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형.”
소년이 그 소리를 외면하면서 등을 돌리며 덮고 있는 요를 눈가 까지 뒤집어 쓴다. 저녀석 나이에는 좀 더 잠이 많은 것이 정상 아닌가?
“형.”

마지못해서 부스스 일어난다. 녀석이 쪼르르 달려나간 문틈으로 희미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몸을 일으킬 때 벌어진 담요 틈새로 썰렁한 공기가 스며들자 다시 누워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지만 소년은 대충 겉옷을 걸치고 터덜터덜 걸어 나간다. 몇 평 남짓한 좁은 거실에는 자신을 제외한 가족 모두가 이미 나와 있었다. 가끔 깜박대는 거실 전등 아래의 탁자에서는 아버지가 접시 위의 빵을 자르고 있고 동생은 이미 그 아래의 뜨듯한 담요 안에 다리를 넣고 앉아서 자기 접시에 놓이지도 않은 빵조각을 빼먹고 있다. 어머니는 거실 겸 부엌의 전기 스토브 앞에서 수프를 젓고 있다.

“먹고 나서 발전실에 가야 하는데 너도 같이 가자.”
“에? 오늘은 야채 재배실에 견학 가기로 되어 있는데요.”
그렇게 말하면서 소년은 탁자 아래의 담요 아래에 하반신을 집어 넣는다. 아버지가 어깨를 으쓱한다.
“거기는 다음에 가도 똑같지만 발전기 수리하는 건 아무 때나 볼 수 없잖냐? 너도 미리 봐 두면 나중에 도움이 될 게다”
“하지만 같은 조는 함께 다니면서 교육받기로 되어 있어서 저만 갈 순 없어요.”
“너가 웬일로 그런 것에 신경 쓰니?” 어머니가 전기 스토브에 올려져 있던 수프 냄비를 들고 온다. “어차피 한조가 다섯명 밖에 안되니까 그냥 다 가면 되지 않니? 견학 순서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교육담당이 누구였더라? 엔지씨에게 말하면 되지?”
“하지만 다른 조들도 있기 때문에 막 바꿀 수 없어요. 같은 곳을 견학하게 되는 조랑 겹치거나 엇갈릴 수도 있고…”

“오늘 형네 조랑 같이 견학하는 게 몇 조였지?”
“1조
“아. 알았다.” 소년이 선선히 답하자 동생이 빵을 물면서 말한다. “엔지 때문이었구나.”
“엔지?”
“아빠 있잖아요. 조명등 재생시키는 해리 아저씨네…”
“아니야!”
소리치자마자 소년은 자신의 반응이 부자연스러웠다는 걸 깨닫는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면서 야채와 버섯으로 끓인 수프를 그릇에 나눠 담고 있다. “그 애들도 같이 갈 수 있도록 말해보면 어때? …. 그정도 숫자까지는 되지 않겠어요?”
“아마도. 그럼 얘기는 끝난 건가?”
소년은 긍정적인 답변을 하고 싶지만 이번에는 좀 더 자연스럽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에 그러니까…”
그때 전등이 깜박이는 간격이 짧아지더니 결국 나가버린다.
“전등이 나간 건가요? 아니면 전기가 나간 건가요?”

“둘 다 요즘 문제가 있었으니 나도 잘 모르겠구려. 어쨌거나 이제 전등은 갈아야겠군. 토마스 불 좀 켜봐라.”
요즘 전등이 나가는 일이 잦아지면서 소년은 어디에 양초가 있는지 눈감고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 위치를 더듬는 손이 그것을 찾지 못하자 그는 어리둥절해진다.
“어라. 여기 있었는…”
“형. 여기 있어.” 탁자 옆에서 메탄가스 라이터가 순간적인 불꽃을 내며 타오른다. 눈을 감았다 뜬 것처럼 시야가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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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어디였는지 떠올리는 데 약간 시간이 걸렸습니다. 침대에 누워 있었고 열린 문 틈으로는 선명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잠들기 직전에는 이런 아침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톰!”
“여깄어.”
터덜터덜 문 밖으로 나가자 그곳에서는 작은 소년이 소파에 앉아 커다란 책자를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이미 동생이 등지고 앉은 벽에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그 벽체는 반들반들한 유리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반투명한 흰색 유리판 전체에서 은은한 빛이 나면서 거실 전체를 부드럽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소파 뒤로 돌아가 그 벽면에 들러붙어 있는 먼지와 성에를 손으로 쓸어내자 그 부분을 통해 더 선명한 빛이 들어옵니다.

“형 이거 봐봐.”
“여기 언제부터 이랬어?”
작은 소년은 자기 말이 묵살당하자 부루퉁해집니다.
“몰라. 일어났을 때부터.”
복도로 통하는 문을 밀치고 나가자 어제 지하에서 그들을 인도했던 밝은 섬광이 원형 탑의 중심부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거실로 돌아와 유리판이 연결되는 이음새 부위를 발견하자 소년은 그것을 좌우로 밀고 당기는 시늉을 하며 용을 쓰기 시작합니다. 동생은 그 광경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뭐해?”
“이 너머는 아마 빈 공간일거야 그리고 아주 밝은….”
이음새부분이 쉽게 미끄러지도록 만들어진 것 같은데도 전혀 움직이지 않자 곧이어 그는 손으로 망치처럼 두들깁니다. 거기서 울리는 소리는 그것이 얇은 판이 아니라 두터운 벽에 가깝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꼭대기까지 올라갈 도리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는 빛 바랜 소파에 앉아 잠시 숨을 고릅니다. 그리고 사실 이제 거의 다 올라왔다는 것을 상기해 내며 그리 실망할 일은 아니라고 자위합니다.

“이것 봐봐.”
동생이 그의 앞에 다가와 자기가 보고 있던 책자를 펼쳐 보입니다. 그가 알던 사람들 중 몇 명이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것이 사진이라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물론 이렇게 책에 잔뜩 꼽을 정도의 숫자는 아니었지요. 사진보다는 그 사진의 찍힌 내용, 그때까지 들어보기만 한 것, 혹은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생각해보지 못한 것 혹은 들어보지도 못한 것들이 그의 시선을 끕니다. 자신이 많이 보았던 것들과는 달리 이 사진들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닙니다. 흐르는 물, 떨어지는 물, 거대한 물 –처음 보는 것이지만 그는 그것이 바다일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리고 거대한 물결이 부서지는 모습, 엄청나게 솟아있는 거대한 땅덩어리와 처음 보는 커다란 식물들.
“저기 더 있어.”

그 말에 그가 깜박 현실로 돌아오자 작은 소년은 그것이 만족스러운 듯 의기양양하게 그의 팔을 잡고 구석의 작은 방으로 끌고 갑니다. 그 방은 어두컴컴해서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사방의 벽이 모두 책이라는 것을 알기 힘들었습니다. 어제는 자세히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전부는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것이 사진첩인 걸로 봐서 이곳에 살던 누군가는 아마도 사진을 모으는 것이 취미였던 것 같습니다. 그들도 사진으로 보아 알고 있는 것들도 있었지만 그렇게 다양한 각도로, 다양한 종류와 다양한 상태를 보여주지는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그들이 단지 듣고 상상했어야 하는 것은 물론 알 수 없는 것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거대한 도시와 높은 건물, 셀 수 없을 정도의 자동차, 더운 곳, 추운 곳, 밝은 곳, 어두운 곳. 다른 것에서는 동물들이…네발, 두발, 조류, 물고기, 곤충, 그들이 지하에서 기르던 것들도 보입니다. 혹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게 생긴 생물들.

그리고 물론 사람들이 있습니다. 검은 사람, 붉은 사람, 하얀 사람, 노란 사람, 입은 사람, 벗은 사람, 눈물, 웃음, 찡그림, 기쁨, 사랑, 슬픔, 분노, 두려움, 서러움, 한 명, 두 명, 적은 숫자, 많은 숫자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숫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다들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그곳은 어두워서 그것들을 거실에 가져와 봐야 했으므로 곧 거실에는 그것들이 잔뜩 쌓이기 시작해 크고 작은 기둥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들은 먹으면서도 봤고 먹고 나서도 쉬지 않고 그것에 몰두합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게 되었을 때쯤, 소년은 다른 것들보다 단조로운 내용이 담긴 사진첩을 발견합니다. 한명의 남자, 한명의 여자. 배경은 계속해서 달라져도 그들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여인의 배가 불러오고 페이지가 넘어가자 작은 아이가 나옵니다. 아이는 울고 울면서 자라납니다. 그들이 나이 들고 딸의 키가 어머니만큼 되었을 때 그것은 중간쯤에서 끝나게 됩니다. 슬쩍 동생의 눈치를 보지만 작은 소년은 그에게 신경을 쓰고 있을 틈이 없어 보입니다.

소년은 자신이 들고 있는 사진첩을 조용히 의자 밑으로 밀어 넣습니다. 그 앨범은 그의 관심을 다시 현실로 되돌리는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소년은 이제 이곳에서 시간의 흐름을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지만 지금은 굳이 문 밖으로 나가 확인할 필요도 없습니다. 커다란 유리판 너머에서 비춰지는 빛은 이미 눈에 띄게 약해져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이 갈등하기 시작합니다.
“톰. 올라가자.”
작은 소년이 책에서 눈을 들어 그를 바라봅니다.
“어디를?”
그는 손을 들어 위를 가리키자 동생의 얼굴에 싫은 기색이 가득 찹니다.
“이따 가면 안돼?”
“톰”
실은 소년도 그러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손을 들어올려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거의 다 왔으니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누군가를 찾게 되면 나중에 다시 돌아오자.”
소년은 그렇게 되기를 빌며 동생을 타이르지만 녀석은 쉽사리 일어설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아 그래. 태양. 너 그거 본 적 없지?”

작은 소년이 교육시간 때 배웠던 것을 기억해 내려고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동안 그는 자신이 봤던 책자 중 하나를 뒤적대기 시작하더니 그것을 동생에게 크게 펼쳐 들어 보입니다.
“이거.”
실루엣 같은 윤곽선만을 드러낸 사람들 뒤로 멀리 붉은 구체가 이지러진 형태로 지평선에 걸려 있는 사진입니다.
“이거. 진짜로 보고 싶지 않아? 이거 말고도 다른 것도 볼 수 있을지 몰라.”
뒤의 문장은 희망사항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그 전의 문장은 그가 생각하기에 지금으로서는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형도 본 적 없으면서 어떻게 알아?”

“나는 너보다 몇 년 더 수업을 받았으니까. 말로만 들었지만 내가 배웠던 것과 완전히 똑같아. 직접 보지 못했지만 저것이 움직이는 걸 보면 거의 확실해.”
“진짜?”
“물론이지. 그럴 수밖에 없잖아 여기를 환하게 비추는 게 그것밖에 더 있겠어? 봐봐 이걸 직접 볼 수 있다고.”
처음에는 동생을 설득하기 위해 생각해 낸 것이지만 그것이 그의 입을 통해서 언어로 구체화되자 이제는 스스로가 그것을 보기 위해서라도 올라가야 한다는 갈망이 솟아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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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이 올라가는 동안 완전히 어두워져 버리자 그 역시 다음에 시도하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이 흘러, 예의 차가운 빛이 그들을 인도하기 시작하자 그는 그들에게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되새깁니다. 어차피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마음속으로 다집니다. 그랬기 때문에 나선의 복도 끝에서 커다란 문이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그는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제대로 닫혀있던 문은 적어도 확인해본 바로는 모두 잠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은 소년은 벌써부터 발걸음이 점차 느려지고 있습니다. 동생은 아마 확인해 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지만 그는 반대로 걸음을 서둘러서 앞질러 나가 복도 끝에 먼저 도달합니다. 혹시, 설마, 만약 을 생각하며 문고리를 잡고 비틀지만 그것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실 그 역시 알고 있었던 것을 단지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작은 소년은 얼만치 떨어진 곳에 쪼그려 앉아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올라오기 전과는 반대로 들어갈수록 어두워지는 미궁의 입구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저 밑에서는 까마득히 멀리 보이던 출구에 도착했는데도 더 나아갈 수 없다니, 소년은 허탈한 심정에 그저 주위를 둘러 보다가 복도 중간에서 희미한 글자들을 발견합니다. 그 곳을 문지르자 좀 더 선명해진 글자들은 다행히도 소년이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소화전을 열자 규칙적으로 접혀 있는 호스와, 처음 보는 물건 하나와, 그리고 유리판 안에 갇혀 있는 도끼 –그도 익히 알고 있는 단순한 도구- 가 드러납니다. 그는 처음 보기는 하지만 그 옆에서 –아마 거기 써 있는 데로- 소화기라 불렸을 것 같은 물건을 들어봅니다. 용도는 모르지만 상당히 묵직하고 단단해 보입니다.

그걸 유리판에 냅다 던집니다. 날카로운 고음이 탑 안을 채우면서 깨져나가자 밑을 내려다보던 동생이 깜짝 놀랐는지 그를 돌아봅니다. 유리판에 쓰여 있던 ‘비상시’가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말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그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소년은 문고리를 분해하다가 어른들에게 혼나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것만 뽑아 내면 문이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 문고리와 동일한 구조여야 한다는 점이 있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건 그것이 지금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문고리를 때려 박듯 내려 칩니다. 거대한 구조물 전체를 울리는 타격음이 계속해서 반복되자 작은 소년은 귀를 막고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그의 행위를 지켜봅니다. 정면으로 때려 박다가 내려 치다가 잠시 쉬고, 측면으로 휘둘러대기를 반복하자 문고리와 맞닿아 있는 면이 깨져나갑니다.

그것을 재빨리 뽑아낸 뒤 구멍에 손을 넣고 잡아 당기자 어느새 동생도 옆에 서서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단속적인 마찰음을 내며 열리기 시작하고 그 문 밖으로 또 다른 문처럼 얼음면이 드러나자 두 사람은 다시 절망에 빠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오래 가지 않습니다. 얼음 벽 너머로 약한 빛이 흘러드는 것을 보고 소년은 도끼를 휘둘러 한쪽을 파내기 시작합니다. 손바닥만 한 깊이만큼 파고 들어가자 그 다음 순간 도끼날이 허공을 때리는 게 느껴집니다. 구멍이 어느 정도 커졌을 때 동생이 먼저 나가보겠다고 하지만 그는 단호합니다. 소년은 자신이 먼저 나가서 확인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국 그들이 나갈 수 있게 된 것은 그가 도끼를 질질 끌 정도로 기진맥진한 상황이 된 뒤였습니다.

약간 삐친 듯한 동생을 뒤로 하고 먼저 기어나간 그는 탑의 꼭대기에서 드디어 바깥 세상과 만나게 됩니다. 형이 무어라 하기도 전에 작은 소년 역시 구멍에서 기어나와 그의 곁에 나란히 섭니다. 평생 그들의 머리 위를 가리던 무언가가 모두 사라지고 난 뒤 드러난 검푸른 하늘에는 눈가루를 뿌린 듯 수없이 많은 빛나는 알갱이들이 꽉 메우고 있습니다. 희고 창백한 구체가 밝게 빛나며 그들의 왕처럼 떠 있고 그 아래로는 눈과 얼음에 둘러싸인 거대한 구조물들이 제각각의 크기로 땅 위로 솟아 있습니다. 이 셀 수 없이 많은 숫자의 거대한 얼음덩어리들은 보이지 않는 지평선 끝까지 펼쳐져 있고 그 아래의 깊은 계곡 사이로는 흰 눈발을 실은 돌풍이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소년은 높은 고도에서 차갑게 몰아치는 바람의 추위나 절망을 느낄 틈도 없이 그 풍경에 매료되어 멍하니 바라보고 있습니다.
“톰. 돌아가자.”
공허한 말이 세어나오지만 실은 그 자신도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다시 들어가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지하로 가는 한이 있어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발을 뗄 수가 없습니다. 지하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더욱 그것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형 저거.”
오랜 과거였다면 그곳에 나타날 리 없을 거대한 빛의 커튼이 그들의 머리 위에서 부드럽게 물결치고 있습니다. 작은 소년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 불편했는지 이제는 아예 누워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격렬하게 움직인 뒤의 피로감과 황홀함이 뒤섞여 차가운 바람조차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그것은 점차 소년을 눈 뜬 체로 졸게 만듭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것에 굴복합니다. 그는 동생과 함께 누워 버린 뒤 그것을 올려다 봅니다.
‘다른 사람들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텐데.’
몽롱한 의식 사이로 그런 아쉬움이 스쳐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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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무거운 두통과 아직도 잠을 자고 있는 듯한 몽롱한 상태가 계속되었기 때문에, 소년은 자신이 언제 일어났는지, 아니 아직도 자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럽습니다. 다만 눈에 보이는 하늘은 누군가가 거두어간 듯 검푸른 바탕뿐입니다. 어제 보았던 것이 환상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조차 듭니다. 일어나려 하지만 손과 발이 모두 꼼작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가 아직도 잠에 빠져 있고 가위눌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몇번의 시도 끝에 고개를 돌리자 여전히 공허한 눈을 뜬 채로 어제의 황홀한 하늘을 바라보며 누워있는 동생이 보입니다.
“톰.”

동생을 흔들어 깨우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머리 속에서는 종이 울리는 것 같고 손과 발은 꼼짝하지 않습니다. 누운 채로 꿈지럭 거려 조금씩 몸을 움직여서 머리 위에 있던 벽에 뒷머리를 약간 기대고 나자 벌써 모든 힘을 다 써버린 듯 합니다. 동생의 이름을 부르기 위한 발음조차도 힘에 부칩니다.
“톰.”

목이 잠겨 제대로 들리지 않고 폐 안에서 공허하게 울립니다. 혼란스러운 두통 속에서 바라보는 동생의 얼굴을 편안해 보이면서도 공허해 보입니다. 그의 시선이 거기에 머물고 있을 때 동생의 얼굴에 점차 음영의 윤곽이 뚜렷해지기 시작합니다. 소년이 그 빛을 따라서 시선을 돌립니다. 그것은 얼음 기둥들이 들쭉날쭉 하늘을 찌르고 있는 지평선 너머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지평선 너머의 무언가는 검푸른 물 속에 형광의 잉크가 퍼져나가듯 어둠을 몰아내고 있습니다.
“톰. 일어나. 저것 봐.”
소년은 그것으로부터 눈을 떼지 않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목구멍 밖으로 충분히 울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지평선의 얼음덩이 사이로 그것이 일부를 드러내자 눈을 뜨기 힘든 섬광이 작열합니다.
“톰. 저게..”

그 이상 말도 생각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소년은 점차 커지는 빛 그 자체를 보고 있습니다. 그 광경에 넋을 잃고, 자신의 숨이 잦아드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며 눈을 떼지 않습니다. 두통이 사라지면서 소년은 자신이 빛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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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창작 게시판이 뜸하군요. 이 글을 좀 바라잡아 줄 만한 글은 안 올라오려나.;
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