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Ball fanfic.

 

 

< 형제 >

 

 

 

오천은 외출 준비에 정신없는 오반을 부루퉁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오늘도 나가나 보네.’

 

얼마 전에 다짜고자 집에 와서 무공술을 알려 달라던 비델이라는 누나에게 코가 꾀인 건지 그 뒤로 오반의 외출이 잦아졌다. 목적은 무공술 전수. 그 말에 오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열흘도 안 돼서 무공술을 완벽하게 익혀 훨훨 날아가는 것을 이 두 눈으로 똑똑이 보았건만 무슨 무공술을 더 알려준다는 건지... 게다가 오반은 이제는 아예 대놓고 멋을 부리고 있었다. 정말 무공술을 가르치러 간다면 간편하게 도복을 입지 저런 활동하기도 불편한 양복 같은 걸 입지는 않을테니 오반의 말이 뻥이라는 것은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지만 어찌된 일인지 어머니 치치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천 역시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오반이 형아는 바쁘니까 방해하지 말고 나가 놀으렴.”

 

치치는 형 왜 저래요? 하고 묻는 오천에게 그렇게 답해 주었고, 늘 공부하거나 아니면 자기와 놀아주던 형이, 공부는 그대로 하는데 자기랑 놀아주는 것 대신 비델을 만나러 가느라 바쁘니 오천은 왠지 모를 소외감을 느꼈다. 아무래도 오늘도 서쪽 도시에 있는 트랭크스네 집에 놀러가야 할 듯 싶었다. 아님 엊그제 알게 된 아기 공룡을 찾아 나서든가.

 

“엄마, 저 다녀올게요.”

 

양복까지 차려 입은 아들을 보니 치치는 역시 내 아들, 인물이 훤하네 어쩌구 하는 소리를 해대며 오천 몰래 오반에게 스리슬쩍 돈까지 쥐어주었다. 그리고 뭔가 귓가에 소곤거리는데 그걸 들은 오반은 얼굴이 살짝 붉어졌고 이내 손사래를 치면서 집을 나섰다.

 

“잘 다녀와 형아!”

 

오천은 자기한테 인사도 안 하고 나가려는 오반의 등 뒤에서 크게 소리쳤고, 오반은 으약, 하는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오천이 부루퉁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 보는 것을 깨닫고는 이내 씨익 웃으며 무릎을 꿇고 오천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오천아, 형아 다녀올테니까 잘 놀고 있으렴.”

 

평상시 같으면 오반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에 매우 만족해 할 오천이었으나 이상하게도 오늘은 그런 형의 손길이 달갑지 않았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반은 곧 하늘로 날아 올랐고 순식간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오천은 아무도 없는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 보다가 갑자기 날아 올랐고 느닷없이 오천이 날아가자 깜짝 놀란 치치가 소리쳤다.

 

“오천아, 어디가는거니! 밥 먹어야지!”

“트랭크스 형네 가요!”

 

버럭 소리치고 쌩 하니 날아가는 오천의 꽁무니를 바라보며 치치는 내가 교육을 잘못 시켰어, 오천이 쟤가 점점 삐딱선이야, 하고 신세한탄을 하다가 문득, 두 아들이 떠나고 아무도 곁에 없음에 살짝 외로움을 느꼈는지 자신도 외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아버지 우마왕이라도 만나 볼까 하고...

 

 

 

투둑!

 

“응? 어머, 이게 누구야, 오천이잖아? 요즘 자주 오네.”

 

정원에서 차를 마시며 우아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부르마는 번개 같은 속도로 날아와 자신의 눈앞에 날렵하게 착지한 오천을 보고는 빙긋 미소지었다. 오천은 살짝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부르마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줌마. 트랭크스 형 있어요?”

“오천인 트랭크스를 너무 좋아한다니까. 하긴 누구 아들인데. 호호.”

“....”

“아, 미안. 호호. 글쎄, 트랭크스는 잠깐 어디 나간 거 같은데.”

“에? 그럼 언제 들어오는지 모르세요?”

“음... 얼마 걸리진 않을거야. 들어와서 차라도 마시면서 기다리렴.”

 

오천은 트랭크스의 기가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느끼고는 그냥 그쪽으로 날아가 버릴까 생각했으나 이미 부르마가 그의 손을 붙잡고 집 안으로 향하기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같이 따라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웬일로 베지터가 거실에 나와 있었고 오천은 그를 보자 뜨끔 하는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 트랭크스에게 엄하게 꾸짖던 모습을 몇 번 본지라 오천은 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베지터는 그런 오천이 자신을 무서워하든 말든 쳐다도 보지 않았지만.

 

“오천이는 무슨 차를 좋아하니? 커피? 홍차? 자스민? 레몬?”

“우유 주세요.”

 

부르마는 역시 애야, 하면서 피식 웃었고 이내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오천에게 따라 주었다. 그것을 꿀꺽꿀꺽 마시고 내려놓은 오천의 입가에 우유가 하얗게 묻어있자 부르마는 재밌다는 듯이 그의 입가를 닦아주며 말했다.

 

“오천이는 요즘 뭐하고 지내니.”

“요새 형아가 안 놀아줘서 심심해요.”

“누구, 우리 트랭크스가?”

“아뇨, 오반이 형아요.”

“오반이 형아가 왜?”

“몰라요. 비델이라는 누나랑 자꾸 만나러 가느라 저랑은 안 놀아줘요.”

 

어머나, 오반이가 드디어 연애를? 이건 치치 씨한테서도 못 들은 정본데? 부르마는 눈을 반짝반짝 거리며 오천에게서 최대한 정보를 캐내기 시작했다. 그것을 알리 없는 오천은 부르마가 묻는대로 술술 대답을 했고 부르마는 이내 듣고 싶었던 것을 다 들었는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오천이가 요새 심심하구나.”

“네. 근데 트랭크스 형도 없구. 쳇.”

 

입을 삐죽 내밀며 실망한 표정을 짓는 오천을 바라보며 부르마는 다시끔 오공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오천은 아버지를 본 적 없으니 모르겠지만 오공의 어린 시절의 모습까지 다 알고 있는 부르마로서는 그와 똑같이 생긴 오천을 볼 때 마다 오공이 생각날 수 밖에 없었다.

 

‘그땐 정말 대책 없는 꼬맹이었지.’

 

그래도 한때는 좋아했었는데... 살며시 향수에 잠기던 부르마는 이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오천은 다녀왔습니다! 하며 안으로 들어서는 트랭크스를 보자 반색을 하며 달려나갔다.

 

“트랭크스 형!”

“어라? 오천이 너 언제 와 있었냐?”

“아까 전에.”

 

오천은 눈을 반짝 반짝 빛내며 트랭크스에게 매달렸고 트랭크스는 얘가 오늘따라 왜 이래?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오천이 자신을 따르는 것이 싫지는 않은 듯 이내 그를 데리고 방으로 향했다.

 

트랭크스의 넓은 방은 수많은 책들과 화려한 장난감들로 가득했다. 그곳에 들어서자 마자 오천은 여기에 온 목적도 잊은 채 장난감에 정신을 빼앗겨 버렸고, 트랭크스는 어제 새로 산 장난감들을 펼쳐 놓으며 오천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너 이런 거 본 적 있어?”

“우와, 멋지다!”

 

호기심 가득 한 눈으로 장난감들을 바라보며 좋아하는 오천에게 트랭크스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내 말을 잘 듣는다면 이것들 중에서 몇 개는 줄 수도 있지.”

“저, 정말이야? 나 말 잘들을게. 뭔데?”

“아니 뭐, 지금 잘 들으라는 말은 아니고. 나중에.”

 

나중에 곤란한 장난 같은 거나 시켜 볼까나? 하며 음흉하게 웃는 트랭크스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천은 여전히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에 정신이 홀딱 팔려 있었다. 집에서는 딱히 가지고 놀 장난감이 없어서 밖에 나가 벌레들을 잡아 놀거나 아니면 작은 공룡들이랑 놀던 오천에게는 트랭크스의 비싸고 화려한 장난감들이 아주 매력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천아, 너 요새 자주 오는 거 같다. 뭔일 이라도 있냐?”

 

한 살이라도 많아서 그런건지 오천보다는 살짝 어른스러운 면이 있는 트랭크스는 오천이 그냥 자신을 찾아올리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질문했고, 신나게 장난감 삼매경에 빠져 있던 오천은 어? 하고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들고 있던 장난감을 스르르 내려 놓았다. 너무 신나게 노느라 여기에 왔던 목적을 상실해 버린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오천은 고개를 돌려 트랭크스를 바라보았다.

 

“트랭크스 형.”

“응.”

“여자친구 있어?”

“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트랭크스가 되물었고 오천은 부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있어?”

“아- 니, 없는데.”

“나도 없어.”

“....”

“근데 우리 형아는 있어.”

 

트랭크스는 이 불가해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잠시 멍한 얼굴로 오천을 응시했다. 설마 이 녀석이 내가 여자 친구가 있는지 없는지가 궁금해서 그동안 뻔질나게 찾아온 걸 아닐테고 도대체가... 음? 언뜻 스쳐지나가는 생각에 트랭크스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하, 뭔알인지 알겠다. 오천이 너, 오반이 형이 안 놀아주니까 삐져서 나한테 찾아온 거구나? 꿩 대신 닭이라고.”

 

오천의 표정은 놀라움으로 가득찼다.

 

“우와! 형 진짜 똑똑하다! 어떻게 알았어? 근데 꿩이 뭐 어쨌다고?”

“그건 못 들은 걸로 해. 뭐, 하긴 너한텐 오반이 형이나 나 밖에 없겠지만.”

 

오천은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푸념하듯이 말했다.

 

“트랭크스 형 말대로 나는 형이랑 오반이 형아 외에는 놀 사람이 없는데, 요새는 형아가 계속 비델 누나 만난다고 가버려서 심심해. 나보다도 빨리 못 날고, 에너지파도 못 쏘고, 그렇다고 겨루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거 같은데 왜 맨날 만나러 가는지 모르겠어. 거짓말까지 하면서 말이야.”

“거짓말?”

“응. 무공술 가르쳐 준다고 하면서 말야. 이미 그건 옛날에 다 가르쳐줬는데. 게다가 오늘은 완전 멋지게 차려 입고 나갔다니깐. 뭐하고 놀려고 그렇게 차려 입고 나간 건지 모르겠어.”

“뭐, 연인들이 하는 짓이 뻔할 뻔자지.”

“연인? 연인이 뭔데?”

 

트랭크스의 자세가 일순 흐트러졌다. 그러나 곧바로 자세를 가다듬은 트랭크스는 역시 그랬구만 하며 오천의 삐죽이 튀어 나온 머리를 잡아 당겼다.

 

“아야야, 아파 형!”

“크하하, 오천이 너, 연인이 뭔지도 모르는 거야? 그게 뭔지도 모르니 오반이 형이 왜 너한테 관심이 없는지도 이해를 못하지.”

“그게 뭔데? 중요한 거야?”

 

오천은 제발 알려달라는 듯이 트랭크스의 다리를 붙잡았고 갑자기 다리가 부러질 듯이 아파오자 트랭크스는 비명을 지르며 다리를 휘둘러 오천일 떼어냈다. 구석으로 주욱 밀려난 오천은 벽에 쿵 하고 부딪혔으나 별거 아니라는 듯이 다시 트랭크스의 앞으로 달려왔다. 트랭크스는 으, 하고 다리를 감싸 안으며 입을 열었다.

 

“이 녀석이 누구 죽이려고....”

“연인이 뭐냐니깐?”

“...연인이란 말야.”

 

에헴,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은 트랭크스가 말을 이었다.

 

“서로 사랑하는 남녀를 말하는 거야.”

“사랑하는 남녀?”

“그래. 서로를 이성으로 느끼며 사랑하는 사람을 말하는 거지. 쉽게 말하면 그 비델이란 누나랑 오반이 형은 서로 사귀고 있다, 이 말씀.”

“사귀는게... 사랑하는 거야?”

“사랑하니까 사귀는거지.”

“사랑이 뭔데?”

 

트랭크스는 이거 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하는 표정으로 오천을 내려다 보았다. 도대체 얘는 무슨 교육을 받길래 이런 거 하나도 모를까 싶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비밀스러운 보물들 중 빨간 딱지가 붙어 있는 것들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그런 걸 보기에 오천인 너무 어려. 암, 그렇고 말고.

 

“사랑은 말야.... 항상 생각이 나고, 항상 보고 싶고, 항상 같이 있고 싶고... 뒤돌아 서면 생각나고... 그런 걸 말하는 거야.”

“그게 뭐야.... 그럼 나도 오반이 형아를 사랑하는 거야?”

“그건 형제간의 우애고. 이성간의 사랑이랑은 전혀 다르지.”

 

전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오천에게 트랭크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도 조금만 더 크면 이해하게 될거야. 그치만 연인끼리 시간을 보낼 때 방해해선 안돼.”

“왜?”

“아무튼 안돼.”

“으응.... 알았어.”

“근데, 밥은 먹고 갈 거냐? 벌써 저녁 시간 다 되어 가는 거 같은데.”

“어? 벌써? 아냐, 나 집에 갈래. 엄마가 기다리실 거야.”

 

오천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창문을 열고 날아가려는 오천을 만류하며 트랭크스는 호이포이 캡슐을 열었다. 펑 하며 나타난 상자에 몇 개의 장난감들을 집어 넣은 그는 이내 그것을 다시 캡슐로 만들 뒤 오천에게 건네주었다.

 

“심심할 때 가지고 놀아. 그래도 심심하면 또 찾아오고.”

“응, 고마워 트랭크스 형.”

 

오천은 헤벌쭉 웃으며 캡슐을 받아들었고 이내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오천이 녀석, 늘 오반이 형이랑 지냈을텐데... 꽤 소외감 느끼겠네.”

 

뭐, 그래서 장난감도 챙겨줬잖아. 역시 나도 좋은 형이 될 자격이 있어. 그렇게 생각하며 방을 정리하던 그는 이내 급하게 챙겨넣다 보니 자신이 어제 사왔던 장난감도 그에게 줘 버렸음을 깨달았다. 으악! 하고 비명을 질렀으나, 그것도 잠시, 또 사면 되지 뭐, 하고 쿨하게 생각하는 트랭크스였다.

 

 

 

“오천아 형아 왔... 어? 웬 장난감들?”

 

저녁이 돼서 집에 돌아온 오반은 오천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자 의아해 하며 물었다. 엄마가 장난감을 사주셨나? 그럴 리가 없을텐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오반에게 오천이 말했다.

 

“트랭크스 형이 줬어.”

“트랭크스가? 오늘도 트랭크스네서 놀다 왔구나?”

“형아가 안 놀아주니까.”

 

상의를 벗어 옷장에 걸던 오반은 순간 멈칫하며 오천을 내려다 보았다. 그러나 오천은 이쪽은 보지도 않은 채 여전히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오천을 잠시 응시하던 오반은 어깨를 으쓱한 뒤 옷을 갈아 입었고 샤워를 하기 위해 목욕실로 향했다.

 

“근데 형아.”

“응? 왜?”

“비델 누나 사랑해?”

“컥!”

 

마악 욕실로 들어서려던 오반은 느닷없는 오천의 질문에 깜짝 놀랐는지 내딛던 발이 주욱 미끌어 져 버렸다. 그러나 바닥에 부딪히려는 찰나 재빨리 몸을 틀어 세면대를 잡았고 부르르 떨리는 몸을 일으켜 세운 뒤 오천을 바라보았다. 오천은 어느새 따라왔는지 욕실 문 너머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반의 얼굴에는 당황함이 가득했으나 반면에 오천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떠올라 있지 않았다.

 

“오, 오천아,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비델 누나 사랑하냐구.”

“오천아....”

 

오천이가 갑자기 저런 건 왜 묻는거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오천을 응시하던 오반은 이내 표정을 가다듬은 뒤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뭐, 글쎄, 사랑... 하나?”

“그럼 둘은 연인이야?”

 

저 녀석이 저런 건 또 어디서 주워들은거야? 곤란한 질문을 자꾸 해대는 오천에게 오반은 뭐라 답을 해줘야 하나 고민하다가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이, 일단 형아 좀 씻자.”

“알았어 형아.”

 

그러나 오반이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오천은 방바닥에 누워서 쿨쿨 거리며 자고 있었고, 그런 오천을 살며시 들어서 침대에 눕힌 오반은 물끄러미 오천을 내려다 보았다. 한없이 어리고 귀엽기만 한 자신의 동생. 바위 속에 숨겨진 벌레를 찾아내서 보는 걸 좋아하고, 나비랑 같이 날아다니는 것도 좋아하고, 아기 공룡이랑 노는 것도 좋아할 정도로 순수하기 짝이 없는 오천이었다. 그런 오천이 자신과 비델에 대해서 저렇게 대놓고 물어볼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물론 예전에 비델이 무공술을 배우러 처음 집에 왔을 때 ‘오반이 형아랑 비델 누나랑 결혼하기로 한 거야?’ 하고 물은 적이 있었으나, 그건 그냥 어머니 치치가 했던 말을 따라한 것에 불과했다. 이해하고 했던 말은 아니었다.

 

‘내가 좀... 오천이에게 소홀했나.’

 

그러고 보니 비델과의 관계가 발전할수록 그녀를 만나러 사탄 시티까지 가는 일이 잦아졌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때마다 오천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긴, 공부할 때 외에는 늘 오천이랑 놀아주고 했으니까. 아마도 오천이 입장에서는 늘 놀아주던 형이 자기랑은 안 놀아주고 갑자기 다른 사람이랑만 노니 조금 섭섭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도 참... 아무리 비델이랑 만난다고 해도 거기에 정신 팔려서 동생이 서운함을 느끼게 만들다니....’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오천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오반은 이내 뭔가가 떠올랐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끈 뒤 방을 나섰다. 그리고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이자 휴대용 폰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잠시 후, 화면이 바뀌면서 비델의 얼굴이 나타났다.

 

- 오반아, 왜?

“아, 비델. 잠시 시간 돼?”

 

오반은 직접적으로 말하기는 좀 그래서 일부러 돌려서 말을 하기 시작했으나 비델은 자신이 그레이트 사이어맨이라는 사실과 손오공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도 쉽게 알아차릴 정도의 예리함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녀는 오반이 돌려말한 보람도 없이 단박에 사실을 꿰뚫었고 오반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래서... 저, 미안하지만 내일 약속은 좀 미뤘으면 하는데....”

- 그러지 뭐. 아, 아빠가 부른다. 나 가볼게.

 

너무나도 쿨 하게 대답하는 비델. 곧바로 뚝, 하고 연락을 끊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화면이 바뀌며 원래의 시계로 되돌아 왔다. 오반은 일단 시간을 벌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책상 의자에 몸을 맡긴 뒤 생각에 잠겼다.

 

그의 생각이 길어질수록 밤은 깊어져갔고, 한참 후에야 생각이 정리된 오반은 오천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열린 창문을 통해 비춰지는 만월의 영롱한 광휘가 오천의 이마와 뺨 위에서 은은하게 부서지고 있었다. 착각이었을까. 오천의 눈가에서 무엇인가가 살짝 빛나는 것 같았다. 응? 하고 그쪽으로 다가간 오반이었으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반은 어깨를 으쓱 한 뒤 다시 책상으로 돌아왔고 오늘 못다 한 공부를 하기 위해서 스탠드를 켜고 최대한 오천 쪽으로는 빛이 안 가게 방향을 돌린 다음 책을 펼치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잘 먹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그래.”

 

룰루랄라 하며 설거지를 하는 치치를 뒤로 하고, 아침 식사를 마친 오반과 오천은 방으로 향했다. 딱히 할 게 없었던 오천은 잠시 앉아 있다가 오반이 옷을 갈아입는 듯 하자 말없이 방을 나와 밖으로 향했다.

 

‘오늘도 형은 나가나 보네. 또 트랭크스 형네 가기는 그렇고.... 오늘은 지난 번에 만난 아기 공룡이랑 놀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바깥에서 서성이던 오천의 머리 위로 오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천아, 너 설마 그 옷 입고 갈거야?”

“어?”

 

무슨 소리야? 오천은 벙찐 표정을 지으며 오반을 바라보았다. 이미 간편한 옷으로 다 갈아입은 오반은 손으로 오천의 복장을 가리키고 있었다.

 

“예쁜 옷도 많은데 왜 도복을 입었어. 형이 도와줄테니까 다른 거 입어라.”

“무슨 소리야, 형아?”

“어라? 기억 안 나니?”

 

오천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오반은 허참, 하며 말을 이었다.

 

“오늘 놀러가기로 했잖아.”

“언제?”

“어제 밤에.”

“어제 밤에 그런 약속을 했어?”

“응. 기억 안 나?”

“안 나는데.”

“정말 안 나?”

“안... 나는데...?”

“뭐, 그럼 말고. 에이, 그럼 약속 다시 잡아야겠네.”

 

오반이 못내 아쉽다는 듯이 말하며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오천의 눈이 크게 떠졌고, 미칠듯한 속도로 달려와 오반의 다리를 부여잡았다. 으갹! 하며 휘청하던 오반은 놀란 눈으로 오천을 내려다 보았고 오천은 급하게 대답했다.

 

“아, 아냐 형아! 뭔지 모르지만 얼른 옷 갈아입을게!”

 

그리고 쏜살같이 안으로 들어간 오천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이 옷 저 옷들을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방문 너머로 옷들이 펄럭이며 허공에서 춤 추고 있는 모습을 본 치치가 꺄악! 거렸지만 오천은 아랑곳하지 않고 더 어지럽혔다. 오반은 부르르 떨고 있는 치치를 진정시켜 다시 주방으로 돌려 보낸 뒤 방으로 들어왔고 이내 마음에 드는 옷을 골랐는지 빤히 자신을 쳐다보는 오천에게 말했다.

 

“그래, 그 옷 이쁘네. 그거 입자.”

 

오반은 오천이 옷을 입는 것을 도와주었고, 이내 옷을 다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선 오천은 우리 동생 멋지네, 하며 머리를 쓰다듬은 오반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런데 형아, 오늘 어디 가는 거야?”

“놀이 공원 가자며. 사탄 시티에 새로운 놀이 공원이 생겼다고 가고 싶다고 했잖아.”

 

내가 언제 그랬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데... 그렇지만 오천은 그냥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오반은 피식 웃으며 다시 한번 오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근두운!”

 

밖으로 나온 오반은 웬일로 그동안 등한시 했던 근두운을 불렀고 곧이어 작은 구름 하나가 하늘을 가르며 쏜살같은 속도로 날아와 그의 앞에 섰다. 오천은 왜 안 날아가냐는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말없이 근두운 위에 올라가 앉았다. 그의 뒤에 오반이 자리를 잡고 앉자 치치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재밌게들 놀다오렴. 싸우면 안 된다.”

“네, 엄마.”

 

두 형제를 태운 근두운은 하늘 높이 날아 올랐고, 아까부터 상황이 계속해서 이해가 안 되던 오천이 다시 질문을 하려던 찰나, 오반이 팔을 뻗어 오천을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오천아, 꽉 잡아라. 떨어지면 안 되니까.”

“...알았어 형아.”

 

오천은 나도 이제 잘 날 수 있어! 하고 대답하고 싶었으나, 왠지 지금은 그냥 이대로 형의 넓은 품 안에서, 폭신한 구름을 타고 날아가는 것을 즐기고 싶었다. 바람이 새차게 불어와 얼굴을 때렸으나 오랜만에 오반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됐다는 생각 때문인지, 오천은 형의 품이 언제나처럼 참 따뜻하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것도 느끼지 못했다.

 

 

 

“우와, 저거 타보자 형아!”

 

놀이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사탄 시티에서 마음 먹고 거대하게 만든 공원이었기 때문인지 그 크기도 굉장히 컸고 그래서인지 그 어느 놀이 공원보다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오천은 브이 자를 하고 있는 미스터 사탄의 동상을 지나 달려가며 오반의 손을 끌어 당겼고, 오반은 알았어, 알았다구 하며 오천과 함께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일반인이라면 놀이 기구 몇 개 타고 공원 끝에서 끝까지 몇 번 왕복하면 금새 녹초가 되겠지만 이 둘은 강인한 체력을 가진 사이어인이라 그런지 이미 놀이 공원을 수십 바퀴는 돌고도 또 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아직 모든 놀이 기구를 타 보지 못한 상태였다. 오반은 오천이 여기 있는 모든 놀이 기구를 다 탈때까지는 아마도 집에 가려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오랜만에 기뻐하는 동생을 바라보았다.

 

‘녀석, 그렇게 재미있나.’

 

자기랑 와서 재밌는 건지, 아니면 그냥 놀이 기구 타는 게 재밌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최근에 오천이의 저 천진난만한 웃음을 본 적이 별로 없었기에 오반 역시 마음이 훈훈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천아, 이거 좀 먹어라.”

“우와, 아이스크림이다. 고마워 형아.”

 

거대한 콘 아이스크림을 건내받은 오천은 잠시 쉴 겸 벤치에 앉은 뒤 홀짝이며 그것을 먹기 시작했다. 오반은 오천이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마다 입가에 묻어가는 다량의 아이스크림을 닦아주었고 이내 다 먹고는 으히- 하고 웃는 오천을 향해 함께 미소 지어 주었다.

 

어느새 저녁이 다가와 폐장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공원을 돌고 또 돈 탓인지 오반과 오천은 드디어 공원에 있는 모든 기계를 타보게 되었고, 전 종목 석권이라는 빛나는 금자탑을 세운 형제는 폐장 기념인 불꽃놀이와 퍼레이드까지 모조리 다 구경한 채 공원에서 나왔다.

 

“오천이, 오늘 재미있었어?”

“응! 무지 즐거웠어!”

 

정말 온 몸으로 즐겁다는 것을 나타내는 오천을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던 오반은 잠시 후 살짝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오천아, 집에 가기 전에, 잠시 산책 좀 할래?”

“응, 형아.”

 

오천은 오반의 옆에 나란히 서서 놀이 공원 근처에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공원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폐장과 동시에 썰물처럼 빠져나가 집으로 향했는지 산책로에는 간간히 몇 쌍의 커플이 보일 뿐 인적이 뜸 했다. 그러나 오히려 더 그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잠시 오천과 길을 거닐던 오반은 눈 앞에 보이는 벤치로 오천을 이끌었다.

 

“오천아, 잠시 여기 앉아 봐.”

“응, 형아.”

 

벤치에 낼름 올라앉은 오천의 옆에 오반도 털썩 주저 앉았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말을 해야 오천이가 덜 섭섭할까, 하고 생각에 생각을 해 보았으나 그냥 어제 계획했던 것처럼 솔직하게 말해주기로 마음 먹었다.

 

“오천아.”

“응?”

“오천이는... 형아가 비델 누나랑 만나는 거 어떻게 생각하니?”

 

오천은 고개를 들어 오반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둘은 연인이잖아. 어쩔 수 없지 뭐.”

 

으갹, 이게 아닌데. 오반은 너무 쉽게 체념하듯이 말하는 오천에게 다시 말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형아가 비델이랑 시간 보내는 게 싫어? 오천이랑 안 놀아줘서?”

“응.”

“으음... 비델이 싫은 건 아니구?”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난 형이 그 누나 알게 된 뒤로 나랑 안 놀아줘서 그냥 서운했던 거야. 내가 뭐가 부족해서 형이 나랑은 안 놀고 비델 누나랑만 놀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오천아 그건....”

“그치만 이제 이해했어. 둘은 연인이잖아. 트랭크스 형이 그러는데 연인끼리 시간 보낼 때는 방해하는 거 아니래.”

 

트랭크스 이 녀석은 도대체 오천이에게 뭘 알려준거야. 오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형이 오천이를 소홀하게 생각한다든가 그런 건 아냐. 오천이는 형의 하나 뿐인 동생이고, 아무리 형이 바쁘고 다른 사람이 생겨서 만난다고 해도 오천이가 형에게 있어 중요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비델 누나 보단 덜 중요한 거 아녔어?”

“에이, 그건 아니지. 형은 비델이랑 이제 마악 만나고 있으니까 좀 더 시간을 그쪽에 할애한 거였고, 그렇다고 해도 오천이 너랑 안 놀아준 건 아니잖아.”

“안 놀아줬잖아. 요 몇 주간.”

“전혀?”

“응.”

 

그, 그랬나? 오반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았으나 이내 뒤통수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랬다면 미안하구... 형아가 잘못했어.”

“알았어, 용서해줄게. 형아니까.”

 

쿨 하게 대답하는 오천에게 오반은 못 당하겠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래, 고맙다. 그렇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형에게 오천이는 역시 아주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이야. 형은 오천이가 그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랑 오천이는 지금 형아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고 이유라고 할 수 있으니까. 다만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비델에게도 그 자격을 나눠줄 수 있도록 오천이가 좀 허락해 줬으면 해.”

“내가 허락을 해야 되는 거야?”

“해주면 좋지 않을까?”

“그치만 이미 형은 비델 누나랑 연인이잖아. 내가 허락하지 않아도.”

“에이... 미안하다니깐. 형도 데이트 하고 하는 건 처음이라서 주변 상황에는 잘 신경을 못 썼어. 응?”

 

오반은 손을 들어 오천의 볼을 어루만졌다. 오천은 고개를 돌려 오반을 응시했고 미안함과 쑥쓰러움 등등의 표정이 복합적으로 떠올라 있는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 솔직히 말하면 잘은 이해가 안 돼. 사랑이니 연인이니 뭐니 하는거. 나도 크면 그런 거 하게 되는 거야?”

“물론이지. 오천이는 아주 멋쟁이니까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거야.”

“그럼 지금의 형아 마음을 그때는 이해할 수 있을까?”

“그... 그렇겠지?”

“알았어 형아. 그럼 그때 완전히 이해하는 걸로 하고 지금은 형아 말대로 할게. 형아가 비델 누나 만나러 가도 뭐라하지 않고, 그렇다고 형아가 나같은 건 잊어버렸다고 생각하지도 않을게. 나는 그냥 형아가, 내 형아라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하니까... 지금까진 형아가 말없이 나가버려서, 날 완전히 잊어버린 거 같아서 그게 그냥 서운했던 거니까....”

 

오반은 자기를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는 오천이가 고마워서 조심스럽게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그래도 조금은 아파하고 있을거야. 오반은 앞으로는 오천이 뿐 아니라 어머니 치치에게도 소홀하지 않도록 좀 더 신경써야겠다 생각하며 벤치에서 일어나 오천의 앞에서 몸을 숙인 뒤 팔을 뒤로 내밀었다.

 

“오랜만에 형아가 목마 태워줄까?”

“치, 나도 이제 꼬맹이가 아니라고.”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몸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오반에게 업히는 오천이었다. 오반은 씨익 웃으며 오천을 들어 올렸고, 오랜만에 오반의 어깨에 걸터 앉은 오천은 비록 조금 높이 올라섰을 뿐인데 근두운을 타고 하늘을 날아 올랐을 때 보다 훨씬 더 하늘이 가까워진 것 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집에 갈까?”

“아니, 조금만... 조금만 더 이따가 가자 형아. 별 좀 보다가.”

“그럴까?”

 

형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했다. 도시라서 그런지 파오즈 산에서 보는 것처럼 별이 그렇게 많이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여러 개의 별들이 허전하지 않을 정도로 빛나며 밤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은은하게 빛나는 별빛을 받으며, 마치 시간이 멈춘 듯이 형제는 언제까지고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천아,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응?”

 

오천은 고개를 돌렸고 그의 옆에 앉아 있는 여자는 피, 하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뭐야, 오늘은 나랑 놀아준다고 해서 나왔더니 계속 딴 생각만 하고 있어.”

“아, 아하하, 미안해 파레스. 잠깐 뭐 좀 생각하느라. 이제 안 그럴게.”

 

오천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고 파레스라고 불린 여자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는 역시 사랑해 줄 수 밖에 없다니깐, 하며 다시 몸을 기울여 오천의 어깨에 기댔다. 향긋한 샴푸 향이 피어 올라 오천의 코를 간질었고 오천은 팔을 들어 올려 파레스의 어깨 위에 올려 놓았다. 그러자 파레스를 그의 팔을 끌어 당겨 조금 더 자신을 안을 수 있도록 해 주었고 오천은 파레스가 조잘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형도... 그때는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었을까.’

 

거의 십 육칠 년 전, 자기랑 놀아주지 않는다고 형에게 투정부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자기도 그때의 형 보다 더 어른이 되어 여자를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형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이런 기분이었구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뭘까.

 

오천은 슬쩍 고개를 기울여 파레스의 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의지했고 파레스는 오천이가 조금 더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에 기뻤는지 조잘거리던 입을 다물고 지금의 순간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오천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해할 수 있어도 극복할 수는 없다는 걸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크고 어른이 되고 결혼하고 가정을 꾸려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산다고 해도, 여전히 형의 존재는 자신에게 있어 중요할 수 밖에 없고, 그럴수록 늘 함께 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그렇지 못하는 지금이 허전하고 또 허전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파레스.”

“응? 왜 오천아?”

“내일은 우리 형 만나러 가지 않을래?”

“오천이네 오빠를? 왜?”

 

오천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 형은 나한테 아버지나 다름 없는 존재거든. 나도 이제 좋은 사람을 만났으니까 형한테도 소개시켜 주고 싶어서.”

“오천아....”

 

파레스는 자기를 그렇게까지 생각해주는 오천에게 고마움을 느꼈는지 눈가가 반짝이기 시작했고 오천은 파레스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그녀를 부드럽게 끌어 안았다.

 

붉게 물들어 가는 저녁의 석양이 은은하게 날개를 펼치며 세상을 끌어 안았고 황혼의 그것 만큼이나 붉게 물든 파레스를 품에 안은 채 오천은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겼다. 석양의 붉은 권세가 온 하늘로 뻗어나갈수록, 둘의 모습도 붉은 색 속에 천천히 녹아 들어가고 있었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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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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