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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보행자 7


  악몽은 더 이상 계속되지 않았다. 꿈이란 것은 그에 대해 계속 생각하면 할수록 더 깊어지는 것인가보다. 팔걸이가 매끄러운 목재로 만들어진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얼에게서 얻어온 링컨 함의 승무원 파일을 보았다. 그들의 사진이 제일 왼쪽에, 가운데에 이름이, 그리고 오른쪽에 직책과 계급이 적혀 있었다. 파일의 오른쪽 상단엔 '일급기밀'이라는 붉은 도장이 찍혀있었다. 일급이라는 글자보다 기밀이라는 글자가 보다 선명했고 굵었다. 그들의 얼굴은 낯익지 않았다. 함장을 제외하곤 거의 마주친 적도 없는 듯 보였다. 차트의 철자는 매우 날카로운 형태였다. 일렬로 나열된 것이 꼭 화단의 화초 같았다. 나는 승무원 명단을 모두 읽어보았지만 더 기억나지도 않는 꿈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꿈을 꾸고 난 뒤에 링컨함에 대해 전에 없던 관심을 갖게 되었다. 격침되어 이제는 있지도 않은 함선인데, 왜 계속 머리에 떠오르는지. 나는 더 조사해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휴가는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나는 얼 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음이 다섯 번 지속되고 나서 딸깍 멈추며 얼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에게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지 싶었다.
  ㅡ 링컨함의 블랙박스를 보고 싶어서 전화했네.
  ㅡ 불행히 블랙박스는 남아있지 않았네. 블랙박스는 고사하고 함선의 잔해도 없었다는거 자네도 알잖나.
  ㅡ 그래도 항해일지라던가 전투 기록 같은 것은 실시간으로 지구로 전송되잖아. 마에스트로에 그런 기기가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 링컨함에야 없겠나?
  ㅡ 근데 링컨함에 대해선 왜 갑자기 관심이 각별해진건가?
  ㅡ 생각하면 할수록 기분이 나빠져서 한 번 원인을 찾아보려고.
  ㅡ 대답이 이상한걸. 자네 말대로 그런 시스템이 있긴 있어. 하지만 그건 일급 기밀이 아니라 최상급 기밀이야. 나 정도가 아니라 적어도 합참 의장은 되어야 그 문건에 접속할 수 있네.
  ㅡ 그래서 어려워?
  ㅡ 미안하네. 차라리 생존자에게 질문해보는게 더 나을텐데. 일단 웨그먼 소장님께 자네 이름으로 부탁은 해보지. 
  나는 전화를 끊었다. 생존자들은 이제 얼마 없었다. 열 네 명이던가, 그들이 전부였다. 후송 중에 몇 명이 더 죽고, 거의 치료된 사람은 열 명 가량이 될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공군 병원에 입원해있었다. 그들의 상처는 깊었고 치명상이었다. 철골에 가슴이 관통된 승무원도 있었고 뇌가 마비되어 뇌사판정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모두, 공군의 인재들이었다. 위병을 불러 기지 내의 공군 병원에 데려다줄 것을 요청했다. 지프는 곧 도착했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한 나는 예상치 못한 관문에 부딪혔다. 
 
  ㅡ 안된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ㅡ 합참에서 생존자들을 격리시켰습니다. 그리고 이 안의 환자들은 모두 기밀 사항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길래 면회 기록도 쓰지 않고 환자들을 만나겠다는 겁니까?
  ㅡ 비공식적으로 하고 싶어서요, 군의관. 내 권한이면 환자를 만나는 것 쯤은 아무것도 아닐텐데.
  ㅡ 이봐요 장군님. 난 우주군에 속한 군의관입니다. 이들은 우주에서 상처를 입은 겁니다. 됐습니까?
  그는 아마도 공군 내에서 우주군이라는 곳이 거의 이름 만으로도 극비 부대라고 알려져있는 것을 허세 삼아 내게 말했다. 굳이 나는 내 직책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알리게 되면 들어갈 수야 있겠지만 합참에서 나의 행동을 알게 될 것이다. 합참이 나와 적은 아니었지만 생존자들을 격리시킨 것이 합참이라는 군의관의 말에 일단 나는 그쪽에서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는 왠지 당황스러워 보였다. 대부분 우주군에 속한 사람이라면 군 정보부원을 만난 것처럼 모두가 조심한다. 그만큼 위세가 등등하다. 그냥 내가 함장이라는 사실을 밝힐까, 아니면 계속 설득해볼까 생각했다.
  ㅡ 흠, 그럼 이들은 공군이 아니라 우주왕복선의 민간 승무원 아뇨?
  ㅡ 뭐, 그런 셈이지요. 더 자세하겐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이만 돌아가시죠.
  그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홱 몸을 돌려 다른 쪽으로 가버렸다. 나는 그를 불렀다.
  ㅡ 군의관!
  ㅡ 또 뭡니까?
  ㅡ 말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군. 자네 계급이 뭔가?
  ㅡ 우주군 소속의 의무관 소령입니다. 장군님은요?
  ㅡ 아직 자네가 무슨 실수를 범하는지 모르는 모양인데, 난 자네 태도에 대해 말하는거야.
  ㅡ 좋아요. 제가 맡고 있는 환자들은 우주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부상 당한겁니다. 이게 다예요.
  ㅡ 그러니까 셔틀(우주왕복선)을 말하는거군?
  ㅡ 맞아요, 맞다구요. 셔틀이에요. 
  아무래도 정중한 방법으로 일을 해결하기는 틀린 것 같았다. 일단 군의관이라는 놈 자체부터 틀려먹었다. 우주군이 공군 내의 극비 부대로서 은하 간, 행성 간 임무를 수행하는 탓에 일반 부대보다 급이 높기는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임무의 극비성 때문에 그런 것이지 이렇게 다른 부대에 속한 사람을 깔보고 하대하는 듯 말하는 건 부당한 일이었다. 나는 한 번 떠보기로 했다. 이 시도가 실패하면 나는 당당하게 함장임을 밝힐 것이다.
  ㅡ 좋아, 군의관. 내가 보기엔 자네가 우주군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행동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네. 그래서 말이지.
  ㅡ 또 뭘 가지고 그러시려구요?
  ㅡ 자네를 일반 부대로 복귀시키려고. 말하자면, 자넨 해고가 된거지. 자네같은 사람은 병참 부대에서 사병들에게 반창고나 붙여주도록 말이야.
  ㅡ 예? 장군님께서요?
  ㅡ 그래, 내가 못할 것 같나보군. 아아, 우주군은 항공작전지휘본부에서 총괄하지? 놀라지 말라구. 나도 별을 다니 우주군이 어디 있는지는 안단 말이지. 거기, 이름이 뭐더라? 얼, 맞아, 얼이야. 얼. 그가 내 사관학교 동긴데 지금 자네의 심각한 위계질서 태도를 그에게 말할 참일세. 위병!
  ㅡ 예, 장군님
  ㅡ 항공지휘부의 얼 준장에게 이 썩어빠진 사람을 인계하게. 내가 얼에게 전화해두지.
  그러자 갑자기 군의관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는 내 정복 소매를 확 붙잡더니 당장 환자들에게 안내하겠다고 말했다. 등줄기를 곧게 펴고 명령을 기다리는 이등병처럼 태도가 변했다. 나는 굳이 내 신분을 밝히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나는 위병에게 돌아가 있으라고 말한 뒤 군의관을 따랐다. 나는 그에게 빈정댔다.
  ㅡ 아니 왜 우주군이라는 군의관이 갑자기 마음이 변하셨나?
  ㅡ 아닙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됩니다, 장군님!
  ㅡ 난 앞으로 얼마 남았느냐가 아니라 왜 우주군이라는 자부심이 없어졌냐를 묻고 있네. 
  그는 내 말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쪽의 문을 가리켰다. 새로 페인트를 칠해서 냄새가 조금 번졌다. 그는 카드를 그었다. 문이 열리며 잠금장치가 철컥 철컥, 풀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불쾌했다. 이것은 병원이 아니라 감옥이었다. 생존자들이 무슨 비밀을 알고 있길래 이렇게 가두어 놓는 것일까. 외부와 격리해야만 하는 당위성이 있는 것일까.
  그는 나에게 경례를 붙이며 문을 나섰다. 문은 잠겼다. 하지만 밖과 달리 안에서는 자유로이 열 수 있는 구조 같았다. 8인용 병실이었다. 방의 크기는 몹시 컸고 침대는 좋은 편이었다. 그들은 장군인 나를 보자 기립하려고 했지만 내가 사양했다. 그들은 밥을 먹다 말고 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곧 그들은 상을 옆으로 치우고 침대 위에 정좌로 앉았다.
  ㅡ 난 자네들에게 뭘 좀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네. 뭐, 시간이 좀 있다면 말이지.
  ㅡ ......
  ㅡ 군의관이 자네들은 우주에서 임무를 수행했다는데, 그 임무가 뭐였는지 아나?
  ㅡ 죄송합니다, 장군님. 장군님께서 어느 소속이신지 알려주시지 않으시면 저흰 대답할 수 없습니다.
  ㅡ 뭐, 보나마나 셔틀에 있다가 운석 같은 거에 맞은 거겠지. 그렇지 않나?
  ㅡ 비슷합니다, 장군님.
  ㅡ 그... 우주선의 이름이 뭐였나?
  ㅡ 링컨호였습니다.
  링컨 호. 나는 피식 웃었다. 링컨 호. 링컨 함이 아니라. 함이라는 말은 함선에 붙는 말이었고 호라는 말은 왕복선에 붙는 말이었다. 나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넌지시 말했다.
  ㅡ 링컨 호란 말이지. 내가 알기론 링컨함인데, 그렇지 않나? 우주군 함대 중 최고의 함선 말일세. 불행히 크로나 궤도에서 불타버렸지만.
  ㅡ 장군님은 누구십니까? 우주군이십니까?
  ㅡ 군의관에게는 말하지 않았네만 그렇네. 난 링컨함이 격침되었다는 소식에 의문이 들어서 온 걸세.
  ㅡ 죄송합니다만 사실입니다, 장군님.
  ㅡ 난 마에스트로 함 지휘관일세. 만나서 반갑네. 난 여기 들어온 것을 합참에 알리지 않으려고 일부러... 우주군이 아닌 척 했지만, 사실 난 함장이네. 이건 믿어도 좋아.
  그들은 드디어 오해를 푼 듯 보였다. 나를 대하는 그들의 얼굴이 평온해졌다. 생존한 승무원들은 특별 격리 조치에 반감을 갖고 있지 않는 듯 보였다. 그들은 오히려 병원 안이 더 편해보였다. 그렇다면 이들은 격리된 것이 아니라 특별 조치를 받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된다. 휴대폰을 들어 폴더를 열었다. 얼에게서 온 메시지가 없는 것으로 보아 아직 블랙박스나 그와 같은 기능을 하는 문서를 입수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묻는 것이 백 번 정확할 듯 싶었다. 일단 나는 방어막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난 방어막을 완전히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링컨함의 방어막은 나의 함선의 것보다 적어도 네 배는 강했다. 반탄력도 뛰어나 왠만한 크기의 파편들은 방어막 근처에서 더더욱 밀려났다. 그만큼 안전도가 높은 함선이었다. 극빈 인사들을 위한 페에드부르크 함의 방어막 정도는 되어야 링컨함과 견줄 수 있을 것이었다.
  ㅡ 방어막에 대해서 묻고 싶었네. 교전 시간은 채 10분도 되지 않았다면서.
  ㅡ 그렇습니다, 장군님. 방어막이 이상하게도...
  ㅡ 너무 순식간에 고갈되었습니다!
  ㅡ 맞습니다, 장군님. 저들의 공격이 강하다는 건 알았지만 꼭 방어막이 저 스스로 내려간 것 같았습니다.
  ㅡ 그게 무슨 말인가?
  ㅡ 몇 발 맞지도 않았는데 방어막 자체가 완전히 소실되었다는 말입니다.
  ㅡ 마에스트로는 링컨함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방어막이 약하지. 직격탄을 맞으면 한번에 25%가 감소했네. 많게는 30%까지도 떨어진 적이 있었지.
  ㅡ 말도 안 됩니다, 장군님. 마에스트로가 그랬다면 링컨은 한 스무발은 맞아야 겨우 20%가 감소할 것입니다.
  ㅡ 그 말은?
  ㅡ 다섯 발 정도에 방어막이 없어졌습니다. 방어막이 없어지면서 방어막 동력이 고갈되고, 그것이 다시 다른 동력 부분에 치명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생명 유지장치가 부서졌고 선체에 금이 여러 군데 갔습니다. 그리고...
  ㅡ 탈출선도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두 대, 그것도 함선이 피격당하는 동안 수리를 해서 탈출한 것입니다.
  ㅡ 링컨 함의 함장님은 일이 이렇게 되자 함선을 포기하고 핵미사일을 날리라고 했습니다만 핵 사일로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ㅡ 뿐만 아니라 함재기들의 엔진이 다들 파손되어 있었습니다. 
  ㅡ 한 발이 피격당하면 그만큼만 방어막이 떨어져야 하는데 계속 저하했습니다.
  ㅡ 그 말은 누가 링컨함에 손을 댔단 말인가?
  ㅡ 하지만 그것도 이상한 것이, 분명 지구 궤도에서는 정상 작동했습니다. 크로나 궤도에서 일이 벌어진 겁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위병 다섯 명과 함께 군의관이 화난 표정으로 들어왔다. 군의관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위병은 내가 데리고 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슴 윗부분에 우주군이라고 쓰여진 명찰이 보였다. 그들이 내 팔을 잡고 끌어내려 하자, 나는 기다리라고 소리치며 속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옆 탁자에 올려놓았다.
  ㅡ 위병들은 이 사진을 보고 나서 날 잡아가든지 어떻게 하든지 하게. 군의관, 자넨 대기하고.
  위병들은 탁자 위의 사진을 들어 보고는 나를 바라보며 허억! 하는, 숨이 멈춘 듯한 얼굴을 했다. 군의관은 영문도 모른 채 나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내 속주머니에 들어있던 사진은 착륙한 마에스트로 함을 배경으로 나와 모든 승무원들이 촬영한 사진이었다. 그 사진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증명하는 증거가 되었다. 위병에게서 사진을 돌려받고 다시 속주머니에 집어넣은 다음, 나는 위병들에게 명령했다. 
  ㅡ 저 자를 이 방에서 끌어내고 나가있게. 
  ㅡ 예, 장군님. 
  군의관은 악을 썼으나 위병은 간단히 그의 팔을 꺾어 제압한 뒤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나는 다시 생존자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들에게서 얻은 대답은 너무도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진실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신빙성이 있었다. 이들은 링컨함의 승무원인 것이다. 
  ㅡ 그럼 크로나 궤도에서 함선의 동력이 나가거나 했나?
  ㅡ 아닙니다. 적의 공격을 받기 전까진 아무 이상도 없었습니다. 일은 피격 당하고 난 뒤부터 벌어진 것입니다. 
  ㅡ 누가 링컨함이 격침되도록 사주했던 것 같군. 합참에선 아예 그 일을 모르네. 
  ㅡ 이야기는 드렸지만, 저희도 통...
  ㅡ 고맙네, 몸조리 잘 하게. 아마 자네들은 휴가를 보내다가 다시 링컨함이 새로 건조되면 그곳에 배치될걸세. 
  ㅡ 장군님, 하나 더 있습니다. 
  ㅡ 말해보게. 아는 것 하나라도 더 말한다면 나야 고맙지. 
  ㅡ 브룩스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함선의 부관이었습니다. 그가 엔진을 복구하려고 노력할 때 저도 옆에 있었습니다. 그건 일종의 컴퓨터 바이러스 같았습니다.  하지만 영어가 아니었습니다. 여기, 이런 글자였습니다.
  그는 휴지 위에 펜으로 이상한 모양의 글자들을 써서 주었다. 나는 대단히 고마웠다. 즉, 이런 말이었다. 링컨함은 전투에 들어가기에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무기와 엔진, 방어막은 최대 출력이었고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적함에게 피격당하자마자 갑자기 방어막과 엔진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컴퓨터 바이러스가 활동을 시작해 함선의 동력을 제거했다. 막아내려 했지만 방화벽이 무용지물이었고 바이러스가 퍼뜨린 데이터는 영어가 아닌 다른 글자였다. 함장은 함선을 포기하고 남은 핵미사일을 발사하도록 했으나 그마저도 소용이 없었다. 모든 승무원들은 탈출선에 탑승하려 했으나 탈출선도 모두 고장이 났고, 함재기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수리가 대충 끝난 탈출선들이 차례대로 함선을 빠져나갔다. 그래봐야 두 대 였다. 탈출선이 빠져나가고 불과 몇분 뒤 함선은 폭발했다.
  나는 병원을 나와서 합참 회의실에 전화를 걸어 웨그먼 소장을 대 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반갑게 나를 전화로 맞았다. 내가 할 말을 그가 먼저 했다. 얼이 부탁한 자료가 현재 자신에게 사본으로 있으니 와서 가져가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지프를 불러 합참으로 향했다. 휴지 위의 글자들은 한 번도 보지 못한 글자였다. 외계어인 듯 했다. 하지만 지구 내에 다른 행성 사람은 없었다. 숨겨주는 것도 불법이었고 중죄에 해당했다. 물론 외교관의 임무를 띤 사람들은 제외였다. 하지만 모든 외교관들은 결코 군사 기밀에, 게다가 가장 극비 프로그램인 함선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었다. 나는 갑자기 등골이 오싹했다. 설마 내통을? 그래. 그러면 가능하다. 누군가 내통을 한 것. 아니, 그럴 리가 없다. 함선의 데이터에 침입하려면 적어도 함장이나 함선의 부관 급은 되어야 했다. 세상에 어느 누가 제 죽을 것을 알고서 자기가 탄 함선에 바이러스를 심겠는가. 그것은 자폭이나 마찬가지다. 복잡했다. 

  웨그먼 소장에게서 받아온 것은 한 장의 CD였다. 링컨 함의 항해일지와 전투 상보, 전투 기록이 저장되어 있었다. 컴퓨터에 넣고 작동시켜 교전 당시의 날짜를 검색했다. 4분 정도의 분량이었다. 상세했다. 승무원들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교전 시작 1분 뒤에 방어막이 급속도로 저하했다. 항해 엔진이 순식간에 과부하 되었고 그 탓에 초공간 엔진이 파괴되었다. 핵미사일 발사 명령코드가 입력되었으나 발사되지 않았다. 시간이 갈 수록 방어막은 급감했다. 생명 유지장치가 대부분의 구역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부관 브룩스는 전투 일지를 전송할 때 추신을 남겼다.
  함선의 데이터가 자가 포맷될 뻔 하였다. 다시 포맷이 될 듯 하여 미리 전송한다. 
  그 뿐 아니라 무기 제어 시스템도 피해를 입은 듯 보였다. 특히 전면부의 레일 포는 일반 무기제어시스템과는 달리 독립된 프로그램 하에서 작동되었다. 주된 무기였기 때문이다. 탑재한 미사일의 5분의 1 밖에는 발사하지 못했다. 작동 센서가 피해를 입자 근접 방어체계의 기관포들도 작동을 멈췄다. 수동 제어에 실패한 함선은 교전 4분 만에 탈출 시도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전부였다. 자료는 완벽하지 못했다. 프로그램은 컴퓨터 바이러스의 공격에 대해서도 기술해놓았다. 바이러스는 작동이 시작되자마자 음성이 몇 초간 지속되고 나서 함선을 장악하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그 음성을 찾기 위해 다시 전투 일지를 펼쳤다. 하지만 음성에 대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센서에 잡힌 주파수를 모두 조회했다. 하지만 나는 음향공학에는 조예가 없었다. 주파수가 그린 예각과 직선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느 것이 바이러스의 음성이고 어느 것이 함선 자체 프로그램의 음성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나는 주파수를 따로 백업하여 다른 CD에 담았다. 항공작전지휘본부에는 소리와 음향을 조사하는 기관과 부서가 있었다. 나는 얼른 대답을 알고 싶었다. 나가려다 마침 어제 보관해둔 부재중 전화 메시지를 테이프에 담아 그것도 같이 봉투에 넣었다. 지프를 얻어타고 본부로 직행했다. 
  
  ㅡ 이상한데요. 아직 더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ㅡ 뭐가 이상하다는 건가?
  ㅡ 바이러스의 음성은 기계음이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입니다. 분명 사람의 성대에서 울린 목소리예요. 이건 빌리 준위님 정도의 실력은 되어야 주파수 조정이 가능합니다. 
  ㅡ 이리 주게, 내가 직접 부탁해보지. 
  빌리 준위는 음향공학의 전문가였다. 수많은 소리들을 하나씩 걸러내고 음질을 깨끗하게 했다. 낮게 웅얼거리는 소리와 높게 외치는 소리를 완전하게 구분하기도 했다. 그는 나를 보자 경례했다. 나도 답례했다. 나는 준위에게 정중히 부탁했다. 잠깐 계급에 대해서 말하자면, 준위는 일단 높다. 계급 상으로는 소위의 아래지만 준위는 어느 한 기술에 있어서 최고의 전문가였고, 특히 우주군에 배속된 준위는 거의 당대의 석학과도 비슷했다. 계급이 아래라고 해서 아무도 그에게 하대하지 않았다. 그는 나이가 많았고 나는 그에게 정중히 부탁해야 했다. 이것은 상관으로서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으로서의 문제였다. 
  ㅡ 좌우간 부탁드립니다, 준위님. 좀 급한거라서요. 
  ㅡ 알았습니다. 근데 이 CD는 합참에서 온 것 같은데, 이 테이프는 전화 메시지 테이프 아닌가요?
  ㅡ 겸사 겸사해서 갖고 온 것입니다. 두 개 다 꼭 좀 부탁드립니다. 
  나는 빌리 준위에게 부탁을 하고 문을 나왔다. 그 길로 난 얼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문은 열려 있었고 얼은 키보드로 무언가를 두드리고 있었다. 내가 관물함을 두드리자 그는 나를 보고 키보드를 옆으로 밀어놓은 채 자리를 권했다. 
  ㅡ 그래, 알아낸 게 있나?
  ㅡ 좀 있네. 일단 링컨함 말인데... 아무리 링컨함 함장이 전술을 펼치지 않았다곤 하지만, 생존자들의 증언이나 아니면 합참에서 받아온 CD나... 아무튼 이상하네. 방어막이 그렇게 급감한다는게, 믿어지지가 않고 말일세. 
  ㅡ 우연히 바이러스가 작동한 거겠지. 하지만 우연이라기보단 너무 치명적이었네. 
  ㅡ 그래서 난 말이네. 지구 안에 스파이가 잠입해 함선 프로그램을 재설계한 것이 아닌가, 그런 가설을 내렸네. 
  ㅡ 말이 되나. 함선 프로그램에 접근하려면 함장이나 부관의 패스워드가 필요해. 그들 중 하나가 스파이였다 해도 대체 어느 미친놈이 제 죽을 걸 알면서 그런 짓을 하겠나. 
  ㅡ 그래서 나도 그 가설을 지워버렸지. 하지만 말일세. 난 아직도 뭔가가 이상해. 분명 뭔가 숨겨진 게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때, 벽에 붙어있던 붉은색 전구가 번쩍 하고 들어오며 긴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전체 방송을 하는지 천장의 스피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ㅡ 기지 내 모든 사람에게 알린다. 아비스 함으로부터 적함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모든 사람은 제 자리로 돌아가서 명령을 기다리도록. 
  얼과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필 이럴 때에 적함이 나타난단 말인가. 얼과 나는 통신본부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