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보행자 9


  탈출정은 한 대도 발사되지 않았다. 모든 승무원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들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우주에 있는지 아니면 나에게 있는지 가늠하기란 어려웠다. 지구는 우리의 고향이었고 집이었는데, 이제 당분간 돌아가지 못한다면 다른 행성에 정착해야 했다. 이주 생활은 잠깐일 것이었으나 더더욱 가늠하기 힘든 미래였다. 앞의 강력 유리창을 통해 나는 아비스 함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함장인 폴에게 그의 함선 내부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침투했는지를 물어보아야 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복구와 점검을 권고해야 했다. 폴에게 경고하기 위해 통신 채널을 열려고 하는데 빌이 다급하게 내게 말했다.

  ㅡ 지구로부터 커다란 함선 한 척이 포착되었습니다. 크기가... 어마어마합니다.
  ㅡ 내 신호에 맞춰 공격할 준비하게. 잠깐. 스캔된 적함을 보여주겠나?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어마어마한 크기라면 지구 함선 중 한 대 밖에 없었다. 국가 중요 귀빈급 대피를 위해 주요 무기보다 방어막에 치중되도록 설계된 함선 페에드부르크. 하지만 나는 그 함선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대피선이 지금 이 상황에 우리쪽으로 접근할 리가 없었으니,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 함선은 몇 가지 무기 시스템을 탑재했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ㅡ 폴, 내 말이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후퇴하게. 가능하면 초공간으로 대피하게.
  ㅡ 일단 싸워봐야 합니다. 이미 공격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ㅡ 아냐. 자네 함선의 수리를 담당한 사람이 얼 준장이었지? 그가 아비스 함에 손을 댔을 수 있네. 빨리...

  그때 아비스 함이 휘청거렸다. 그러나 아비스 함의 상태를 확인하기도 전에 모니터에 거대한 함선이 잡혔다. 링컨 급의 함선. 공격용으로 극상의 함선이 격침된 링컨 함이었다면 방어막으로 월등한 함선이 바로 저 페에드부르크였다. 나는 아비스 함을 확인하는 것보다 빌에게 회피 기동을 명령했다. 선체가 좌현으로 틀더니 페에드부르크의 옆으로 비껴 지나갔다. 페에드부르크와 근접했을 때 레일 포의 가속 포탄들이 연거푸 발사되었지만 적 방어막은 손상되지 않았다. 근접 방어체계의 기관포 역시 저 극상의 방어막 앞엔 무용지물이었다.

  ㅡ 폴, 아비스함의 상태는?
  ㅡ 무기 시스템이 완전 다운되었습니다! 방어막이 계속 감소하고 있습니다!
  ㅡ 링컨 함 때와 똑같군! 여긴 우리에게 맡기고 초공간으로 가게! 3시간 뒤에 다시 이곳에서 만나지!
  ㅡ 마에스트로로 저놈을 어떻게 막습니까? 죽을 때 죽더라도...
  ㅡ 내 말이 이해가 안 되나? 빌. 적함의 위쪽으로 이동하도록. 수직 포격을 실시한다!

  마에스트로는 미끄러지듯 우현으로 틀면서 위로 상승했다. 그리고 한 바퀴 회전을 하고 페에드부르크 함보다 고도를 높였다. 아무래도 적함은 부피가 워낙에 크다보니 마에스트로를 공격할 위치를 잡는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적함이 기동을 하는 동안 우리는 공격할 시간을 얻은 셈이었다. 레일 포가 쉴새없이 울려댔다. 적함의 가운데에 계속 명중했지만 적함의 방어막 감소는 너무 적었다. 페에드부르크가 공격용 함선으로 전환되었다고는 하나 그래봐야 레일 포가 선체의 전면부에 한 개 뿐이 없었고 열 여섯개의 기관포가 전부였다. 페에드부르크의 기관포 포신이 90도로 올라가며 마에스트로를 겨누었을 때 빌은 마에스트로를 180도로 회전시켜서 페에드부르크의 좌측으로 이동했다. 기동은 부드러웠고 날렵했다. 앞의 강화 유리창 너머로 페에드부르크의 좌측부가 보였다. 작은 점들도 보였는데 아마 저쪽 승무원들의 머리인 것 같았다. 페에드부르크의 승무원들이 자의적으로 이 반란에 동참한 것인지 아니면 상부의 명령 때문에 우리를 공격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적이었고 그들의 상황을 보아줄 수 없었다. 함대함 미사일 여섯 기가 적함에 맞았으나 적함의 창문도 흔들리지 않았다.

  ㅡ 적함의 방어막은 10%도 줄지 않았습니다! 포탄만 낭비하는 것 같습니다!
  ㅡ 우리쪽 방어막은? 
  ㅡ 아비스함과 동일한 방어막으로 교체되었기 때문에 아직 치명적인 피해는 없습니다. 오...이런!
  ㅡ 왜 그러나?
  ㅡ 적함이 좌측으로 항로를 변경했습니다. 우리쪽으로 전진해오고 있어요! 들이받으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ㅡ 페에드부르크 함으로 통신 채널을 열게! 그리고 내 말을 타전하게. 지금 당장 속력을 줄이지 않으면 우리도 공격을 멈추고 타협하겠다. 그러지 않으면...... 핵미사일 3기를 전부 발사하겠다고. 그렇게 전하게.
  ㅡ ..... 알겠습니다, 함장님. 

  핵미사일은 최후의 수단이었다. 미사일과 가속 포탄이 다 떨어졌을 때, 마지막 도박으로 사용하는 수단이 바로 핵폭탄이었다. 위력은 제일 막강했지만 적이 피격당했을 때 초공간으로 도약하지 않는 이상 우리쪽도 날아간다고 봐야 했다. 아무리 페에드부르크라 해도 전면부에 핵미사일을 연달아 세 발이나 맞는다면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한 발만으로도 적의 항로를 변경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러나 적함은 페에드부르크다. 링컨 함보다 방어막이 월등한 함선이다. 적은 속력을 줄이지 않았다. 아마 내가 한때 동료였던 승무원들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으리라. 사실 내게도 핵미사일을 발사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엄포였을 뿐. 그러나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함대함 미사일 다섯 기가 다시 날아올라 적함을 강타했지만 폭발은 너무 미미했다. 빌은 선체를 급강하시켰다. 아슬아슬하게 적함은 위로 스쳐지나갔다. 우측으로 이동하여 레일 포를 발사했으나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통신 채널을 다시 적함에게로 열었다. 
 
  ㅡ 이번엔 진짜로, 핵을 발사하겠다. 승무원들에겐 솔직하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어쩔 수 없다. 공격과 기동을 모두 멈춰라. 그렇지 않으면 최후의 수단을 가동하겠다. 방어막이 아무리 월등해도 핵폭발을 세 번이나 막을 순 없을 것이다.
  ㅡ 함장님? 다시 돌진해옵니다!
  ㅡ 스피딕스 미사일은? 적 방어막을 무력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ㅡ 페에드부르크의 방어막은 모든 걸 막아냅니다! 화약이 아니라 빈 깡통이어도 마찬가집니다. 아까 시도해봤지만, 적 방어막은 피해가 없습니다. 충돌까지 20초 남았습니다. 방어막은 88%로 안정적입니다,
  ㅡ 적 공격수단이 얼마 없는게 다행이군. 5초를 남기고 적을 피하게. 레일 포와 모든 기관포를 적 전면부로 발사하라! 
 
  수천 발의 기관포 탄환이 발사되어 적을 맞췄지만 그야말로 적은 완전 돌격이었다. 아마 들이받기 위해 거의 모든 방어막을 앞쪽으로 밀어놨을 것이다. 5초가 남았을 때 마에스트로는 좌측으로 선체를 틀었다. 시야가 왼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때, 적함도 나와 같은 방향으로 항로를 틀었다. 충돌에 대비하라! 라고 소리치려는 찰나,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함내로 번져나갔다. 계기판과 모니터에서 불똥이 튀며 이리저리 스파크를 튀겼다. 두 바퀴를 돈 마에스트로는 간신히 위치를 바로잡을 수 있었지만 피해는 막심했다. 방어막이 60%로 떨어졌고 미사일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다섯 명이 뇌진탕 증세를 보였고 어깨와 손가락이 탈골된 승무원도 있었다. 의무실로 옮겼지만 정신을 놓은 승무원도 몇 있다고 했다. 빌도 어깨를 다친 듯 했다. 
 
  ㅡ 빌, 미사일 시스템에 공급되지 않는 동력을 방어막에 집중시키게. 내 신호에 따라 공격하고 그 다음 즉시 방어막 동력의 일부를 초공간 진입 시스템 복구에 활용하여 즉시 도약할 수 있게 준비하게.
  ㅡ 예, 함장님. 하지만 레일 포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겁니다.

  미사일 시스템에 필요한 동력을 방어막으로 옮기자 방어막이 70%까지 올라갔다. 페에드부르크는 다시금 돌격할 준비를 하는지 마에스트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빌은 다시 충돌하게 된다면 그것은 40초 뒤라고 말했다. 적함은 계속해서 다가왔다. 타이머가 20초 대로 떨어지자, 나는 적함에서 좌측으로 500m 떨어진 곳에 핵미사일을 발사하도록 했다. 페에드부르크가 격침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피해를 입을 것임에 분명했다. 핵미사일 1기가 솟아올라 적함에게로 날아갔다. 일반 미사일 시스템에 공급되는 전력선은 핵미사일과 달랐기 때문에 발사가 가능했다. 핵미사일임을 알아본 페에드부르크가 일순간 속력을 줄였다. 핵미사일 충돌까지 7초, 5초가 남았다. 빌은 방어막 동력을 조금 우회하여 초공간 엔진을 복구했고 마에스트로는 초공간 진입에 성공했다. 초공간 안에서는 누구도 쫓아오지 못했고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초공간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펑 하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ㅡ 시뮬레이션으로 실험한 겁니다만, 아까의 핵 충격으로 적함은 방어막이 심각하게 감소했을 겁니다. 아비스함과 협공하면 격침시킬 수 있습니다.
  ㅡ 난 그들을 공격하고 싶은 마음 없네. 난, 페에드부르크의 모든 승무원들이 반란에 동참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만약 마음을 먹었다면, 아까 핵미사일 3기를 전부 집중 공격했을 걸세.
  ㅡ 이제 어떡하실 계획이십니까?
  ㅡ 속력을 늦추고 초공간을 느리게 빠져나가게. 아비스함이 지구 궤도에 나타나려면 2시간 정도가 남았으니, 그때 시간에 맞춰서 우리도 지구 궤도로 돌아가지. 그때쯤이면 적함도 퇴각했을거야. 난, 부상자들을 보러 가겠네.

  의무실은 함내 2층에 있었다. 협소한 공간이었지만 다행히 부상자는 많지 않았다. 형광등이 깜박거렸고 의무 장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가아제로 상처를 닦아내고 지혈을 시작하던 군의관이 나를 보았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머리를 다친 승무원은 나를 보자 일어나려 했지만 나는 그를 만류했다. 그의 눈동자와 나의 눈동자가 마주칠 때 나는 우주의 끝을 본 것도 같았다. 우주의 끝은 너무도 가까워보였고 그 끝에 도달하려면 나는 더 낮아져야 할 것 같았다. 그의 계급은 중사였다. 황금색 계급장이 그의 어깨에 매달려 있었다. 중사 옆에는 발에 깁스를 한 승무원이 있었다. 땀으로 이마가 흥건했는데 그는 내게 힘겹게 경례를 붙였다. 그의 계급 역시 중사였다. 위독한 사람은 없었지만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ㅡ 2시간 정도만 어떻게 해주게. 2시간 뒤에 지구 궤도에 돌아가서 아비스 함과 만나면, 아비스에 도킹해서 그쪽 의무 시설을 이용하도록 하지. 그쪽이 더 나을 거야, 우리 보단...
  ㅡ 다행히 걱정스러운 사람은 없습니다, 함장님. 함선은 무사합니까?
  ㅡ 충돌하기 전에 미리 경고를 했어야 했는데, 적이 너무 빨리 다가왔네. 필요없는 동력을 모두 끌어다 방어막 복구에 치중하고 있네. 만약 상태가 심각한 사람이 생겨난다면... 어떻게든 버텨주게.
  ㅡ 알겠습니다, 함장님.

  마에스트로는 대부분 수리가 되었지만 아직 장거리 감지기가 고장이었다. 아예 해체를 해서 전선의 피복을 벗겨내고 다시 이어야 할 것 같았다. 감지기에 공급되는 전력과 방어막 전력은 다른 종류였지만 빌은 방어막 전력을 조금 떼어 우회한다면 감지기의 성능을 30% 수준으로나마 작동시킬 수 있을거라고 했다. 나는 허락했다.

  ㅡ 빌, 함선 컴퓨터에 아마 지구 함선 모든 기종의 설계도와 사진이 있을걸세. 가능한 커다란 용지에 인쇄해서 갖다주게. 특히, 페에드부르크를 중심으로 말일세. 페에드부르크는 워낙 크니까, 부분별로 해주면 고맙겠네.
  ㅡ 알겠습니다, 함장님. 만약 지구 궤도에 페에드부르크가 머물러있다면...
  ㅡ 핵공격의 여파가 컸을테니 적도 우릴 섣불리 공격하진 않을걸세. 아비스함이 우리 편이어서 다행이야. 전투 함선은 남은 게 우리와 아비스가 전부잖나. 다른 함선... 이카루스와 로미누스는 대부분 의료와 대피용 함선이니까...
  ㅡ 하지만 새 링컨 함의 건조가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ㅡ 그렇긴 하지만... 그래, 맞네. 그러기 전에 이 일이 끝나야 하는데. 
 
  2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초공간에서 나왔을 때 감지기에 아비스함이 포착되었다. 지구 궤도에 페에드부르크는 머물러있지 않았다. 먼저 아비스함에서 교신이 들어왔다.

  ㅡ 준장님. 다행입니다. 방금 초공간에서 나왔습니다.
  ㅡ 페에드부르크와 교전할 때 부상자가 있었네. 가능하면 도킹을 실시해서 그쪽 의무실을 쓰고 싶네.
  ㅡ 알겠습니다. 그럼 마에스트로의 우측으로 접근하겠습니다. 그리고 준장님. 사실 제 함선이 이상합니다. 아까도 그랬지만 원인을 모르겠습니다.
  ㅡ 일단 부상자부터 어떻게 하고 대책을 논의해보세. 80광년 떨어진 예이츠 행성에 일단 대피해 있어야겠네. 작전 중 들렀던 행성인데 아무도 살지 않아 항공우주사령부 제 2본부와 공군 기지를 만드는게 어떨까 싶었지. 아직 합참에 보고하지 않았으니 괜찮을거야. 일단, 도킹을 실시하게.

  도킹이 실시되자 부상자 후송은 쉽게 끝났다. 부상자는 모두 아비스함에 탑승했고 나는 아비스함 함장 폴에게 예이츠 행성의 좌표를 알려주었다. 두 함선 모두 초공간으로 진입했다. 초공간은 함선 당 하나씩 열 수 있었기 때문에 함선과 함선 사이의 교신은 불가능했다. 빌은 심란해보였다. 나도 그에게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지를 말할 수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곳은 낙원이라 해도 결코 가는 것이 좋지 않을 것이었다. 관제 본부에서 일하고 있다는 그의 여자친구는 페에드부르크 함이 마에스트로와 교전하기 위해 발사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 지 나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페에드부르크의 충돌 작전이 성공했으며 마에스트로가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들었을 때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모든 표정과 모든 감정은 저 우주의 끝에 있는지도 몰랐다. 우주의 끝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만큼 우주는 광활했다. 하늘로 올라가면 우주가 나왔지만 우주는 사실 끝이 없는 깊은 심연이었다. 끝없는 절벽으로 함선은 이동했고 아주 커다란 바다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 하나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예이츠 행성 까지 약 3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나는 그 3시간이 우주의 끝까지 걸리는 시간이라면, 예이츠 행성이 우주의 마지막 행성이라면, 나는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될 수 없었기에 나는 이유 없이 안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