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군단 이집트로!

2010년 05월 25일. 화요일. 07시 00분. 한국 경상남도 부산

부산항의 군용 부두엔 정박중인 수송선에 승선하려는 장병들로 북
적이고 있었다. 이들을 태우고 갈 미해군의 수송선에서 내려진 트랩
을 따라 올라가는 장병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한동안 못볼 조
국 땅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자들도 더러 있었다. 바로
이한성 상병이 그들 중 하나였다.

"한성아, 왜 그렇게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냐?"
"마음이 편치 못해서요."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냐?"
"여자 친구가 헤어지자고 했거든요."
"미령이 말이냐?"
"예."
"그냥 그러려니 해라. 우리 같은 군바리들이 무슨 수가 있겠냐? 차
이면 차이는대로 살아야지."

상급자인 권경상 병장의 말에 이 상병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후
파병 부대에 속한 장병들에게 예외없이 지급된 안내 책자를 들여다
보았다. 아랍권에 속해 있음에도 상당한 서구화가 이루어진 이집트
라지만 주의해야 할 것은 주의해야 하는 법. 그 때문에 책자의 내용
은 주로 이집트 현지의 관습이었다. 대략 살펴보면 다음과 같았다.

1.반바지와 같은 옷은 착용을 피하라. 신체 노출은 이슬람권의 사람
에겐 불쾌함을 줄 뿐이다.
2.성직자와 여성을 함부로 촬영하는 것은 큰 결례이다.
3.서구화가 진행된 나라에선 자연스럽게 여기는 애정 표현들은 이슬
람권 국가에선 삼가는 것이 좋다.
4.이집트의 유명한 밸리댄스는 참관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아무리
유명하다지만 이집트인 전체가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좋아하지는 않
기 때문이다.
5.이슬람권에선 돼지 고기와 음주를 자제하라.-이집트에선 구입이
완전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대놓고 즐기지 말라.-

그렇고 그런 내용의 안내 책자를 도로 배낭에 집어 넣은 이한성
상병은 자신들을 환송해 주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
자 씁쓸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지극히 감정적이고 일시적인 국민의
여론보다는 국익 확보가 먼저라는 정부의 태도 때문에 전국은 크고
작은 시위로 들끓고 있었다. 심지어 정부에선 승선 당일 이집트 파
병 장병들의 가족이 부산항에 출입하는 것을 불허했다. 장병들의 입
장에선 이래저래 기분이 매우 심란해질 수밖에 없었지만 4박 5일간
의 휴가를 받아서 보낸 만큼 큰 불만은 없었다.

"시민들은 우리를 환송해줄 생각이 전혀 없나 봅니다."
"신경 쓰지말게. 우린 그걸 기대하고 떠나는 게 아니잖아?"

미리 출항해 부산 앞바다에서 대기중인 LPH-1 한라에 마악 착함
한 EH-101 멀린 수송헬기에서 내린 정재석 대장은 특전사 특임대
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함교로 향하던 중 해경 경비정에 의해 진로
를 차단당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타고 있는 어선들이 눈에 들어오자
김훈동 중장에게 그렇게 반문했다.

"한라에 승선하신 걸 환영합니다."
"만나서 반갑네."

마성식 제독과 한라의 함장인 황석준 대령으로부터 환대를 받은
정 대장과 김 중장은 악수를 주고 받았다.

"일단 시간이 남는 편이니 두 분에게 한라의 내부를 안내해 드리겠
습니다."

곧 황 대령의 안내를 받아 내부 견학에 나서게 된 두 장군은 계단
을 따라 내려가고 일직선으로 나 있는 통로를 따라 이동한 후 넓직
한 공간에 격납된 각종 군용 차량들을 바라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하
였다.

"대단하군. 이제 우리군도 구색을 갖추었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었습니다. 이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지요."
"그러고보니 이번에 출항할 함대엔 해군 최초의 이지스 순양함인
광복함도 동행한다고 알고 있는데……."
"그 건과 관련해선 미해군의 요청이 매우 강했습니다. 자기들의 부
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야 좋으니까요. 게다가 이번 기회에 광복함이
실전 경험을 쌓게 하는 것도 나쁠 것이 없습니다."

황 대령의 얘기에 정 대장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를
표시했다. 곧 황 대령은 해병대원들이 승선해 대기중인 구역으로 안
내하였다. 갑자기 통보도 없이 나타난 정 대장 일행을 본 해병대원
들은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부동자세를 취
하였다.

'웬 일로 별이 떴지?'
'에이 썅! 지숙이한테 편지를 어떻게 써야 좋을지 뒷골이 땡기는 판
에…….'

해병대원들은 속으로 그렇게 불만을 품으면서도 겉으로는 아무 내
색도 하지 않았다. 해병들의 그같은 심정을 잘 알고 있는지 정 대장
은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지시하였다.

"편히 쉬어. 각자 하던 일이나 하게."

그렇게 말하자 해병대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의자나 침대에 앉
아 짐을 정리하거나 편지를 쓰는 등 하던 일을 다시 하였다. 잠시
그들을 돌아보던 정 대장은 해병대원 한 명이 근심에 쌓인 표정을
짓고 있자 그에게 다가가 물음을 던졌다.

"병장,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
"해병 박, 지, 석! 고민 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게. 약속하건데 아무 책임도 묻지 않겠네."
"실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박지석 병장이 그와 같은 대답을 던지자 주위가 일순 조용해졌다.
물론 정 대장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좌중을 돌아본 정 대장은 큰 목
소리로 말하였다.

"모두들 무사 귀환 여부에 대해 걱정이 많을 것이다. 나 또한 귀관
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한 가지 약속한
다면 운이 나쁘지 않는 한 귀관들 다수가 사지 멀쩡하게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절대로 겁먹지 말고 군무
에 임하라."

정 대장은 그렇게 말한 후 해병들의 경례를 받으며 일행들과 함께
자리를 떴다.

2010년 05월 25일. 화요일. 00시 30분. 이집트 카브르 아쉬 샤리프

짙게 깔린 구름의 바다 위로 검은 괴조 한 마리가 날고 있었다. 같
은 무게의 금보다도 더 비싸다고 알려진 B-2A 스피리트 스텔스 폭
격기였다. 아군 전투기의 호위를 전혀 받지 않은 채 리비아군 점령
하에 놓인 이 지역 상공에 침투한 것이었다. 전익기가 지닌 특유의
외형 덕분에 언론에서 미래적인 항공기의 전형으로 심심치않게 거
론하는 이 폭격기는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무기가 아니었다. 그 역
사는 2차 대전때부터 시작되는데, 미국과 독일이 각각 개발중이던
YB-35와 Ho-229는 종전의 상식을 깬 외형을 지녔었다. 이중 노스
롭사를 설립한 노스롭 형제가 고안해낸 YB-35는 그 유명한 YB-36
과 경쟁했지만, 종전에 따른 예산 감축에 따라 마틴사(록히드에 합
병되기 훨씬 전이었다.)에 할당될 생산 물량은 취소되었지만 개발은
계속되어 시험기가 비행에 성공하고, 제트화가 이루어져 YB-49로
개칭되었다. 전익기가 지닌 비행 특성에 힘입어 당시 어떤 제트 폭
격기보다도 항속성능이 뛰어났던 YB-49는 군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한국전쟁 휴전에 따른 예산 감축과 잦은 고장, 기술상의
난제를 풀지 못해 결국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
예산상의 문제와 잦은 고장은 제쳐두고라도 YB-49가 처했던 기술
상의 난제란 무엇이었을가? 그것은 전익기가 지닌 어려운 조종성을
보완해줄 좋은 수단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지금처럼 효과적으로 비
행을 통제해줄 좋은 성능의 컴퓨터가 나오지 않았던 때라 YB-49는
결국 사장되어져야만 했고, B-2가 등장할 때까지 전익기 개념은 길
고도 긴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었다.

"해리, 준비 됐나?"
"물론입니다. 그쪽은 어떻습니까?"
"난 언제나 준비 완료다."

계기판의 다용도 디스플레이에 시현된 목표에 대한 정보를 비행
시작 전에 지급받은 작전 계획서와 대조한 도널드 호프만 중령은
무장 상황을 점검하였다. 16발의 2000파운드급 JDAM인 GBU-29의
상태가 양호함을 알리는 표시를 확인하고 나서도 중령의 얼굴에선
긴장감이 가시지 않았다. 임무가 성공적으로 끝나기 전까진 안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얼마 후 B-2A의 폭탄창이 개방되기 시작하였고
거기에 발맞추어 폭탄창 개방 경보음이 울렸다. 이쪽에서 먼저 드러
내지 않는 한 탐지하기 지극히 어려운 B-2A였지만, 무장 투하에
앞서 반드시 행해야 할 폭탄창 개방은 필연적으로 상대편 레이더에
노출되게 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일단 시작했으니 끝을 내야 했으
므로 두 사람이 탑승한 B-2A는 가져온 GBU-29를 차례차례 투하
했고, 리비아군이 정확한 위치를 알아채기 전에 폭탄창을 폐쇄한 후
지정된 퇴각 루트를 따라 비행하기 시작하였다. 레이저 유도폭탄과
달리 GPS에 의해 유도되므로 위험 지역 상공에 남아 레이저로 계
속 조준할 필요가 없는 GBU-29는 지정받은 고정 표적을 향해 아
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낙하하였다.
가장 먼저 폭탄이 명중한 곳은 리비아군의 탄약 야적장이었다. 각
종 포탄과 총알이 가득 쌓인 곳에 폭탄이 떨어진 덕분에 곧 엄청난
대폭발과 함께 지면이 뒤흔들렸다. 그리고 해당 지점에선 핵폭탄이
터졌다는 착각이 들게 하고도 충분할 버섯 구름이 피어올랐다. 그곳
뿐만이 아니었다. 리비아군의 야전 차량 수리소와 아군의 전자정보
수집을 통해 지휘소로 파악된 벙커에도 폭탄이 떨어졌고 엄청난 폭
음과 폭발이 그 뒤를 이었다.

"와우~. 이거 참 대단한데요. 하나도 빚나가지 않았어요."
"이번엔 민간인들이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나저나 이집트군은 언제부터 반격에 들어간다고 합니까?"
"한국군이 도착하는대로."
"요즘 참 지루합니다. 느긋하게 폭탄을 가져와서 떨구는 것 까지는
좋은데 너무 자주 이러니까 밤에 잠이 오질 않습니다."
"그냥 그러려니해. 우린 그만큼 고생하는 대신 나라에서 특별 수당
을 주니까."

2010년 05월 25일. 화요일. 01시 00분. 이집트 카이로

카이로 서부 공군기지의 밤은 언제나 그렇듯 분주하였다. 지상 요
원들이 항공기를 정비하고 무장을 장착시키거나 급유하는 등 바쁘
게 움직이는 동안 F-117A 나이트 호크 공격기 편대가 이륙을 준비
하고 있었다. F-22A, F-35와 같은 쟁쟁한 신형 스텔스기들이 등장
한 와중에도 이 공격기는 현역의 위치를 지켰다. 실용 스텔스 군용
기의 첫 주자인 이 공격기는 첫 시작인 만큼 문제가 없지 않았는데
바로 조종사의 입장에선 시야가 좋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유는 간단
했다. 그 유명한 밴 리치가 이끄는 록히드 마틴의 스컹크 웍스가 이
기체를 개발할 때 겪은 문제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인데, 그
가운데 하나가 조종석의 형상으로 레이더에 대한 피탐지성을 높이
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시야를 희생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F-117이
개발되기 시작한 1970년대는 컴퓨터는 물론 전자계산기조차 귀했던
시절이어서 스컹크 웍스의 개발진은 F-117의 외형을 각진 형태로
만들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천만 중 다행이라면 비행 제어 컴
퓨터가 탑재된 덕분에 비교적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 공격기 편대의 지휘관인 제임스 칸 중령은 계기판의 다기능 디
스플레이를 통해 기체의 전반적인 상황을 확인한 후 이륙을 위해
공격기를 활주시키기 시작하였다. 이번에 그의 편대가 맡은 임무는
리비아군 점령지내에 자리한 지휘소와 유류 저장고 공격이었다. 어
느새 활주로를 박차고 떠오른 F-117이 마악 선회하려는 순간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보병 휴대형 지대공 미사일이 날아든 것이었
다. 칸 중령은 이를 확인하자 열추적 미사일 교란에 이용되는 플레
어를 연속 살포함과 동시에 적외선 재머를 가동하였다. 공격을 걸어
온 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F-117의 특성을 크게 간과한 것 같
았다. F-117은 레이더뿐만 아니라 적외선 피탐지책도 적용받은 공
격기여서 열추적 미사일로도 잡기 힘들었다.

"관제탑, 여기는 배트 리더. 적에게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배트 리더, 상황을 보고하라.
"다행히 아무 피해도 입지 않았다. 빨리 조취를 취하기 바란다."
-방금 기동 타격대와 경비대를 출동시키라고 했다. 안심하고 임무
를 수행하라.
"알았다."

느닷없는 사태에도 불구하고 침착함을 잃지 않았던 칸 중령은 한
숨을 쉰 후 지정된 항로로 기수를 돌렸다.

"씨발! 왜 우리가 이 짓을 해야 하냐고?"
"이런 곳에서 느긋하게 지내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감수해야
지."
"이제 이곳에서 지내는 건 죽는 것 이상으로 지겨워.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운영상 병장이 속한 1소대는 비상 사이렌이 울리자 누구보다도 먼
저 미사일이 발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알 마흐디야에서 벌어진 싸움이 끝난 후 8공수여단 장병들은 7군단
본대가 도착할 때까지 공항 경비임무를 맡아 이곳에서 지내던 중
이번 일에 휘말린 것이다. 운영상 병장은 자기 옆에서 뛰고 있는 구
준삼 일병에게 나직이 말하였다.

"준삼아, 너무 앞서지 마라. 여기까지 왔는데 괜히 나서서 죽을 필
요는 없다."
"예. 알겠습니다."

곧 미사일 발사 현장에 도착한 그들이 발견한 것은 버려진 미사일
발사기였다. 누군가가 무심코 그것을 집으려고 하자 경험 많은 고참
부사관 한 명이 소리쳤다.

"안돼! 건드리지마!"

그것으로 끝이었다. 발사기에 교묘하게 부착된 폭발물이 폭발하자
발사기를 건드린 병사는 배에서 내장이 튀어나오고 몸 전체가 피투
성이가 되는 등 처참하기 그지없게 바닥에 쓰러졌다. 살릴 가망이
없었다.

"으, 으아아……."
"이 빌어먹을 자식들……."

모두가 이를 가는 가운데 미사일을 발사한 일단의 괴한들은 준비
한 차에 몸을 싣고 도주하는 중이었다.

"실패했습니다."
"제길……."

차 안에 타고 있는 이들은 전원 한국어를 사용하는 동양인이었다.
이들의 본래 목적은 기지에 침투해 파괴 활동을 벌이는 것이었지만
경비가 매우 철저해 이를 포기하고 차선책으로 F-117을 노리고 지
대공 미사일을 쏜 것이었다. 하지만 미사일은 꼴사납게 빗나갔고 그
들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버린 것이다. 그런 가운데 그들이 향하는
방향에서 다른 두 대의 한국형 험비 고기동차가 나타났고 차체를
덮고 있는 캐빈 위에 거치된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야간 암시장치
와 레이저 조준기가 부착된 기관총의 점사가 가해지자 사륜 구동차
의 전방석 유리에 십 수개의 구멍이 뚫림과 동시에 타고 있던 두
명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빠른 속도로 달리다 통제를 상실한 4륜 구
동차는 곧 모래 바닥 위에 전복했고, 고기동차 두 대에서 내린 중정
의 특별행동대와 육군의 707특임대원들이 시신 확인과 포로 확보에
나섰다.

"철민이, 잘했어."
"과찬이십니다."

철민은 상관인 임한수의 칭찬에 어깨를 으쓱하며 차에서 끌어내려
지는 시체와 포로들의 얼굴을 확인하자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그의
반응에 임한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음을 던졌다.

"아니, 자네 왜 그러나?"
"제, 제가 아는 사람들입니다……."

철민은 그렇게 답하고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제발 이런 일
이 벌어지기를 바라지 않았었는데…….

'박, 네가 말한 대로였구나.'

2010년 05월 25일. 화요일. 01시 50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북서쪽
100Km

레이더 콘솔 앞에 앉아 있는 조슈아 워커 소령은 길게 하품을 하
였다. 그가 타고 있는 신형 조기경보기 E-10은 E-3가 공중 감시를,
E-8이 지상 감시를 맡던 것을 하나로 통합할 목적으로 개발된 기체
였다. 하지만 완전한 능력 발휘는 불가능해서 현재 배치된 것은 공
중 감시만이 가능하고, 지상 감시 임무도 소화해내려면 5년을 더 기
다려야만 했다. E-10의 두드러진 특징 중에 하나는 E-3를 비롯한
여러 공중 감시용 조기경보기들의 외형을 대단히 불균형적으로 만
든 기계식 로터돔 레이더가 아닌 대단히 스마트한 전자 주사식 레
이더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전자 주사식 레이더가 지니는 큰 이점은
특정 지역에 대한 집중 감시와 광대역 감시를 동시에 행할 수 있고
정비 유지가 용이하다는 점에 있다.
워커 소령은 졸음을 쫓기 위해 보온병에 든 커피를 머그 잔에 따
른 후 이를 마셨다. 따분하고 지루한 임무 비행이지만 이런 일은 죽
을 가능성이 늘 따라 다니는 전투 임무에 비하면 정말 편하고 안전
했다. 한가지 큰 문제가 있지만…….

"야, 너 살 얼마나 쪘냐?"
"5Kg."
"그래? 이탈리아 음식은 너무 맛있어서 그만 먹을 맘이 안 난다니
까."
"그러고보니 이탈리아 젊은이들은 정말 이상해. 그렇게 좋은 피자와
파스타를 만드는 식당이 지천에 널려 있는데 밖에서 먹는다고 하면
맥도날드나 KFC로 가니 말이야."
"피차 일반이야."

잠시나마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옆에 앉은 동료와 잡담을 나누며
콘솔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워커 소령은 아직 눈에 띌 정도는 아
니지만 갑자기 늘어난 몸무게에 비례하듯 튀어나올 배가 신경 쓰였
다. 음식 먹기를 좋아하는 그의 성격상 한 번 살이 찌면 빼기가 그
만큼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그의 눈 앞에 자리한 콘솔의 디
스플레이 화면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나타났다. 처음엔 비행기로 보
였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은 곳이 있었다. 곧 이집트 전역에 산재한
공군 기지에 관한 정보를 살펴본 그는 이내 당혹감에 빠진 표정을
짓더니 콘솔 옆에 설치된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2010년 05월 25일. 화요일. 01시 55분. 이집트 카이로

이집트 주재 한국 대사인 오삼수는 연신 울리는 전화 소리에 단잠
을 깨고 말았다. 그 옆에 누워서 자고 있던 오 대사의 부인도 마찬
가지였다. 곧 수화기를 집어든 오 대사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투로 말하였다.

"이집트 주재 한국 대사 오삼수입니다. 아, 박 비서 아닌가? 그래
무슨 일로 이런 한밤에 전화를 했나? 뭐야? 그게 정말인가? 알았
네. 그렇게 하겠네."

그렇게 말한 후 오 대사는 통화를 끊었고 눈을 부비던 그의 부인
이 궁금한 나머지 물음을 던졌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리비아가 탄도탄을 발사했대."
"예? 그게 정말이에요? 양측이 미사일을 쏠 일은 없을 거라고 당신
이 말했잖아요……."
"전쟁이란 상황에선 처음 생각한대로 돌아가는 경우는 어디에도 없
어. 뭐, 일이 끝나는 대로 미국의 보복은 엄청 거칠어지겠지만……."

흐릿하게 얘기를 끝낸 후 급히 옷을 챙겨 입기 시작한 오 대사는
부인에게 말하였다.

"빨리 애들 깨워."

대사 가족이 피신을 준비하는 가운데 카이로 시내 곳곳에선 공습
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경찰차를 비롯 대민 방송을 할 수 있
는 관공서 차량들은 사방을 돌아다니며 당부하였다.

-시민 여러분. 화학탄 공격에 대비해 집의 창문을 절대로 열어놓지
마십시오. 바깥 출입도 삼가하시기 바랍니다. 화학탄 공격이 실제로
가해질 경우 제독 작업이 완료되기 전까진 밖으로 나오시면 안 됩
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화학탄 공격에 대비하라는 방송에 카이로 시민들은 침착하게 문이
란 문은 모조리 닫고 지급받은 방독면을 착용하면서 일이 끝나기만
을 기다렸다. 개전 초기의 혼란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리비아군이 발사한 전술 탄도탄으로부터 카이로와 그
일대를 방어하기 위해 배치된 미군의 PAC-3 포대에선 대응 준비에
나서고 있었다.

"알-파타는 카이로를 향해 낙하할 것이 확실합니다."
"E-10과 위성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에 의하면 지금까지 발사된 탄
도탄의 수는 종류에 상관없이 모두 12발 입니다."
"이놈들이 단단히 작정한 모양이군."
"먹지 못할 감 찔러나 보자는 생각에서겠죠."
"크……."

포대 지휘관은 그렇게 이를 갈며 자기 앞에 놓인 디스플레이에 뜬
실시간 상황도를 바라보았다. 알렉산드리아를 목표로 한 공세가 완
전 실패로 돌아가자 완전히 꼬리를 내린 것 같았던 리비아의 뜻하
지 않은 얍삽이는 자칫 잘못하면 엄청난 재앙을 부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PAC-3의 운용 요원들은 계급의 높고 낮음을 떠나 미
사일 완전 요격에 대해 자신감을 품고 있었다. 어느 아시아 국가의
바보 이상으로 더하게 구는 자칭 진보 언론과 학자라는 이름을 달
고 있는 자들로부터 필요 이상으로 터무니없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PAC-3는 엄연히 뛰어난 무기였다. 러시아가 열심히 홍보와 판매에
열을 올리는 S-300과 달리 패트리어트는 PAC-1에서부터 실전 검
증을 통해 문제점을 지적받고 지속적으로 개량을 받았다는 점만으
로도 신뢰할 수 있는 무기였다. 게다가 초기 도입비용이 싸다는
S-300은 장기간의 사용을 고려하면 불리한 면이 있었다. 운용 유지
비용이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것이다.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난 후 16발의 미사일을 수납한 발사기에서
PAC-3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무게가 315Kg인 이 미사일은 빠른
속도로 가속해 고고도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하였다. 이 미사일의 탄
두엔 작약이 없는 대신 본래 목적인 탄도탄과 순항 미사일 격파에
적합하도록 표적과 충돌하기 전에 펼쳐지는 24개의 금속 산탄으로
확산하도록 되어 있었다. 바로 이전 형식인 PAC-2 GEM과 비교해
대폭 경량화되고 부피가 줄어든 대신 빠른 속도를 추구한 이 미사
일은 180개의 고체로켓 모터를 가동해 자세를 제어한 후 목표로 지
정받은 알-파타(Al-Fatah) 탄도탄을 향해 돌진하였다. 24개의 금속
산탄은 탄도탄을 탄두부부터 날려버렸다. 곧 상공엔 섬광이 번쩍였
고 그 뒤를 이어 또다른 PAC-3가 탄도탄을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두 미사일은 간발의 차이로 빗나갔고, 탄도탄은 계속 낙하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른 PAC-3가 이를 곧 저지하였다.

"각하, 이제 적의 탄도탄 공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국방부 장관이 자신 있게 탄도탄 완전 요격을 자신하는 가운데 각
료들은 흥분과 긴장이 뒤섞인 표정을 지으며 대형 디스플레이에 실
시간으로 뜨는 적외선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샤즈리 대통령은 언
제나 그렇듯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다른 각료들처럼 화면을 주시하
는 중이었다. 얼마 후 마지막 미사일이 폭발하는 것을 확인한 그들
은 환호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각하, 천만 다행입니다."
"전쟁이 끝나는대로 미사일을 요격한 미군들을 따로 불러서 표창해
야겠군요."

대통령은 그러고 나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만큼 긴장했다는 표시였다. 바로 그때 국방장관 앞에 놓
인 전화기가 울렸고 그는 잠시 긴장하면서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여보세요. 뭐라고? 알았네. 곧 조치를 취할테니 빨리 수습하게."

대통령과 다른 각료들이 의아해하는 가운데 수화기를 내린 아미르
오미아드 국방장관은 잠시 헛기침을 하면서 보고하였다.

"방금 격추된 미사일의 파괴되지 않은 잔해가 이슬람 지구에 추락
했다고 합니다."
"피해는 어느 정도입니까?"
"그것이… 파괴되지 않은 잔해가 화학 탄두여서……."

그 말을 듣고 대통령과 각료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제길, 지옥이 따로없군."

긴급 출동한 이집트 육군의 화생방전 부대원들은 방호복을 착용한
채 추락한 화학탄두로 인해 사상자가 즐비한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
며 생존자 회수와 사체 처리, 제독 임무를 수행하느라 정신이 없었
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방호복을 착용한 공무원과 자원 봉사자들이
군인들의 업무를 도와주었지만 일손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대체 왜 이렇게 많은 사상자가?"
"여기는 여러 가지로 사정이 나쁜 서민들이 사는 곳입니다. 정부에
서 대비책을 열심히 가르쳐줘도 막상 일이 닥치면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BBC 특파원인 헨리 콥은 자신의 눈에 들어온 참혹한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현지 안내인은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의 눈
빛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사망자들은 엄청난 고통에 시달린 듯
눈이 뒤집혔거나 팔과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 있는 등 기괴한 몰골
이 되어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다. 어떤 의미에선 화학무기는 참으로
공평한 무기다. 애, 어른 가리지 않고 모조리 죽이니까. 게다가 일반
고폭탄두로 이정도 효과를 거두려면 얼마나 많이 쏴야 할까? 가난
한 나라의 핵무기란 표현이 결코 그냥 붙은 것은 아니리라…….

2010년 05월 24일. 월요일. 19시 30분. 미국 워싱턴 D.C

"그 심정 이해합니다. 필요하다면 저희가 대신 갚아드릴 수도 있습
니다. 선택은 귀측에 달려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입장을 정리할 때
까지 기다리기로 하지요."

그 말을 끝으로 마이클 크리치거 대통령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각료들이 통화 결과를 궁금해하는 가운데 좌중을 살핀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그쪽은 동일한 수단으로 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약했습니다."
"천만 중 다행이군요."
"양측이 화학무기가 든 탄도탄을 서로에게 쏘아댄다면 전쟁이 걷잡
을 수 없게 될겁니다."
"안심할 때가 아닙니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집트측에선
똑같은 것으로 갚지 않는 대신 그보다 더한 보복을 가해줄 것을 우
리에게 요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신 이유가……?"
"방금전 통화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샤즈리 대통령은 일단 그
건에 관해선 생각해보겠다고 했습니다만……."

거기까지 말하고는 크리치거 대통령은 턱을 괸 채 고민에 빠졌다.
샤즈리 대통령은 담담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보복을 행할지에
대해선 신중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가 기억하기론 샤즈
리 대통령은 자기 입으로 생각해보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을 반드시
실행에 옮기는 자였다. 다시 말해 같은 화학무기로 보복하지는 않겠
지만 다른 수단을 배제하지는 않겠다고 했으니 보복에 대한 의지는
여전히 존재하는 셈이었다.

2010년 05월 25일. 화요일. 04시 00분. 아덴 만(Gulf of Aden)

아덴 만은 인도양에서 홍해로 들어가기 위한 첫 관문으로 지정학
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이곳에 접한 국가들은 지부티, 예멘, 소말리
아 세 나라였다. 지부티의 경우 프랑스 외인부대가 파견되어 작전을
수행했고, 예멘엔 친서방 노선을 추구하는 민주주의 정부가 집권하
는 중이다. 소말리아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아덴 만의 중요성을 고
려한다면, 미국 정부가 대외적으로 내세운 UN과 국제사회의 요청
에 입각한 인도적 측면 외에 대중동, 동아프리카 전략을 위한 포석
의 성격도 있었다. 이런 복잡다단한 배경을 지닌 아덴 만에는 오늘
도 변함없이 수많은 배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들 중 한 척인 리비아
국적의 민간 화물선 카탑의 선원과 해군 수병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바다에 투기하고 있었다. 바로 기뢰였다. 선장은 연신 불
편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옆에 서서 작업을 지켜보고 있는 해군 장
교를 바라보았다. 30분전에 카이로에 가해진 화학무기 공격에 관한
소식이 날아들자 그는 매우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화학무기
사용만으로도 엄청난 지탄을 받을 일인데 세계 각국의 선박이 오가
는 아덴 만에 기뢰를 부설한다면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스러웠
던 것이다.

"꼭 이래야만 합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입니다."
"엄청난 보복이 뒤따른다고 해도 괜찮겠소?"
"저희는 군인입니다. 명령 받은대로 행할 뿐이죠."
"이번 전쟁 자체가 미친 짓이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어떡합니까? 그 윗 사람들이 그렇게
하라는데……."

선장의 말에 장교는 그렇게 대꾸한 후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바로
그때 헬기 특유의 로터 회전음이 들려왔고, 주위를 경계하던 선원
한 명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헬기가 동쪽에서 우리 쪽으로 날아옵니다!"

그와 같은 보고를 받자 장교가 마이크를 잡고 지시하였다.

"모두 무기를 준비하라. 놈들은 우리 정체를 눈치챘을 것이다."

화물선에 승선한 수병들이 전투 준비에 나선 가운데 미해병대의
UH-1Y 헬기 편대는 서치라이트를 켜 갑판을 철저히 살핀 후 적당
히 거리를 두고 나서 경고 방송을 하였다.

-테러리스트들은 들어라. 너희는 미합중국과 이집트 정부가 전쟁
수역으로 선포한 아덴 만에 기뢰를 무단 살포했다. 즉시 무장을 해
제하고 투항하라. 그렇지 않으면 저항 의사로 간주, 전원 사살하겠
다.

그와 같은 요구에 대한 리비아군의 대답은 보병 휴대형 지대공 미
사일이었다. 수송선에서 SA-16 이글라가 발사되자 이 미사일이 내
는 불꽃을 확인한 UH-1Y의 조종사는 플레어를 연속 살포하고 적
외선 재머를 가동해 미사일을 빗나가게 만들었다. 추가 공격에 대비
해 뒤로 더 물러난 UH-1Y들은 일렬 횡대를 이루더니만 가져온 로
켓탄을 일제히 발사하였다. 2.75인치 로켓탄들은 갑판 상부와 선체
곳곳에 명중해 폭발하였고 거기에 비례하듯 수많은 선원과 수병이
목숨을 잃었다.

"이쯤이면 됐어. 이대로 돌입한다."

UH-1Y들은 곧 수송선에 접근하였고 아직 살아남은 적을 향해 측
면에 거치된 미니건이라고 불리는 7.62mm 6총신 기관총이 불을 뿜
었다. 19세기에 의사인 개틀링에 의해 개발된 수동식 기관총에다 2
차 대전 이후 빠른 발사 속도의 항공기용 고정 무장을 찾던 병기
개발자들의 눈에 띄어 모터를 다는 등 개조를 받아 분당 발사속도
가 획기적으로 늘어난 벌컨 시리즈 가운데 화력으로 따지면 막내에
해당하는 이 무기의 그 끔찍한 발사속도는 미트쵸퍼(고기 다지는
기계)라고 표현해도 손색이 없었다.

"어, 어서 쏴!"
"지금 조준하는 중이야. 제발 보채지마."

어느 리비아군 병사가 RPG-7을 준비하자 이를 확인한 UH-1Y의
기장이 미니건 사수에게 지시하였다.

"저기 저놈들부터 날려버려."

그러자 사수는 군말없이 미니건의 총구를 RPG-7을 휴대한 수병에
게 겨눴다. 곧 미니건의 총신이 회전하면서 총알을 내뱉었고 RPG
를 휴대한 수병과 그 주위에 있던 다른 수병들을 단숨에 박살내버
렸다.

"아주 고기가 따로없구만."

단안식 야시경을 착용한 채 UH-1Y를 모는 래리 사이먼 상사는
널부러진 시신들이 눈에 들어오자 그렇게 말하고는 조종간을 움직
여 기체를 갑판 바로 위로 이동시켰다.

"가자!"

병럭 수송 공간에 탑승한 채 돌입 명령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던
포스리컨 대원들이 레펠링을 시작하였다. 그중 한 명인 조이 허쉬
중위는 갑판에 내리자마자 마악 선실문을 열고 뛰어나와 AK-74를
쏘려던 리비아 수병을 향해 자신의 주무장인 P-90 기관단총의 방아
쇠를 당겼다. 십 수발의 5.7mm탄이 이마 한 가운데와 가슴에 박힌
수병은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
다. 대원들이 갑판 위에 속속 착지하는 가운데 잠시 주위를 살핀 소
대장이 환기구로 여겨지는 구멍에 최루탄을 까넣은 후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적지 않은 수의 선원과 수병들이 콜록거리며 갑판으로 기
어 올라온 것이다.

"이것들 완전히 엉망이잖아?"
"중위, 아직 좋아할 때가 아니다. 2, 3분대는 선교와 화물선 내부를
조사해. 나머진 이녀석들을 감시한다."

허쉬 중위는 수색 명령이 떨어지자 자기 휘하의 2분대원들을 데리
고 선교부터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철제 계단을 따라 올라간 대원들
의 눈에 들어온 것은 로켓탄 공격을 받아 성한 곳을 찾기 힘든 구
조물과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널부러진 시신들이었다.

"생존자는 없나?"
"전원 사망입니다."
"그러면 아래로 내려간다."

다시 계단을 따라 갑판 아래로 내려간 허쉬 중위 일행은 통로를
따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바로 그순간 둔탁한 금속
성 소음이 들려왔고 본능적으로 위협을 직감한 중위는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피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AK-74가 불을 뿜었다. 여기저기에 총알
이 박히는 가운데 프란시스 밀러 중사가 침착하게 자신이 휴대한
OICW로 20mm 공중 폭발식 유탄을 발사하였다. 발사된 유탄은 정
해진 거리까지 날아간 후 허공에서 폭발해 소총을 쏘던 리비아 해
군 수병 서넛을 단박에 쓰러뜨렸다.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난 중위 일
행은 화물실 내부를 수색하다가 기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위님, 큰일 났습니다!
"중위, 왜 그리 호들갑인가?"
-이녀석들이 배에 폭탄을 설치했습니다. 지금 시한 장치가 작동중
입니다.
"뭐야?"

헤드셋을 통해 허쉬 중위로부터 배에 폭탄이 설치됐음을 보고받은
제이크 햄튼 대위는 매우 황당해하면서도 침착하게 지시하였다.

"중위, 빨리 부하들을 데리고 갑판으로 올라와. 우린 더 이상 여기
있을 필요가 없다."
-알겠습니다.

곧 햄튼 대위는 상공에 대기중인 헬기를 호출하였다.

"덤보, 여기는 믹. 적이 배에 폭탄을 설치했다. 즉시 우리를 회수해
주기 바란다."
-알았다. 믹.

대위는 잠시 포로들을 바라보다가 애써 외면하였다. 미안하지만 이
제 그들의 목숨은 그들 자신이 챙겨야만 했다. 어차피 이번 작전의
목적이 포로 획득보단 리비아 국적 선박의 기뢰 부설 증거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더 이상 그 짓을 못하게 무력화시키는 것이기 때
문이었다. 얼마 후 2, 3분대가 갑판에 올라왔고, 그들을 비롯한 포스
리컨 1개 소대 병력은 화물선에 돌입하기 위해 타고 온 UH-1Y에
다시 몸을 싣고 미련없이 떠났다.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 화물선은
대폭발을 일으키며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수 십명의 목숨을 삼킨 채
로…….

"대위님, 꼭 그래야만 했습니까?"
"중위, 이번 건은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저들이 스스로 택한
죽음이야."
"……."

허쉬 중위는 직속 상관인 햄튼 대위의 냉정한 태도에 밝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엄청난 연기와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화물선을
바라보았다.

2010년 05월 25일. 화요일. 14시 00분. 한국 서울

서울 시청 앞 광장엔 여기저기서 모여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
루고 있었다. 이들의 면면은 매우 다양하였다. 대학생 티가 짙은 청
년들, 중년 직장인, 주부, 노인 등 대한민국에서 법적인 책임과 권리
를 누릴 수 있는 성인이란 성인이 모두 모인 것이다. 이번 집회는
보수 진영과 그들과 비슷한 노선을 추구하는 이해단체들이 준비한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진보라고 불리고 싶어서 안달이 난 자칭 시민
단체와 자기 제자들을 볼모로 삼기 좋아하는 전교조 등의 단체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집회를 열고 있었고, 이는 양측의 충돌을 부
를 수 있었다. 물론 정부도 바보는 아니어서 길목마다 전경을 배치
하고 효과적인 현장 감시를 위해 헬기를 띄우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지금도 걸핏하면 파병 반대를 외치는 진보라고 불리기 좋아하는
놈들은 제발 입다물고 조용히 있어야 해요! 어차피 시작한 일 확실
하게 끝내고 돌아오라고 해도 모자를 판국에 그것들은 맨날 촛불이
나 들고 나약하기 짝이 없게 군단 말입니다! '파병도 하지마라, 국
방비도 늘리지 말고 줄여라'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그것들
은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이 어떤지 모르고 있어요!

그 말이 끝나자 집회 참가자들이 호응하듯 박수와 환호를 보내었
다. 곧 연사들의 연설을 끝으로 보수 진영은 사전에 관계 기관에 통
보한 대로 행진을 시작하였다. 물론 그것은 진보 진영도 마찬가지였
다. 전경들은 어느새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양측을 주시하였다. 공
교롭게도 양측은 서로의 행진이 끝나는 지점에서 마주보게 되어 있
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그 지점에도 전경이 배치되었지만 사태 발생
시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이런 가운
데 박수연은 고배율 카메라로 집회 광경을 찍던 도중 누군가의 얼
굴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행렬을 향해 뛰어갔다.

"박순일군. 여긴 웬 일이에요?"
"박 기자님?"
"순일군은 자기 말로 진보라고 했잖아요? 왜 보수 단체 집회에 가
담한 거예요?"
"이번 전쟁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요."
"형, 아는 분이세요?"
"그래. 인사드려라. 나하고 안면이 있으신 박수연 기자님이시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런데서 만나니 좀 그렇지만, 어쨌든 반갑습니다."
"저도 반가워요."

그렇게 서로 인사를 주고 받던 중 대열 앞이 시끄러워졌다.

"이 염병할 자식들아!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을 앞세워서 뭐하자
는 짓이냐?"
"수구 꼴통들은 가서 애나 봐라!"

감정이 격앙된 양측이 서로에게 거친 말들을 쏟아대는 것을 보고
박수연은 잠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다가 기자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고 카메라에 이를 담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보기엔 극우와 극좌나
거기서 거기였지만 극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전교조 등이 아직
여러모로 미숙한 중고등 학생들을 시위에 동원하는 것은 큰 잘못이
었다. 하지만 전교조측은 거기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은하야. 그냥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기분이 엄청 찜찜해."
"무슨 소리야? 일단 왔으니 자리를 지켜야지."

백지원은 서로 마주보게 된 양측의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지자 발
을 빼고 싶어했지만 유은하는 계속 남아 있으려고 했다. 하는 수 없
이 지원은 만약을 위해 여자 친구인 은아를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에
자리를 지키기로 마음 먹었다. 바로 그때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
다. 지원과 안면이 있는 학우 서넛이 화염병을 꺼내들더니 거기에
불을 붙이고는 보수측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집어던진 것이었다.

"화염병이다!"

보수측 지지자들은 날아드는 화염병을 피하기 위해 오던 방향으로
피했지만 운 없는 몇몇이 불길에 휩싸이고 말았다.

"사, 사람살려!"

몸에 불이 붙은 집회 참가자들이 도로 위를 굴러다니자 만일의 사
태에 대비해 소화기를 준비한 전경들이 달려와 불을 꺼준 후 들것
에 실어서 구급차에 태우는 기민함을 발휘하였다.

"좌익측이 화염병을 사용했다. 전원 브리핑 받은대로 강제 해산시켜
라. 사태가 더 커지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

경찰 지휘관으로부터 해산 명령이 떨어지자 각 지점에 대기하고
있던 전경들은 일제히 스크럼을 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강경 투쟁
을 추구하는 대학 운동권측이 저지른 실수로 상황은 진보라 불리우
기 원하는 이들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어졌다. 곧 좌익 시위대 곳곳에
서 쇠파이프가 하나 둘 나타났고 이를 휴대한 이들은 마치 약속이
라도 한 듯이 경찰에게 덤볐다.

"최루탄 발사!"

경찰의 해산 조치에 불응하는 좌익 시위대의 기세를 꺾기 위해 최
루탄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올랐다. 지면에 떨어진 최루탄에서 내뿜
는 최루가스에 노출된 적지 않은 집회 참가자들이 콜록 거리며 힘
을 못쓰는 반면 이럴 줄 알고 미리 방독면과 마스크를 착용한 흉기
소지자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 쇠파이프를 휘둘러댔다. 하지만
그들은 전경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곧 대열 여기저기가 무너지더
니 그들을 줄행랑을 쳤지만 반대편에서도 스크럼을 형성한 전경들
이 나타나 그들의 퇴로를 막았다. 처음엔 뭉쳐서 다니던 시위대는
어느새 겁에 질린 나머지 개미처럼 흩어졌지만 그들은 얼마 못가
해산 조치에 불응한 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곳곳에 숨어 있던 백골
단원들과 사복 경찰들에게 무더기로 검거당하였다.

"은하야! 빨리 뛰어!"

헉헉 거리면서 뛰고 있는 지원은 뒤쳐져 있는 은하가 걱정되지 않
을 수 없었다.

'저 바보, 진작에 내 말을 들었으면…….'

그렇게 속으로 여자 친구를 탓하던 지원은 그녀가 길 위에 넘어지
자 일으켜 세워주려고 했다. 하지만 운이 나빴는지 사방에서 최루탄
이 터졌고 두 사람은 연신 콜록거리며 걸어갔지만, 이내 바닥에 주
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전경들이 모든 도주로를 차단하고 있었
던 것이다. 결국 붙잡힌 두 사람은 체포된 사람들이 임시로 모인 곳
으로 연행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누군가가 은하를 손가락으로 가
리키며 일선 전경 지휘관에게 말하였다.

"이봐요. 여학생은 풀어주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맞아요. 여자는 한 번만 봐줘요."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은하만은 풀어주라고 하자 전경
지휘관은 머리를 잠시 긁적인 후 손짓으로 은하에게 그냥 가라고
했다. 은하는 잠시 안도한 표정을 짓고 나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냥 가. 난 상관없어."
"미안해……."

곧 은하는 근처에 있는 지하철 역으로 내려갔고 지원은 전경들에
게 붙잡힌 채로 계속 걸어가야만 했다.

2010년 05월 25일. 화요일. 09시 00분. 이집트 아인 알 마프키

-여기는 제주 바위, 전 편대원은 들어라. 적의 환영 인사가 있을 것
이다. 모두 마음 단단히 먹어라.
-라져.
-라져.
"라져."

고도 20000피트 상공을 날고 있는 이강돈 소령의 KF-16C 편대에
주어진 임무는 이집트군이 개전 초기에 리비아군에게 빼앗긴 지하
탄약고를 파괴하는 임무를 맡은 F-15K 편대를 위협할 가능성이 큰
지대공 미사일 사이트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번 작전엔 그
들만 투입되지 않았다. 이집트 공군의 F-16C들도 AGM-88 대레이
더 미사일과 공대공 전투에 대비해 암람과 사이드와인더로 무장하
였고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리비아 공군의 요격에 대비해 미공군
의 F-22A와 F-35A가 동행하였다. 얼마 후 이 거창한 스트라이크
팩키지를 탐지한 리비아군은 그간 꺼둔 추적 레이더를 가동하였다.
지대공 미사일을 쏘려는 것이다.

-미미가 비명을 지릅니다. 적이 우리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당황하지말고 훈련받은 대로 대처해. S-300을 쓰지 않는 한 놈들
은 우릴 잡기 힘들어."

그렇게 말한 후 이 소령은 계기판에 붙은 버튼들을 침착하게 조작
하였고, 그 직후 그가 조종하는 KF-16C로부터 AN/ALE-55 견인식
디코이가 사출되어졌다. 케이블로 예인되는 이 디코이는 리비아군의
레이더로부터 방출되는 레이더파를 복제해 이를 방출하기 시작하였
다. 디지털 디코더 기능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리비아군의 레이
더 운용 요원들은 레이더 화면에 전투기를 가리키는 엄청난 숫자의
휘점이 동시에 나타나자 큰 혼란에 빠졌다. 물론 그들도 디코이에
관해선 알고 있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였
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기 때문에 미사일을 발사
하였지만, 헛된 저항에 불과했다.

-명관아, 저것 좀 봐라.
-박물관에 있는 나이키보다 더 큰데요.
-생긴 걸로 봐서는 구닥다리 고아(SA-3 Goa) 같은데.
"잡담은 나중이다. 빨리 레이더부터 파괴해."
-예. 예.

곧 위치가 탄로난 레이더 사이트를 노리고 KF-16C 전투기들이
AGM-88 HARM(High speed Anti Radar Missile)을 쏘기 시작하였
다. 마하2의 속도로 비행하는 이 미사일이 날아오자 레이더 운용요
원들은 어떻게든 공격을 피하기 위해 레이더의 전원을 껐지만 함
(HARM)은 목표로 지정된 전파 발신원의 마지막 위치를 기억해 돌
진할 수 있는 무기였다. 영국군이 보유한 알람의 경우 함보다 더한
것이 목표 레이더가 전원을 끌 경우 아예 속편하게 엔진을 끈 채
후부의 낙하산을 펴고 천천히 내려오다가 본래 목표 혹은 다른 목
표가 전파를 발신하면 낙하산을 이탈시킨 다음 다시 엔진을 점화해
돌진할 정도였다.
미사일의 유도와 통제를 맡는 고정식 레이더와 그 통제차량에 두
발 이상이 내리꽂힌 함은 아예 그대로 뚫고 들어가 운용 요원들을
폭사시키고 장비를 완파시켰다. 만일에 대비해 레이더와 거리를 두
고 배치된 미사일과 발사기들도 화를 면할 길이 없었다. 이들의 머
리 위를 지나가기 시작한 일단의 F-16C 전투기들이 BLU-97 복합
효과탄 202발이 든 CBU-87을 투하하였고 이들은 설정된 고도에 이
르자 자탄을 흩뿌렸다. 지형에 따라서 그 효과가 달라지는 CBU-87
은 사막에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공격
받는 쪽 입장에선 이렇다 할 엄폐물이 없으면 피하기가 불가능하니
말이다. BLU-97은 사방에서 폭발하면서 미사일과 발사기, 그리고
운용 요원들을 가리지 않고 날려버렸다. 저공으로 비행해 공격을 걸
어올 항공기들을 저지하기 위해 기관포가 배치된 대공화기 진지들
도 사정은 비슷했다. 수 십명의 병사가 비명 한 번 제대로 못지르고
폭사당하는 동안 F-15K 전투기들은 본래 목표인 탄약고 파괴를 위
해 가져온 GBU-29를 일제히 투하하였다. 목표를 향해 점점 앞으로
나아가며 하강하기 시작한 GBU-29는 탄두부터 지면에 닿더니 그
대로 뚫고 들어가 콘크리트 방호층을 송곳으로 종잇장을 꿰뚫어버
리듯 관통한 다음 탄약고 내부에서 폭발하였다. 곧 엄청난 폭발 화
염과 함께 검은 연기가 치솟았고 이를 지켜본 모두가 탄성을 터뜨
렸다.

-굉장해! 연기가 계속 솟아오르고 있다. 멀리서도 볼 수 있을 것 같
다. 참 대단하다!
"잘했다. 이글."
-과찬이다. 그쪽이 엄호해주지 않았다면 거두지 못했을 전과다.
-한국친구들, 축하한다. 나로선 저렇게 대단한 광경을 보기는 이번
이 처음이다.

조종사들은 그렇게 자신들이 거둔 전과에 기뻐하면서 기수를 서쪽
으로 돌려 귀환길에 올랐다.

2010년 05월 25일. 화요일. 10시 00분. 이집트 카이로

"기자 여러분 이 화면을 보십시오. 우리 한국 공군의 F-15K가 투하
한 JDAM에 의해 탄약고가 폭발하는 순간입니다."

연단에 선 한국 공군의 배성남 준장이 그렇게 말하고는 손가락으
로 화면을 가리키자 기자들은 연신 탄성을 터뜨리며 화면을 바라보
았다. 분위기는 탄약고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계속
솟아오르는 부분이 나오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저는 이만 퇴장하겠습니다."

전과 브리핑을 끝낸 배 준장이 연단에서 내려간 후 올라온 이는
이집트 공군의 아디 압술 준장이었다. 그가 올라오자 기자들은 이구
동성으로 질문을 던졌다.

"이집트군은 카이로가 화학무기 공격을 받은 것에 대해 보복을 할
예정입니까?"
"확인되지 않은 소식에 의하면 샤즈리 대통령이 미국에 핵보복을
요청했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잠시 기자들을 돌아본 압술 준장은 잠시 헛기침을 한 후 말하였다.

"보복에 관한 것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집트는 리비아에 보복할 생각이 없다는 뜻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군통수권자이신 대통령 각하께서 명
령만 내린다면 모든 수단을 강구해 리비아에 그 대가를 지불하게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우리는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만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보복할 겁니까? 혹시 탄도탄을 사용하실 생각
입니까?"
"아닙니다. 탄도탄을 쓰게 된다면 고폭탄두 대신에 뭐가 실릴지는
여러분도 잘 아시잖습니까? 저쪽이 지저분하게 나온다고 이쪽도 똑
같이 나갈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집트군은 무엇으로 대가를 지불하게 할 수 있습니까?"

기자 한 명이 그와 같은 질문을 던지자 압술 준장은 담담한 어조
로 대답하였다.

"자세한 것은 기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가만히 넘어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말해드릴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입니다."

2010년 05월 26일. 수요일. 07시 00분. 미국 워싱턴 D.C

앤드류 케셀 국무장관은 느긋하게 아내와 마주한 채 아침 식사를
먹고 있었다. 대부분의 미국인이 그러하듯 그의 식탁은 매우 조촐하
였다. 우유에다 부어먹는 시리얼, 딸기잼을 바른 식빵, 싱싱한 오렌
지, 스크램블 에그를 먹은 후 그는 아내에게 말하였다.

"오늘도 늦을거야. 이해해줘."
"괜찮아요. 당신의 꿈이 뭔지 들은 순간부터 감수하기로 마음 먹었
으니까요."

일어서면서 서로의 볼에 키스를 한 다음 케셀은 정장 차림으로 집
을 나섰다. 밖에서 대기하던 관용차에 오른 그는 운전사에게 물음을
던졌다.

"오늘도 밀리지 않겠지?"
"예. 물론입니다. 다른 때처럼 제시간에 도착하실 수 있을 겁니다."

케셀 국무장관을 태운 차는 경호원들이 탑승한 밴의 호위를 받으
며 이동한 끝에 국무성 차량 출입문 앞에 이르렀다. 곧 정해진 절차
에 따라 신원 확인을 받은 국무장관 일행은 출입문을 지나 국무성
본관에 도착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장관님."
"오늘 나와 기자들간에 회견이 있을 예정이라고 알고 있는데……."
"회견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예정대로라면 20분 뒤에 회견을 시
작해야 합니다."
"늘 그렇지만, 기자들은 대하기 피곤한 존재들이야."
"그렇지만 저들을 늘 기피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러니 더욱 피곤하다네."
"동감입니다."

그러자 케셀 국무장관과 그의 보좌관들은 서로의 뜻이 통해서인지
웃음을 터뜨렸다. 예정된 시간이 되자 케셀 장관은 기자회견장 안으
로 들어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기자들에게 의례적인 인사를 건넸
다.

"흐릿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아침
은 잘 챙겼습니까?"

그러자 기자들 대부분이 웃음을 터뜨리며 그렇다고 답했고, 케셀
장관은 싱긋 웃으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카이로에 가해진 파멸적인 화학무기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이집트에 위로 메시지를 보냄과 동시에 이 문제에 대해 여러
동맹국 및 우방들과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이번 공격에 관하여 수많
은 국가가 분노했으며 미국이 리비아에 대한 군사적 제재의 강도를
높여도 문제 삼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대통령께
서는 이집트 대통령에게 카이로에 가해진 공격에 대해 대신 보복해
주겠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이집트 대통령은 그 문제에 관해선 지금
도 생각하는 중이며 만약 실현된다 해도 다른 동맹국에 그 실행을
맡기고 싶지 않음을 거듭 천명했습니다."

그러자 기자들 사이에선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그간 미국이 입밖에
내놓지 않았던 보복이란 단어가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곧 기자 한
명이 손을 들었고, 장관은 그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질문하시죠."
"감사합니다. 저는 워싱턴 타임스의 조셉 듀이입니다. 장관님께선
보복을 언급하셨는데 미국은 그 수단으로서 핵을 택할 겁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핵을 사용할 마음이 없습니다. 이는 NSC
(국가 안전보장 회의)에서 내린 결론이기도 합니다."
"의외로군요. 그간 미국 정부는 북한과 같은 불량국가들이 대량살상
무기를 사용할 경우 핵보복을 가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언급해 왔
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최선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
다. 상대가 지저분하게 나온다고 해서 우리까지 똑같은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게다가 핵을 사용하게 되면 공격을 받은 지역은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됩니다. 그리고 피해 범위 밖에서 살아가는
불특정 다수의 민간인까지 나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 동맹국들의 정의를 구현하기에 앞서 후세들로부터 두고두고
지탄을 받게 될 극단적인 짓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와 같은 행동
은 리비아가 저지른 것 만으로 충분합니다."

그와 같은 답변에 기자들은 심란한 표정을 지으며 웅성거렸다. 그
간 여러 미국의 공직자들은 공개 석상에서 발언할 때마다 미국의
정의가 절대적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뉘앙스를 풍기곤 했는데
케셀 국무장관은 이례적으로 미국의 정의로도 어찌할 수 없는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음을 언급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보복만큼은 반드시 실행할 것입니다. 그
렇게 아십시오. 그러면 이만……."

케셀 국무장관은 거기까지 말한 후 즉시 퇴장하기 시작하였고, 기
자들은 어떻게든 그의 답변을 받고자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장관님, 질문 있습니다!"
"NBC무기를 쓰지 않을 거라면 그것들을 대신할 효과적인 수단이
있습니까?"

기자회견장에서 나온 케셀 장관은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간 후 한
숨을 쉬며 보좌관들에게 말하였다.

"다들 수고했네."
"아닙니다. 모두 장관님이 잘 처신하신 덕분입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곧 장관은 얼음이 든 오렌지 쥬스를 마시면서 티슈로 이마에 흐르
는 땀을 닦았다.

2010년 05월 26일. 수요일. 22시 30분. 한국 서울

"이번 한 번만 선처해 드리는 겁니다. 또 붙잡혀 들어오면 아드님은
그대로 사법처리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지원의 아버지인 백기종은 경찰청 공안부에 속한 형사에게 연신
허리를 숙이며 쩔쩔맸다. 곧 지원은 유치장에서 풀려나 아버지에게
인계되어졌다.

"가자."
"아버지……."
"뭐하고 있어? 얼른 따라오지 않고."
"……."

지원은 가족에게 폐를 끼친 것이 죄스러운 듯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얼마 후 차에 오른 그에게 아버지가 말하였다.

"지원아, 네 심정 모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다 좋게 돌아갈
수만은 없는 거야. 이번 전쟁에 꼭 가고 싶다고 자원한 예비역들 봤
지? 지금 우리나라 상황에선 앞날이 막막하기 때문이지. 난 우익에
서 떠드는 얘기들은 못믿지만 진보에서 떠드는 장및빛 미래는 더욱
믿지 않는 사람이야. 내가 보기엔 군대를 보낸 것 때문에 그렇지 지
금 대통령이 박통보다 훨씬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

지원은 아버지의 말에 흠칫했지만 뭐라 반박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가난한 농촌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시
로 상경해 온갖 고생을 헤쳐나온 끝에 자수성가한 자본가였다. 한마
디로 아버지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아버지는 북한
의 앵무새에 가까운 행동을 하면서 진보라고 자처하는 얼간이들을
매우 경멸했다. 그쪽 진영에서 만약 아버지에 대해 알게 된다면 수
구 꼴통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집안의 역사에 대해 얘기해준다면
그들은 꼬리를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지원의 할아버지는 일제때 일
본 어딘가의 광산으로 끌려가 죽도록 고생하다가 해방이 되고 나서
야 겨우 조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힘든 농사로 건장한 체격
을 지녔던 할아버지는 엄청난 고생이 가져다준 후유증으로 고생해
야만 했다. 그 때문에 집안은 가난을 면할 길이 없었다. 그러던 와
중에 한국전쟁이 발발, 할아버지가 살던 마을이 북한군의 수중에 들
어가는 일이 벌어졌다. 특별히 남에게 원한을 살 일이 없었던 할아
버지였지만 하필이면 자신과 친분이 있던던 사람이 공산주의자들과
한통속이 되어 가족을 몰살시키려고 했었다. 간발의 차이로 마을에
국군이 진주하면서 집안은 위기를 모면했고, 이후 공산주의자들과
진보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가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이어지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시절에 태어나고 자란 아버지였기에 미국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는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꼴보기 싫은 일본 세력을 몰아내주
고 굶주림에 시달리는 자신들에게 식량을 원조해준 미국에 대한 고
마움은 아버지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 사이에선 매우 자연스러운 것
이었다. 아버지가 들려주는 경험담은 지원의 입장에선 믿기 힘든 것
들이 태반이었다. 자신이 진보라고 자처하던 동기가 정치에 입문해
서는 온갖 비리를 일삼다가 비참하게 몰락한 것과 몇몇 사회적인
문제에 관해 상당히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한 친구가 더 나은 일처
리와 예술인들의 표현에 제약을 가해선 안 된다고 두둔한 것들에
관해 얘기해주면서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결국엔 한국에선 사람의 인격이 모든 것을 좌우한단다. 우익이건,
좌익이건 결국엔 사람한테 달려있는 거야.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 좌
익에 있다는 녀석치고 인간적으로 괜찮은 놈들 못봤다."

"어제 지석이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배를 타고 이집트로 가는 중이
라는구나."
"형한테서요?"
"그래. 위치는 어디인지 말할 수 없지만, 우연히 장군하고 얘기를
했는데 이런 약속을 했다고 하더라."
"뭐라고 했다는데요?"
"모두 다 같이 살아서 돌아가게 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죽지 않고
멀쩡하게 고국에 돌아올 수 있게 작전을 벌이겠다는 거야."
"그게 가능할까요?"
"네 형이 얘기하기로는 그 장군 눈빛이 보통이 아니었대. 아마도 약
속을 지켜주겠지."
"그래도 아직은 속단할 수만은 없잖아요?"
"그래 네 말이 맞다."

백기종은 그렇게 대꾸하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지원도 씨익
웃으며 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으로 눈을 돌렸다.
SF를 좋아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 곳에서 활동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