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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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푸르스름 하지도 않은 새벽, 비는 내리고 있었고, 그 남자는 나의 까페의 햇빛가림막 밑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남자는 온 몸이 젖은 듯 했다. 가을 새벽의 칼바람에 떨고 있었다. 나는 고심끝에 조용히 문을 열었다. "이봐요, 거기 있지 말고 들어와요." 남자는 내 말에 못믿겠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들어오라구요?" 나는 조용히 조금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었다. 까페를 경영한 지 1년째지만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은 아직 서툴다.
남자는 까페 안으로 들어섰다. 몸을 한번 부르르 떨더니 의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곧 내 눈을 바라보았다. 직감했다. '아, 이 사람도 서툴구나.'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의자 앉으세요." 남자는 그말이 들리기 무섭게 의자에 바로 앉았다. 그러다가 무언가 무안한지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딱히 무얼 주문하지 않으셔도 되요. 비만 피하다 가세요." 그 물음에 남자는 나를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는 조금 어색, 어눌한 말투로 말을 조금씩 이어나갔다. "...이 도시에서 흔치않은 여자네요." 나는 별로 들은 척하지 않았다. 너무 말이 어색해서 소름끼침과 동시에 웃겼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남자는 사람들없는 새벽에 나온 히키코모리일지 모른다. 어쩌면 이 남자는 뱀파이어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시간여행자일지도. 정말 어쩌면 내가 스포일러를 한 것일지도 모르겠군. 그 생각에 다다르자, 땡. 오븐이 빵이나 거두러 오라고 나를 부른다. 나는 그 소리에 이끌려 오븐의 문을 열었다. 오늘 마들렌은 잘 팔릴 것 같았다.
"하나 드실래요?" 그 말에 남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분은 별로라요."
"커피는 마셔요?" 그 말에 남자는 또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세를 질 순 없죠."
"아." 내가 약간의 탄성을 내자, 남자는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합니다. 돈이 없어요."
"이해해요." 내가 그 말을 하자, 남자는 계속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합니다."
미묘한 거리감. 얼굴을 보면 꽤나 평범한 남자인 것 같은데, 왜 이 새벽 5시에 돌아다니고 있을까. 그 질문을 생각하기도 전에 남자는 말했다. "편의점 알바 끝나고 집에 가고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릴줄은 몰랐어요." 마치 잘못을 실토하는 아이처럼.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요. 커피라도 내드릴게요. 어두운 밤 좀 지켜줘요." 남자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푸른색, 흔치 않은 눈동자가 빛났다. "만일 내가 나쁜 사람이라면요?"
그 말에 나는 머그컵을 든 채로 움찔했다. 한 손으로 조심히 머리를 가다듬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눈빛은 이상했다. 마치 자기 연민에 빠져있는 느낌. 나는 남자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나쁜 사람은 분명 아니야. 하지만 뭔가 우울해. 그리고 지독하게 상처가 많아. 뭐, 이 도시에 사는 남자들은 두 종류잖아. 남을 공격하며 살거나, 아니면 너무 착해서 당하고 살다가 자살하는 케이스. 이 남자는... 이 생각에 다다르자, 나는 내가 너무 감상적이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고, 야. 쓸데없는 생각말고 그냥 커피나 다려 이년아.' 나는 에스프레소 머신에 머그컵을 가져다 대었다.
"너무 자책하지 마요."
남자의 말에 나는 소름이 돋았다. "뭐라구요?" 내가 뒤돌자 분명 창가에 앉아있던 남자는 어느새 바 앞에 서있었다. 바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소리도 인기척도 없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남자의 얼굴은 미묘했다. 마치 뭔가 인정을 바란다는 눈빛. "이왕 왔으니 커피 다리시는 동안 재미난 이야기나 할게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야기 좋지, 끝나고 당신이 나를 헤치지 않는다면.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했다. 이런 느낌은 예전에 집에 남자친구가 쳐들어 올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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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인지 기억 안나요. 하지만 근무했을 동안의 일임은 확실해요. 여느때처럼 저는 카운트다운 앱을 틀어 봤어요. 제한시간은 3시간 21분 34초를 정확하게 지나고 있었죠. 세상에. 그날은 2일동안 보초를 선 기분이었어요. 대체 이 편의점에 야간아르바이트는 왜 필요한거야. 한 명도 들어오지 않는데. 뭐, 그냥 시간때우고 돈만 받으면 나야 좋지만. 문제는 시급이 더럽다는 거지. 이런 별별 생각들을 하며 카운터에 있는 싸구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있었어요.
그때 한 부랑자가 들어왔습니다. 뭐라 할 수 없는 고린내가 나는 사람이었어요. 날서고, 찐덕한 느낌. 어떤 일인지 상상하긴 싫어도 뭔가 한건 했다는 표정으로 그 부랑자는 들어왔어요. 잠깐 그 허름한 차림새의 부랑자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치고 의무적으로 외쳤어요. "어서오세요." 그 부랑자가 홱 고개를 돌려 나를 보자, 저도 모르게 시선을 회피하게 되더군요. 슬쩍 곁눈으로 봤는데 눈이 거의 썩은 눈이었어요. 솔직히 그 차림새를 보아하면 돈 안내고 물건달라고 할 것 같긴 하더라구요. 아니면 동네 거지인데 배고파서 들어왔을 수도 있어요. 흉기를 제 목에 대고 먹을 것을 구걸할 수도 있고... 근데 그 날서고 찐득한 냄새... 어딘가 맡은 적 있는 것 같은데 생각할 수록 섬뜩한 그 썩은 내가 저를 묘하게 두렵게 하더라구요. 제 손은 어느새 카운터 밑의 스위치로 가고 있었어요. 어쩌면 본능일 지도 모르겠군요. (여기서 남자는 엷게 웃었다.)
부랑자는 카운터 위에 맥주 한병을 턱 올려놓았어요. 그리고 주머니에서 주섬주섬하더니 저에게 꾸깃꾸깃한 돈을 주더라구요. 천원짜리 세장. 저는 당장 거슬러줬죠. 저는 동전을 든 손을 내밀어 드렸습니다. 그걸 가만히 바라보던 부랑자는 돈을 세는 듯 하다가... 갑자기 제 손을 덥썩 잡더군요! 저는 순간 흠칫하며 당황했습니다. 한 손은 여전히 스위치에 가있었어요. 부장자는 서서히 고개를 들더니 마침내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소름끼치는 눈은 여전히 잊지 못해요. 부랑자는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목이 약간 쉰 것 같았어요. "조심하게..." 그리곤 제 손에서 거스름돈을 집어갔어요. 하지만 부랑자는 여전히 오른손으로 제 손을 잡고 있었죠. 그리고 왼손을 주머니에서 다시 꺼내 검지로 제 손금의 한 줄을 서서히 훑더군요. 그 감촉은 이루말할 수가 없어요. 저는 너무 소름이 돋아버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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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으스스함에 덜덜 떨고 있었다. 나는 그의 앞에 커피를 내주었다. "그게 다인가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제 인생에서 그만큼 무서웠던 적은 없었어요." 나는 조금 생각하다가, 의문이 들어 헛웃음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설마, 그거 오늘겪은거 아니죠?" 머그컵을 들던 그는 조금 움찔거리다가,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머그컵을 바 위에 내려놓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동안 말이 없다가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무언가 더 말하려고 하는 듯 했다.
"뭐..." 그는 조심히.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솔직히... 당신을 보았을 때..." 남자는 내 눈치를 바라보았다. "마치, 제 인생의 다른 삶을 살게 해줄 것 같았어요..." 내가 남자를 지긋히 바라보자 남자는 바로 다시 시선을 회피했다. "고백하는 건가요?" 내가 미소를 띄었다. 남자도 엷게 미소를 띄다가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 옳지 않은 생각일지도 모르겠군요." 남자는 눈을 게슴츠레 하게 떴다. "...아마..." 그리고는 천천히 바 위에 엎드렸다. 수업 끝난 학생같이 그는 잠들었다.
나는 말했다. "걱정마요. 옳지 않은 생각은 아니에요. 나는 당신에게 다른 삶을 보여줄 거니까." 남자는 잠에 취해있었다. 나는 바 건너편으로 가 그의 옆에 섰다. 그리고 입을 벌리고 (가끔 그게 흉물스럽다고 느끼긴 하지만 먹이앞에 어쩌겠어.) 그의 목을 물었다.
입안에 가득 체액을 들이키다 얼핏 드는 생각이 있었다. 아까 마들렌에 쪽지 적는거 잊지 않았던가. 아 썼구나. "승아야, 언니가 니 오늘 아침 팔 마들렌 구워놨어. 그런데 나 오늘 구울하나 만들어서 간다. 퇴근 후에 놀라지마."
그냥 이상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