서 운영하는 연구기관 ‘알타베르나’에서 5년이상 버텨내는 것이 다였다.  그러나 이 곳에서 버텨낸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이곳에서의 교육은 토론학습을 기초로한, 개인의 창의성과 개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고 있었다. 다시말하자면 타인을 흉내내는 그런 학습으로는 절 대 이곳에서 버텨낼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끊임없는 문제 재기와, 그리고 그 명제의 탐구... 이곳에서는 절대 진리란 존재 하지 않았다. 그들의 진리는 항상 변화하며, 또한 융통성 있는 것이었다. 아르케비니아 연방 최고의 지성이라 일컬어지는 아크라션들은 이 혹독하리 만큼의 창의적인 학습가운데서 탄생하는 것이다.

“ 그래 너 잘났다. 누가 아크라션 아니랄까봐 그래? 그쯤은 나도 안다고. 헛소리 말고 저 격벽이나 열어 ”

어느 사이에 둘은 또 다시 나타난 격벽 앞에서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이것으로 2번째 격벽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무려 3개의 객실을 지나왔지만, 단한명의 생존자, 아니 온전한 시체조차도 보기 힘들었다. 마치 무너진 도미노처럼 엉망으로 뒹구는 좌석들 사이에는 엄청난 출혈의 흔적과, 팔이나, 다리로 보이는 시체의 조각들은 간혹 눈에 뛰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잘된 일인지도 몰랐다. 만약 이 곳 역시 귀빈실처럼 사람들이 산산 조각나 널려 있다면, 이렇게 걷는 것조차 불가능 했을 터였다. 유리아 혼자라면 크게 어려울 것도 없었지만, 지금은 호운이라는 꼬마 드워프와 동행하고 있었다. 아무리 당찬 드워프 족이라 할지라도 이런 참혹한 현실을 헤쳐나가기에는 아직 호운은 너무나 어렸다.

“ 숨 좀 돌리고 하자구, 이러다가 정말 길을 잃어버릴지도 몰라. ”
“ 시끄러. 격벽하나 여는데 20분이상 걸리잖아. 이렇게 느려서야 어느 세월에 하이브 컨트롤러에 도착하겠어? ”
“ 우씨 난 문따게(역주-_-:문 여는 도구)가 아냐. 그렇게 자신 있음 네가 해보지그래? ”
" 아아 알았다구. 알았어. 참 궁금한게 하나 있는데 말야. 왜 이 격벽은 초진동 나이프로 부술 수 없는 거지? 초진동이란 물질계에 존재하는 그 어떠한 물체라도 파괴가 가능하잖아? "

유리아는 초진동 나이프를 지금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격벽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검신에서는 확실히 초진동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지만, 거무틱틱한 저 격벽은 미동도 않고 그 자리에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 미쳤어? 그 칼 치우지 못해! 이 격벽 반대편의 선체에 균열이라도 생겼다면 어떻게 할 거야? 저 격벽은 장식용이 아니란 말이야! ”

호운은 유리아의 말에 깜짝 놀랐다. 격벽을 부수다니... 그것은 호운의 말대로 정말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일단 격벽이 작동했다는 것은 배가 치명적인 손상을 입어 어디엔가 균열이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피닉스 에로우’는 헤비 쿠르적 급의 우주선 인 만큼 그 규모는 실로 엄청났다. 그 때문에 치명적 손상을 입었을 경우 각 구역간의 격리는 필수였다. 만약 이것이 되지 않을 경우 선체의 자그마한 균열하나라도 생길 경우, 급격한 기압의 손실로 인한 돌풍현상에 의해 선내는 초토화를 면할 수 없었다. 이것을 막기 위해 선내의 각 구역에는 어김없이 격벽이 존재했던 것이다.

" 걱정마 미치지 않았으니. 정말 미쳤다면 걸리적 거리는 네놈부터 죽이고 홀가분하게 다녔을꺼야. "
" 크윽 너, 너무해! 명색이 네피시스라면서. 그런말을... "
" 네피시스니까 참고 있는거야. 다크엘프가 어떤 종족인지는 네가 더 잘 알텐데?  "
" ... "

호운은 울고만 싶었다. 어쩌다가 저런 다크엘프와 같은 배를 타게 됐는지...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어쩔수 없었다. 현재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저 살기를 풀풀 흩날리는 다크엘프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 에휴 어디 무서워서 말이라도 제대로 하겠어? 조금만 기다려봐. 우선 '윔'을 롤켄네스에 침투 시키고 나서 이야기해줄 테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