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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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22
긱동병사GM -전선-
“태규! 대형을 전환한다. 네가 선두에 서라. 내가 엄호하겠다.”
진이 모는 GM은 추진제를 다 써버린 탓에 뒷걸음질 하며 100mm 머신건을 여기저기 갈겼다. 명중을 염두에 두고 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탄환은 난잡하게 사방에 흩어졌다. 그럼에도 돔은 좀처럼 진을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진을 둘러 싼 채 대형을 유지 하며 서서히 거리를 좁혀왔다. 훌륭한 호흡이었다. 위기를 느낀 진은 무기 전환 스위치를 올렸다. GM은 조종사의 명령에 따라 100mm머신건을 다급히 버리고 등에 차고있던 빔 샤벨을 꺼내 들었다. 손에 든 흰 원통의 끝부분에서는 고열의 빛 다발이 뿜어져 나와 형태를 고정시켰다. 하지만 적의 움직임은 눈 속임 이었다. 진짜 공격은 뒤에서 들어왔다. 시뻘겋게 달궈진 긴 곤봉 모양의 히트 샤벨을 들이밀며 돔이 쇄도해 왔다. 봉은 정확히 GM의 옆구리에 닿았다. 머리를 뒤흔드는 충격을 견디며 진은 입을 꽉 깨물었다.
“잡았다!”
히트 샤벨의 끝은 팔이 부서진 GM의 옆구리를 뚫고 들어가 콕피트를 관통하며 조종사를 단숨에 산화 시킬 기세였다. 루소는 경박하게 웃으며 속력을 더욱더욱 높였을 때 열원 감지 경보가 울었다. 고열의 빛 줄기가 뻗어와 돔의 상반신을 가로로 관통했다. 빔의 파괴력에 돔의 풍만한 몸체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함께 파괴된 양 팔의 파편이 장갑에 부딪치며 지면 위로 흩어졌다. 출력을 잃은 히트 샤벨은 허공에서 한바퀴 맴돌다 산허리에 꽂혔다. 콕핏에는 단숨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단 일격에 돔은 모든 기능을 상실했다.
“루소!”
로건이 소리쳤다. 루소의 MS는 힘없이 늘어진 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과연 죽음의 날개다.”
티일러는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 땀을 의식하며 빔이 날아왔던 방향을 향해 대응사격을 개시했다. 360mm 탄이 사정없이 날아가 산허리를 깎아내기 시작했다. 산 허리 너머로 움직이는 그림자가 언뜻 보인 듯 했다.
“죽을뻔했다.”
진은 스쳐 지나가는 태규의 RGM-79G를 쳐다보며 식은땀으로 뒤범벅이 된 이마를 장갑 낀 손으로 훔쳤다.
“저 스나이퍼 커스텀과의 연락은?”
“없습니다.”
무전에서 흘러나오는 린스의 목소리에는 귀에 거슬리는 잡음이 섞여있었다.
“입자 농도가 짙은 탓인가?”
“알 수 없습니다.”
“대장. MS 하나가 급속 접근 중. 귀에 익은 소리야.”
다이스케가 끼어 들었다. 판독을 마친 앤드류는 급히 무선 스위치를 올렸다.
“대장님. 검은 유령 입니다.”
진은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지원 부대는?”
“도착까지 15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 됩니다.”
린스가 대답했다. 진은 조용히 웃었다.
“그때 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진 않아.”
“후퇴 명령?”
타일러는 믿을 수 없었다.
“그렇다. 전선을 뒤로 물린다. 이건 사령부의 명령이다. 내가 귀관들의 후퇴를 엄호하겠다.”
“예상했던 대로군요.”
이 일을 빌미로 연방군은 공세를 시작했다. 적의 공세에 맞춰 현재의 아군의 전력으로는 전선을 유지하기 힘들 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전선을 축소시켜 전력을 집중시킨다. 그 편이 좀더 승산이 높다고 지휘부는 판단한 것이겠지.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승산이 없는 전투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었다. 타일러는 로건이 루소를 회수하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순순히 방향을 돌렸다. 한대가 줄어든 황색 돌풍 대는 열핵 제트엔진의 추진을 이용해 빠르게 전선에서 이탈해갔다.
케네스는 RGM-79G가 접근해 오는 것을 알았다. 검은 구프 커스텀은 방패를 든 왼손을 치켜 들었다. 방패에 달린 75mm게틀링 건을 발사 했다. RGM-79G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 방패로 몸을 가리고는 회피 기동에 들어갔다. 몇 발의 75mm탄이 명중하자 비틀거리는 모습이 케네스의 눈에 들어왔다.
삐
열원 감지 센서가 울었다. 북동 방향의 산등성이 쪽이다. 케네스는 총신의 방향을 돌려 대파된 체 우두커니 서있는 돔을 조준했다. 정확히 스커트 부분의 정 중앙. 핵융합로가 있는 부분을 조준해 발사했다. 핵융합로의 외벽을 감싸고 있던 엄중한 밀폐 장갑이 갈갈이 찢어지고 그 속에 담겨있던 거대한 힘이 한꺼번에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땅을 뒤흔들고 눈을 멀어버릴 듯한 빛과 충격의 분출이었다. 추하게 서있던 돔의 몸체는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다. 그 열기로 빔의 탄도가 교묘히 뒤틀려 검은 구프 커스텀의 발치에 꽂혔다. 모래먼지가 일어나고 땅이 움푹 파이며 고열로 인한 유리 결정이 착탄 지점에 달라붙었다.
“과연 죽음의 날개. 훌륭한 솜씨다. 하지만!”
케네스는 출력을 단번에 상승시켜 산등성이를 향해 높이 뛰어올랐다.
“접근 전에서는 어떨까?”
히트 소드의 긴 칼날이 미쳐 자리를 옮기지 못한 RGM-79G의 몸통을 향해 쇄도 했다.
“말도 안돼!”
카르멘은 소리 지르듯 튀어나오려던 목소리를 간신히 억누르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MS에 탑재된 핵융합로를 일부러 폭발 시켜 빔의 궤도를 휘게 만들다니 유럽 전선에서 악명을 떨치던 공포의 에이스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고 할까. 그의 움직임에는 마치 모두 계산했다는 듯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하지만 감탄도 잠시 시끄럽게 울어대는 접근 경보가 카르멘의 주의를 돌렸다. 검은 유령은 벌써 코 앞에 까지 다가와 있었다. 카르멘은 그에 맞서 방패를 내밀었다. 뜨겁게 달궈진 히트 소드의 칼날이 방패에 깊숙이 박혔다. RGM-79SC는 방패를 분리하며 검은 구프 커스텀과 거리를 두려 했다. 검은 유령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왼손의 35mm 3열 머신 건이 차례로 불을 뿜었다. 카르멘은 치명타를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조종간을 움직였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더라면 몸이 튕겨져 나갔을 만한 거센 충격이 엄습해 왔고 그녀는 그 와중에 히트 소드가 다시 허공을 가르는 모습을 보았다.
지온의 검은 유령은 그의 존재를 완전히 잊은 듯 했다. 태규는 신중히 조준선을 맞췄고 무릎 쏴 자세를 취한 RGM-79G는 난폭하리 만치 거대한 칼을 휘두르는 외눈 거인을 향해 100mm탄을 쏟아 부었다. 100mm 머신 건은 빔 라이플 같은 일격필살을 위한 섬세한 물건이 아니었다. 근거리의 적을 강력한 화력으로 제압하는 병기이기 때문에 이 거리에서는 치명적인 타격을 기대할 수 없었다. 거리는 멀었고 위기에 처한 RGM-79SC의 조종사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적의 주의를 이쪽으로 끌어야만 했다. 붉게 빛나는 모노 아이가 자신을 노려보았을 때, 태규는 성공을 확신했다. 검은 유령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RGM-79SC를 버려두고 75mm 머신 건을 태규를 향해 겨누었다. 짧은 연사. 태규는 회피기동에 들어갔다. RGM-79G는 방패로 몸을 가린 채 지그재그로 뛰었다. 방패에 명중한 총탄의 충격에 태규의 고개가 흔들거렸다. 혀를 깨물지 않게 위해 이빨을 꼭 깨물었다.
패턴이다. 검은 유령은 75mm포로 견제를 한 뒤 단숨에 도약해 한칼에 목표를 히트 소드로 베어버린다. 태규는 접근 전 무기 전환 스위치에 손가락을 올려두고 기다렸다. 검은 유령이 도약해 오면 그레네이드 탄으로 허점을 유도한 뒤 단숨에 승부를 볼 작정이었다. 검은 구프 커스텀은 단숨에 육박해 왔다. RGM-79G가 던진 그레네이드 탄이 공중에서 폭발했다.
검은 유령은 폭발에 잠시 비틀거렸다. 태규는 침착하게 무기를 전환해 공격을 계속했다. RGM-79G는 100mm 머신 건을 버리고 빔 샤벨을 꺼내 들었다. 태규가 승리를 확신한 순간이었다. 검은 구프 커스텀이 오른 손을 뻗었다. 손목에서 케이블이 튀어나와 RGM-79G의 특징적인 고글 모양의 모노 센서에 달라 붙었다. 강한 전류가 흐르며 RGM-79G는 경련을 일으켰다. 모든 전자기기가 타버렸다. 계기판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폭발해 파편을 날렸다. 전기가 물건을 태우는 냄새가 태규의 코를 찔렀다. 콕핏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절전장치가 작동하자 침묵이 찾아왔다.
“2호기 침묵. 대장님!”
떨리는 린스의 목소리는 간절한 애원처럼 들렸다.
“케니스!”
진의 외침이 콕핏을 넘어 상대방에게 전해 질리 전무하지만 어쨌든 그는 소리치며 빔 샤벨을 내질렀다. 무력하게 무릎을 꿇고 있는 RGM-79G의 머리 옆으로 고열의 미노프스키 빔 다발이 스쳐갔다. 검은 구프 커스텀은 방패로 막아보았지만 빔 샤벨의 끝이 게틀링의 탄창을 스치자 폭발이 일어나며 75mm 탄환들이 불똥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금속 조각이 부딪히는 메마른 소리가 콕핏 안 까지 전해져 왔다. GM의 표면은 순식간에 검은 탄흔으로 뒤덮였다. 좌측 흡입구가 검은 연기를 토해내며 기침하듯 거친 파열음을 내뱉었다. 냉각계통에 이상이 생긴 탓에 동력계통에도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출력이 불안정해지자 빔 샤벨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 불안하게 흔들렸다.
왼손에 경미한 손상만을 입은 검은 구프 커스텀은 거대한 뿔 같은 스파이크가 돋은 어깨로 GM을 들이 받고는 연속으로 히드 소드를 휘둘렀다. 스파이크는 GM의 몸통 안을 휘저어 놓았다. 진은 콕핏을 감싸고 있는 철골들이 비명을 지르며 휘어지는 것을 느꼈다. 모니터가 폭발하며 파편이 튀었다. 출력계는 최저를 가리켰다. GM은 균형을 잃고 뒤로 주저 앉았다. 진은 휘어진 콕핏 해치 너머로 보이는 검은 구프 커스텀을 노려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잘 다듬은 금색 머리카락. 그 아래에 빛나는 투명한 푸른 눈동자는 긴장이 물결 쳤다. 수염도 돋지 않은 매끈한 턱 선에 맺힌 땀을 장갑 낀 손으로 닦아내고는 다시 한번 스코프를 확인했다. 검은 유령과 맞서고 있던 대장의 MS가 주저 앉았다. 신호였다. 앤드류는 발사 스위치를 눌렀다. 건 탱크의 두 주포가 동시에 불을 뿜었다. 사격은 조준 오차를 수정하며 세 차례에 걸쳐 실시되었다.
“사격 종료. 작전대로 후퇴 합니다.”
엔드류는 보고를 기다리고 있을 린스에게 무선을 보내며 후진 기어를 넣고 무한궤도로 움직이는 MS를 숲 사이로 숨겼다.
포격은 두발째에 검은 구프 커스텀에 명중했다. 구프 커스텀의 머리가 산산조각 나 사방으로 그 파편을 뿌렸고 세발 째는 양 어깨와 함께 상체의 일부에 큰 타격을 입혔다. 구프 커스텀은 비틀 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열려라!”
진은 온 힘을 다해 구부러진 콕핏 해치를 밀어 올렸다. 몸 곳곳에 타박상을 입은 그는 신음소리를 흘리며 무릎 꿇은 검은 구프 커스텀을 쳐다보았다. 유럽전선을 공포로 몰아 넣었던 검은 유령은 머리가 잘리고 양팔이 뜯긴 채 무릎을 꿇었다. 진은 눈시울이 뜨거워 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고통 탓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지원군은 하늘에서 도착했다. 거대한 낙하산을 펼치며 내려온 세대의 Rx-79G는 곧장 주변경계에 들어갔다. 이후 차례차례 구난전차와 의무차량이 낙하했다.
진은 호버 트럭 위에서 오른손을 이마에 짚은 채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구난 전차들이 시끄러운 엔진 음을 내며 지나가자 자욱한 먼지 바람이 일었다.
민아는 카메라를 든 채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진은 조심하지 않으면 MS나 전차에 깔릴지도 모른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린스는 웃었고 태규는 고개를 흔들었다. 엔드류가 돌아오자 호버 트럭은 소란스러워졌다.
“왔구나! 믿어지지 가 않아. 막내가 지온의 에이스를 잡다니!”
다이스케가 호들갑을 떨며 과장된 칭찬을 입 밖으로 쉴새 없이 꺼내자 앤드류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민아는 이 장면을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진은 소란스러움에 휩쓸리지 않고 그대로 고개를 뒤로 넘겼다. 팔다리를 쭉 뻗은 채 보는 하늘은 눈을 땔 수 없는 마력을 품고 있었다.
“교관님?”
낯설지 않는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풍성한 금발이 진의 시야에 쏟아져 내려왔다. 아름다운 파란 눈과 마주치자 묻혀있던 기억이 꿈틀거리며 다시 살아났다.
“카르멘!”
진이 몸을 일으키자 그녀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역시 교관님이셨군요! 움직임이 비슷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진짜일 줄이야!”
진은 놀란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가 교육한 가장 우수한 제자가 눈 앞에 서있었다.
“정말 오래간 만이군! 잘 지내는 모양이네.”
“교관님도요.”
그녀는 웃었다. 진은 멋적은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교관이란 말은 여전히 적응이 안돼.”
진이 교관을 맡았던 것은 고작 4주 정도였다. 그가 배속되었던 부대에서 유일한 생존자였던 진은 재편성 까지 잠깐의 공백 기간 동안 MS조종사들의 양성을 도왔었다. 그 중에서도 카르멘은 제일 뛰어난 기량의 소유자였다.
“이제는 대장님이 되셨군요.”
“전쟁 덕분이지.”
진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가 이상하네요.”
카르멘은 문득 깨달았는지 주위를 돌려보았다. 공기 속에서 전해져 오는 병사들의 웅성거림은 확실히 묘한 긴장감을 띄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설명을 원하는 눈치로 눈빛을 교환할 때 먼지 투성이가 된 빈센트가 끼어들었다.
“구프 커스텀의 콕핏을 연답니다.”
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잠시 후 콕핏이 열린 듯 병사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처참한 몰골로 변한 케네스의 시체를 발견하기라도 한 것일까. 불편한 침묵은 오래도록 계속 되었다. 당연한 듯 다이스케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목까지 차오른 숨을 고른 그는 결정적인 한마디를 내뱉었다.
“없어. 콕핏 안에는 아무도 없어!”
그 한마디에 진의 몸은 튕겨나가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단숨에 달려나갔다. 모여있는 병사들의 무리를 단숨에 헤쳐나갔다. 모두 어안이벙벙한 표정으로 한 점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진이 도달한 그곳은 텅 빈 콕핏과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의 구조대 병사들의 얼굴이었다.
“검은 유령이 진짜 유령이 되어버렸군.”
진은 엉망진창이 된 콕핏을 들여다보며 기가 막힌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것으로 모든 데이터 수집이 완료 되었습니다.”
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이곳, 풀잎으로 철저히 위장된 특수트럭 안에서는 복잡한 기계장비 들이 조용히 돌아가고 있었다. 만족한 얼굴을 한 연구원들의 사이로 트럭의 중앙에 놓여있는 원통형 장비에서 걸어 나오는 남자가 있었다. 검은 슈트로 온몸을 감싸고 눈부신 금발이 눈썹에 까지 흘러내려와 있었다. 그는 어느 상황에서든지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했으나 지금은 미간을 미세하게 좁히고 있었다.
“수고했습니다. 대위.”
긴 은발의 깡마른 중년 초로의 연구원이 히죽 웃으며 다가왔다. 그는 안경을 고쳐 쓰며 오른손에는 자료가 든 디스켓을 흔들어보였다. 그의 이름은 로멜로우, 부루스터 연구팀의 수석 연구원이었다.
“MS가 넘어갔다.”
“걱정하지 마십쇼. 적에게 넘어가서 위험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적은 저 고철을 처분하는데 시간을 낭비하게 되겠죠. 설마 MS에 감정을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요?”
케네스는 이 남자를 때려 눕히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지만 가까스로 억누르는데 성공했다. 그의 심정을 눈치 채기라도 한 듯 눈을 가늘게 뜬 로멜로우는 다시 히죽 웃었다.
“그럴 리가 없겠지요.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기분이 나쁘군.”
케네스는 이 기분 나쁜 사내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말했다. 그의 말투는 냉담하기 까지 했다.
“아마 약물 탓일 겁니다. 조금 지나면 괜찮아 질 겁니다.”
그녀는 매일 이런 기분이란 말인가? 케네스는 MS에 내몰린 채 항상 지친 모습인 한 소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나 저나 굉장하군요. 실험체도 아닌데 이정도의 성과를 보이다니. 이거 의외로 재능이 있는 것일지도! 만약 그렇다면 저에게 말하십시오. 당장 스카우트 해갈 테니!”
로멜로우는 스스로 재미있는 농담이었다고 생각 한 듯 소리 내어 웃었다. 물론 함꼐 웃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작전은 성공이다. 귀환하자.”
웃음소리를 무시 한 채 케네스는 명령을 내렸다. 바닥이 작게 떨리며 트럭에 시동이 걸리는 것이 느껴졌다.
-----------x---------x--------x---------x---------계속
요즘은 글 쓰는 것도 무척 힘들군요. 재미있게 읽어주신다면 좋겠습니다.
“태규! 대형을 전환한다. 네가 선두에 서라. 내가 엄호하겠다.”
진이 모는 GM은 추진제를 다 써버린 탓에 뒷걸음질 하며 100mm 머신건을 여기저기 갈겼다. 명중을 염두에 두고 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탄환은 난잡하게 사방에 흩어졌다. 그럼에도 돔은 좀처럼 진을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진을 둘러 싼 채 대형을 유지 하며 서서히 거리를 좁혀왔다. 훌륭한 호흡이었다. 위기를 느낀 진은 무기 전환 스위치를 올렸다. GM은 조종사의 명령에 따라 100mm머신건을 다급히 버리고 등에 차고있던 빔 샤벨을 꺼내 들었다. 손에 든 흰 원통의 끝부분에서는 고열의 빛 다발이 뿜어져 나와 형태를 고정시켰다. 하지만 적의 움직임은 눈 속임 이었다. 진짜 공격은 뒤에서 들어왔다. 시뻘겋게 달궈진 긴 곤봉 모양의 히트 샤벨을 들이밀며 돔이 쇄도해 왔다. 봉은 정확히 GM의 옆구리에 닿았다. 머리를 뒤흔드는 충격을 견디며 진은 입을 꽉 깨물었다.
“잡았다!”
히트 샤벨의 끝은 팔이 부서진 GM의 옆구리를 뚫고 들어가 콕피트를 관통하며 조종사를 단숨에 산화 시킬 기세였다. 루소는 경박하게 웃으며 속력을 더욱더욱 높였을 때 열원 감지 경보가 울었다. 고열의 빛 줄기가 뻗어와 돔의 상반신을 가로로 관통했다. 빔의 파괴력에 돔의 풍만한 몸체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함께 파괴된 양 팔의 파편이 장갑에 부딪치며 지면 위로 흩어졌다. 출력을 잃은 히트 샤벨은 허공에서 한바퀴 맴돌다 산허리에 꽂혔다. 콕핏에는 단숨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단 일격에 돔은 모든 기능을 상실했다.
“루소!”
로건이 소리쳤다. 루소의 MS는 힘없이 늘어진 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과연 죽음의 날개다.”
티일러는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 땀을 의식하며 빔이 날아왔던 방향을 향해 대응사격을 개시했다. 360mm 탄이 사정없이 날아가 산허리를 깎아내기 시작했다. 산 허리 너머로 움직이는 그림자가 언뜻 보인 듯 했다.
“죽을뻔했다.”
진은 스쳐 지나가는 태규의 RGM-79G를 쳐다보며 식은땀으로 뒤범벅이 된 이마를 장갑 낀 손으로 훔쳤다.
“저 스나이퍼 커스텀과의 연락은?”
“없습니다.”
무전에서 흘러나오는 린스의 목소리에는 귀에 거슬리는 잡음이 섞여있었다.
“입자 농도가 짙은 탓인가?”
“알 수 없습니다.”
“대장. MS 하나가 급속 접근 중. 귀에 익은 소리야.”
다이스케가 끼어 들었다. 판독을 마친 앤드류는 급히 무선 스위치를 올렸다.
“대장님. 검은 유령 입니다.”
진은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지원 부대는?”
“도착까지 15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 됩니다.”
린스가 대답했다. 진은 조용히 웃었다.
“그때 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진 않아.”
“후퇴 명령?”
타일러는 믿을 수 없었다.
“그렇다. 전선을 뒤로 물린다. 이건 사령부의 명령이다. 내가 귀관들의 후퇴를 엄호하겠다.”
“예상했던 대로군요.”
이 일을 빌미로 연방군은 공세를 시작했다. 적의 공세에 맞춰 현재의 아군의 전력으로는 전선을 유지하기 힘들 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전선을 축소시켜 전력을 집중시킨다. 그 편이 좀더 승산이 높다고 지휘부는 판단한 것이겠지.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승산이 없는 전투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었다. 타일러는 로건이 루소를 회수하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순순히 방향을 돌렸다. 한대가 줄어든 황색 돌풍 대는 열핵 제트엔진의 추진을 이용해 빠르게 전선에서 이탈해갔다.
케네스는 RGM-79G가 접근해 오는 것을 알았다. 검은 구프 커스텀은 방패를 든 왼손을 치켜 들었다. 방패에 달린 75mm게틀링 건을 발사 했다. RGM-79G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 방패로 몸을 가리고는 회피 기동에 들어갔다. 몇 발의 75mm탄이 명중하자 비틀거리는 모습이 케네스의 눈에 들어왔다.
삐
열원 감지 센서가 울었다. 북동 방향의 산등성이 쪽이다. 케네스는 총신의 방향을 돌려 대파된 체 우두커니 서있는 돔을 조준했다. 정확히 스커트 부분의 정 중앙. 핵융합로가 있는 부분을 조준해 발사했다. 핵융합로의 외벽을 감싸고 있던 엄중한 밀폐 장갑이 갈갈이 찢어지고 그 속에 담겨있던 거대한 힘이 한꺼번에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땅을 뒤흔들고 눈을 멀어버릴 듯한 빛과 충격의 분출이었다. 추하게 서있던 돔의 몸체는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다. 그 열기로 빔의 탄도가 교묘히 뒤틀려 검은 구프 커스텀의 발치에 꽂혔다. 모래먼지가 일어나고 땅이 움푹 파이며 고열로 인한 유리 결정이 착탄 지점에 달라붙었다.
“과연 죽음의 날개. 훌륭한 솜씨다. 하지만!”
케네스는 출력을 단번에 상승시켜 산등성이를 향해 높이 뛰어올랐다.
“접근 전에서는 어떨까?”
히트 소드의 긴 칼날이 미쳐 자리를 옮기지 못한 RGM-79G의 몸통을 향해 쇄도 했다.
“말도 안돼!”
카르멘은 소리 지르듯 튀어나오려던 목소리를 간신히 억누르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MS에 탑재된 핵융합로를 일부러 폭발 시켜 빔의 궤도를 휘게 만들다니 유럽 전선에서 악명을 떨치던 공포의 에이스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고 할까. 그의 움직임에는 마치 모두 계산했다는 듯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하지만 감탄도 잠시 시끄럽게 울어대는 접근 경보가 카르멘의 주의를 돌렸다. 검은 유령은 벌써 코 앞에 까지 다가와 있었다. 카르멘은 그에 맞서 방패를 내밀었다. 뜨겁게 달궈진 히트 소드의 칼날이 방패에 깊숙이 박혔다. RGM-79SC는 방패를 분리하며 검은 구프 커스텀과 거리를 두려 했다. 검은 유령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왼손의 35mm 3열 머신 건이 차례로 불을 뿜었다. 카르멘은 치명타를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조종간을 움직였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더라면 몸이 튕겨져 나갔을 만한 거센 충격이 엄습해 왔고 그녀는 그 와중에 히트 소드가 다시 허공을 가르는 모습을 보았다.
지온의 검은 유령은 그의 존재를 완전히 잊은 듯 했다. 태규는 신중히 조준선을 맞췄고 무릎 쏴 자세를 취한 RGM-79G는 난폭하리 만치 거대한 칼을 휘두르는 외눈 거인을 향해 100mm탄을 쏟아 부었다. 100mm 머신 건은 빔 라이플 같은 일격필살을 위한 섬세한 물건이 아니었다. 근거리의 적을 강력한 화력으로 제압하는 병기이기 때문에 이 거리에서는 치명적인 타격을 기대할 수 없었다. 거리는 멀었고 위기에 처한 RGM-79SC의 조종사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적의 주의를 이쪽으로 끌어야만 했다. 붉게 빛나는 모노 아이가 자신을 노려보았을 때, 태규는 성공을 확신했다. 검은 유령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RGM-79SC를 버려두고 75mm 머신 건을 태규를 향해 겨누었다. 짧은 연사. 태규는 회피기동에 들어갔다. RGM-79G는 방패로 몸을 가린 채 지그재그로 뛰었다. 방패에 명중한 총탄의 충격에 태규의 고개가 흔들거렸다. 혀를 깨물지 않게 위해 이빨을 꼭 깨물었다.
패턴이다. 검은 유령은 75mm포로 견제를 한 뒤 단숨에 도약해 한칼에 목표를 히트 소드로 베어버린다. 태규는 접근 전 무기 전환 스위치에 손가락을 올려두고 기다렸다. 검은 유령이 도약해 오면 그레네이드 탄으로 허점을 유도한 뒤 단숨에 승부를 볼 작정이었다. 검은 구프 커스텀은 단숨에 육박해 왔다. RGM-79G가 던진 그레네이드 탄이 공중에서 폭발했다.
검은 유령은 폭발에 잠시 비틀거렸다. 태규는 침착하게 무기를 전환해 공격을 계속했다. RGM-79G는 100mm 머신 건을 버리고 빔 샤벨을 꺼내 들었다. 태규가 승리를 확신한 순간이었다. 검은 구프 커스텀이 오른 손을 뻗었다. 손목에서 케이블이 튀어나와 RGM-79G의 특징적인 고글 모양의 모노 센서에 달라 붙었다. 강한 전류가 흐르며 RGM-79G는 경련을 일으켰다. 모든 전자기기가 타버렸다. 계기판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폭발해 파편을 날렸다. 전기가 물건을 태우는 냄새가 태규의 코를 찔렀다. 콕핏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절전장치가 작동하자 침묵이 찾아왔다.
“2호기 침묵. 대장님!”
떨리는 린스의 목소리는 간절한 애원처럼 들렸다.
“케니스!”
진의 외침이 콕핏을 넘어 상대방에게 전해 질리 전무하지만 어쨌든 그는 소리치며 빔 샤벨을 내질렀다. 무력하게 무릎을 꿇고 있는 RGM-79G의 머리 옆으로 고열의 미노프스키 빔 다발이 스쳐갔다. 검은 구프 커스텀은 방패로 막아보았지만 빔 샤벨의 끝이 게틀링의 탄창을 스치자 폭발이 일어나며 75mm 탄환들이 불똥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금속 조각이 부딪히는 메마른 소리가 콕핏 안 까지 전해져 왔다. GM의 표면은 순식간에 검은 탄흔으로 뒤덮였다. 좌측 흡입구가 검은 연기를 토해내며 기침하듯 거친 파열음을 내뱉었다. 냉각계통에 이상이 생긴 탓에 동력계통에도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출력이 불안정해지자 빔 샤벨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 불안하게 흔들렸다.
왼손에 경미한 손상만을 입은 검은 구프 커스텀은 거대한 뿔 같은 스파이크가 돋은 어깨로 GM을 들이 받고는 연속으로 히드 소드를 휘둘렀다. 스파이크는 GM의 몸통 안을 휘저어 놓았다. 진은 콕핏을 감싸고 있는 철골들이 비명을 지르며 휘어지는 것을 느꼈다. 모니터가 폭발하며 파편이 튀었다. 출력계는 최저를 가리켰다. GM은 균형을 잃고 뒤로 주저 앉았다. 진은 휘어진 콕핏 해치 너머로 보이는 검은 구프 커스텀을 노려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잘 다듬은 금색 머리카락. 그 아래에 빛나는 투명한 푸른 눈동자는 긴장이 물결 쳤다. 수염도 돋지 않은 매끈한 턱 선에 맺힌 땀을 장갑 낀 손으로 닦아내고는 다시 한번 스코프를 확인했다. 검은 유령과 맞서고 있던 대장의 MS가 주저 앉았다. 신호였다. 앤드류는 발사 스위치를 눌렀다. 건 탱크의 두 주포가 동시에 불을 뿜었다. 사격은 조준 오차를 수정하며 세 차례에 걸쳐 실시되었다.
“사격 종료. 작전대로 후퇴 합니다.”
엔드류는 보고를 기다리고 있을 린스에게 무선을 보내며 후진 기어를 넣고 무한궤도로 움직이는 MS를 숲 사이로 숨겼다.
포격은 두발째에 검은 구프 커스텀에 명중했다. 구프 커스텀의 머리가 산산조각 나 사방으로 그 파편을 뿌렸고 세발 째는 양 어깨와 함께 상체의 일부에 큰 타격을 입혔다. 구프 커스텀은 비틀 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열려라!”
진은 온 힘을 다해 구부러진 콕핏 해치를 밀어 올렸다. 몸 곳곳에 타박상을 입은 그는 신음소리를 흘리며 무릎 꿇은 검은 구프 커스텀을 쳐다보았다. 유럽전선을 공포로 몰아 넣었던 검은 유령은 머리가 잘리고 양팔이 뜯긴 채 무릎을 꿇었다. 진은 눈시울이 뜨거워 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고통 탓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지원군은 하늘에서 도착했다. 거대한 낙하산을 펼치며 내려온 세대의 Rx-79G는 곧장 주변경계에 들어갔다. 이후 차례차례 구난전차와 의무차량이 낙하했다.
진은 호버 트럭 위에서 오른손을 이마에 짚은 채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구난 전차들이 시끄러운 엔진 음을 내며 지나가자 자욱한 먼지 바람이 일었다.
민아는 카메라를 든 채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진은 조심하지 않으면 MS나 전차에 깔릴지도 모른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린스는 웃었고 태규는 고개를 흔들었다. 엔드류가 돌아오자 호버 트럭은 소란스러워졌다.
“왔구나! 믿어지지 가 않아. 막내가 지온의 에이스를 잡다니!”
다이스케가 호들갑을 떨며 과장된 칭찬을 입 밖으로 쉴새 없이 꺼내자 앤드류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민아는 이 장면을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진은 소란스러움에 휩쓸리지 않고 그대로 고개를 뒤로 넘겼다. 팔다리를 쭉 뻗은 채 보는 하늘은 눈을 땔 수 없는 마력을 품고 있었다.
“교관님?”
낯설지 않는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풍성한 금발이 진의 시야에 쏟아져 내려왔다. 아름다운 파란 눈과 마주치자 묻혀있던 기억이 꿈틀거리며 다시 살아났다.
“카르멘!”
진이 몸을 일으키자 그녀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역시 교관님이셨군요! 움직임이 비슷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진짜일 줄이야!”
진은 놀란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가 교육한 가장 우수한 제자가 눈 앞에 서있었다.
“정말 오래간 만이군! 잘 지내는 모양이네.”
“교관님도요.”
그녀는 웃었다. 진은 멋적은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교관이란 말은 여전히 적응이 안돼.”
진이 교관을 맡았던 것은 고작 4주 정도였다. 그가 배속되었던 부대에서 유일한 생존자였던 진은 재편성 까지 잠깐의 공백 기간 동안 MS조종사들의 양성을 도왔었다. 그 중에서도 카르멘은 제일 뛰어난 기량의 소유자였다.
“이제는 대장님이 되셨군요.”
“전쟁 덕분이지.”
진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가 이상하네요.”
카르멘은 문득 깨달았는지 주위를 돌려보았다. 공기 속에서 전해져 오는 병사들의 웅성거림은 확실히 묘한 긴장감을 띄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설명을 원하는 눈치로 눈빛을 교환할 때 먼지 투성이가 된 빈센트가 끼어들었다.
“구프 커스텀의 콕핏을 연답니다.”
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잠시 후 콕핏이 열린 듯 병사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처참한 몰골로 변한 케네스의 시체를 발견하기라도 한 것일까. 불편한 침묵은 오래도록 계속 되었다. 당연한 듯 다이스케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목까지 차오른 숨을 고른 그는 결정적인 한마디를 내뱉었다.
“없어. 콕핏 안에는 아무도 없어!”
그 한마디에 진의 몸은 튕겨나가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단숨에 달려나갔다. 모여있는 병사들의 무리를 단숨에 헤쳐나갔다. 모두 어안이벙벙한 표정으로 한 점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진이 도달한 그곳은 텅 빈 콕핏과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의 구조대 병사들의 얼굴이었다.
“검은 유령이 진짜 유령이 되어버렸군.”
진은 엉망진창이 된 콕핏을 들여다보며 기가 막힌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것으로 모든 데이터 수집이 완료 되었습니다.”
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이곳, 풀잎으로 철저히 위장된 특수트럭 안에서는 복잡한 기계장비 들이 조용히 돌아가고 있었다. 만족한 얼굴을 한 연구원들의 사이로 트럭의 중앙에 놓여있는 원통형 장비에서 걸어 나오는 남자가 있었다. 검은 슈트로 온몸을 감싸고 눈부신 금발이 눈썹에 까지 흘러내려와 있었다. 그는 어느 상황에서든지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했으나 지금은 미간을 미세하게 좁히고 있었다.
“수고했습니다. 대위.”
긴 은발의 깡마른 중년 초로의 연구원이 히죽 웃으며 다가왔다. 그는 안경을 고쳐 쓰며 오른손에는 자료가 든 디스켓을 흔들어보였다. 그의 이름은 로멜로우, 부루스터 연구팀의 수석 연구원이었다.
“MS가 넘어갔다.”
“걱정하지 마십쇼. 적에게 넘어가서 위험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적은 저 고철을 처분하는데 시간을 낭비하게 되겠죠. 설마 MS에 감정을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요?”
케네스는 이 남자를 때려 눕히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지만 가까스로 억누르는데 성공했다. 그의 심정을 눈치 채기라도 한 듯 눈을 가늘게 뜬 로멜로우는 다시 히죽 웃었다.
“그럴 리가 없겠지요.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기분이 나쁘군.”
케네스는 이 기분 나쁜 사내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말했다. 그의 말투는 냉담하기 까지 했다.
“아마 약물 탓일 겁니다. 조금 지나면 괜찮아 질 겁니다.”
그녀는 매일 이런 기분이란 말인가? 케네스는 MS에 내몰린 채 항상 지친 모습인 한 소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나 저나 굉장하군요. 실험체도 아닌데 이정도의 성과를 보이다니. 이거 의외로 재능이 있는 것일지도! 만약 그렇다면 저에게 말하십시오. 당장 스카우트 해갈 테니!”
로멜로우는 스스로 재미있는 농담이었다고 생각 한 듯 소리 내어 웃었다. 물론 함꼐 웃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작전은 성공이다. 귀환하자.”
웃음소리를 무시 한 채 케네스는 명령을 내렸다. 바닥이 작게 떨리며 트럭에 시동이 걸리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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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글 쓰는 것도 무척 힘들군요. 재미있게 읽어주신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