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2>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심 기대하던 것 중에 하나는 수중 유닛의 등장이었습니다. 현재 <스타크래프트>는 육상 유닛과 공중 유닛으로만 구성되어있을 뿐 수중 유닛이 없는데, 2편에서 이를 보충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던 거죠. 하지만 공개한 영상을 보면 바람과는 달리 이번에도 육군과 공군만으로 전투를 치뤄야 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수중전 언급이 전혀 없는 걸 보면 말이죠. 블리자드가 제작한 또 다른 실시간 전략 게임이었던 <워크래프트 2>의 해상전이 나름대로 아기자기했다고 기억하는 저로서는 아쉬운 부분입니다. 이왕 2편을 만드는 김에 규모를 늘리고 시스템도 손을 봐서 수중전까지 추가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요. 미지의 종족이 나오니까 종족간 균형을 맞추기 힘들고, 유닛이 너무 많아질까 봐 수중전은 아예 빼놓은 것일까요. 1편이나 2편이나 바다는 그저 '육상 유닛이 갈 수 없는 곳'으로만 남을 것 같군요.

해상전이 나오기를 바란 이유는 단순히 육군과 공군만 나올 때보다 전략적인 폭이 훨씬 넓어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보다 수중 유닛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따져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죠. 물이라는 이질적인 환경에서 활동하고 싸우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설정을 많이 가져다 붙여야 합니다. 우주로 나가는 우주선이 생존이나 기동을 위해 여러 장비를 달아야 하는 것처럼 물에서 돌아다니는 배나 잠수함도 그래야 하죠. 특히 잠수함은 이런 제약이랄까, 설정상 걸고 넘어가야 할 관문이 한두 개가 아니죠. 이질적인 황경에 고립된 사람들을 이야기할 때 잠수함을 무대로 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스타크래프트> 정도의 미래라도 그런 점은 변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거대한 우주선이 행성 사이를 돌아다니고 우주전투기가 레이저를 쏴 대는 시대에도 바다는 여전히 함부로 다가서기 어려운 곳으로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테란과 프로토스, 저그가 그런 바다를 싸움터로 삼기 위해 접근하는 과정은 꽤 흥미진진할 겁니다. 그런 차원에서 재미삼아 <스타크래프트>의 수중 유닛들을 구상해 보면 어떨까요. ('수중水中'이라고는 했지만, 수상과 수중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우선 테란은 현대전의 함대 운용과 그리 다르지 않은 함대 체계를 운영할 듯합니다. <스타크래프트> 설정이 그렇게 하드한 것도 아니고, 2차 대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전투 양상을 미래로 옮겨놓은 것과 다름이 없으니 (하긴 대부분의 스페이스 오페라가 그렇죠) 테란 수중 유닛을 상상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아마 테란 유닛은 기본적인 구축함, 속도가 느리고 방어력과 공격력이 높은 전함, 무인 전투기 등을 띄우는 항모, 게랄라전을 펼칠 수 있는 잠수함 등으로 이루어질 겁니다. 아, 물론 상륙을 위한 수송선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대개의 전략 게임이 그렇듯 수송선은 비무장일 수 있지만, 그러면 드롭쉽에 비해 이득이 너무 없으므로 가벼운 무장을 달아주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테란은 주로 방어적인 측면이 강하니까 전함과 시즈 탱크와 같은 공성 형태를 넣어주든지 구축함에 벌쳐와 같은 기뢰를 심어주든지 하는 것도 좋은 전략일 거고요. 잠수함은 시간 제한이 있는 일종의 은신 유닛으로 물 속에서 어뢰를 쏘다가 탐지 기술에 걸리거나 탐지 유닛이 다가오면 모습이 드러나는 식으로 하면 될 겁니다.

프로토스 역시 테란처럼 기계 유닛을 많이 운용할 겁니다. 하지만 프로토스의 유닛 구성은 단순하게 기계의 힘을 빌리는 게 아닙니다. 인공지능으로 움직이는 순수 기계 유닛도 있고, 프로토스 특유의 정신력과 결합한 기계도 있죠. 수중 유닛도 이런 면을 살려야 합니다. 프토토스의 기본적인 수중 유닛은 일종의 돌격선으로 설정하는 게 낫겠습니다. 프로토스가 안에서 움직이는 배인데, 무장이 두텁고 속도가 빠른 대신 사정거리가 짧은 함선입니다. 다음으로 템플러급 소수가 정신력으로 조종하는 거대 전함이 있는 편이 좋겠지요. 일반적인 함선처럼 함포를 쏘기도 하지만, 정신력으로 해일을 일으킨다든지 파도를 조종한다든지 하는 기술을 추가합니다. 항모는 이미 캐리어라는 비슷한 컨셉의 공중 유닛이 있으니 넣기가 어렵고… 잠수함을 하나 넣는 것도 괜찮겠다 싶네요. 다만, 단순히 물 속으로 숨어들어가는 잠수함이 아니라 다크 템플러가 타고서 은폐막을 펼치는 식입니다. 그래서 시간 제한이 없이 은신을 할 수가 있죠. 그리고 테란과 마찬가지로 셔틀과 차별성이 있는 수송선을 하나 집어넣습니다. 이 수송선은 순전히 인공지능으로만 움직이는 식입니다.

테란이 기계에 의존하고, 프로토스가 기계와 유기체의 결합을 중시한다면, 저그는 순수하게 유기체로만 승부하는 종족입니다. 저그는 기초 유닛인 저글링부터 최종 업그레이드 건물인 울트라리스크 동굴까지 모두 생명체입니다. 그래서 수중 유닛을 구상할 때도 방향을 약간 달리해야겠네요. 우선 저그 수중 유닛들은 오버로드가 각 행성의 수중 유닛들을 사로잡아 변형시켰다는 설정에서 출발합니다. 이들은 배가 아니니까 항상 물 밖에 나와 있을 필요가 없고, 따라서 모두에게 잠수 기능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하면 빌드 초반에 은신 유닛이 너무 빨리 등장한다는 것인데… 글쎄요, 이 부분은 고민을 좀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하간 저그 유닛은 배가 아닌 '수중 동물'이므로 기초 유닛이든 최종 유닛이든 모두 잠수 기능이 있긴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 수송선까지도요. 수송선도 일종의 해양 동물로서 오버로드처럼 뱃속에 유닛을 집어넣어 수송하는 식입니다. (<에이지 오브 미솔로지>의 베헤모스 유닛이 이런 방식이었죠) 크라켄이 배를 끌고 들어가듯 거대 해양 괴수가 배를 침몰시키는 유닛을 집어넣어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적색경보 2>의 소련군 오징어처럼요)

수중 유닛을 생산하는 건물, 그러니까 조선소는 다른 건물들과 비슷한 식으로 설정합니다. 다만, 해안가에 지어야 한다는 제약이 있지요. 테란의 조선소는 다른 주요 건물들처럼 공중 이동을 할 수 있지만, 수중 유닛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해안가에 정착해야 합니다. 육상에 정착하면 생산 기능이 마비됩니다. 그리고 전함이나 잠수함의 기능을 올려주는 부속 건물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프로토스의 조선소는 이름을 '아쿠아게이트'나 '마린게이트', '블루게이트' 등등으로 지으면 그럴 듯하겠군요. 프로토스 병력 생산 건물은 대개 이름이 '…게이트'이니까요. 수중 유닛을 소환하는 건물로서 파일런이 근처에 있어야만 작동합니다. 본진과 해안가가 멀리 떨어지면 미네랄을 더 들여서 해안가에 파일런을 하나 더 지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프로토스 해군은 본진과 해안가의 거리가 멀 때 조선소 근처의 파일런이 부서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저그는 좀 골치 아픈데, 생산 방식이 테란/프로토스와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모든 저그 유닛은 하이브 근처의 애벌레가 변태해서 태어납니다. 그런데 하이브는 육상에 있고, 결국 수중 유닛을 생산하면 육상에서 등장한다는 소립니다. 그러니 저그는 해안가를 조선소를 짓는 게 아니라 크립 위에 조선소 역할을 하는 건물을 지으면, 기존의 유닛이 해안가에서 수중 유닛으로 변태한다는 설정으로 가야 할 겁니다. 뮤탈리스크가 가디언으로 변태를 하는 것처럼요. 우선 조선소 역할을 하는 건물을 크립 위에 만듭니다. 그러면 하이브 근처의 애벌레가 저글링 비슷한 기초 유닛으로 변태합니다. 이 유닛은 마치 물고기처럼 생겼지만 육상 이동이 가능하고, 오버로드가 사로잡은 수륙양육 동물 중 하나입니다. 뭍에서 물로 들어가려는 진화 과정의 과도기(?)에 있는 동물이죠. 이 동물이 해안가 근처로 이동하면 수중 유닛으로 변태할 수 있습니다. 즉, 저그가 수중 유닛을 뽑으려면 가디언이나 럴커처럼 변태를 두 번 해야 합니다. 복잡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육상의 애벌레가 모든 유닛의 출발점이 되는 저그로서는 어쩔 수 없지요. 따라서 저그가 수중 유닛을 뽑을 때는 저 물고기 닮은 기초 유닛이 본진에서 해안가로 이동할 때를 주의해야 합니다.

무장 체계는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테란이라면, 질량 무기를 발사합니다. 탄환이나 미사일, 로켓 등을 쏘며 싸우는 거죠. 프로토스는 정신력을 이용한 충격파로 적 함선을 지지거나 푸른 빛의 플라즈마를 발사합니다. 게임상에서는 드라군이나 포톤 캐논, 리버와 같이 푸른 빛의 구체를 쏘는 것으로 나오겠죠. 저그는 강산을 쏘거나 뼈를 발사합니다. 저그의 수상 기초 유닛은 함포를 쏘는 대신 빠른 속도로 적에게 달라붙어 이빨이나 발톱으로 금속 장갑을 갈라버리는 것도 어울릴 겁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촉수가 있는 유닛이 배를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식도 재미있을 거고요. 각 종족의 일부 수중 유닛들은 미사일, 플라즈마, 뼈 등을 발사해 육상은 물론 공중을 공격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니 수중 유닛이 오로지 해상전에서만 쓸모가 있지는 않습니다. 만약 미네랄이나 베스핀 같은 자원이 해안선에 가까이 있다면, 해군이 함포로 해안선에 사격해 자원 채취를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구축함 등이 바다 위을 날아가는 셔틀을 공격해 격추시킬 수도 있고요. 수송선이 유닛을 싣고 가다 파괴되는 경우, 안에 있는 유닛은 모두 물에 빠져 죽은 것으로 설정합니다.

유닛 디자인 역시 기존 방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테란은 약간 녹이 슬고 바랜 듯한, 잿빛 금속성 함선들을 생산합니다. 함선 디자인이 약간 미래지향적이긴 하지만, 그리 이질적인 모양새는 아닙니다. 프로토스는 황금빛 장갑에 갈색 줄무늬가 쳐진, 세련된 함선을 뽑습니다. 미려한 곡선은 마치 물 위를 떠다니는 배가 아니라 우주를 여행하는 우주선 같은 느낌입니다. 테란 및 프로토스 공중 유닛이 불꽃을 뿜어 그 반작용으로 추진력을 얻는 것과 달리 수중 유닛은 스크류를 돌려 추진력을 얻습니다. 그러니 수중 유닛이 움직일 때는 끝부분에 무언가 뱅글뱅글 돌아가는 묘사를 해 주는 게 아기자기하겠죠. 저그는 수중 동물이므로 지느러미를 움직이거나 관에서 물을 뿜어 이동합니다. 저그 유닛은 대개 수중 파충류나 태고 시대의 거대 수중 절지류를 닮았습니다. 일부는 초기 어류나 상어와 비슷하기도 하고요. 테란 조선소는 말 그대로 낡은 조선소처럼 보입니다. 프로토스 조선소 게이트는 잠수함과 비슷한 모양인데, 황금빛 외부에 갈색 물결 줄무늬가 있습니다. 저그 조선소는 흠…, 커다란 연못을 지닌 생체 건물이라고 해야겠네요.

뭐, 길게 떠들긴 했는데, 결국에는 개인적인 취향의 설정 놀음을 한 것 같군요. 여하튼 간에 <스타크래프트>에 해상전과 수중 유닛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를 생각해 봤습니다. 어차피 상상인 이상 실제 게임에 저런 게 등장할 리는 없겠지만요. 바다라는 거대한 공간이 그저 '육상 유닛은 가지 못 하는 곳'에 불과하다는 게 참 아쉽습니다. (모 학자의 말을 다른 식으로 인용하자면 거대한 공간의 낭비라고나 할까…. 바다라는 거대한 공간을 너무 낭비했죠) <적색경보 2>의 연합군 돌고래나 <에이지 오브 미솔로지>의 베헤모스, <워크래프트 2>의 거대한 거북은 전략적인 폭을 넓혀주는 동시에 설정의 재미를 살필 수 있는 동물들이었습니다. 그런 걸 국민 게임이라는 <스타크래프트>에서는 볼 수 없다니 섭섭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