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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보행자 4
링컨 함은 크로나 행성 궤도를 목적지로 잡고 전속력으로 발진했다. 나는 링컨 함 함장을 악수로써 배웅했다. 나의 사소한 악수가 그에게 크나큰 무운으로 작용하길 바랐다. 한 번도 맞닥뜨려본 적 없는 강력한 적수를 상대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함선의 성능을 지나치게 과신하고 말았다. 물론 링컨함은 그 성능 면에서 다른 어떤 함선조차 압도했다. 마에스트로함 보다 세 배는 더 컸다. 그것은 지구의 기함이었다. 무장은 미사일과 레일 포, 핵무기와 기관포 서른 대였다. 마에스트로의 방어막보다 훨씬 견고했고 예민했다. 그러나 몸집이 크다보니 조종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어서 공군 장교 가운데에서도 탑건들만 모인다는 곳이라 승무원들은 엘리트 의식과 자기 과신이 대단했다.
그것이 마지막 악수였다. 공석에서나 몇 번 마주쳤을 뿐 사석에서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때문에 미망인에게 나는 제대로 된 위로조차 하지 못했다. 링컨 함은 크로나 행성의 궤도에서 세 대의 탈출용 우주선에 탑승한 스무 명을 제하고 폭발했다. 오각형 함선 다섯 대를 전면전으로 맞섰다. 방어막은 강력했지만 함장의 전술은 형편없었다. 레일 포 열 방에도 적함은 격침되지 않았고 연이은 공격을 회피하지 못한 큰 몸집의 링컨함은 방어막이 소진되자 모든 동력을 잃었다. 핵무기 제어 시스템도 고장나 최후의 무기를 쓸 틈도 없었다고 생존자들은 말했다. 두 명이 후송 중에 죽었다.
나는 합참 회의에서 내 함선이 어떤 방식으로 싸웠는지를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그들은 그제서야 나의 말을 경청했다. 링컨함의 격침 소식을 처음부터 믿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사실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적절한 대응을 세우려 했을 때, 생존자는 열 여섯명으로 줄어 있었다. 스피딕스 미사일을 모든 함선에 다량 탑재할 것, 결코 전면전으로 싸우려하지 말 것, 상황이 불리하면 피했다가 전투를 재개할 것, 방어막에 너무 의존하지 말 것, 초반부터 있는 무장을 모두 내보이지 말 것 등 나는 열 가지가 넘는 주의사항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내가 이런다고 해서 링컨 함이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었고, 죽어간 승무원들도 다시 살아날 수는 없었다. 나는 막막했다. 목석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링컨 함이 격침되었다는 사실을 접한 합참 회의는 링컨 급의 새 함선을 건조하도록 지시했다. 건조에서 출고까지는 최소 삼 년은 기다려야 했다. 나는 링컨 함을 보내지 말자고 주장한 사람 중 하나였다. 최신예 함선을 보냈다가 만일 불상사가 생기면 그때는 어찌하겠느냐는 내 주장에 합참 의원들 중 과반수가 최신에 함선일수록 제일 임무 수행이 확실할 것이라며 나를 반박했다. 합참은 다른 궤도에서 임무를 수행중이던 아비스 함을 도로 불러들였다. 다른 몇 척의 함선이 있긴 했지만 아비스 함이 제일 나은 편이었다. 그때 아비스 함의 지휘관이 걱정거리를 말했다.
ㅡ 링컨 함이 격침되었을 때 그들은 링컨 함의 자료를 모두 가져갔을 겁니다.
ㅡ 링컨 함은 그전에 자폭에 들어갔을 것이 분명해요.
ㅡ 지금쯤은 이리로 오고 있을지도 몰라요. 모든 함선을 전투 태세에 들어가도록 하여 지구를 방어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합참 회의는 이렇다 할 확실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합참 회의는 최소 준장 이상이 되어야 회의실에 참석할 수 있었다. 오늘은 함선 지휘관이라면 계급에 상관 없이 들어오도록 허가되었지만 일반적으로 그러했다. 다른 함선의 지휘관은 모두 대령이었고 나만 준장이었다. 그러나 나는 합참 회의에서 괜히 주눅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역시 그들은 펜대하고나 친하지 나와 같은 실무 능력자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방어막 향상의 요청을 그들은 링컨 함의 건조 비용 목적으로 간단히 기각했다. 링컨 함이 격추되었다 해도 아비스 함이 있으니 그렇게 걱정할 사안이 아니라며, 한 의원이 낙관적으로 말했다. 답답하고도 안일한 사람들이었다. 어째서 합참 회의가 군인들로만 구성되지 않았는지가 궁금했다.
마에스트로의 수리가 다 끝났을 때 합참은 내게 크로나 행성 궤도에 가서 적의 동향을 살피고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곧 있을 교전보다도 먼저 저들이 도착하여 내게 선제공격을 가하지나 않을 지, 그것이 걱정되었다. 나는 후배인 아비스 함의 지휘관에게 넌지시 조언했다.
ㅡ 만일 적들이 지나치게 우세하다 싶으면 상부 허락을 받지 않고 핵무기를 발사하게. 나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핵폭탄 정도면 적들에게도 충분한 위협이 되겠지. 절대로, 링컨 함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말게.
아비스 함 지휘관은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는 고지식하지 않았으나 아무리 전략 면에서는 조금 떨어질 것이었다. 적과 실전 경험이 있는 자는 내가 유일했다. 나는 마에스트로를 출격시켰다. 승무원들은 모두 제자리에 배치되었고 빌과 나는 함교에 앉았다. 대기권을 벗어나는 데에는 오 초가 걸렸다. 크로나 행성 궤도에 진입하기에는 약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매복을 대비해 나는 방어막을 올리도록 지시했다.
ㅡ 링컨 함의 잔해는 어디 있지?
ㅡ 아직 궤도에 도달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적들이 수거해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빌은 아까부터 전방을 스캔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링컨 호와 관련있는 부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낼 수 없었다. 링컨 함의 컴퓨터는 시시한 항해일지부터 엄격한 보안을 요하는 극비 문서까지 다양하게 갖고 있었다. 적들은 그것을 가져가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링컨 함은 지구의 기함이었으므로. 그만큼 중요하고도 각별히 신경 써서 만들어진 함선이었으므로.
모니터에 한 점이 나타났다. 나는 그것이 오각형 함선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가슴이 빳밧해지고 목에 힘이 들어갔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언제부터인가, 적함을 상대할 때부터 나는 긴장이 더 되었다. 그것은 오각형 함선의 공격 능력이 마에스트로의 그것보다 월등히 강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장거리 스캔이 잡아낸 형상은 다름아닌 오각형이었다. 나는 레일 포를 준비하도록 명령했다. 선체의 커다란 포 네 문이 서서히 가동을 시작했다.
가속 포탄은 발사를 기다리고 있었고 적함이 마에스트로의 사정거리까지 도달하기에는 십오 초가 남아있었다. 내가 찾은 것이 아니라 그쪽이 먼저 나를 찾고 격침시키러 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 대 뿐이 보이지 않았다. 마에스트로는 레일 포를 쏘기 전에 함대함 미사일 네 기를 먼저 날려보냈다. 오각형 함선은 고도를 높이더니 세 기의 미사일을 피하고 한 기만을 허용했다. 미사일이 방어막에 부딪혀 폭발하자, 레일 포의 가속 포탄 네 발에 적중되는 것이 보였다. 적 방어막은 레일 포의 공격을 버텨냈다. 저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무조건 저 함선의 아래 지점으로 들어가야 했다. 빌이 조종간을 왼쪽으로 틀자 적이 쏜 플라즈마 포탄 한 발이 빗나갔다. 근접 방어체계의 기관포들이 일제히 발사를 시작했다. 오각형 함선은 우측으로 반회전을 시도했다. 우리 측의 작전을 간파한 것임에 틀림 없었다. 분명 전면전은 무리였다. 링컨 함 정도의 방어막이라면 상대할 수 있겠지만 열 방을 맞는다면 아마 링컨 함 꼴이 날 판이었다. 플라즈마 포탄 한 발이 좌측 선체를 때렸다. 방어막이 한 번에 17퍼센트 감소했다. 적의 공격은 매서웠고 복싱 선수의 강펀치처럼 위력적이었다. 그때 레일 포의 가속 포탄인 한꺼번에 적함의 가운데부분 함교에 적중했다. 스피딕스 미사일은 그때 발사되었다. 적함의 함교는 단단한 장갑이 아닌 강력 유리로 되어 그 속이 밖에서도 보였다. 하지만 미사일의 운동에너지에 비하면 유리의 강도는 한없이 나약했다. 생체 에너지가 함교 지점의 방어막을 일시적으로 해제시키자 관통력이 뛰어난 스피딕스 미사일은 함교의 유리를 깨부쉈다. 항법 시스템을 함교에서 총괄하는 듯 적함이 이리저리 방향을 잃고 날아다녔다. 함대함 미사일 두 기가 함교를 다시 때렸다. 가운데에서 일어난 폭발은 예각까지 금이 갔다. 금 간 부분은 노란색이었고 눈부시지만 희미했다. 희미한 빛도 계속 들여다보면 눈부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선체에 금이 간다는 것은 적함이 거의 끝장났다는 신호였다. 엔진을 잃은 적함은 그대로 수직으로 하강했다. 레일 포가 두 번 진동했다. 캄캄한 우주를 한 번의 불꽃으로 밝히려는 듯 적함이 폭발했다. 마에스트로는 폭발 지점을 선회하여 파편들을 피했다. 적의 파편은 방어막에 피해를 입힐 수 있을 정도로 위협적이게 단단했다. 빌은 한 대를 격침시켰음을 지구에 보고하고 크로나 행성 궤도에 진입했다. 답신은 오지 않았다.
크로나 궤도에 도착했을 때 마에스트로에게 교신을 요구하는 메시지가 전송되었다. 빌은 내게 보고했고 나는 통신 채널을 열게 했다. 스크린에 얼굴은 비춰지지 않았지만 나는 상대방이 오각형 함선을 가진 자들이란른 것을 확신했다.
스캔에 석 대의 오각형 함선들이 포착되었다. 그중 한 대의 함선이 이쪽으로 통신을 날렸다. 나는 그들이 먼저 말하기를 기다렸다. 적함은 무기를 장전하지 않고 있었으나 방어막은 불행히도 작동 중이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마에스트로는 방어막이 75퍼센트로 작동 중이었고 스피딕스 미사일과 가속 포탄이 장전 완료되어 있었다. 한 대라면 당장 명령을 내리겠지만 세 대를 한꺼번에 상대하는 것은 가급적 피해야 했다.
ㅡ 그쪽의 정체를 알고 싶다.
ㅡ 여기는 지구 함선 마에스트로다. 그쪽은?
ㅡ 쿤스 왕조의 함선들이다. 크로나는 우리가 점령했고, 크로나 인들은 모두 처형되었다. 끼어들지 마라.
ㅡ 크로나는 우리 동맹국이다. 그쪽의 행성 기지에서 먼저 우리를 공격했다. 우리는 그에 대응한 것이다.
ㅡ 당신들은 매우 뛰어난 함선을 가졌군. 전에 격침되었던 것 보다는 작은데, 더 강한 것 같다. 놀랍다.
ㅡ 우리 함선이 격침되었다는 소식에 우리가 온 것이다.
ㅡ 오각 함선을 상대로 싸워 이긴 것은 당신들 뿐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 아니다. 크로나의 함선으로부터 우린 크로나의 우방국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지난 번 너희 함선과의 싸움에서 취득한 정보를 분석한 결과 크로나의 우방국 중 가장 강력한 행성은 너희 지구였다. 너희라면 우리가 처한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ㅡ 무슨 조건 말인가?
통신은 끊어졌다. 빌은 적함이 무기를 장전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적이 갑자기 통신을 끊은 이유를 나는 알 수 없었다. 전파 방해는 아니었고 저들이 일방적으로 그만 둔 것 같았다. 내 앞의 커다란 창을 통해 보이는 적함 세 대는 마치 악마의 날개처럼 커다랬다. 오각형의 함선들이 서서히 간격을 넓히며 산재되기 시작했다. 마에스트로를 포위하려는 것 같았다. 오각형의 함선 뒤로 저 멀리 아득한 곳으로부터 날아온 붉은 별빛이 보였다. 적의 함선은 위협적이었고 저돌적이었지만 그 후미의 별빛은 값비싼 양탄자처럼 부드러웠다. 선제공격은 나에게 불리했다. 전방 레일 포 몇 방으로 저들은 무력화될 수 없었다. 스피딕스 미사일을 발사하도록 나는 명령했다. 빌은 나를 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항상 결연했고 빛났다.
ㅡ 스피딕스 미사일 두 발을 발사하고 제일 앞쪽 적함의 아래에 숨게.
마에스트로의 상단부에서 미사일 두 기가 발사되었다. 하지만 적의 수는 두 대 더 많았고 그들은 첫번째 타겟이 된 자기편 함선 밑으로 내 함선이 들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마에스트로는 그들의 포격을 피하느라 스피딕스 미사일이 명중시킨 적함의 라래를 포기하고 다시 고도를 높였다. 적함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레일 포의 집중 포격을 명령했다. 우릉우릉, 포신이 깊게 울렸다. 적함은 그저 흔들거렸다. 방어막이 강력해도 가속 포탄의 충격량까지 완벽하게 흡수하지는 못하는 듯 보였다. 적의 공격은 강력했지만 발사 간격이 넓었다. 빌의 훌륭한 조종 실력 덕분에, 레일 포에 맞은 적함의 공격은 번번히 궤도가 어긋났다. 하지만 그 중 두 세발은 함선에 맞을 수 밖에 없었고 방어막은 47퍼센트까지 떨어졌다. 위험했다. 스피딕스 미사일 한 발이 적함의 함교를 때렸다. 함교가 당한 적함은 비틀거렸다. 생체 에너지가 적함의 함교로 흘러내려 모든 부분의 방어막을 무력화시켰다. 적함은 위기를 깨닫고 물러났다. 그러나 마에스트로에는 명중률이 높은 미사일들이 많았다. 미사일 네 발을 모두 함교 부분에 피격당한 적함은 위에서 아래로 폭발이 일어나며 부서졌다. 자기 편 하나가 폭발하는 것을 본 적들은 마에스트로의 앞뒤를 포위했다. 빌은 고도를 낮추고 기관포를 모두 그쪽 방향으로 발사했다. 적이 무기를 장전하는 것을 확인한 순간 마에스트로의 격납고가 열리고 미사일 두 발이 적함의 아랫부분을 때렸다. 적함이 내쏜 공격은 마에스트로의 후면부를 가까스로 빗나갔다. 그 공격은 후면부에 위치한 함선의 함교를 노린 것이라 정말 위험했다. 적함이 비틀거리는 틈을 타 나는 빌에게 명령했다.
ㅡ 방어막은?
ㅡ 43퍼센트 입니다.
ㅡ 좌현으로 선체를 틀어 미사일을 발사하고 다른 적함의 공격을 피해 다른 함선의 뒤로 돌아가라.
마에스트로의 레일 포가 몇 번 울리고 함대함 미사일 다섯 기가 날아갔다. 적의 방어막은 뚫리지 않았으나 난타당하는 권투 선수처럼 비틀거렸다. 아까 우리 뒤를 점하고 있던 함선이 몇 발의 플라즈마 포탄을 토해냈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편의 전면부를 강타했다. 마에스트로는 그들 사이에 있다가 유연하게 선회하여 다른 함선의 뒤로 돌아간 것이었다. 피격된 적함 바로 뒤에서 마에스트로가 쾅쾅 레일 포를 뿜었다. 스피딕스 미사일 두 기가 안정적으로 적함의 후면부를 강타했다. 적함은 고도를 낮춤으로써 우리 공격을 피하고 자기편에게 공격할 기회를 직선 거리로 만들어주고자 했다. 적함이 고도를 낮추자 빌 역시 고도를 낮췄다. 미사일 네 기가 아까 조준한 적함의 후면부에 적중했다. 폭발과 균열은 적의 것이라지만 아름답고 신기했다. 적함은 완전히 포기되지는 않았지만 엔진이 손상되었는지 계속 그 고도가 하강했다. 하지만 아직 한 대의 함선이 건재했다. 한 발이 맞자 방어막이 10퍼센트 감소했다. 스친 것이었다. 방어막은 30퍼센트를 가까스로 유지했다. 함선 내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계기판이 뜨거워졌다. 냉방기가 가동되었으나 열기를 식히기엔 역부족이었다. 적함이 마에스트로를 악착같이 추격했다. 수로 보면 일대일이었으나 마에스트로는 방어막이 이제 위험 수위에 도달해 있었고 무장도 레일 포와 기관포에 의존해야 했다. 미사일은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방어막이 20퍼센트로 떨어지면 초공간으로 도피할 수 없었다. 초공간 엔진은 아직 무사했다. 아마 두 발을 허용하면 초공간으로 도망칠 수 없을 것이었다. 레일 포의 가속 포탄이 열 발 넘게 적중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적함의 방어막은 뚫리지 않았다.
ㅡ 함장님, 방어막이 30퍼센트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적이 두 발을 쏘았습니다.
ㅡ 엔진을 끄고 모든 동력을 전방 방어막으로 집중. 남은 미사일을 모두 발사하라!
ㅡ 막아냈지만 방어막이 15퍼센트입니다. 초공간을 열기엔 부족합니다. 무시하고 들어갔다간 초공간 안에서 부서질 위험이 있습니다!
ㅡ 레이더실입니다. 함장님, 적함이 무기를 장전한 것을 레이더가 확인했습니다.
ㅡ 빌, 우측으로 선회하라. 예비 동력원을 모두 돌려서 초공간 엔진에 집중. 방어막을 내리게. 방어막 동력을 초공간 엔진에 지원하게.
ㅡ 그러다 피격당하면...
ㅡ 한 발은 장갑이 버텨줄걸세. 운에 맡겨야지. 시행하게!
ㅡ 시뮬레이션 완료. 초공간으로 가도 안전합니다. 들어갑니다!
마에스트로는 초공간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적함이 발사했지만 초공간까지 따라오지는 못했다. 적함의 공격은 무서웠고 방어막은 약했다. 초공간 안에서 예비 동력원을 모두 사용한 덕택에 항해에는 문제가 없었다.
ㅡ 위험했군. 방어막은?
ㅡ 다행히 20퍼센트 선으로 돌아왔습니다. 더이상의 전투는 무립니다.
ㅡ 아까 핵미사일을 날릴 걸 그랬나...
ㅡ 함장님, 일대일 승부에서는 예외지만, 아까와 같이 함선이 우리보다 많을 경우에 마에스트로처럼 날렵한 함선이 아니면 저들을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ㅡ 자네도, 그렇게 생각했나. 나도 교전 중 내내 그 생각을 했네.
ㅡ 아비스함 같은 경우 외형이 크기 때문에 선회에 시간이 걸립니다. 아비스 함이 한 번 선회하려면 적의 공격을 세 방 정도 허용하게 될겁니다.
ㅡ 알다시피, 합참은 내 말을 듣지 않네. 준장이자 함장인 내 말을 안 듣는데 자네 말을 듣겠나, 대위.
ㅡ 그게 바로 문제입니다. 그런데 함장님.
ㅡ 왜?
ㅡ 신형 함선 중 페에드부르크라는 함선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ㅡ 있긴 하지만 전투가 아니라 대피용 함선이네. 국가 지도자 급의 중요인사들을 안전한 은하로 대피시키기 위해 공격 능력은 기관포 여섯 대가 전부고 동력의 75~80퍼센트 이상이 방어막 유지에 쓰인다네. 링컨 함보다 방어막 면에선 훨씬 월등하지.
ㅡ 돌아가면, 반드시 방어막을 새 것으로 교체해야 합니다.
빌의 말에 나는 확답을 내리지 못했다. 방어막을 교체하려면 사흘 남짓 걸린다는 웨그만 소장의 말이 떠올라서였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방어막은 꼭 필요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방어막에 의존하지 않기를 바랐다. 안전도가 조금 올라가는 것에 대해 너무 믿는 것은 위험했다. 함선 내의 정비팀이 방어막을 30퍼센트까지 끌어올렸으나 더 수리하는 것은 무리라고 보고했다. 의료팀에선 다섯 명의 찰과상 부상자가 있다고 보고했고, 레이더 팀은 한 개가 아까의 마지막 공격에서 부서져 불행히 좌측 후면부는 관측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빌의 계급이 겨우 대위라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물론 계급이 높다고 실력이 좋은 것은 아니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지만, 대위라는 직급은 모든 계급에서 중간부의 위치밖에는 차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일단 내 함선에서 계급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계급이 높다고 이 작은 함선에서 많은 영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의무관인 벨 소령이 함장인 나보다 더 힘을 가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신형 함선처럼 함장 개인 선실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당번병 또한 없었다. 나는 개인 물품을 스스로 보관하고 청소했다. 남에게 맡길 사안은 따로 있었다. 앞의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레이더팀의 승무원이 말한대로 모니터의 좌측 하단은 검은 화면이 사각형으로 도려내어져 있었다. 나의 얼굴이 캄캄한 화면에 반사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