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알




 혜린은 수도꼭지 구멍에 뭔가가 꾸물럭 하는 걸 보았다. 지네일까? 그렇담, 그 끔찍한 다리들이 머지않아 삐져나올 것이다. 바퀴도 그렇지만, 지네는 최악이었다. 지네는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는 다리와, 마찬가지로 셀 수도 없는 마디를 가졌다. 언젠가 어느 책에서, 모기의 몸에는 수많은 세균과, 모기보다 작은 벌레들이 산다고 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모든 벌레들이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벌레의 다리 관절 사이에, 등껍질의 주름과 주름 사이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끔찍한 놈들이 무수히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사람 사는 집 안의 온갖 더러운 곳을 돌아다니는 벌레라면 특히나. 그리고 지네는 어떤가? 그 놈은 세균 사는 다리를 몇 개나 가졌지? 관절 사이 사이엔 얼마나 많은 미세한 벌레들이 공생하고 있을까?

 

 평소 같았으면 벌써 기훈을 불렀을 테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오빠는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를 만나러 집을 나선 참이다. 그가 싱글벙글하던 모습이 머리를 스친다. 친구가 만화가가 됐다나 뭐래나? 혜린은 만화 어쩌구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샤워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가한 주말에 자신을 집에 홀로 버려두고 떠난 오빠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눈앞에서 꿈틀거리는 뭔가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저걸 청결하고 안전하게 처리하는 방법이 없을까?

 

 수도꼭지 구멍에 손을 가져가는 건 상상할 수조차 없다. 지네가 손바닥을 타고 목덜미 쪽으로 기어오른다면 기절할 게 분명했다. 물. 그래, 강한 물로 쓸어버리자. 그럼 배수구로 자연스럽게 쓸려 사라질거야. 청결하고, 안전해. 만족스런 답을 얻은 혜린은 미소지었다. 샤워기 전환 벨브를 위로 올리고, 핸들을 최대로 돌렸다. 그녀는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에 손을 가져갔다. 손바닥이 약간 아릴 정도로 강하다. 작은 벌레는 그대로 찌부러져 죽을지도 모르겠다. 혜린은 천천히 샤워기를 수도꼭지 구멍 쪽으로 겨냥했다.

 

 연갈색의 미끈거리는 빛이 나는 것이 툭 떨어졌다. 다리가 없다? 지네는 아니다. 벌레도 아냐. 부드러운 살을 가진, 연약한 생명체로 보인다. 혜린은 급히 손을 뻗어 그것이 배수구로 빠지는 걸 막았다. 조심스럽게 집어 올려 눈앞으로 가져갔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혜린의 손바닥에서 꾸물거리는 작은 생명체는 촉수같이 생긴 눈을 내뻗고 있었다. 민달팽이였다.

 

 혜린은 달팽이가 어리둥절해 하는 것처럼 보여 귀여웠다.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들어올 수 있었을까?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출입문의 넓은 틈 사이로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이사 온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넓은 방 두 개에 부엌과 화장실이 딸린, 반 지하의 월세집이다. 처음 이사 왔을 땐 기훈이 집을 잘 골랐다고 생각했다. 전보다 햇빛이 잘 들고 넓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단점이 눈에 들어왔다. 전체적으로 틈이 많은 집이었다. 문이란 문에는 다 넓은 틈이 있어서, 그 사이로 찬 바람은 물론이고 온갖 작은 벌레들이 기어들어올 판이다. “눈에 훤하다 훤해. 오빠가 처음 본 방을 10분도 안 되서 계약하는 게.” 바퀴벌레를 잡아 화장실 변기에 버리는 기훈에게 입을 삐죽대며 혜린이 했던 말이다. 혜린은 직장에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이사할 새 자취방을 구하는 건 기훈의 몫이었다.

 

  “춥고 배고프지? 이 언니가 따뜻하게 돌봐줄께.”

 

 혜린은 손바닥 위의 여린 생명체에게 말을 걸었다. 동물을 좋아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개나 고양일 키우지 못 했다. 전에 있던 집이 좁기도 했지만, 지금은 평일에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혜린은 꼬박꼬박 직장에 가야 했고, 기훈도 낮엔 독서실을 전전했다. 개 정도 되는 동물이라면 외로움을 느낄 정도로 감정이 풍부하다. 그러나 달팽이는 다르다. 이 작은 생명체는 외로움을 모른다. 이 굼뜬 친구에게는 아주 사소한 변화도 기괴한 뉴스거리가 되리라. 그녀는 달팽이가 놀라면 어떨까 잠시 상상했다. 달팽이는 놀라움마저 느릿느릿하게 표현할 텐데, 그래서 겉보기엔 비정상적으로 태연할 것이다. 귀엽다는 생각에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따뜻한 물로 달팽이를 씻어내고 빈 그릇에 그를 옮겨 담아, 위를 보다 큰 그릇으로 덮었다. 혜린은 샤워를 하던 중이었다. 방금 막 떠오른 달팽이에 대한 웃기는 얘기들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입으론 패닉의 <달팽이>를 흥얼거리며 머리를 헹궜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 뒤, 혜린은 다시 화장실로 돌아왔다. 달팽이를 넣어두었던 그릇을 열어 생사를 확인한다. 검지로 미끈한 등을 쓰다듬자, 파묻혀있던 촉수 눈이 다시 뻗어나왔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등을 떠밀어 달팽이가 자신의 왼손 바닥에 기어오도록 만들었다.

 

 “달팽씨, 새 집으로 이사 갑시다.”

 

 그의 새 집은 빈 페트병이다. 물을 끓여 마시기가 귀찮아 이사한 직후 생수를 한 박스 주문했었다. 때문에 부엌엔 마시고 남은 빈 페트병이 가지런히 모여 있다. 어떻게 처리할지 곤란했는데, 지금 막 적절한 사용처를 찾아낸 참이다. 혜린은 달팽이를 페트병 안에 집어 넣고, 물을 조금 흘려 넣었다. 뚜껑을 닿고 방 안으로 가져왔다. 숨구멍이 필요했기에, 커트칼로 작은 세모 모양의 구멍을 두 개 뚫었다. 밥도 줘야 하는데.

 

 냉장고 안에는 지난번에 혜린의 엄마가 돈가스와 함께 보내준 양배추 한 덩이가 있었다. 식사 때마다 돈가스에 곁들인 샐러드로 만들어 먹으라는 어머니의 깊으신 뜻이었다. 그러나 혜린이나 남자친구인 기훈이나 김치 외의 야채엔 큰 흥미가 없었다. 결국, 돈까스를 다 먹은 지금도 양배추는 받았던 그대로다. 혜린은 양배추의 푸른 잎사귀를 조금 떼어내어 물에 살짝 씻었다. 이것도 처치 곤란이었는데. 혜린은 기뻤다. 달팽씨 덕분에 쓰레기에 불과했던 물품 두 개가 제 값어치를 하게 됐어. 그가 든 페트병의 뚜껑을 다시 열어 뜯어온 양배추 조각을 털어 넣었다. “달팽씨, 이제 일어납니다. 식사시간이에요.” 혜린은 기대에 찬 얼굴로 페트병을 들어 두 눈 앞에 가까이 가져갔다. 달팽이는 어느새 뉘어진 페트병 천장에 들러붙어 있었다. 그녀는 양배추 조각을 느릿느릿 오물거릴 그의 식사모습을 보길 원했다. 그가 풍성한 먹이에 대한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했다. 느린 놀라움, 느린 기쁨, 느린 만족감. 모든 감정을 느리게 드러낼 수밖에 없는 그의 기구한 운명.

 

 


 

 

 기훈은 창민이 부러웠다. 그는 자신이 진심으로 즐겨했던 바로 그 일을 하고 있다. 그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벌고 있다. 아직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성공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기훈은 집 문 앞에 서서 짧게 한숨을 토해냈다. 그런데 나는 뭔가? 그는 호주머니 속 열쇠를 뒤적이며 생각했다. 나는 왜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지? 왜 그렇지 못 할까?

 

 기훈과 창민은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다. 둘은 ‘만화’라는 공통된 코드로 금세 친구가 됐다. 물론, 또래의 학생들 중에서 만화를 본다는 건 흔한 취미다. 그러나 단지 보는 수준을 넘어 직접 그리고자 하는 열정은 흔하지 않은 공통점이다. 오래지 않아, 둘은 만화 동아리를 결성했다. 보는 동아리가 아니라 직접 제작하는 동아리. 학교 선생님의 정식 허가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지도 선생님 없이도 만화를 제작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알고 있었다. 아마 선생님들이 그들보다 모르는 게 더 많으리라. 원고를 그려 인쇄소에 맡겨 복사하고, 호치키스로 찍어 얇은 월간지 형태로 몇 부 만들었다. 처음엔 무료로 친구들에게 창작물을 나눠줬다. 나중엔 몇 백 원씩 돈을 받았다. 그래봐야 고작 인쇄비를 충당하는 정도이긴 했지만.

 

 기훈의 호주머니 안은 잔돈으로 가득했다. 100원 짜리도 10원 짜리도 모두 열쇠 조각 같다. 그가 문 앞에서 열쇠를 찾으며 서성이는 시간이 길어졌다.

 

 “오빠 거기서 안 들어오고 뭐해?”

 

 혜린이 출입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는 문가에 쓰레기 봉투를 던지며 기훈의 얼굴을 쳐다봤다.

 

 “엉?”

 

 “오빠, 오빠, 어서 들어와 봐. 귀여운 거 보여주게.”

 

 그녀는 기훈의 손을 다급히 잡아끌었다. 따스한 습기가 집안에 들어서는 기훈의 안경에 달라붙었다.

 

 “잠깐만, 신발 좀 벗자.” 또, 뭔 대단찮은 걸 발견했을까? 그녀는 자신과 근본적으로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와 사귄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됐다. 그녀는 그가 좋아하는 것과 다른 맛, 다른 색, 다른 냄새, 다른 디자인을 좋아했다. 각자의 취향은 때로 끔찍하게 대립했다. 언젠가 그는 그녀가 이쁘다고 자랑한 치마를 보고 기겁한 적이 있었다. 치마의 무늬가 레오파드였기 때문이다. 그는 어렸을 적에 본 목욕탕 배수구 근처 모인 찌꺼기들을 떠올렸다. 얽히고 섥혀, 좁은 공간을 가르고 잘게 으깬다.

 

 또, 그 비슷한 것을 목격하게 되지 않을까? 그는 걱정했다. 서둘러봐야 좋을 것 하나 없지.

 

 “나 세수도 좀 하고 올께.”

 

 “헤헤, 오빠 기대해. 혜린이가 엄청 갖고 싶어했던 거야.”

 

 화장실 문 밖에서 혜린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 보여 줄 수도 있지만, 가까이서 자세히 지켜보지 않으면 흥이 좀 떨어져서 말이야.”

 

 그녀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린다. 레오파드 치마를 자랑하기 전의 목소리와 비슷하다.

 

 기훈은 수도꼭지의 핸들을 돌렸다. 갑작스럽게 물이 터져 나온다. 손을 갖다댔다. 차다.

 

 “혜린아, 보일러 불 좀.”

 

 “응!”

 

 그녀는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가 다시 화장실 문 밖으로 돌아왔다. 기훈의 모습을 한시라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밥은?”

 

 “오빠 먹었어?”

 

 “아니.”

 

 “엇, 미안. 나 오빠 친구랑 밥 먹고 오는 줄 알고, 벌써 먹었는데.”

 

 친구랑 저녁을 먹고 온다고 말했던가? 기훈은 세수를 하며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푸, 푸, 나, 밥 안 먹고 간다고 문자 보냈는데?”

 

 갑자기, 그녀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깔깔깔 웃었다.

 

 “푸, 푸, 푸, 왜?”

 

 “꺄하하하, 오빠 미안. 나 낮에 씻고 잤어.”

 

 “그래서?”

 

 대야에 남은 물을 배수구로 흘려보내며 기훈이 물었다.

 

 “방해 안 받을려고 폰 끄고 잤어. 문자 같은 거 못 봤어.”

 

 혜린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체, 같이 먹고 싶었는데.”

 

 기훈이 일어서 문가로 다가왔다. 문턱에 물방울이 똑똑 떨어진다.

 

 “오빠 기다려, 수건 줄게.”

 

 그녀는 다시 우당탕탕 달려 나간다.

 

 “밥통에 밥 남아 있지?

 

 “응. 저녁에 동그랑땡 부치고 남은 것도 있어. 데워줄게.”

 

 어느새 수건을 들고 나타난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기훈이 얼굴을 닦는 모습을 빤히 쳐다봤다. 흡사 동물원에 처음 놀러온 호기심 가득한 아이 같다. 기훈은 그런 그녀가 사랑스러워 지금껏 사귀고 있다. 어쩌면 그녀에게 기훈은 덩치 크고 순한 동물일지도 모른다. 그는 언뜻언뜻 드러나는 그녀의 우월감을 느낄 수 있다. 자신보다 큰 동물 한 마리를 사육하며, 그를 곁에 두고 구경할 수 있다는 데서 비롯한 우월감. 하지만 반대로 동물의 입장에서 보면, 그러니까 아주 느긋하고 덤덤한 동물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우월감이란 공허할 뿐이다. 먹고 싸는 삶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매달리고 있지 않은가? 매달리고 애원하고, 좌절하고, 슬퍼하고, 또 때로는 기뻐하지 않는가? 한 마리 동물로서 기훈은, 바로 그런 우월감에 진지하게 몰입하는 혜린을 귀엽다고 생각한다.

 

 

 

 

 

 혜린은 기훈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오빠!”

 

 밥그릇을 싱크대에 담가 놓고 오는 그에게 비명을 지르며 안긴다.

 

 “왜?”

 

 “인제 진짜로 보여줄게.”

 

 그녀는 방구석에 놓인 책상으로 달려가 엎드렸다. 의자 다리 쪽에 손을 뻗어 달팽이를 넣은 페트병을 꺼냈다.

 

 “짠!”

 

 기훈의 얼굴에 놀라워하는 기색이 약간 감돈다. 하지만, 기뻐서 놀란 걸까? 싫어서 놀란 걸까? 그의 감정 표현은 항상 이런 식이다. 미묘하다. 얼굴만 봐서는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 수가 없어. 혜린은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오빠도 달팽이랑 비슷해.

 

 “이게 뭐야?”

 

 맹한 표정만큼이나 맹한 질문.

 

 “뭐긴 뭐야 달팽이잖아?”

 

 “껍질이 없네?”

 

 “껍질? 아이참, 껍질 없는 달팽이도 있잖아! 바보.”

 

 혜린은 손에 든 페트병을 기훈의 두 눈앞에 더 가져갔다.

 

 “나, 나도 알아. 민달팽이잖아.”

 

 당황했는지 그는 몸을 약간 뒤로 뺐다. 말투가 약간 어눌해져서 더 바보 같았다. 혜린은 페트병을 손에 쥔 채 쪼르르 달려가 기훈을 와락 안았다.

 

 “어때?

 

 그녀는 턱을 기훈의 가슴에 괴고,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뭐가?”

 

 “어떻냐고, 달팽이.”

 

 반응이 느려, 역시 달팽이 같아. 혜린은 생각했다.

 

 “키우게?”

 

 기훈이 우물쭈물한다.

 

 “응, 귀엽지?”

 

 “그렇네.”

 

 기훈의 품에 안긴 채, 혜린은 그의 엉덩이를 팡팡 때렸다.

 

 “오빠, 그럼 감정을 좀더 솔직하게 표현해봐. 혜린이 흥이 안 나잖아.”

 

 “와 귀엽다!”

 

 혜린은 그가 얼굴 근육에 힘을 줘서 입 꼬리를 끌어올리는 걸 보았다. 영판 달팽이야. 힘겹게 인간으로 진화한 달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