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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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21
감상, 조언 및 딴지 환영이어요오오오오(리플을 바라는 간절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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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로센버그- 이멜반 제 2 방어기지
나는 그저 전투가 끝나면 눈을 감고 편히 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 희망 역시 소용없는 것이었다.
얄밉게도, 나의 감각들은 흥분상태가 가라앉은 후에 다시 예민해지고 있었다. 바닥에 누워있던지라 수송차가 덜컹거릴때마다 어지러웠고 바닥에 고인 피냄새와 화약냄새, 심지어 땀냄새마저 내 머리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듯 했다.
고통스러웠다.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끈적거리는 내의 때문에 당장이라도 군복을 벗어버리고, 아니 확 찢어버리고 바람을 맞고 싶을 정도로 불쾌해졌고 내 왼쪽 어깨는 여전히 욱신거리고 있었다.
도저히 잔다거나 기분이 편안해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자꾸 흔들리는 차체 때문에 왼팔이 자꾸 움직여서 다시 좌석에 앉았다. 땀에 젖어 허벅지에 달라붙은 내의가 느껴졌다.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불쾌했으 나 나는 이미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있었다. 계속 앉아있으니 피가 머리에서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정신이 몽롱해졌다. 잠시라도 내 몸의 감각들이 희미해져서 기분이 좋았다.
잠시 후, 수송차의 엔진소리가 잦아들고 차체의 흔들거림이 멈추더니 앞쪽에 앉아있던 지휘관이 먼저 내리면서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아까 싸울때와는 전혀 다른, 심지어 약간은 온화함까지도 느껴지는 듯한 말투로 우리들에게 말했다.
“내려라. 우리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을 것이다. 곧 위생병들이 너희들의 상태를 봐 주러 올 것이다.”
의외로, 차 안에 남겨진 시체는 몇 구 없었다. 몇몇은 우리가 정신없이 도망오는 동안 길바닥에 떨어진 것 같았다. 다시 찾으러 간다고 해도 이미 우리를 뒤따라온 중앙군의 차량에 수도 없이 짓밟혔을 테니 얼굴은커녕 사람인지 아닌지도 구분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좀 더 멀쩡한 상태’에서 장례식을 치루어 줄 수 없다는 것이 안쓰러웠다.
내 몸을 중력으로부터 받쳐줄 수나 있을지 의심이 갈 정도로 힘이 풀려있던 다리에 간신히 힘을 주었다. 후들후들거리기는 했지만 일어설 수 있었다. 내 옆에 있던 동료는 다리가 제대로 버티지 못해 넘어지기도 했다. 나는 그나마 상태가 나은 편이었다.
“이런-”
지휘관이 할 말을 잃었다. 다른 것들은 괜찮아 보였지만, 유독 통신기지만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이곳 이멜반은 일반 차량은 본부와 연락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 험악한 곳이다. 그런데 통신기지가 파괴되었다는 것은, 여기로 중앙군이 쳐들어 온다고 해도 본부에 연락을 하지 못하니 그냥 가만히 앉아서 죽을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멜반 방어기지를 제외하면, 우리가 쉴 수 있을만한 다른 ‘안전한’ 방어기지는 한참 멀리 떨어져 있다. 더 이상 움직일 힘도 없는 상태에서 또 후퇴한다는 것은 불가능할테니- 별수없이 여기에서 하룻밤을 쉬는 수밖에 없다.”
지쳐서 자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된 우리들로서는 지휘관의 말을 귀담아 들을 리가 없었다. 그저 아무데나 편히 누워서 자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몇 명은 이미 땅바닥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위생병들이 그들을 기지 안으로 데리고 갔다.
방어기지라 시설이 아주 좋지는 않았지만, 침대만큼은 푹신했다. 힘이 풀린 팔로 군복을 힘겹게 벗어놓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또다시 내 예상과는 전혀 반대로 정신이 다시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침대의 따뜻함이 느껴지고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이틀동안 겪었던 일들이 그나마 평온했던 정신상태를 뒤흔들어 놓았다. 처음에 소대장이 저격당했던 일과 함께 다른 참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온몸이 덜덜 떨렸고 온기와 한기가 동시에 내 몸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전쟁에 대한 공포가 다시 나를 짓눌렀다. 지난 이틀이 한없이 긴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그저 잘 알지도 못하는 전쟁에 대한 환상만으로 해방군에 자원 입대한 내가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언제, 어떻게 죽게 될지 모르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졌고, 마치 그 소원을 들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기억이 점점 흐려졌다.
-하지만 그것은 잠이 드는 것이었지 기억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모청- 중앙국 비볼테 서부 3지역 보병기지
다른 동료들은 벌써 대피했고, 폭격 대비용 방호벽을 전개하느라 마지막으로 남았던 나와 데마이어는 신속히 지하 벙커쪽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가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을 때, 바닥이 뒤흔들리고 나와 데마이어가 뒤로 넘어졌다. 해방군의 폭격이 벌써 시작된 것이었다. 운이 좋게도, 멍청한 해방군 녀석들의 전투기가 우리쪽의 대공포화를 피했나 보다.
다시 일어서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뛰려고 하였으나, 우리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엘리베이터의 바깥쪽 문이 약간 열려 있었고 그 틈 사이로 엘리베이터의 동체가 보이지 않았다. 폭격 때의 충격으로 밑으로 내려간 것 같았다. 자석들이 작동을 멈추거나 부서져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잡아준다던’ 비상용 제동장치는 젠장스럽게도 한 박자 늦게 작동된 것 같았다. 즉, 빌어먹을 엘리베이터가 나갈 곳이 없는 통로 한가운데에서 멈춰 버린 것이다.
“데마이어, 비상 통로는 어디있지? 내 헬멧에는 이 기지 정보가 없어.”
내 물음에 데마이어는 별로 급한 상황이 아니라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방금 우리가 지나왔던 두 번째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될거야.”
다시 폭음이 몇 번 울리고 바닥이 흔들렸지만 넘어지지는 않았다. 비상 통로 쪽으로 돌아가다가 주위의 그림자가 갑자기 짙어지는 것을 느낀 우리는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크기의 폭음을 여러 번 들으며 또다시 넘어져 뒹굴어야 했다.
“참호 파괴탄 [투하형 폭탄 중의 한가지. 탄두가 여러 단계로 나뉘어져 있고 또 폭발력이 앞으로 집중되게 설계되어 수 차례 폭발하며 참호나 지하 기지의 깊숙한 곳까지 도달한 다음 마지막 폭발물이 폭발하며 초토화시킨다. 시대가 지나며 점점 더 그 크기가 작아져 어떤 개량형은 심지어 소형 정지형 항공기(헬리콥터와 같이 공중에서 멈출 수 있는 항공기)도 투하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것도 있다.]인가! 우리 대공전력들은 뭐 하고 있는거야-”
데마이어가 욕설을 퍼부으며 다시 힘겹게 일어섰다. 그리고는 지하 쪽으로 내려가는 비상 통로의 문을 열었다. 뜨거운 바람이 우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상하게도 지하층이 너무 환했다.
계단을 타고 한참을 내려가자 걷잡을 수 없이 불이 번진 지하층의 모습이 들어났다. 수도 없이 많은 시체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몇 명은 살아있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두 명이 각자 팔과 등을 다친 것 빼고는 다른 부상은 없었다. 자동 소화장치마저 작동하지 않았기에 오래 전 훈련할 때 만져본 이후로 처음으로 수동 소방 호스를 들게 되었다. 간신히 진화작업을 끝내고 다시 한참동안 폭격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열 대? 열 대는커녕 한 70대나 80대는 와서 퍼붓는 것 같구만. 방호벽마저 소용이 없으니- 이봐, 통신을 할 수 있을까?”
“주파수가 잡히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탈출해서 근처에 있는 다른 기지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궁시렁대던 한 고참의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걱정되는 것은 탈출할 때 이용할 차량이었다. 지하기지 맨 아래층마저 시체가 쌓여있는데 위쪽이 성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해방군은 우리에게 대화나 할 여유를 주지 않고 계속 폭탄을 퍼부었다. 항상 필요 이상의 무기를 낭비해 대는 것은 역시 멍청한 해방군밖에 없었다.
-전쟁은 그 실체를 접하기 전에는 그 어느 것보다도 매력적이다.- 바토 쿠사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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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로센버그- 이멜반 제 2 방어기지
나는 그저 전투가 끝나면 눈을 감고 편히 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 희망 역시 소용없는 것이었다.
얄밉게도, 나의 감각들은 흥분상태가 가라앉은 후에 다시 예민해지고 있었다. 바닥에 누워있던지라 수송차가 덜컹거릴때마다 어지러웠고 바닥에 고인 피냄새와 화약냄새, 심지어 땀냄새마저 내 머리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듯 했다.
고통스러웠다.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끈적거리는 내의 때문에 당장이라도 군복을 벗어버리고, 아니 확 찢어버리고 바람을 맞고 싶을 정도로 불쾌해졌고 내 왼쪽 어깨는 여전히 욱신거리고 있었다.
도저히 잔다거나 기분이 편안해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자꾸 흔들리는 차체 때문에 왼팔이 자꾸 움직여서 다시 좌석에 앉았다. 땀에 젖어 허벅지에 달라붙은 내의가 느껴졌다.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불쾌했으 나 나는 이미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있었다. 계속 앉아있으니 피가 머리에서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정신이 몽롱해졌다. 잠시라도 내 몸의 감각들이 희미해져서 기분이 좋았다.
잠시 후, 수송차의 엔진소리가 잦아들고 차체의 흔들거림이 멈추더니 앞쪽에 앉아있던 지휘관이 먼저 내리면서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아까 싸울때와는 전혀 다른, 심지어 약간은 온화함까지도 느껴지는 듯한 말투로 우리들에게 말했다.
“내려라. 우리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을 것이다. 곧 위생병들이 너희들의 상태를 봐 주러 올 것이다.”
의외로, 차 안에 남겨진 시체는 몇 구 없었다. 몇몇은 우리가 정신없이 도망오는 동안 길바닥에 떨어진 것 같았다. 다시 찾으러 간다고 해도 이미 우리를 뒤따라온 중앙군의 차량에 수도 없이 짓밟혔을 테니 얼굴은커녕 사람인지 아닌지도 구분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좀 더 멀쩡한 상태’에서 장례식을 치루어 줄 수 없다는 것이 안쓰러웠다.
내 몸을 중력으로부터 받쳐줄 수나 있을지 의심이 갈 정도로 힘이 풀려있던 다리에 간신히 힘을 주었다. 후들후들거리기는 했지만 일어설 수 있었다. 내 옆에 있던 동료는 다리가 제대로 버티지 못해 넘어지기도 했다. 나는 그나마 상태가 나은 편이었다.
“이런-”
지휘관이 할 말을 잃었다. 다른 것들은 괜찮아 보였지만, 유독 통신기지만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이곳 이멜반은 일반 차량은 본부와 연락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 험악한 곳이다. 그런데 통신기지가 파괴되었다는 것은, 여기로 중앙군이 쳐들어 온다고 해도 본부에 연락을 하지 못하니 그냥 가만히 앉아서 죽을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멜반 방어기지를 제외하면, 우리가 쉴 수 있을만한 다른 ‘안전한’ 방어기지는 한참 멀리 떨어져 있다. 더 이상 움직일 힘도 없는 상태에서 또 후퇴한다는 것은 불가능할테니- 별수없이 여기에서 하룻밤을 쉬는 수밖에 없다.”
지쳐서 자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된 우리들로서는 지휘관의 말을 귀담아 들을 리가 없었다. 그저 아무데나 편히 누워서 자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몇 명은 이미 땅바닥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위생병들이 그들을 기지 안으로 데리고 갔다.
방어기지라 시설이 아주 좋지는 않았지만, 침대만큼은 푹신했다. 힘이 풀린 팔로 군복을 힘겹게 벗어놓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또다시 내 예상과는 전혀 반대로 정신이 다시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침대의 따뜻함이 느껴지고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이틀동안 겪었던 일들이 그나마 평온했던 정신상태를 뒤흔들어 놓았다. 처음에 소대장이 저격당했던 일과 함께 다른 참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온몸이 덜덜 떨렸고 온기와 한기가 동시에 내 몸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전쟁에 대한 공포가 다시 나를 짓눌렀다. 지난 이틀이 한없이 긴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그저 잘 알지도 못하는 전쟁에 대한 환상만으로 해방군에 자원 입대한 내가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언제, 어떻게 죽게 될지 모르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졌고, 마치 그 소원을 들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기억이 점점 흐려졌다.
-하지만 그것은 잠이 드는 것이었지 기억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모청- 중앙국 비볼테 서부 3지역 보병기지
다른 동료들은 벌써 대피했고, 폭격 대비용 방호벽을 전개하느라 마지막으로 남았던 나와 데마이어는 신속히 지하 벙커쪽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가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을 때, 바닥이 뒤흔들리고 나와 데마이어가 뒤로 넘어졌다. 해방군의 폭격이 벌써 시작된 것이었다. 운이 좋게도, 멍청한 해방군 녀석들의 전투기가 우리쪽의 대공포화를 피했나 보다.
다시 일어서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뛰려고 하였으나, 우리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엘리베이터의 바깥쪽 문이 약간 열려 있었고 그 틈 사이로 엘리베이터의 동체가 보이지 않았다. 폭격 때의 충격으로 밑으로 내려간 것 같았다. 자석들이 작동을 멈추거나 부서져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잡아준다던’ 비상용 제동장치는 젠장스럽게도 한 박자 늦게 작동된 것 같았다. 즉, 빌어먹을 엘리베이터가 나갈 곳이 없는 통로 한가운데에서 멈춰 버린 것이다.
“데마이어, 비상 통로는 어디있지? 내 헬멧에는 이 기지 정보가 없어.”
내 물음에 데마이어는 별로 급한 상황이 아니라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방금 우리가 지나왔던 두 번째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될거야.”
다시 폭음이 몇 번 울리고 바닥이 흔들렸지만 넘어지지는 않았다. 비상 통로 쪽으로 돌아가다가 주위의 그림자가 갑자기 짙어지는 것을 느낀 우리는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크기의 폭음을 여러 번 들으며 또다시 넘어져 뒹굴어야 했다.
“참호 파괴탄 [투하형 폭탄 중의 한가지. 탄두가 여러 단계로 나뉘어져 있고 또 폭발력이 앞으로 집중되게 설계되어 수 차례 폭발하며 참호나 지하 기지의 깊숙한 곳까지 도달한 다음 마지막 폭발물이 폭발하며 초토화시킨다. 시대가 지나며 점점 더 그 크기가 작아져 어떤 개량형은 심지어 소형 정지형 항공기(헬리콥터와 같이 공중에서 멈출 수 있는 항공기)도 투하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것도 있다.]인가! 우리 대공전력들은 뭐 하고 있는거야-”
데마이어가 욕설을 퍼부으며 다시 힘겹게 일어섰다. 그리고는 지하 쪽으로 내려가는 비상 통로의 문을 열었다. 뜨거운 바람이 우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상하게도 지하층이 너무 환했다.
계단을 타고 한참을 내려가자 걷잡을 수 없이 불이 번진 지하층의 모습이 들어났다. 수도 없이 많은 시체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몇 명은 살아있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두 명이 각자 팔과 등을 다친 것 빼고는 다른 부상은 없었다. 자동 소화장치마저 작동하지 않았기에 오래 전 훈련할 때 만져본 이후로 처음으로 수동 소방 호스를 들게 되었다. 간신히 진화작업을 끝내고 다시 한참동안 폭격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열 대? 열 대는커녕 한 70대나 80대는 와서 퍼붓는 것 같구만. 방호벽마저 소용이 없으니- 이봐, 통신을 할 수 있을까?”
“주파수가 잡히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탈출해서 근처에 있는 다른 기지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궁시렁대던 한 고참의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걱정되는 것은 탈출할 때 이용할 차량이었다. 지하기지 맨 아래층마저 시체가 쌓여있는데 위쪽이 성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해방군은 우리에게 대화나 할 여유를 주지 않고 계속 폭탄을 퍼부었다. 항상 필요 이상의 무기를 낭비해 대는 것은 역시 멍청한 해방군밖에 없었다.
-전쟁은 그 실체를 접하기 전에는 그 어느 것보다도 매력적이다.- 바토 쿠사나기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