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가 까페에 다다랐다. 그곳에 그의 친구인 영우가 있다. 영우는 자리에 앉아 성호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성호가 쉽게 승낙한 까닭을 생각중이었다. 그 돈은 천만원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리 적은 돈이 아니다. 적어도 일이 없는 백수인 성호에게는 더 그럴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영우가 농담삼아 던진 말이었다. 그것에 성호가 그렇게 깊게 반응할 줄은 영우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거다. 성호는 너무나도 자신있게... 아니 당연한 듯이 그 대답을 했다. "그래, 빌려줄게." 대체 어디서 돈이 나온걸까? 그와 동시에 성호는 문을 열고 영우와 눈을 마주쳤다. 성호는 영우의 맞은편에 바로 앉아, 덤덤하게 말을 읊기 시작했다. 마치 모든 게 계산된 것 마냥.


성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4시가 되었고, 영우의 전화기에 문자가 왔다. 확인해보니 돈이 3통장에서 왔는데 하나는 235만원, 하나는 500만원, 하나는 265만원이었다. 정확히 천만원이었다. 영우가 당황한채 성호를 보았다. 성호는 또 덤덤히 말을 이었다. '나는 너에게 돈을 빌려준다. 그게 내 운명이야.' 그리고는 성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나갔다.


성호의 행동은 지나치게 딱딱했다. 모든게 정확했고, 그래서 더 수상했다. 범죄에 가담된 것일까하는 편집증도 일었지만, 생각을 그만두었다. 때로는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에 깊게 생각하는 것도 인생을 망치는 지름길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추후에 개인변호사와 친구에게서 받은 천만원이 문제가 생길적에 자신은 무고할 것이라는 증명을 만들었다. 그후에 영우는 안심할 수 있었다.




스타터




성호는 인생은 무척 심심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 꿈을 꾼 이유도 그럴지 모른다. 한번도 본적이 없는 아파트에서 어떤 순경과 아저씨와 학생을 데리 알 수 없는 괴물에게서 도망치는 꿈. 게임이나 영화에서 지겹게 보아온 그 추격씬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꿈이었다. 그 꿈을 꾼 까닭을 성호는 알 수 있었다. 성호는 서바이벌 호러의 매니아였기 때문이다. 어찌나 매니아인지, 그는 항상 합법적인 15CM미만의나이프를 가지고 다닌다. 언제 어디서 좀비가 튀어나오고 괴물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리고 나타나면 죽일 수 있을 거라는 헛된 배포도 가지고 있었다.


아무튼 성호는 그 꿈의 왠지 모를 실제같은 느낌에 끌리고 있었다. 너무나 사실적이고 진짜같았다. 아파트는 한번도 본적이 없지만 신비로웠고, 소름끼치게 낡았다. 미분양아파트이거나 철거위기에 놓인 아파트였을거다. 추측해보자면 그러하다. 성호는 자신의 기억속에서 그런 아파트를 본적 있는가에 관해 생각하다가, 그 아파트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져 인터넷을 검색하기로 했다.


대성동 현모아파트


성호는 저도 모르게 브라우저에 뜨인 아파트 사진과 아파트 이름을 응시하며 최면에 걸린 듯 읊었다. 그거다! 바로 이거다! 내 꿈속에 나온 바로 그 아파트! 시골마을 푸른 산속에 있는, 단 하나의 아파트. 아파트라기 보다는 약간 고층의 연합주택의 느낌이었지만 아무튼 바로 그거였다. 성호는 여느때처럼 엄마가 주신 용돈 2만원을 들고 옷을 챙겨입었다. 아파트는 성호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아파트는 성호가 사는 도시의 주변 시골에 존재했다. 딱 2만원 거리다. 운명일까? 성호가 현관문을 밀쳐 열자... 두근두근 대는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일없고 할일없고 인생이 따분한 그는 이 일은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의 인생을 변화시킬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리라.


정확히 1시간후 성호는 그 낡은 아파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나는 순찰차에서 졸고 있었다. 느닷없는 무전기의 지지직거림에 졸음이 깨자, 전날 야간근무를 하는게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누구는 시골에 무슨 일이 있겠느냐. 할테다. 사실 조나도 그러했다. 조나는 그래서 월급이라도 더 받고자 그 일을 신청했는데 하필 그날이 장날이었다. 정말 장날이었다. 새벽에 한 농부가 농약먹고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조나가 논바닥에 쓰러진 술병과 그 농부를 발견한거다. 게다가 그는 너무 늦어서 죽어있었다.


조나는 새벽부터 서류처리작업을 하고, 농부의 시체를 보고, 그의 인생을 어깨너머로 슬쩍 들었다. 농부는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었는데, 한 순간의 잘못으로 성범죄자가 되었다. 처벌을 받은후 도시에서 나와 시골에서 농삿일하며 조용히 살던 이였는데 그의 범죄 사실을 마을 주민들이 알아버린거다. 그뒤로 농부는 어딜 가든 자신에게 인장이 남아있다고 생각했고 결국 자살한거다.


그 날 새벽, 농부가 죽어갈때 조나는 다른 곳에서 게으름을 부리고 있었다. 만일 좀더 부지런하게 그를 찾을 수 있었다면 그를 살릴 수 있었을까. 사실 농부의 진실을 알고나서 농부를 면전에서 까지 욕하기도 했었던 조나였지만, 잠시 그가 측은해지고 죄책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에게 야간업무는 그에게 내린 신의 벌일지도 모른다.



느닷없는 폭발음이 들렸다. 조나는 놀라지도 패닉에 빠지지도 않았다. 그것은 너무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도시도 아니고 전쟁터도 아닌, 군부대도 아닌, 폭발음이 들릴 일이 없는 그곳에 갑작스런 폭발음이 들린거다. 교통사고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조나의 순찰차에 창이 깨졌기 때문이다.


조나는 아파트가 폭음의 진원지임을 곧 직감했다.









10분전, 성호는 경비아저씨와 학생과 대화중이었다. 학생이 갑자기 성호를 보더니 도둑놈으로 몰았기 때문이다. 학생은 분명히 성호가 도둑질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경비아저씨는 분명 성호가 본 그 아저씨는 아니었다. 성호는 그 상황속에서 그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당연히 성호는 도둑질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생은 성호를 계속 몰았는데, 학생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보자 성호는 학생이 블러핑을 치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학생이 바로 자신의 꿈속에 나온 이임도 직감했다.


5분전, 성호는 학생을 타일렀다. 학생은 울고있었다. 단지 돈이 필요해서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했다. 경비아저씨는 이 학생이 착한 학생이니 봐주라고 했지만 성호는 그 학생이 전혀 그리 호의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학생이 성호를 몰아붙여서가 아니라, 성호는 학생에게서 묘한 냉랭함과 교활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학생은 전혀 착하지 않다. 전에 성호가 친절한 살인범에게 붙잡혀 죽을 뻔한 그 사건때문인지 몰라고 성호는 그냥 사과만 받고 학생에게서 떠났다. 그리고 꿈속에서 학생에 대한 정보가 있는지 계속 확인했다.


성호는 그리 생각하면서 걷고있는데 어떤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와 어깨가 마주쳤다. 성호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그 아저씨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인상착의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묘했다. 한번도 본적없는 배경과 인물이 성호의 꿈에 나왔다. 그리고 바로 그 장소에 있었다. 그것은 우연일까? 성호는 뭔가 묘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갑작스런 폭음에 성호도, 그 아저씨도, 학생도, 경비도 쓰러졌다.

그곳에 있던 이들은 쓰러지고 그 곳으로 순경인 조나가 달려가고 있었다.







성호가 일어났을땐, 낮이었던 배경이 밤이 된 상황이었다. 잠깐 10분정도만 잔것 같은데 기분이 미묘했다. 성호는 곧바로 일어났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가로등은 배터리없는 핸드폰마냥 깜빡깜빡이고 있었다. 주변에 썩은 내가 진동했다. 성호는 핸드폰을 들어 플래시를 켰다. 성호의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 냄새는 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자동차 연기 냄새도 나서 교통사고가 일어난 줄도 예상했지만, 자동차조각들은 없었다. 성호는 주차장에 쓰러졌는데 주차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가로등불빛이 꺼졌다. 성호는 당황해서 그곳에 플래시를 비추었다. 근데 그곳에 가로등은 온데간데 없었다. 흔적도 없었다. 그냥 누가 뿌리채 뽑아 분해를 시켜버린 것 같았다. 알수없는 두려움에 성호는 뒤로 천천히 물러서다 바로 뒤로 돌아 달렸다. 잠깐 다리가 풀려 넘어졌지만 다시 중심잡고 일어나 달렸다. 분명히 무언가 위협적인 것이 있다. 달리다가 성호는 손에 피가 묻어있음을 발견했다. 아까 넘어진 이유는 피에 미끄러져 넘어졌던 거다. 피에는 정말 심한 악취가 나서 토가 나올것 같았다. 그것은 내장에서부터 뿜어져 올라온 선혈피인것이었다.


달리던 중 뒤에 무언가가 쫓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나도 섬칫해 성호는 소리를 빼액 지르며 마구 내달리기 시작했다. 뒤의 알수없는추격자는 성호를 정확히 쫓아오고 있었다. 그게 꿈속 괴물이든 무엇이든 성호를 위협할 것임은 분명했다. 그때 성호의 등 바로 뒤에 촉감이 느껴졌고 성호는 본능적으로 몸을 숙이다가 중심을 잃고 다시 넘어졌다. 오랜 백수생활로 체력이 피폐해진 탓이었다.


그리고 엎어진 성호의 귀에 대고 그 추격자가 속삭였다.


"저는 조나라고 해요, 설명할 시간 없어요. 따라와요"










조나를 따라가니 그곳에 아저씨, 학생이 있었다. 조나는 그곳이 분양이 되지 않은 집이라 들어가도 합법이라고 생각되어 들어갔다고 했다. 그러자 아저씨가 위험한 상황에 무슨 법을 따지냐며 소리 냈다가 움찍거렸다. 습관적으로 화내다가 상황이 뒤늦게 떠오른거다. 조나는 그 괴물을 보았다고 했다. 괴물은 개처럼 사족보행을 하고 천년동안 배고픈 괴물마냥 뭐든지 삼켜버린다고 했다. 조나는 말하다가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일이니 성호의 눈치를 보는 듯 했다. 성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성호는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 말도 잊지 않았다. 난 당신들을 알고 이 상황을 알아요. 기억하기로는, 우리는 이곳을 탈출하기만 하면 되요. 그러니 제 말을 따라주세요. 그것은 성호가 꿈에서 했던 말과 비슷하며, 곧 순경이 그의 말을 따라줄거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조나는 그의 말에 수긍했다. "당신이 미친것 같지만 왠지 따라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아파트를 나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것은 나도 동의하니 제 순찰차로 갑시다. 그 차로 여길 뜰 수 있을 거에요."


10분후, 조나와 성호, 아저씨, 학생 넷은 순찰차로 향해 소리를 죽이고 이동했다. 숨죽이고 걷다가 성호는 불현듯 난 생각에 앞서가는 조나의 어깨를 잡았다. 조나가 뒤를 돌자 성호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바로 그 앞으로 무언가가 빠르게 지나갔다. 그 괴물이었다. 조나는 뒤돌아 멈춘 순간 뒤에 느끼는 감각으로 괴물이 지나갔음을 직감했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 조나와 성호의 눈이 마주쳤다.


곧 다른 순간, 모퉁이를 나오기 전에 성호는 다시 조나의 어깨를 잡았다. 다시 조나가 멈칫하자 이번엔 저너머에서 괴물이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곧 소리가 사그러들자, 두려움끝에 한가지 사실을 직감했다. 만일 조나가 계속 걸어나갔다면 괴물에게 적발되었을거다. 성호는 모두 이미 보았던 것이라 놀랄 것은 없었다. 오히려 흥미진진했다. 다음순간부터는 꿈이 기억이 안나지만 말이다.

그냥 이상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