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병사 GM -한밤의 소동②-

“이상한 걸.”
방금 자리로 돌아온 당직 하사관은 금방 따른 탓에 김을 피우고 있는 커피가 담긴 종이 잣을 조심스레 탁자에 올리며 모니터에 표시되는 숫자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기지에는 일정 구역을 두고 기체 농도 분석용 센서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 기계들은 보통 공기 중에 포함되어 있는 이물질들을 분석해 내는데 사용되는데 그 중에는 미노프스키 입자 또한 포함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미노프스키 입자의 농도가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불과 1,2초 사이에 흔히 ‘전투 농도.’라고 부르는 수치에 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숫자는 멈춘 채 더 이상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다. 소수점 아래 숫자들만이 어지럽게 숫자들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 이런!”
먼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듯한 폭발음이 고막을 울렸고 관제탑으로부터의 모든 통신이 두절되었다. 그는 황급히 긴급 경보 버튼을 눌렀다.
관제탑과 몇몇 수송기가 화염에 휩쓸리고 나서야. 뒤늦게 기지는 사이렌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리죠?”
린스는 잠옷 바람으로 방에서 뛰쳐나왔다. 좁은 복도에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병사들이 허둥지둥 발걸음을 놀리고 있었다.
“적의 공습이야!”
얼굴에 불만과 짜증을 드러낸 다이스케가 소리쳤다. 재빨리 옷을 갈아 입기 위해 등을 돌린 린스의 뒷모습에 대고 다이스케는 소리쳤다.
“시간 없어. 어서 움직여!”
다시 폭발음이 들렸다. 이번 건 무척 가까웠다. 불길이 치솟아 오르는 기지 건물 쪽에는 검은 그림자 하나가 무언가를 찾는 듯. 유심히 고개를 돌리며 불길 속을 배회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 빛나는 것은 하나의 붉은 눈동자. 린스는 그와 마주친 듯한 느낌이 들어 어깨를 흠칫 떨었다.
“아..알겠어요. 바로 갈게요.”
린스는 슬리퍼를 벗어 던지고 맨발로 달려나갔다. 바닥은 잘 재련된 금속 재질이었기 때문에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바닥의 피부로부터 직접 전해져 오는 바닥의 시린 이질감이 그녀의 신경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 격납고에 도착하자 정비요원 들의 다급한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MS는 이미 출격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파일럿이 보이지 않았다. 주저하는 린스의 옆에 호버 트럭이 멈춰 섰다. 해치가 열리며 다이스케의 얼굴이 보였다.
“어서 타. 대장 일행은 7번 격납고에 있어!”
린스가 해치에 매달리자. 다이스케는 거칠게 호버 트럭을 출발 시켰다. 거칠게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왼손으로 붙잡으면서 후끈한 공기가 얼굴을 훔치는 것을 느꼈다. 오늘 밤에 착륙한 미데아 수송기가 불타고 있었고 어두운 하늘에는 포탄이 만들어내는 빛 줄기 들이 가득 했다.

폭음과 열풍이 먼지구름과 함께 밀려왔다. 진은 자세를 낮추고 오른쪽 옷소매로 코를 가리고 가늘게 눈을 떴다. 격납고의 거대한 강철 문짝은 타버리거나 구겨져서 밖의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기지 건물들 사이로 일렁이는 불꽃을 배경으로 눈에 익은 호버 트럭 한대가 맹렬한 기세로 다가오고 있었다. 진이 소리칠 새도 없이. 호버 트럭은 벌어진 격납고의 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지그재그로 흔들리며 진의 눈 앞에 간신히 멈춰 섰다. 해치가 벌컥 열리며 분홍 잠옷을 입은 린스가 튀어나왔다.
“모두 괜찮은가요?”
“아아. 그럭저럭.”
“아무 문제 없다.”
“괜찮아요.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린스의 외침에 여기 저기서 다양한 대답들이 돌아왔다.
“다이스케! 린스! 수고 했어. 어서 타라!”
진이 손짓 하자 하얀 먼지를 뒤집어 쓴 세 사람이 튀어나와 재빨리 호버 트럭에 올라탔다. 그 중 제일 작은 사람이 작게 기침을 해 먼지를 날렸지만 진은 신경 쓰지 않았다. 부서진 격납고 너머로. 외눈의 거인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불타는 기지를 배경으로 서 있는 외눈 거인은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전사를 연상케 했다.
진의 미간이 순간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진짜 유령이 납셨다.”
린스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진은 해치에서 뛰어내렸다.
“내가 시선을 끌어 보겠다. 너희는 그 틈에 이곳에서 벗어나라. 그리고 내 명령이 없어도 기지사령부의 지휘를 받으며 기지를 방어 해.”
진은 곧장 격납고에 세워져 있는 MS로 향했다. 눈 앞에 서있는 MS는 RGM-79로 보통 GM(짐)이라 부르는 연방군의 주력 기체였다. 겉모습은 RGM-79(G)를 좀더 단순화 시킨 모습으로 기본 무장으론 두부의 2연장 발칸과 등쪽에 붙어있는 빔 샤벨 한 자루였다.

다이스케는 격납고 한 켠에 호버 트럭을 숨겼다. 진은 GM의 콕핏으로 연결되어 있는 케이블을 타고 오르더니 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사이. 육중한 발이 격납고 안으로 들어왔다. 붉게 달궈진 커다란 칼을 흔들면서. 다른 한손에는 게틀링 포가 붙어있는 방패를 착용했다. 다이스케는 그 기체가 구프 커스텀 기 임을 한눈에 알아봤다. 다만 보통 구프 계열의 기체가 푸른색 계통으로 도색 되어 있는 반면에 눈 앞에 보이는 녀석은 온통 새까맸다.
‘고약한 취미로군.’
다이스케가 속으로 중얼거릴 때. 마크가 작은 신음 소리를 토했다. 그는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검은 유령.”
그 순간 GM이 구프를 덮쳤고 다이스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가속 페달을 밝았다. 서로 얽히는 MS들을 뒤로 한 채. 다이스케가 모는 호버 트럭은 그 속도를 점점 더 더해갔다.

우지끈.
하는 소리가 나며 앞에 세워져 있던 정비용 플랫폼이 휘어졌다. 진은 곧장 검은 구프 커스텀에게 덤벼들었다. 검은 녀석은 방패를 장착한 오른손을 들어 진의 몸통 박치기를 받아냈다. 쇠와 쇠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콕핏 안까지 전해져 왔다. 구프 커스템 기의 방패에는 문장이 새겨져 있었는데. 살짝 드러나 보이는 사신의 얼굴과 그가 들고 있는 커다란 낫이었다. 분명 ‘검은 유령.’의 문장 이었다.
붉은 노모 아이가 흘겨 봤다. 그는 웃고 있었다. 약자에 대한 경멸처럼 느껴졌다. 검은 유령은 뻘겋게 달아오른 히트 소드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힘껏 내리쳤다.
진은 숙련된 동작으로 조종간을 놀렸다. 히트 소드의 칼날은 GM의 어깨를 깨끗이 잘라냈다. 격납고 바닥에 떨어진 오른 팔은 쇼트를 일으키며 경련을 일으키듯 부르르 떨었다.
“반응이 느려.”
MS성능의 차이점을 고려하지 못한 자신의 반응에 한심함을 느끼며 뇌까려보지만 GM의 반응은 RGM-79(G)에 비해 동작이 무뎠다.
활주로를 질주하고 있는 호버 트럭이 시야에 들어왔다. 일행은 무사히 탈출한 모양이다. 진은 쇄도하는 칼날을 간발의 차로 회피 하며 뒷걸음질 쳐 엉망이 된 격납고를 빠져 나왔다.
기분 탓인지 유유한 발걸음으로 격납고를 따라 나오던 검은 유령은 상체를 틀어 분해 해 놓았던 적기를 향해 MS용 수류탄을 던져 넣었다. 폭약이 폭발 하며 붉은 화염에 휩싸인 격납고 건축물은 형체를 일그러뜨린 체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역시 그MS를 노린 건가.’
포획해 놓았던 그 ‘유령’MS에게는 어떤 비밀이 얽혀 있는 것이 분명 했다. 그것도 적의 에이스가 직접 파괴해야 할 만큼 중요한 비밀이 그 구형 MS에 얽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적은 진에게 생각에 잠겨있을 만한 시간을 줄 정도로 관대하진 않았다. 왼팔에 붙어있는 75mm 게틀링 내장 실드가 치켜 올라갔다. 총열이 회전하는 것이 보였고 그 다음은 불꽃을 내뿜었다. 포탄이 노란 궤적을 남기며 날아왔다.
진은 몸을 튕기듯 자리를 박찼다. 아스팔트에 깊은 자국을 남기며 튀어 오른 기체는 곧장 회피기동에 들어갔다. 진의 행동이 기지의 피해를 확산시키고 있다는 건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방금 전 까지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던 안테나가 금세 너덜너덜 한 금속조각이 되어 내려 앉았다.
“이런!”
진이 새로운 엄폐물을 찾아 달려나가려고 했을 때. 포격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적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마치 원래부터 없었다는 듯이. 작은 불꽃을 머금은 채 붕괴된 7번 격납고 주변에는 작은 그림자 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치 전부터 아무도 없었다는 것처럼.
“정말 유령 같이 사라지는 군.”
진은 중얼거렸다.
9시 방향에서 빠른 속도로 접근 중인 마크와 태규의 기체를 확인 했다. 미노프스키 입자의 농도는 아직 짙었다. 그들은 통신을 시도하고 이었지만 진의 귀에는 잡음 속에서 이따금씩 끊기는 린스의 목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라디오 주파수를 구조 채널로 돌려보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뒤늦게 다급히 움직이는 기지 방어부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진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