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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 아인슈타인과 교류전기의 테슬라 보병]

가끔씩 SF 작품이 대중문화에 과학적인 영향을 끼치는 걸 보는데, 게임 <적색경보>에 나오는 테슬라도 그 중 하나일 겁니다. <적색경보> 시리즈에는 전통적으로 소비에트 진영에 테슬라 코일을 이용한 병기가 등장합니다. 번개를 쏴서 적을 지지는 테슬라 타워?나 테슬라 보병 등이 있죠. 아인슈타인처럼 게임을 대표하는 과학자라고 할까요. 덕분에 전기의 발명가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토머스 에디슨만을 떠올리지만, 게임 유저들은 니콜라 테슬라도 함께 떠올립니다. 니콜라 테슬라 본인이 등장하는 건 아닙니다만, 게임을 접한 유저들에게 이 전기 과학자는 꽤 친숙하니까요. 물론 직접 출현이 아니다 보니까 오해하는 점도 꽤 많은데, 우선 이 사람의 업적이 정확히 뭔지 모릅니다. 이건 아인슈타인의 논문을 안 읽어 보고 게임만 하면,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 따위는 묻히고 시간여행하는 과학자로만 기억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죠. 테슬라 코일 자체가 교류전기를 응용한 물건이지만, 매뉴얼이나 게임 내부에 설명이 전혀 없습니다. 거기다 하필이면 소비에트 연방에 등장해서 소련인으로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미국의 아인슈타인 대 소비에트의 테슬라 정도?) 허나 세르비아계 출신이라고 하며, 주권은 미국 주권이 있다는군요. 여기에 저 유명한 필라델피아 실험 음모까지 겹치면…. 이건 SF 작품이 끼친 부정적인 대중성일 테죠….

 

그렇다고 모든 유저가 테슬라를 전기 코일이나 만든 괴상한 소련 과학자로 기억하는 건 아닙니다. 게임에 흥미를 느낀 일부는 직접 니콜라 테슬라의 일대기를 찾아보기도 하며, 이 경우 SF 작품이 대중에게 발전적인 영향을 끼친 거죠. 어차피 중/고등학교에 들어가면 교류전기를 배우게 되니 테슬라도 자연스럽게 접할 테고, 그 때 더 흥미를 느끼며 공부할 수도 있을 거고요. 각종 공룡 영화 덕분에 아이들이 생물 혹은 지구 과학 수업에 더 집중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허나 이건 첫머리에 말했듯 어디까지나 '일부' 유저에 한한 이야기입니다. <적색경보> 유저 중 상당수는 SF 밀리터리 팬이고, 이들이 니콜라 테슬라에 관심을 보이는 건 당연한 흐름이기도 합니다만… 게임을 그저 게임으로만 치부하고 지나가는 유저도 많을 테죠. <쥬라기 공원>을 본 아이들이 전부 지구 과학 시간에 집중하진 않는 것처럼요. 한편으로 <적색경보>를 통해 테슬라에 흥미를 느낀다 한들, 이 사람의 일대기를 조사할 수 있는 자료가 국내에는 많지 않다고 합니다. 토마스 에디슨에 너무 밀린 나머지 위인전이나 과학 서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거죠. 실제 역사에서는 에디슨이 전기 사업 때문에 경쟁자인 테슬라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려고 엄청나게 애썼다고 하던데,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성공한 것 같습니다.

 

그나마 아인슈타인은 테슬라에 비해 낫습니다. 일단 본인이 직접 나오기도 하고, 인지도도 높으니까요. 게임 동영상에 나오는 아인슈타인 이미지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그것과 똑같습니다. 이 사람을 희화화하는 건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군요. 1편에서는 좀 진지했지만, '개그 얼럿'인 2편으로 넘어오면서 다른 인물들처럼 개그 노선을 걷는데, 아인슈타인 자체가 꽤 괴짜였다고 하니까 그리 틀린 고증은 아닐지도. 게임 내부의 병기 개발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평화적인 과학자 모습을 살리려고 했는지 시간여행으로 독재자(히틀러)를 소거하기까지 합니다. 실제로도 반핵/반전 운동을 펼치긴 했으나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는 못한 듯합니다. 한편으로 양자역학의 시초를 마련하여 평행세계 이론이 나오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만, <적색경보>의 시간여행은 평행세계와 큰 관계가 없는 것 같습니다. 실제 연구했던 양자역학과 게임 속의 시간여행은 별개라는 거죠. 제작진인 웨스트우드도 아마 양자역학이나 평행세계 따위 신경쓰지 않았을 테고요. 실제 아인슈타인을 고증한 게 아니라 그저 유명 과학자의 면모만 빌려온 셈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광고하는 '아인슈타인 우유' 같은 거랑 다를 게 없죠. 아니, 그보다는 좀 나으려나)

 

가끔씩 <적색경보>의 테슬라와 아인슈타인을 보면 좀 아쉽기도 합니다. 이들 과학자를 좀 더 실질적으로 반영해 게임을 즐긴 유저들이 실제 과학자의 삶이나 업적에 흥미를 느끼도록 유도했으면… 싶거든요. 특히, 테슬라는 음모론 속의 괴기 과학자 이미지가 여기서도 그대로 이어지니, 참. 어떻게 작품에 나올 때마다 누명을 못 벗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뭐, 이건 어디까지나 재미있는 전략 게임일 뿐 과학 계몽 작품이 아니니 개인적인 아쉬움으로 담아두어야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