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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 Market.
3.술수. (3)
낑낑거리며 겨우 헤어나왔다. 날카로운 금속조각들과 나사더미에 파묻힌 덕분에 자잘한 멍과 상처들로 온통 뒤덮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신없는 상황을 끝내려고 머리를 흔들고 고개를 들자 당장 날 어떻게 요리할지 고민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마부는 뭉툭한 나팔총(Blunderbuss, 산탄총)을 겨누고 있었고, 검은 가죽코트의 사내는 등 뒤 짐칸의 끝에서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검을 치켜들고 있었다.
나는 당황하고 공포에 질려 날카로운 늪 같은 금속들과 나사들의 진창을 벗어나려 애썼으나 어떤 사격도 짐칸위로 뛰어드는 칼날도 없었다.
깽깽거리고 숨을 헥헥거리면서 마차의 짐칸을 빠져나왔다. 털에 엉킨 몇 개의 부품들과 나사들이 짐칸에서 판석보도로 뛰어내리는 순간에 충격으로 바닥에 떨어져 튕겨나갔다. 나는 재빨리 정신없이 달려 나갔으나 산탄총의 총탄들이 뒤를 따르지도 않았고 가죽코트의 사내가 칼을 휘두르며 쫓아오지도 않았다.
너무 당황하는 바람에 두발로 뛰어야 한다는 생각도 잊어버리고 본능에 휩싸여 어설프게 네발로 움직였다. 셰퍼드는 개였지만 잡종이었다. 다리는 사람의 것 또한 많이 닮아있었고 완전하게 네발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연하게도 엉망진창으로 겁에 질려 움직이고 말았다.
이상한 점을 느끼게 된 것은 한참이고 도망쳐 나온 뒤에 어딘지도 알 수 없는 뒷골목에서 겨우 숨을 내쉴 수 있었을 때였다.
나는 셰퍼드였다. 튀어나온 주둥이와 꼬리와, 귀 그리고 갈색과 검은색 털들로 뒤덮인 짐승이었다. 사람들이 이런 셰퍼드를 키우고 먹이를 주는 건 다 사람들보다 뛰어난 감각이 있기에 봉사하라는 뜻에서였다. 그런데도 나는 마차에서의 순간 내가 느꼈던 감각들을 잊고 있었다.
나는 공격당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마차를 지키고 있던 마부와 사내는 내가 금속과 나서더미에 들어가 있다는데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언제라도 찢어 죽이려는 듯이 거칠게 무기를 치켜들어 겨냥했지만 그건 반대로 그 물건들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뜻이 될 수 있었다.
그것 밖에는 내가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정신없고 당황하여 두발인지 네발인지도 모르게 도망치느라 여기 사방 건물들로 둘러싸인 회색의 뒷골목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개의 직감이 그렇게 느끼게 했다.
헥헥. 아직도 지친 가슴은 멈추지 않았고 주둥이를 벌려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내가 우연히 그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것을 발견하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그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것이었으니 처음부터 보자마자 나에게 권총을 겨누고 토끼몰이를 하려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기척을 느낀 것은 그 순간이었다.
사방이 회벽으로 가로막힌 뒷골목은 네 게의 길로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지금에서야 알았다. 내가 들어왔던 길 하나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세 길들엔 오래된 잡동사니들과 나무상자들이 회색빛 먼지를 머금은 채 잔뜩 쌓여있었다. 그렇게 사방이 회색으로 막힌 느낌에 실수하고 있었다. 나는 사거리의 가장 중앙에 있었다.
기척을 느꼈을 때 도망쳐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어느 방향으로든지 움직이려고 했다. 음습하게 멈춰있는 공기 속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의 냄새가 분명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 방향으로 몇 걸음 때지도 못하고 뒷골목 사거리의 중앙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사방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불쌍한 셰퍼드가 이렇게 쫓기고 길까지 막혀버린 상황에서 무얼 할 수 있을까? 몸을 떨었다. 겁이 나서 캥캥거렸다. 이건 절대로 사람들은 모를 느낌이었다.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부터 냄새가 다가오고 그게 곧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건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게 하는 일이었다. 그건 사람들처럼 갑자기 상대방이 튀어나와 놀라고 당황하는 것보다 더한 일이었다.
셰퍼드는 그 사람들이 언제 어떻게 얼마나 다가왔는지를 느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어느 순간에 모습을 드러내 그들의 날카롭고 번쩍이는 무기를 내보일지도 알았다. 그건 끔찍했다.
나는 지금 내 등 뒤로부터 다가오는 감사관과 책임자를 느꼈고 몸을 돌리자 두 사람은 분명하게 얼굴을 내비치며 살의를 드러냈다. 요컨대 나는 포위망이 언제 어떻게 좁혀서 다가올지 찬찬히 모두 냄새로 느껴야 했다.
감사관과 책임자 그리고 내가 처음 체취를 느꼈던 작업장의 직인과 다른 셋의 사람은 당장 뽑아든 권총으로 나에게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순간의 기회가 주어졌으나 이미 사방은 막혔으므로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내가 거칠게 헥헥거리자 이윽고 다른 세 길의 방향에서도 두셋씩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 방향의 서로 다른 길이 만나는 작은 교차로의 가장 중앙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네 방향 모두를 틀어막은 감사관과 검은 가죽코트의 사내들은 모두 무기를 나에게로 겨누고 있었다. 미쳐버릴 것 같았고 컹컹 짖으며 공포에 떨려다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어느 누구도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명령을 내려야 할 감사관은 한참동안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이윽고 나는 그 이유를 알았는데 감사관을 향해 돌아선 내 오른쪽의 두 사람이 기다란 도끼를 꺼내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어차피 총을 겨누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 내가 도망칠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주인에게 충성을 바치던 개를 이용해 버린 감사관은 그것이 살아있다는 것도 참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잔인하게 부하들을 시켜 도끼로 잘라버려야 성이 풀리려는 모양이었다.
켕켕. 깽깽. 컹컹.
그냥 짖었다. 몸은 본능적으로 버려진 개의 마지막 단계를 준비했지만 머리는 세하예저서 그렇지 못했다. 본능이 거세게 끊어 올랐고 길거리를 배회하는 들개가 가마솥으로 끌려가기 전 마지막으로 이빨을 드러내듯이 주둥이를 벌렸다. 도끼의 상대가 안 돼 갈가리 찢길 걸 알았지만 물어뜯을 준비를 했다.
“이런 식의 단체 행동은 금지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드디어 도끼날이 날아들고 내 어깨를 파고들어 내 주둥이는 미처 닿지도 못한 채 처참하게 쓰러져 바닥에 피를 흘려야할 순간이었다. 마지막 저항으로 으르렁거리는 그 순간에 갑자기 모든 것을 멈추는 목소리가 들렸다.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순식간이었다. 나에게 도끼를 휘두르려던 두 사내는 머뭇머뭇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솟아있는 귀를 쫑긋했다. 곧바로 귀가 움직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까운 거리의 시야를 차지하는 내 주둥이 너머 푸른색 옷을 입은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흉갑에 긴 창을 들고 있었고 내 왼쪽을 가로막은 사내들의 등 뒤를 가볍게 쿡쿡 찔렀다. 습기와 어두움이 가득한 거리에 검은 가죽코트를 걸친 사내들의 사이에서 푸른색 옷의 남자는 유독 이질적으로 보였다.
“도살장은 이곳에서 여섯 구역 정도를 가시면 나올 겁니다. 시내에서 피를 뿌리는 일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걸 여기서 도살 하시려던 건가요?”
남자가 부드럽지만 동시에 분명한 목소리로 모두에게 물었다. 내 왼쪽을 지키던 사내 둘이 자리를 피했다. 뾰족한 창의 마름모꼴 날에 등이 찔렸던 사내는 저주스럽다는 듯이 남자를 노려보았다. 지근거리에서 사용할 가벼운 검과 왼쪽 허리춤의 권총으로 잘 무장한 남자는 곧장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남자는 푸른빛의 내 코트를 보았고 코트의 왼쪽 깃에 도끼모양의 청동 브로치가 달려있는 것을 확인했다. 흉갑을 입은 창병남자는 눈을 한번 껌뻑이면서 나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보았고 내 곁에 선 채 주위를 둘러싼 사내들에게 물었다.
“정말 도살하실 겁니까? 이 셰퍼드의 소유주가 맞으시다면 제가 도살장을 안내해 드리겠지만 아니라면-.”
“상인조합의 감사관일세. 이번에는 우리가 너무 성급했었던 것 같네. 아무래도 이 개와 조합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도망쳤던 들개를 잘못 착각한 듯싶네. 경비병. 우린 이만 물러가보도록 하지.”
보라색 스카프의 감사관이 정색했다. 그는 자신의 스카프만큼이나 보랏빛으로 질려있었다. 감사관이 경비병이라고 부른 내 옆의 남자 한명이 감사관과 사거리를 둘러싼 다른 모든 일행들에게는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인 것만 같았다.
경비병은 건물들 사이에서 멀게만 느껴지는 하늘을 향해 창을 쥐고선 몇 가지인가 더 물으려 했다. 하지만 감사관과 그의 사내들은 일사분란하게 한대모여 자리를 떠났다.
이윽고 그들이 시야에서도 사라지고 체취 또한 멀어지다 흩어져 버렸을 때 나는 경비병이라 불린 푸른 옷의 남자와 단 둘이 남아있게 되었다. 남자는 창을 들지 않은 왼손으로 손짓하면서 나에게 따라오라고 했다.
“정말 예의 없는 사람들이야. 지켜야 할 걸 지키지도 않고 말이지.”
그가 조금씩 썩어가는 나무 상자들과 긴 막대기들로 가득한 왼편의 길을 헤쳐 나가면서 말했다. 그는 나를 한번 슬쩍 보았고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나는 그의 얼굴이나 냄새에서 날 구해준 목적이나 적어도 의도 같은 걸 알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푸른색 옷을 입은 경비병은 그저 무심하게 늘상 해결하는 일, 업무라는 표정일 뿐이었다. 나는 이 구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난 마지막 순간에 운 좋게도 구해졌다. 사람들은 셰퍼드의 목숨 따위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음으로 이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기에 이 경비병이라는 남자에게 어떤 목적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렇지 않다면야 겨우 셰퍼드 따위가 살아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냥 나돌아 다니는 녀석은 아닌 것 같고, 내 상관에게 가면 분명 네게 뭔가 말해줄게 있을 거다.”
멀리 쌓여있는 물건들 너머로 골목의 끝이 보였다. 빛이 들어오는 밝고 깨끗한 거리와 이어지는 곳이었다. 경비병은 나에게 잠깐 시선을 주면서 말을 건넸다. 내 의문에 대한 대답은 전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의문을 풀 열쇠에 대해선 말을 꺼낸 거였다.
골목을 벗어나 깨끗하고 밝은 거리로 나오자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난 경비병 남자와 비슷한 복장을 한 몇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경비병은 그들에게로 가까이 다가갔고 골목에서 일어났던 일을 간략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문제를 일으킨 게 네놈이었나 보군. 그나저나 협회 쪽 녀석인 것 같은데 네 주인 이름이 뭐냐?”
모리온 투구를 쓰고 목에는 은으로 된 목걸이를 찬 남자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도끼창을 들고 있었고 일행의 대장인 듯 했다. 감사관이 경비병이라고 부르는 말을 들었으므로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순찰중인 경비대의 일원이라는 것도 생각하게 되었다.
“카를렌이라고 하셨습니다. 켕.”
대답할 수밖에는 없었다. 달리 숨겨야 하는 이유를 알지도 못했고 연금술사인 주인 여자가 머무는 건물의 위치에 대해서도 답했다. 주인 여자는 처음 나에게 쪽지를 보내 일을 시킬 때 협회의 건물이 위치한 거리의 이름에 대해서도 일러주었다.
“아무튼, 넌 운 좋은 줄 알아라. 사람들이 많은 큰길로만 걸으면 총 맞을 일은 없을 거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큰 소리를 내서 위화감을 줬다간 꼼짝없이 벌금을 내야 하거든.”
경비병들의 대장은 간단히 날 심문하고 그대로 가보라면서 떠밀었다. 이윽고 경비병들은 다른 구역을 순찰하러 떠났으므로 난 혼자 내버려지게 되었다.
어둡고 음습한 골목길에서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셰퍼드를 경멸하는 건 달라질게 없지만 그래도 칼을 휘두를 살의가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내 주위를 스쳐 지나갔다. 모든 것이 다시 안전해 졌지만 난 아무것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단지 죽을 위기에서 우연히 구원받은 걸까? 아니, 그 전에 감사관은 왜 일부러 날 찢어 죽이려고 했지? 그 사람들이 어째서 경비병 한명을 보고 피한 걸까? 과연 경비병 남자가 단순한 임무를 해결한다며 그냥 날 구해준 걸까?
모든 위협들이 지나간 한참 뒤에야 쏟아지는 안도감과 어찌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의구심이 뒤섞여 난 한동안 가만히 있어야 했다.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멍한 셰퍼드를 보며 혀를 끌끌 찼지만 난 그것도 신경 쓸 수 없었다.
모든 일이 끝나면 재빨리 자신이 기거하는 방으로 돌아오라는 주인여자의 명령은 더더욱 생각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