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라면서요? 이게 어딜 봐서 아이예요?” 


 철원은 술 취한 할아버지를 보며 황당해했다. 얼굴이 쇳덩이처럼 검붉은 이 60대 할아버지가 이터널업로드의 제품에 대한 구제를 요청한 피상담자였다. 상담앱에 사전등록된 첨부파일과 요청사항에서 예상한 바였지만 강진구 씨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 제품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현실도피적인 발언만 늘어놨다.

 

 “그 인간들하고 같은 소리를 하네. 우리 막내 아이한테 무슨 몹쓸 말이야? 놈들이 별이를 죽였어.” 


 할아버지는 품에서 휴대용 디스플레이 꺼내 사진 한 장을 화면에 띄워 보여줬다. 그곳에 왼쪽 얼굴이 부서져 내부가 노출된 잘생긴 청년이 있었다. 사람의 피부와 유사해 보이는 인조피부가 뜯겨나간 너머로 깨진 카메라 렌즈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주위에 보이는 것은 차가우면서 섬세한 기계장치 모터와 기어가 있었다. 또 그 너머로 반도체와 콘덴서, 냉각팬, 전선 따위가 심어진 녹색 기판도 보였다.


 ‘사람이었으면 죽은 상태긴 하지.’ 


 흥분한 상대방이 어떻게 주먹과 철제 의자, 철제 테이블을 휘둘러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철원은 강진구 씨가 첨부한 가게 CCTV영상을 보아 알았다. 그는 씁쓸히 고개를 내저었다. 


 “할아버지 봤으니까 사진은 집어넣으세요. CCTV도 확인했어요.” 


 철원은 밀려오는 독한 소주 냄새에 얼굴을 찌푸리지 않으려 하며 숨을 참았다. 낮술을 하고 온 피상담자들의 이야기는 쉽게 끝난 적도, 어떤 건설적인 결론이 난 적도 없다. 취객은 처음부터 소리 지르고 난리를 피울 공간이 필요해서 찾아온 것이지 해결책을 찾아온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면 할아버지 말처럼 사람이 죽은 거라고 하면 살인이니 경찰에 신고해야죠.” 


 “뭐? 경찰에 가니까 살인도 폭행도 모욕도 성립하지 않는 재물손괴라잖아. 그리고는 변호사에게 가래.” 


 “그래서 변호사님도 찾아가 보셨나요? 뭐라고 하시던가요?” 


 “변호사도 경찰하고 같아! 이터널업로드를 살인으로 고소할 수 없으니, 손해배상 민사나 맡겨달라는 거야. 네놈들 다 한통속이야!” 


 “그러시면 할아버지께서 소비자원에 바라시는 건 무엇인가요?” 


 “원상회복! 우리 아들을 원래 모습으로 살려놔. 우리 아들을 한 번 더 죽여 버리지 마!” 


 대체 변호사도 방법이 없다는 것이 소비자원에만 오면 방법이 생길 거라 기대하는 심리가 무엇인지 철원은 짐작할 수 없었다. 다만 깊은 상심이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을 헤아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이곳저곳 다니면서 말을 꺼내는 것이라 추정할 뿐이다. 더 이상 말꼬리 잡아봐야 순환논리에 고생하리라. 철원은 한 번 피상담자를 달래보았다. 


 “그러시면 차분히 말씀해 보세요. 그러니까 사전등록하신 내용을 보니 피해내용은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아니, 아드님이신 강한별 씨의 인격이 갑자기 삭제되어 작동불가 상태에 빠졌다는 거네요?” 


 “죽임당한 거야. 지금 뇌사상태로 쓰러져 있어.” 


 철원은 이어질 일을 이야기해주려다 참았다. 주식회사 이터널업로드는 다시 원격으로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예정이다. 인공지능보험에서 보험금을 받아 하드웨어 수리도 완료되면 전보다 더 완벽한 상태로 복원된다. 이것이 어딜 봐서 죽음인지 모를 일이다. 


 “선생님의 무형재산을 이터널업로드에서 동의 없이 마음대로 원격 파괴했다는 거잖아요? 유형재산인 안드로이드 기계몸이 파손된 것은 이터널업로드 측과 관련 없어 보이고. 그보다 전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재물손괴, 아니 선생님의 인식에 따르면 쌍방폭행 사건에서 손님이 물리력을 행사해 발생한 거예요.” 


 “손님이 아냐. 짐승 같은 놈. 그 망할 놈은 우리 아들을 병신으로 만들어 버렸어. 그리고 쌍방폭행이라니 뭔 헛소리야. 수십 대를 두들겨 맞다가 방어하려고 한 대를 마주 때린 건데 쌍방이야? 변호사도 한별이가 인공지능이 아니었으면 정당방윈가 뭔가가 성립된대.” 


 철원은 할아버지가 버럭 내지른 소리와 함께 재차 밀려드는 소주향에 얼굴을 찌푸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래 ‘사람이었으면’이라는 조건이 붙을 수밖에. 

 3년 전 한국소비자원 제주지원에 배치되어 피해구제 상담을 해온 노총각 철원은 그간 동료들로부터 인공지능 안드로이드와 관련된 피해구제 사례들을 한두 번 듣기는 했었다. 직접 인공지능 제품 소비자의 피해구제를 맡아보기는 처음이었다. 복잡한 사건이다. 그는 지끈거리며 아파지는 머리에 고개를 뒤로 젖혀 양 손바닥으로 관자놀이를 지압했다. 

 2031년 인공지능이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 

 그 이후 인공지능 안드로이드가 개발되었다. 5년이 지난 2036년 현재, 아직 시장화 초기단계인 인공지능 안드로이드들의 사용처는 가족 구성원을 잃은 이들의 심리치료용으로 한정된다. 

 그렇게 떠나보낼 준비가 안 된 이들의 떠나보냄을 돕는 일이 현시점에서 인공지능 안드로이드의 역할이다. 미래에는 더 다양한 용도로 허용될 거란다. 노총각인 철원은 나중에 농이 아니라 정말로 사람이 아닌 안드로이드랑 결혼하게 될지 모른다. 


 “아이고, 그러니까 그 재물손괴도 쌍방폭행도 아닌 일방폭행사건은 선생님 소유 제주시 내도동 소재 식당에서 2036년 5월 12일 밤 8시 44분경 일어났어요. 처음에 고성을 지르고 식기를 내던져 파손하며 행패 부리는 손님을 가게 주인, 즉 강진구 할아버지 본인께서 말리고 계셨어요. 음식에서 이물질이 나왔다는 것이 문제였는데, 이 문제로 또 한국소비자원에 해당 손님이 접수한 다른 사건이 있는 건 별론으로 하고, 결국 그날 손님과 강진구 씨가 시비가 붙은 할아버지가 바닥에 쓰러지자 강진구 씨를 보호하기 위해 강한별 안드로이드가 나선 거예요. 그리고 손님에게 수 십 대를 두들겨 맞았지요.” 


 “그래 우리 아들은 쓰러진 나를 보호하려다 그렇게 변을 당한 거야.” 


 손님은 어쩌면 대당 10억 원을 웃도는 안드로이드가 점원으로 일하는 것을 보고 가게 주인이 부자라는 것을 알아 심통이나 시비를 걸었을 수 있다. 아무튼 그 손님이 강진구의 가게에 찾아와 소란을 피우고 20여 분이 지나 경찰이 도착한 밤 9시 5분까지 발생한 폭력 상황이 문제였다. 안드로이드 제조사 이터널업로드는 그 여파로 안드로이드의 인격 프로그램을 원격으로 삭제하는 수밖에 없었던 거다. 


 “단 한 대, 강한별 씨는 방어가 목적으로 보이는 소극적인 맞대응을 했지요. 해당 손님은 강진구 씨의 고소로 영업방해, 재물손괴 등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오른편 어깨에 멍이 든 사진과 상해진단서를 제출했고요.”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 중 1원칙은 ‘로봇은 인간을 다치게 해선 안 되며, 인간이 해를 입는 걸 방관해서도 안 된다’이다. 이 원칙은 2034년 제정된 인공지능법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인공지능법 제41조에 따라 경찰은 인공지능이 사람에게 상해를 입혔다는 사실을 지체 없이 과기부와 제조사에 통보하게 되어있다. 이때 같은 법 제3조에 따라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사실이 확인된 머신러닝 인공지능은 그 프로그램 코드가 원천 삭제되며, 과기부는 수사기관 및 민간전문가를 포함한 원인규명 목적의 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재발방지대책을 찾아야 한다. 

 손님이 입은 전치 2주 상해의 발생과정은 CCTV로도, 강한별 안드로이드의 카메라와 마이크에 녹화된 내부 데이터로도, 모터와 인조근육의 운동기록으로도, 왼팔의 인조피부에 심어진 충격감지 센서의 로그로도 증명된다. 이는 강진구 씨가 뒤집을 수 없는 진실이었다. 

 진구 할아버지가 휴지로 코를 풀고 말했다. 


 “그냥 가볍게 겉만 멍든 건데. 그게 병원 치료씩이나 받을 부상이란 말인가?” 


 의사가 내린 판단에 대해 철원은 이의를 제기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하나 상담의 핵심은 공감에 있는 것 아닌가. 각자의 서로 다른 입장에 공감만 잘 해줘도 양측 당사자가 화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쵸. 좀 애매하긴 하죠. 아드님께서 그렇게 되어버렸는데 얼마나 억울하시겠어요. 그렇죠. 저는 아직 홀몸이고 자식도 없어서 선생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지 감히 짐작도 가지 않아요. 어떻게 위로해 드리면 좋을지도 몰라 조심스럽네요. 제가 이해한 내용에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 이제 사건을 차분하게 다시 한 번 살펴볼께요.” 


 “조용히 할 테니 얘기해봐.” 


 “이 경우 인공지능이 사람에게 상해를 입혔으므로, 경찰은 관련법에 따라 제조사인 이터널업로드에 사고발생 사실을 통보해야 했어요. 통보를 받은 이터널업로드는 인격 소프트웨어 삭제, 아니 아드님을 뇌사상태로 만들어 버린 살인행위를 2036년 6월 1일 아침 10시경 선생님께 아무런 예고나 통지 없이 추진했죠.” 


 “놈들이 뭐라 그랬냐면 형사사건 결과가 확정되면, 사건기록을 토대로 조사위원회의 원인 규명이 이어질 거래. 그리고 그때까지 별이는 작동 불능인 현 상태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거야. 불가항력이랬어” 


 “그러면 형사사건의 결과에 따라 강한별 씨의 소프트웨어가 복구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그놈들이 하는 말이 그건 조사위원회에서 판단할 사항이고 이번 경우 사람이 상해를 입는 장면이 고스란히 녹화되어서 아마 되살려낼 수 없을 거래.” 


 그렇게 말하여 할아버지는 철원의 눈을 피했다. 본인에게 불리한 사실을 감출 때 피상담자들이 보이는 반응이다. 철원이 알기로 이터널업로드는 재발 방지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하겠으며, 원인조사 후 강한별 안드로이드의 하드웨어를 완전 수리해 거기에 개선된 새로운 인격 소프트웨어를 입혀 제공할 예정이다. 비공식적이지만 상당한 크기의 위자료도 지급한다고 해당 회사는 밝혔다. 


 “할아버지, 이터널업로드 담당자하고 저도 통화를 해보았는데 작동불능 기간에 상응하는 적절한 보상과, 여기에 더해 추가위자료도 드린다고 하더라고요. 또 이터널업로드는 인공지능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요. 가게에서 일할 점원이 필요하신 거면 일단 급한 대로 근로계약서를 써서 고용하고 사후에 청구하실 수 있어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아이가 사라져 버린다는 게 문제잖아. 그놈들이 내부 소프트웨어를 싹 지워버려서 복구하려고 맡기니까 ‘암호화 된 인공지능 안드로이드의 저장장치를 건드는 건 불법’이래.” 


 인공지능 안드로이드의 내부는 해당 안드로이드가 머신러닝을 통해 학습한 실제 사람, 죽은 이의 생애의 모든 기록이 담겨있는데, 이를 넘어 해당 인물은 물론 안드로이드가 제작 이후 상호작용한 모든 이들의 민감하고 사적인 대화 내용도 들어있다. 따라서 안드로이드 기기에 저장된 내부자료를 단순히 들여다보는 것도 인공지능법에서 정해둔 예외적인 사유가 아닌 한 제한된다. 그런 제한에도 인공지능 안드로이드가 다니는 곳마다, 본인의 동의 없이 자기 얼굴과 목소리, 행동이 영구적으로 디지털화되어 녹화되고 감시받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불쾌해한다. 걸어 다니는 CCTV와 다를 게 무엇인가. 

 철원은 화면 너머로 쩔쩔대던 이터널업로드 고객만족팀 팀장과의 통화를 떠올려 보았다. 낡은 회색 정장 외투에 후줄근한 셔츠를 입은 그가 두 손을 모아 빌듯이 간절히 이야기하던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딥러닝 된 인공지능을 만드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정보를 인풋(input)하면 재귀인공신경망(Recurrent Artificial Neural Network)의 자기학습을 거쳐 인공지능 인격체라는 최종 아웃풋(output)이 이루어집니다. 전통적 프로그래밍과 다르지요. 그 중간 단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는 사람은 수학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모릅니다. 불확실성이 늘 함께합니다. 물론 아시모프 3대 원칙을 기본 학습조건으로 삼고, 후처리 과정도 거칩니다만 이런 결함은 불가항력과 같은 제품 제작의 일부이고 천재지변과 다름없는 버그라고 추정됩니다. 그래서 있는 게 조사위원회이고 인공지능 의무보험 제도입니다. 우리 회사에 어떤 법적 의무는 없습니다만 회사는 이사회의 결의를 거쳐 작지 않은 크기의 추가위자료도 피해를 보신 손님분과 인공지능 안드로이드의 주인인 강진구 씨 양측에 조만간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고객만족팀장도 어느 집안의 가장일 것이고 기술적인 설명에 따르면 사실상 불가항력의 재난 같은 사건이어서 그에게도, 그의 회사에도 책임이 없다. 예측 못 한 폭풍우로 비행기가 회항한 것과 다른 게 무엇인가? 이때 환불과 적절한 추가 금전보상이 올바른 대응인가, 아니면 술 취한 한 승객의 난동에 항복해 어떻게든 폭풍우를 뚫고 목적지에 착륙하여 모두를 위험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대처인가. 

 이터널업로드의 입장을 조심스럽게 전달해 보아도 술기운으로 고함치는 할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제조사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종의 재해 같기도...” 


 “시끄러워! 네가 뭔데? 니가 아들이 맞아 죽는 모습을 두 번 본 부모 마음을 알아!”  


 할아버지를 진정시킬 방안을 모색하던 철원은 잠시 후, 갑자기 생각난 듯 물어보았다. 원래 있는 사람들이 더한 법 아닌가. 돈으로 굴러가는 세상을 살면서, 돈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하거나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소망하는 건 결국 위선이자 아이러니다. 


 “할아버지, 그나저나 안드로이드를 주문 맞춤 제작하는 데 비용이 얼마나 드셨어요?” 


 “우리 별이를 살려내는데 가격은 내가 잘 모르지만 한 12억 정도 했다고 하더군.” 


 “상당한 금액이군요.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어요. 이터널업로드에서 얼마 정도를 추가로 선생님께 드리는 것이 적절할까요?” 


 강진구 할아버지는 의자에서 버럭 일어나 어두운 상담실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철원에게 삿대질했다. 


 “야! 이 자식이 날 거지로 알아?” 


 “아니 법적으로 안 되는 걸 소비자원에 와서 따지시면 어떡해요. 할아버지, 국회의원님을 찾아가셔서 인공지능법을 고치라고 하던가, 다른 변호사를 찾아 소송을 거세요.” 


 “살려낸 아들이 다시 죽어버렸어. 나는 홀로 싸워나가야 해. 사람들이 다 고개를 돌리고 있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단 말이야.”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니요.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선생님 그건 살려내신 게 아니라. 그냥 일종의 움직이는 동영상, 인형, 그런 것 아닙니까.” 


 “우리 아들이라고! 군대에서 얻어맞고 불쌍하게 죽은 아들이야! 우리 아들은 군대에서 억울하게 죽은 거라 보훈청에서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제작을 지원해줬어. 그렇게 되살아난 건데 뭐? 내가 무슨 돈이 있다고 인공지능 안드로이드를 구해. 그놈도 그랬어. 저항하지 못하는 내 아들을 처음에는 의자로, 그다음에는 테이블을 들어 내려찍으면서 ‘걸어 다니는 슈퍼카 주제에 지가 사람인 줄 안다’고 했어.” 


 돈이 많은 것이 아니라 한이 많은 것인가. 아차 싶은 철원은 자신의 못난 선입견이 서글퍼졌다. 그리고 이 술에 취한 할아버지가 차마 미워할 수 없는 사연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아찔했다. 


 “아드님께서 군에서 사고를 당하셨군요. 아, 그래서 보훈대상자 유족 지원프로그램으로... 제가 몰상식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실지. 제가 말을 잘못했습니다, 어르신.” 


 돈 이야기를 꺼내 보았다가 졸지에 죄인이 되어버린 철원은 잠시 어쩔 줄 몰라 했다. 강진구 할아버지는 울먹이시다가 코로 숨을 깊게 들이쉬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주름진 눈을 감고 알코올 냄새가 가시지 않은 숨을 고르는 그의 모습이 이제 안쓰러워 보였다.  

 철원은 인공지능법의 해석을 문의하자 친절하게 이 사건을 상담해 주었던 소비자원 소속 변호사님의 의견서를 강진구 할아버지에게 주려고 했다. 봉투에 담은 해당 의견서를 조용히 그는 다시 품에 넣었다. 


 “할아버지 제가 죄송해요. 진정되셨어요? 제가 어떻게든 방법을 더 찾아볼게요. 이터널업로드에 함께 찾아가 봐요.” 

 



 이터널업로드 본사를 함께 방문키로 한 2차 상담일에 진구 할아버지는 소비자원에 오지 않았다. 그 대신 약속 시간인 5시보다 2시간 이른 3시에 소비자원 상담실에 나타난 뜻밖의 인물은 할아버지의 배우자인 임정희 씨였다. 가벼운 고동색 개량한복을 입은 할머니는 손가방에서 인화한 강한별 씨의 사진을 꺼내 건네주려 했다. 

 철원은 서둘러 할머니를 만류했다. 


 “오늘 같이 이터널업로드 본사에 방문하기로 했는데, 진구 할아버지는 못 오셨나요?” 


 “자네가 그 젊은이구만. 그 양반은 지금 중환자실이야.” 


 “예? 할아버지께서요? 저번에 오셨을 때는 목소리도 크고 정정해 보이셨는데... 이번 사건 전까지는 식당도 주방일을 하며 잘 운영해 오셨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보였어도 간경화 말기야. 복수가 차고 합병증으로 입원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금단증상이 도졌어. 가족도 아무 때나 면회를 못 하는 상황이라서 대신 내가 왔지.” 


 강한별 씨의 생전 모습을 담은 졸업 사진을 꺼내는 할머니를 보니 이야기가 또 한세월일 것 같았다. 오후 업무시간을 통째로 날릴 수도 있다는 우려에 철원은 에둘러 약속 시간에 다시 찾아와 달라고 부탁하며 돌려보내 보았다. 


 “아직 이터널업로드 본사 방문시간까지 2시간 반 정도 남았어요. 일단 할머니 저도 오후 업무가 있어서 그런데요, 한 2시간 후인 5시에 다시 뵙는 것으로 해도 될까요?” 


 “금방 갈 거야. 어디까지 설명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우리 남편이 알코올 때문에 그렇게 조리 있게 말을 하지 못해. 그 양반은 알코올성 치매까지 있어서... 자초지종도 설명해 줄겸 그 양반이 찾아와 폐를 끼친 것도 사과하려고 왔어. 미안해” 


 철원은 진한 소주 냄새를 풍기며 찾아왔던 강진구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할머니가 돌아갈 생각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자 10여 분 정도만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기로 한 그는 탕비실에서 따듯한 차를 타왔다. 


 “일단 오셨으니 차를 드시면서 차분하게 말씀해 보세요. 이터널업로드 본사를 방문하기 전에 제가 또 알아야 하는 사실이 있나요?” 


 “여기 사진에 보이는 우리 막내가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군대에서 자살했지. 당시에 일반 사망으로 결론이 났어.” 


 “저는 자식이 없다 보니, 부모님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네요.” 


 “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고통스럽지. 나야 어느 정도 가슴 속에 묻어두었지만, 우리 남편은 그렇지 못했던 거야. 한별이가 죽은 뒤 술이 없으면 잠이 들 수 없다고 하더라고. 내가 생계를 책임지고 식당도 홀로 운영했어.” 


 할머니의 손을 보니 굳은살 너머에 지문이 닳은 투박한 손이었다. 그 삶의 무게를 상상하자 철원은 마음이 쓰라렸다. 강진구 할아버지는 원래는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었다. 할머니의 말을 들어보니 아들이 군대에서 그렇게 갑작스럽고 불행하게 유명을 달리한 후, 부부는 서로 자식을 약하게 키웠다며 상대방을 탓하며 사이가 멀어졌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소주를 상자 째 사두고 집에서 홀로 밤낮으로 들이키신 것이다. 


 “입대한 그해 7월 우리 한별이가 사격장에서 실탄을 받은 뒤 자기 얼굴을 쏜거야. 시체를 보니 왼편 윗 얼굴이 날아간 참혹한 상태였지. 화장시키기 전 마주했던 그 온전치 못한 모습이 잊히지 않아.” 


 할머니에 따르면 나라에서는 매 10년 주기로 군의문사 사건에 대해 진상조사를 벌인단다. 군의 폐쇄성으로 인해 사망 당시 감춰졌던 의문사 사건의 진실은 시간이 흘러 관련자들이 전역한 뒤 뒤늦은 증언이 이루어지며 비로소 드러난단 것이다. 


 “그럼 고인이 되신 아드님의 경우도...” 


 “그렇지.”


 자살로부터 3년의 시간이 흐른 후 이루어진 재조사에서, 전역한 동기와 선후임들의 양심증언이 강한별 씨의 순직판정으로 이어졌다. 


 “별이는 컴퓨터공학 전공이었어. 대학원에 진학해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싶어 했지.” 


 강한별 씨는 애초에 석박사 과정을 밟으며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하려는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날이 심화되는 저출산은 현역입대자원의 절대적 부족 현상으로 이어졌고 그가 졸업할 무렵 전문연구요원 제도는 사라지게 되었다. 강한별 씨는 그래서 학부 졸업 후 급하게 계획에 없던 군입대를 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입대 전 자기 자신의 데이터로 실험해보고 싶었는지, 디지털화 된 생애데이터를 남겼어.” 


 신기한 점은 고(故) 강한별 씨가 군에 입대하기 전 몇 개월의 시간을 들여 어린 시절부터 군 입대시점까지 자신의 모든 정보를 디지털화해서 이터널업로드의 생애업로딩 및 아카이브 서비스에 백업해 두었다는 것이다. 사진과 영상, SNS계정은 물론 금융결재기록과 음악이나 영화감상 내역, 읽은 책들, 이동경로 위치정보, 좋아하는 색, 음식, 스마트워치에 저장된 수면 및 운동패턴, 방문한 인터넷 홈페이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시시콜콜한 학창시절 추억에 대한 소소한 추억이야기 녹음 등 말 그대로 그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다.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타임캡슐일까? 대학원 과정을 밟으며 나중에 그 기록을 활용해 자신의 인공지능을 프로그래밍 해보려던 것일까? 

 강진구 할아버지네 가족은 그 후 2035년 만들어진 시범적인 보훈프로그램의 지원 대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가슴 아프게 떠나보내야 했던 막내아들이 돌아왔다고 말하고 싶으셨던 거네요.” 


 철원의 깨달음에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부부는 우리 아이를 아예 없는 것으로, 언급도 하지 않으려 하며 우리 둘의 가슴 속에 묻어버린 채 몇 년을 보냈어. 근데 실은 구타와 가혹행위로 인한 사망이었던 거지. 물론 우리 막내가 다소 마음이 여리고 내성적이었지만 그렇다고 군대 같은 규율이 엄격한 곳에 적응하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아이는 아니었어. 그간 하늘에서 억울했을 거야. 대신 싸워주지 않은 부모는 죄인이야.” 


  의문사 조사위원회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강한별 씨의 사망은 순직에 해당한다고 결론지었다. 이 결정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서로 화해하게 해주었으나, 이미 알코올 중독에 빠진 할아버지의 삶은 구원하지 못했다. 

 그런 할아버지가 기적적으로 술을 끊은 계기가 있다. 


 “인공지능 안드로이드가 우리 집에 온 이후 그 양반이 술을 끊었어. 거짓말처럼 생기를 되찾아 식당에도 매일 나왔지. 한별이까지 셋이서 찰나 간의 행복을 누린 거야.” 


 할머니는 그리고 기운이 다하셨는지, 잠시 후 4시 반부터 5시 반까지 급성 신기능 저하와 진전섬망으로 입원한 할아버지의 중환자실 면회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철원에게 이터널업로드 본사를 방문해 아픈 진구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잘 이야기해 줄 것을 당부했다. 


 “우리 가족의 무리한 요구야.” 


 “할머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건 가혹한 상황이네요. 제게 어떻게 도움을 드리고 드리지 않고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건 아니고 일개 말단입니다만, 이런 사연이 있으면 배려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일단 이터널업로드에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보훈청하고 과기부에도 문의하겠습니다.” 


 철원은 조심히 들어가시라고 말하며, 고된 노동으로 허리가 굽은 할머니를 위해 나가시는 문을 열어드렸다. 할머니는 병원으로 향하셨다. 

 


 반짝이는 모든 것은 명멸하다 사라진다. 

 안개 깔린 거리의 보안등, 차량 흐름에 따라 물결치는 전조등, 어느 먼 아파트 단지에 층층이 들어온 다정한 각 가정의 불빛들. 세상에는 해가 저물고 밤이 깊어갈수록 더 반짝이는 이런 환상이 있다. 아침이 오면 거짓말처럼 없어져 버릴 환상 말이다. 

 이터널업로드 본사에 도착한 철원은 생각보다 영세한 회사의 규모에 놀랐다. 이터널업로드는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된 촉망받는 예비 유니콘기업이었지만, 600억 원 규모의 재무투자를 유치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스타트업 시절부터 있던 제주시 아라동에 소재한 30년 넘은 자그마한 빌딩 4층이 아직 본점이었다. 

 넓은 개방형 사무실에 프로그래머들이 책상이 아닌 바닥에 노트북을 펼치거나, 심지어 벽에 기대 각자 본인이 편한 자세로 일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창고 공간이 부족해서 꺼내둔 것으로 보이는 안드로이드 몸통과 신체 부속들도 사무실 구석구석 널려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 팔다리에 선을 연결해 인공근육과 피부의 운동을 시현해본다. 

 분주해 보이는 프로그래머들의 피곤에 찌든 얼굴을 지나 철원이 안내된 곳은 그 개방된 공간에서 유일하게 통유리 격벽으로 구분된 방이었다. 접이식 침대 두셋이 벽에 기대어져 있는 그 방은 아마 고객만족팀장과 영상통화할 당시 배경 속 방일 것이다. 

 곧 털털한 캐쥬얼 정장을 입은 마흔 남짓으로 보이는 젊은 대표이사와 철원과 비슷한 연배인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연구팀장이 컨퍼런스룸에 웃으며 들어와 철원에게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우리 사무실이 좀 어수선하지요? 곧 제주 사무실을 정리하고 판교 사옥으로 이전할 계획이라 그렇습니다. 양해바랍니다.” 


 “아닙니다. 바쁘신데 시간을 내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대표님.” 


 대표이사와 연구팀장이 자리에 앉자 철원은 강진구 할아버지가 지병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시게 되어 한국소비자원 담당자만 본사를 방문하게 된 상황과 할아버지 가족의 사연을 설명했다. 이터널업로드 측에서는 보훈 대상자라는 특성도 있어 최대한 강진구 할아버지의 요청사항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려고 애쓰고 있으니 이를 헤아려 달라는 상투적인 이야기부터 꺼냈다. 

 철원은 저자세로 질의했다. 


 “대표님, 이상이 제가 강진구 할아버지와 임정희 할머니께 들은 아드님의 이야기입니다. 할아버님 사연이 딱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최대한 비슷하게 만이라도 안 되겠습니까?” 


 “실은 저희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군의문사 사건을 재조사할 때는 의무적으로 망자의 심리부검을 하게 되는데, 그때 고 강한별 씨께서 저희에게 맡긴 디지털 데이터를 담당부처에 보내 순직 결정을 받으실 수 있게끔 도와드린 게 우리 회사입니다. 병영생활 중에 발생한 과도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제외하고는 망인 분께 금전문제나 여자관계 같은 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드린 겁니다.” 


 “아...” 


 식당에서 쓰러진 강진구 씨를 폭력에서 보호하려 한 안드로이드의 행동방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강한별 씨가 남긴 데이터에는 해당 고인이 의지가 강하고 정의로운 성격임을 증명해주는 내용이 풍부하다고 이터널업로드 대표는 설명했다. 


 “나라에서 강한별 씨를 의지박약이나 부적응자로 몰아가려고 할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편이 되어 드린 저희를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보훈청도 저희의 헌신을 알기에 이번에 시범 보조사업자로 선정한 것 아니겠습니까.” 


 대표는 자기 회사를 차리기 전 대기업에서 기술영업을 담당했다고 한다. 그는 그에 걸맞은 나긋나긋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조리 있게 이터널업로드의 설립배경과 그 서비스를 철원에게 설명해 주었다. 이야기를 듣자 철원도 당장 오늘부터 자신의 생애 데이터를 이터널업로드에서 요청하는 규격에 맞추어 정리해 두어야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지난 1년간 또 한 차례 저희의 기술력은 발전했습니다. 저희의 알고리즘으로 제공해 드릴 강한별 씨의 올해 버전의 새 인격은 전의 인격보다 더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울 겁니다. 결국은 수개월의 시간이 흐르면 강진구 할아버지도 만족하시게 될 겁니다. 다만 지금 소비자원과 우리 회사에 요청한 건은 일종의... 심리치료가 필요한 부분으로 보입니다. 과거 아드님을 잃으셨던 일의 PTSD적 혼란으로 보이는데, 이런 상황이 유발될 수밖에 없었던 일련의 일들에 우리 회사도 애통함과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최초 납품된 시점 이후 강한별 씨가 습득했던 기억을 조금이나마 되살릴 수 있게, 살려볼 수 있는 부분은 살려보도록 하는, 어떤 그런 절충안은 없을까요?”

 

 이번에는 곁에서 노심초사 대표의 이야기를 듣던 연구팀장이 물음에 답했다. 


 “완전히 같은 성격이나 기억은 아니지만 같은 외양과 같은 목소리입니다. 아니, 성격은 어쩌면 지난해 버전보다 더 생존 당시 강한별 씨의 성격에 가깝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납품 이후의 기억은 관련법에 따라 살릴 수 없습니다.” 


 “그렇군요. 두 분 말씀처럼 새로운 안드로이드는 아마 이전 버전보다 더 나은 소프트웨어를 갖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강진구 할아버지께서 고통 받으시는 부분은 자신의 아들을 두 번이나 무기력하게 잃을 수밖에 없다는 그 상황 자체이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해드릴 수 있는 최선입니다. 국가에서 보조받은 때에는 만에 하나라도 법과 원칙대로 하지 않을 시 받은 보조금의 2배를 토해내는데 그게 다가 아닙니다.” 


 보조금관리법은 보조사업자가 법령을 위반한 경우 보조금의 2배에 달하는 제재부가금을 부과하는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향후 모든 정부사업에서 해당 업체를 배제시킨다. 신성장산업 분야에서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는 건 보조금을 수령하는 타업체들과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할 수 없음을 뜻한다. 결국 도태된 회사는 존립 자체가 위태롭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그런 사연도 있군요.” 


 철원은 휴대용 디스플레이에 띄워진 강한별 안드로이드의 모습은 손님에게 얻어맞아 인조피부가 벗겨지고 기계장치와 카메라 등이 드러난 처참한 얼굴을 이터널업로드 대표와 연구팀장에게 보여주었다. 사람이었다면 즉사였을 것이다. 아니 죽음 이후에도 추가적인 훼손이 이루어진 잔혹한 모습이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를 직접 제작하고 실험하는 제조사에서 볼 때는 파손된 제품을 보는 이상의 감흥이 없는 듯 대표와 연구팀장은 무심해 보였다. 

 대표가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소비자원 담당자님, 인공지능에 대해서 제가 좀 더 설명해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말씀하십시오, 대표님.” 


 “어차피 저희 회사의 인공지능 제품은 매일 밤 수면시간 동안 클라우드 서버에 백업됩니다. 따라서 인공지능 기계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에게 가해지는 인간의 물리적인 폭력에 저항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드웨어인 몸체는 언제든 새 부품으로 수리하거나 아니면 아예 통째로 새 몸체로 교체할 수 있고, 클라우드에 백업된 데이터로 복원하면 됩니다. 따라서 어떠한 폭력을 당한다고 하여도 이처럼 완전 복원 가능한 인공지능이, 복원 불가능한 연약한 인간을 향해 폭력을 마주 행사한다는 건 법률의 영역 이전에 철학의 영역에서도 정당화가 불가능합니다.” 


 철원은 턱을 괴고 조용히 고민에 잠겼다. 이터널업로드 대표의 말이 옳다. 그러나 그럼에도 어떤 본능적인 것, 감정적이고 인간적인 것이 그런 합리적인 사고를 가로막고 있었다. 


 “요지는 이것입니다. 강한별 씨의 안드로이드는 방어적인 목적에서 반격할 필요가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인공지능은 0과 1로 이루어진 언제든 복구 가능한 컴퓨터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도 반격이 일어난 것입니다. 원래는 반격 없이 망가지고 상대방은 재물손괴죄로 처벌받고, 그 후 안드로이드의 신체가 고액의 동산이니만큼 최소 10억 원 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절차입니다. 인공지능보험의 보상처리를 통해 강한별 씨의 안드로이드는 단시일 내에 완전히 수리되어 재가동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게 통상적인 절차입니다.” 


 “그렇다면, 대표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것이 당연한 절차이며 인공지능 차별이 아니군요.” 


 “차별에 대해서 솔직히 말하자면 현재 6개의 핵심적인 국제인권조약이 차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만, 금지 대상인 차별이 정확히 무엇인지 규정하고 있는 조약은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따라서 차별이라는 단어는 감히 제가 논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님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철원은 피해구제를 위한 정보수집에 협조해 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빌딩 밖으로 나오자 저녁노을이 끝 간 곳 없는 딸기밭을 뒤덮고 있었다. 소비자원으로 돌아가는 무인택시를 디스플레이로 호출했다. 제주의 여름은 습하고 후텁지근했다. 하늘에는 아롱이는 여름별들이 떠오르려 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결국 파괴된 인공지능 안드로이드를 보며 아파하는 것은 거울 속에 비친 인간 그 자신일 것이다. 인공지능은 고통이나 슬픔을 느끼지 않으며, 자기보존은 인공지능의 본능이 아니다.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적인 애착 대상이 사라지는 데 애통함을 느껴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건 곰인형을 버리자 식사를 거부하는 아이의 떼씀과 다름없다, 애니미즘에 따라 돌과 나무에, 해와 달과 별에 신성함이 있다고 믿는 자연발생적 원시부족문화와 마찬가지 현상이다. 

 20세기 말인 1999년 최초의 상용화된 로봇강아지가 나왔을 때, 그 로봇강아지를 구입한 사람들은 해당 모델이 단종 되어 더 이상 수리할 부품을 구할 수 없게 된 2036년 현재에도 여전히 구닥다리 강아지 로봇을 고쳐 달라고 수리점과 수리공들을 물색하고 다닌다. 더 나은 성능의 새로운 로봇강아지 모델을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하겠다는 제조사의 제안도 거부하며 가족의 일원인 구형 로봇을 고쳐 달라는 고집은 기이하리만치 견고하다. 

 사무실에 도착해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용 롤러블디스플레이를 꺼내자 알림이 반짝였다. 이터널업로드 대표가 보낸 DM이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오늘 뵈어서 반가웠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때로 그렇지 않은 듯 행복하셨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죽은 자제분과 인공지능 안드로이드를 동일시하는 것을 이제는 그만두실 때가 된 겁니다. 우리 회사가 제공해 드린 행복은 결국 상실에 대한 찰나의 망각일 뿐입니다.’ 


 자료를 정리하자 창밖이 어둑해졌다. 한 명의 자식을 두 번 무기력하게 떠나보낸 부모의 심경은 무엇인가. 성모 마리아님이라면 아실 것인가? 

 곧 여름 하늘 위로 드문드문 별이 떠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