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는 모래 밑에 숨었을까요

소설 <듄>이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몇 개 있습니다. 캐러멜 빛의 행성, 카레 색으로 펼쳐진 모래사막, 엄청난 모래바람, 푸른 색 스파이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오르는 샤이 훌루드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게 벌레인데, 한마디로 <듄>의 마스코트라 할만 하거든요. 샤이 훌루드는 그냥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 아니라 아라키스 생태계와 원주민들의 삶과 종교, 제국의 스파이스 수급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동물 자원입니다.

저는 종종 샤이 훌루드를 말향고래와 비교하곤 합니다. 그 거대하고 신비로운 이미지하며, 인간이 자원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수가 점차 줄어드는 게 아주 똑같다고 보거든요. 작가 허버트가 실제로 고래를 떠올렸는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허나 모래벌레는 그만큼 기울어져 가는 생태계를 잘 나타내줍니다. 그게 다른 크리쳐와 여실히 구분되는 샤이 훌루드의 특징이죠. SF 크리쳐 중에 이토록 동물성이 짙은 건 얼마 안 될 겁니다.

그런데 국내 소설 표지를 보면 그런 샤이 훌루드를 그려놓지 않아서 좀 아쉽습니다. 그림을 보면 그저 사막과 사람(아마도 원주민) 몇 명만을 그려 놓았습니다. 오히려 모래벌레를 그려 넣는 편이 더 눈길을 끌기 좋지 않을까요. 물론 표지에 그린다고 해서 저런 상징성을 나타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소설의 특징이 무언지는 보여줄 수 있지 않습니까. 상상 속 동물을 다룬다는 걸 표지 그림으로 요약할 수 있으니까요.

거기다 샤이 훌루드는 비주얼도 기가 막힙니다. 사막 그림이야 흔할 테지만, 거대한 벌레가 모래 위로 솟구치는 광경은 오직 이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거니까요. 모래벌레가 나오는 장면은 아무래도 사람들 이목을 끌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광고용으로도 그만이라는 겁니다. 서점에서 그냥 휘휘 둘러보는 사람이라도 이상한 동물 하나가 표지에 그려져 있으면 당연히 ‘뭘까?’하고 호기심을 갖지 않겠어요. 그러니 이런 샤이 훌루드를 활용하지 않고 표지를 채우는 건 엄연한 낭비입니다, 낭비.

저는 <백경> 소설 표지에는 으레 모비 딕이 들어가듯 <듄> 소설 표지에는 샤이 훌루드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국내 번역본 표지는 그게 아니라서 좀 허탈하기도 해요. 분명히 더 멋지게 꾸밀 수 있었을 텐데요.

※ 어찌 보면 강화복 없는 <스타십 트루퍼스> 표지 그림과 비슷한 예일 수도 있습니다만. 상황이 좀 다릅니다. 그간 수많은 화가들이 모래벌레 그림을 그렸고, 일부는 공식이라고 할만큼 널리 알려진 것도 있습니다. 그런 그림을 참고했더라면 그리기 손쉬웠을 겁니다. 더욱이 강화복은 기계 장치가 많아 그리기 어렵겠지만, 샤이 훌루드는 그것도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