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왼쪽의 작품 이름을 선택하면 해당 작품 만을 보실 수 있습니다.
10개 이상의 글이 등록되면 독립 게시판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기억해줄까? (지식채널 e, 2011년 9월)
1.
“배고프지 않니?”
아내의 물음에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하긴 눈 앞에 있는 거대한 구조물을 보고, 더군다나 그것을 통해 하늘 너머로 올라가는 아이에게 배고픈 것 따윈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네가 좋아하는 것으로 넣었어. 올라가다가 배가 고프면 먹으려므나.”
아내는 꼼꼼히 보자기에 싼 도시락을 아이에게 내밀었다. 저 도시락을 싸기 위해 아내는 며칠 밤을 새웠다. 아이가 좋아했던 음식들을 떠올려보고, 가장 맛있게 만들기 위해 몇 번이나 만들어보면서 나에게 먹어보라고 한 기억이 났다. 햇수로 오 년. 아내와 내가 아이와 보낸 시간들이 저 작은 도시락 안에 숨막힐 듯 빽빽이 쌓여 있었다.
“이제 갈게요.”
아이는 아내의 손에서 가볍게 도시락을 받아 쥐고는 출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궤도 엘리베이터의 출입문을 지나기 직전, 잠시 고개를 돌려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항상 몸 건강하고……”
아내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아내의 다른 손은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마치 무엇인가 끊어지는 것을 가까스로 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도 마주 웃으며 우리 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이내 몸을 돌려 문 너머로 사라졌다. 아이가 사라지자 아내는 그제야 참았던 울음을 떠뜨리며 작은 소리로 흐느꼈다.
“울지 마. 처음도 아니잖아……”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지만 아이를 보내는 것은 언제나 섭섭함과 그리움으로 슬픔을 자아낸다. 나도 아내도 도저히 아이를 보내는 것 만큼은 적응하지 못했다. 그날 우리 부부는 그렇게 여덟 번 째 아이를 ‘하늘 위’ 세계로 올려보냈다. 그리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위 또 다른 세상에서 우리가 올려보낸 아이들이 자신들의 꿈을 펼치며 살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2.
문을 열고 들어간 단골 술집에는 손님이 드물었다. 손님이 별로 없다는 점이 이곳을 내가 즐겨 찾는 이유였다. 이곳이라면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도 혼자서 훌쩍일 수 있었다. 감정에 충실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어른이 된 이후로는 감정에 충실하지 않는 것이 더 의젖한 모습이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때로는, 어른이라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 질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고생했어.”
그래서 문득 다가운 나이 든 남자의 말이 귓가에 들려왔을 때에도 감정에 젖어 아이를 올려보낸 후 내 마음에 자리잡은 허탈함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말을 건 상대방은 내가 허락할 사이도 없이 의자를 내 옆에 가져다 대고, 술을 주문했다. 마치 친한 친구 옆에 자리잡는 듯한 자연스러움이 그의 행동에 배여 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습니까?”
간신히 정신을 추스려 묻자 상대방은 싱긋 웃었다.
“자네에게 일을 맡긴 게 벌써 여덟 번째야. 이 정도도 모르면 자격이 없지.”
그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면서 나에게도 한 개피 권했다.
“끊은 지 오랜 거 아시지 않습니까? 벌써 삼십 년도 더 전의 일입니다.”
내 대답에 그는 내 앞에 담배를 다시 집어놓고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자신의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 끝이 타들어가면서 조명이 약한 테이블 위에 불빛이 살짝 어렸다.
“지구가 수출한 온갖 악덕들이 많지만, 그 중 이 담배만한 것도 드물어. 수 세기 동안 담배를 끊기 위한 온갖 방법들이 횡횡했지만 여전히 담배는 가장 인기 있는 기호식품 중 하나이자 지구의 전매 특허 상품이기도 하지. 담배를 끊는 방법보다 건강하게 담배 피는 방법이 역사상 더 많이 개발되었어.”
입 안에서 나와 퍼져나가는 하얀 연기를 바라보면서 가볍게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을 보자, 참아왔던 감정이 밀려올라오는 듯 했다.
“도대체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아이를 잃은 절 조롱하실려구요? 아니면 아이를 돈 받고 판 비정한 아버지라고 비웃으러 온 겁니까? 담배 끊은 것 따위로는 아이를 돈받고 팔아넘겼다는 사실을 용서받지 못하리란 것을 확인해 주려구요? 얼마나 절 더 비참하게 만들어야 속이 풀리시겠습니까?”
말을 하다가 감정이 격해져 흥분섞인 어투가 되었지만 남자는 그 중간에도 담배를 머금고 피는 일련의 과정을 멈추지 않았다. 그저 내 말이 끝나기를 묵묵히 기다릴 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말을 마치자 천천히 나를 돌아보았다. 석고상처럼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자네가 스스로를 비정하다 생각하든 말든 그건 자네의 문제이지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야. 아니지…... 오래 자네를 알아왔으니 한가지 충고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스스로를 너무 궁지에 몰아넣지는 말게. 어차피 자네는 아이의 진짜 부모도 아니고 아이를 끝까지 키울 의무도 없어. 위탁 부모의 역할은 그것이 금전적인 것이든 감정적인 것이든 아이를 궤도 엘리베이터를 통해 우주로 올려보내고 나면 끝이야.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한다면 자네만 괴로울 뿐이지. 어차피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이 밑의 생활 따윈 잊을 것이고 자네와 자네 아내에 대한 기억도 함께 잊어버릴 거야. 위로라고 생각하면서 들어. 아이들과의 기억은 그 아이들의 것이 아니라 자네의 것일세 그러니 자넨 그저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돼”
그의 마지막 말은 온화했지만 지독하게 객관적이어서 마치 안내 방송을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말을 마치고는 주머니를 하나 내밀었다. 그리곤 잠시 주저하는 듯 하더니 다시 품에 손을 넣어 담배 한 갑을 꺼낸 후 내 앞으로 밀어놓았다.
“담배 끊었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리고 돈은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다음 아이 이야기가 나오면 연락 주십시오.”
나는 눈앞에 놓인 주머니와 담배를 외면하면서 말했다. 슬픈 일이지만 아이를 받을 때면 항상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아내와 함께 다짐했고, 아이를 키워 궤도 엘리베이터에 올려보내고 나면 항상 다음 아이를 맡아 키우는 것을 바라게 되었다. 지난 50여년 간 아내와 나는 언젠가는 우릴 잊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 대한 잊을 수 없는 기억에 뭍혀 살아왔다.
잠깐의 침묵이 감돌았다. 투명하게 앞을 바라보는 나와, 내 앞에 놓인 돈이 든 주머니, 그리고 담배, 내 옆에서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남자 사이에서 시간이 흘러갔다.
침묵을 깬 것은 그였다.
“아이는 더 이상 오지 않을 거야. 자네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지난 달 궤도 엘리베이터 ‘헤론’이 붕괴됐어. 이곳의 궤도 엘리베이터인 ‘탈레스’도 노후화로 언제 무너질 지 몰라. 연맹 감마 엘타린 중심지로서의 이 ‘로크랜드’의 역할도 이제 얼마 안 남았지. 우주 스테이션의 사람들은 이미 이곳을 떠나기로 결정했고…... 그들이 이 곳에서 세대를 거듭할 이유도 사라져 버렸네. 물론 자네들에게 아이들의 양육을 맡길 필요도 이제 없어…... 미안하네. 이제 담배를 피워도 상관 없어.”
그는 잠시 쉬다가 덧붙였다.
“돈은 좀 두둑히 넣어 두었어. 그 동안 고마왔네.”
말은 마친 그는 테이블에 지폐 한 장을 올려놓고 일어섰다. 그리고 내가 뭐라고 물어볼 새도 없이 몸을 돌려 내게서 멀어져갔다. 나는 그를 잡아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이 날이 올 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연맹의 초공간 이동과 항성간 통신이 불안정해 진 것도 이미 오래 전 일이었다. 로크랜드는 그나마 감마 엘티린 성계의 핵심 지역이라 오래 버텼지만, 이미 항성간 교통과 통신이 두절된 채, 기술과 문명을 잃어버린 행성들도 부지기수였다. 아니 이곳 로크랜드에서만 해도 제대로 된 보수 없이 무리하게 사용된 궤도 엘리베리터들이 하나 둘 씩 붕괴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울한 현실을 대변했다. 각 행성들리 각기 고립된 채 외로움 속에서 천천히 죽어가는 ‘대단절’의 시대가 소리 없이 그러나 착실하게 도래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보육을 우리들에게 맡기고 궤도 엘리베이터 위에 있는 쾌적한 우주 스테이션에서 무엇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의 삶에 열중하고 있던 ‘저 위의 사람들’도 그것을 피해갈 순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더 이상 이 로크랜드에서 자식을 낳고 세대를 이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나마 사정이 나은 곳으로 도망치는 것으로, 나는 더 이상 그들이 양육을 맏기는 아이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서 저마다의 마지막을 맞이할 뿐이었다.
나는 앞에 놓인 담배를 손에 들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담배를 한 개피 꺼냈다. 담배 끝을 코에 가져다대자 매콤한 냄새가 올라왔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것을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 콜록-
처음 담배를 피웠을 때처럼 숨이 막혀왔다. 그리고 그 사이로 혈관을 탄 니코틴이 등줄기를 지나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한 모금, 두 모금 빨아들일 때마다 몸의 떨림은 점차 약해지고 나른한 익숙함이 시간을 뛰어넘어 밀려왔다. 마지막 담배 이후 삼십여 년의 시간이 마치 어제와 오늘 사이로 좁혀져 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 안에서 아이들의 얼굴도 하루 밤 안의 시간 안에 좁혀져 왔다.
담배를 내려놓으면 그 기억조차 사라질 것 같아 나는 연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며칠 동안 나는 이 사실을 아내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할 지 고민했다. 아내는 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강하다고 해서 상처받지 않는 것은 아니었고, 어떤 상처들은 영원히 아물지 않은 채 가슴 속 깊이 침참하기도 했다. 어쩌면 아이를 떠나보낼 때마다 아내의 마음 속 어딘가에는 영원히 아물지 못하는 기억의 틈이 하나씩 벌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것이 아내에겐 결코 상처로 느껴지진 않겠지만, 기억이라는 모습의 피를 남은 삶 내내 마음 속으로 흘려보낸다는 점에서는 결코 아물지 않을 상처와 매찬가지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더 이상 우리 부부에게 맡겨질 아이는 없을 것이라고 주저주저 하면서 꺼낸 내 말에도 아내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울음도 없었고 한숨도 없었다. 아내는 그저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게 아내와 나는 말없이 저녁 식사를 마쳤다. 담담하지도, 그렇다고 슬프지도 않은 그런 것들의 중간 어디메쯤 회색 빛을 내는 우울함과 침묵이 나와 아내를 감싸안고 있었다
그날 이른 저녁을 먹고 굳어진 집 안의 공기를 벗어날 요량으로 집을 나서면서 나는 흘끗 아이가 있었던 방을 바라보았다. 저녁 나절의 햇살이 방 장지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고 아내가 그 안에 앉아 있었다. 그 날 바라 본 아내의 뒷모습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아내는 손을 뻗어 방 안 구석구석과 벽과 바닥을 이리저리 메만지고 있었다. 아내의 모습을 한 그림자만이 전부였지만, 아이들이 만든 흔적들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그 모습 속에는 이제는 떠나가 버린 아이들에 대한 아내의 마음 전부가 담겨 있었다. 뜻 밖에도 슬픔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리움만 잔뜩 머금은 채,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무엇인가로 가득 찬 어스레한 아내의 형상이, 벽과, 바닥과,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담긴 장소 전체에 가득히 베인 아이들의 기억을 하나씩 훑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문득 나에게 아이를 맡기는 일을 담당했던 사내와 술집에서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그의 말처럼 아이들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가진 아이들에 대한 기억은 온전히 나와 아내의 것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것만은 누구도 빼앗갈 수 없다는 것은 확실했다.
3.
“전 남아있을 거에요.”
아내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우린 오래 살았어요. 이 집에서만 여덟 명의 아이들을 키워 올려보냈고…...이 집은 아이들과의 기억의 전부에요. 궂이 조금 더 살기 위해 집을 떠날 생각은 없어요. 떠나봤자 운이 좋다고 해도 수용소같은 피난민 천막에서, 운이 나쁘면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서 죽을 테니 차라리 여기서 아이들과의 소중한 기억을 쓰다듬으며 마지막을 맞이하는 게 더 나아요.”
말을 하면서 방바닥을 쓰다듬는 아내의 얼굴은 무척이나 담담했다. 궤도 엘리베이터 탈레스의 마지막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과는 무척이나 대조되는 얼굴이었다.
얼마 전 탈레스 주변 모든 거주민들에게 소개령이 내려졌다. 언제 붕괴될 지 모르는 마지막 한계 상황까지 온 것이 분명했다. 궤도 엘리베이터는 갑작스런 붕괴에 대비한 자체 파괴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것은 붕괴 상황에서 오는 대륙 수준의 재난을 도시 하나 정도의 파괴로 막아주는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파괴되는 도시 ‘하나’가 나와 아내가 살고 있는 탈레스 주변을 둘러싼 도시였다.
“무슨 소리야? 그건 자살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정신 좀 차려!”
격앙된 내 반응에도 아내는 꿈적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아이들을 맡겼고, 또 데려갔어요. 내 아이들을 데려갈 순 있어도, 아이들과의 기억까지 데려갈 순 없어요. 이 집은 아이들과 당신과 제가 살아온 세월 전부에요. 절대 나한테서 뺏어갈 수 없어요. 절대로……”
미소까지 띄며 말하는 아내의 표정에 나는 질려버렸다. 이상한 안광이 아내의 눈빛과 아니 얼굴 전체를 덮고 있는 것이 마치 정신이 나간 다른 누군가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한 명씩, 한 명씩 아이를 올려보낼 때 마다 아내는 눈물은 지었지만 잘 참았다. 그리고 또 다른 아이를 받아 키워냈다. 나는 여태껏 아내가 아이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아이가 머물던 이 방을 쓰다듬을 때 마다 그것이 아이들을 향한 그리움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집과 방과 아이들…...
아내에겐 아이들은 떠나간 존재가 아니라 여전히 이 집 안의 현재진행형이다. 나는 그제야 내가 이 방 앞 툇마루에서 담배를 피는 것을 아내가 질색하리만치 싫어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담배를 피는 나는, 적어도 이 방 앞에서 담배를 피는 나는 용납할 수 없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아이를 키우던 삼십 여 년 간 나는 담배를 피지 않았고, 그 모습 그대로 아내의 기억 속에서 이 방과 함께 녹아들어가 있었다. 그 기억을 방해하는 것은 현재의 나라 할지라도 절대 용납될 수 없는 부류에 속했다.
언제부터 아내는 과거의 기억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게 되었을까? 나는 아내의 선택을 지지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는 있었다. 담배를 입에 물 때마다 들던 생각.
-이제는 괜찮아. 아이가 없으니 이제는 괜찮아-
나는 담배를 피면서 이제는 괜찮다는 말로 끝없이 아이들의 기억으로부터 도망가고 있었고, 아내는 아이들의 흔적을 짚으며 기억의 저편 안으로 침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둘은 좌우가 같은 데깔코마니처럼 방향만 다를 뿐 결국은 같은 끝모양에서 만났다.
아내와 나는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면서 다른 시선으로 침묵했다.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침묵을 깼다.
“뉘시오?”
나는 대청 마루에서 일어서 마당을 가로질러 나와 문을 열었다. 원래 거의 없었지만 소개령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떠나간 후 우리 집을 찾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궤도 엘리베이터 탈레스가 마지막을 준비하며 내는 떨림이 집을 가끔씩 흔드는 것이 방문객이라면 유일한 방문객이었다.
“잠깐 들렀다 가도 될까요?”
눈 앞에는 두어 살 된 아이를 안은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먼 길을 왔는지 옷에는 군데군데 흙먼지가 내려앉아 있었고 눈가엔 피로가 서려 있었다.
“들어 오시구려. 손님을 맞는 것도 오랜만이네.”
나는 몸을 비켜 여자를 맞았다.
여자와 아이는 사흘 간 집에 머물었다. 먼 길을 가는 중이라고 했다. 여자는 북쪽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고, 거기에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를 포기하고 이곳에서 살기로 한 우주 스테이션 거주자들이 세운 마을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우주 스테이션에 사는 이들 모두가 이곳 로크랜드를 떠나는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에요.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로, 또 어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어서 이곳에 남는 것을 선택했죠.”
“애기 엄마는 왜 남은 거유?”
아내의 질문에 여자는 가볍게 웃었다.
“원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구요. 초공간 도약에 알 수 없는 장벽이 생기면서 아이들이 우주 여행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어요. 그 때문에 수년 전부터 출산은 금기였어요. 금기를 깬 저같은 몇몇은 아이들을 놔두고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던가, 아니면 저처럼 아이와 함께 남든가 했죠…...”
그렇게 말한 그녀는 머물던 마지막 날 밤 아내와 함께 도시락을 쌌다.
4.
-휘유-
대청 마루에 앉은 여자는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았다.
“아이가 있는데 괜찮아요?”
아내가 여자가 새벽에 떠날 때 가지고 갈 도시락 찬거리를 다듬으며 묻자 여자는 대답했다.
“이제 젖먹이도 아닌데요 뭐. 정말 가끔 피고 그것도 아이가 옆에 있을 땐 안 피니까 괜찮겠죠 뭐.”
여자는 잠깐 주저하다 다시 덧붙였다.
“그리고 이건 제 기억을 곱씹고 의지를 다지는 어떻게 보면 의식 같은 거에요 자주는 필요없지만 꼭 해야 하는,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의식이라니?”
“담배를 피고 있으면 저 위로 올라가던 날 기억이 떠오르거든요.”
여자는 다시 한 모금 더 들이마신 후 연기를 내뿜었다. 그 연기와 내가 피면서 내뿜은 연기가 희미하게 섞여 마치 마블링 무늬처럼 허공에서 늘어졌다.
“저를 포함해서 위에 살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 기억이 거의 없거나 있어도 희미할 뿐이죠. ‘땅’에서 우릴 키워주신 분들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이구요. 사실 딱히 보고싶은 것도 아니에요. 기억이 안 나는데 뭐가 보고 싶겠어요? 그냥 이따금, ‘그분들은 어떤 분들이었을까’, ‘내가 살던 곳은 어디였지?’라는 시시한 의문만 들 뿐이죠. 바쁘게 살다 보면 아예 그런 생각도 안들 때도 많아요.”
여자는 말을 멈추고 미안한 듯이 방 안에서 도시락 찬거리를 손질하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내 옆에는 아이가 자고 있었다. 여자가 담배 생각이 난다고 하자 자신이 찬거리를 다듬을 테니 툇마루로 나가 담배를 피라고 한 것은 아내였다.
“하지만 어떤 기억은 아주 깊어서, 심지어 그냥 제 몸의 일부처럼 되어버렸다는 게 맞을 거에요. 이를테면…... 이 담배 같은 것 말이
죠”
여자는 약한 연기를 내며 타들어가고 있는 담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궤도 엘리베이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날 마지막으로 절 키워주시던 분들과 작별했던 기억이 나요. 무엇인가 평소와는 좀 다르다는 걸 느꼈는데, 그게 담배 냄새였다는 건 ‘위’에 올라가서 담배를 배우고 난 후였어요. 그 후로 가끔 과거의 기억을 만나고 싶을 때 담배를 피워요. 왠지 시간을 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거든요.”
“혹시 그분들에 대해 뭐 생각나는 거라도 있어요?”
나물을 다듬던 아내가 조용히 물었다.
“아니오.”
여자는 짧게 대답하면서 마지막 한 모금을 내뱉고는 자고 있는 아이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다른 게 생각이 나죠. 제가 그분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알게 돼요.”
여자는 툇마루 옆 쪽 바깥벽에 난 수도꼭지를 틀어 손을 씻었다. 마치 이 집에 익숙한 듯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손을 씻으며 말을 이었다..
“‘위’에선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없어요. 다들 이곳 지상에서 어느 정도 대리 부모들이 키워서 올려보내죠. 그렇게 올라온 어느 정도 큰 아이들은 공동 숙소에서 저희들끼리 커서 어른이 되고…...저는 제 아이를 처음 키워보는 것일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아이가 크는 것도 본 적이 없어요. 아이를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알았으면 아마 아이 말고 이곳을 떠나는 것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요.”
“우린 여덟의 아이를 키워서 올려보냈지만, 아직까지도 이 방에 남은 아이의 기억을 어루만지면 입가에 미소가 돌아요. 아이를 키우면서 힘든 것만 있는 건 아니지요 ”
아내가 마치 힐난하는 듯 대꾸했다. 하지만 여자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자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오 년 넘게 저를 키우면서 참았던 담배를 제가 떠나던 날 꺼내 물어야 할 정도로 저를 보내는 게 그분들에게 큰 슬픔이고 제가 그만큼 소중한 존재였다는 걸 생각하게 되었어요. 제가 담배를 피우면서 말이죠. 담배를 피면서 저 아이를 보고 있으면 마치 제가 그때의 그 분들이 되고 저 아이가 어린 시절 그때의 제가 된 듯한 착각에 빠져요. 그리고 그 착각 속에서 저는 마치 그분들처럼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곤 하죠. 그래요…... 그건 마치…... 무슨 신성한 의무와도 같은 것인지도 몰라요.
아버지도 모르고 키울 생각조차 없던 아기였어요. 낙태 시기를 놓쳐 억지로 낳은 후에도 몇 번이나 버리려고 했고, 이 행성을 떠나려고 아이를 저 위 우주 스테이션 내 길거리에 버리고 돌아선 적도 한두번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어디선가 담배 냄새가 풍겨왔어요…...마치 시간을 고정시킨 것처럼 제가 떠날 때 맡았던 그것과 꼭 같은 냄새가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분들을 통해 저에게 오는 것 같았죠. 저는 그럴 때마다 아이를 멀찍이 놓고 담배를 피웠어요. 그런데…...그런데 그 담배 연기 속에서 마치 누군가가 제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정확히 말하면 제가 아니라 제 기억속의 누군가가 저 아이의 엄마가 되기 위해 제 몸을 빌리는 것처럼 말이죠. 결국은 연기 안에서 저는 정말로 엄마가 되어 저를 움직이는 게 정말 제 몸을 빌린 어떤 존재의 의지인지 아니면 제 의지인지 구분조차 못하게 되죠. 그저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만 남을 뿐이에요. 아이를 처음 안았을 때의 따뜻함. 배냇 웃음이 주던 미소. 어깨에 기댄 아이의 코에서 전해오던 따뜻한 숨결. 어느 것 하나 저는 그런 것들을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연기 속에서는 마치 제가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다른 사람이 되어 아이를 안고 키우면서 ‘이게 엄마구나’ 하고 되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웃기죠? 아이에게 해로운 담배를 피면서 정말로 엄마가 되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게…...저도 정말 웃긴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황량한 삶에서 아이를 안고, 기댈 곳조차 없이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을 때, 정말 무너지고 싶을 때엔 담배를 필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마치 마약과도 같은 환각의 세계를 제 앞에 열고 전 그 안에서나마 저 아이와의 행복을 꿈꾸는 엄마가 되어 있는 것이죠.”
말을 하고 있는 그녀는 마치 붕 떠 있는 듯한 투명한 시선이었다. 어쩌면 말을 하면서 이미 그녀가 말한 엄마의 세계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애기엄마가 꿈을 꾼 게 아니라우.”
언제 부터인가 툇마루에 우리와 같이 앉은 아내가 부드럽게 말하면서 손을 뻗어 여자의 어깨를 감쌌다. 아내가 다시 말했다.
“모든 엄마들 속에는 그 엄마들의 엄마들, 그리고 그 전의 엄마들에게서 오는 기억이 있어요. 저는 아이를 여덟이나 키우면서도 한번도 혼자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우. 애기 엄마가 본 건 진짜 기억이에요. 어머니에서 어머니로 전해지는 기억. 그 기억은 참 심술궂어서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요. 어떤 엄마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갈 수도 있고, 또 조금 운좋은 엄마들은 그걸 보기도 하죠. 때론 애기엄마처럼 전혀 색다른 다른 물건을 통해 느끼기도 하구요. 하지만 어떤 형태이든 간에 그건 기억이 맞아요. 과거에서 온 기억이자 미래로 전해지는 기억. 우린 그 기억을 통해 엄마가 되고 부모가 되어가는 것이라우.”
아내는 여자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쥐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이 방에서 우리 부부는 여덟 명의 아이를 키웠어요. 오늘 밤처럼 이렇게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으면 아이를 올려보내기 전 마지막 밤이 생각나요. 아이를 재워놓고 만드는 마지막 도시락은 생각보다 슬프지 않아요. 그건 아마 아이가 떠나는 게 혼자 떠나는 게 아니라서일 거에요. 도시락을 만들던 기억은 아이의 입을 통해 아이의 기억 속으로 전해질테고 또 다른 시간의 다른 장소에서 나와 이어진 다른 어머니가 아이를 볼 때 고개를 내밀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마냥 슬프지만은 않은 것이라오. 애기엄마 말이 맞아요. 기억이 우리들 사이를 타고 전해지는 한 우린 서로 같이 있는 것이겠지요. 때론 부모가 자식이 되고, 자식이 부모가 되는 기억의 한 가운데에서 말이죠.”
아내는 말을 멈추고 멀리 서 있는 궤도 엘리베이터를 잠시 바라보았다. 아내의 눈은 그 거대한 존재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실상은 그것을 통해 올라간 아이들의 기억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애기엄마에게 감사드린다우. 내가 애써 외면하던 것을 다시 볼 수 있게 해줘서 말이에요. 난 이 방에 남겨진 아이들의 기억을 붙잡고 있었는데, 애기 엄마가 아이들이 ‘부모님’들로부터 받아간 기억의 존재에 대해 말해줬어요.”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내는 비로소 집에 새겨진 아이들의 기억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간 기억으로 눈길을 돌린 것이었다. 집에 새겨진 아이들의 기억처럼 굳은 유채화같은 존재가 아니라, 마치 연기와 같이, 무엇이라 규정할 순 없지만 생명을 가지고 세대를 거쳐 전해지는 그 무엇인가로 눈을 돌린 것이다. 나는 그날 밤 아내의 가슴 속 깊이 벌어진 틈이 어쩌면 과거의 기억을 담고 담아도 채워지지 않는 벌어진 상처가 아니라 저 오랜 세월 너머로부터 전해온 그녀들만의 기억들이, 끝없이 끝없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을 향해 흘러나오는 샘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5.
집을 떠나기 전 아내는 잠시 방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방바닥과 벽을 메만지며, 그 안에 아로새겨진 아이들의 기억을 더듬었다. 잠시 예전에 봤던 장면과 아내의 모습이 겹쳐져서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다시 눈앞이 또렸해 졌을 때 아내는 홀가분한 미소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집을 떠나는 트럭 옆 자리에서도 아내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 보면 미소 같고 어떻게 보면 애잔한 것 같은 표정으로 앞을 주시할 뿐이었다.
“고마워 여보.”
내가 말하자 아내는 눈을 앞으로 고정한 채 대답했다.
“고맙긴요. 이제까지 고집을 부려 미안해요.”
그리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덧붙였다.
“어차피 아이들에겐 저 집이 필요 없었어요. 우리한테도요.”
가벼운 말투로 말하는 아내의 손 앞에는 작은 도시락 보자기가 놓여 있었다.
-부르르-
궤도 엘리베이터 탈레스가 마지막 단발마로 몸을 떠는 진동이 자동차를 통해서도 들려왔다. 이제 머지 않았다.
“그 아이는 우리 여덟 아이들 중 하나일까? 아니면 아홉 번째 아이일까?”
운전을 하면서 내가 혼잣말하듯 묻자 아내가 대답했다.
“아무려면 어때요? 중요한 건 우리가 지금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혹시 당신도 그 아이가 이야기한 것처럼 이상한 환상에 사로잡힐 때가 있어?”
내가 묻자 아내는 웃으며 도시락을 톡톡 쳤다.
“도시락.”
“응?”
아내는 웃음기어린 얼굴로 말했다.
“내가 아이들한테 들려보내던 도시락 속에 밥만 들어있었던 줄 알아요?”
“......그렇구먼.”
“그렇지요.”
아내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되뇌듯 화답했다.
저 멀리 작은 점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를 안고 있는 점이면 좋겠는데……
“배고플테니 도시락부터 먼저 줘야겠네요.”
아내가 입가에 미소를 띄며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한 여자와 그 뒤에 업힌 아이의 모습으로 가까워지는 점을 향해 엑셀을 깊게 밟았다.
멀리 뒤에서 서서히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진동이 전해오기 시작했다.
20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