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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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 Market.
2.기만. (3)
뭘 생각해야 할까?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소 같이 커다란 짐승을 잡을 때 쓰는 도축용 망치로 얻어맞기라도 한 듯이 머리가 멍했다.
주둥이 끝이 검은 셰퍼드는 시꺼먼 주둥이에서 누런 이빨들을 꺼내놓고도 잠시 어찌하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는 걸 그렇게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게 참 이상했다.
오랫동안 육중한 돌덩이처럼 찍어 누르던 본능을 무시하고 사람에 대한 살 떨림을 느꼈다. 사람들은 셰퍼드를 이용했고 적어도 방금 전까지 난 두 번씩이나 가마솥으로 끌려들어가 삶아지는 셰퍼드 꼴이 되어버렸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차갑게 물 한통이라도 뒤집어 쓴 것 같았다.
여자가 살수 있다고 했다. 이제 여자의 개목걸이를 차주기만 한다면, 나는 세 번이나 주인을 바꾸는 것이 될 테고 인간들이 흔히 침을 뱉으며 말하는 줏대 없는 개처럼 살아갈 수 있었다.
“넌, 흥미 있어. 뭐랄까. 조금 어수룩하기도 하면서 제 생각을 내려고 하는 게 재미있거든. 내 마음에 들어. 충분히.”
여자는 회유의 말을 건네지 않은 것이었다. 전혀 가식적이라고 생각도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상품에 대한 값어치를 중얼거린 것이다. 공짜로 거저 얻는 상품에, 대화를 듣는 대상이 그 상품이라는 건 전혀 계산에 넣어지지 않은 목소리였다.
선택은 두 가지였다. 죽든지 개들답게 겁먹어 오줌을 지리며 살려달라고 꼬리를 흔들던지. 선택은 달콤한 셰퍼드 파이가 되는 것에서 하나 더 늘어났다.
총구는 여전히 내 머리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갈색의 털들을 파고들어 살결로까지 전해지는 감촉을 나는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음의 느낌이다. 사람들은 흔하고 뻔한 말이라고 했지만 나는 달리 표현할만한 좋은 단어를 알지 못했다.
얼마나 시간이 재빨리 흘러갔는지 이제는 두 달째나 되는 옛일을 떠올렸다.
저택이 약탈자들의 손에 완전히 끝장나기직전에 어미 개는 감히 셰퍼드들은 손댈 수 없는 사람의 무기인 총을 들고선 달려 나갔다. 어차피 가망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끝까지 충성해 스스로 목숨을 버린 것이다.
난 먼지와 연기가 사방에서 밀려와 어미 개의 모습도 냄새조차도 지워버리기 전에 한 번의 시선을 받았다. 사람의 부탁처럼 아름답게 꾸며진 모습은 없었다. 단지 개답게 천박하고 간결한 눈빛으로 새끼인 나는 죽지 말라고 했다.
내가 가문에 충성하기 위해 뛰쳐나가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어미 개의 말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두려웠다. 갑자기 생명이 끝날 거란 사실에 완전히 겁을 먹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살고 싶어서 꼼짝없이 가만히 있었다.
“네가 드디어 내 셰퍼드가 되기로 마음을 정한 모양이구나.”
난 즉시 여인의 총구에게서 뒤로 물러났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른 속도로 둥그렇게 말려진 은 버클 달린 목줄을 풀었다. 그리고 바로 내 목에 걸었다. 자주색 코트와 붉은 리본을 맨 여인은 흥미 있다는 시선으로 내 마음을 훑어보려고 했다.
앉혀졌던 의자를 치우고 여인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꼬리를 흔들었다. 오줌까지 지렸다면 더 불쌍하고 처량하고, 멍청하게 보였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타올랐던 불기를 간직하고 있는 심장은 그런 비굴한 행동까진 하지 말라고 다그쳤다.
“짖어봐.”
꺼내놓았던 권총을 다시 집어넣을지 말지 고민하면서 붉은 리본을 맨 여인은 신중하게 지시 내렸다. 마지막으로 날 비참하게 만들어서 정말 좋은 셰퍼드로 쓸 수 있을지를 따져 물은 것이었다.
“멍멍.”
한참을 마음속으로 갈등하고 고민한 뒤에 명령에 따라 주인님을 위해 주둥이로 짖었다. 살고 싶었다. 본능으로 따라야 하는 사람들에게 내던져 졌다는 살 떨리는 기분보다도 죽기 싫다는 심정이 더욱 강했다.
난 모든 개의 종류란 더럽고 비참한 것뿐이라는 사람들의 말대로 비굴하게 굴었다.
“좋았어.”
멍멍 짖은 울음소리가 몇 번이고 들리지 않게 허공에서 메아리쳤을 즘의 시간이었다. 자주색 코트의 여자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내가 늘 보았던 조소 깃든 표정을 지우지는 않았지만 여자의 얼굴 속에는 진짜로 즐거운 기쁨 같은 게 들어있었다.
“너 앞으로 날 잘 따를 수 있겠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자포자기 하고 새로운 주인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더 이상 저항할만한 기운은 없었다. 지금은 당연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의 여자가 가볍게 턱짓했다. 옷이 없었다. 아무것도 입지 않고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사람들에겐 받아들일 수 없는 짓이었지만 난 오히려 털들이 가득달린 셰퍼드였다. 아무것도 없이 벗고 검은색과 갈색의 털들을 내보이는 것이 오히려 더욱 편했다.
자주색 코트의 여자는 마침내 권총을 안전하게 코트의 안주머니 속으로 쑤셔 넣었다. 멀리 응접실의 끝에 오래된 나무문이 있었다.
나는 그녀를 뒤따라 나섰다. 셰퍼드의 굽고 휘어진 발끝으로 말이다. 가벼운 샌들조차도 신지 않았기에 검고 부드러운 발바닥의 패드가 오래된 바닥의 나무판자와 닿았다.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았다는 안도감으로 여인을 따라 나무문의 바로 뒤까지 갔다. 자주색 코트의 여자가 문을 열었다. 내가 굽은 발로 걸은 짧은 거리만큼이나 마음은 금세 바뀌어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밖으로 따라나서기 전에 뒤를 돌아봤다가 그동안 나를 살펴주었던 암컷 셰퍼드의 눈빛과 마주쳤다.
나를 증오하고 있었다. 눈동자 한가득 시기심이 묻어있었다. 사람처럼 돌봄 받고 대접받아 놓고서는 어떻게 그렇게 대들 수 있었냐는 물음이었다.
그냥 본능에 몸을 맡기고 충성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머리를 채우고 있었다. 살수 있다는 생각이 사람에게 버려졌다는 분노를 밀어낸 뒤였다. 그걸 다시 느껴야 했다.
대부분의 개들은 버려지면 끝이었지 다시 붙잡을 줄 같은 건 없었다. 사람에게 꼬리를 흔드는 걸 부끄러워 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그럴 기회도 없이 가마솥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암컷 셰퍼드는 인간에 대한 분노조차도 사치라고 했다.
나무문 밖의 광경은 사뭇 달랐다. 뒤에서 노려보는 암컷 셰퍼드만큼이나 내 심정을 엉망이로 만드는 갈색의 벽채였다. 더 이상했던 것은 내가 따라야 하는 여자가 환한 햇빛과 공기가 있는 바깥을 무시하고 오히려 복도의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는 사실이었다.
“여기가 내가 쓰는 방이야. 그리고 너에게 분명히 해둘 것이 있지.”
방은 두 층 위에 있었다. 색깔은 달랐지만 여자처럼 전체적으로 묵직해 보이는 코트를 입은 사람들이 몇 보였다. 여자는 그들에게 가볍게 인사했고 딱 내가 누워있던 방이 있을 법한 위치의 문을 열었다. 하늘빛에 깨끗하게 꾸며진 방 두 칸이 있었다. 여인은 그것이 자기 것이라고 했다.
“앉아봐.”
새롭게 얻은 주인이 방문을 잠그고는 짧게 명령했다. 그리고는 잠깐 나갔다가 이런저런 옷가지들을 한가득 가지고 왔다. 나는 여자에게 충성하겠다고 맹세했지만 날 이용하기 위해 제대로 옷을 차려입으라고 했던 감사관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막지 못했다.
가죽 샌들에 옷에, 이미 차고 있는 목걸이까지 하나도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다만 틀려진 것이 있다면 그 옷가지들을 입으라고 말하고 있는 주인의 태도였다. 자주색 코트의 여자는 어렸을 때 했던 인형놀이를 다시 하는 것처럼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강제로 옷을 입었다. 샌들에, 가벼운 셔츠에 푸른색 코트를 입었다. 그렇지만 이용당하고 죽여지기 위해 감사관이 차려주었던 복장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건 확실히 웃음을 지우지 않는 여자의 표정 때문이었다.
“내가 너 같은 셰퍼드가 말을 듣기를 바라면서 내 방까지 데려온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 합리적인 거래를 하기 위함이지.”
자주색 코트의 여자는 날 방안의 탁자로 끌어왔다. 내게 의자를 밀어서 앉도록 지시한 다음에 자신도 똑같이 했다. 그리고는 거래라는 말을 하면서 눈짓을 보냈다. 내 마음을 알아보고 싶다는 뜻이었다. 보통 천박한 셰퍼드에게 사람은 보내지 않을 눈빛이었다.
“넌 살고 싶겠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간단한 거야. 나는 이제 내 개에게 일을 시킬 거고 넌 그 일을 해나가는 대가로 날 주인으로 섬기고 셰퍼드로 살 권리를 얻는 거야. 주인 없이 버려지는 셰퍼드들이 결국에는 저녁 식사용 파이가 돼 버린다는 것은 너도 잘 알고 있겠지? 그러니까 나를 섬겨. 내 말에 잘 따르며 일해. 그렇게 해서 넌 살 수 있는 거야.”
보통 때는 세상사에 비꼬는 표정만 지었던 여자가 아까부터 기분좋아하다가 지금은 열정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사람들이 셰퍼드들을 일방적으로 부려먹는 장황한 이유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친절하게 그 거래를 설명해 주는 사람은 눈앞의 여인밖에는 없는 듯 했다.
“그럼 이제부터 네게 뭘 시켜먹을 수 있는지 찬찬히 생각해 보도록 하자.”
붉은 리본에 갈색 머리를 한 여자가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난 그 속에서 오랫동안 원하던 강아지를 가져 즐거운 여자 아이의 기쁨을 느꼈다. 입고 있는 코트와 방안의 냄새를 그제야 느꼈다. 여자가 무엇을 바라며 지내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둘 모두는 아름다운 냄새로 치장되어 있었다.
난 잡종 개인 셰퍼드였고 그건 앞으로도 달라질 일이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가 처한 주둥이 앞의 상황은 짐작할 수 없이 불안하게 느껴졌다. 여인은 주인으로 섬겨야 하는 인간중에서는 그나마 나빠 보이지 않았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