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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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dien say : 이미 연재 중이고, 지금도 이야기를 써나가고 있는 Overheating입니다. 전에 이 이야기를 쓰기 위해 질문을 드렸었고 덕분에 좋은 자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야기를 자문하고 오랫동안 다녔던 클럽에서 활동하지 않는 것은 좋지 않은 듯 싶습니다. 이번에 회지에 참여한 계기로 고스트 라이터에서도 연재를 시작합니다.
Overheating
1.배정일.
“이번에 새로 배정받고 온 건가?”
눈앞의 남자에게 코트의 안주머니에서 명령서를 꺼내 보여주었다.
“보아하니 옳게 온 것 같군.”
남자는 끈을 풀고 종이를 펼쳤다. 몇 번이나 되쓰여진 구깃구깃한 종이에는 붉은 인장이 찍혀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해당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내 이름말이다.
“좋아. 그럼 이쪽으로 따라와.”
그가 나를 양쪽 벽으로 막혀있는 통로로 이끌었다. 군데군데 붉게 녹슨 철제 기둥들은 양 벽체와 구석들을 지탱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익숙해져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이곳이 지하임을 실감했다.
본 통로의 천장을 따라 노란 불빛을 내는 전등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고 사람들은 부산하게 오고가고 있었다. 천장을 지나는 전선 중 한 가닥이 휘어져 왼쪽 벽에 난 작은 통로를 향해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그를 따라서 가야할 곳이었다.
본 통로에서 휘어져 나간 구석진 작은 길은 좁았고 부족한 공간으로 천장의 빛이 반사되어 겹쳐지면서 어지러운 밝기를 만들어냈다. 작은 통로는 길지 않고 짧았고 끝에는 밸브를 돌려야 열 수 있는 문이 있었다. 문은 닫혀있지 않았다.
“좋아. 이름은 엘렌 샤르트이고 배정받고 지금 이곳에 왔군. 할 일이 뭔지는 잘 알고 있겠지?”
“철도 기착지 경비 담당이요.”
나는 그 일을 받았다. 올해로 18살이 되었고 생일이 지난 지는 벌써 2주일이나 넘었다. 치러야하는 절차 때문에 약간 시간이 걸렸지만 며칠 전에는 해야 할 일의 명령서를 받게 되었다. 앞으로 해야 할 내 직업 말이다.
“그럼 뭘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철문 안까지 나를 안내 했던 남자가 다시 몸을 돌렸다. 방안은 갈색 양가죽 소파 몇이 어지러이 놓여 있었고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캐비닛 몇 개가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방안에는 들어온 것 말고도 다른 세 개의 문이 있었고 모두 밸브가 달려 잠겨 있었다. 남자는 오른쪽으로 향해 그 문의 밸브를 돌려 열었다. 끼이익 하며 쇠문이 열리자 많은 수의 화물들이 쌓여 있는 보관실이 눈에 띄었다.
“여기인가요?”
내가 물었다. 배정받는다는 건 처음으로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었고, 이곳에서 일을 시작한다는 건 적어도 몇 년은 바뀌지 않거나 평생 가게 될 직업을 가진다는 뜻이었다. 명령서를 받았을 때부터 가게 될 일에 대해 되풀이해 생각했지만 그래도 다시 물어야 했다.
“아니야. 이곳은 아니고, 화물창 너머 통로.”
남자가 가리킨 곳은 줄지어져 쌓여진 방수포 덮인 물건 더미들의 너머 닫혀져 있는 널따란 문이었다. 넓은 철판으로 이루어진 문은 자물쇠가 채워져 닫혀 있었고 문의 왼쪽 짝으론 사람이 지나갈만한 작은 쪽문이 달려 있었다.
“저쪽에 뭔가 있어요?”
남자는 말없이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는 줄지어 늘어선 화물들의 더미를 지났다. 바닥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레일이 깔려 있었고 화물창의 배송원들이 널찍한 수레를 밀며 화물들을 옮겼다. 멀리 구석진 곳과 출구들에는 가죽 셔츠 위로 벨트를 맨 경비원들이 무심한 눈길로 주변을 지켜보고 있었다.
“예비 철로.”
남자가 대답해 준 것은 다 도착했을 때에서였다. 쪽문은 쇠고리가 달린 빗장으로 닫혀 있었고 남자는 빗장을 젖혔다. 사람 하나 크기의 좁은 문 너머로 노란빛 전구들이 띄엄띄엄 달린 희미한 통로가 보였다.
“넌 여기서 시간이 시작될 때 들어와서 끝날 때까지 지키고 있으면 되는 거야. 예비 철로는 쓰지 않는 곳이니까 넌 저 안에서 지키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이유 없이 들어가는 걸 막으면 돼.”
별로 중요한 임무는 아니었다. 갑자기 김이 팍 식는 느낌이 들었다. 대피소에서는 18살이 되면 배정식을 치르고 직업을 받아 일을 시작해야 했다. 직업을 가진다는 건 중요했고 진짜 어른 대접을 받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키는 직업의 의미만큼이나 중요한 곳이 아니었다. 저 너머는 그냥 빈 통로가 아닌가.
“전에 이곳에서 일을 하시던 분은 어떻게 됐어요?”
물음을 던졌다. 위도 0도에 이르는 지점까지 마지막으로 눈이 덮인 이후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부족한 물자와 자원을 가지고 생활해야 했다. 해야 하는 일은 늘 정해져 있었고 학교에서는 모두가 빠짐없이 일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자리가 빈다는 건 어떤 특별한 일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죽었어. 예야. 여기를 지키고 있던 사람은 나보다 나이든 여자였는데 말이다 밤새도록 이 입구를 지키고 서 있다가 쓰러져 죽었단다. 나이가 차면 사람은 원래 그렇게 죽는 법이거든.”
이미 얼음으로 덮인 지상에 또 다시 눈이 내렸다는 말만큼이나 무신경한 소리였다. 남자의 표정도 그런 일은 흔해서 상관없다는 것으로 보였다. 표정이 어그러졌지만 바로 옆의 남자를 보면서 참았다. 죽은 사람의 일을 떠맡다니. 직업을 가진 시작부터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
“6시에 다시 돌아올 테니까 그때까지 지키고 있으면서 누가 들어오려 그러거나 뭔가 이상한 게 있으면 말하도록 해.”
철도 기착지의 경비 책임자는 나를 쪽문 안으로 떠밀었고 자신은 여전히 안쪽에 섰다. 가볍게 손짓해 나를 비키라고 하더니 문손잡이를 잡고선 닫을 준비를 했다.
“참. 내가 경비대가 지켜야 할 기본 사항은 말해줬었나?”
문을 닫고 되돌아가려다가 다시 몸을 돌리곤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요. 듣지 못했어요.”
내가 대답했다. 눈앞의 경비 책임자는 내가 다 도착하자마자 떠밀듯이 통로 안으로 밀어넣었지만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집어달라는 듯한 간단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게 나 같은 어린 녀석에게는 이런 쉬운 일이 적당하다는 모습이었다.
“첫째, 주의를 똑바로 차리고 주변을 살펴야 해. 두 번째. 이상한 사람이 보이면 일단 가서 멈춰 새워야 해. 세 번째, 안 좋은 게 있다 싶으면 바로 다른 경비원들에게 알려. 네 번째, 마지막으로 딴생각하면서 놀고 있지 마.”
경비 책임자는 딱딱한 목소리로 가르쳐주었다. 꼭 내가 의문스러워서 그 네 게라도 분명히 지키기를 바라는 어투 같았다.
“이번엔 네가 한번 말해봐.”
“주의를 똑바로 차리고, 사람을 보면 확인하고, 의심스러우면 바로 알리고, 딴생각하지 말고요.”
“좋아. 잘 알고 있네.”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경비 책임자는 자기 쪽에서 손잡이를 당겨 쪽문을 닫았다. 얇은 철판으로 만들어진 문은 닫히면서 소리를 냈고 그건 전구불만 번쩍이는 통로에 혼자 버려지는 소리였다.
오른쪽 어깨가 무겁게 느껴졌다. 긴 가죽 끈의 닿는 부분이 양가죽 코트를 넘어 직접 파고드는 것처럼 아팠다. 철도 기착지의 경비원 일을 배정받고 이곳에 올 때부터 줄 곳 어깨에 총을 메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끈을 벗어서 단발총을 비스듬히 잡아보았다. 오래되고 때 묻은 시커먼 나무 받침이 손에 잡혔고 뒤이어 무게가 양 손을 지그시 눌렀다. 닫힌 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바로 앞부터 시작되는 통로를 바라보니 멀리에 전등하나 없이 검게 보이는 끝이 보였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겁게 두 손을 누르는 낡은 총을 비스듬히 들고서 아무도 지나갈 것 같지 않은 어둑어둑한 통로를 지키는 것이 내 일이라니. 쉴 새 없이 기계를 만져야 하는 공장이나 일하는 내내 좁은 갱도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 탄광 일보다는 나았지만 그게 마음을 나긋하게 해주지는 않았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속에서 계속 빛없는 끝을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따듯했던 땅에 첫눈이 내린 건 지금으로부터 30년 쯤 전의 일이었다. 아마 그 날은 7월 언제쯤이었을 거였다.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내가 알고 지내던 어른들이 말해주었다. 그 어른들도 30년이 지나는 동안 정확한 날자 같은 건 잊어버렸지만.
세상이 얼어붙었다. 그전에도 세상은 양극으로 뻗어 나온 빙하들 사이의 작은 고리 같다고 했지만 이제는 완전히 눈 속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모든 도시들은 얼어붙었고 적도의 마지막 부분까지도 빙하로 덮여버렸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람들은 거의 죽었고 지하의 안전한 곳으로 숨어들 수 있었던 사람들만이 살아남았다. 그 다음에 내가 태어났고 어른들은 강철 프레임과 콘크리트로 지탱되는 서늘한 지하공간에서 살게 된 이유를 말해주었다.
눈 덮인 땅속의 지하가 입김이 날 정도로 춥지 않은 건 끊임없이 석탄불을 때 대우기 때문이었다. 눈 속에 파묻힌 지하의 대피소에서는 모든 물자가 부족했고 모든 사람들은 빠짐없이 일해야 했다. 나도 지금 그렇게 배정받았다.
“정말 계속 이렇게 어둑한 구석이나 지키고 있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
공장일 같이 힘든 것도 아니었고 대피소의 난방시설을 관리하는 것처럼 허드렛일도 아니었다. 적어도 질서를 지키는 경비원 일을 배정받았다는 걸 다행스럽게 여겼었다. 갓 배정 받은 경비원에게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사소한 일을 시킬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천장으로 간간히 이어진 백열전등들 너머 복도의 끝에 빛없는 넓은 공간이 있었다. 대충 기본 사항만 가르쳐 주고 관심 없이 떠난 책임자의 말대로라면 너머는 대피소와 다른 곳을 잇는 철로의 예비 구간이었다. 소리도 빛도 없이 컴컴한 복도 너머를 계속 바라보았다.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글 간격을 좀 띄었으면 하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