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 Market.


 3.술수. (2)


 여자에게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받았다. 편지지에 넣어진 여자의 쪽지를 작업장의 감독장에게 넘기고 라트일로 거리로 가라는 내용이었다. 거래를 상기시켰던 여자의 말이 두려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하다가 가마솥으로 들어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털로 덮여있으니 별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는 오히려 내 주위를 분주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서워졌다.

 셰퍼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죽으러 가는 일이라도 사람이 시키면 자유롭지 못한데. 굽고 휘어 발끝으로 걸어야하는 셰퍼드의 발을 내딛으면서 불안한 느낌에 조금 몸이 휘청였다.

 셰퍼드의 발다닥은 몸의 다른 부위에 비해 굵었고 그만큼 튼튼했다. 사람들은 유용한 개라면 손을 써서 사람들의 귀찮은 일을 더 많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만들었다. 강제로 두발로 일어서게 하기 위해 사람의 피를 섞어 넣었고 그것에 몇 번의 개량을 더 거쳤다.

 덕분에 셰퍼드의 다리는 질겼고 뼈는 단단해졌다. 발뒤꿈치가 휘어져 올라간 구조 덕분에 사람보다 더 기민하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잘난 사람들이라고 해서 셰퍼드가 뒤로 넘어지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불안은 늘 셰퍼드가 균형을 잡지 못하게 했다.

 미묘했다. 사람처럼 유용한 손을 닮은 앞발과 휘어져 재빠른 개의 뒷발이 합쳐지면 균형을 잡기 힘들다는 건.

 셰퍼드는 처음 걸음을 배울 때부터 본능적으로 균형을 잡도록 가르쳐졌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흰 거리마저 창백하게 느껴지게 하는 걱정은 본능을 위해 주어지는 약간의 신경마저도 재빨리 앗아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며 그때마다 비천한 것이라는 시선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여자는 조금 불친절하기는 했지만 적당히 알아볼 수 있는 약도를 주었다. 창백하게 깨끗한 거리를 지나며 주어진 목표로 향했다. 일부로 신경을 집중하고 꼬리로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한참이고 거리를 걷고 몇 번쯤 크게 꺾어져 내딛은 뒤에야 여자의 쪽지를 전해줘야 하는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전히 지리를 모르는 이 도시는 내게는 너무 넓었고 셰퍼드의 감각을 동원해야 겨우 길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광경은 분명해서 내가 길을 잃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멀리 근방의 다른 4층 집들보다 높게 솟은 커다란 굴뚝달린 건물들이 있었다. 바로 앞에 보이는 가까운 장소들에도 이런저런 작은 굴뚝들에서 검은 연기를 쏟고 있었다. 건물 외벽엔 자잘한 상자나 쇠막대기들이 놓여진 채였다.

 주인 여자는 쪽지를 주면서 그것을 전달해야 할 곳이 자신이 물건의 감수를 맡고 있는 작업장이라고 했다. 크고 작은 작업장들이 잔뜩 늘어선 거리를 헤쳐 나갔다.

 단단한 판석들이 깔린 큰 길가에는 텅 빈 수레들이 양옆에 놓여있었다. 이따금씩 작업장들 앞으로 물건을 쌓아두는 넓은 공터가 나왔다. 쪽지에 적혀진 대로 다섯 번째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잔뜩 물건을 실고 지나가는 마차를 보았고 동시에 냄새를 맡았다.

 지치고 헤진 동족들의 냄새였다. 내가 목적지인 석조 기둥과 회벽으로 이루어진 낮은 작업장의 입구로 들어섰을 때 그 냄새는 분명해졌다. 빈 상자들이 놓인 작은 공터를 지나 큰 나무문을 두드렸다.

 “네 녀석은 뭐냐?”

 거칠게 상한 손엔 쇠로된 연장을 든 남자가 입구에서 물었다. 문은 한쪽이 반쯤 열렸고 나는 그 좁은 틈으로 남자의 얼굴과 작업장의 안쪽을 보았다. 거친 남자의 얼굴은 동족들의 냄새와 어우러져서 남자가 꼭 개들의 지배자인 냥 느껴지게 했다.

 “컹컹. 저, 주인님의 명령을 받고 이것을 전하러 왔습니다.”

 눈앞의 남자는 연금술사인 주인여자가 가르쳐준 감독관일 터였다. 작업장의 실질적인 주인은 남자였지만 협회의 규칙상으론 연금술사인 자신의 급이 더 높다고 했다. 무서워 보이는 남자를 보면서 애써 위축되지 않으려 했다.

 “좋아. 카를렌 씨가 이렇게 말했다는 거지? 그렇다면 오늘부터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 봐야겠군. 추가 작업을 또 해야 할 테니까.”

 작업장의 감독관 남자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의 어깨 너머 작업장 안에선 화로의 불빛이 안쪽을 붉게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여물어지지 못한 셰퍼드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비명 소리에 깜짝 놀라서 깽깽거릴 뻔 했지만 주둥이를 꽉 닫았다. 감독관 남자는 나한테 줄 것이 있다면서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작업장의 한쪽에서는 이제 갓 사람들의 규칙을 배울법한 어린 셰퍼드 몇이 바닥에 눕혀진 채 걷어차이고 있었다.

 “이걸 가지고 가라. 카를렌씨에게 주면 그녀가 규격에 대해서 따져볼 거야.”

 남자는 작업장 안쪽 작은 사무실에서 조그마한 나무 상자에 넣어진 무언가를 주었다. 열어서 확인하겠다는 생각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았다. 셰퍼드의 툭 튀어나온 앞발로 조심스럽게 코트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솟아있는 귀는 저 밖의 소리에 치우쳐져 있었다.

 켁. 케엑. 깽깽.

 깽깽. 깨게게겡.

 살이 떨린다. 그리고 털이 솟는다. 재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틀림없이 새끼 때 헐값에 넘겨져 팔려왔을 어린 셰퍼드들이 강제로 바닥에 누워져서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내가 몸을 움츠리며 문밖으로 걸어서 나가는 순간에도 그 비명소리는 계속되었다.

 “그 여자라니. 넌 좋은 주인을 만난 거다. 이 겁쟁이 강아지야.”

 등 뒤에서 놀리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더는 생각하지 않고 빨리 작업장 문 너머로 튀어나갔다. 작업장의 공터와 길이 연결된 곳에서 짧게 숨을 내쉬었을 때 뒤쪽의 열려진 문 너머로 점심시간이라는 종소리와 외침이 들렸다.

 죽도록 학대에 시달린다는 셰퍼드의 이야기는 자주 들었다. 비천한 개들끼리 모이면 할 이야기라곤 무서운 사람들에 관한 것뿐이었다. 나는 규칙이 잘 잡혀져 있는 저택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어미 개는 항상 사람들은 그럴 수 있는 존재라고 주의했지만 그걸 실제로 본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마음이 떨려서 진정되지 않았다. 심장이 자꾸 뛰는 느낌에 혀를 주둥이 밖으로 꺼내고 숨을 내숴야 했다. 사람들이 천박하다고 눈총 주는 모습으로 헥헥거렸다.

 넷이나 되었던 어린 셰퍼드들은 별것도 아닌 이유로 맞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어렸을 때부터 길을 들이고 버릇을 잡아놓는다는 이유로 털이 빠지고 멍이 들어 피가 날 때까지 때리는 것이라고 말이다.

 작업장들이 늘어선 거리를 벗어났고 여인이 두 번째로 가리고 했던 라트일로 거리라는 곳으로 접어들었다. 여인은 그곳에 있는 술집에 잠깐 들러서 사람들의 분위기가 어떤지 한번 알아보고 오라고 했다. 처음의 일로 불안한 마음이 가실 수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더 끔찍한 것을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라트일로 거리라는 곳은 도시의 다른 구역하고는 다른 느낌이었다. 도시는 사방이 건물들로 가득했고 그것들 모두는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도저히 10년 전에 끔찍한 재앙이 세상을 파고들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도록 말이다. 그런데 이 거리는 어두웠다.

 내가 지나왔었던 항무지의 다른 곳들보다는 훨씬 상태가 좋았다. 하지만 같은 도시에 있는 곳이라기엔 거리는 습기가 가득했고 회벽은 그을렸으며, 바닥의 보도에는 이끼들이 자라나있었다. 낡고 오래된 거리처럼 보였다.

 한번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셰퍼드보다 귀한 신분인 사람에게 물어야 했다. 내가 주둥이를 벌리자 상대가 된 남자는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그 모욕을 개로서 당연히 받아들였고 덕분에 정확한 술집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체취를 느낀 건 그때였다.

 기억에 새겨진지 얼마 안 되는 신선한 느낌의 체취였다. 잠시 동안 내가 어떤 사람의 체취를 느꼈다는데 의문스러워했다. 그러다 그 사람이 내가 첫 번째의 일로 찾아갔던 작업장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셰퍼드의 감이 사람보다 날카로운 것은 이상할 것 없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먼 곳의 체취를 느꼈다고 해서 따라갈 필요는 없었다. 나한테는 여인이 시킨 술집을 알아보라는 지시가 있었다. 그래도 마음이 따라주지 않아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체취는 내가 굽어있는 발로 서있는 길가에서 한 건물 떨어진 너머에서 났다. 그 체취가 향하고 있는 방향은 내가 사람에게 물어보았던 술집이 있는 장소였다.

 갈등할 필요가 없었다. 체취를 따르며 동시에 주인 여자가 시켰던 대로 술집을 찾아가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갑작스럽게 셰퍼드의 감각이 움직여 특별한 냄새를 맡게 되었다는 건 꺼림칙했지만.

 술집이 시야에 잡혔다. 셰퍼드는 사람처럼 잘 볼 수 있었지만 그 대신 색을 보는 감각이 희미했다. 셰퍼드의 다른 반쪽 색맹인 개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이었다. 때지고 붉은 간판은 내 눈에는 희미하게 보였으므로 사람들의 관점에서라면 그것이 짙으리라는 걸 알았다.

 체취의 주인이 막 다른 골목에서 튀어나와 술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서 뒷모습을 보고 분명한 냄새를 확인하니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작업장을 빠져나갈 때 뒤에서 <겁쟁이 강아지>라 외쳤던 직인이었다.

 술집의 정문이 있는 길은 좁았고 양쪽의 건물들은 높았으므로 대낮인데도 길가엔 그림자가 강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술집 근처에 놓여진 나무통들을 잠시 보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기로 했다.

 문이 있는 정면의 양쪽에는 나무틀로 짜여진 채광창이 있었지만 오래된 먼지때로 뒤덮여 안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감히 세퍼드가 혼자 술집을 찾았다는 대 짜증내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약간 긴장했고 손때 묻은 황동 문을 열었다.

 뭐야?

 냄새를 맡았다는 것도 아니었고, 소리를 들었다는 것도 아니었고, 보았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것들이 모두 합쳐져서 사람들의 냉랭한 기분을 알려주었다. 오래되 시커멓게 변해버린 술집의 안에서 나는 사람들 대부분의 시선을 받고 말았다.

 셰퍼드는 노예로 쓰이며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사람들은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어야 할 자리였다. 그 자리에 불청객처럼 끼어들고 말았다. 몇몇은 금방 술잔으로 관심을 옮겼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네 녀석은 뭐냐?”

 이 술집의 주인인 듯한 나이든 여자가 다가와서 노려보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귀를 숙이고 조금 깽깽거리면서 연금술사인 주인여자가 보내서 왔다고 말했다.

 주인 여자는 명령하면서 술집의 분위기를 알아보라고 했지만 나는 불행히도 제대로 한 게 없었다. 그렇게 되고 말았다고 생각했다. 술집 주인은 <그 꼬맹이 같은 계집에?>라며 코웃음 쳤다. 술집의 분위기는 내가 들어오자마자 시선이 쏠리며 바뀌지 않았던가.

 술집 주인인 주름살 진 여자를 부르는 손짓을 발견한 것은 그때였다. 주인은 빈 식탁에 앉아있는 내 옆에 있었다. 주인의 반듯하게 손질되지 못한 옷가지 너머로 멀리 끝자리의 식탁에서 손짓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보라색 스카프의 감사관과 책임자 그리고 한명의 남자가 내가 체취를 느꼈었던 작업장의 직인과 같이 있었다. 내가 그들을 발견했을 때 그들도 그 사실을 알아챘다. 책임자는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가 대놓고 말했다.

 “주인 잠깐 실례 좀 하겠소.”

 한 테이블에 앉자있던 네 사람 모두가 권총을 뽑아들었다.

 감각이 그렇게나 빠르게 반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날 잡아채려는 여주인을 재빨리 피하여 식탁위로 올라섰다. 등 뒤의 정문으로 달려 도망치려 했으나 저주스럽게도 그쪽 식탁에도 책임자의 사람들이 있었다.

 당황했고 주둥이를 벌렸고 그 짧은 순간에도 거세게 헥헥거렸다.

 사람들이 많은 술집에서는 함부로 권총을 쏘지 못할 터였다. 술집의 다른 손님들은 그런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구경만하고 있었다. 나는 감사관과 다른 다섯 명의 사람들 모두가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다는 사실을 보았다.

 토끼몰이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여주인까지 합세해서 식탁위의 날 빙 둘러 포위하려고 자리를 잡았다. 여주인이 부엌칼을 꺼내는 것을 보았다. 나는 예전 저택에서 몇 번 그런 사냥에 참여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사냥감은 예외 없이 빠져나가지 못했다.

 도망쳐야 했다. 술집의 한켠 샛문을 발견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처럼 느껴졌다. 날카로운 칼날에 코트의 옷깃이 스쳤지만 어떻게든 뛰어들어 벗어날 수 있었다. 문을 박차며 나아가자 눈앞에 술집의 뒷공터로 이어지는 길이 보였다.

 술집 뒤 공터에는 마차가 있었고 그 마차를 지키고 있는 마부와 검은 가죽코트의 남자가 있다는 걸 안 것은 그 다음의 일이었다. 내 뒤에서 쏘라는 소리가 들렸다. 마차를 지키던 두 사람이 총과 칼을 꺼냈다.

 나는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마차의 짐칸 위로 뛰어들었고 그러다 뒷발이 걸려 짐칸 안에 처박히고 말았다. 그 바람에 물품을 덮고 있던 방수포들이 벗겨지면서 난 온갖 종류의 금속조각들과 나사들 사이로 틀어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