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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보행자 3
그때 빌이 모니터에서 무언가를 스캔했는지 나를 깨웠다. 머리가 다소 어지러웠고 앞의 사물이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빌의 목소리는 다급하지 않았고 침착했다. 하지만 그는 중요한 사안이라며 내 어깨를 흔들었다. 모니터에 40km 전방에 새 물체가 스캔되었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장거리 스캔은 그 물체가 크로나 행성이 운용하던 구형 함선이라는 결과를 냈다. 적은 무장되어 있지 않았고 교신 요청 메시지도 없었다.
ㅡ 크로나의 구형 함선이군. 방어막이 다 소진되었나본데.
ㅡ 맞습니다. 방어막 뿐 아니라 선체 자체가 심각하게 파손되었습니다.
원통 형태의 크로나 함선은 그 제작이 무척 단순했다. 말 그대로 원통형의 선체에 창문 몇 개와 포 몇 대가 다 였다. 선체에는 강력한 포에 맞은 듯한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선체 외부에 틈이 수없이 났고 장거리 스캔의 투시 프로그램은 적함 내부의 봉쇄된 구역이 여섯 곳이나 되어 생존자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회색 빛깔의 원통형 함선은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 같아 보였다. 나는 빌에게 함선 정지 명령을 내렸다. 순간 저 함선이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다. 그때 빌이 말했다.
ㅡ 통신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앞의 크로나 함선에서요.
ㅡ 분명 생체 신호는 없다고 하지 않았나?
ㅡ 함선의 자체 시스템이 작동하여 조난 메시지가 전송되는 것입니다. 조난 메시지는 접근하는 어떤 비행물체에게도 전달되니까요. 분명 그럴 것입니다.
ㅡ 방어막은 내리지 말고 교신하게.
그러자 함선의 스피커에서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전해져왔다. 나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개개인마다 다르다고 하지만, 수많은 목소리를 일상에서 듣다 보면 몇 개의 목소리가 동일한 것 처럼 느껴지는 일도 종종 있었는데, 조난 메시지의 전송자가 사람이 아니라 기계인지, 목소리는 딱딱하고 낯설었다.
ㅡ 여기는 크로나 함선의 쏘냐. 함선이 포위되었다. 별 모양의 오각형 함선 두 대가 우리를 에워쌌다. 방어막은 십 분 만에 소진되었다. 우리는 급한 나머지 초공간으로 도약했다. 초공간에서 나오자마자 모든 동력을 잃었고 예비 동력 저장고는 교전 초기에 잃었다. 크로나로 돌아가는 항로 설정에는 성공했으나 우주선은 힘을 잃고 유영할 것이다. 적은 우리 군 자료를 해킹했다. 크로나의 위치를 알지 않았을까 걱정된다.
ㅡ 여기는 지구 함선의 마에스트로다. 그쪽은 크로나의 조난 시스템인가?
ㅡ 그렇다. 나는 한정된 질문에만 답을 하도록 프로그램 되었다. 나는 구형 시스템이다. 새로 대체되지 못했다.
ㅡ 현재 남은 승무원이 있나?
ㅡ 현 승무원 제로.
ㅡ 적들이 어떤 자료를 가져갔나?
ㅡ 우리 행성의 모든 기밀 사항과 우방국의 자료를 탈취당했다.
나는 갑자기 다급해졌다. 사실 크로나가 어찌 되든 내 알 바는 아니었고 펜대를 돌리는 합참이 심의할 문제였다. 크로나의 우방국에 대한 자료가 탈취당했다는 것이 나에게 큰 문제였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무섭지만 막막한 두려움이었다. 나는 빌에게 지구로의 통신 채널을 열라고 명령했다. 지구까지는 멀었으나 통신 상태는 양호했다.
ㅡ 마에스트로 지휘관이다. 사령부의 얼 준장을 부탁한다.
ㅡ 얼 준장이다. 무슨 일로?
ㅡ 크로나의 구형 함선을 포착했다. 생존자는 아무도 없고 조난 시스템으로만 대화가 가능하다. 오각형 모양의 함선을 가진 자들로부터 공격을 당했다고 한다.
ㅡ 현 상황은?
ㅡ 아직까지 고요하다. 크로나 함선과 대치 중이다. 오각형 함선을 가진 자들이 크로나 함선의 자료를 해킹하여 우방국의 위치를 알아냈을 가능성이 크다.
ㅡ 알았다. 마에스트로.
통신 채널을 닫았다. 나는 크로나 함선과 다시 통신을 연결했다. 우리쪽 스캔으로 볼 때 크로나 함선은 더이상 이용 가치가 없었다. 그대로 날려버리기에는 무언가 아까웠다. 크로나 함선의 조난 시스템에게 말했다.
ㅡ 그쪽 함선을 공격한 적에 대해 정보가 있으면 우리 쪽으로 전송하라.
ㅡ 사진 몇 장만 남아 있다. 적을 스캔한 자료가 모두 교전중에 소각되었다.
ㅡ 사진은 총 다섯 장 왔습니다, 함장님.
빌은 키보드를 두드려 메인 스크린에 전송 받은 사진을 비췄다. 오각형의 넓고 거대한 함선이었다. 언뜻 보기엔 불가사리와 같은 형태였으나 새까맣고 간간이 불빛들이 보였다. 다음 사진은 그 함선의 공격 장면이었다. 다섯 개의 예각에서 푸른색 빛줄기가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나머지 세 장의 사진은 앞의 두 사진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 함선의 스캔 자료가 없다는 사시리이 아쉬웠다. 나는 무언가를 발견한 것 같아 다섯 번째 사진을 비추게 했다. 몇 배를 확대시키자 크로나 함선의 대응 사격을 맞는 장면이 보였다. 크로나의 미사일 두 기가 하나는 허공에서 폭발하고 하나는 멈춰 있었다.
ㅡ 저들도 방어막이 있나보군.
ㅡ 예. 제가 통신을 해봐도 되겠습니까?
ㅡ 그렇게 하게.
ㅡ 크로나의 함선에 알린다. 여기는 지구 함선 마에스트로. 교전 시간이 얼마였나?
ㅡ 십오 분이 조금 넘었다.
ㅡ 전송한 사진은 언제 찍은 것인가?
ㅡ 십 분 이십 초 대였다.
빌은 한참을 생각하는가 싶더니 통신 채널을 껐다. 그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키보드를 두드려 함선을 스캔하자 컴퓨터 모니터에 크로나 함선의 무기 잔량이 나타났다. 크로나의 무기 체계는 미사일 마흔 기와 기관포 몇 대에 불과했다. 빌이 내게 말했다.
ㅡ 십오 분이 많은 시간은 아니지만 사진 속 함선에는 어떤 피해도 없습니다. 방어막이 강력한 것임에 분명합니다.
ㅡ 크로나의 무기는 원체 약하네. 미사일이라 해도 그 위력이...
ㅡ 하지만 분명 저 시스템은 자기 네들 방어막이 십 분내로 당했다고 했습니다. 방어막이 그렇게 급속하게 소진되었다면 저들은 아마 모든 방법을 동원했을 겁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던 거지요.
ㅡ 일리가 있군. 합참에선 저 함선이 쓸모가 없다고 판단했네.
ㅡ 역시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크로나의 함선은 방어막도 상실했고 이제 곧 수명이 다해 조난 프로그램과도 교신이 불가능할 겁니다. 저 함선은 자폭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대로 보내주면 다른 행성의 군대에게 자료를 탈취당할 것 같습니다.
나는 파괴 명령을 내렸다. 마에스트로 앞쪽의 포신이 두 번 울렸다. 크로나 함선은 폭발했다. 빛은 눈부셨고 부서진 파편들을 부드럽게 감쌌다. 파편은 마에스트로 근처에 오지 못했다. 다시 앞에는 맑은 우주의 하늘만이 보였다.
ㅡ 혹시 크로나 행성을 장악한 자들이 별 모양 함선을 가진 나라가 아닐까?
ㅡ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저들이 아까 우리를 공격할 때 크로나 함선과 싸울 당시의 무기가 아닌, 원래 크로나가 가지고 있는 미사일을 쏜 것입니다.
ㅡ 자신들의 무기를 낭비하기 싫었나보지. 가만, 그렇다면 우린 우리 전력을 적에게 공개한 셈이 되었군.
ㅡ 그렇습니다만 아직 우리쪽 미사일의 위력은 저들이 모릅니다. 우리 미사일은 크로나의 미사일보다 몇 배나 더 강력하니까요.
ㅡ 그렇군. 크로나 행성은 여전히 조용하군.
ㅡ 스캔되는 것이 없습니다. 아까의 교전에서 크로나의 무기를 모두 파괴했는지도 모릅니다.
ㅡ 자세히 스캔할 수는 없나?
ㅡ 마에스트로에 첨단 기능은 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빌은 다소 불안하게 말했다. 마에스트로가 구형 함선이라는 것은 나도 알고 그도 알았다. 전시에는 불리한 함선이었고 교전에는 더더욱 불리했다. 빌에게 행성 궤도를 벗어나 지구로 돌아가도록 명령했다. 항로를 설정하고 항해하되 방어막은 내리지 말 것을 당부했다. 빌이 고개를 끄덕였다. 함선은 좌측으로 반회전하여 천천히 나아갔다.
그때,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장거리 스캔은 한 대의 함선을 포착하고 곧바로 스크린에 띄웠다. 크로나 함선이 전송한 사진에 나온 것과 유사한 모양의 함선이었다. 링컨 함 정도의 크기로 마에스트로보다 세 배는 더해 보였다. 다섯 개의 예각에서 눈부신 에너지가 응축되는 것이 스캔되었다. 그것이 무기라는 것은 불보듯 뻔했다.
ㅡ 교신이 있었나?
ㅡ 없었습니다, 함장님. 저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장전했습니다.
ㅡ 아마 크로나의 함선에서 빼온 자료 때문이겠지. 레일 포를 발사하게. 적의 포는 예각에만 있으니 우리는 그 아래를 점유하여 공격하지.
마에스트로의 레일 포가 우릉 우릉 흔들렸다. 적 방어막은 레일 포의 가속 포탄을 막아낼 정도로 강력했다.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근접 방어체계의 기관포 열두 대가 한꺼번에 사격을 실시했다. 하지만 적 방어막은 변동이 없었다. 적은 장전을 완료한 듯 푸른색 플라즈마 광선을 우리에게 쏘아보냈다. 마에스트로는 오른쪽으로 선회하며 두 방의 공격을 피하고 가까스로 아래로 한 방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두 발의 플라즈마 덩어리가 선체에 적중했다. 별이 터진 것처럼 눈부신 빛이 함교의 창문에 설치된 차광 필드를 뚫고 들어왔다. 진동이 함선 전체로 퍼져나가며 승무원 모두가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계기판에서 불꽃이 튀었다. 빌이 내게 방어막이 25 퍼센트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마에스트로는 적 함선의 바로 아레에 위치를 잡았다. 적 함선은 역시 공격하지 않았다. 그러나 곧 고도를 올리고 뒤쪽으로 기울어졌다. 하지만 적 함선이 움직이자마자 마에스트로의 수직 격납고 문이 열리고 지대공 미사일 여섯 기가 발사되었다. 모두 명중했으나 적 방어막은 움찔거리기만 할 뿐 관통되지 않았다. 그때서야 나는 아연해졌다. 방어막은 70퍼센트가 남아 있었다. 기관포 열두 문이 모두 총구를 수직으로 향하고 적 함선에 발포했다. 적 함선의 방어막이 순간적으로 약해진 것을 스캔하는데에 성공하자 나는 이때야말로 작년에 개발해 운용중인 관통형 무기를 사용할 때라고 확신했다.
ㅡ 스피딕스 미사일을 발사하게.
스피딕스 미사이리은 앞부분에 내재된 기계에서 생체 에너지를 발산하도록 만들어졌다. 대부분의 방어막은 화약이 들어있는 물체를 방어하지만 살아있는 생체 에너지는 그대로 관통시켰다. 스피딕스 미사일은 생체 미사일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았다. 물론 안에 화약은 없어서 폭발하지는 않지만 표적의 표면에 닿자 마자 반경 몇십 미터에 생체 에너지를 흩뿌린다. 생체 에너지가 표적의 방어막 안에서 밖으로 방출되는 동안 적 방어막은 순간적으로 약해지도록 설계된 것이었다.
스피딕스 미사일 두 대가 함선 아랫부분에 명중했다. 역시 방어막은 스피딕스 미사일을 통과시켰다. 그들의 레이더엔 난데없이 생체 신호가 잡혔을 것이다. 생체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 스캔되자 나는 공격을 명령했다.
레일 포 네 문이 한꺼번에 저르릉 하고 울렸다. 적 함선은 여지없이 박살났다. 하지만 박살나면서도 한 발의 플라즈마 공격을 가해왔다. 불의의 기습이라 마에스트로도 좌측으로 선체가 휭 회전했다. 방어막이 50퍼센트 이하로 작동했다. 방어막은 역시 약했다. 적 함선은 박살나긴 했지만 아직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지체할 수 없는 사안은 생체 에너지는 순식간에 흩뿌려지고 또 순식간에 없어지기 때문에, 적 방어막의 비활성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빌은 네이팜탄 두 대를 방어막이 활성화되기 전에 적 함선에 명중시켰다. 함선은 시뻘건 화염에 휩싸였다. 마에스트로의 컴퓨터는 적 함선의 방어막 방출기가 소각된 것을 스캔했다. 레일 포가 한 번 진동하자 오각형 함선의 중심 부위에 자리하고 있던 함교가 한 방에 박살났다. 적은 무기 제어에도 실패한 듯 보였다. 레일 포는 물 만난 물고기마냥 계속해서 포탄을 발사했다. 눈부신 빛이 다시 나의 눈을 쏘았다. 몇 초 간이었다.
ㅡ 방어막은 얼만가?
ㅡ 50퍼센트였지만 적함이 폭발하면서 파편이 튀기는 바람에... 42퍼센트 입니다.
ㅡ 곧장 지구로 가게. 방어막 내리고 모든 동력을 초공간 엔진에 집중. 가급적 빨리 지구에 도달할 수 있도록.
ㅡ 알겠습니다. 얼 준장님으로부터 통신이 들어옵니다.
ㅡ 연결하게.
ㅡ 일지를 잘 받았네, 빌.
ㅡ 지구는 어떻습니까.
ㅡ 어떤 징후도 포착되지 않았네. 합참 회의는 자네의 공적을 치하할 것을 기다리고 있네. 착륙하는대로 둘 다 회의장으로 와주게.
통신은 끊어졌다. 나는 빨리 회항하고 싶었다. 지구 궤도에 들어서자 사령부는 여분의 비행장이 있는 지점의 좌표를 함선으로 전송했다. 마에스트로는 말 잘듣는 애완 동물처럼 조용하고도 침착하게 지상에 착륙했다. 다른 함선들은 착륙할 때에도 몹시 시끄러웠지만 불필요한 소음은 무조건 없애야한다는 것이 나의 일관된 생각이었다. 마에스트로의 승무원을 제외한 다른 함선의 승무원들은 난청 증세를 많이 겪고 있었다. 나와 빌은 밥을 먹을 새도 없이 바로 합참 회의실로 향했다. 사성 장군들이 나와 빌을 맞이했다. 합참의장과의 대화가 아니라 하더라도 사무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과의 대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형식적일 수밖에 없었다. 새로 나타난 적에 대해 묻는 방식도 자세하지 못했다. 교전 내용을 자세하게 보고해도 양복쟁이들은 턱을 손에 괴고 졸린 눈으로 들었다. 나는 이곳에 들어올 때마다 저들은 거의 실전 경험이 없다는 것을 상기한다. 베테랑 군인의 이야기보다도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시뮬레이션 보고를 더더욱 신뢰했다. 아마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수 있다는 말에 대해 그들은 모두 동의할 것이었다. 마에스트로의 승무원들이 매일 겪는 전투 상황이, 그들에게는 먼 나라의 일인 양 사소하게 들릴 것이다.
ㅡ 그래서 크로나는 멸망했나요?
ㅡ 그렇습니다. 저항하는 잔존 세력이 있을 수 있지만 대단히 미약할 겁니다. 교전한 함선은 무장이 대단히 강력하여 피격 횟수가 몇 번 되지 않았는데도 방어막의 반을 잃었습니다. 크로나의 함선은 교전 삼십 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ㅡ 승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죠?
ㅡ 스피딕스 미사일로 적 방어막을 일시적으로 비활성화시킨 것입니다. 실험이 끝나고 운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수효가 적어 함선에 탑재되는 횟수가 적습니다. 이 점의 보완이 제일 중요합니다.
ㅡ 마에스트로 지휘관께서는 다른 생각이 있습니까?
ㅡ 빌이 스피딕스 미사일에 대해 언급했으니 나는 그에 대해 따로 말할 필요가 없겠죠. 하지만 문제는 내 방어막이오.
ㅡ 방어막이라뇨?
ㅡ 신형 함선인 아비스나 링컨에 탑재된 방어막을 내 함선에도 적용해야 하오. 적의 포격에 몇 방 맞지도 않았는데 하마터면 초공간으로 들어가는 것도 실패할 뻔했소. 열 방이면 마에스트로는 격침될거요. 절대적인 것이 방어막은 아니지만.
그때 웨그만 소장이 내 요청에 대답했다. 그가 유일하게 이 자리에서 실전 경험이 있는 장교였다. 그는 내게 무척 호의적이었고 내가 귀환할 때마다 나와 승무원들의 공적을 추켜세웠다. 그는 마에스트로의 방어막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ㅡ 인정하네. 아비스에 비한다면 삼분의 일 수준이지. 하지만 방어막을 새로 하려면 마에스트로를 사흘 간 출격시키지 못할텐데. 그게 걱정되네.
그는 여전히 통찰력이 날카로웠다. 지금 막 새로운 적과의 충돌이 예상되는 시점인데 사흘 간의 공백은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내게 무장과 방어막을 출격할 때와 똑같이, 완벽하게 수리해놓을 것을 약속했다. 회의장을 나와 숙소로 가는 길에 빌이 내게 물었다.
ㅡ 한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됩니까, 함장님?
ㅡ 물론이네. 뭐든지.
ㅡ 왜 저 분들이 함장님의 성함을 부르지 않고 마에스트로 지휘관이라고 부릅니까?
ㅡ 원래 함선의 함장에게는 그래. 별 쓸데없는 의미지만 다른 승무원들과 함장의 직급 차이를 만들어둔 거지.
ㅡ 함장님은 마에스트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ㅡ 나? 집과도 마찬가지지. 마에스트로라는 이름을 내가 지었기 때문이네. 장인이라는 말. 그 당시 마에스트로는 정말 말 그대로 장인이었어. 아주 세세하고도 정확하며 유연했고 단단했지. 내가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것은 자네같은 인재가 왜 이런 구형 함선으로 발령 신청서를 냈느냐는 거야. 자네 실력이면 아비스나 링컨 함에 배속되는 것이 나았을텐데. 만약 경험을 쌓아보려고 구형 함선을 지원한거라면 괜찮네. 내가 링컨 함 함장에게 추천서를 써주지.
ㅡ 아닙니다, 함장님. 전 링컨 함의 제의를 물리쳤습니다.
ㅡ 왜? 마에스트로보다는 목숨거는 일이 더 적지 않겠나?
ㅡ 그렇습니다만, 함장님은 링컨함에서 전투에 임하신 적이 있습니까?
ㅡ 아니, 한 번도 없네. 시승식때 한번 타본 것이 다야.
ㅡ 링컨 함에 배속된 제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링컨 함의 사람들은 그야말로 안일하답니다. 일단 지구 최신예의 함선이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 부담이 적어 직무를 대충 처리하는 것이죠.
ㅡ 다소 교과서적이군. 공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면서.
ㅡ 예, 그렇습니다. 기본이 부족하면 언젠가 표가 날 것입니다. 링컨 함은 지금은 강력하지만, 언젠가는 결정적인 실수를 만회하지 못할 겁니다.
나는 처음으로 빌이 나보다도 훨씬 유능하고도 똑바른 단계를 밟아온 군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를 마에스트로에 붙잡아두고 싶었다. 비행 실력이 뛰어났고 상관에게 순종적이었으며 대인 관계도 원만했다. 다행히 그는 마에스트로에서 일하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듯 보였다. 하지만, 그의 예감은 한달 뒤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