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7군단 이집트로!

1.피의 거래

2010년 04월 04일. 수요일. 05시 00분. 이집트 푸카

마르사 마트루가 함락당한 이후 이집트 서부 방면군 주력은 전력
을 다해 알렉산드리아로 퇴각해버려 리비아군은 아무런 방해도 받
지 않은 채 해안에 입접한 수많은 도시들을 점령할 수 있었다. 이집
트 해군은 지대함 미사일의 위협과 리비아 공군의 견제로 적극적으
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이 나서기 위해선 지중해에서 작전중인 미
해군 6함대에 다른 항모 전단들이 합류할 때 거기에 가세하는 수밖
에 없었다. 이집트 육군의 경우엔 다른 중요 지역에 대한 경계를 위
해서 남겨둬야 할 전력을 고려하면 리비아에 맞서 서부에서 할 수
있는 있는 일이라곤 오로지 방어 뿐이었다. 물론 그러한 상황에 구
애받지 않고 움직이는 자들은 엄연히 존재하였다.

"보통 규모가 아닙니다. 아무리 적어도 1개 대대를 무장시킬 수 있
는 수량의 보급물자를 운반하는 놈들입니다."
"경비가 의외로 철저해. 저것들을 치는 건 포기해야겠어."
"무척 아깝습니다. 저놈들을 그냥 보내야 하다니……."

모래색이 칠해진 위장포를 뒤집어 쓴 채 엎드려 야시경으로 리비
아군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던 '사무드 알리' 대위는 자기 바로 옆에
엎드려 있는 부하가 이를 갈자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보급물자를
싣고 가는 트럭 대열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바로 그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총소리가 울렸고, 보급부대를 감시하던 두 사람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어디서 난 소리지?"
"아무래도 저 마을인 것 같습니다."
"주위를 확인해봐."
"지금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대체 무슨 일이지?"
"놈들이 우리 민간인을 죽입니다."
"확실한가?"
"예. 그렇습니다."
"큰일났군……."
"그냥 지켜봐야만 합니까?"
"……."

얼마 후 그는 무전기와 연동되는 성대 마이크로 지시하였다.

"지원이 필요하다. 세 명만 우리 위치로 보내."
-알겠습니다.

대위는 합류해줄 세 명이 도착할 때까지 마을 안에 있는 적이 얼
마나 되는지 확인해보기 시작하였다. 마을 안의 리비아군은 모두 다
섯으로 두 명이 주위를 경계하였고 다른 두 명은 주민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채 그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마지막 한 명은 주민 몇몇을
한 명씩 세워 놓고는 그들을 대검으로 찌르거나 소총으로 쏴 죽이
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일종의 보복인 듯 했다.

'지금같은 시대에 재미삼아 저런 짓을 할 군인은 없다. 아무래도 뭔
가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대장님, 아군이 오고 있습니다."
"알았어."

곧 경계를 설 한 명을 제외한 가운데 알리 대위는 다른 대원들과
머리를 맞댄 상태에서 모래 위에 마을을 그리며 말하였다.

"현재 마을 안에 있는 적은 모두 다섯이다. 두 명이 마을 입구를 지
키고 있고, 두 명은 주민들을 감시, 마지막 한 명은 주민들을 처형
하는 중이다."
"개새끼들……."
"계속 듣도록. 마을 입구의 두 명은 저격으로 제거하고 나머진 접근
해서 처치한다. 실수는 허락될 수 없다. 반드시 한 번에 끝내야 한
다. 자, 가자."

저격을 맡은 한 명이 적절한 위치로 이동하는 동안 네 사람은 마
을을 향해 조심스럽게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점점 마을에 가까이 다
가가면서 사무드 대위는 어느새 식은 땀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이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하나? 공포? 아니면 내가 저지를 파괴와 살
육에 대한 기대감?'

자신에게 그러한 물음을 던지며 마을 입구에 거의 도달한 대위는
망을 보는 두 명이 쓰러지기만을 기다렸다. 곧 저격을 맡은 대원이
대위 일행의 마을 접근을 확인함과 동시에 소음기 부착형 SVU의
방아쇠를 당겼고, 날아간 총알들은 두 리비아군 병사의 머리에 정확
하게 명중하였다. 사방에 피와 뇌수를 흩뿌리며 그들이 쓰러지는 것
을 본 대위가 마을 안으로 뛰어 들어가자 나머지 셋도 그 뒤를 따
랐다. 난데없이 그들이 난입해 들어오자 리비아군은 물론 주민들까
지 당황한 빛이 역력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대위 일행은 이 순간
을 놓치지 않았다. 대위가 든 소음기 부착형 UMP-45가 45ACP탄
을 토해낸 직후 마을 주민을 감시하고 있던 리비아군 한 명이 자신
의 이마 한 가운데에서 피를 내뿜으며 뒤로 나자빠졌고, 다른 대원
들도 한 치의 오차없이 나머지 두 명을 사살하였다.

"모두 괜찮습니까?"
"이, 이집트 사람이요?"
"예. 그렇습니다.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났는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기 죽어 있는 사람들은 민간인으로 위장한 우리나라 패잔병들이
에요."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요. 저들은 그저께부터 우리 마을에서 숨어 지냈는데 갑자기
리비아군이 들이닥친 거예요. 저들은 곳곳을 수색하더니만 총 몇자
루를 발견하고는 우릴 위협했어요. 그래서 우릴 걱정한 패잔병들이
투항하자 다짜고짜 게릴라로 몰아서 처형해버렸죠."
"그랬던 거군요… 그나저나 이놈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나중에 수색
대가 이 마을에 들이닥치게 될 겁니다. 먼저 이녀석들과 패잔병들의
시신을 숨겨야 합니다."

대위의 말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후환을 걱정하던 주민들은 모두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시체 은닉을 돕기 시작하였다. 관심을 끌지
않을 장소를 신중하게 찾아내어 땅을 파기 시작한 그들은 리비아군
다섯과 즉결 처형을 당한 아군 패잔병 셋의 시신을 그 안에다 묻은
후 도로 흙을 덮었다. 당연히 군번을 회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에 관해선 절대로 발설하시
면 안 됩니다."
"안심하세요. 같은 나라 사람을 배신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좌우지간 놈들이 협박하더라도 절대로 모른다고 하셔야 합니다!"

2010년 04월 04일. 수요일. 05시 50분. 이집트 쿠세이르

"아저씨, 저 사람들 대체 왜 저러죠?"
"낸들 알겠냐? 일단 세워야겠다."
"어째 기분이 좀 그런데요……."

전시 체제로 들어섰기 때문인지 인적이 드물어진 도로를 따라 트
럭을 몰고 가던 운전 기사와 조수는 어리둥절해 하며 내렸다. 그들
이 지나가려는 길에 바리케이드가 세워져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
때 얼굴에 위장 크림을 잔뜩 바른 군인 서너명이 그들에게 총을 겨
누었다. 두 사람은 처음엔 군인들이 검문을 하려는 것으로 생각했지
만, 곧 그것이 자신들의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아저씨, 저 사람들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 그러게 말이다… 설마?"

두 사람은 자신들의 얼굴을 병적으로 가린 이 군인들의 정체를 눈
치챈 나머지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는 와중에 군인들 중 한 명이 허
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뽑고는 눈깜짝할 틈도 주지 않고 운전 기사
의 가슴을 찔렀다. 사방에 피를 뿌리고 바닥에 쓰러진 그는 고통스
러운 표정을 지으며 바둥거리며 죽어갔고, 조수는 덜덜 떨며 자신에
게 한 발자국씩 다가오는 동북아시아인의 외모를 지닌 군인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였다.
두 사람의 처참한 주검은 사건 발생 15분 후에야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심하게 손괴당한 시신들을 보면서 몸서
리쳤고, 이 일은 일파만파 입에서 입을 타고 이집트 각지로 전해지
기 시작하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와 같은 사건이 이집트 전역에
서 무려 31건이나 동시에 발생했다는 점이었다.

2010년 04월 04일. 수요일. 07시 00분. 이집트 카이로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요? 전쟁 당일에 적 특수전 부대의 기습
을 허용한 것도 모자라 이번엔 후방 지역의 민간인들이 살해당하다
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각하, 안타깝게도 초반에 입은 엄청난 타격으로 우리 지상군은 전
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기진맥진한 상태입니다. 정규군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예비군은 최전선 붕괴에 대비하거나 적의 쾌속 진격
을 막는 임무에 종사하고 있어서 후방의 치안을 만족할만큼 유지하
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놈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자는 말입니까?"
"당연히 그럴 수는 없지요. 전쟁 발발 당일부터 우리군의 특수전 전
력은 이들에 대한 추적과 사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니 조만간
기별이 있을 겁니다."

이집트 전역에 난데없이 불어닥치는 공포 분위기에 치를 떠는 샤
즈리 대통령의 노기 섞인 물음에 국방부 장관은 그렇게 답하고는
손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국방장관을 포함한 여러 각
료들의 수심에 찬 표정에서 보이듯 이집트 전역엔 개전 초기에 일
었던 애국심과 전의는 온데간데 없었고 오로지 비관과 회의감 뿐이
었다. 이집트 정부는 여론을 통제하는데 안간힘을 썼지만, 전선에서
싸우다 부상당한 군인들이 자신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털어놓는 전
선의 실상은 앞서 언급한 분위기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외교부 장관은 잠시 심사숙고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돌아본
후 말하였다.

"각하, 실은… 어제 스위스 주재 리비아 대사가 우리 대사관에 전문
을 보냈었습니다."
"내용은?"
"전쟁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의 북서부 지역 영토와 영
해 일부 할양을 전제조건으로 삼은 종전 협정을 체결하자고 되어
있습니다."

외교부 장관의 말에 곧 좌중은 웅성거렸고, 샤즈리 대통령은 손짓
으로 정숙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리비아가 일부 영토와 영해를 할양
해줄 것을 요구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대통령과 많은 각료들이 의아
해 했지만 단 한 명만이 팔짱을 낀 채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로 사드 아우든 자원부 장관이었다. 그는 곧 대통령에게 시선을
돌린 후 말하였다.

"각하, 저는 리비아가 왜 그곳들을 요구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구요?"
"네. 그렇습니다."
"알기 쉽게 설명해 줄 수 없겠소?"
"그렇게 하겠습니다. 먼저 이 자료를 주목해 주십시오. 우리 자원부
에선 2년 전부터 세계 유수의 석유 회사들과 손을 잡고 이집트 전
역에 분포하고 있을 새로운 유전을 찾기 위한 사업을 세밀하게 진
행해 왔습니다. 그 결과 두 지역이 후보로 떠올랐으며 방금 리비아
가 요구했다는 지역 안에 두 후보지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지하,
다른 하나는 해저에 자리 잡고 있죠. 현재로서는 어디까지나 추정이
지만 두 곳에 매장되어 있을 석유는 괄목할만한 양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리비아가 바랬던 건 석유였군……."
"카다피 의장 퇴임 이후 집권한 자는 다른 나라의 것을 너무 탐하
는 것 같군요."
"카다피 의장이 차드 내전에 개입했다가 한 번 혼이 났을테니 그들
입장에선 무언가 좀 깨달았을 법도 할텐데……."
"지금은 그들 스스로 깨닫기엔 시기를 놓친지 오래입니다."

이집트 각료들의 대화에서 언급된 리비아의 차드 내전 개입은 여
러 측면에서 흥미롭게 바라볼 구석이 많은 사건이었다. 차드는 1960
년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국가로, 그 초대 대통령인 '톰바르바이에'
는 프랑스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국내 통일에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1963년에 북부의 이슬람계 주민들이 주축이 된 '차드민족해
방전선'은 남부에 기반을 둔 정부에 반대하는 활동을 폈고, 프랑스
는 이들의 행위가 위험수위에 이르자 1968년에 자국 군대를 투입해
이를 진압시켰다. 이러한 적극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1975년의 쿠
데타로 '톰바르바이에'가 살해되었는데 그 뒤를 이어 집권한 이는
'페릭스 마룸' 장군이었다. 그는 집권 초기에 반군 세력과 화해하려
했으나 이는 보기좋게 실패해 혼란을 부채질했다.
1979년에 마룸 장군은 구쿠니 장군에게 밀려 니제르로 망명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뒤를 이어 권좌를 차지한 구쿠니도 아브
르와 그의 파벌에 의해 밀려나 1982년에 리비아로 망명하게 되는데
그로부터 1년 후에 당시 리비아의 국가 원수였던 카다피 의장의 전
폭적인 지원을 받아 대규모의 반군을 조직해 차드 북부의 요충지
파야라르조를 점령하는 것을 시작으로 내전을 일으켰다. 프랑스가
그에 대한 답장으로 외인부대와, 외인부대에 대해 강한 라이벌 의식
을 지닌 공수부대를 파견하자 소련은 리비아를 중개자로 삼고 반군
을 지원해 차드 내전은 국제전의 성격을 띠었다.
결국 1983년 8월에 휴전이 이루어졌지만, 1984년과 1986년에 리비
아군과 반군은 이를 어기고 두 차례의 군사 행동을 취하다가 격퇴
당했었다. 리비아가 내전에 개입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자신의 실
리를 위해서였다. 그것과 관련해 리비아는 1973년에 차드 북부의 아
오즈 지역을 일방적으로 편입했었고, 차드 정부군이 이를 탈환하기
까지는 14년의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었다. 앞서 기술한 일련의 사건
들을 놓고 보면 미국의 트리폴리 폭격은 리비아가 언젠가 지불했어
야 할 응당의 대가였는지도 몰랐다. 그것이 이루어지는데 걸친 여러
과정은 좀 지저분했지만…….

"그러면 우리쪽의 입장을 전달해야겠군요. 내용을 이렇게 합시다.
'정 그곳들이 필요하다면 카이로까지 와라. 얼마든지 상대해주마. 하
지만 순순히 당해주지는 않겠다.'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좌중에선 웃음이 터져나왔고 샤즈리 대통령도 자신의 말이
우스웠는지 껄걸거리며 손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곧 분위기가 진정
되면서 외교부 장관이 말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2010년 04월 04일. 수요일. 06시 30분. 리비아 트리폴리 북쪽
300Km

"미사일 발사 심도로 부상."
"네. 알겠습니다. 미사일 발사 심도로 부상하라."
"알겠습니다. 미사일 발사 심도로 부상합니다."

부상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잠항 사관은 자기 앞에 놓인 조종
간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전략원잠에서 순항 미사일 원잠으로 전
환된 수중 배수량 18750톤에 달하는 오하이오급 1번함 오하이오는
서서히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은밀성을 가장 큰 무기로 삼는 잠수함
에게 있어 가장 위험한 순간은 사용하는 즉시 자신의 위치를 상대
편 대잠 세력에게 노출시키는 미사일을 발사하는 때였다. 대부분의
오하이오급 전략원잠은 어느 해역에서건 지구상 전지역을 공격할
수 있는 잠수함 발사 탄도탄인 트라이던트II 24발을 탑재하고 미국
근방의 해역에서 임무를 수행하지만 오하이오를 포함하여 초기에
건조된 네 척은 첫 작전 항해를 시작하면서 탑재한 트라이던트I을
대신할 트라이던트II 탑재 사업에서 제외되어 전혀 다른 임무를 맡
아야만 했다.

"우리배는 수중의 무기고나 다름 없군요."
"그러게 말이야… 어느 누구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참 대단해. 이녀
석이 이런 일에 쓰일 거라는 걸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오하이오의 함장인 프레드릭 숀 대령은 그렇게 말하고는 쓰디쓴
미소를 지었다. 모두 합해 24발의 트라이던트I을 탑재했었던 오하이
오의 미사일 탑재 구역 22곳엔 각각 7발의 토마호크가 들어 있었다.
이를 모두 합하면 154발… 미해군의 수상 전투함들이 작전 도중 날
아들지 모를 공중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적지 않은 함대공 미사일
을 함께 갖고다니는데다 '타이쿤데로가'급 이지스 순양함을 제외하
면 수직 발사관의 수가 100개를 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숫자였다.
숀 대령은 20년전에 자신이 장교로 임관했을 때의 생각이 들자 피
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1987년… 고르바초프가 구 소련 서기장으
로 집권하면서 냉전이 종식되어가는 때였지만, 그래도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던 시절에 그토록 원하던 잠수함에 배치되어 근무해온 그
가 결코 잊을 수 없었던 순간은 잠수함이 수면 위로 부상한 직후
승무원 출입용 해치를 열고 나와 수평선 너머로 해가 떠오르는 것
을 바라보았을 때였다. 처음엔 힘들게만 느껴졌던 잠수함 근무에 대
한 심리적 보상을 받았다는 기분에 그는 다시 의욕을 찾았고 지금
도 그때 처음 보았던 해돋이를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난 후 발사 심도에 이른 오하이오의 사
령탑 뒤편에 배치된 미사일 발사관 가운데 네 개가 개방되면서 거
기에 탑재되어 있는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들이 발사되기 시작하였
다.

2010년 04월 04일. 수요일. 06시 55분. 리비아 트리폴리

트리폴리 시민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하루 일과를 준비하는 중
이었다. 바로 그순간 공습 경보가 울리기 시작하였고 사람들은 방공
호로 달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 조기 경보기의 긴급 호
출을 받은 네 대의 MiG-23 전투기가 시가지 상공을 지나 북쪽으로
향하였다.

"양키들이 아예 작정을 했나보군. 미사일을 수 십발이나 쏘아대니
말이야."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전단만 들어 있을지도 모르지.
-꿈깨. 놈들이 그랬잖아?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경고라고.
-얘기는 나중에. 지금은 미사일을 잡는 일이 급해.

엔테사르 자나비 대위는 그렇게 말한 후 조종간을 움직였다. 그의
MiG-23은 곧바로 지상에 자리한 방공 관제센터로부터 최신 정보를
통보받으며 트리폴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는 토마호크 집단을 노리
고 날아가 그들을 육안으로 확인하기가 무섭게 AA-11 아처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쏘기 시작하였다. 발사된 미사일은 비행운을 남기
며 날아가 토마호크의 정면에 부딪혀 폭발하였다.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토마호크가 공중 분해되어 잔해가 바다 위로 떨어지는 가운데
그와 같은 광경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자나비 대위 일행의 그와 같
은 분투로 미사일은 삽시간에 그 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하
지만 그들은 거기서 만족하고 물러나야만 하였다. 괜히 미사일을 하
나라도 더 잡겠다고 쫓아서 날아가다가 트리폴리 상공을 지키도록
훈련 받은 아군 방공부대의 화망에 노출되어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항공 요격대로부터 보고입니다! 발사된 적의 순항 미사일들 가운
데 절반을 잡았다고 합니다."
"지상에 배치된 지대공 미사일은 대응이 불가능합니다."

지하에 자리하던 상황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장성 한 명은 그
와 같은 보고에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오가는 기분이 되고 말았다.
오하이로부터 발사된 수 십발의 미사일이 최근에 배치되어 신형에
속하는 전술형 토마호크임을 감안하면 그리 나쁜 전과는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비용대비 문제로 들어간다면 미해군으로 하여금 손
해를 보았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엔 불충분하였다. 다름이 아니라 전
술형 토마호크는 그 이전의 토마호크들과 비교하면 값싸게 생산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플로거 편대의 요
격망을 빠져나온 나머지를 잡아야 할 지대공 미사일은 요격 대상인
토마호크들이 해면에 닿을 듯 말 듯한 초저고도를 유지하며 날아오
는 바람에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었다.

"각 포대가 대응을 준비중입니다. 미사일이 시가지 상공에 진입하는
대로 요격에 나설 수 있을 겁니다."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니다. 단 한 발이라도 시가지에 떨어지게 해서
는 안 된다!"

전투기들의 요격망을 빠져나온 미사일들은 어느새 시가지 상공에
이르렀고 최상의 위치에 배치된 각종 대공포와 기관포들이 상공을
향해 불을 뿜기 시작하였다. 23mm에서부터 30mm, 57mm 등 다종
다양한 직사형 대공화기들이 레이더의 통제하에 하늘을 향해 탄막
을 펴는 가운데 미사일들은 강력한 방해전파를 내뿜으며 불규칙적
인 회피 기동을 하면서 시가지 상공을 한 바퀴 선회한 후 사전에
입력된 목표를 확인하기가 무섭게 그대로 급강하 하기 시작하였다.
대공 기관포 조작을 맡은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이를 저지하려 했지
만 그들이 격추하는데 성공한 것은 다섯발이 전부였다. 먼저 미사일
의 제물이 된 것은 최근에 개관한 리비아 유전 개발공사의 10층 건
물이었다. 콘크리트 건물에 명중한 토마호크는 두꺼운 유리창을 뚫
고 들어가 그 내부에서 폭발하였고 미처 피신하지 못한 십 수명의
근무자가 폭발에 휩쓸렸다.

"……."
"소대장님, 당했습니다……."

알 하다드 중위는 부하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멍한
표정을 지으며 여기저기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는 시가지를 말없
이 바라보았다. 여러 가지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시내에서 살고
있는 가족들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디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엄마, 얼른 오세요!"
"아이고… 왜 이런 일이……."

검은 터번으로 유명한 전형적인 아랍 여성의 옷차림을 한 샥소다
하다드는 어머니를 데리고 난장판이 되어버린 시가지로부터 멀어지
기 위해 전력을 다해 뛰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보기엔 모든 것이 엉
망이었다. 곳곳에서 불이 나고 있는데도 즉시 출동해야 할 소방차들
은 건물 잔해더미와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버려진 차들이 길을
막고 있어 제때 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슬람 세계의 관습대로라면
여성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남자들은 자신들이 보호해야 할 사람
들을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자기 목숨부터 챙기기 위해 부리나케 뛰
어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극단적인 상황이 극단적인 행동을 부른다
는 어느 누군가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마악 교차로를 지나가던
모녀의 눈엔 도저히 믿기지 않을 광경이 들어왔다. 주인이 도망가고
비어버린 가게를 일단의 사람들이 닥치는대로 터는 것이었다.

'세상에! 공공의식과 도덕심이 저리도 쉽게 사라질 수 있다니?'

학교에서 틈틈이 가르친 그 두 가지를 떠올린 샥소다는 이내 전쟁
을 일으킨 정부의 높으신 분들에 대해 심한 분노감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평범하게 살아가려는 양순한 사람들의 눈에 이런
광경이 띄게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화가 났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
이라면 뒤늦게 나타난 경찰이 총을 겨누며 폭도가 될 조짐을 보이
는 사람들을 향해 경고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2010년 04월 04일. 수요일. 15시 30분. 한국 대전

"보고 드립니다. 방금 전에 우리별이 트리폴리가 미군에 의해 폭격
당하는 광경을 포착했습니다."
"트리폴리?"

장세현 중장은 주간 보고서를 작성하던 중 트리폴리에 폭격이 가
해졌다는 보고를 받자 곧바로 일어서면서 말하였다.

"직접 가서 보기로 하지."

안내를 받아 정보 분석실로 들어간 장 중장은 거대한 디스플레이
에 정찰위성의 카메라에서 촬영한 트리폴리의 모습을 보면서 연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별로 불리우는 한국의 인공위성들은
그 관할권이 민간 기관에 맡겨져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그 가
운데에는 알게 모르게 군과 중앙정보부에 통제권이 완전히 넘어간
것도 있었다. 미국이 자랑하는 키홀, 라크로스 등과 비교하면 미비
하긴 했지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려주는데에는 충분한
우리별의 능력이 마음에 들었는지 장 중장은 만족스러워하며 담당
장교에게 말하였다.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 설명해 주게."
"예. 보시는 바와 같이 방금 끝난 공습으로 관공서 밀집 지역을 중
심으로 시가지 중심부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몇몇 곳에선 심한
화재가 날 정도였습니다."
"트리폴리의 방공망은 견고하다고 하지 않았나?"
"상대가 미군이라면 결국엔 뚫릴 수밖에 없습니다."
"확실히 그럴만도 하군……."

장 중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시가지 외곽을 중심으로 여러개의 긴
띠가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들은 대체 뭔가?"
"도시 밖으로 도망치는 사람들입니다. 일부는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만,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피난민이라는 얘기지… 저것들 위에 큰 폭탄이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가령 모압(M.O.A.B)이라든가……."
"장군님, 문제가 되실 발언은 가급적 자제하시는 게……."
"이 사람아, 내가 언제 진짜 그러자고 했나?"
"예?"
"하하하~."

2010년 04월 04일. 수요일. 16시 00분. 한국 서울

"이 새꺄! 검둥이가 뭐 어째?"
-퍽~
"으악! 자, 잘못했어요!"
"네놈들도 알고 보면 피가 섞일대로 섞인 잡종인 주제에! 어딜 나
불거려!"
-퍽~

으슥한 골목길에서 검은 피부를 지닌 건장한 군인이 머리에 염색
을 하고 이상하리만치 큼지막한 구두를 신은 불량아들을 죽도록 패
고 있었다. 서너명은 이미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
고 지금 군인에게 멱살을 잡힌 채 이빨이 빠지도록 맞고 있는 녀석
은 리더에 해당하는 놈이었다. 녀석들은 그가 외국인처럼 보이길래
주한 미군인줄로 알고 제딴에 자기들도 반미 행위를 좀 하겠다는
생각에서인지 시비를 걸었고, 그가 한적한 곳에서 문제를 처리하자
고 얘기하자 히죽 웃으며 따라왔다가 이렇게 된 것이었다. 검은 피
부의 군인은 곧 마지막 한 놈의 면상에 그간 쌓이고 쌓인 울분을
담은 주먹을 날려 마무리를 짓고 나서 근처에 있는 공중전화 박스
로 들어가 수화기를 들고 빨간 버튼을 눌러 119를 불렀다.

-119입니다. 신고자님, 말씀하십시오.
"여기 용산 전자상가에 있는 하나전자 근처인데요. 네 사람이 싸우
다가 크게 다쳐서 쓰러져 있거든요. 빨리 구급차를 보내주세요."
-알겠습니다.

곧 수화기를 내린 그는 피식 웃은 다음 바닥에 널부러진 네 명의
불량아들에게 침을 뱉은 후 근처 화장실로 들어가 세면대에서 손을
씻은 후 길을 재촉하였다. 서울 주둔 육군 군수 지원단 소속 윤학철
하사. 2010년을 기해 24세인 그의 오늘 외출은 이렇게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는 어릴적부터 어머니가 아무 도움도 받지 않고 키운 혼
혈아였다. 미육군 2사단 소속 부사관이었던 아버지는 두 모자를 잘
돌봐줬지만 막상 미국으로 돌아가서는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때서부터 두 사람의 힘겨운 삶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이런저런
허드렛일을 하면서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갔고 학철은 가급적이면 조
용히 학업에 전념하려 했지만 적지 않은 아이들이 그를 내버려 두
지 않았다. 급기야 그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주먹을 쥘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해서 간신히 목적을 달성해도 돌아오는 것은 문제아
라는 주위의 그릇된 낙인 뿐이었다.
간신히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서 사회 생활을 하려고 해도 그를 받
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공장에서 막노동을 하는 것 말
고는 그가 제대로 돈을 벌 수 있는 곳을 찾겠다는 생각은 어림도
없었다. 그러다가 4년 전에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병무청에 달려가
죽도록 고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직업 군인이 되고 싶으니 입대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병역법상 절대 불
가능하다는 것 뿐이었다. 실망감을 뒤로 한 채 힘든 노동에 다시 몸
을 내맡긴 지 1년의 시간이 흘렀을 때 그는 TV에서 흘러나오는 앵
커의 목소리에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는 입영 대상자들의 숫자가 줄어들 것에 대비하여 혼혈아들의
자원 입대를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그토록 원했던 기회가 뜻하지 않게 찾아오자 그는 망설임 없이 지
원서를 냈고 그렇게 해서 혼혈아들로만 이루어진 특별 편성의 111
사단에 들어갔다. 거기서 그를 비롯한 여러 혼혈아들은 고된 훈련을
받으면서 희망할 경우 각종 기술 교육도 받았다. 육군의 희망은 딱
히 사회에 연고가 없는 그들이 전문적인 기술 사관들로 육성되어
군의 고질적인 기술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었다. 게다
가 한국이 허울좋은 민족 공조를 내세우는 북한과 달리 인종 통합
과 평등을 중시하는, 한마디로 좋은 면에서 앞서려고 노력하는 국가
임을 알리는 데에도 훌륭한 소재이니 이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
얼마 후 윤 중사는 지하철 1호선을 타기 위해 계단을 따라 플랫폼
으로 향하였다. 거기서 전철을 탄 그는 적당한 자리에 앉자마자 눈
을 붙였다. 자신의 순탄치 않은 인생을 원망하며…….

2010년 04월 04일. 수요일. 16시 40분. 한국 황해도 재령

"그게 정말입니까?"
"나도 자세한 건 모르지만 파병안이 통과 된다면 가장 먼저 보내지
는 게 우리 부대래."
"지원자가 나올까요?"
"나는 가기로 했다."
"정말이십니까?"
"왜? 믿어지지가 않냐?"
"그, 그야… 워낙에 안전에 무척 신경 쓰셨으니까 굳이 지원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꽤나 돈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네가 뭘 몰라서 그래. 지금 당장 사
회에 나가봤자 직장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심해. 막노동을
하려고 해도 요즘엔 외국인이나 북한 인부들을 주로 쓰고 있으니
어쩌겠냐?"

김태욱의 후임병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통
일 이후 노동시장은 넘쳐나는 인력으로 인해 최고의 고급 기술을
지닌 사람이 아니면 쉽게 채용되는 일이 전무한 상태였다. 이런 와
중에 파병 얘기가 나돌자 적지 않은 사병과 부사관, 장교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얼마전 제법 규모가 큰 사업
체를 운영하는 작은 아버지가 휴가를 나온 태욱에게 웃고 넘어가기
엔 무척 서글픈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사무실에 업무상의 이
유로 들른 거래 업체의 신입 사원의 사연인데, 내용인즉슨 이러했
다. 그는 서울의 이름 있는 모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도 갖다온 여
타의 젊은이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를 받아주는 회사는
어디에도 없었고 결국 그는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300통이 넘는
입사 희망서를 넣을 정도로 고생한 끝에 간신히 취직을 할 수 있었
다고 한다. 어느 정도 이력에 자신 있는 사람이 이럴진데 다른 사람
이라면 어떠할까? 김 병장이 자원 의사를 내비치는 것도 무리가 아
니었던 셈이다.

2010년 04월 04일. 수요일. 10시 00분. 이집트 카이로

"선배님, 가슴이 엄청 떨립니다."
-처음엔 다 그렇지.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거다. 그나저나 이 동
네에 우리만 보내다니… 이거 참 찝찝하구만.
-듣기로는 이라크쪽이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1주일 전엔 이란애들
이 바스라에 대포를 쐈다고 하잖습니까?

마크 웨인 소령을 편대장으로 한 F-22A 랩터 전투기들은 편대 대
형을 유지한 채 카이로 시가지 부근 상공을 지나쳐 공군 비행장으
로 향하는 중이었다. 때마침 이집트 공군의 F-4E 편대가 그들과 가
까운 거리를 유지하며 나란히 비행하기 시작하였다. 일종의 환영이
자 동시에 언론에 이집트와 미국의 동맹이 굳건함을 과시하기 위해
서였다.

"그나저나 여기 일대는 완전히 오밀조밀한데요. 어지간한 곳엔 다
레이더가 있으니 말입니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그러고보니 전쟁 초기엔 이집트 공
군이 호크아이 한 대를 격추당했다고 하던데…….
-자, 자. 서론은 나중에! 착륙할 준비나 하자.

웨인 소령의 말을 끝으로 편대원들은 잡담 대신 활주로에 착륙하
는 일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런 가운데 자기 차례를 기다리
며 자신이 탄 랩터를 선회시키기 시작한 브라이언 문 대위는 고작
네 대의 랩터와 거기에 맞추어 구성된 지원부대만을 선발대로서 파
견한 상부의 저의에 회의감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랩터가
지구상 최강의 스텔스 전투기라고 해도 상대인 리비아는 준수한 공
군력을 갖추고 있음이 여러번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명령은
명령이니 어쩔 수 없었다. 곧 랩터 전투기들은 기나긴 활주로 위에
내려섰고, 얼마간 활주한 끝에 완전히 멈추어서 자력으로 주기장으
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이집트 당국의 허가를 얻어 주기장에서 기다
리고 있던 세계 유수의 언론사 기자들은 편대원들이 랩터에서 내리
기가 무섭게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며 우르르 몰려와 인터뷰를
요청하였다.

"로이터 통신입니다! 지금 소감이 어떻습니까?"
"교도통신 입니다! 미확인된 정보에 의하면 미공군의 1차 선발대는
소령님의 편대와 거기에 맞추어 편성된 지원단이 전부라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기자들의 그러한 질문 공세를 뒤로 한 채 조종사들은 이집트군이
준비한 버스를 타고 기지 건물로 향하였다.

"정말 대단하군요. 어떻게 그런 정보를 얻었을까요?"
"우리쪽에서 일부러 흘린 걸지도 몰라."
"이해가 안 됩니다. 왜 그런 짓을……."
"너무 관심 두지마. 머리만 아파져."

그렇게 말한 후 웨인 소령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잠깐이나마 눈
을 붙이기 시작하였다.

2010년 04월 04일. 수요일. 10시 20분. 이집트 마지드 아부 자이드

인구가 적디 적은 거주지인 마지드 아부 자이드는 전쟁 이전의 모
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초토화 된 지 오래였다. 지
금 이곳에 즐비한 건물 잔해 위로 바쁘게 돌아 다니는 이들은 모두
리비아군이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적은 고작 패잔병들일 뿐이야! 그런데
도 이렇게 애를 먹어야 하나?"
"저희도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전선 시찰을 나온 대대장에게 중대 지휘관이 작전 성공을 자신하
는 가운데 최일선에 선 병사들은 돌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초조한 표정들을 지으며 목표로 정해진, 서 있다는 것만으
로도 신기한 5층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대기하고 있는 지
점에서 건물까지는 고작 150미터였지만 그 사이엔 십 수명의 부상
자와 시신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들이 흘린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든 파리떼를 바라보는 '알리 하무
드' 소위의 표정엔 착잡함만이 가득하였다. 서너 차례 가해진 공격
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이집트군의 중화기 진지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발화점을 찾아내기만 하는 것으로도 큰 성공이
라고 생각한 그는 수신호로 예하 분대장들에게 작전을 감행할 것을
지시하였다. 명령이 하달되기가 무섭게 연막탄이 허공을 가르며 지
면에 떨어졌고 하무드 소위는 뛰어나가면서 소리쳤다.

"소대 돌격!"

거기에 호응하듯 함성과 함께 소대 병력 전체가 일제히 연막을 방
패 삼아 건물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하였다. 그 직후 이집트군의 화
망이 이들을 노리기 시작하였다. 수 십발씩 날아오는 기관총탄에 맞
은 병사의 머리가 터지자 그 옆에 있던 다른 병사가 그로 인해 생
긴 파편이 얼굴에 맞은 듯 고통스러워 하며 바닥에 나자빠졌다. 그
런 와중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은 하무드 소위는 휴대의 편의를 위
해 개머리판을 떼어낸 Ak를 든 채 소리쳤다.

"멈추지 마라! 계속 뛸 수 있는 자들은 나를 따르라!"

그렇게 말한 후 소위는 시선을 건물로 돌렸고, 이내 무언가를 발견
하였다. 건물에서 오른쪽으로 50m 가량 떨어진 벽돌더미 속에서 총
구에서 내뿜는 것으로 여겨지는 붉은 빛이 보인 것이다. 그는 그곳
이 위장된 중화기 진지임을 깨닫고 급히 엎드린 다음 소리쳤다.

"RPG!"
"여기 있습니다!"
"적의 기관총이 저쪽에 있는 것 같다. 붉은 빛이 번쩍이고 있거든.
자네들 눈에도 보이지?"
"네. 보입니다."
"날려버려."
"알겠습니다."

곧 두 병사는 자신들이 맡은 RPG-7을 쏠 준비를 시작하였다. 먼
저 탄약 운반과 경계를 맡은 부사수로부터 로켓탄을 넘겨 받은 사
수는 그것을 발사기에 장전한 후 무릎쏴 자세를 취하면서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였다. 바로 그때 기관총탄이 사수의 몸에 꽂혀 들어왔고
그는 사방에 피를 흩날리며 바닥에 널부러졌다. 즉사한 것이다.

"안 되겠다. 내가 직접 쏘겠다!"
"너무 위험합니다."
"닥치고 보기나 해!"

눈 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겁에 질린 부사수가 한심한 나머지 직접
발사기를 든 하무드 소위는 아예 과감하게 일어서서 그대로 방아쇠
를 당겼다. 그 특유의 엄청난 후폭풍을 뒤로 하고 날아간 로켓탄은
진지에 정확히 꽂혀 들어갔고 이내 엄청난 폭발과 함께 벽돌더미들
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모두 일어서라! 적을 무찌르자!"

그의 과감한 행동에 용기를 회복한 소대원들은 얼마 후 건물에 돌
입하였고 그곳에서 백병전을 치러야만 하였다.

"개자식 죽어라!"
"너나 죽어라!"

착검한 Ak-47을 휴대한 양측의 병사들이 치열하게 서로를 찌르고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치는 가운데 소위는 손에 든 Ak의 방아쇠를
당기며 닥치는대로 이집트군을 쏘아죽였다. 양측이 흘린 피가 건물
바닥에 흐르는 것을 보며 그는 한 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 목숨
을 담보로 한 광란의 끝은 늘 이랬던 것이다. 얼마 후 건물 지하실
에서 얼굴 한 쪽을 붕대로 가린 이집트군이 백기를 들고 나오며 말
하였다.

"항복하겠다. 쏘지마라."
"지하실에 남은 자들은 몇 명인가?"
"모두 일곱이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중상자들이다."

적에 대한 증오심으로 불타던 소위는 그들이 측은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군이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
도 그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지켰던 것이다.

'인간으로선 바보같지만, 군인으로선 당연한 행동이지.'

하무드 소위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기 뒤에 서 있던 2분대장에게
시선을 돌린 후 지시하였다.

"포로들을 잘 감시해. 위생병을 붙여주는 것도 잊지마."
"알겠습니다."

2010년 04월 05일. 목요일. 09시 30분. 한국 서울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금 여의도에 자리한 국회 의
사당 앞에 나와 있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주변엔 불상사에 대비
하기 위해 경찰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으며 파병안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회원들과 한총련 소속 학생들이 주축이 된 시위대와 파병
에 찬성하는 우익단체 회원 및 거기에 호응하는 시민과 기타 단체
들이 집단을 이루어 대치하고 있습니다."

기자가 말한대로 의사당 주변에 모인 두 집단은 파병 문제를 놓고
서로를 비판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쪽은 파병을 반대하
는 이들이었다.

"여러분, 정부는 국익을 이유로 남의 전쟁에 우리 젊은이들을 보내
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파병안이 현실화되는 것을 막아야
만 합니다! 그것이 통일된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머나먼 열사의 대
지에서 죽어가는 것을 막을 유일한 길입니다!"

연사의 말에 사람들이 호응하듯 박수와 함께 '파병 반대'를 외치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그들에게 뒤질세라 우익단체의 연사도 파병
의 당위성을 역설하기 시작하였다.

"지금 우리 나라는 북부 지역에 대한 재건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데 고심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미국이 파병의 반대급
부로 제안한 선물들을 놓치게 된다면 통일 한국의 점진적인 발전은
물론이요 앞날조차 가늠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거기에도 적지 않은 사람이 호응하는 듯 여기저기서 '옳
소!'가 터져나오며 '파병 찬성'이 메아리쳤다.

"언제까지 이래야 합니까?"
"벙커에서 투표가 끝날 때까지."
"일사천리로군요."
"내가 알기론 얼른 처리하라는 미국의 종용 때문이라는군. 그들 입
장에선 기다릴 여유가 없으니까."
"개자식들……."
"미국을 욕할 필요는 없어. 애초에 얼른 처리하기를 바랬던 건 우리
정부였을테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경찰 지휘관은 수통에 든 시원한 물로 목을 축였
다. 그렇게 대치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CH-47D 치누크 수송헬기
들이 국회 의사당 건물 부근에 자리한 넓디 넓은 잔디밭 위에 착륙
하기 시작하였다.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로터 블레이드가 일으키는
강한 바람에 잔디들이 춤을 추는 동안 헬기의 후방 출입문이 내려
지면서 국회의원들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차량편으로 이동하면 위험
하다는 정보가 입수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여당이건 야당이건
할 것 없이 모든 의원들은 헬기의 신세를 져야만 했다.

"너무 빨리 처리되는 게 아닙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만 파병 여부는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여론
이 대단해서……."

오세창 의원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닫은 총재를 바라보면서 씁쓸
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겉보기와 달리 야당 의원이라고 모두
파병 반대 여론에 동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유는 서글프리만치 간
단했다. 통일을 맞이한 한국에 닥친 금전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북
부 지역의 피폐한 인프라 복구와 산업 기반 조성에 엄청난 예산이
필요해지자 한국 정부는 필사적으로 세계 각국 기업들을 상대로 투
자 요청을 했지만, 그들의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 없었다. 게다가 한
국이 제시하는 북부 지역 복구 사업안에 대해 여러 공신력있는 국
제 신용평가 회사들은 썩 좋은 평가를 해주지 않았고 이것은 외국
기업들로 하여금 북부 지역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게 만드는 큰 요
인으로 작용해 왔다.

"여보게 세창이. 자네가 더 잘 알테지만 우리 나라로서는 선택의 여
지가 없어. 북부 재건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든 확보해야만 한단
말이야."
"국민들이 크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반대하던가?"
"물론 그렇진 않을겁니다. 하지만 타국 땅으로 우리 젊은이들을 보
내야 한다는 건 도저히 찬성할 수가 없습니다."
"당내에서도 자네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네만, 대부분
이집트 파병을 통일 한국의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지배적
이네."
"국익을 위해 피의 거래를 하자는 것이로군요……."

야당 의원들이 주로 이용하는 휴게실에서 총재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은 오 의원은 이를 갈지 않을 수 없었다.

"밖은 파병안 때문에 엄청나게 소란한 것 같습니다만……."
"국가 전체의 입장을 고려하려 들지 않는 인간들이요. 그냥 무시하
는 게 좋습니다."

여당에 속한 최성택 의원은 옆에 앉은 동료 의원의 말에 그렇게
대꾸한 후 본회의장 벽에 붙은 디스플레이로 시선을 옮겼다. 이번
파병안에 대해 찬성과 반대를 표시한 의원들의 이름이 바로 저기에
나오는 것이다. 2003년에 있었던 이라크 파병안을 처리할 때도 같은
방식을 썼으니 결코 낯설지는 않았지만, 그의 입장에선 이름을 공개
한다는 것이 조금은 불쾌하였다.

"우리가 이길 가망성은 어디에도 없네."
"그렇다고 기권할 수만은 없어."

오세창 의원은 체념해버린 동료 의원들을 열심히 설득하는 것으로
파병안 통과 저지를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런 가운데 파병안
통과 여부를 쥔 여야 의원들이 일제히 본회의장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2010년 04월 05일. 목요일. 10시 00분. 한국 황해도 재령

-반대 32표, 찬성 215표, 기권 52표로 파병안이 통과되었음을 선언
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국회의장은 망치를 세 번 두드리며 파병안이 통과
되었음을 알렸다. 곧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이
의장석 앞으로 몰려가 '파병 반대!'를 외치며 울부짖었다.

'베트남전 이후 사상 최초의 전투부대 파병이라… 이제 우리는 어떻
게 되는 것인가?'

화면 너머에 나타난 파병안 통과에 항의하는 의원들을 바라보던
조길준 소장은 입에 담배를 물고는 불을 붙이려고 하였다. 바로 그
순간 책상 위에 놓인 전화기의 벨이 울렸고 그는 급히 달려가 수화
기를 들어 입에 대고 말하였다.

"5사단장 조길준입니다. 아, 군단장님이시군요. 뭐라구요? 그게 정말
입니까?"

파병안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은 사단 전체에 일찌감치 퍼져나가고
있었다. 시간이 남는 병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 문제를 놓고 심각
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주고 받을 정도였다.

"야, 우린 그럼 그리로 보내지는 거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냥 지원자만 보내겠죠."
"이거 참… 제대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모든 중대원들은 들어라. 곧 중대발표가 있을 것이다. 근무자들을
제외한 병력 전원은 각자가 속한 소대의 막사에서 대기하라.
"애들아, 우리끼리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봤자. 소용 없다. 그냥 막사
에 가서 기다리자. 윗분들이 잘 설명해 주실테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이창수 병장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뱉은 후
막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파병 얘기가 나오면서 들은 겁니다만, 3개월 뒤에 제대하는 사람도
지원을 받아준다고 했습니다."
"남은 기간이 그렇게 짧은 마당에 제정신인 놈이라면 절대로 지원
하지 않을 거야. 사정이 절박한 녀석이 아니라면 파병 같은 건 가지
도 않을테지."

막사 안에선 앞으로 있을 파병에 대한 얘기가 그치지 않고 있었다.
막사에 들어온 중대 인사담당인 우장현 상사는 웅성거리는 소대원
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뭣들하고 있나? 다들 조용히 하지 못해!"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두들 정좌한 채로 입을 다물었고 우
상사는 서류를 들여다보며 말하였다.

"모두 알다시피 방금 국회에서 파병안이 전격 통과되었다고 한다.
국방부는 파병안 통과에 맞추어 이집트에 보낼 부대를 언론에 정보
제공의 형식으로 알렸으며 그 부대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리가
속한 5사단이라고 한다."

5사단이 이집트에 파병될 부대 가운데 하나로 뽑혔다는 말에 막사
안에 모인 병사들의 얼굴엔 밝은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
로 어두운 기색이 가득해지고 말았다. 우 상사는 이를 애써 무시하
며 계속 말하였다.

"이집트에 보낼 병력은 무조건 지원자로만 충당되어지며 근무 기간
이 3개월 남은 자까지 지원할 수 있다고 한다. 갈 생각이 있는 사람
은 내일부터 인사과로 나와서 지원서를 제출하도록."

그렇게 말한 다음 우 상사는 서둘러 막사 밖으로 나왔다. 그가 옆
에 자리한 막사로 가서 파병안 통과 소식을 알리는 동안 파병에 관
한 상부의 공식적인 정보를 접한 사병들은 하나같이 크나큰 근심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씨발… 최근 들어서 꿈자리가 뒤숭숭 하더니만, 오늘 아주 딱 걸렸
네."
"야, 이한성. 왜 그렇게 꿍한 표정을 짓고 있냐?"
"소대장님, 그 얘기 있잖습니까? 우리 부대가 이집트로 보내진다는
것 말입니다."
"그럼 지원하지 않으면 되잖아?"
"제가 알기론 지원자가 없으면 강제로 뽑을 거라고 합니다."
"야, 괜히 여러 사람 걱정하게 하지 말고 네 일이나 해."

자신이 탑승하는 K-2 전차의 장전수인 이한성 상병이 파병 얘기
를 꺼내자 김명철 소위는 달갑지 않다는 듯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
며 전차의 차체 측면에 달린 스커트를 작업용 공구로 떼어내기 시
작하였다. 막상 파병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자 사단 전체의 분위
기는 그대로 급변하고 있었다. 입버릇처럼 파병을 다녀오고 싶다고
말하던 이들은 드디어 기회가 왔다며 싱글벙글 거리는 반면, 따로
계획이 있거나 몇 개월만 더 있으면 제대할 이들은 걱정이 태산같
았다. 김 소위는 잠시 그와 관련한 문제가 머리 속에서 떠오르자 고
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병, 그것도 전투 병력의 일원으로 파견되
어서 무사히 돌아온다면 그와 관련된 경력은 장교와 부사관들에겐
승진을 보장해 줄 확실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을 감수해
야 한다는 점이 그를 망설이게 하였다.

2010년 04월 05일. 목요일. 10시 30분. 한국 서울

"결국엔 주사위를 던지셨군요."
"어차피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었어."

이강혁 대통령은 자신의 최측근과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간식으로 감자전을 먹으며 얘기하고 있었다. 이번 파병은 그의 입장
에선 무조건 기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북부 재건에 필요한 재원 마
련과 더불어 '한국 우주 항공'(KAI)이 록히드 마틴과의 기술 협력을
통해 설계 및 제조한 T/A-50의 미공군 납품 성사 여부가 이번 파
병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사상 최강의 전력을 지닌 미공군은
거기에 걸맞게 고성능의 항공기들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지만 제
트 전투기 혹은 각종 지원기 조종사들을 양성하는데 필요한 훈련기
세력은 걸작 경전투기 F-5 탄생의 밑거름이 된 T-38 탤론과 비지
니스 제트기에 기반을 둔 T-1A 제이호크가 주력을 이루고 있어 대
단히 간소한 편이었다.
훈련기가 지닌 목적의 성격상 이는 특별하게 보지 않아도 되었지
만, 미공군은 T-38과 관련해 적지 않은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1961년에 양산기가 배치되는 것을 시작으로 1972년까지 1187대가
생산된 T-38은 700대 정도가 수명 연장을 위한 구조 보강을 거쳤
지만 일선에 등장한지 40년이 넘은 기체를 계속 사용한다는 것은
문제가 없지 않았으므로 이를 대체하기 위한 사업이 시작되었고
KAI는 록히드 마틴과 손을 잡고 T-50을 제안했었다. 첫 시제기가
등장했을 당시 한국 언론은 미 공군의 훈련기 확보 사업의 주력 기
종으로 채택된다면 400대 가량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었
지만, 그것은 지나친 낙관이었다. 한국 외에도 미 공군에 자국산 훈
련기를 판매하고 싶어하는 나라가 많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들도
KAI가 록히드 마틴과 제휴한 것처럼 미국 굴지의 방산 업체들과
손을 잡은 관계로 T-50이 뽑힐 가능성은 희박하기만 했었다. 이런
마당에 미국이 이집트로의 파병을 요청했고, 한국 입장에선 국민 감
정을 이유로 북부 재건에 필요한 재원 마련과 더불어 방위산업 활
성화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앞으로 경상도에서 여당이 밀릴 일은 없겠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나?"
"KAI의 공장이 경남 사천에 있으니까요. 고용 확대는 지역 경제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요."
"그와 동시에 가장 훌륭한 비판의 소재가 되기도 하지. 세계의 반전
주의자들이 미국을 비롯한 규모 있는 방위산업을 유지하고 있는 강
대국들을 공격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나?"
"어차피 흘릴 수밖에 없는 피, 차라리 손해는 보지 말아야 합니다."
"쉽게 풀리지는 않을 거야. 적어도 우리가 이슬람권 국가들을 상대
로 정책적으로 펴온 외교적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테지……."
"그라운드 제로가 생긴 이후 우리의 그와 같은 노력은 이미 물거품
이 된 지 오래이지 않습니까?"
"하긴 우리 입장이 엄청 애매해졌어. 그간 미국의 요청이 있을 때마
다 지원부대만 보냈다지만 알 카에다의 테러에 지지의 눈빛을 보내
던 적지 않은 이슬람권 국가의 민중들에겐 우리가 좋게 비치지 않
았으니까. 이제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우리가 택할 길은 딱 한가지
뿐이야."
"우물쭈물 하기보단……."
"일단 방향을 잡으면 확실하게 끝장을 내는 것이지."
"무사히 풀려야 할 텐데 걱정이군요……."

청와대에서 이강혁 대통령이 자기가 내린 결정에 대해 현실에 입
각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결론내리는 동안 국방부 건물 지하 5
층에선 파병에 필요한 제반 사항들을 두고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모두 아시다시피 급파해야할 선발대의 병력 확보가 문제입니다. 공
군의 경우엔 문제가 없지만, 육군은 1개 공수여단 병력과 장비를 여
행사로부터 징발한 여객기와 미공군의 전략 수송기에 실어서 보내
야합니다. 여기 까지는 전적으로 지원에 입각해야 하는 이번 파병의
성격상 일개 부대 전체를 그대로 보내는 것은 무리입니다."
"파병되기를 희망하는 장교와 사병들은 그리 적은 편이 아니 잖습
니까?"
"문제는 그들이 한 곳에 모여있지 않고 흩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집트에 먼저 파병될 예정인 공수여단의 파병 희망자 확보에 관
한 문제가 논의되는 가운데 정재석 대장이 좌중을 돌아보며 말하였
다.

"차라리 새로운 부대를 창설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새로운 부대라니요?"
"기존 부대를 급파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새로운 부대를 창설하자는
말입니다. 인원 비율은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군요. 우리 나라가 팔
도로 이루어져 있으니가 각 도에서 출생한 장교와 사병들을 모아
이번 파병을 위한 부대를 구성하자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필요하다
면……."

잠시 말끝을 흐리자 여러 장성들이 촉각을 곤두세운 가운데 정 대
장은 싱긋 웃으며 마저 말하였다.

"훈련이 고될 수밖에 없는 부대에서 근무했던 예비역들의 지원을
받아주는 것도 신중히 고려해 봅시다."
"여론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자기 스스로 가겠다는 사람을 받아주는 것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야 당연한 일입니다만, 국민감정이 조용히 넘어갈 리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해합니다. 베트남전 당시 입은 여러 형태의 손실만으로도 할 말
이 없으니까요."
"일단 병력 확보와 관련된 문제는 관계 부처와 협의해야 합니다. 그
리고 초기에 파병할 부대는 최대한 방어에 중점을 두고 독자 지휘
권을 보장받아야 합니다."
"그 점은 충분한 협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집트에 보낼 우리 병력
은 독자 지휘권을 보장받을 것입니다. 당연히 이집트군 지휘부의 작
전에 관련한 요청은 정중히 경청해 주어야 합니다만……."
"그나저나 이번에 파병할 예정인 공수여단의 편제는 어떻게 됩니
까?"
"이걸 보십시오."

곧 장성 한 명이 키보드를 조작해 디스플레이에 자료가 나타나게
하였다. 이집트에 보낼 예정인 공수여단의 편제는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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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병력 2400~2600명

보병 2개 대대(총원 900~1000명, 박격포, 유탄 기관포 등 각종 중화
기 운용 인원 포함)
자주포 1개 소대(K-9 자주포 3대, 승무원 9명, K-10 탄약 운반 및
보급차 6대, 승무원 12명)
의료 지원단(총원 300명)
차량 지원단(각종 수송차량 30대, 전투용 차량 30대, 운용 및 정비
인원 300명)
공병단(건설용 중장비 10대, 총원 300명)
군수 지원단(총원 100명)
행정 업무(총원 100명)
------------------------------------------------------

"결코 적은 인원이 아니군요."
"가급적 이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만, 향후 닥칠 문
제를 생각하면 모두 살아서 귀국한다는 보장은 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누군가는 죽게 된다는 뜻이군요."
"전쟁이란 결국 적지 않은 인원의 희생을 동반합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말입니다."
"희생, 희생이라……."

잠시 자리에서 일어선 정 대장은 벽에 걸린 세계지도로 시선을 돌
리며 생각에 잠겼다. 조국은 당면한 현실을 이유로 미국의 파병 요
청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적지 않은 현역병들과 군에서 제대해 사회
에서 살아가는 전역자들이 국가의 부름보다는 자신의 미래를 위한
다는 생각에 파병 대열에 끼어들게 될 것이 불을 보듯 훤하였다. 먼
훗날 자신들의 행위가 물질적으로나마 좋아진 미래를 만드는데 일
조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오만한 미국의 국제 전략을 대행해 준 것
에 대해 비판할 후세들을 생각하니 정 대장은 씁쓸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SF를 좋아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 곳에서 활동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