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 좋아 초진동 나이프라... 어느 정도의 힘이 있는지 한번 볼까?  "

일반적으로 초진동 병기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 이유인즉 지금까지도 이 초진동을 견딜 수 있을 만한 물체가 없는 까닭이었다. 하지만 유리아의 허리띠... 이제는 초진동 나이프가 되어 버린 이것은 초진동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 어떠한 물질도 순식간에 물질붕괴현상을 초래하게 만드는 초진동을 말이다.
유리아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나이프를 유리아는 비스듬히 문에 가져갔다. 문에 다가갈수록 초진동 나이프의 진동은 약해 졌지만 그 대신 문에서 미미한 방전이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문은 '가루'라는 것으로변해 그대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초 진동 나이프가 채 닿지도 않았지만 나이프가 뿜어내는 초 진동은 문을 이루고 있는 물질의 고유진동을 간섭하기 시작한 것이다.

[ 부우웅 ]
" 맙소사. 이건 뭐야! "

유리아는 가공할 초진동 나이프의 파괴력에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실로 순간적인 일이었다. 초진동 나이프가 체 문에 닫기도 전에 문은 기분나쁜 공명음과 함께 검붉은 가루로 변해 가고 있었다.

" 이것이 초진동 나이프의 힘인가? 아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시간이 없어. "

가루가 되어버린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유리아는 곧이어 문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력이 나갔기 때문에 상당히 어두울 것이라고 생각한 밖은 의외로 밝아 보였다.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간 유리아는 가장 먼저 이 빛의 정체부터 살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빛 역시 발광석의 빛이었다. 귀빈실의 천장에는 상당히 많은 수의 발광석이 빛을 내뿜고 있었다.

" 여긴 아예 발광석으로 도배를 해놨군. 그런데 사람들... 제기랄 이건 또 뭐야! “

유리하는 자칫했으면 초진동 나이프를 놓칠 뻔했다. 그토록 호화찬란의 극치였던 귀빈실은 오간데 없고, 그녀의 시아에 들어온 죽음의 음산한 기운과 역겨운 피냄새로 가득한 아수라장이 펼쳐져 있었다.

" 이럴수가. 사람들이 우욱. "

고급스런 객실의 좌석들은 마치 피를 퍼부어 놓은 것 같은 혈흔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중간,중간에는 사람들의 '조각'으로 보이는 것들이 마구 뒤섞여 있었다. 생존자는 고사하고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시신 조차 찾아 보기 힘들었다.

" 어떻게 된 거지? 도대체 이건 뭐냔 말이다! "

나름대로 비위가 좋다고 자부하는 그녀였지만 지금의 이 참혹한 광경 앞에서는 입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참을수 없을 정도의 역겨운 피 냄새. 그리고 흉하게 널려있는 살과 뼈 조각들... 유리아는 바닥에 허릴 굽히고서는 한동안 정신없이 토했다.

" 큭 쓰러질 수 없어 겨우 이런 일로 정신차렷. 유리아! “

유리아는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그녀가 다크엘프라고는 하지만 이 광경은 앞에서는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완전 생지옥이 아니던가?!
유리아는 크게 숨을 한번 들여 쉰 뒤 곧장 단전호흡을 시작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단전호흡의 효과는 정말 탁월했다. 단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그토록 심했던 구토가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던 것이다. 여전히 객실쪽으로는 눈을 돌릴 수 는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유리아는 살 것 같았다.

" 하아 죽을 맛이군. 정말 "

한숨을 땅을 꺼지라고 내쉰 유리아는 다시금 눈을 들어 귀빈실에 펼쳐진 생지옥을 바라보았다. 순간 속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것 같았지만, 더이상 추한 모습을 보이긴 싫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객실 그녀는 먼저 객실 내를 천천히 살폈다.

" 역시 생존자는 없는 것 같군... "

귀빈실 내에 있는 승객은 약 40여명, 이 사람들은 모두 절명한 것으로 보였다. 굳이 맥을 집어볼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시신이 심하게 회손 되어있었기에 살펴볼 여지초차도 없었다. 하지만 정확한 사인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저 시신들을 직접 부검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도저히 용기가 생기지 않는 유리아였다.

" 해내야만해. 반드시! 무엇을 위한 네피시스란 말인가. 아직 무릎꿇긴 일러. "

5년동안의 지옥훈련... 그것을 떠올린 그녀는 다시금 자신감을 되찾았다. 사실 그 동안 받아온 훈련에 비하면 지금 이런 일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죽을 고비 넘긴 것 같은 거야 수로 헤아릴 수도 없는 일이었고 모의 시가전에서 팔, 다리 하나쯤 날아가 버리는 일은 일상적인 것이었다.
극에달한 연방의 재생의학기술 덕택에 팔다리 잘라진 것쯤이야 곧바로 복구가 가능했지만, 이런 일 한번 당하고 나면 한동안 밥조차 먹기 힘들었다.
그리고 신경조작을 통해 이루어지는 버츄어 시뮬레이션 훈련은 그 중에서도 단연 압권이었다. 이 훈련은 자아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원초적인 공포를 최면상태에서 이끌어 내어 생각해낼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고르고 뽑은 네피시스의 후보생일지라도 매년 10%가량이 이 훈련을 받던 중 자아가 붕괴되어 버릴 정도로 이 훈련은 가혹한 것이었다.

유리아는 지금도 이 훈련의 기억을 잊지 못했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유일하게 의지했던 자들이 그녀에게 검을 들어 되는 상황. 그렇게나 믿었던 사람들이 일순간 적이 되어서 유리아 그녀에게 검을 들여댔다. 그것도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잔혹함으로... 그것은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희망이라는 단어는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유리아는 이 훈련 중에 몇 번이나 자아 붕괴 직전까지 내몰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항상 그 끝에 이르러서는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하나의 의지가 그녀의 자아를 회복시켰다. 당시에는 그 의지가 무엇인지 조차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의 유리아는 이것의 정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 그래. 이제 곧 고향인데... 그토록 꿈꿔왔던 일인데. 힘내라 유리아. "

고향. 현제의 유리아에게는 이것이 유일한 희망이자 목표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 멀고 낯선 땅에서 다크엘프란 이유 하나만으로 그토록 무시와 차별을 받고 살아왔지만,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그것은 항상 최후의 희망으로서 그녀의 삶에 주춧돌이 되고 있었다. 유리아는 다시 한번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떨어지지 않는 발을 떼어 냈다.

" 제길...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마치 폭탄에 직격이라도 한 것 같아."

객실 입구 근처에 널려 있는 시체... 아니 시체라고도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처참한 모습으로 널려있는 조각들을 살펴보며 유리아는 인상을 짓푸렸다.
그것은 그녀가 네피시스 훈련 중 보았던 폭사한 시체의 모습과 매우 흡사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단순히 폭사했다고 생각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있었다.

" 아냐. 이런 말도 안될 정도의 살상력을 지닌 폭탄은 없어. "

유리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확실히 이건 폭탄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의 몸이란 조그만 외부의 충격에도 쉽게 부서지는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인체란 구조공학상 예술이라 불리울 정도로 그 내충격성이 매우 뛰어났다. 그 때문에 제 아무리 강력한 폭탄이라도 사람들을 이처럼 갈기갈기 찢어놓을 순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이곳에는 폭탄이 폭발하면서 생긴 흔적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현제 연방에서 사용하는 폭약은 약300 여종, 그 중에는 거의 폭발하더라도 거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녀석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러한 것은 대부분 위력이 매우 약했고 폭약 고유의 냄새만은 지울 수 없었다. 만약 지금 이 사람들이 폭탄에 의해 살상되었다고 한다면 적어도 폭약 그 특유의 향만은 남아 있어야했다. 그러나 유리아의 후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끈적끈적한 피의 냄새와 벌써 시체의 부패가 시작되기라도 한 듯, 역겨운 악취 뿐 이었다.

" 그럼 도대체 뭐지? 폭사도 아니다. 정황을 보아서는 이 사람들 모두 한순간 이렇게 된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

유리아는 이제는 공포보다 답답함이 앞섰다. 그녀가 의식을 잃은 원인이 되었던 그 충격은 또 무엇이며 지금의 이 광경은 또 무엇인지 그녀로 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녀가 처음 생각한 스페이스 하이 잭은 절 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스페이스 하이 잭커의 소행이라면 적어도 이 귀빈실의 승객만은 살려두었을 것이다. 여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연방의 고위관료이거나 중요인사였기에 충분히 살려둘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 퉁 퉁 퉁 ]

그때였다. 지독하리 만큼 고요한 적막 속에서 무언가 둔탁한 소리가 울려왔다.  가득이나 긴장하고 있었던 유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쥐고 있던 초 진동 나이프에 스위치를 넣었다. 원래의 형상으로 돌아가 있있던 초 진동 나이프는 부드러운 진동음과 함께 검의 형상으로 순식간에 변형되었다.

[ 퉁 퉁 퉁 ]
" 무슨 소리지? 이건... 저곳은 화장실 방향? "

유리아는 초진동 나이프를 앞세우고 이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돌렸다. 마치 금속 통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는 조금은 불규칙적이었지만 연이어 들려왔다. 다크엘프 특유의 긴 귀를 쫑긋 세운 채로 이 소리에 온 신경을 곤두 세웠다. 그리고 얼마안가 그녀는 이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