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한지 약 3년이 넘어가고 조이SF를 알게 된 건 훨씬 더 전이지만 본격적으로 글을 써보는 것은 처음인, 오래된 신입회원 티게리스입니다. 밤중에 생각나는 아이디어가 있어서 자고 일어나면 까먹을까봐 단숨에 단편 하나를 써보았습니다. 첫 작품이라 얼마나 비루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나쁘지만 않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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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과학자 차은서는 오래전부터 인류가 우주에 나가는 것을 소망해왔고, 다년간의 노력 끝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저렴하게 달에 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달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자금은 자신이 벌었던 것에 유산 얼마간을 더하는 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에 우주선을 제작하는 일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전날, 제작한 우주선의 성층권 고도 시운전까지 마치고 돌아오던 중 은사 니트로박사에게 연락을 받고 시간약속을 잡았다. 니트로 박사가 찾아온 날, 그의 옛 스승은 놀라운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러니까 지금 기술로도 비용의 문제는 감수하면서 우주 공간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이미 2000년대 초반에더 상용화시키는데도 무리가 없었다네. 하지만 앞으로도 5년 뒤까지는 우주라는건 그저 탐사만 하면서 관측할 대상에 불과하겠지. 공식적으로는 말이야."


"어느 시점까지라뇨? 그리고 공식적이라는 말씀은 비공식적으론 이미...?" "이미 달에는 위성통신망이 완벽히 구축된 상태라네"


니트로 박사는 제자의 질문에 매우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일들이 비밀로 있는거죠?"


"자네,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오로지 과학, 그것도 우주물리만을 연구해온 은서에게는 상당히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니트로박사 또한 그에게 우주물리만을 가르쳤으니 더더욱 의외의 질문이었다.


"지금의 미국이 왜 현대의 유일한 강대국으로 남아있는지 아나?"


"그야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성장한 경제력과 전후 유럽의 과학자들을 모아 발전시킨 과학 때문이 아닙니까?"


"천만에. 세계대전은 미국이 세계를 쥐락펴락할 나라임을 입증하는 과정에 불과했지. 그렇지만 유럽의 과학자들을 끌어모아서 발전시킨 막강한 과학의 힘을 무시할 순 없겠지. 25%만 맞았다고 할까? 그렇다면 한 가지만 더 물어보고 설명해주겠네. 미국 이전에 세계를 지배-아니 이건 그냥 주도한다고 하는 편이 낫겠군-어쨌든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 어디였나?"


"아무리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다고 해도 영국의 별명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것 정도는 압니다."


"맞네. 그렇지만 그 영국도 처음에는 유럽에서 그야말로 깡촌에 불과했어."


은서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지만 참았다. 그의 옛 스승이 아무 이유없이 찾아와서 탐사 비용과 우주 탐사의 숨은 현황을 말해주면서 그저 역사 이야기를 할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시간은 아까웠고, 다행히도 니트로박사는 그의 기억에 매우 관대한 선생님이었다.


"하루는 그저 박사님과의 대화를 위해서 보낼 수는 있지만, 요즘의 저는 특히 시간이 금보다 귀합니다. 이번에 달에 나가는게 역사와 무슨 상관이죠?"


"상관이 매우 크니 조금만 참고 들어주길 바라네. 최대한 압축해서 이야기해주겠네. 미국과 영국이 패권을 쥘 수 있었던 것은 공통적으로 그 나라들 이전의 강대국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힘을 키웠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 시대에는 바다의 장벽이 강대국의 손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네."


"그리고 오늘날에는 우주가 그 장벽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하지만 제가 하려는건 미국의 손을 벗어나겠다는게 아니에요"


"물론 자네는 그런 목적을 지니지 않겠지만,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의 뿌리를 심은 이들도 처음에는 종교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떠난 것이지 않은가? 그들은 역사를 무시하지 않았고,"


'그들'. '그들'이라는 말은 묘하게 은서에게 경고로 다가왔다.


"잠깐만요. 그들이라면 인터넷에 떠도는 일루미나티 같은 비밀결사가 사실이라는 말씀입니까?"


"내가 말하는 그들은 흔해빠진 음모론에 등장하는 기업연합 나부랭이가 아니라 미국 연방정부 그 자체일세. 아, 미리 말해두네만, 미국 정부의 사람들은 그저 초강대국 지위를 유지하기만을 원하니 음모론같은건 신경쓰지 않는 편이 정신건강에 유익할 걸세."


"음모론은 음모론이라 치고, 미국이 초강대국 지위를 유지하는 거랑 제 우주 탐사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건가요?"


"민간의 움직임이 정부의 그것을 앞질러서 다른 행성에 새로운 독립국가가 들어선다고 생각해보게나.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의 모든 것을 활용할 수 있었지만, 다른 행성의 독립국가는 대륙이 아니라 행성 단위의 경제력을 지니게 되고, 최초의 행성 단위 국가는 미국을 늙은 독수리로 만들어버리게 되겠지. 그래서 미국 연방정부는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지금의 주도권을 이용해서 우주 진출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고, 우주 공간도 그들이 완벽하게 장악하는 시점에 우주 진출을 해금하려는 계획을 지니고 있는 걸세."


니트로 박사는 목이 탔는지 물을 한모금 마시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시간과 예산? 그런건 그래도 90년대까진 어찌어찌 통했겠군. 소련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오히려 지금도 경쟁적으로 우주를 개척하면서 서로 자신들의 성과를 자랑하기 급급했겠지만, 그들의 유력한 경쟁자가 기절해있는 동안 미국의 정책은 바뀌었다고 할 수 있네."


"그렇다고 해도 누군가는 우주로 나가지 않았을까요?


"당연히 그럴수도 있겠지. 일루미나티 같은 흑막이라면 말이야. 그런 어둠의 집단이라면 그 음모론에서 일루미나티에 저항한다는 화이트햇들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나?" "그렇죠"


"그렇지만 이 일은 사람들을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리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지금의 초강대국이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발버둥이지. 따라서 이 일을 아는 사람들은 공개하지 않아도 그리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편이라네. 오히려 자신들의 조국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하지."


"그럼 다른 나라에서 우주로 나가려고 하거나 혹은 미국의 그 발버둥을 아는 경우는요?"


"가장 앞선 미국조차 시간과 비용의 문제로 하지 못한다. 이런 공식적 입장만으로도 상당수는 우주 개척을 포기하지. 그리고 그 이외에 열정만으로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우주로 나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지금 내가 자네에게 찾아온 이유지. 나 또한 합중국의 우주 개척에 참여하고 있고, 내 기억에 자네는 성실한 학생이었으니, 그래도 합중국이 직접 나서게 하는 것보다도 내가 자네를 말리는 편이 여러모로 좋을 것으로 보여서 이렇게 온 걸세."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요?"


"합중국을 우습게 보지 말게나. 잘 나가던 과학자 하나 바보만드는건 어렵긴 해도 불가능은 아니야. 포기하면 편해. 어차피 5년 후면 대부분이 공개되고 인류는 우주로 나갈 수 있게 되네. 미국의 주도권을 인정하는 전제로 말이야"


밤을 새가며 설득한 끝에 은서는 니트로박사의 말을 따르기로 했고, 5년 후 인류는 새로운 대항해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