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품 게시판 - 영화/애니/만화/소설/드라마/다큐멘터리
슈퍼 로봇 이야기, 괴수/괴인/초인 이야기 외에... 다양한 작품과 장르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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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얼마나 정확하게 예언하느냐가 정통 SF를 가르는 기준이라고 한다면 절대다수의 명작 취급받는 SF는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합니다.
사실 예언이라고 할 것도 없는 게, 80년대 대한민국도 별다를 게 없었죠.
네드리님도 말씀하셨지만, 사이언스 픽션의 기준은 상상력과 논리죠. 말 그대로 사이언스(논리) 픽션(허구)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요. 오히려 미래 예측이 SF 장르의 기준이라는 말은 사이언스 픽션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고요. 사실 뉴웨이브와 사변 소설까지 따지면, 아예 미래 예측이랑 바이바이하는 상황이고. (물론 그래서 아시모프는 뉴웨이브 장르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하지만.)
그리고 발췌 장면의 풍자는 좋지만, 그저 풍자 하나로 명작 SF 반열에 들어가기는 힘들겠죠. 작가가 그런 풍자를 이용해 얼만큼 전복적인 사회 구조를 설정하고, 개개인의 부조리와 실존을 논하는가가 중요할 겁니다. 순문학들도 꽤나 심도 있는 부조리를 보여주니까요. 사이언스 픽션은 순문학보다 스케일도 크니, 부조리의 범위도 크게 다룰 수 있고, 적어도 그럴 듯한 필력과 사상이 나와줘야 의미가 있겠죠. 어차피 풍자 정도는 굳이 사이언스 픽션이 아니라 다른 장르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라서….
은하영웅전설을 동생이 전권을 사서 집에 두고 있는데도 1권만 봐도 그 정치 상황에 빡치는 바람에 여태까지 못봐서 우국기사단이 진짜로 극우집단인지, 아니면 정치깡패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한국에서는 소설이 나오기도 전에 더 한 놈들이 있었습니다.
백골단이라고요.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80년대 대학생들이 시위라도 할라치면 어디선가 나타나서 폭력상황을 일부러 만들던 놈들인데, 그 정체는 지금은 모르는 사람도 없겠지만 "대한민국 육군"입니다.
해병대와 특수부대 애들을 옷 벗겨서 흰 안전모와 청바지, 청잠바 입혀서 길거리로 내보내서 시위하는 대학생들을 폭력으로 탄압한거죠. 그러다가 쓰러진 학생들은 당연히 병원에 가기 전에 구치소로 먼저 가게 되고, 자신들의 불법시위에 대한 시인을 하지 않으면 머리에 피가 철철 흐르는 상황에도 병원 근처에도 못가게 했다죠.
요새 들어선 이 시대를 향수로 그리며 좋아하는 어르신들이 그렇게나 많다는 사실이 소름끼칠 정돕니다만 그건 그렇다 치고, 결국 이런 "정체를 숨기고 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하는 부대"는 전체주의, 군국주의, 파시즘이 살아 있는 국가라면 어디나 있습니다. 자유주의의 기치를 가장 높이 꽂고 있는 미국마저도 닉슨 시절 반전운동하던 학생들을 향해 군대가 발포한 사건도 있었는걸요. 아예 가장 최근에 "액트 오브 킬링"이라고 영상화로 잘 알려진 것도 있군요. 여기에도 비슷한 일을 하는 놈들은 등장합니다.
위 우국기사단의 경우는 그냥 현실에 있었던 정치깡패를 등장시킨것에 불과 합니다. 은하영웅전설의 특징은 배경은 미래의 우주전쟁인데도 정치는 묘하게 그 소설이 쓰여진 시대와, 전투는 나폴레옹 시절의 전투와 비슷하다는 겁니다.
단지 이런 비슷함만 가지고 미래를 예측했다고 말한다면 레미제라블을 쓴 비토르 위고는 대체 몇백년 후의 미래를 예측하는게 되는겁니까?
결국 은하영중전설이 미래를 잘 예측한게 아니라 그냥 사람 사는 꼬라지가, 별로 달라진것도 없이 역사는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말 밖에는 안되는겁니다.
이승만시절의 정치깡패로 백골단이라는 집단이 있었습니다만 글에서 말하시는 백골단이라면 사복체포조를 뜻하시는 듯한데 이사람들은 시위진압경찰들입니다. 경찰신분으로 듣기로는 유도대학이나 특전사, 전경출신자들중에 선발해서 조직한 진압경찰부대로 전경들이 집단방어위주라면 이들을 시위대를 적극 공격해 파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전투경찰과 사복체포조(백골단)의 역할을 잘 보여주는 사진
은하영웅전설의 우국기사단이 형식상 민간단체라 그래도 어느정도 눈치를 보면서 행동하는데 반해 이들은 그런거 없었습니다. 이들의 악명은 거의 전설인데 방독면쓰고 질주하면서(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이게 얼마나 힘든지 아실겁니다) 흩어지는 시위대를 토끼몰이하듯 몰아 포위해 집단구타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명지대 강경대군등 이들에게 맞아죽은 사람도 여럿이었습니다.) 학교 도서관에 쳐들어가 안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을 남녀 가리지않고 머리채잡고 질질 끌고나온다던가 막 출발하려는 지하철에 난입해 타고있던사람들을 닥치는대로 끌어내는 등 상대와 수단을 가리지 않았고 심지어 (외신기자까지 포함해서) 취재중이던 기자까지 폭행하는 등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청백색 헬맷에 사복이라고 입은 똑같은 청바지와 청자켓에 방독면을 쓴 모습은 확실히 기계적으로 느껴지는데다 집단으로 굼뜨게 움직이는 전경과는 달리 명백한 적의를 가지고 돌진해오며 끝까지 쫓아오는 이들의 존재는 SF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로봇이나 강화복을 입은 집단으로 형상화되곤 합니다.
하드에스에프 매니아분들은 은하영웅전설이 저급 스페이스 오페라일 뿐, 정통 에스에프가 아니라고 깐다는 얘길 들은 적 있습니다. 허나 저는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은하영웅전설은 충분히 정통 에스에프의 반열에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정통 에스에프의 정의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누구나 공감하는 공통적인 요소는 바로 미래 예측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은하영웅전설은 1982년도에 나온 걸로 아는데, 이때에 벌써 30년 후 오늘의 현실을 예측 수준이 아닌, 아주 정확히 예언했다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은하영웅전설은 정통 에스에프의 범주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