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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반격
2010년 06월 19일. 토요일. 23시 55분. 이집트 알 마흐디야
"제길! 이거 너무 이른 거 아니야?"
"별 수 있겠습니까? 그 잘난 윗분들이 워낙 조급하시니……."
"요놈들아. 그나마 밤에만 싸우게 됐으니 천만 중 다행인줄 알아.
온대성 기후의 한반도에서 배를 타고온 우리들한텐 추운 밤이 싸우
기 좋은 시간이야."
최신예 K-300 보병 전투차의 병력 탑승실에 몸을 싣고 있는 남와
룡 병장과 그의 후임들은 하나같이 바짝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출
동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간 숱한 훈련을 받았건만 사막은
도무지 정을 붙이기 힘든 곳이었다. 황량하기 이를데 없는 모래의
평원이 주는 삭막함, 인간에겐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모래바람과
뜨거운 태양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
라면 해가 지고 밤이 되면 하늘을 수 놓는 별이었다. 이젠 도시의
찬란함에 익숙할 수밖에 없는 한국군 병사들에게 인공의 불빛과 시
야를 가리는 자연의 장애물이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모래의
대지 위에서 바라보는 별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특히 남 병장에
게 있어 그것은 매우 특별했다.
"남 병장님,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유독 밤 하늘을 많이 올
려다보셨는데 왜 그러셨습니까?"
"내 어릴적 꿈하고 관련이 있어."
"꿈이라구요?"
"그래. 꿈."
그렇게 답하고는 남 병장은 잠시 향수에 빠진 표정을 짓자 모두의
궁금증은 더욱 커지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그때 차내 인터컴을
통해 차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모두들 준비됐냐? 이제 곧 출발한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 병장 일행이 몸을 실은 K-300은 무
한 궤도로 바닥을 긁으며 전진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가운데 그들
뒤로는 수많은 섬광이 여기저기서 번쩍이고 있었다. 한반 중의 고
요함을 깨뜨리고도 남을 폭음과 함께…….
"이대로라면 우리의 승리야."
7군단에 배속된 6포병여단 예하 71포병대대의 지휘관 곽창석 중령
은 자신이 몸을 실은 K-77 지휘차 안에서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전
장정보를 확인하고는 그렇게 말했다. 간격을 둔 채 배치된 K-9 자
주포들은 이미 확인된 리비아군의 머리 위에 포탄을 사정없이 계속
날리는 중이었다. 곧 K-9 자주포들은 사격을 일시 중지한 후 2차
사격 진지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K-9 말고도 MLRS, 구룡 다연
장 로켓포도 여기에 가세하였다.
2010년 06월 20일. 일요일. 00시 15분. 이집트 카푸르 무함마드 아
부 루메이라 남쪽 15Km
"우리 포병대는 대체 뭘 하고 있나?"
"적의 첫 포격으로 대부분 제압 당했습니다."
"망할!"
유개 참호 안에 마련된 지휘소에서 리비아군 야전 지휘관은 탁자
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치를 떨었다. 리비아군 포병대의 머리 위에
떨어지는 포탄들은 내장된 지능형 자탄을 투발했고 자탄들은 내장
된 센서로 표적을 추적해 돌입하였다. 견인포가 박살 나면서 그 주
위에 있던 탄약이 유폭을 일으켰고, 거기에 휩쓸린 포병대원들은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폭사당했다. 진지 곳곳에 가해지는 압도적
인 포격은 병사들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실전 경험이 풍
부한 병사와 지휘관들이 본토로 이동한 덕분에 그 자리에 남은 2선
급 병력의 대응은 불충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급기야 병사 몇
몇이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도주하려 했고 이를 목격한 지휘관은
권총을 꺼내어 그들을 즉결해버렸다.
"이제 어떡하면 좋죠?"
"큰일만 나지 않기를 빌어야지."
포격이 거의 끝난 가운데 위기를 모면한 병사들은 하나같이 덜덜
떨며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드디어 7군단의 선두인
12기계화사단 예하 45기계화 보병연대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공격하라!"
열영상 센서로 한국군의 접근을 확인한 중화기 진지의 장교가 명
령을 내리자 대전차 미사일 사수들이 코넷-E 대전차 미사일을 발
사하였다. 레이저에 의해 유도되는 이 미사일은 한국군의 주력 전
투차량들을 충분히 파괴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수량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 때문인지 명령을 내린 장교는 날아가는 미사
일의 후부에서 내는 희미한 불꽃을 바라보면서 불안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레이저 경보! 기만시키면서 회피 기동이다."
-알겠습니다.
자신의 디스플레이에 레이저 조준 경보를 의미하는 빨간 사이렌
기호가 나타나면서 경보음이 울리자 차장은 그렇게 지시하고는 전
주 선회식 조준기로 대전차 미사일 발사 추정 지점들을 살핀 후 포
수에게 지시하였다.
"1시, 2시 방향에 참호다. 공격하라."
-목표 확인.
곧 K-300 장갑차는 포탑을 선회시킨 후 주무장인 40mm 기관포를
쏘기 시작하였다. 자신들을 향해 기관포탄이 날아들자 리비아군은
참호에 몸을 깊숙이 숨긴 채 화를 면하려 했지만 K-300이 발사한
기관포탄들은 발사전에 입력 받은 거리에 이르자 허공에서 폭발해
버렸다. 그로 인해 발생한 파편을 그대로 뒤집어쓴 참호선 안의 리
비아 보병들은 즉사하거나 아니면 중경상을 입고는 바닥에 널부러
져 비명을 질러댔다. 간신히 발사된 코넷 미사일들은 K-1A1 개량
형과 K-300이 탑재한 기만기와 요격체에 의해 모래 바닥에 처박히
거나 파괴당해버렸다.
"온다!"
"최대한 끌여들여서 쏴라!"
철저하게 위장된 참호에 거치된 B-11 무반동포는 K-300 한 대가
참호선에 근접해오자 불을 뿜었다. 포탄은 차체 정면에 명중했고
사수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지만, 곧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
다. 직사를 맞은 K-300이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움직이면서 그들
을 향해 포탑을 선회한 것이다. 곧 40mm 기관포가 불을 뿜었고 그
들은 무반동포 진지와 함께 산산조각나버렸다. 이 광경을 목격한
리비아군 장교들은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부에선 그들
이 주로 사용할 직사형 대전차 화기로 한국군의 K-300만은 확실히
격파할 수 있다고 누누이 강조했기 때문이었다.
"바보들! 이녀석이 기본형인 줄로 아나?"
남 병장 일행이 몸을 싣고 있는 3호차의 차장인 고관석 하사는 리
비아군을 비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집트에 파병된 K-300은 모두
외장형 증가장갑을 부착했는데 그 성능은 RPG-7과 무반동포를 충
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제발 죽어라!"
리비아군 한 명이 그렇게 소리치며 3호차를 향해 RPG-7을 겨누려
는 찰나 마악 하차한 남와룡 병장이 K-11 자동소총의 방아쇠를 당
겼다. 미군의 OICW와 유사한 이 총에서 발사된 5.56mm 소총탄은
리비아군의 가슴과 복부에 박혔고 총에 맞은 군인은 비틀거리면서
쓰러지기 직전 RPG-7의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조준을 상실한
로켓탄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갈 뿐이었다.
"모두 움직여! 여기서부턴 우리 힘만으로 싸워야 한다!"
그의 지시에 발 맞추어 분대원들은 아군 전투차량들의 공격을 받
아 큰 타격을 입은 리비아군 참호에 돌입하였다. 거의 허물어져 버
린 철조망을 넘어 교통호에 뛰어든 남 병장은 단안식 야시경으로
살아 움직이는 물체를 확인할 때마다 총알을 날렸다. 그와 그의 후
임들이 쏘아대는 총알에 맞아 쓰러지는 리비아군 몇몇이 완전히 죽
지 않은 듯 비명을 질러댔지만, 아무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다. 곧
견고하게 구축된 유개 참호가 눈에 들어오자 남 병장은 망설임 없
이 K-11에 부착된 레이저 조준기로 거리 측정을 한 후 유탄 발사
기의 방아쇠를 당겼다. 공중 폭발식 20mm 유탄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 참호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갔고 곧 폭음과 함께 비명이
울렸다.
"엄호해!"
남 병장은 신속하게 자신이 유탄 공격을 가한 참호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살폈다. 대부분 파편에 맞아 즉사한 와중에 겨우 목숨을 건
진 한 명이 신음했지만, 그는 이를 애써 외면하였다. 곧 밖으로 나
온 남 병장은 무전기로 상황을 보고하였다.
"여기는 3분대. 소대장님, 적 참호를 제압하고 적병 다수를 사살했
습니다. 다음 위치로 이동하겠습니다."
-수고했다. 다음 위치에서 보자.
곧 장갑차에 도로 탑승한 남 병장 일행은 다음 목표를 찾아 이동
하기 시작하였다.
2010년 06월 20일. 일요일. 00시 50분. 이집트 카푸르 무함마드 아
부 루메이라
카푸르 무함마드 아부 루메이라의 탈환 임무를 맡은 5기갑여단은
시가지에 접근하면서 점점 강한 저항에 부딪치고 있었다. 적재적소
에 배치된 대전차 미사일과 대전차포, 전차는 큰 위협이었다.
"약은 놈들 같으니! 사방이 대전차호 천지다!"
무하마드 도싸리 소위는 그렇게 소리치면서 인터컴으로 포수에게
자신이 발견한 목표의 대략전인 위치를 알렸다.
"10시 방향에 대전차포."
-목표확인!
-장전 끝!
"발사!"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44구경장 120mm 활강포가 불을
뿜었다. 포탄은 목표물 바로 근처에 떨어져 폭발했고 대전차포 운
용을 맡은 병사 십 수명을 불귀의 객으로 만들어버렸다. 방호력이
떨어지는 목표의 제압엔 HEAT탄이 제격이었다.
"이때다! 쏴라!"
알리 나메크 소위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T-55의 주무장인
100mm 전차포로부터 파생된 100mm 대전차포가 불을 뿜었다. 대전
차 미사일이 극도로 발달한 현 시점에서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된
대전차포를 사용하고 있는 나메크 소위와 그의 부하들은 진형을 갖
추고 공격해 들어오는 이집트군의 공격을 자신들의 힘으론 결코 막
아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간의 전투로 부상을 입은 전우 다수가 아직도 본국으로
후송되지 못한 채 시가지에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데다 21세기라
지만 화학무기 공격을 받은 덕분에 분노가 극에 달했을 이집트군이
자비를 베풀지 확신할 수 없는 만큼 항복은 무리였다. 탄피가 튀어
나온 직후 재빨리 새 포탄을 장전하는 가운데 병사 한 명이 그에게
물음을 던졌다.
"소대장님, 아군 전차들은 다 어디 갔습니까?"
"듣고서 웃지마라. 1개 중대만 이곳에 남았다."
그의 대답에 물음을 던진 병사를 비롯 대전차포 조작을 맡고 있는
모두의 표정이 일순간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싸움에 전념하였다. 어차피 그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시
한 번 포가 불을 뿜었고, 직격을 맞은 AIFV 한 대가 대폭발을 일
으키며 주저앉았다. 바로 그순간 누군가가 소리쳤다.
"측면이 무너진다!"
그말대로 우면을 맡고 있던 아군 1개 중대가 보병을 동반한 채 공
격해 들어오는 이집트군 전차와 장갑차들을 막아내지 못하고 허물
어지고 있었다. 모두들 당황해하는 가운데 나메크 소위는 부하들에
게 소리쳤다.
"다들 도망쳐라! 내가 여기 남겠다."
"소대장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멍청한 자식들. 내가 하라는 대로 해."
부하들은 그의 지시에 머뭇거리면서도 곧 시가지로 도망쳤다. 곧
소위는 포탄이 장전된 대전차포를 발사할 채비를 갖추면서 낮은 목
소리로 말하였다.
"너희들은 꼭 살아라……."
곧 나메크 소위가 맡은 대전차포가 불을 뿜었다. 그와 동시에 이
집트군의 전차 두 대가 그가 있는 곳을 향해 포탄을 쏘았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동시에 날아든 전차포탄 두 발은 각각 대
전차포와 그 부근에 명중했고 이내 엄청난 폭발과 함께 나메크 소
위는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이집트군의 전투 차량
들은 파괴된 대전차포를 깔아뭉게며 2차선 도로를 따라 시가지로
진입하기 시작하였다.
"그놈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아마 철수했을 겁니다. 그렇게 귀중한 물건을 이런데서 소모시키
고 싶진 않을테니까요.
"방심하면 안돼. 일이 꼬이면 우린 저세상으로 직행이야."
도싸리 소위는 그렇게 말한 후 포탑 밖으로 상반신을 내밀었다.
바로 그때 그가 차장을 맡은 M-1A1은 리비아군과 마주치고 말았
다. 다들 당황해하는 가운데 도싸리 소위는 침착하게 M-2 중기관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전방에 적이다! 한 방 먹여라!"
곧 120mm 포가 불을 뿜었고 HEAT탄에 직격당한 BTR-60은 기
관총탑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폭발하며 불타올랐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중기관총과 전차포 옆에 달린 7.62mm 공축 기관총이 불을 뿜
자 십 수명의 리비아군이 피를 흘리며 나자빠졌다. 모든 것이 순식
간이었다. 얼마 후 전차포탑의 차장용 큐폴라 주위에 총알이 부딪
히는 듯 깡깡거리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자 도싸리 소위는 외부
관측을 포기하고 포탑 안으로 몸을 숨겼다. 물론 해치를 잠그는 것
도 잊지 않았다.
"여기는 1소대. 적 보병의 저항에 부딪혔다. 보병 지원을 요청한다."
-현재 그리로 1개 중대가 가고 있다. 곧 도착할 예정이니 위치를
고수하라.
"알았다."
곧 도저를 부착한 AIFV 1개 소대가 도로 위에 잔뜩 쌓인 장애물
을 닥치는대로 밀어버리면서 진격해 들어와 도싸리 소위의 1소대에
합류했다. 곧 AIFV의 후부 병력 출입문이 내려지면서 거기에 타고
있는 기계화보병들이 뛰어내렸다.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전차 진
격에 앞서 건물을 제압하고 의심스러운 지역을 사전에 조사하는 것
이었다. 곧 건물에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간 보병들은 사주를 경계하
면서 복도에 들어섰고 거기서 리비아군 기관총좌와 맞딱뜨렸다. 연
이은 총성과 함께 수 명이 쓰러졌고 나머진 엄폐물 뒤로 몸을 숨겼
다.
"크아악!"
"조금만 참아."
"유탄, 유탄을 쏴!"
"지금 하려는 참입니다!"
유탄 발사기를 맡은 사수는 자신의 AK-74 총신 아래에 부착된
BG-15 유탄 발사기로 30mm 유탄을 발사하였다. 허공을 가르며 날
아간 유탄은 기관총좌를 날려버렸고, 그 직후 신음 소리가 울렸다.
"부상자들부터 빨리 데리고 나가."
부상자들이 급히 실려나가는 동안 보병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파
괴와 살육이 이제는 익숙한 모양인 듯 목숨을 담보로 한 싸움을 다
시 시작하였다.
"보병이 건물 제압에 성공했다. 이대로 계속 전진."
곧 도싸리 소위의 M-1A1을 선두로 1소대의 전차들은 천천히 앞
으로 나아가면서 엄폐물로 쓰이기 적당한 건물들을 향해 전차포 직
사를 날렸다. 건물들이 무너져 내리며 일으키는 먼지 구름을 헤치
고 마악 앞으로 나아가던 그의 소대가 교차로에 진입하는 순간 일
이 터지고 말았다. 교묘히 위장한 채 매복중이던 T-80UM 한 대가
포를 쏜 것이다. 포탄은 도싸리 소위가 탑승한 전차 바로 옆에 있
던 아메즈 아부 상사가 차장을 맡은 M-1A1의 포탑 측면에 명중하
였다. 소위의 눈은 그대로 뒤집혀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냉정하게 상황에 대처하였다.
"교차로에 진입한 다음 오른쪽으로 돌아! 정면에서 승부다!"
-말도 안 됩니다. 그런…….
"내가 하라는 대로 해!"
-알겠습니다.
곧 조종수는 차체를 교차로에 진입시켰고 그와 동시에 포탑도 선
회하였다.
'제길 우리 소대장이 미친 거 아냐?'
처음엔 이집트군 전차들이 교차로 진입을 포기할 것으로 생각했던
T-80UM의 승무원들은 M-1A1 한 대가 느닷없이 교차로에 진입하
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동 장전 장치가 포탄 장전을 마악
끝내려는 순간 M-1A1의 120mm 전차포가 불을 뿜었다. 3세대급
이상의 전차를 공격하기엔 파괴력이 충분하지 않은 HEAT였지만
거리가 무척 가까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무시할 수 없었다. 곧
HEAT는 정확히 포탑 정면에 꽂혔고 불빛이 번쩍이며 폭음이 울렸
다.
-잡은 겁니까?
"아직 아니야! 한 방 더 먹이자!"
도싸리 소위가 그렇게 추가 공격을 지시한 가운데 T-80UM의 승
무원들은 뜻하지 않은 문제에 부딪혔다. 잘 작동하기만 하던 자동
장전장치가 느닷없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하는 수 없이 포수가
포탄을 직접 장전함과 동시에 조종수는 차체를 후진시켰다. 자리를
뜨기 위해서였다. 곧 포탄 장전을 끝낸 포수가 포를 발사하려는 찰
나 M-1A1의 120mm 전차포가 다시 불을 뿜었다. 이번엔 APFSDS
탄이었다. 죽음의 화살이라고도 불리는 이 포탄은 정확히 포탑 정
면에 명중함과 동시에 종잇장 뚫어버리듯 관통하였다. 포탄은 내부
의 승무원들을 살상함과 동시에 폭발하였고, 내부의 125mm 포탄이
그대로 유폭해버려 포탑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완파해버렸다.
-잡았다!
-소대장님, 우리가 해냈습니다.
"아직 좋아할 때가 아니야. 여기는 1호차, 3호차 응답하라."
-여기는 3호차. 말씀하십시오.
"2호차에서 탈출한 승무원이 있나?"
-한 명도 없습니다. 다 죽은 모양입니다.
"알았다."
곧 교신을 끝낸 도싸리 소위는 실의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2010년 06월 20일. 일요일. 01시 30분. 이집트 마르사 마트루
마르사 마트루 기지에서 경비 임무를 맡고 있는 리비아군 병사들
은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급박한 상황에 관해선 전혀 모르고 있었
다. 설령 알았다고 해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지도 몰랐
다. 그들의 일과는 지극히 단조로웠다. 점령한 기지 시설물들을 관
리하고 지키기만 하는 일은 전선에서 싸우다 죽을 걱정을 하지 않
아도 되니 말이다. 그런 병사들 중 한 명인 자베르 카탑 상병은 자
신의 초소에서 조용히 편지를 읽고 있었다. 본국에 있는 가족들이
전하는 소식은 하나같이 좋지 않은 것들 뿐이었다. 요즘 들어 미군
의 공습이 뜸해졌지만, 파괴된 시설이 아직도 복구되지 않아서 생
활이 불편하다는 내용으로 시작되는 편지의 끝 부분엔 이전에 이집
트 공군이 가한 무차별적인 폭격이 다른 도시에도 가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적혀있었다. 한숨을 쉰 그가 편지를 주머니에 넣는 가
운데 밖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후임이 말하였다.
"병장님, 곧 교대해야죠."
"알았어. 금방 나갈테니까. 기다려."
"그러고보니 편지에 뭐 좋은 내용이라도 적혀 있습니까?"
"거기서 거기야. 이런 시국에 좋은 소식이 오겠냐?"
"하긴. 지금 상……."
바로 그 순간 카탑 병장의 후임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머리
한쪽이 날아가면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방금 전까지 살아 있었던
후임이 머리에 쓰고 있던 방탄 헬멧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뜨인 그가 비상용 무전기로 이를 알리려는 찰
나 누군가가 와이어로 그의 목을 졸랐다. 순식간에 카탑 병장의 몸
은 축 늘어졌고, 그를 불귀의 객으로 만든 특전사 대원이 수신호를
보내자 숨어 있던 다른 대원들이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들통나지 않았을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알렸다고 해도 지금 당장 저치
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최영락 상사는 소대장에게 그렇게 말한 후 철조망 너머에 자리한
기지로 시선을 옮겼다.
"정지!"
차량 출입문 경비를 맡은 경비병의 제지에 마악 진입해오던 트럭
은 그대로 멈춰섰다.
"용건이 어떻게 되십니까?"
"정기적인 물자 수송이다. 여기 서류도 있으니 의심스러우면 확인해
도 좋다."
트럭 운전석 옆자리에 앉은 장교가 그렇게 말하면서 서류를 내밀
자 경비병은 이를 확인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다른 경비병이
무언가 낌새를 눈치챈 듯 매고 있던 총을 쏘려고 들자 장교로 변장
하고 있던 이집트군 코만도 소대 지휘관이 숨겨둔 기관단총을 뽑으
며 소리쳤다.
"들켰다! 밀어버려!"
그와 동시에 엄청난 총성이 연이어 울렸고 경비병들은 저항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전멸해버렸다. 그와 동시에 기지 한 곳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일단의 차량들이 나타났다. 사무드 알리 대위를 비롯한
777과 미육군의 그린베레 대원들이었다.
"멈추지 말고 계속 달려!"
알리 대위는 그렇게 말한 후 자신이 맡은 M-2 중기관총을 난사해
댔다. 덤비에 몸을 싣고 있는 그린베레 대원들은 Mk-19와 비교해
매우 향상된 성능을 지닌 스트라이커 유탄 발사기와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로 리비아군을 공격했다. 기지에 난입한 그들을 저지하기 위
해 장갑차 서너대가 출동했지만, 곧 대전차 미사일을 피하느라 제
대로 대처하지 못하게 됐다. 유탄 발사기를 맡고 있는 그린베레 대
원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장갑차들을 향해 총구를 겨눈 후
방아쇠를 당겼다. 연이은 유탄 세례에 바퀴가 터지는 등 갖은 손상
을 입은 장갑차가 주저앉은 직후 그 안에 타고 있던 승무원들이 콜
록거리며 기어나오려는 순간 알리 대위가 중기관총을 쏘아댔고 그
들은 피떡이 되어 절명하고 말았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적 특수부대의 기습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여기서 전선까지는 200Km나 떨어져 있어. 놈
들이 이곳에 쳐들어 온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일은 분명 사실입니다."
"보고드립니다. 기지 방어를 위해 배치된 지대공 미사일들이 적에
의해 파괴당하고 있습니다."
"뭐야?"
보고를 받기가 무섭게 급히 쌍안경으로 지대공 미사일들이 배치된
곳을 살핀 경비부대 지휘관은 미사일과 레이더가 줄지어 폭파당하
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창 밖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적의 헬리본 부대입니다!"
성공적인 기습을 등에 업고 마르사 마트루 기지에 진입한 UH-60
블랙호크를 위시한 각종 수송헬기들은 최상의 위치에 이르자 병력
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3시 방향의 격납고에 적이 한 무더기로 몰려있다. 날려버려.
"알겠습니다."
케니 힐 하사는 곧 조종간에 붙은 버튼을 눌렀고 그와 동시에 아
파치는 2.75인치 로켓탄 세례를 퍼붓기 시작하였다. 불꼬리를 끌며
날아간 로켓탄들은 격납고 안으로 정확히 들어가 폭발하였다. 엄청
난 수의 리비아군이 비명횡사한 가운데 아파치는 기수를 다른 방향
으로 돌린 후 체인건을 난사해댔다. 이번에도 수많은 리비아 보병
들의 육신이 산산조각나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즉사하지 않은 이들
은 사지가 날아가거나 내장을 흩뿌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비명을
질러댔지만, 그들은 살아날 가망이 없었다. 하지만 힐 하사는 이를
몰랐고, 설령 알았더라도 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눈 앞
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볼 수밖에 없는 보병들과 비교해 야포와 같
은 큼지막한 장비로 멀리서 사람을 죽이는 병과에 종사하는 이들이
타인을 죽이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서둘러! 적에게 시간을 줘선 안 된다!"
경비부대 지휘부의 위치를 사전에 파악한 특전사 대원들은 이집트
육군 1공수여단보다 한 발 앞서 건물 안으로 쳐들어갔다. 최영락
상사는 자신이 소지한 MP-7 기관단총으로 눈앞의 리비아군을 닥치
는대로 죽이며 복도에 들어선 후 반쯤 열린 문이 눈에 들어오자 본
능적으로 그곳을 향해 총신 아래 부분에 부착시킨 20mm 유탄 발
사기로 공중 폭발식 유탄을 발사하였다. 방 안에 숨어서 기회를 엿
보던 리비아군 몇몇이 당황한 나머지 밖으로 뛰어나오자 최 상사는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십 수발의 총탄 세례에 서너명이
쓰러지고 방에서 미처 나오지 못한 두 명은 유탄의 파편에 맞아 피
투성이가 되어 나자빠졌다.
"모두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문을 박차고 들어온 특전사 대원들이 총을 겨누며 항복을 종용하
자 경비부대 지휘관을 비롯 십 수명의 사관과 사병이 두 손을 머리
에 올렸다.
"공군기지가 적에 의해 장악당했다고?"
"예. 그렇습니다. 순식간에 모든 상황이 끝났다고 합니다."
무전병으로부터 기지를 빼앗겼다는 보고를 받은 9보병사단장은 심
각한 표정을 지으며 탁자 위에 펼쳐놓은 지도로 시선을 옮겼다. 적
이 활주로를 장악한 이상 후속 병력이 기지를 교두보 삼아 들이닥
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전력이 부실한 상태라고 해서 적을 내버
려 둘 수 없었다.
"투입 가능한 부대들을 빨리 확인해. 적은 공항을 통해 병력과 장비
를 밀어넣으려는 속셈이야. 그나저나 우리 공군은 상황이 이 지경
인데도 왜 안 보이지? 적 공수부대가 여기까지 밀고 들어온 건 그
놈들의 책임이야!"
9사단이 공군기지 방면으로 투입할 수 있는 전력을 급히 긁어 모
으기 시작한 가운데 1공수여단을 주력으로 삼은 기지 탈환부대를
지원하기 위한 중장비를 실은 C-17 수송기 편대가 활주로에 착륙
하였다. 수송기는 활주로에 멈추기가 무섭게 물자 출입용 램프를
열었고, 탑재된 M-1A2 전차 한 대가 포신을 차체 뒤로 돌린 상태
에서 재빨리 내렸다. 곧 수송기는 활주로에서 이륙해 지중해 방향
으로 기수를 돌려 날아갔고, 다른 수송기가 재빨리 착륙해 M-1A2
를 한 대 더 내렸다. 이런 식으로 전차 1개 소대를 지원받은 기지
탈환대는 만에 하나 있을 리비아군의 역습에 대비하였다.
"맙소사. 1개 사단이라니……."
"믿기지 않을 테지만 사실이다. 적 지휘관이 미군 심리전 담당자에
게 제공한 정보에 의하면 기지 재탈취에 나설 9보병사단은 2선급의
부대이지만 전차와 장갑차, 야포를 적절히 갖추고 있다. 여기에 더
해 보병들의 무장 수준도 충실하다고 한다. 결코 적을 깔보아선 안
된다."
부사관이 중핵을 이루는 특전사 대원들은 소대장으로부터 적에 대
한 정보를 브리핑 받은 후 바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가운
데 소대장인 정명상 중위가 최영락 상사에게 물음을 던졌다.
"선임 당담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상 밖입니다. 이 일대의 적이 부실하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브
리핑을 받았는데 사실은 영 딴판이니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최 상사는 배낭에서 꺼낸 보온병에 든 커피를 마
셨다. 졸음을 쫓음과 동시에 사막 특유의 차가운 밤 공기도 잠시나
마 잊을 수 있게 해주니 그야말로 훌륭한 음료였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적의 보유 장비들이 부실
한 이상 우리 입장에선 막아내기 쉽습니다."
보온병을 배낭에 도로 넣으면서 최 상사는 손가락으로 동쪽을 가
리키며 말하였다.
"일단 우리는 아군이 올 때까지 적을 막아내기만 하면 됩니다. 그
외의 일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2010년 06월 20일. 일요일. 01시 40분. 알 카사바 아쉬 샤르키야
방어 태세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평가된 이곳 탈환에 나선 한국
육군 5기갑사단과 미육군 1기병사단에 대한 리비아군의 환영은 매
우 성대하기 그지 없었다. 포탄이 사방에 작열하고 예광탄이 허공
을 가르는 가운데 K-2 전차와 K-300, 배치된지 20념이 훌쩍 넘었
지만 화력 강화가 이루어진 K-200 보병전투차의 대군은 리비아군
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저항을 분쇄하며 앞으
로 나아갔다. 안세준 대위는 자신이 탑승한 K-2 전차 안에서 차장
용 조준기로 주위를 확인한 후 소리쳤다.
"여기는 무쏘1, 적의 포격에 기죽지마라! 앞 뒤 가릴 필요 없다! 전
차는 부수고 보병은 궤도로 뭉게버려라!"
무쏘라는 호출명에 걸맞게 안 대위의 1중대는 리비아군 진지를 향
해 포와 기관총 사격을 가하며 육박해 들어갔다. 그들을 막기 위해
보병과 장갑차 저지용으로 배치된 Zu-23 대공 기관포가 불을 뿜었
지만, K-2의 복합장갑엔 이빨도 먹히지 않았다. 하지만 내버려두면
골치 아픈 존재여서 안 대위는 그 위치를 확인하기가 무섭게 포수
인 김국선 병장에게 지시하였다.
"10시 방향에 적 대공 기관포. 대탄 날려!"
-목표 확인!
곧 자동 장전장치에 APFSDS탄 대신 HEAT가 장전되어졌고 장전
완료를 뜻하는 부호가 안 대위 바로 앞에 놓인 차장용 디스플레이
에 나타났다.
"발사!"
그 명령과 동시에 K-2 55구경장 활강포가 불을 뿜었다. 포신이 뒤
로 밀려나고 배연기와 포구로부터 연기가 토해지는 가운데 안 대위
는 자신이 목표로 삼은 대공 기관포 진지의 최후를 볼 수 있었다.
나름대로 위장에 신경을 썼던 병사들은 멀리서 날아온 전차포탄이
기관포에 직격하자 엄청난 폭발로 인해 튕겨져 나가거나 산산이 조
각나버렸다. 곧 1중대의 K-2 전차들은 참호선을 넘기 시작했고, 리
비아군 보병들은 이에 맞서 RPG-7을 발사하였다. 발사된 로켓탄
가운데 한 발은 안 대위가 탄 K-2 전차의 포탑 측면에 명중했지만,
결정적인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우리차가 맞은 겁니까?
"침착해라. RPG 따위는 그냥 무시해."
복합소재로 이루어진 본장갑 위에 빈틈없이 부착된 반응장갑들이
톡톡히 제 몫을 다했다. 보병의 입장에선 전차의 방어력 향상은 비
극이었다. 보병이 가뿐하게나마 휴대할 수 있는 최선의 직사식 대
전차화기는 HEAT 탄두를 이용하는 RPG-7이나 LAW뿐인데 이들
은 3세대급 이상 전차의 복합장갑은 물론 그 이하의 전차에 부착되
는 경우가 많은 반응장갑에도 무력하기 그지 없었다. 2차 대전 당
시 연합군의 바주카와 독일군의 판저 파우스트에 의한 전차 격파가
가능했던 것은 당시 기술상의 문제로 대부분의 전차들이 균질 압연
강판으로 이루어진 단일 장갑에만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와 같은 흐름이 낳은 피해는 1973년에 발발한 4차 중동전때 절
정에 이르렀는데 개전 초기 이집트군이 보병 휴대형 대전차 직사화
기인 RPG-7과 대전차 미사일 AT-3 새거를 앞세운 덕분에 이스라
엘군은 전차 전력이 그대로 녹아버리는 엄청난 피해를 입어야만 했
었다. 결국 이스라엘군은 전술을 바꾸고 미국으로부터 다량의 전차
를 급히 넘겨받아 전투에 투입하는 등 눈물겨운 고생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이를 계기로 세계 각국은 전차의 방어력 개선에 열을 올
렸고 70년대 후반에 독일 육군에 레오파드2가 배치된 것을 시작으
로 3세대 전차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보병이 전차를 잡기란 더욱 어
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보병 휴대를 전제로 한 신형 대전차 화기
들이 속속 등장하는 2000년대에도 전차의 보병에 대한 종합적 우세
는 변함이 없었다.
안 대위의 K-2는 경사진 지형을 넘어서면서 이내 엄청난 환영 인
사를 받았다. 곳곳에 매복한 채 숨어 있던 리비아군의 전차와 대전
차포가 불을 뿜은 것이다. 십 수발의 포탑이 날아들면서 그 중 두
발이 포탑과 차체 정면에 명중했지만, K-2의 본장갑을 뚫기엔 역부
족이었다.
-마, 맞았습니다!
"이 거리에선 무시해도 충분해. 여기는 무쏘1. 엄청난 수의 적과 조
우했다. 속히 지원바란다."
-지금 그리로 향하는 중입니다. 바로 합류하겠습니다.
"너무 늦지마. 내가 다 해치우기 전에."
곧 안 대위의 K-2는 포탑을 11시 방향으로 선회시킨 후 전차포를
쏘았다. 날아간 포탄에 직격당한 T-62는 포탑이 차체에서 떨어져나
갈 정도로 대폭발을 일으킨 후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당한 상태를
보아 생존자는 전무하리라… 안 대위는 첫 목표의 최후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차장용 조준기를 선회시켜 새로운 표적을 확인한 후
소리쳤다.
"2시 방향에 대전차포! 대탄 날려!"
-목표 확인!
그런 다음 포탄 장전이 끝나자 김국선 병장은 포수용 조종간에 붙
은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도 포신이 뒤로 밀려나면서 포탄이 발사
되었다. 탄심이 날카로운 APFSDS탄과 달리 뭉툭하게 생긴 HEAT
탄은 대전차포에 명중하기가 무섭게 폭발하면서 주위를 휩쓸어버렸
다. 잠시 후 중대의 다른 전차들이 교전 현장에 합류하기가 무섭게
일제히 포를 쏘았고 거기에 비례하듯 다량의 대전차포와 전차가 폭
발함과 동시에 고철로 변했다. 대전차 전력이 일시에 파괴된 지점
을 향해 십 수대의 보병 전투차가 쇄도해 들어갔다. 어떻게든 이를
막으려는 리비아군 보병들이 RPG-7을 쏘아댔지만, 압도적인 한국
군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는 사이 리비아군에게 진짜 재
앙이 들이닥쳤다. 한국군의 신예 보병 전투차 K-300들이 일제히 언
덕을 넘어서며 나타난 것이었다.
40mm 기관포탄들이 날아들자 리비아군 보병들은 참호에 몸을 숨
긴 채 화를 면하려고 했지만, 이들 기관포탄들의 대부분은 참호선
위에 이르자 그대로 폭발해 파편 세례를 선물했다. 단 한 차례의
일제 사격에 저지선 곳곳이 허물어지기 시작한 가운데 드디어 보병
들이 하차하기 시작하였다. 사막용 위장복 위에 적외선 방출 억제
용 그물까지 착용한 기계화 보병들이 쇄도하자 간신히 화를 면한
리비아군 몇몇이 총을 쏘려고 했지만, 랜드 워리어 장비로 치장한
한국군의 K-11 자동소총이 먼저 불을 뿜었다. 사방에 피와 뇌수를
흩날리며 쓰러지는 리비아군을 뒤로 하고 한국군 병사들이 교통호
안에다 수류탄을 던지기 시작하자 시체더미 속에서 죽은 척 하고
있던 병사들이 황급히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얼마 못가 온몸에
총알이 박힌 채 절명해버렸다.
"우, 우왓?"
마악 교통호에 뛰어내린 이균옥 이병은 바로 앞에서 앳되 보이는
리비아군 병사와 마주치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총을
겨누는 것은 잊지 않았다. SF 영화에서나 볼법한 미래형 소총을 든
한국군이 자신을 향해 다짜고짜 총구를 들이밀자 병사는 황급히 두
손을 든 채 서투른 영어로 말하였다.
"돈트 슛. 서렌더."(쏘지마. 항복할게.)
첫 실전에 포로를 잡게 된 이균옥은 교육받은 대로 지시하였다.
"앞으로 가."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참호 밖으로 걸어나갈 것을 지시하자
포로가 된 소년병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걷기 시작하였
다. 대충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올라간 소년병이 참호 밖으로 상반
신을 내미는 순간 총성과 함께 뒤로 나자빠졌다. 이 일병은 당황한
나머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그가 있는 참호
쪽으로 뛰어왔다. 소대의 선임 담당관인 박한구 상사였다.
"선임 당담관님이 쏘신 겁니까?"
"그래 내가 쐈다."
"이녀석은 제게 투항했습니다. 무기도 들지 않았단 말입니다!"
"실수는 인정하마. 하지만 전장에선 이같은 일은 불가피하다. 결코
고의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녀석 숨은 붙어 있냐?"
"예? 아, 예……."
"1소대 선임 당담관이다. 이균옥 일병의 현 위치로 의무병을 보내주
기 바란다."
자신의 랜드워리어 장비와 연동하는 헤드셋으로 의무병을 보내줄
것을 요청한 다음 박 상사는 탄창을 교환하면서 말하였다.
"너 총알이 날아 다니는 전장은 처음이지?"
"예."
"나도 마찬가지야."
"?"
의외의 대답에 이 일병이 황당해하는 사이 박 상사는 씨익 웃으며
교전이 한창인 지점을 향해 달려갔다.
"적의 외곽 방어선이 예상보다 빨리 허물어 졌습니다. 이번엔 이집
트군에 인계하지 않고 우리가 직접 처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안돼. 우리는 예정대로 외곽 방어선을 허물어 뜨렸으니 마르사 마
트루에 강습한 아군을 구원하러 가야한다. 아무리 적이 우리에게
제공권을 빼앗겼다지만, 보병이 전차를 막을 수는 없는 법이야."
조길준 소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지휘용 테이블 위에 펼쳐 놓은 이
집트 지도에서 마르사 마트루가 표시된 곳을 볼펜으로 가리켰다.
쓸데없이 예정에 두지 않은 목표에 매달려 본래 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규모가 확실하지 않은 적에게 등을 보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지. 57연대에다 1개 대대를 차출해서 이집트군이
도착할 때까지 시가지의 적 견제에 투입하라고 해."
"그 정도로는 안 됩니다."
"이 사람아. 누가 시가지를 탈환하자고 했나? 적이 기어나오지 못하
게 견제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조 소장은 그렇게 말한 후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졸음을 쫓기 위
해서였다.
-우리 대대가 차출됐단 말씀입니까?
"안 됐지만 그렇게 됐다."
-이런 곳에서 죽치기는 싫습니다.
"명령대로 해야지. 설마 큰일 나기라도 하겠어?"
안세준 대위는 그렇게 반문한 후 차장용 해치를 열고 나서 밖으로
상반신을 내밀었다. 이집트군에 의한 포격으로 화재가 발생한 시가
지를 바라보는 그의 눈엔 착잡함이 가득하였다. 이집트의 경제 사
정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지만 전쟁 이후 시작할 재건 사업을 고려
하면 그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번 전쟁은 이집트인들
에겐 국가적으로 수치스러운 일로 기억될 것이 뻔했다. 이스라엘이
야 그렇다 치더라도 리비아는 그들의 시각에선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단순한 서쪽 나라일 뿐이었는데 개전 초기에 리비아군이 벌인
완벽한 기습은 이집트인들을 화나게 만드는데 충분했던 것이다.
-중대장님, 이집트인들은 군 입대가 의무입니까?
"물론. 이집트는 20세 이상이면 누구나 군에 들어가야 하는 나라야.
우리랑 다를 것 없어. 현역만 따지면 그들의 총병력은 우리와 비슷
한 규모인 70만이다. 전시에 소집되는 예비군 규모를 따지면 우리
보다 약 두 배나 더 많아. 대륙에 그냥 붙어 있는 정도가 아니고
두 개 대륙의 연결점에 있는 나라의 숙명이야."
-그런 나라를 작디 작은 리비아가 초반에 이겼다는 건…….
"한마디로 예상 밖의 일이었다는 뜻이지."
안 대위가 거기 까지 말한 직후 사막 저편에서 일단의 이집트군이
나타났다. 선발대 자격으로 달려온 7사단 병력의 일부였다. 곧 위치
를 고수한 채 대기중이던 301전차대대는 임무를 인계한 후 본대에
합류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2010년 06월 20일. 일요일. 02시 20분. 이집트 마르사 마트루
9보병사단의 포격은 마르사 마트루 공군기지 곳곳에 낙하하고 있
었다. 강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항공기 격납고는 외관이 흉하게
변했고 그밖에 다른 건물들은 지붕이 무너져 내리는 등 심하게 파
괴당했다.
-아군 포병은 어디 있습니까?
"이 멍청아! 이런 곳에다 포를 갖다 놓으면 제대로 쏠 수 있을 것
같냐? 차라리 없는 게 나은 거야."
제이슨 리 소위는 그렇게 말하고는 전차병용 헬멧의 턱 끈을 단단
히 매었다. 맹렬한 포격이 사방을 휩쓰는 와중에도 그의 M-1A2는
용케 화를 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대로 계속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느님… 제발…….'
신앙심을 갖고 있지 않은 그였지만 이같은 상황에선 무언가에 매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의 간절한 바람을 신께서 들어주신 것일
까? 갑자기 포격이 그쳐버렸다.
-포격이 그쳤습니다.
"나도 알아. 각차 상황 보고하라. 이쪽은 이상무."
-2호차. 캐터필러 손상.
-3호차. 이상무.
-4호차. 이상무.
2호차의 캐터필러 손상 보고 때문인지 제이슨 리 소위는 얹짢은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망할. 다들 멀쩡해도 감지덕지인 판국에……."
리비아군의 포격이 그친 이후 시작된 피해 확인이 대충이나마 끝
날 무렵 경계에 임하고 있던 이집트군 1공수여단과 미육군 173공수
여단의 1개 대대 병력은 저 멀리서 나타나기 시작한 리비아군의 전
차를 확인하자 전투 준비에 나섰다.
"적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는 대로 공격하라."
사격 준비를 마친 대전차 미사일 사수들에게 그와 같은 지시가 떨
어진 가운데 차체를 숨긴 채 포탑만 드러낸 M-1A2 소대가 먼저
발포하기 시작하였다. 거기에 맞서 기계화 보병을 실은 장갑차들을
동반한 채 중대 단위로 산개해 전진해오던 리비아군의 T-62 전차
들도 115mm 활강포로 응사했지만, 사격통제장치의 고질적인 성능
부족 덕분에 단 한 발의 명중탄도 내지 못했다. 반면 M-1A2의 55
구경장 120mm 활강포에서 발사된 M-829A3 APFSDS탄은 문제없
이 T-62를 파괴해버렸다. 제이슨 리 소위는 차장용 전주 선회식 조
준기로 파괴당한 전차에서 불이 붙은 채로 탈출하는 리비아군 전차
병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일이 잘못되면
자신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포수를 맡은 숀 호레이스 병장은 상
기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놈들이 도망갑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
"너무 좋아하지마. 저녀석들의 목적은 우리랑 싸우는 게 아니라 정
찰이었을 거야.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소위는 잘 보이는 곳에 걸어놓은 애인의 사진으로
시선을 돌리며 마저 말하였다.
"언젠가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어."
소위가 생각한대로 리비아군이 보낸 부대는 정찰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들 부대가 피의 대가를 치른 덕에 파악한 정보는 벌써 9
사단장과 그의 참모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러니까 적은 전차도 갖고 있다는 뜻이로군……."
"쉽지 않은 상대입니다. 우리가 이긴다고 해도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더욱 이겨야 하는 거야."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와 이집트의 피해는 그렇다 치더라도 미군과 한국군은 대량의
인명 손실을 입게 되면 그들 나라의 여론은 흔들릴 수밖에 없어.
우리가 천명의 병사를 잃어도 저들로 하여금 100명을 한꺼번에 잃
게 하면 우리가 이기는 셈이지."
"하지만 작금의 상황에선 우리군은 한 명의 병사라도 최대한 보전
해야 합니다. 작전을 실행에 옮기더라도 인명 손실을 억제하는 방
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어차피 개전 초기에 수립된 전략은 무의미해진지 오래야. 이쪽이
죽을 게 뻔하다면 적을 붙잡고 같이 망하는 것이 남는 장사라고 생
각하지 않나?"
"그렇지만……."
"내 명령에 토달지 마라! 처음 계획한 대로 투입할 수 있는 전력을
모두 공군기지로 돌려. 놈들을 담숨에 박살내버리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무모하기 그지 없는 작전을 감행한다면 필연적으로 발생할 무시못
할 규모의 아군 희생자에 대해선 깨끗이 무시한 사단장의 태도에
참모장은 애가 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로서는 어찌할 방도
가 없었다. 제발 큰일만 나지 않기를…….
"망할 또 포격인가?"
"이녀석들이 그나마 참호를 잘 파뒀으니 망정이지."
또다시 포격이 날아들자 병사들은 투덜대며 유개 참호에 몸을 숨
기지 않을 수 없었다. 122mm, 152mm 포탄이 주로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공항 곳곳에선 폭음과 불빛이 번쩍였다. 머리 위에서 모래
가 후두둑 떨어지자 최영락 상사는 혀를 차며 말하였다.
"상황이 똑같다고 할 순 없지만, 일이 아주 잘 되면 여기도 파나마
의 파이틸라 공항 꼴이 될 것 같습니다."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었죠?"
"미해군 SEAL이 거기서 임무를 완수하는 대신 역대 최다의 전사
자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워낙에 운이 없는 바람에 그같은 일을
당했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기습에만 성공하면 잘 끝날 걸로 알았
는데……."
"그래도 우린 어떤 상황에서든지 억세게 운이 좋은 편이잖습니까?
적을 막아내고 아군을 기다리면 해결되겠죠."
"저도 그러기를 바랍니다만……."
최 상사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근거리에서 포탄이 떨어졌는
지 참호가 마구 흔들렸다. 최 상사는 잠시 예전 일을 떠올렸다. 그
가 특전사에 입대한 때는 10년 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흔치 않은
모험심 충만한 젊은이들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는 특전사 지원자
모집 홍보전단을 보고 망설임 없이 모병관에게 달려간 매우 특이한
경우였다. 부대의 성격상 실전 임무 수행자들을 전원 지원을 원칙
으로 충당하는 특전사 안에서 받은 훈련은 매우 힘들었지만, 그는
힘들어하기는커녕 오히려 재미를 느꼈었다.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
서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은 이해못할 그런 재미를 말이
다. 게다가 폭발물을 설치해 터뜨릴 때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흥
분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혈기 왕성한 20대를 지나 30대가 된
직후 결혼한 그에겐 한가지 고민이 있었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
의 미래였다. 그래서 그는 위험을 감수하고 이집트 파병에 자원했
었다. 이제 그의 목적은 무사히 귀국하는 것만이 전부였다. 물론 그
러기 위해선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함은 변함이 없었다.
2010년 06월 20일. 일요일. 02시 30분. 이집트 시디 하네이쉬
시디 하네이쉬 방면을 맡은 56보병사단은 순조롭게 시디 하네이쉬
외곽에 진입하고 있었다. 56사단은 이름만 보병사단이지 보유 장비
들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K-300 보병 전투차, 방어력 강화
개조를 받은 K-1A1으로 무장한 이 부대는 사실상 완편 기계화 보
병사단이나 다름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사단 단위로 운용하는 무
인정찰기는 진격 예정지에 대한 사전 정찰을 가능하게 해 위험 부
담을 그만큼 줄여주었다. 게다가 군단 직할 포병여단의 지원을 받
지 않고도 사단이 보유한 개량형 K-55 자주포와 임시로 배속된 구
룡 다연장 로켓포는 목표로 삼은 지역을 충분히 초토화 시키고도
남을 화력을 자랑하였다.
"시청자 여러분, 이 차량의 대군이 보이십니까? 정말 대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몸을 실은 장갑차를 비롯해 수 백대의 각종 전
투 차량들은 현재 시디 하네이쉬를 향해 진격해 들어가고 있으며,
하늘에는 십 수대의 아파치 공격헬기가 날고 있습니다. 제 입장에
선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방탄 헬멧에 방탄 조끼를 착용한 방송국 리포터가 상기된 목소리
로 카메라에 시선을 고정한 채 손가락으로 전차와 장갑차들을 가리
키는 가운데 이석훈 기자는 PDA와 연결된 디지털 카메라로 차량
대열을 찍고 있었다. 바로 그때 맞은편에서 달리고 있는 장갑차의
해치가 열리면서 차장이 상반신을 내밀고는 주위를 돌아보다가 카
메라를 들고 있는 석훈을 발견한 듯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었다.
자신을 찍어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이 기자는 흔쾌히 그를 카메라
에 담았다. 헬멧을 쓰고 있는데다 모래 바람을 막기 위해 안면을
두건으로 가린 탓에 이 기자는 그가 기뻐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
었다. 바로 그때 기갑부대와 행동을 함께 하던 롱보우 아파치의 왼
쪽 주익 하단에서 불꽃이 번쩍였다.
"헬파이어 미사일을 쏘는군요."
군사분야에 비교적 정통하다고 자타가 공인한 조선일보의 유용준
기자가 그렇게 말하면서 카메라를 들었다.
"직접 보기는 처음 입니까?"
"전부터 있었던 실탄 사격 훈련을 빠짐없이 취재해서 많이 보기는
했습니다만, 실전장에서 쏘는 순간을 보기는 저로선 처음입니다. 좋
은 구경을 한 셈이죠."
그렇게 답하고는 조선일보 기자는 렌즈를 아파치로 향하게 한 상
태에서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두 번째로 발사되는 헬파이
어의 모습을 하나하나 담기 위해서였다. 발사된 헬파이어들은 숱한
포격에도 불구하고 용케 살아남은 리비아군 전차를 한 대씩 날려버
렸다. 어느 T-72의 포탑 정면에 직격한 헬파이어는 본장갑을 그대
로 뚫고 들어가 내부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린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기라도 하는 듯 폭발하면서 생긴 메탈제트가 포탑 후면까지 뚫고
나가 바로 뒤에 서 있던 BMP-2의 차체 정면에 보기좋게 명중해버
렸다. 아니나 다를까? 방어력이 빈약하기로 악명높은 이 러시아제
보병 전투차에겐 그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다 줬다. 차체가 폭
발한 것이다. 안에 타고 있던 승무원들이 온 몸에 불이 붙은 채 비
명을 지르며 탈출하는 것을 목격한 적지 않은 병사들이 공황 상태
에 빠져 도망치려고 하자 장교 한 명이 그들을 향해 권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자기 위치를 지켜라. 도망치는 녀석은 절대로 살려두지 않겠다!"
바로 그때 로켓탄 세례가 날아들면서 장교와 병사들을 날려버렸
다. 일방적인 포격에 의해 엉망이 되어버린데다 롱보우 아파치에
의해 진지 곳곳이 휩쓸린 리비아군은 저항은커녕 총 한 방 제대로
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도저를 단 K-1A1들이 끊어진
철조망을 마저 밀어버리는 것을 시작으로 전투 차량들은 주 방어선
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그때 석훈을 비롯한 기자들을
향해 공보 담당 장교가 소리쳤다.
"기자님들, 방독면을 착용하십시오."
그러자 무언가 눈치챈 듯 유용준 기자가 먼저 허리춤에 차고 있는
방독면 케이스에서 방독면을 꺼내어 착용하였다. 그러고 나서 석훈
의 어깨를 두드리며 소리쳤다.
"이 기자, 저 양반이 시키는대로 얼른 서두르세요. 나중에 고생하지
말고."
"그나저나 왜 방독면을 착용하라는 겁니까? 설마 화학무기를 사용
하는 건?"
"곧 알게 될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유 기자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얼마 후
K-1A1 전차들은 일제히 연막탄을 터뜨렸고 그 연기는 사방을 뒤덮
었다. 이걸로도 모자른지 K-200 기본형에서 파생된 연막살포차가
쉴 새 없이 연막을 살포했고, 그것은 각종 센서가 부족한 리비아군
의 시야를 완전히 가리는데 일조하였다. 그러던 중 K-300 몇 대가
차체 양옆에 임시로 설치한 파이프의 구멍을 통해 무언가를 배출하
기 시작하였다.
"저건 대체 뭡니까?"
"최루가스입니다. 원래는 폭동진압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죠."
"화학전을 벌인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측의 최루가스 살포는 리비아의 화학탄두 사용과 비교하면 약
과입니다."
"그렇지만……."
"복잡한 얘기는 나중에. 자 모두 내리시죠. 여기서부턴 제가 직접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공보 장교가 그렇게 말하면서 장갑차에서 내리자 기자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물론 석훈도 거기에 끼어 있었다.
"지시 받은 대로 움직여. 정해진 간격을 유지해! 너무 떨어져서도
안돼! 이 멍청아, 그렇게 서 있으면 어떡해? 이건 훈련이 아니야!"
방탄 조끼는 물론 신체 중요 부위를 보호하기 위한 각종 방어구를
착용한 56사단 소속 병사들의 한 명인 김태욱은 분대장으로서 후임
들을 이끌며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달리는 장갑차 안에서 농
담까지 주고 받던 그들이었지만, 막상 여기저기서 총성이 울리는
전장에 서게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바짝 긴장했다. 태욱은 자신이
착용한 다기능 고글에 비틀거리며 움직이는 물체가 포착되자 침착
하게 총을 겨누며 영어로 소리쳤다.
"유 갓 더 웨폰!"(네 무기를 버려라.)
굳이 아랍어를 쓸 필요는 없다는 판단하에 그 말을 내뱉은 김 병
장은 상대가 최루가스 때문에 토악질을 하면서도 정신을 잃지 않은
듯 무기를 버리고 두 손을 든 채 엎드리자 안도하면서 다가가 무기
를 옆으로 치웠다.
"맙소사!"
이 기자 일행은 뜻하지 않은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잘 위장된 유
개 참호에 숨은 리비아군이 기관총으로 저항하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은 같이 다니던 전투병들과 참호에 몸을 숨기는 수밖
에 없었다.
"저들이 대부분 쉽게 무너질 거라는 얘기와는 정반대 아닙니까?"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전장에선 예기치 않은 상황이 종종 일어
나는 법입니다. 우리가 지급한 권총을 잘 갖고 계세요. 일이 잘못되
면 그걸로 리비아군을 쏴야 합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제 신분은 재소집된 예비역이까요. 형식적
으로 주어진 임무는 국방부 소속 종군기자라는 것도."
그렇게 대꾸하면서 석훈은 권총집에서 K-5 권총을 꺼내어 안전장
치를 풀었다. 탄창은 이미 끼워뒀고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이 나갈
것이다. 얼마 후 중화기 운용을 맡은 병사가 K-202 4연장 소이탄
발사기를 어깨에 견착시킨 후 유개 참호를 향해 발사하였다. 정확
히 명중시킬 필요는 없었다. 그 근처에 맞추면 그만이었다. 곧 참호
와 그 근처는 불바다가 되었고 안에 숨어서 총을 쏘던 리비아군은
타죽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 때문이었을까? 저항 의지를 완전히 잃
은 리비아군이 손을 머리에 들고 일어서서 소리쳤다.
"한국인들, 쏘지마라. 항복하겠다."
"움직이지마라. 허튼 짓 하면 경고 없이 쏘겠다."
이 기자 일행은 안도하면서 지급 받은 권총을 도로 집어넣은 후
소지한 카메라로 투항하기 시작한 리비아 군인들을 찍었다. 바로
그때 한국군에 임시로 배속된 이집트군의 AIFV 장갑차가 달려오더
니 멈추어 섰다. 곧 거기서 내린 이집트군 장교가 전과 확인을 위
해 마악 도착한 134대대의 지휘관 최지성 중령과 통역을 대동한 상
태에서 대화를 나누었고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최 중령이
손가락으로 포로들을 가리키자 이집트군 장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 장교는 일단의 부하들을 데리고 포로들 앞에 선 다음 이 기
자 일행 입장에선 알아들을 수 없는 아랍어로 포로들에게 말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그때 공보담당 장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렸
다. 무언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신호였다.
"기자님들, 이제 그만 갑시다. 우린 여기에 더 이상 여기에 있을 필
요가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됩니다."
"무슨 뜻입니까?"
"말로 설명하기엔 좀 곤란한 일입니다. 자 어서 장갑차에 도로 탑시
다."
이상하게 돌아가는 분위기에 무언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면서도 하
는 수 없이 장교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석훈을 포함한 기자들
이 장갑차에 마악 오르는 것과 때를 같이 해 이집트군 장교는 포로
들을 상대로 본론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너희들 중에서 광신적 외국인 자원병들은 포로로 대우하지 않고
이곳에서 바로 즉결하겠다. 너희들을 살아서 돌아가게 만들면 우리
이집트는 물론이고 선량한 절대 다수의 무슬림들을 곤란하게 만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한 후 장교는 권총을 뽑으며 소리쳤다.
"쏴라!"
몇몇 포로들이 도망치려는 몸짓을 취하는 것과 동시에 십 수개의
총구가 불을 뿜기 시작하였다. 총알이 포로들의 몸에 박히면서 피
와 살점이 사방에 흩날렸다.
"이만하면 됐다. 덮어라."
곧 도저를 단 AIFV 장갑차에 의해 모래가 끼얹어지는 것으로 시
신 매장은 즉석에서 끝났다. 누군가가 공을 들여 수색을 하지 않는
한 그들이 발견될 일은 없으리라…….
"네녀석들한텐 순교자 칭호는 사치야."
2010년 06월 20일. 일요일. 03시 00분. 마르사 마트루
사방에서 총성과 포성이 묘한 불협화음을 이루며 울리는 가운데
M-1A2의 포탑이 선회하기 시작하였다. 얼마 후 포구에서 불빛이
번쩍였고 목표가 된 T-72는 포탑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박살나버렸
다. 이를 확인한 숀 호레이스 소위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소
리쳤다.
"다들 잘했어! 이리로 오는 놈들을 계속 때려잡자."
-소대장님, 각차에 남은 포탄이 이제 20발 미만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해. 반드시 한 발씩만 쏴서 적 전차를 잡는 거야.
장갑차는 신경 꺼라. 우리가 노려야 할 건 오로지 전차다!"
그렇게 말하면서 리 소위는 차장용 전주 선회식 조준기를 움직여
공항을 향해 접근해오는 또다른 전차를 포착한 후 소리쳤다.
"10시 방향에 T-62!"
곧 포탑이 선회한 후 방금전에 그랬던 것처럼 120mm 55구경장
활강포가 불을 뿜었다. 발사된 포탄에 직격당한 T-62는 엄청난 폭
발을 일으키며 불타올랐다. 바로 그때 무전기를 통해 다급한 목소
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A중대, 적 전차가 측면으로 돌아서 공격해오고 있다! 지원
바란다!
"제기랄, 저것들은 미끼였어! 어서 서둘러!"
제이슨 리 소위의 전차 소대는 캐터필러가 파손된 2호차를 남겨둔
채 급히 A중대가 담당한 지역으로 향하였다.
"또 온다!"
보병의 돌격에 맞서 M-240 기관총의 단축형과 25mm 고속 유탄
기관포가 동시에 불을 뿜기 시작하였다. 리비아군의 이번 공격은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뛰어난 자질을 갖춘 병사들과 장비를 보유한
독일군에 대해 구 소련이 택한 방법을 연상시키듯 희생을 아랑곳하
지 않았다. A중대가 보유한 대전차 미사일은 진작에 소모되었는데
대부분 T-55나, T-62로서 현 시점의 전차전에선 큰 가치가 없는
무기였다. 그럼에도 이들이 투입된 것은 173여단 소속 A중대를 비
롯한 보병 부대들이 보유한 대전차 미사일을 허비하게 만들기 위해
서였다. 얼마 후 주공에 해당하는 부대에 배속된 T-80UM들이 그
간의 사전 공격으로 위치가 파악된 진지들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하
였다. 당연히 A중대 쪽에서도 이를 확인하고는 급히 대응에 나섰
다.
"아직 쏘지마! 최대한 끌어들여."
A중대원들은 그 거체를 드러내며 계속 접근해오는 전차들을 숨죽
이며 바라보았다. 얼마 후 최선두에 선 전차 서너대가 보병들이 휴
대한 AT-4 대전차 로켓의 최대 유효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참
호 곳곳에서 이를 발사하였다. 거의 도박에 가까운 행동인지라 병
사들은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리고 리비아군 전차병들도 큰 위
협을 느끼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로켓탄 서너발을 동시에 맞았
는데도 불구하고 T-80UM은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움직였다.
"괴, 괴물이다!"
곧 T-80UM은 포탑을 선회시킨 후 로켓탄이 발사된 지점을 향해
포를 쏘았고, 수 명의 병사들이 포탄의 폭발에 휘말려 산산이 조각
나 날아가버렸다.
"이녀석 아주 굉장한 걸.
2010년 06월 19일. 토요일. 23시 55분. 이집트 알 마흐디야
"제길! 이거 너무 이른 거 아니야?"
"별 수 있겠습니까? 그 잘난 윗분들이 워낙 조급하시니……."
"요놈들아. 그나마 밤에만 싸우게 됐으니 천만 중 다행인줄 알아.
온대성 기후의 한반도에서 배를 타고온 우리들한텐 추운 밤이 싸우
기 좋은 시간이야."
최신예 K-300 보병 전투차의 병력 탑승실에 몸을 싣고 있는 남와
룡 병장과 그의 후임들은 하나같이 바짝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출
동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간 숱한 훈련을 받았건만 사막은
도무지 정을 붙이기 힘든 곳이었다. 황량하기 이를데 없는 모래의
평원이 주는 삭막함, 인간에겐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모래바람과
뜨거운 태양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
라면 해가 지고 밤이 되면 하늘을 수 놓는 별이었다. 이젠 도시의
찬란함에 익숙할 수밖에 없는 한국군 병사들에게 인공의 불빛과 시
야를 가리는 자연의 장애물이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모래의
대지 위에서 바라보는 별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특히 남 병장에
게 있어 그것은 매우 특별했다.
"남 병장님,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유독 밤 하늘을 많이 올
려다보셨는데 왜 그러셨습니까?"
"내 어릴적 꿈하고 관련이 있어."
"꿈이라구요?"
"그래. 꿈."
그렇게 답하고는 남 병장은 잠시 향수에 빠진 표정을 짓자 모두의
궁금증은 더욱 커지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그때 차내 인터컴을
통해 차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모두들 준비됐냐? 이제 곧 출발한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 병장 일행이 몸을 실은 K-300은 무
한 궤도로 바닥을 긁으며 전진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가운데 그들
뒤로는 수많은 섬광이 여기저기서 번쩍이고 있었다. 한반 중의 고
요함을 깨뜨리고도 남을 폭음과 함께…….
"이대로라면 우리의 승리야."
7군단에 배속된 6포병여단 예하 71포병대대의 지휘관 곽창석 중령
은 자신이 몸을 실은 K-77 지휘차 안에서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전
장정보를 확인하고는 그렇게 말했다. 간격을 둔 채 배치된 K-9 자
주포들은 이미 확인된 리비아군의 머리 위에 포탄을 사정없이 계속
날리는 중이었다. 곧 K-9 자주포들은 사격을 일시 중지한 후 2차
사격 진지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K-9 말고도 MLRS, 구룡 다연
장 로켓포도 여기에 가세하였다.
2010년 06월 20일. 일요일. 00시 15분. 이집트 카푸르 무함마드 아
부 루메이라 남쪽 15Km
"우리 포병대는 대체 뭘 하고 있나?"
"적의 첫 포격으로 대부분 제압 당했습니다."
"망할!"
유개 참호 안에 마련된 지휘소에서 리비아군 야전 지휘관은 탁자
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치를 떨었다. 리비아군 포병대의 머리 위에
떨어지는 포탄들은 내장된 지능형 자탄을 투발했고 자탄들은 내장
된 센서로 표적을 추적해 돌입하였다. 견인포가 박살 나면서 그 주
위에 있던 탄약이 유폭을 일으켰고, 거기에 휩쓸린 포병대원들은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폭사당했다. 진지 곳곳에 가해지는 압도적
인 포격은 병사들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실전 경험이 풍
부한 병사와 지휘관들이 본토로 이동한 덕분에 그 자리에 남은 2선
급 병력의 대응은 불충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급기야 병사 몇
몇이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도주하려 했고 이를 목격한 지휘관은
권총을 꺼내어 그들을 즉결해버렸다.
"이제 어떡하면 좋죠?"
"큰일만 나지 않기를 빌어야지."
포격이 거의 끝난 가운데 위기를 모면한 병사들은 하나같이 덜덜
떨며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드디어 7군단의 선두인
12기계화사단 예하 45기계화 보병연대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공격하라!"
열영상 센서로 한국군의 접근을 확인한 중화기 진지의 장교가 명
령을 내리자 대전차 미사일 사수들이 코넷-E 대전차 미사일을 발
사하였다. 레이저에 의해 유도되는 이 미사일은 한국군의 주력 전
투차량들을 충분히 파괴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수량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 때문인지 명령을 내린 장교는 날아가는 미사
일의 후부에서 내는 희미한 불꽃을 바라보면서 불안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레이저 경보! 기만시키면서 회피 기동이다."
-알겠습니다.
자신의 디스플레이에 레이저 조준 경보를 의미하는 빨간 사이렌
기호가 나타나면서 경보음이 울리자 차장은 그렇게 지시하고는 전
주 선회식 조준기로 대전차 미사일 발사 추정 지점들을 살핀 후 포
수에게 지시하였다.
"1시, 2시 방향에 참호다. 공격하라."
-목표 확인.
곧 K-300 장갑차는 포탑을 선회시킨 후 주무장인 40mm 기관포를
쏘기 시작하였다. 자신들을 향해 기관포탄이 날아들자 리비아군은
참호에 몸을 깊숙이 숨긴 채 화를 면하려 했지만 K-300이 발사한
기관포탄들은 발사전에 입력 받은 거리에 이르자 허공에서 폭발해
버렸다. 그로 인해 발생한 파편을 그대로 뒤집어쓴 참호선 안의 리
비아 보병들은 즉사하거나 아니면 중경상을 입고는 바닥에 널부러
져 비명을 질러댔다. 간신히 발사된 코넷 미사일들은 K-1A1 개량
형과 K-300이 탑재한 기만기와 요격체에 의해 모래 바닥에 처박히
거나 파괴당해버렸다.
"온다!"
"최대한 끌여들여서 쏴라!"
철저하게 위장된 참호에 거치된 B-11 무반동포는 K-300 한 대가
참호선에 근접해오자 불을 뿜었다. 포탄은 차체 정면에 명중했고
사수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지만, 곧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
다. 직사를 맞은 K-300이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움직이면서 그들
을 향해 포탑을 선회한 것이다. 곧 40mm 기관포가 불을 뿜었고 그
들은 무반동포 진지와 함께 산산조각나버렸다. 이 광경을 목격한
리비아군 장교들은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부에선 그들
이 주로 사용할 직사형 대전차 화기로 한국군의 K-300만은 확실히
격파할 수 있다고 누누이 강조했기 때문이었다.
"바보들! 이녀석이 기본형인 줄로 아나?"
남 병장 일행이 몸을 싣고 있는 3호차의 차장인 고관석 하사는 리
비아군을 비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집트에 파병된 K-300은 모두
외장형 증가장갑을 부착했는데 그 성능은 RPG-7과 무반동포를 충
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제발 죽어라!"
리비아군 한 명이 그렇게 소리치며 3호차를 향해 RPG-7을 겨누려
는 찰나 마악 하차한 남와룡 병장이 K-11 자동소총의 방아쇠를 당
겼다. 미군의 OICW와 유사한 이 총에서 발사된 5.56mm 소총탄은
리비아군의 가슴과 복부에 박혔고 총에 맞은 군인은 비틀거리면서
쓰러지기 직전 RPG-7의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조준을 상실한
로켓탄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갈 뿐이었다.
"모두 움직여! 여기서부턴 우리 힘만으로 싸워야 한다!"
그의 지시에 발 맞추어 분대원들은 아군 전투차량들의 공격을 받
아 큰 타격을 입은 리비아군 참호에 돌입하였다. 거의 허물어져 버
린 철조망을 넘어 교통호에 뛰어든 남 병장은 단안식 야시경으로
살아 움직이는 물체를 확인할 때마다 총알을 날렸다. 그와 그의 후
임들이 쏘아대는 총알에 맞아 쓰러지는 리비아군 몇몇이 완전히 죽
지 않은 듯 비명을 질러댔지만, 아무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다. 곧
견고하게 구축된 유개 참호가 눈에 들어오자 남 병장은 망설임 없
이 K-11에 부착된 레이저 조준기로 거리 측정을 한 후 유탄 발사
기의 방아쇠를 당겼다. 공중 폭발식 20mm 유탄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 참호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갔고 곧 폭음과 함께 비명이
울렸다.
"엄호해!"
남 병장은 신속하게 자신이 유탄 공격을 가한 참호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살폈다. 대부분 파편에 맞아 즉사한 와중에 겨우 목숨을 건
진 한 명이 신음했지만, 그는 이를 애써 외면하였다. 곧 밖으로 나
온 남 병장은 무전기로 상황을 보고하였다.
"여기는 3분대. 소대장님, 적 참호를 제압하고 적병 다수를 사살했
습니다. 다음 위치로 이동하겠습니다."
-수고했다. 다음 위치에서 보자.
곧 장갑차에 도로 탑승한 남 병장 일행은 다음 목표를 찾아 이동
하기 시작하였다.
2010년 06월 20일. 일요일. 00시 50분. 이집트 카푸르 무함마드 아
부 루메이라
카푸르 무함마드 아부 루메이라의 탈환 임무를 맡은 5기갑여단은
시가지에 접근하면서 점점 강한 저항에 부딪치고 있었다. 적재적소
에 배치된 대전차 미사일과 대전차포, 전차는 큰 위협이었다.
"약은 놈들 같으니! 사방이 대전차호 천지다!"
무하마드 도싸리 소위는 그렇게 소리치면서 인터컴으로 포수에게
자신이 발견한 목표의 대략전인 위치를 알렸다.
"10시 방향에 대전차포."
-목표확인!
-장전 끝!
"발사!"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44구경장 120mm 활강포가 불을
뿜었다. 포탄은 목표물 바로 근처에 떨어져 폭발했고 대전차포 운
용을 맡은 병사 십 수명을 불귀의 객으로 만들어버렸다. 방호력이
떨어지는 목표의 제압엔 HEAT탄이 제격이었다.
"이때다! 쏴라!"
알리 나메크 소위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T-55의 주무장인
100mm 전차포로부터 파생된 100mm 대전차포가 불을 뿜었다. 대전
차 미사일이 극도로 발달한 현 시점에서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된
대전차포를 사용하고 있는 나메크 소위와 그의 부하들은 진형을 갖
추고 공격해 들어오는 이집트군의 공격을 자신들의 힘으론 결코 막
아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간의 전투로 부상을 입은 전우 다수가 아직도 본국으로
후송되지 못한 채 시가지에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데다 21세기라
지만 화학무기 공격을 받은 덕분에 분노가 극에 달했을 이집트군이
자비를 베풀지 확신할 수 없는 만큼 항복은 무리였다. 탄피가 튀어
나온 직후 재빨리 새 포탄을 장전하는 가운데 병사 한 명이 그에게
물음을 던졌다.
"소대장님, 아군 전차들은 다 어디 갔습니까?"
"듣고서 웃지마라. 1개 중대만 이곳에 남았다."
그의 대답에 물음을 던진 병사를 비롯 대전차포 조작을 맡고 있는
모두의 표정이 일순간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싸움에 전념하였다. 어차피 그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시
한 번 포가 불을 뿜었고, 직격을 맞은 AIFV 한 대가 대폭발을 일
으키며 주저앉았다. 바로 그순간 누군가가 소리쳤다.
"측면이 무너진다!"
그말대로 우면을 맡고 있던 아군 1개 중대가 보병을 동반한 채 공
격해 들어오는 이집트군 전차와 장갑차들을 막아내지 못하고 허물
어지고 있었다. 모두들 당황해하는 가운데 나메크 소위는 부하들에
게 소리쳤다.
"다들 도망쳐라! 내가 여기 남겠다."
"소대장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멍청한 자식들. 내가 하라는 대로 해."
부하들은 그의 지시에 머뭇거리면서도 곧 시가지로 도망쳤다. 곧
소위는 포탄이 장전된 대전차포를 발사할 채비를 갖추면서 낮은 목
소리로 말하였다.
"너희들은 꼭 살아라……."
곧 나메크 소위가 맡은 대전차포가 불을 뿜었다. 그와 동시에 이
집트군의 전차 두 대가 그가 있는 곳을 향해 포탄을 쏘았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동시에 날아든 전차포탄 두 발은 각각 대
전차포와 그 부근에 명중했고 이내 엄청난 폭발과 함께 나메크 소
위는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이집트군의 전투 차량
들은 파괴된 대전차포를 깔아뭉게며 2차선 도로를 따라 시가지로
진입하기 시작하였다.
"그놈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아마 철수했을 겁니다. 그렇게 귀중한 물건을 이런데서 소모시키
고 싶진 않을테니까요.
"방심하면 안돼. 일이 꼬이면 우린 저세상으로 직행이야."
도싸리 소위는 그렇게 말한 후 포탑 밖으로 상반신을 내밀었다.
바로 그때 그가 차장을 맡은 M-1A1은 리비아군과 마주치고 말았
다. 다들 당황해하는 가운데 도싸리 소위는 침착하게 M-2 중기관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전방에 적이다! 한 방 먹여라!"
곧 120mm 포가 불을 뿜었고 HEAT탄에 직격당한 BTR-60은 기
관총탑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폭발하며 불타올랐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중기관총과 전차포 옆에 달린 7.62mm 공축 기관총이 불을 뿜
자 십 수명의 리비아군이 피를 흘리며 나자빠졌다. 모든 것이 순식
간이었다. 얼마 후 전차포탑의 차장용 큐폴라 주위에 총알이 부딪
히는 듯 깡깡거리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자 도싸리 소위는 외부
관측을 포기하고 포탑 안으로 몸을 숨겼다. 물론 해치를 잠그는 것
도 잊지 않았다.
"여기는 1소대. 적 보병의 저항에 부딪혔다. 보병 지원을 요청한다."
-현재 그리로 1개 중대가 가고 있다. 곧 도착할 예정이니 위치를
고수하라.
"알았다."
곧 도저를 부착한 AIFV 1개 소대가 도로 위에 잔뜩 쌓인 장애물
을 닥치는대로 밀어버리면서 진격해 들어와 도싸리 소위의 1소대에
합류했다. 곧 AIFV의 후부 병력 출입문이 내려지면서 거기에 타고
있는 기계화보병들이 뛰어내렸다.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전차 진
격에 앞서 건물을 제압하고 의심스러운 지역을 사전에 조사하는 것
이었다. 곧 건물에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간 보병들은 사주를 경계하
면서 복도에 들어섰고 거기서 리비아군 기관총좌와 맞딱뜨렸다. 연
이은 총성과 함께 수 명이 쓰러졌고 나머진 엄폐물 뒤로 몸을 숨겼
다.
"크아악!"
"조금만 참아."
"유탄, 유탄을 쏴!"
"지금 하려는 참입니다!"
유탄 발사기를 맡은 사수는 자신의 AK-74 총신 아래에 부착된
BG-15 유탄 발사기로 30mm 유탄을 발사하였다. 허공을 가르며 날
아간 유탄은 기관총좌를 날려버렸고, 그 직후 신음 소리가 울렸다.
"부상자들부터 빨리 데리고 나가."
부상자들이 급히 실려나가는 동안 보병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파
괴와 살육이 이제는 익숙한 모양인 듯 목숨을 담보로 한 싸움을 다
시 시작하였다.
"보병이 건물 제압에 성공했다. 이대로 계속 전진."
곧 도싸리 소위의 M-1A1을 선두로 1소대의 전차들은 천천히 앞
으로 나아가면서 엄폐물로 쓰이기 적당한 건물들을 향해 전차포 직
사를 날렸다. 건물들이 무너져 내리며 일으키는 먼지 구름을 헤치
고 마악 앞으로 나아가던 그의 소대가 교차로에 진입하는 순간 일
이 터지고 말았다. 교묘히 위장한 채 매복중이던 T-80UM 한 대가
포를 쏜 것이다. 포탄은 도싸리 소위가 탑승한 전차 바로 옆에 있
던 아메즈 아부 상사가 차장을 맡은 M-1A1의 포탑 측면에 명중하
였다. 소위의 눈은 그대로 뒤집혀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냉정하게 상황에 대처하였다.
"교차로에 진입한 다음 오른쪽으로 돌아! 정면에서 승부다!"
-말도 안 됩니다. 그런…….
"내가 하라는 대로 해!"
-알겠습니다.
곧 조종수는 차체를 교차로에 진입시켰고 그와 동시에 포탑도 선
회하였다.
'제길 우리 소대장이 미친 거 아냐?'
처음엔 이집트군 전차들이 교차로 진입을 포기할 것으로 생각했던
T-80UM의 승무원들은 M-1A1 한 대가 느닷없이 교차로에 진입하
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동 장전 장치가 포탄 장전을 마악
끝내려는 순간 M-1A1의 120mm 전차포가 불을 뿜었다. 3세대급
이상의 전차를 공격하기엔 파괴력이 충분하지 않은 HEAT였지만
거리가 무척 가까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무시할 수 없었다. 곧
HEAT는 정확히 포탑 정면에 꽂혔고 불빛이 번쩍이며 폭음이 울렸
다.
-잡은 겁니까?
"아직 아니야! 한 방 더 먹이자!"
도싸리 소위가 그렇게 추가 공격을 지시한 가운데 T-80UM의 승
무원들은 뜻하지 않은 문제에 부딪혔다. 잘 작동하기만 하던 자동
장전장치가 느닷없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하는 수 없이 포수가
포탄을 직접 장전함과 동시에 조종수는 차체를 후진시켰다. 자리를
뜨기 위해서였다. 곧 포탄 장전을 끝낸 포수가 포를 발사하려는 찰
나 M-1A1의 120mm 전차포가 다시 불을 뿜었다. 이번엔 APFSDS
탄이었다. 죽음의 화살이라고도 불리는 이 포탄은 정확히 포탑 정
면에 명중함과 동시에 종잇장 뚫어버리듯 관통하였다. 포탄은 내부
의 승무원들을 살상함과 동시에 폭발하였고, 내부의 125mm 포탄이
그대로 유폭해버려 포탑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완파해버렸다.
-잡았다!
-소대장님, 우리가 해냈습니다.
"아직 좋아할 때가 아니야. 여기는 1호차, 3호차 응답하라."
-여기는 3호차. 말씀하십시오.
"2호차에서 탈출한 승무원이 있나?"
-한 명도 없습니다. 다 죽은 모양입니다.
"알았다."
곧 교신을 끝낸 도싸리 소위는 실의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2010년 06월 20일. 일요일. 01시 30분. 이집트 마르사 마트루
마르사 마트루 기지에서 경비 임무를 맡고 있는 리비아군 병사들
은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급박한 상황에 관해선 전혀 모르고 있었
다. 설령 알았다고 해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지도 몰랐
다. 그들의 일과는 지극히 단조로웠다. 점령한 기지 시설물들을 관
리하고 지키기만 하는 일은 전선에서 싸우다 죽을 걱정을 하지 않
아도 되니 말이다. 그런 병사들 중 한 명인 자베르 카탑 상병은 자
신의 초소에서 조용히 편지를 읽고 있었다. 본국에 있는 가족들이
전하는 소식은 하나같이 좋지 않은 것들 뿐이었다. 요즘 들어 미군
의 공습이 뜸해졌지만, 파괴된 시설이 아직도 복구되지 않아서 생
활이 불편하다는 내용으로 시작되는 편지의 끝 부분엔 이전에 이집
트 공군이 가한 무차별적인 폭격이 다른 도시에도 가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적혀있었다. 한숨을 쉰 그가 편지를 주머니에 넣는 가
운데 밖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후임이 말하였다.
"병장님, 곧 교대해야죠."
"알았어. 금방 나갈테니까. 기다려."
"그러고보니 편지에 뭐 좋은 내용이라도 적혀 있습니까?"
"거기서 거기야. 이런 시국에 좋은 소식이 오겠냐?"
"하긴. 지금 상……."
바로 그 순간 카탑 병장의 후임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머리
한쪽이 날아가면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방금 전까지 살아 있었던
후임이 머리에 쓰고 있던 방탄 헬멧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뜨인 그가 비상용 무전기로 이를 알리려는 찰
나 누군가가 와이어로 그의 목을 졸랐다. 순식간에 카탑 병장의 몸
은 축 늘어졌고, 그를 불귀의 객으로 만든 특전사 대원이 수신호를
보내자 숨어 있던 다른 대원들이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들통나지 않았을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알렸다고 해도 지금 당장 저치
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최영락 상사는 소대장에게 그렇게 말한 후 철조망 너머에 자리한
기지로 시선을 옮겼다.
"정지!"
차량 출입문 경비를 맡은 경비병의 제지에 마악 진입해오던 트럭
은 그대로 멈춰섰다.
"용건이 어떻게 되십니까?"
"정기적인 물자 수송이다. 여기 서류도 있으니 의심스러우면 확인해
도 좋다."
트럭 운전석 옆자리에 앉은 장교가 그렇게 말하면서 서류를 내밀
자 경비병은 이를 확인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다른 경비병이
무언가 낌새를 눈치챈 듯 매고 있던 총을 쏘려고 들자 장교로 변장
하고 있던 이집트군 코만도 소대 지휘관이 숨겨둔 기관단총을 뽑으
며 소리쳤다.
"들켰다! 밀어버려!"
그와 동시에 엄청난 총성이 연이어 울렸고 경비병들은 저항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전멸해버렸다. 그와 동시에 기지 한 곳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일단의 차량들이 나타났다. 사무드 알리 대위를 비롯한
777과 미육군의 그린베레 대원들이었다.
"멈추지 말고 계속 달려!"
알리 대위는 그렇게 말한 후 자신이 맡은 M-2 중기관총을 난사해
댔다. 덤비에 몸을 싣고 있는 그린베레 대원들은 Mk-19와 비교해
매우 향상된 성능을 지닌 스트라이커 유탄 발사기와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로 리비아군을 공격했다. 기지에 난입한 그들을 저지하기 위
해 장갑차 서너대가 출동했지만, 곧 대전차 미사일을 피하느라 제
대로 대처하지 못하게 됐다. 유탄 발사기를 맡고 있는 그린베레 대
원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장갑차들을 향해 총구를 겨눈 후
방아쇠를 당겼다. 연이은 유탄 세례에 바퀴가 터지는 등 갖은 손상
을 입은 장갑차가 주저앉은 직후 그 안에 타고 있던 승무원들이 콜
록거리며 기어나오려는 순간 알리 대위가 중기관총을 쏘아댔고 그
들은 피떡이 되어 절명하고 말았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적 특수부대의 기습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여기서 전선까지는 200Km나 떨어져 있어. 놈
들이 이곳에 쳐들어 온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일은 분명 사실입니다."
"보고드립니다. 기지 방어를 위해 배치된 지대공 미사일들이 적에
의해 파괴당하고 있습니다."
"뭐야?"
보고를 받기가 무섭게 급히 쌍안경으로 지대공 미사일들이 배치된
곳을 살핀 경비부대 지휘관은 미사일과 레이더가 줄지어 폭파당하
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창 밖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적의 헬리본 부대입니다!"
성공적인 기습을 등에 업고 마르사 마트루 기지에 진입한 UH-60
블랙호크를 위시한 각종 수송헬기들은 최상의 위치에 이르자 병력
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3시 방향의 격납고에 적이 한 무더기로 몰려있다. 날려버려.
"알겠습니다."
케니 힐 하사는 곧 조종간에 붙은 버튼을 눌렀고 그와 동시에 아
파치는 2.75인치 로켓탄 세례를 퍼붓기 시작하였다. 불꼬리를 끌며
날아간 로켓탄들은 격납고 안으로 정확히 들어가 폭발하였다. 엄청
난 수의 리비아군이 비명횡사한 가운데 아파치는 기수를 다른 방향
으로 돌린 후 체인건을 난사해댔다. 이번에도 수많은 리비아 보병
들의 육신이 산산조각나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즉사하지 않은 이들
은 사지가 날아가거나 내장을 흩뿌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비명을
질러댔지만, 그들은 살아날 가망이 없었다. 하지만 힐 하사는 이를
몰랐고, 설령 알았더라도 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눈 앞
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볼 수밖에 없는 보병들과 비교해 야포와 같
은 큼지막한 장비로 멀리서 사람을 죽이는 병과에 종사하는 이들이
타인을 죽이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서둘러! 적에게 시간을 줘선 안 된다!"
경비부대 지휘부의 위치를 사전에 파악한 특전사 대원들은 이집트
육군 1공수여단보다 한 발 앞서 건물 안으로 쳐들어갔다. 최영락
상사는 자신이 소지한 MP-7 기관단총으로 눈앞의 리비아군을 닥치
는대로 죽이며 복도에 들어선 후 반쯤 열린 문이 눈에 들어오자 본
능적으로 그곳을 향해 총신 아래 부분에 부착시킨 20mm 유탄 발
사기로 공중 폭발식 유탄을 발사하였다. 방 안에 숨어서 기회를 엿
보던 리비아군 몇몇이 당황한 나머지 밖으로 뛰어나오자 최 상사는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십 수발의 총탄 세례에 서너명이
쓰러지고 방에서 미처 나오지 못한 두 명은 유탄의 파편에 맞아 피
투성이가 되어 나자빠졌다.
"모두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문을 박차고 들어온 특전사 대원들이 총을 겨누며 항복을 종용하
자 경비부대 지휘관을 비롯 십 수명의 사관과 사병이 두 손을 머리
에 올렸다.
"공군기지가 적에 의해 장악당했다고?"
"예. 그렇습니다. 순식간에 모든 상황이 끝났다고 합니다."
무전병으로부터 기지를 빼앗겼다는 보고를 받은 9보병사단장은 심
각한 표정을 지으며 탁자 위에 펼쳐놓은 지도로 시선을 옮겼다. 적
이 활주로를 장악한 이상 후속 병력이 기지를 교두보 삼아 들이닥
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전력이 부실한 상태라고 해서 적을 내버
려 둘 수 없었다.
"투입 가능한 부대들을 빨리 확인해. 적은 공항을 통해 병력과 장비
를 밀어넣으려는 속셈이야. 그나저나 우리 공군은 상황이 이 지경
인데도 왜 안 보이지? 적 공수부대가 여기까지 밀고 들어온 건 그
놈들의 책임이야!"
9사단이 공군기지 방면으로 투입할 수 있는 전력을 급히 긁어 모
으기 시작한 가운데 1공수여단을 주력으로 삼은 기지 탈환부대를
지원하기 위한 중장비를 실은 C-17 수송기 편대가 활주로에 착륙
하였다. 수송기는 활주로에 멈추기가 무섭게 물자 출입용 램프를
열었고, 탑재된 M-1A2 전차 한 대가 포신을 차체 뒤로 돌린 상태
에서 재빨리 내렸다. 곧 수송기는 활주로에서 이륙해 지중해 방향
으로 기수를 돌려 날아갔고, 다른 수송기가 재빨리 착륙해 M-1A2
를 한 대 더 내렸다. 이런 식으로 전차 1개 소대를 지원받은 기지
탈환대는 만에 하나 있을 리비아군의 역습에 대비하였다.
"맙소사. 1개 사단이라니……."
"믿기지 않을 테지만 사실이다. 적 지휘관이 미군 심리전 담당자에
게 제공한 정보에 의하면 기지 재탈취에 나설 9보병사단은 2선급의
부대이지만 전차와 장갑차, 야포를 적절히 갖추고 있다. 여기에 더
해 보병들의 무장 수준도 충실하다고 한다. 결코 적을 깔보아선 안
된다."
부사관이 중핵을 이루는 특전사 대원들은 소대장으로부터 적에 대
한 정보를 브리핑 받은 후 바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가운
데 소대장인 정명상 중위가 최영락 상사에게 물음을 던졌다.
"선임 당담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상 밖입니다. 이 일대의 적이 부실하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브
리핑을 받았는데 사실은 영 딴판이니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최 상사는 배낭에서 꺼낸 보온병에 든 커피를 마
셨다. 졸음을 쫓음과 동시에 사막 특유의 차가운 밤 공기도 잠시나
마 잊을 수 있게 해주니 그야말로 훌륭한 음료였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적의 보유 장비들이 부실
한 이상 우리 입장에선 막아내기 쉽습니다."
보온병을 배낭에 도로 넣으면서 최 상사는 손가락으로 동쪽을 가
리키며 말하였다.
"일단 우리는 아군이 올 때까지 적을 막아내기만 하면 됩니다. 그
외의 일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2010년 06월 20일. 일요일. 01시 40분. 알 카사바 아쉬 샤르키야
방어 태세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평가된 이곳 탈환에 나선 한국
육군 5기갑사단과 미육군 1기병사단에 대한 리비아군의 환영은 매
우 성대하기 그지 없었다. 포탄이 사방에 작열하고 예광탄이 허공
을 가르는 가운데 K-2 전차와 K-300, 배치된지 20념이 훌쩍 넘었
지만 화력 강화가 이루어진 K-200 보병전투차의 대군은 리비아군
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저항을 분쇄하며 앞으
로 나아갔다. 안세준 대위는 자신이 탑승한 K-2 전차 안에서 차장
용 조준기로 주위를 확인한 후 소리쳤다.
"여기는 무쏘1, 적의 포격에 기죽지마라! 앞 뒤 가릴 필요 없다! 전
차는 부수고 보병은 궤도로 뭉게버려라!"
무쏘라는 호출명에 걸맞게 안 대위의 1중대는 리비아군 진지를 향
해 포와 기관총 사격을 가하며 육박해 들어갔다. 그들을 막기 위해
보병과 장갑차 저지용으로 배치된 Zu-23 대공 기관포가 불을 뿜었
지만, K-2의 복합장갑엔 이빨도 먹히지 않았다. 하지만 내버려두면
골치 아픈 존재여서 안 대위는 그 위치를 확인하기가 무섭게 포수
인 김국선 병장에게 지시하였다.
"10시 방향에 적 대공 기관포. 대탄 날려!"
-목표 확인!
곧 자동 장전장치에 APFSDS탄 대신 HEAT가 장전되어졌고 장전
완료를 뜻하는 부호가 안 대위 바로 앞에 놓인 차장용 디스플레이
에 나타났다.
"발사!"
그 명령과 동시에 K-2 55구경장 활강포가 불을 뿜었다. 포신이 뒤
로 밀려나고 배연기와 포구로부터 연기가 토해지는 가운데 안 대위
는 자신이 목표로 삼은 대공 기관포 진지의 최후를 볼 수 있었다.
나름대로 위장에 신경을 썼던 병사들은 멀리서 날아온 전차포탄이
기관포에 직격하자 엄청난 폭발로 인해 튕겨져 나가거나 산산이 조
각나버렸다. 곧 1중대의 K-2 전차들은 참호선을 넘기 시작했고, 리
비아군 보병들은 이에 맞서 RPG-7을 발사하였다. 발사된 로켓탄
가운데 한 발은 안 대위가 탄 K-2 전차의 포탑 측면에 명중했지만,
결정적인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우리차가 맞은 겁니까?
"침착해라. RPG 따위는 그냥 무시해."
복합소재로 이루어진 본장갑 위에 빈틈없이 부착된 반응장갑들이
톡톡히 제 몫을 다했다. 보병의 입장에선 전차의 방어력 향상은 비
극이었다. 보병이 가뿐하게나마 휴대할 수 있는 최선의 직사식 대
전차화기는 HEAT 탄두를 이용하는 RPG-7이나 LAW뿐인데 이들
은 3세대급 이상 전차의 복합장갑은 물론 그 이하의 전차에 부착되
는 경우가 많은 반응장갑에도 무력하기 그지 없었다. 2차 대전 당
시 연합군의 바주카와 독일군의 판저 파우스트에 의한 전차 격파가
가능했던 것은 당시 기술상의 문제로 대부분의 전차들이 균질 압연
강판으로 이루어진 단일 장갑에만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와 같은 흐름이 낳은 피해는 1973년에 발발한 4차 중동전때 절
정에 이르렀는데 개전 초기 이집트군이 보병 휴대형 대전차 직사화
기인 RPG-7과 대전차 미사일 AT-3 새거를 앞세운 덕분에 이스라
엘군은 전차 전력이 그대로 녹아버리는 엄청난 피해를 입어야만 했
었다. 결국 이스라엘군은 전술을 바꾸고 미국으로부터 다량의 전차
를 급히 넘겨받아 전투에 투입하는 등 눈물겨운 고생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이를 계기로 세계 각국은 전차의 방어력 개선에 열을 올
렸고 70년대 후반에 독일 육군에 레오파드2가 배치된 것을 시작으
로 3세대 전차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보병이 전차를 잡기란 더욱 어
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보병 휴대를 전제로 한 신형 대전차 화기
들이 속속 등장하는 2000년대에도 전차의 보병에 대한 종합적 우세
는 변함이 없었다.
안 대위의 K-2는 경사진 지형을 넘어서면서 이내 엄청난 환영 인
사를 받았다. 곳곳에 매복한 채 숨어 있던 리비아군의 전차와 대전
차포가 불을 뿜은 것이다. 십 수발의 포탑이 날아들면서 그 중 두
발이 포탑과 차체 정면에 명중했지만, K-2의 본장갑을 뚫기엔 역부
족이었다.
-마, 맞았습니다!
"이 거리에선 무시해도 충분해. 여기는 무쏘1. 엄청난 수의 적과 조
우했다. 속히 지원바란다."
-지금 그리로 향하는 중입니다. 바로 합류하겠습니다.
"너무 늦지마. 내가 다 해치우기 전에."
곧 안 대위의 K-2는 포탑을 11시 방향으로 선회시킨 후 전차포를
쏘았다. 날아간 포탄에 직격당한 T-62는 포탑이 차체에서 떨어져나
갈 정도로 대폭발을 일으킨 후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당한 상태를
보아 생존자는 전무하리라… 안 대위는 첫 목표의 최후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차장용 조준기를 선회시켜 새로운 표적을 확인한 후
소리쳤다.
"2시 방향에 대전차포! 대탄 날려!"
-목표 확인!
그런 다음 포탄 장전이 끝나자 김국선 병장은 포수용 조종간에 붙
은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도 포신이 뒤로 밀려나면서 포탄이 발사
되었다. 탄심이 날카로운 APFSDS탄과 달리 뭉툭하게 생긴 HEAT
탄은 대전차포에 명중하기가 무섭게 폭발하면서 주위를 휩쓸어버렸
다. 잠시 후 중대의 다른 전차들이 교전 현장에 합류하기가 무섭게
일제히 포를 쏘았고 거기에 비례하듯 다량의 대전차포와 전차가 폭
발함과 동시에 고철로 변했다. 대전차 전력이 일시에 파괴된 지점
을 향해 십 수대의 보병 전투차가 쇄도해 들어갔다. 어떻게든 이를
막으려는 리비아군 보병들이 RPG-7을 쏘아댔지만, 압도적인 한국
군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는 사이 리비아군에게 진짜 재
앙이 들이닥쳤다. 한국군의 신예 보병 전투차 K-300들이 일제히 언
덕을 넘어서며 나타난 것이었다.
40mm 기관포탄들이 날아들자 리비아군 보병들은 참호에 몸을 숨
긴 채 화를 면하려고 했지만, 이들 기관포탄들의 대부분은 참호선
위에 이르자 그대로 폭발해 파편 세례를 선물했다. 단 한 차례의
일제 사격에 저지선 곳곳이 허물어지기 시작한 가운데 드디어 보병
들이 하차하기 시작하였다. 사막용 위장복 위에 적외선 방출 억제
용 그물까지 착용한 기계화 보병들이 쇄도하자 간신히 화를 면한
리비아군 몇몇이 총을 쏘려고 했지만, 랜드 워리어 장비로 치장한
한국군의 K-11 자동소총이 먼저 불을 뿜었다. 사방에 피와 뇌수를
흩날리며 쓰러지는 리비아군을 뒤로 하고 한국군 병사들이 교통호
안에다 수류탄을 던지기 시작하자 시체더미 속에서 죽은 척 하고
있던 병사들이 황급히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얼마 못가 온몸에
총알이 박힌 채 절명해버렸다.
"우, 우왓?"
마악 교통호에 뛰어내린 이균옥 이병은 바로 앞에서 앳되 보이는
리비아군 병사와 마주치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총을
겨누는 것은 잊지 않았다. SF 영화에서나 볼법한 미래형 소총을 든
한국군이 자신을 향해 다짜고짜 총구를 들이밀자 병사는 황급히 두
손을 든 채 서투른 영어로 말하였다.
"돈트 슛. 서렌더."(쏘지마. 항복할게.)
첫 실전에 포로를 잡게 된 이균옥은 교육받은 대로 지시하였다.
"앞으로 가."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참호 밖으로 걸어나갈 것을 지시하자
포로가 된 소년병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걷기 시작하였
다. 대충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올라간 소년병이 참호 밖으로 상반
신을 내미는 순간 총성과 함께 뒤로 나자빠졌다. 이 일병은 당황한
나머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그가 있는 참호
쪽으로 뛰어왔다. 소대의 선임 담당관인 박한구 상사였다.
"선임 당담관님이 쏘신 겁니까?"
"그래 내가 쐈다."
"이녀석은 제게 투항했습니다. 무기도 들지 않았단 말입니다!"
"실수는 인정하마. 하지만 전장에선 이같은 일은 불가피하다. 결코
고의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녀석 숨은 붙어 있냐?"
"예? 아, 예……."
"1소대 선임 당담관이다. 이균옥 일병의 현 위치로 의무병을 보내주
기 바란다."
자신의 랜드워리어 장비와 연동하는 헤드셋으로 의무병을 보내줄
것을 요청한 다음 박 상사는 탄창을 교환하면서 말하였다.
"너 총알이 날아 다니는 전장은 처음이지?"
"예."
"나도 마찬가지야."
"?"
의외의 대답에 이 일병이 황당해하는 사이 박 상사는 씨익 웃으며
교전이 한창인 지점을 향해 달려갔다.
"적의 외곽 방어선이 예상보다 빨리 허물어 졌습니다. 이번엔 이집
트군에 인계하지 않고 우리가 직접 처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안돼. 우리는 예정대로 외곽 방어선을 허물어 뜨렸으니 마르사 마
트루에 강습한 아군을 구원하러 가야한다. 아무리 적이 우리에게
제공권을 빼앗겼다지만, 보병이 전차를 막을 수는 없는 법이야."
조길준 소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지휘용 테이블 위에 펼쳐 놓은 이
집트 지도에서 마르사 마트루가 표시된 곳을 볼펜으로 가리켰다.
쓸데없이 예정에 두지 않은 목표에 매달려 본래 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규모가 확실하지 않은 적에게 등을 보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지. 57연대에다 1개 대대를 차출해서 이집트군이
도착할 때까지 시가지의 적 견제에 투입하라고 해."
"그 정도로는 안 됩니다."
"이 사람아. 누가 시가지를 탈환하자고 했나? 적이 기어나오지 못하
게 견제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조 소장은 그렇게 말한 후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졸음을 쫓기 위
해서였다.
-우리 대대가 차출됐단 말씀입니까?
"안 됐지만 그렇게 됐다."
-이런 곳에서 죽치기는 싫습니다.
"명령대로 해야지. 설마 큰일 나기라도 하겠어?"
안세준 대위는 그렇게 반문한 후 차장용 해치를 열고 나서 밖으로
상반신을 내밀었다. 이집트군에 의한 포격으로 화재가 발생한 시가
지를 바라보는 그의 눈엔 착잡함이 가득하였다. 이집트의 경제 사
정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지만 전쟁 이후 시작할 재건 사업을 고려
하면 그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번 전쟁은 이집트인들
에겐 국가적으로 수치스러운 일로 기억될 것이 뻔했다. 이스라엘이
야 그렇다 치더라도 리비아는 그들의 시각에선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단순한 서쪽 나라일 뿐이었는데 개전 초기에 리비아군이 벌인
완벽한 기습은 이집트인들을 화나게 만드는데 충분했던 것이다.
-중대장님, 이집트인들은 군 입대가 의무입니까?
"물론. 이집트는 20세 이상이면 누구나 군에 들어가야 하는 나라야.
우리랑 다를 것 없어. 현역만 따지면 그들의 총병력은 우리와 비슷
한 규모인 70만이다. 전시에 소집되는 예비군 규모를 따지면 우리
보다 약 두 배나 더 많아. 대륙에 그냥 붙어 있는 정도가 아니고
두 개 대륙의 연결점에 있는 나라의 숙명이야."
-그런 나라를 작디 작은 리비아가 초반에 이겼다는 건…….
"한마디로 예상 밖의 일이었다는 뜻이지."
안 대위가 거기 까지 말한 직후 사막 저편에서 일단의 이집트군이
나타났다. 선발대 자격으로 달려온 7사단 병력의 일부였다. 곧 위치
를 고수한 채 대기중이던 301전차대대는 임무를 인계한 후 본대에
합류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2010년 06월 20일. 일요일. 02시 20분. 이집트 마르사 마트루
9보병사단의 포격은 마르사 마트루 공군기지 곳곳에 낙하하고 있
었다. 강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항공기 격납고는 외관이 흉하게
변했고 그밖에 다른 건물들은 지붕이 무너져 내리는 등 심하게 파
괴당했다.
-아군 포병은 어디 있습니까?
"이 멍청아! 이런 곳에다 포를 갖다 놓으면 제대로 쏠 수 있을 것
같냐? 차라리 없는 게 나은 거야."
제이슨 리 소위는 그렇게 말하고는 전차병용 헬멧의 턱 끈을 단단
히 매었다. 맹렬한 포격이 사방을 휩쓰는 와중에도 그의 M-1A2는
용케 화를 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대로 계속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느님… 제발…….'
신앙심을 갖고 있지 않은 그였지만 이같은 상황에선 무언가에 매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의 간절한 바람을 신께서 들어주신 것일
까? 갑자기 포격이 그쳐버렸다.
-포격이 그쳤습니다.
"나도 알아. 각차 상황 보고하라. 이쪽은 이상무."
-2호차. 캐터필러 손상.
-3호차. 이상무.
-4호차. 이상무.
2호차의 캐터필러 손상 보고 때문인지 제이슨 리 소위는 얹짢은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망할. 다들 멀쩡해도 감지덕지인 판국에……."
리비아군의 포격이 그친 이후 시작된 피해 확인이 대충이나마 끝
날 무렵 경계에 임하고 있던 이집트군 1공수여단과 미육군 173공수
여단의 1개 대대 병력은 저 멀리서 나타나기 시작한 리비아군의 전
차를 확인하자 전투 준비에 나섰다.
"적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는 대로 공격하라."
사격 준비를 마친 대전차 미사일 사수들에게 그와 같은 지시가 떨
어진 가운데 차체를 숨긴 채 포탑만 드러낸 M-1A2 소대가 먼저
발포하기 시작하였다. 거기에 맞서 기계화 보병을 실은 장갑차들을
동반한 채 중대 단위로 산개해 전진해오던 리비아군의 T-62 전차
들도 115mm 활강포로 응사했지만, 사격통제장치의 고질적인 성능
부족 덕분에 단 한 발의 명중탄도 내지 못했다. 반면 M-1A2의 55
구경장 120mm 활강포에서 발사된 M-829A3 APFSDS탄은 문제없
이 T-62를 파괴해버렸다. 제이슨 리 소위는 차장용 전주 선회식 조
준기로 파괴당한 전차에서 불이 붙은 채로 탈출하는 리비아군 전차
병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일이 잘못되면
자신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포수를 맡은 숀 호레이스 병장은 상
기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놈들이 도망갑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
"너무 좋아하지마. 저녀석들의 목적은 우리랑 싸우는 게 아니라 정
찰이었을 거야.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소위는 잘 보이는 곳에 걸어놓은 애인의 사진으로
시선을 돌리며 마저 말하였다.
"언젠가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어."
소위가 생각한대로 리비아군이 보낸 부대는 정찰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들 부대가 피의 대가를 치른 덕에 파악한 정보는 벌써 9
사단장과 그의 참모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러니까 적은 전차도 갖고 있다는 뜻이로군……."
"쉽지 않은 상대입니다. 우리가 이긴다고 해도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더욱 이겨야 하는 거야."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와 이집트의 피해는 그렇다 치더라도 미군과 한국군은 대량의
인명 손실을 입게 되면 그들 나라의 여론은 흔들릴 수밖에 없어.
우리가 천명의 병사를 잃어도 저들로 하여금 100명을 한꺼번에 잃
게 하면 우리가 이기는 셈이지."
"하지만 작금의 상황에선 우리군은 한 명의 병사라도 최대한 보전
해야 합니다. 작전을 실행에 옮기더라도 인명 손실을 억제하는 방
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어차피 개전 초기에 수립된 전략은 무의미해진지 오래야. 이쪽이
죽을 게 뻔하다면 적을 붙잡고 같이 망하는 것이 남는 장사라고 생
각하지 않나?"
"그렇지만……."
"내 명령에 토달지 마라! 처음 계획한 대로 투입할 수 있는 전력을
모두 공군기지로 돌려. 놈들을 담숨에 박살내버리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무모하기 그지 없는 작전을 감행한다면 필연적으로 발생할 무시못
할 규모의 아군 희생자에 대해선 깨끗이 무시한 사단장의 태도에
참모장은 애가 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로서는 어찌할 방도
가 없었다. 제발 큰일만 나지 않기를…….
"망할 또 포격인가?"
"이녀석들이 그나마 참호를 잘 파뒀으니 망정이지."
또다시 포격이 날아들자 병사들은 투덜대며 유개 참호에 몸을 숨
기지 않을 수 없었다. 122mm, 152mm 포탄이 주로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공항 곳곳에선 폭음과 불빛이 번쩍였다. 머리 위에서 모래
가 후두둑 떨어지자 최영락 상사는 혀를 차며 말하였다.
"상황이 똑같다고 할 순 없지만, 일이 아주 잘 되면 여기도 파나마
의 파이틸라 공항 꼴이 될 것 같습니다."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었죠?"
"미해군 SEAL이 거기서 임무를 완수하는 대신 역대 최다의 전사
자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워낙에 운이 없는 바람에 그같은 일을
당했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기습에만 성공하면 잘 끝날 걸로 알았
는데……."
"그래도 우린 어떤 상황에서든지 억세게 운이 좋은 편이잖습니까?
적을 막아내고 아군을 기다리면 해결되겠죠."
"저도 그러기를 바랍니다만……."
최 상사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근거리에서 포탄이 떨어졌는
지 참호가 마구 흔들렸다. 최 상사는 잠시 예전 일을 떠올렸다. 그
가 특전사에 입대한 때는 10년 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흔치 않은
모험심 충만한 젊은이들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는 특전사 지원자
모집 홍보전단을 보고 망설임 없이 모병관에게 달려간 매우 특이한
경우였다. 부대의 성격상 실전 임무 수행자들을 전원 지원을 원칙
으로 충당하는 특전사 안에서 받은 훈련은 매우 힘들었지만, 그는
힘들어하기는커녕 오히려 재미를 느꼈었다.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
서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은 이해못할 그런 재미를 말이
다. 게다가 폭발물을 설치해 터뜨릴 때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흥
분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혈기 왕성한 20대를 지나 30대가 된
직후 결혼한 그에겐 한가지 고민이 있었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
의 미래였다. 그래서 그는 위험을 감수하고 이집트 파병에 자원했
었다. 이제 그의 목적은 무사히 귀국하는 것만이 전부였다. 물론 그
러기 위해선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함은 변함이 없었다.
2010년 06월 20일. 일요일. 02시 30분. 이집트 시디 하네이쉬
시디 하네이쉬 방면을 맡은 56보병사단은 순조롭게 시디 하네이쉬
외곽에 진입하고 있었다. 56사단은 이름만 보병사단이지 보유 장비
들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K-300 보병 전투차, 방어력 강화
개조를 받은 K-1A1으로 무장한 이 부대는 사실상 완편 기계화 보
병사단이나 다름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사단 단위로 운용하는 무
인정찰기는 진격 예정지에 대한 사전 정찰을 가능하게 해 위험 부
담을 그만큼 줄여주었다. 게다가 군단 직할 포병여단의 지원을 받
지 않고도 사단이 보유한 개량형 K-55 자주포와 임시로 배속된 구
룡 다연장 로켓포는 목표로 삼은 지역을 충분히 초토화 시키고도
남을 화력을 자랑하였다.
"시청자 여러분, 이 차량의 대군이 보이십니까? 정말 대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몸을 실은 장갑차를 비롯해 수 백대의 각종 전
투 차량들은 현재 시디 하네이쉬를 향해 진격해 들어가고 있으며,
하늘에는 십 수대의 아파치 공격헬기가 날고 있습니다. 제 입장에
선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방탄 헬멧에 방탄 조끼를 착용한 방송국 리포터가 상기된 목소리
로 카메라에 시선을 고정한 채 손가락으로 전차와 장갑차들을 가리
키는 가운데 이석훈 기자는 PDA와 연결된 디지털 카메라로 차량
대열을 찍고 있었다. 바로 그때 맞은편에서 달리고 있는 장갑차의
해치가 열리면서 차장이 상반신을 내밀고는 주위를 돌아보다가 카
메라를 들고 있는 석훈을 발견한 듯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었다.
자신을 찍어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이 기자는 흔쾌히 그를 카메라
에 담았다. 헬멧을 쓰고 있는데다 모래 바람을 막기 위해 안면을
두건으로 가린 탓에 이 기자는 그가 기뻐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
었다. 바로 그때 기갑부대와 행동을 함께 하던 롱보우 아파치의 왼
쪽 주익 하단에서 불꽃이 번쩍였다.
"헬파이어 미사일을 쏘는군요."
군사분야에 비교적 정통하다고 자타가 공인한 조선일보의 유용준
기자가 그렇게 말하면서 카메라를 들었다.
"직접 보기는 처음 입니까?"
"전부터 있었던 실탄 사격 훈련을 빠짐없이 취재해서 많이 보기는
했습니다만, 실전장에서 쏘는 순간을 보기는 저로선 처음입니다. 좋
은 구경을 한 셈이죠."
그렇게 답하고는 조선일보 기자는 렌즈를 아파치로 향하게 한 상
태에서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두 번째로 발사되는 헬파이
어의 모습을 하나하나 담기 위해서였다. 발사된 헬파이어들은 숱한
포격에도 불구하고 용케 살아남은 리비아군 전차를 한 대씩 날려버
렸다. 어느 T-72의 포탑 정면에 직격한 헬파이어는 본장갑을 그대
로 뚫고 들어가 내부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린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기라도 하는 듯 폭발하면서 생긴 메탈제트가 포탑 후면까지 뚫고
나가 바로 뒤에 서 있던 BMP-2의 차체 정면에 보기좋게 명중해버
렸다. 아니나 다를까? 방어력이 빈약하기로 악명높은 이 러시아제
보병 전투차에겐 그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다 줬다. 차체가 폭
발한 것이다. 안에 타고 있던 승무원들이 온 몸에 불이 붙은 채 비
명을 지르며 탈출하는 것을 목격한 적지 않은 병사들이 공황 상태
에 빠져 도망치려고 하자 장교 한 명이 그들을 향해 권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자기 위치를 지켜라. 도망치는 녀석은 절대로 살려두지 않겠다!"
바로 그때 로켓탄 세례가 날아들면서 장교와 병사들을 날려버렸
다. 일방적인 포격에 의해 엉망이 되어버린데다 롱보우 아파치에
의해 진지 곳곳이 휩쓸린 리비아군은 저항은커녕 총 한 방 제대로
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도저를 단 K-1A1들이 끊어진
철조망을 마저 밀어버리는 것을 시작으로 전투 차량들은 주 방어선
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그때 석훈을 비롯한 기자들을
향해 공보 담당 장교가 소리쳤다.
"기자님들, 방독면을 착용하십시오."
그러자 무언가 눈치챈 듯 유용준 기자가 먼저 허리춤에 차고 있는
방독면 케이스에서 방독면을 꺼내어 착용하였다. 그러고 나서 석훈
의 어깨를 두드리며 소리쳤다.
"이 기자, 저 양반이 시키는대로 얼른 서두르세요. 나중에 고생하지
말고."
"그나저나 왜 방독면을 착용하라는 겁니까? 설마 화학무기를 사용
하는 건?"
"곧 알게 될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유 기자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얼마 후
K-1A1 전차들은 일제히 연막탄을 터뜨렸고 그 연기는 사방을 뒤덮
었다. 이걸로도 모자른지 K-200 기본형에서 파생된 연막살포차가
쉴 새 없이 연막을 살포했고, 그것은 각종 센서가 부족한 리비아군
의 시야를 완전히 가리는데 일조하였다. 그러던 중 K-300 몇 대가
차체 양옆에 임시로 설치한 파이프의 구멍을 통해 무언가를 배출하
기 시작하였다.
"저건 대체 뭡니까?"
"최루가스입니다. 원래는 폭동진압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죠."
"화학전을 벌인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측의 최루가스 살포는 리비아의 화학탄두 사용과 비교하면 약
과입니다."
"그렇지만……."
"복잡한 얘기는 나중에. 자 모두 내리시죠. 여기서부턴 제가 직접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공보 장교가 그렇게 말하면서 장갑차에서 내리자 기자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물론 석훈도 거기에 끼어 있었다.
"지시 받은 대로 움직여. 정해진 간격을 유지해! 너무 떨어져서도
안돼! 이 멍청아, 그렇게 서 있으면 어떡해? 이건 훈련이 아니야!"
방탄 조끼는 물론 신체 중요 부위를 보호하기 위한 각종 방어구를
착용한 56사단 소속 병사들의 한 명인 김태욱은 분대장으로서 후임
들을 이끌며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달리는 장갑차 안에서 농
담까지 주고 받던 그들이었지만, 막상 여기저기서 총성이 울리는
전장에 서게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바짝 긴장했다. 태욱은 자신이
착용한 다기능 고글에 비틀거리며 움직이는 물체가 포착되자 침착
하게 총을 겨누며 영어로 소리쳤다.
"유 갓 더 웨폰!"(네 무기를 버려라.)
굳이 아랍어를 쓸 필요는 없다는 판단하에 그 말을 내뱉은 김 병
장은 상대가 최루가스 때문에 토악질을 하면서도 정신을 잃지 않은
듯 무기를 버리고 두 손을 든 채 엎드리자 안도하면서 다가가 무기
를 옆으로 치웠다.
"맙소사!"
이 기자 일행은 뜻하지 않은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잘 위장된 유
개 참호에 숨은 리비아군이 기관총으로 저항하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은 같이 다니던 전투병들과 참호에 몸을 숨기는 수밖
에 없었다.
"저들이 대부분 쉽게 무너질 거라는 얘기와는 정반대 아닙니까?"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전장에선 예기치 않은 상황이 종종 일어
나는 법입니다. 우리가 지급한 권총을 잘 갖고 계세요. 일이 잘못되
면 그걸로 리비아군을 쏴야 합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제 신분은 재소집된 예비역이까요. 형식적
으로 주어진 임무는 국방부 소속 종군기자라는 것도."
그렇게 대꾸하면서 석훈은 권총집에서 K-5 권총을 꺼내어 안전장
치를 풀었다. 탄창은 이미 끼워뒀고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이 나갈
것이다. 얼마 후 중화기 운용을 맡은 병사가 K-202 4연장 소이탄
발사기를 어깨에 견착시킨 후 유개 참호를 향해 발사하였다. 정확
히 명중시킬 필요는 없었다. 그 근처에 맞추면 그만이었다. 곧 참호
와 그 근처는 불바다가 되었고 안에 숨어서 총을 쏘던 리비아군은
타죽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 때문이었을까? 저항 의지를 완전히 잃
은 리비아군이 손을 머리에 들고 일어서서 소리쳤다.
"한국인들, 쏘지마라. 항복하겠다."
"움직이지마라. 허튼 짓 하면 경고 없이 쏘겠다."
이 기자 일행은 안도하면서 지급 받은 권총을 도로 집어넣은 후
소지한 카메라로 투항하기 시작한 리비아 군인들을 찍었다. 바로
그때 한국군에 임시로 배속된 이집트군의 AIFV 장갑차가 달려오더
니 멈추어 섰다. 곧 거기서 내린 이집트군 장교가 전과 확인을 위
해 마악 도착한 134대대의 지휘관 최지성 중령과 통역을 대동한 상
태에서 대화를 나누었고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최 중령이
손가락으로 포로들을 가리키자 이집트군 장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 장교는 일단의 부하들을 데리고 포로들 앞에 선 다음 이 기
자 일행 입장에선 알아들을 수 없는 아랍어로 포로들에게 말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그때 공보담당 장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렸
다. 무언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신호였다.
"기자님들, 이제 그만 갑시다. 우린 여기에 더 이상 여기에 있을 필
요가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됩니다."
"무슨 뜻입니까?"
"말로 설명하기엔 좀 곤란한 일입니다. 자 어서 장갑차에 도로 탑시
다."
이상하게 돌아가는 분위기에 무언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면서도 하
는 수 없이 장교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석훈을 포함한 기자들
이 장갑차에 마악 오르는 것과 때를 같이 해 이집트군 장교는 포로
들을 상대로 본론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너희들 중에서 광신적 외국인 자원병들은 포로로 대우하지 않고
이곳에서 바로 즉결하겠다. 너희들을 살아서 돌아가게 만들면 우리
이집트는 물론이고 선량한 절대 다수의 무슬림들을 곤란하게 만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한 후 장교는 권총을 뽑으며 소리쳤다.
"쏴라!"
몇몇 포로들이 도망치려는 몸짓을 취하는 것과 동시에 십 수개의
총구가 불을 뿜기 시작하였다. 총알이 포로들의 몸에 박히면서 피
와 살점이 사방에 흩날렸다.
"이만하면 됐다. 덮어라."
곧 도저를 단 AIFV 장갑차에 의해 모래가 끼얹어지는 것으로 시
신 매장은 즉석에서 끝났다. 누군가가 공을 들여 수색을 하지 않는
한 그들이 발견될 일은 없으리라…….
"네녀석들한텐 순교자 칭호는 사치야."
2010년 06월 20일. 일요일. 03시 00분. 마르사 마트루
사방에서 총성과 포성이 묘한 불협화음을 이루며 울리는 가운데
M-1A2의 포탑이 선회하기 시작하였다. 얼마 후 포구에서 불빛이
번쩍였고 목표가 된 T-72는 포탑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박살나버렸
다. 이를 확인한 숀 호레이스 소위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소
리쳤다.
"다들 잘했어! 이리로 오는 놈들을 계속 때려잡자."
-소대장님, 각차에 남은 포탄이 이제 20발 미만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해. 반드시 한 발씩만 쏴서 적 전차를 잡는 거야.
장갑차는 신경 꺼라. 우리가 노려야 할 건 오로지 전차다!"
그렇게 말하면서 리 소위는 차장용 전주 선회식 조준기를 움직여
공항을 향해 접근해오는 또다른 전차를 포착한 후 소리쳤다.
"10시 방향에 T-62!"
곧 포탑이 선회한 후 방금전에 그랬던 것처럼 120mm 55구경장
활강포가 불을 뿜었다. 발사된 포탄에 직격당한 T-62는 엄청난 폭
발을 일으키며 불타올랐다. 바로 그때 무전기를 통해 다급한 목소
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A중대, 적 전차가 측면으로 돌아서 공격해오고 있다! 지원
바란다!
"제기랄, 저것들은 미끼였어! 어서 서둘러!"
제이슨 리 소위의 전차 소대는 캐터필러가 파손된 2호차를 남겨둔
채 급히 A중대가 담당한 지역으로 향하였다.
"또 온다!"
보병의 돌격에 맞서 M-240 기관총의 단축형과 25mm 고속 유탄
기관포가 동시에 불을 뿜기 시작하였다. 리비아군의 이번 공격은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뛰어난 자질을 갖춘 병사들과 장비를 보유한
독일군에 대해 구 소련이 택한 방법을 연상시키듯 희생을 아랑곳하
지 않았다. A중대가 보유한 대전차 미사일은 진작에 소모되었는데
대부분 T-55나, T-62로서 현 시점의 전차전에선 큰 가치가 없는
무기였다. 그럼에도 이들이 투입된 것은 173여단 소속 A중대를 비
롯한 보병 부대들이 보유한 대전차 미사일을 허비하게 만들기 위해
서였다. 얼마 후 주공에 해당하는 부대에 배속된 T-80UM들이 그
간의 사전 공격으로 위치가 파악된 진지들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하
였다. 당연히 A중대 쪽에서도 이를 확인하고는 급히 대응에 나섰
다.
"아직 쏘지마! 최대한 끌어들여."
A중대원들은 그 거체를 드러내며 계속 접근해오는 전차들을 숨죽
이며 바라보았다. 얼마 후 최선두에 선 전차 서너대가 보병들이 휴
대한 AT-4 대전차 로켓의 최대 유효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참
호 곳곳에서 이를 발사하였다. 거의 도박에 가까운 행동인지라 병
사들은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리고 리비아군 전차병들도 큰 위
협을 느끼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로켓탄 서너발을 동시에 맞았
는데도 불구하고 T-80UM은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움직였다.
"괴, 괴물이다!"
곧 T-80UM은 포탑을 선회시킨 후 로켓탄이 발사된 지점을 향해
포를 쏘았고, 수 명의 병사들이 포탄의 폭발에 휘말려 산산이 조각
나 날아가버렸다.
"이녀석 아주 굉장한 걸.
SF를 좋아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 곳에서 활동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