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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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ver Materix
2310년 10 월 10일
따스한 가을햇살이 비치는 안방에서 나는 누워서 티브이 체널을 돌리고 있고 백발이 희끗희끗 보이는 마누라는 햇살이 비치는 창가 한켠에 쭈그리고 앉아서 발톱을 깎고 있다.
나는 멍하니 티브이를 보다가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 마누라한테 물어보았다.
“여보, 내가 전에 당신을 죽이지 않았나?”
마누라는 갑자기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대답을 했다.
“멀쩡히 눈앞에 살아있는 여편네를 죽었다고 하다니 단단히 노망이 들었나보네요, 자 어서 약이나 먹어요.....”
하긴 산사람앞에서 죽지 않았냐고 물어보는내가 이상하긴 하다.
나는 마누라가 건넨 약을 받아 먹고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2310년 10월 12일
몇 년동안 집안에 있으면서 티브이를 보다보면 어느 순간엔가 그 프로가 그 프로로 보이게 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방금 전에 보았던 프로가 무엇인지 기억을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단지 기분이 그렇게 느껴지지만 그건 기분일 뿐.....
“현재 실버 매트릭스의 의무화 방안이 추진되는 가운데, 사회 일각에서 반대 여론이 일고 있으며......”
실버 매트릭스라....그게 뭐하는 거였지? 무슨 노후 보장 시스템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하긴 2100 년도를 넘어서면서 대한민국의 노령화 인구는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급격하게 증가한 노령인구로 인해 국민연금이라는 제도는 더 이상 제 구실을 못하게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폐지 되어 버렸다.
자칫 국민 연금을 유지하려다가는 극심한 인플레까지 우려가 되었고 그 결과 연금제 폐지에 극심한 시위, 그리고 심지어 그해에 선출된 대통령까지 물러난 다음에야 대강 사태가 무마되었지만 그건 무마가 된것일뿐 해결된게 아니었다.
기억의 원시(遠視)환자가 된 나는 자꾸 잊어버리는 가까운 기억보다는 조금 더 먼기억들에 초점을 맞추려 애써 헤메이고 있었고 마누라는 그런 나를 다시 현실로 불러들였다.
“여보 이 배좀 먹어봐요, 그리고 알고 있죠? 내일 손주들 온다는거......”
나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응, 그런데 그 녀석들 와도 될까? 내 상태도 불안한데......”
노인성 치매.....이 시대에는 치매는 상당히 일반적인 병이 되었다.
정년 자체가 빨라지기 시작하면서 이상하게 이 병의 발병시기가 빨라지게 되었다.
쉽게 풀어 말하자면......
태어나서 25세까지 학교 다니고 45세까지 직장생활을 하고 그 이후 110 세까지 살아가게 된다.(물론 의학의 발달과 생활수준의 향상이 한몫을 했다.)
즉 25년동안 번돈으로 65년 동안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 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냥 단순히 먹고 사는거라면 어떻게든 버티고자 하겠지만 70 세부터 발병하기 시작하는 치매가 일반적인 현상이되면 (물론 의학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불치병으로 돌연변이가 되어 버린후이다.)...........
일반적인 직장 생활이라면 생활비에 자녀교육비만으로 빠듯한데다가 정년이후의 치매 간병비용과 생활비용을 준비 한다는것은 불가능 이라는 말이된다.
“아니 이 할아버지가......알고 있냐구요...내일 손주들 온다는거.....”
이런저런 생각에 잠든 나를 깨운 마누라의 목소리가 내 귓불을 자극했다.
“아....알았다구....이 할멈이 가는귀가 먹었나?”
나는 오기가 나서 괜히 마누라한테 짜증을 냈다.
2310년 10월 13일
‘딩동, 딩동’
이 벨소리 후에 다음 상황이 어떻게 될지 나는 알고 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참새들처럼 재잘거리는 손주들의 목소리가 현관에서부터 울려 퍼지고 이어서 각종 소리와 움직임, 그리고 물건들의 파손과 나도 모를 위치로의 이동 등 이 모든게 순식간에 일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내 집에서 일어나는 일이더라도 나는 별로 나와 상관있다고 느껴지지 않을 뿐이고.....단지 내가 할수 있는 행동은 ‘오냐’라고 대답하는것 뿐이다.
“아직 네 형 소식은 못들었냐?”
“네, 백방으로 수소문 하고 있는데....그때이후로 가족들 데리고 물가가 싼 개발 도산국으로 갔다는 이야기 밖에는.......”
큰아들......난 아들이 둘이다. 우리 할아버지 세대까지는 그래도 자식을 키우면서 부모를 모시는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을 했다.
그러나 25년동안 벌어서 65년동안 살아야 하는 세상이 오면서(그것도 국가의 복지 정책이 무용지물이 된 상황에서) 대부분의 가정에서 자식이냐 부모냐를 저울질 해야할 때가 왔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요즘사람들 기준으로라면 ‘욕심’을 부렸었다. 즉 내 노후를 포기하면서까지 자식과 부모를 같이 모셨던것이다. 그러나 내가 정년 퇴직하고 한 이십년정도 있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어떤면에서는 다행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나에게도 치매가 찾아왔지만.....나는 내 간병비나 마누라 간병비는 고사하고 내 생활비 자체 마저도 남기지 못한것이었다.
자식들은 분가 시켜보냈으나 큰아들놈은 내 부모님과 나를 모신다고 안되는 살림에 억지로 무리를 해서 내게 돈을 보내주었지만 그것도 내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에는 바닥이 났기 때문에 나는 내가 살고 있던 집을 담보로 은행에 빚을 져서 겨우겨우 살아갈 뿐이었고 그마저도 얼마 안있으면 바닥이 날 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큰 아들놈이 내가 얼마 안있으면 생활이 막막해진다는것을 알았는지 자기가 살던집을 나에게 주고는 자기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면서 퇴직금 일부를 받아다가 그나마 나랑 마누라랑 죽을때 까지 쓰라고 남겨 둔다음 그중 자기몫을 얼마 떼어서는 가족들을 데리고 생활비가 싼 개발 도산국으로 이민을 가서 일자리를 잡고 살아가보겠다고하고는 사라진것이다..
내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어디로 간다고 정확히 밝히지도 안은채 말이다.....
‘미련한 놈’
지 애비를 보고도 배운게 없다니......
아이들의 소음과 하루가 지나기 전에 잊어버릴 둘째 아들놈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들과 상관없이 티브이는 항상 저혼자 떠들고 있었고 나는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자극들을 나와 무관한 것인양 흘려 보내고 있다.
“아버지, 저 이만 가볼께요......”
“그래 조심히들 돌아가고, 우리 강아지들 다음에 또보자.....”
우두커니 있던 나는 둘째 아들놈의 인사와 마누라의 대화를 듣고 나서 아들놈이 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도 또 한동안 못볼 손주놈들을 짧은 기억속에서 나마 담아두기 위해 한놈 한놈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정적.......혼란이 휩쓸고난 후의 정적은 일상의 정적보다 더 적막하게 느껴진다.
나는 적막을 깨기 위해서 마누라한테 말을 걸었다.
“여보 마누라, 내가 올해 몇 살이지?”
“이 할아버지가 이제는 자기 나이도 까먹었나? 당신 나이가 올해 백 팔세잖아요.....아무리 노망이 나도 자기 나이를 마누라한테 묻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나는 문득 의아해서 다시한번 마누라한테 물어보았다.
“내가 백 팔세이면 둘째놈을 서른에 낳았으니까 둘째놈은 이른 여덟일테고 그럼 손주놈들은 지금 못해도 마흔살은 되어야 하지 않나?”
마누라는 물끄러미 나를 보더니만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지고는 손주들이 어지럽힌 집안을 치우기 시작했다.
“원래 손주들은 항상 아이들 인 법이예요......”
2310년 10월 15일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다.
시간은 저녁이 다 된것 같은데 방금전에 본 티브이 프로 마저 기억이 안난다.
그리고.....방안에는 배설물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고 마누라는 역겨운 표정을 억지로 참으면서 방 여기저기에 흩어진 배설물들을 치우고 있었다.
또 시작이군.....
극심한 두통과 함께 치매가 시작된다. 다들 일반적으로 말하는 ‘노망’이라는것 말이다.
나는 아무런 기억도 없다. 단지 기억하지 못한 내가 벌려놓은 민망하고 부끄러운 행동의 결과물만이 지금의 나를 괴롭힐 뿐이다.
뒤치다꺼리하는 마누라나 이런 나 때문에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먼 타국에서 고생할 큰아들이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죽고싶어질때도 있었지만.......항상 그 어떤 비참한 상황에서도 살고 싶다는 마음 만큼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러한 생존욕구가 모든 것에 최우선일 경우가 많다. (당연한것이면서도 가장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사실이기도 하다.)
갈수록 머리가 깨어질듯이 아프고 기억을 잃어버리는 회수가 늘어난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마누라의 당황하거나 역겨움을 참는 표정들을 자주 보게 된다.
나는 일부러 잠이든듯 눈을 꼬옥감고 돌아눕는다.
2310년 10월 20 일
요즘 이상한 꿈을 꿀때가 많아진다.
가끔 눈을 뜨다 보면 옆에 마누라가 누워있는게 아니라 내가 이상한 수조속에 몸만 반쯤 잠긴채 온몸에 전선이 연결된 느낌이 들때가 있다.
그러면 간호복을 입은 여자 몇 명이 와서는 소곤거리는 것이다.
“어머 이 할아버지 왜이러지? 오늘만 세 번째네....자꾸 이러면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는데......”
그리고는 간호복 입은 여자 한명이 내가 누워있는 수조옆의 단추를 누르면 난 다시 잠이 들고 잠이 깨어나면 다시 마누라가 내 옆에 누워 있는것이다.
종종 마누라한테 이야기 하려고 하지만 자꾸 멈칫 거려져서 이제는 그냥 꿈인가보다 하고 넘어간다.
2310년 10월 25일
또다시 꿈을 꾸었다.
역시나 수조에 누워있는 꿈이었는데 내가 수조에서 눈을 뜨자 마자 내가 누운 수조 옆에서 빨간 경고등이 깜빡 거리기 시작했고 간호사 여럿이 달려와서는 내가 누운 수조에 붙어 있는 판넬을 분주하게 조작했다.
나는 분주한 간호사들을 보다가 그냥 꿈인가보다 하는 생각에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냥 잠이 들어버렸다.
나는 다시 자다 깨면 바로 옆에 마누라가 누워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나는 환자복을 입고 하얀 침대에 누워있었고 며칠전 보았던 아들의 모습보다 훨씬 더 늙어버린 아들이 내가 누운 침대 옆에서 건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 왜 자꾸 깨어나고 그러세요? 형님이 아버님을 실버 메트릭스에 모시려고 전재산 들인거 모르세요? 아버지 이곳에 모시고 큰형이 실종된거 모르세요?”
나는 모르겠다. 내가 꿈을 꾸는건지 노망이 난건지 아니면 그 무엇인지......
마누라에게 물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늙어버린 둘째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네 엄마는 어디있느냐?”
아들의 이마에 주름이 하나 더 늘었다.
“아버지, 기억 안나세요?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였잖아요. 치매에 걸렸으면서도 계속 아버지 병 수발하고자 하는 어머니가 안쓰럽다고 하면서 말이예요. 먼저 가서 쉬고 있으라면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였잖아요? 저는 알고 있어요, 그때 아버지가 맨정신이셨다는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그랬었지, 그럼 내 옆에서 말을 걸던 마누라는? 그리고 지금은?’
늙어버린 아들은 나의 생각에 아랑곳없이 말을 이어갔다.
“그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인게 굉장히 큰 뉴스거리가 되었죠. 하지만 법정에서는 아버지가 치매가 걸려서 그런것이라고 판단을 내리고 아버지가 금치산자 이기 때문에 어머니를 죽였음에도 법적 책임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죠”
늙어버린 아들은 건조한 표정에 무감각한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긴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해도 아버지는 금방 잊어버리겠지요. 하지만 한가지만은 알아두셨으면 해요 저는 아버지 간병비를 댈 여유가 없어요. 어머니와 큰형님에 이어서 저마저 희생시키시고 싶지 않으시다면 자꾸 깨어나지 말아주세요. 실버 메트릭스 사에서는 아버지가 자꾸 깨어나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에 깨어나신다고 하니까 말이죠. 제발 아버지가 만들어낸 아버지가 원하는 추억속에서 편히 꿈을 꾸어달란 말이예요”
나는 아들녀석에게 무언가 물어보려고 했지만 하려고 했던 말이 기억도 안났거니와 아들이 말을 마치자 마자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2310년 10월 28일
나는 악몽을 꾼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났다.
단지 악몽을 꾼 이후 기분은 더 자포자기 하는 심정이 되었다고나 할까?
이젠 마누라한테 악몽을 이야기할 기분도 안난다.
단지 이상한건 마누라가 이전보다 더 젊어 졌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 기억의 원시속에서 먼 기억을 바라보다가 마누라한테 말을 걸었다.
“여보 기억나? 내가 달-지구 간 우주항 발사대 입구에서 당신에게 프로포즈 했던거...
그 덕분에 달-지구간 정기 왕복 우주선이 한시간 동안 지연됐었고 난 일주일 정도 유치장에 구금 되었었지......“
마누라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에게 대답했다.
“그걸 어떻게 잊어요? 당신 일생에 최대의 모험이었다면서요? 그런데 저는 아직 모르겠는게 그런식으로 프로포즈 한게 일생일대의 모험이었다는 거예요? 아니면 저와 결혼하겠다고 마음먹은게 일생일대의 모험이었다는 거예요?”
나는 남아있는 모든 기력을 입가로 모은후 아무말 없이 미소로 대답을 했다.
2311년 2월 3일
이상하다 나는 자꾸 기력이 떨어져 가는데 마누라는 갈수록 젊어져 가는것 같다.
내 눈이 이상해 진건지 마누라가 마치 내가 처음 프로포즈 할때의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조용히 마누라에게 물어보았다.
“여보 나 언제 죽지?”
마누라는 언제나처럼 밝게 웃으며 대답을 했다.
“아마 바이탈 사인으로 보건데 조금 있으면 될것 같아요, 왜 이렇게 저를 오래 기다리게 했어요?”
마누라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는 내손을 잡고 나를 일으켜 세우며 말을 했다.
“여보, 자 이제 나가요........”
내가 처음으로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이었다.
마누라가 열어준 문 밖에는 우주항의 발사대가 멀리 보였고 마누라는 내 손을 잡고 우주항 발사대로 걸어갔다.............
------------------------------- 에 필 로 그 ------------------------
2311년 2월 5일
의사가운을 입은 한 사내가 책상에 앉아 있고 그 건너편에는 건조한 표정의 한 남자가 물끄러미 책상위에 놓인 디스켙을 보고 있었다.
“아버님께서는 편히 임종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폐기물 관리법에 의해 아버님의 사체는 안전하게 완전 소각 시켰고 선생님께서 가져가실수 있는 아버님의 유품은 임종시 아버님의 의식을 기록한 디스켙 뿐입니다.”
건조한 표정의 그 남자는 머뭇거리다 디스켙을 품에 넣고 자리에 막 일어서려는 찰나
“저 선생님 한가지 여쭤볼게 있습니다만......혹시 아버님께서 실버 메트릭스 프로그램에서 깨어나실 때 마다 안내자 프로그램을 조작하신적이 있습니까”
건조한 표정의 남자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대답을 했다.
“안내자 프로그램이라면 임종시까지 아버님의 곁을 지켜주게 되어있던 프로그램 말입니까?
아버님의 부탁으로 어머님의 형태로 만들어 달라던?“
의사는 대답을 재촉하듯이 대답을 이어나갔다.
“네”
건조한 표정의 남자는 대답 대신 한번더 질문을 했다.
“아버님이 임종하시기 전에 무슨일이 있었나요?”
의사는 답을 얻기 위해 마지못해 대답을 했다.
“실은 아버님이 임종하시는것과 동시에 안내자 프로그램이 스스로 삭제 되었습니다. 그것도 외부의 지시 없이 프로그램 스스로가 말입니다. 지금 연구소에서 조사중이지만 이것이 아버님께서 프로그램에 어머님의 인격을 부여하셔서 그렇게 된것인지 프로그램 에러인지 아니면 ‘유령’이라고 부를정도의 프로그램 외부 영향인지 판단이 안되서 말입니다. 단 이 이야기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건조한 표정의 남자는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허리를 곧게 펴고 일어서면서 마지막 대답을 했다.
“아니요, 저도 잘 모르겠군요.게다가 저도 이제 치매 증상이 보이기 시작해서 말이죠.........”
2311년 5월 12일
건조한 표정의 사내가 온몸에 전선이 연결된채 반쯤 물이 잠긴 수조에 누워있었고 그 사내와 닮은 얼굴의 또 한명의 사내와 의사가 수조 옆에서 건조한 표정의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건조한 표정의 사내가 무표정하게 하지만 무언가 간절한 어조로 이야기를 했다.
“진정 인간답게 죽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겁니까?”
의사는 건조한 표정의 사내의 어조를 무시하며 대답을 했다.
“가족의 얼굴도 잊고 자식들에게 막대한 병원비와 간병비를 안겨주는게 인간적인 죽음이라고 할수 있을까요? 걱정 마십시오 치매시의 모든 행동은 단지 실버 메트릭스 상에서만 일어날뿐 실제 현실에서는 발생하지 않을테니까요.....게다가 치매시의 피해 조차 현실에 나타나지 않게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제 노령인구의 실버 매트릭스 수용이 법으로 의무화 되었다는건 잘 아시겠지요”
건조한 표정의 사내는 또 한명의 사내를 바라보면서 표정의 변화를 일으켰다.
그는 무언가 찾는 듯한 표정으로 또 한명의 사내에게 말했다.
“네 큰아버지는 찾았냐?”
또 한명의 사내는 똑같은 건조한 표정으로 그러나 짜증나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아버지 또 시작이세요? 할아버지를 실버 매트릭스에 집어넣기 위해서 큰아버지와 짜고 할아버지한테 거짓말한거 아녜요. 기억안나세요? 그 덕택에 큰아버지는 실버 매트릭스사 이사가 되었고 아버지도 약간의 보상금을 받았잖아요? 게다가 할아버지가 실버 매트릭스 제일 처음 수용자였고 할아버지 덕분에 실버 매트릭스가 무해하다고 알려진 거 아니예요? 그리고 그 결과 노령인구의 실버 매트릭스 강제수용이 법제화 되었구요.”
건조한 표정의 사내는 아무말 없이 아들을 바라보다가는 천천히 고개만 끄덕이고 눈을 감기 시작했다.
“아버지 요청대로 할아버지 간병하는 기억도 실버매트릭스에 프로그램 해놓았어요. 그리고 아버지 안내자 프로그램은 할아버지로 해놓았구요. 그렇게 하느라고 제 노후 생활비에서 많이 지출된거는 알아 주셨으면 해요”
아들은 눈을 감은 아버지가 듣던 말던 상관 없다는 투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 말 한마디를 하고는 의사와 함께 돌아서서 나갔다.
“아버지, 안녕히 주무세요”
2310년 10 월 10일
따스한 가을햇살이 비치는 안방에서 나는 누워서 티브이 체널을 돌리고 있고 백발이 희끗희끗 보이는 마누라는 햇살이 비치는 창가 한켠에 쭈그리고 앉아서 발톱을 깎고 있다.
나는 멍하니 티브이를 보다가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 마누라한테 물어보았다.
“여보, 내가 전에 당신을 죽이지 않았나?”
마누라는 갑자기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대답을 했다.
“멀쩡히 눈앞에 살아있는 여편네를 죽었다고 하다니 단단히 노망이 들었나보네요, 자 어서 약이나 먹어요.....”
하긴 산사람앞에서 죽지 않았냐고 물어보는내가 이상하긴 하다.
나는 마누라가 건넨 약을 받아 먹고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2310년 10월 12일
몇 년동안 집안에 있으면서 티브이를 보다보면 어느 순간엔가 그 프로가 그 프로로 보이게 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방금 전에 보았던 프로가 무엇인지 기억을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단지 기분이 그렇게 느껴지지만 그건 기분일 뿐.....
“현재 실버 매트릭스의 의무화 방안이 추진되는 가운데, 사회 일각에서 반대 여론이 일고 있으며......”
실버 매트릭스라....그게 뭐하는 거였지? 무슨 노후 보장 시스템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하긴 2100 년도를 넘어서면서 대한민국의 노령화 인구는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급격하게 증가한 노령인구로 인해 국민연금이라는 제도는 더 이상 제 구실을 못하게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폐지 되어 버렸다.
자칫 국민 연금을 유지하려다가는 극심한 인플레까지 우려가 되었고 그 결과 연금제 폐지에 극심한 시위, 그리고 심지어 그해에 선출된 대통령까지 물러난 다음에야 대강 사태가 무마되었지만 그건 무마가 된것일뿐 해결된게 아니었다.
기억의 원시(遠視)환자가 된 나는 자꾸 잊어버리는 가까운 기억보다는 조금 더 먼기억들에 초점을 맞추려 애써 헤메이고 있었고 마누라는 그런 나를 다시 현실로 불러들였다.
“여보 이 배좀 먹어봐요, 그리고 알고 있죠? 내일 손주들 온다는거......”
나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응, 그런데 그 녀석들 와도 될까? 내 상태도 불안한데......”
노인성 치매.....이 시대에는 치매는 상당히 일반적인 병이 되었다.
정년 자체가 빨라지기 시작하면서 이상하게 이 병의 발병시기가 빨라지게 되었다.
쉽게 풀어 말하자면......
태어나서 25세까지 학교 다니고 45세까지 직장생활을 하고 그 이후 110 세까지 살아가게 된다.(물론 의학의 발달과 생활수준의 향상이 한몫을 했다.)
즉 25년동안 번돈으로 65년 동안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 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냥 단순히 먹고 사는거라면 어떻게든 버티고자 하겠지만 70 세부터 발병하기 시작하는 치매가 일반적인 현상이되면 (물론 의학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불치병으로 돌연변이가 되어 버린후이다.)...........
일반적인 직장 생활이라면 생활비에 자녀교육비만으로 빠듯한데다가 정년이후의 치매 간병비용과 생활비용을 준비 한다는것은 불가능 이라는 말이된다.
“아니 이 할아버지가......알고 있냐구요...내일 손주들 온다는거.....”
이런저런 생각에 잠든 나를 깨운 마누라의 목소리가 내 귓불을 자극했다.
“아....알았다구....이 할멈이 가는귀가 먹었나?”
나는 오기가 나서 괜히 마누라한테 짜증을 냈다.
2310년 10월 13일
‘딩동, 딩동’
이 벨소리 후에 다음 상황이 어떻게 될지 나는 알고 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참새들처럼 재잘거리는 손주들의 목소리가 현관에서부터 울려 퍼지고 이어서 각종 소리와 움직임, 그리고 물건들의 파손과 나도 모를 위치로의 이동 등 이 모든게 순식간에 일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내 집에서 일어나는 일이더라도 나는 별로 나와 상관있다고 느껴지지 않을 뿐이고.....단지 내가 할수 있는 행동은 ‘오냐’라고 대답하는것 뿐이다.
“아직 네 형 소식은 못들었냐?”
“네, 백방으로 수소문 하고 있는데....그때이후로 가족들 데리고 물가가 싼 개발 도산국으로 갔다는 이야기 밖에는.......”
큰아들......난 아들이 둘이다. 우리 할아버지 세대까지는 그래도 자식을 키우면서 부모를 모시는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을 했다.
그러나 25년동안 벌어서 65년동안 살아야 하는 세상이 오면서(그것도 국가의 복지 정책이 무용지물이 된 상황에서) 대부분의 가정에서 자식이냐 부모냐를 저울질 해야할 때가 왔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요즘사람들 기준으로라면 ‘욕심’을 부렸었다. 즉 내 노후를 포기하면서까지 자식과 부모를 같이 모셨던것이다. 그러나 내가 정년 퇴직하고 한 이십년정도 있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어떤면에서는 다행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나에게도 치매가 찾아왔지만.....나는 내 간병비나 마누라 간병비는 고사하고 내 생활비 자체 마저도 남기지 못한것이었다.
자식들은 분가 시켜보냈으나 큰아들놈은 내 부모님과 나를 모신다고 안되는 살림에 억지로 무리를 해서 내게 돈을 보내주었지만 그것도 내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에는 바닥이 났기 때문에 나는 내가 살고 있던 집을 담보로 은행에 빚을 져서 겨우겨우 살아갈 뿐이었고 그마저도 얼마 안있으면 바닥이 날 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큰 아들놈이 내가 얼마 안있으면 생활이 막막해진다는것을 알았는지 자기가 살던집을 나에게 주고는 자기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면서 퇴직금 일부를 받아다가 그나마 나랑 마누라랑 죽을때 까지 쓰라고 남겨 둔다음 그중 자기몫을 얼마 떼어서는 가족들을 데리고 생활비가 싼 개발 도산국으로 이민을 가서 일자리를 잡고 살아가보겠다고하고는 사라진것이다..
내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어디로 간다고 정확히 밝히지도 안은채 말이다.....
‘미련한 놈’
지 애비를 보고도 배운게 없다니......
아이들의 소음과 하루가 지나기 전에 잊어버릴 둘째 아들놈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들과 상관없이 티브이는 항상 저혼자 떠들고 있었고 나는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자극들을 나와 무관한 것인양 흘려 보내고 있다.
“아버지, 저 이만 가볼께요......”
“그래 조심히들 돌아가고, 우리 강아지들 다음에 또보자.....”
우두커니 있던 나는 둘째 아들놈의 인사와 마누라의 대화를 듣고 나서 아들놈이 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도 또 한동안 못볼 손주놈들을 짧은 기억속에서 나마 담아두기 위해 한놈 한놈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정적.......혼란이 휩쓸고난 후의 정적은 일상의 정적보다 더 적막하게 느껴진다.
나는 적막을 깨기 위해서 마누라한테 말을 걸었다.
“여보 마누라, 내가 올해 몇 살이지?”
“이 할아버지가 이제는 자기 나이도 까먹었나? 당신 나이가 올해 백 팔세잖아요.....아무리 노망이 나도 자기 나이를 마누라한테 묻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나는 문득 의아해서 다시한번 마누라한테 물어보았다.
“내가 백 팔세이면 둘째놈을 서른에 낳았으니까 둘째놈은 이른 여덟일테고 그럼 손주놈들은 지금 못해도 마흔살은 되어야 하지 않나?”
마누라는 물끄러미 나를 보더니만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지고는 손주들이 어지럽힌 집안을 치우기 시작했다.
“원래 손주들은 항상 아이들 인 법이예요......”
2310년 10월 15일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다.
시간은 저녁이 다 된것 같은데 방금전에 본 티브이 프로 마저 기억이 안난다.
그리고.....방안에는 배설물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고 마누라는 역겨운 표정을 억지로 참으면서 방 여기저기에 흩어진 배설물들을 치우고 있었다.
또 시작이군.....
극심한 두통과 함께 치매가 시작된다. 다들 일반적으로 말하는 ‘노망’이라는것 말이다.
나는 아무런 기억도 없다. 단지 기억하지 못한 내가 벌려놓은 민망하고 부끄러운 행동의 결과물만이 지금의 나를 괴롭힐 뿐이다.
뒤치다꺼리하는 마누라나 이런 나 때문에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먼 타국에서 고생할 큰아들이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죽고싶어질때도 있었지만.......항상 그 어떤 비참한 상황에서도 살고 싶다는 마음 만큼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러한 생존욕구가 모든 것에 최우선일 경우가 많다. (당연한것이면서도 가장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사실이기도 하다.)
갈수록 머리가 깨어질듯이 아프고 기억을 잃어버리는 회수가 늘어난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마누라의 당황하거나 역겨움을 참는 표정들을 자주 보게 된다.
나는 일부러 잠이든듯 눈을 꼬옥감고 돌아눕는다.
2310년 10월 20 일
요즘 이상한 꿈을 꿀때가 많아진다.
가끔 눈을 뜨다 보면 옆에 마누라가 누워있는게 아니라 내가 이상한 수조속에 몸만 반쯤 잠긴채 온몸에 전선이 연결된 느낌이 들때가 있다.
그러면 간호복을 입은 여자 몇 명이 와서는 소곤거리는 것이다.
“어머 이 할아버지 왜이러지? 오늘만 세 번째네....자꾸 이러면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는데......”
그리고는 간호복 입은 여자 한명이 내가 누워있는 수조옆의 단추를 누르면 난 다시 잠이 들고 잠이 깨어나면 다시 마누라가 내 옆에 누워 있는것이다.
종종 마누라한테 이야기 하려고 하지만 자꾸 멈칫 거려져서 이제는 그냥 꿈인가보다 하고 넘어간다.
2310년 10월 25일
또다시 꿈을 꾸었다.
역시나 수조에 누워있는 꿈이었는데 내가 수조에서 눈을 뜨자 마자 내가 누운 수조 옆에서 빨간 경고등이 깜빡 거리기 시작했고 간호사 여럿이 달려와서는 내가 누운 수조에 붙어 있는 판넬을 분주하게 조작했다.
나는 분주한 간호사들을 보다가 그냥 꿈인가보다 하는 생각에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냥 잠이 들어버렸다.
나는 다시 자다 깨면 바로 옆에 마누라가 누워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나는 환자복을 입고 하얀 침대에 누워있었고 며칠전 보았던 아들의 모습보다 훨씬 더 늙어버린 아들이 내가 누운 침대 옆에서 건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 왜 자꾸 깨어나고 그러세요? 형님이 아버님을 실버 메트릭스에 모시려고 전재산 들인거 모르세요? 아버지 이곳에 모시고 큰형이 실종된거 모르세요?”
나는 모르겠다. 내가 꿈을 꾸는건지 노망이 난건지 아니면 그 무엇인지......
마누라에게 물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늙어버린 둘째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네 엄마는 어디있느냐?”
아들의 이마에 주름이 하나 더 늘었다.
“아버지, 기억 안나세요?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였잖아요. 치매에 걸렸으면서도 계속 아버지 병 수발하고자 하는 어머니가 안쓰럽다고 하면서 말이예요. 먼저 가서 쉬고 있으라면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였잖아요? 저는 알고 있어요, 그때 아버지가 맨정신이셨다는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그랬었지, 그럼 내 옆에서 말을 걸던 마누라는? 그리고 지금은?’
늙어버린 아들은 나의 생각에 아랑곳없이 말을 이어갔다.
“그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인게 굉장히 큰 뉴스거리가 되었죠. 하지만 법정에서는 아버지가 치매가 걸려서 그런것이라고 판단을 내리고 아버지가 금치산자 이기 때문에 어머니를 죽였음에도 법적 책임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죠”
늙어버린 아들은 건조한 표정에 무감각한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긴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해도 아버지는 금방 잊어버리겠지요. 하지만 한가지만은 알아두셨으면 해요 저는 아버지 간병비를 댈 여유가 없어요. 어머니와 큰형님에 이어서 저마저 희생시키시고 싶지 않으시다면 자꾸 깨어나지 말아주세요. 실버 메트릭스 사에서는 아버지가 자꾸 깨어나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에 깨어나신다고 하니까 말이죠. 제발 아버지가 만들어낸 아버지가 원하는 추억속에서 편히 꿈을 꾸어달란 말이예요”
나는 아들녀석에게 무언가 물어보려고 했지만 하려고 했던 말이 기억도 안났거니와 아들이 말을 마치자 마자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2310년 10월 28일
나는 악몽을 꾼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났다.
단지 악몽을 꾼 이후 기분은 더 자포자기 하는 심정이 되었다고나 할까?
이젠 마누라한테 악몽을 이야기할 기분도 안난다.
단지 이상한건 마누라가 이전보다 더 젊어 졌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 기억의 원시속에서 먼 기억을 바라보다가 마누라한테 말을 걸었다.
“여보 기억나? 내가 달-지구 간 우주항 발사대 입구에서 당신에게 프로포즈 했던거...
그 덕분에 달-지구간 정기 왕복 우주선이 한시간 동안 지연됐었고 난 일주일 정도 유치장에 구금 되었었지......“
마누라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에게 대답했다.
“그걸 어떻게 잊어요? 당신 일생에 최대의 모험이었다면서요? 그런데 저는 아직 모르겠는게 그런식으로 프로포즈 한게 일생일대의 모험이었다는 거예요? 아니면 저와 결혼하겠다고 마음먹은게 일생일대의 모험이었다는 거예요?”
나는 남아있는 모든 기력을 입가로 모은후 아무말 없이 미소로 대답을 했다.
2311년 2월 3일
이상하다 나는 자꾸 기력이 떨어져 가는데 마누라는 갈수록 젊어져 가는것 같다.
내 눈이 이상해 진건지 마누라가 마치 내가 처음 프로포즈 할때의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조용히 마누라에게 물어보았다.
“여보 나 언제 죽지?”
마누라는 언제나처럼 밝게 웃으며 대답을 했다.
“아마 바이탈 사인으로 보건데 조금 있으면 될것 같아요, 왜 이렇게 저를 오래 기다리게 했어요?”
마누라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는 내손을 잡고 나를 일으켜 세우며 말을 했다.
“여보, 자 이제 나가요........”
내가 처음으로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이었다.
마누라가 열어준 문 밖에는 우주항의 발사대가 멀리 보였고 마누라는 내 손을 잡고 우주항 발사대로 걸어갔다.............
------------------------------- 에 필 로 그 ------------------------
2311년 2월 5일
의사가운을 입은 한 사내가 책상에 앉아 있고 그 건너편에는 건조한 표정의 한 남자가 물끄러미 책상위에 놓인 디스켙을 보고 있었다.
“아버님께서는 편히 임종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폐기물 관리법에 의해 아버님의 사체는 안전하게 완전 소각 시켰고 선생님께서 가져가실수 있는 아버님의 유품은 임종시 아버님의 의식을 기록한 디스켙 뿐입니다.”
건조한 표정의 그 남자는 머뭇거리다 디스켙을 품에 넣고 자리에 막 일어서려는 찰나
“저 선생님 한가지 여쭤볼게 있습니다만......혹시 아버님께서 실버 메트릭스 프로그램에서 깨어나실 때 마다 안내자 프로그램을 조작하신적이 있습니까”
건조한 표정의 남자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대답을 했다.
“안내자 프로그램이라면 임종시까지 아버님의 곁을 지켜주게 되어있던 프로그램 말입니까?
아버님의 부탁으로 어머님의 형태로 만들어 달라던?“
의사는 대답을 재촉하듯이 대답을 이어나갔다.
“네”
건조한 표정의 남자는 대답 대신 한번더 질문을 했다.
“아버님이 임종하시기 전에 무슨일이 있었나요?”
의사는 답을 얻기 위해 마지못해 대답을 했다.
“실은 아버님이 임종하시는것과 동시에 안내자 프로그램이 스스로 삭제 되었습니다. 그것도 외부의 지시 없이 프로그램 스스로가 말입니다. 지금 연구소에서 조사중이지만 이것이 아버님께서 프로그램에 어머님의 인격을 부여하셔서 그렇게 된것인지 프로그램 에러인지 아니면 ‘유령’이라고 부를정도의 프로그램 외부 영향인지 판단이 안되서 말입니다. 단 이 이야기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건조한 표정의 남자는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허리를 곧게 펴고 일어서면서 마지막 대답을 했다.
“아니요, 저도 잘 모르겠군요.게다가 저도 이제 치매 증상이 보이기 시작해서 말이죠.........”
2311년 5월 12일
건조한 표정의 사내가 온몸에 전선이 연결된채 반쯤 물이 잠긴 수조에 누워있었고 그 사내와 닮은 얼굴의 또 한명의 사내와 의사가 수조 옆에서 건조한 표정의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건조한 표정의 사내가 무표정하게 하지만 무언가 간절한 어조로 이야기를 했다.
“진정 인간답게 죽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겁니까?”
의사는 건조한 표정의 사내의 어조를 무시하며 대답을 했다.
“가족의 얼굴도 잊고 자식들에게 막대한 병원비와 간병비를 안겨주는게 인간적인 죽음이라고 할수 있을까요? 걱정 마십시오 치매시의 모든 행동은 단지 실버 메트릭스 상에서만 일어날뿐 실제 현실에서는 발생하지 않을테니까요.....게다가 치매시의 피해 조차 현실에 나타나지 않게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제 노령인구의 실버 매트릭스 수용이 법으로 의무화 되었다는건 잘 아시겠지요”
건조한 표정의 사내는 또 한명의 사내를 바라보면서 표정의 변화를 일으켰다.
그는 무언가 찾는 듯한 표정으로 또 한명의 사내에게 말했다.
“네 큰아버지는 찾았냐?”
또 한명의 사내는 똑같은 건조한 표정으로 그러나 짜증나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아버지 또 시작이세요? 할아버지를 실버 매트릭스에 집어넣기 위해서 큰아버지와 짜고 할아버지한테 거짓말한거 아녜요. 기억안나세요? 그 덕택에 큰아버지는 실버 매트릭스사 이사가 되었고 아버지도 약간의 보상금을 받았잖아요? 게다가 할아버지가 실버 매트릭스 제일 처음 수용자였고 할아버지 덕분에 실버 매트릭스가 무해하다고 알려진 거 아니예요? 그리고 그 결과 노령인구의 실버 매트릭스 강제수용이 법제화 되었구요.”
건조한 표정의 사내는 아무말 없이 아들을 바라보다가는 천천히 고개만 끄덕이고 눈을 감기 시작했다.
“아버지 요청대로 할아버지 간병하는 기억도 실버매트릭스에 프로그램 해놓았어요. 그리고 아버지 안내자 프로그램은 할아버지로 해놓았구요. 그렇게 하느라고 제 노후 생활비에서 많이 지출된거는 알아 주셨으면 해요”
아들은 눈을 감은 아버지가 듣던 말던 상관 없다는 투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 말 한마디를 하고는 의사와 함께 돌아서서 나갔다.
“아버지, 안녕히 주무세요”
그런데 비나님 글을 읽다보면 안내자 프로그램(전직 스미스-_-라던지..)에 인격이 상당히 부여가 많이 되네요. ^-^ 프로그램의 셀프 삭제라.. 그 부분 읽으면서 저는 갑자기 애낳다가 죽은 도우미가 생각났답니다..
저도 이런글 하나 써보고 싶어요^-^
앞으로도 계속 건필 부탁드려요.
/p.s 여보, 자 이제 나가요.. 정말 멋진 엔딩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