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병사 GM -하얀 싸움터-


맥 중위는 말없이 임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자주빛으로 채색된 연방군의 선행 양산 MS인 RGM-79G로 침착하게 컨테이너를 옮기고 있었다. 발 아래에서는 이 장면을 신기하게 지켜보는 보병들이 보였다. 일부는 짓궂게도 환호하며 휘파람을 불어대기도 했다. 맥은 그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으며 MS의 커다란 발자국을 그들 앞에 찍었다. 놀란 병사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혼비백산 흩어졌다. 경박한 보병 소대장으로부터 무선 요청이 있었으나 무시하자 항의 전문이 빗발쳤다.
MS는 고가의 장비다. 전장은 MS가 주도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연방군의 높으신 분들 조차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MS의 개발 및 양산을 이토록 서두르지 않았던가. 일부 전선에서는 MS부대의 증원을 애타게 요청하고 있는데도 이곳에서는 지게차 수준의 대접이었다. 기지 사령관인 로버트는 자기 지휘 아래에 있는 MS를 애지중지 하다 못해 거의 과보호 수준이었다. 그는 MS의 출격을 꺼렸으며 마치 자기의 컬렉션인 마냥 격납고에 모셔져 있는 MS에 왁스 칠 하고있는 파일럿들을 쳐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했었다. 로버트는 MS를 자신이 이룩한 전과의 상징물처럼 여겼으며 이를 잃을 경우에는 이때까지의 경력에 흠집을 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 때문에 MS는 그 본연의 목적 보다 보급용 컨테이너 옮기기나 진지 구축 공사 등에 동원되는 경우가 더 잦았다. 맥이 기억하기로는 제대로 된 출격은 며칠 전에 있었던 지온의 무인 MS를 포획한 것이 전부였다.
맥은 그와 비슷한 시기에 기지에 들렸던 전선 지원부대를 떠올렸다. MS 3기로 편성된 그 부대는 MS가 궁한 연방군의 전선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설된 부대로 그들은 일정한 주둔지 없이 MS가 필요한 전장에 투입되는데 그 성격은 지원부대 라기 보다는 특수부대에 가까웠다. 실험부대를 비롯해 연방군의 MS 파일럿 중 가장 실전 경험이 풍부한 이들은 MS파일럿 들에게 선망의 대상이긴 했지만 그 이름 만큼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 잦았다. 맥도 잠시 그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본 적이 있었지만 목숨을 저당 잡히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가끔 그들도 부러운 눈빛으로 자신들을 쳐다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곳 생활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쟁 중이라는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평화로웠었다. 급박한 전장만을 진전하던 그들이 진정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본 것은 평화란 이름의 여유였던 것이다.
MS전력의 증강은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었지만 정작 기지 사령관인 로버트 중령은 이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 그는 사건 수사 중 관활이 다른 수사관이 괜한 참견을 했을 때 같은 느낌으로 그들을 대했다. 기지 시설의 이용 조차 허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은 활약을 한 것은 단연 그들이었다. 지온의 검은 유령이 기지에 난입했을 당시에도 활약했으며 정작 기지 주둔MS부대는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로버트의 늦장 출격 명령에 상황이 거의 종료되고 나서야 출격하게 되었다. 로버트는 이 일을 적습에 의한 지휘계통의 일시적 혼란 탓이라 해명했지만 그건 그저 궁색한 변명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게다가 감사는 커녕 오히려 기지MS의 무단 사용 책임을 그들에게 물어 병사들에게 보이지 않는 비난을 자아냈다. 사태를 수습한 그 뒤에도 그들은 단독으로 강행 정찰에 나섰다. 적 MS의 추적과 동시에 어딘가에 감추어져 있을 지온군의 기지를 색출하기 위함이었으나 변변찮은 성과도 올리지 못한 채 다른 전장으로 옮겨가고 말았다. 그 때 기지의 MS부대는 적MS 추적 보다는 기지 복구라는 막대한 사명을 다하고 있었다. 당시전선 지원부대의 지휘관이 지원요청을 했지만 기지 사령관인 로버트가 매몰차게 거절했다는 말이 병사들 사이에 떠돌기도 했다.
하지만 맥은 이 상황을 그리 불만스럽게 여기지 않는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군인으로서의 의무를 당연히 여기고는 있지만 굳이 위험을 자초하고 싶지는 않았다. 평화에 찌들어 느슨해진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자 저도 모르게 입가에 실소를 머금었다. 분명 연수 시절 교관이 본다면 목에 핏대를 세우며 귀가 찢어지도록 소리를 질러대겠지.
이때까지의 작업 동안 얻은 데이터를 삼킨 학습형 인공지능은 노련한 일꾼이 짐을 옮기듯 MS의 움직임을 점점 세련되게 연마해갔다. 비록 그것이 컨테이너를 집고 원하는 장소에 놓거나 쌓아올리는 것이긴 했지만 RGM-79G는 파일럿의 의지를 통해 능숙한 몸놀림으로 컨테이너를 옮겼다.
작업의 진척 속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인지 보급 담당 장교가 액정 형 클립보드를 흔들며 좀더 빠르게 움직이라고 보챘다.
작전 사령부가 아닌 보급 장교의 명령에 따라야 하다니! 평화가 마냥 좋은 좋은 맥으로서도 웃음을 금치 못할 상황이었다.

린스는 난감해 하고 있었다. 현장 요원(5121부대는 대부분이 정규군이 아닌 예비역이나 고용된 민간인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자신들을 지칭 할 때에는 요원이라 즐겨 불렀으며 공식 문서상에서도 그렇게 기록되어있다.) 들을 전선에 보내고 지원임무에서 빠진 그녀가 할 일이라곤 서류작성 밖에 없으니 어떻게 보자면 한가하다는 의미였고 다르게 보자면 그것은 평소에는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녀는 경험 상 그 편이 걱정을 더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물론 알고있었다. 다이스케의 경우에는 그 부분을 잠으로 극복했고 린스는 그 점을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지만 무엇이든 간에 개인차는 존재하므로 그녀는 반감 없이 순순히 납득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녀가 난감해 하고 있는 실질적인 원인은 눈 앞에 볼을 부풀린 채 앉아있는 민완 종군 카메라 기자였다. 그녀는 직함에 맞지 않게 놀랄 정도로 앳되어 보였으며 실제로도 그랬다.
“그게 뭐야. 바보 같이.”
처음에는 힘이 없는 듯 하다가 나중에는 열을 띠며 상대를 비판하다 제멋대로 풀이 죽었다 다시 불만을 토로했다. 감정의 굴곡이 심한 건 그녀 나이또래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었고 당사자는 그 전형을 여실히 보여주는 중이었다. 린스 또한 그 시기를 겪었기 때문에 적절한 조언과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 문제의 본질적인 원인은 사뭇 다른데 있는 것 같았다.
당사자인 눈 앞의 민아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다 감정이 고양된 모양인지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콧물을 삼켰다.
그녀가 입에 주로 입에 담는 대상은 오빠이자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 이며 5121부대의 현장 지휘관이자 MS번호 1호기의 파일럿이었다. 민아는 진에 대한 불평 불만을 토해내다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린스가 민아를 품에 앉아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대기실 한 구석에서 잠을 자고있던 다이스케는 허겁지겁 잠에서 깨어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방을 빠져나갔다. 때 마침 대기실에 들어오려던 엔드류는 놀란 토끼 눈을 한 채 부둥켜 안은 두 사람을 쳐다보다 린스가 눈짓을 주기 전에 주머니에서 고급스러워 보이는 하얀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손에 쥐어주고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한번 뒤 돌아 본 후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울음 소리가 잦아들었다.
“이제 좀 진정이 됐어?”
민아는 코를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뺨이 붉게 상기되었고 눈도 마찬가지로 충혈되었다. 린스가 손수건을 내밀자 민아는 받아 들었다. 눈물을 닦고 힘껏 코를 풀었다.
“걱정되는 모양이구나.”
헝클어진 갈색 머리카락이 맹렬히 좌우로 물결 쳤다.
“분명 오빠도 네가 걱정 되서 그러는 걸 거야.”
“누가 걱정 같은 것 해 달래요!”
민아가 품고있는 감정은 원망이나 분노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족이 모두 죽었을 것이라 알고있었다. 그러던 중 오빠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그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가족 중 살아 남았다던 오빠가 마찬가지인 여동생의 안위에 대해 신경조차 쓰지않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동생을 찾기 위해 필사적이었을 테지. 다정했던 오빠의 손길이, 짓궂지만 기분 나쁘지 않았던 오빠의 말투가, 누구보다 온화했던 오빠의 목소리가. 단숨에 마음에서 빠져 나와 붙잡으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가버린, 옆에 있어주기를 바랬는데 아무런 말도 없이 군인이 되어버렸다니!
“왜. 왜 그랬던 거야.”
민아는 반바지의 끝 자락을 꼬옥 쥐었다. 린스는 민아의 어깨를 안았다. 그녀는 몇 가지  조언과 위로의 말을 떠올렸지만 그것들은 그냥 생각만 해 두기로 결정했다. 이건 두 사람이 풀어야 할 문제였다.

눈발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산속의 날씨는 대하기 힘든 변덕 심한 여자의 기분처럼 차분했다가 전혀 예상치도 못한 부분에서 거칠어졌다. 함박눈이 엄청난 기세로 내리고 있었고 휘몰아치는 차가온 바람이 눈발을 어지럽게 흔들었다. 주변이 온통 새 하얗게 물들었다.
화이트 아웃.
주변이 온통 하얀 탓에 방향감각을 잃어버리는 현상을 일컫는 단어가 머리 속을 스쳤지만 진은 당황하지 않고 곧장 좌표 디스플레이를 열었다. 목표와는 불과 10분 거리. 진은 숨을 고르며 좌표의 선과 숫자에 모든 것을 의지 한 채 페달을 밟아 MS의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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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이 등장했군요. 전 간결한 이름이 좋습니다. 그렇지 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