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 로센버그
대륙 해방연합군 보병대 소속.

진 오헨
세계 남부 군사 연합 시가지 전투대 소속.

모청
중앙 민주국 특수 침투대 소속.

-“중앙군 및 중앙군 정부에 대한 공격을 최종 승인합니다. 5월 19일부로 작전을 개시합니다.”-

-5월 19일
라이너 로센버그- 아인그 보병 훈련장
이 곳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나에게 버거운 철덩이를 들고서 진흙땅을 뒹구는 일을 ‘매일같이 규칙적으로’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건 참 좋은 일일 듯 싶다.
해방군이 드디어 공격을 시작한다고 해서, 나는 내일 전장에 나가게 되었다. 실제로 전투가 시작되면 자신이 힘이 드는지, 무서운지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훈련장에서는 고통이 모두 느껴지기 때문에 차라리 전장이 낫겠다고 생각한다.
오늘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한다. 매우 먼 지역인가보다.
같이 훈련했던 친구들은 그다지 긴장되지 않는 듯한 표정들이다. 여유롭게 대화를 주고 받으며 한바탕 웃기도 한다. 공포를 잊기 위해 저러는지, 막상 코앞에 닥치고 나니 별로 감흥이 없는지 모르겠지만-나는 저들과 함께 떠들만한 용기가 없는 것 같다. 그저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 내 무기에는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손질한 후, 이곳에서 지겹도록 들어왔던 ‘전투에서 꼭 잊지 말아야할 것들’을 되뇌일 뿐.
수송차에 탔다. 밤 동안 계속 이동해 해가 뜨기 전까지는 도착할 것이라고 한다.

-5월 20일
모청-쿠르젠 제 3녹지.
“ARS (Anti Radar Suit의 약자. 레이더에 잡히지 않도록 특수 코팅이 되어 있는 군복이다.) 작동. 위치 확인 바람.”
“탄약 준비 완료.”

라이너 로센버그- 쿠르젠 제 2녹지
차량에서 내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직 중앙군(중앙 민주국 군대)들은 우리가 공격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나보다.
“레이더에 포착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전진.”
소대장의 목소리에 여유가 있다. 쿠르젠 쪽은 그저 별 일 없이 정찰 임무를 수행하고 나서 본군과 함께 합류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정찰부대다-내가 살 확률이 높진 않겠지.

모청-쿠르젠 제 3녹지.
“여기서 대기한다. 적군과의 교전 전까지 더 이상의 통신은 없다.”

라이너 로센버그- 쿠르젠 제 3녹지
역시 조용하다. 소대장의 교신을 통해서 그의 긴장이 점점 풀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뭔가 있을 것 같아서 곳곳을 뒤져본지도 벌써 8시간이 지났다. 우리는 깊은 숲을 지나와서 약간 넓은 길로 나왔다. 소대장과 운전수만 차량에 타고 있었지만, 바람이 충분히 불어서 땀을 식혔기 때문에 그다지 불평할 일은 없었다.
푸른 하늘- 해방군의 진지와는 달리, 오염이 되지 않아 깨끗한 쿠르젠은 병사들에게 경계심보다도 자연에 대한 낭만을 갖게 했다.
“자, 우리가 중민국을 해방시키면 이런 녹지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가족과 함께할 조용한 숲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생각해보라! 여러분이 목숨을 다해 싸워서 이기고 살아남는다면 이 곳은 여러분의 것이 된다! 힘내자!”
소대장이 소대원들의 사기를 돋우었다. 다들 힘차게 소리를 지르고는 대열을 재정비했다.
어느정도 계속 가다가, 우리는 조그만 시가지에 도착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약 2시간 뒤에 다시 출발하기로 했다. 병력의 3분의 1은 계속 경계태세에 있고 40분마다 교대를 하기로 했다.
건물 안에서 수도관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여기에 민간인들이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사용해도 되는지 소대장이 타고 있던 지휘차량에 다가갔다.
“소대장님, 저쪽 민간인의 것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습니다만…”
그는 해치에 상반신을 내놓고 바깥쪽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그의 눈은 풀려있었고 이마에는- 구멍이.
운전수 역시 죽은 것 같았다. 순간 당황해 말을 더듬으며 소리를 질렀다.
“소대장님이 저격당했다! 위생병! 위생병은 생존여부를 확인바란다!”
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박히는 소리밖에 없었다. 나의 목 쪽을 비껴 나간 총알이 내 뒤쪽의 건물벽에 깊숙이 박혔다. 벽과 마찰해 끔찍한 소리를 내며 총알은 회전을 멈췄다. 아직 저격수가 이쪽을 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동료들이 급히 내 쪽으로 달려왔다.
“누-누구야! 나와!”
겁에 질린 동료들 중 한명이 총알이 날아온 듯한 방향을 향해 미친 듯이 총을 쏘아대 한 탄창을 전부 비웠다. 나머지 동료들은 멍하니 보고 있다가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허둥지둥 근처의 엄폐물에 바싹 붙었다.

조그만 쇠소리.
“투폭탄 (수류탄. ‘던져서 터지는 폭탄’.)이다!”
폭발음은 들리지도 않았다. 아마 너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불빛과 함께 족히 다섯명은 되어보이는 소대원들이 위쪽으로 튀어올랐다. 군복 덕분에 몸이 찢어지는 것까지는 막아준 것 같다. 그들은 쓰러져 신음할 틈도 없이 바로 숨이 끊어졌다.
이어서 시끄러운 기관총소리가 귀를 메웠다. 미처 피할 시간이 없던 소대원 두명 중 한명은 총알에 머리가 뒤로 젖혀지고 한명은 배를 감싸쥔채 죽었다.
전쟁의 두려움이라는 것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2분전만 해도, 수도를 발견하기 전만 해도 우리는 그저 지루하게 한달이고 몇년이고 걸어다니다 보면 전쟁이 끝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앞에서 처참히 죽은 동료들의 시체는 위로해줄 틈도 없이 아직 살아있는 우리들을 맞추지 못한 총알들에 의해 더욱 찢겨지고 흉해질 뿐이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입을 감싸쥐었다.
도대체-
왜-

모청- 쿠르젠 제 3녹지
소대장과 운전수의 머리를 정확히 맞추고 통신기가 들어있던 박스도 박살내 버렸다. 그러나 재수없는 정찰병 한 명 때문에 조용히 돌아가려던 우리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그 녀석이 다른 적군들에게 알리기 전에 마저 사살하려 했으나 긴장한 나머지 빗나가고 말았다. 결국 적군은 떼로 몰려왔고 그 중 한 명이 우리 근처에 총을 쏴댔다.
옆에 있던 분대원이 비상시의 계획에 따라 바로 투폭탄을 던졌고 다섯명이 죽었다. 사망자 중에는 방금전까지 아까운 총알을 낭비하던 멍청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와 분대원들은 바로 SMC (Small Machine Cannon. 중앙국에서 개발한 일종의 기관총인데 정식 명칭은 Infantry Battle Supporter Light Machinegun-13이다. 가벼운 몸체에 큰 구경, 빠른 연사속도로 인기를 끌었으나 반동이 심해 병사들에게서 ‘대포’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원래 명칭이 부르기에 번거롭다는 이유로 SMC라는 별칭이 더 자주 쓰이게 되자, 이후 중앙군 본부에서도 이것을 정식 명칭처럼 쓰기 시작했다.)를 장전, 그들이 엄폐물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빗발치듯 쏟아부었다. 두명을 추가로 사살했으나 아직 스물 한명이나 남아있었다. 저격, 투폭탄에 SMC 난사로도 우리 분대의 네배를 남겨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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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이트에서 36회까지 연재된 23세기 배경의 소설 해방전쟁입니다. 보시고 감상이나 조언 등을 달아주시면 고맙게 받겠습니다.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