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86년 생, 로봇 애니메이션으로 따지자면 축복받은 세대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을 보냈을 때가 마징가, 태권브이, 그랑죠를 비롯한 고전 거대 로봇물들의 비디오가 유행하고,
용자물, 앨드런 시리즈가 티비에서 범람하던 황금기이자, 리얼 로봇 계열로 건담과 마크로스가 세상을 향해 포효하던 시기였지요.

청소년기는 용자물의 마지막이자 걸작인 가오가이가, 그리고 거대 로봇 애니메이션의 혁신이자 종말의 시작이었던 에반게리온,
에반게리온에게 밀린 비운의 걸작 에스카플로네 등, 정말 풍성한 로봇 애니메이션을 즐길 수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이제 나이가 20살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전 아직도 거대 로봇물과 전대물을 좋아합니다.
친구들을 나이 먹어서 아직도 그런거 좋아하냐고 비웃지만, 누가 뭐라해도 전 거대 로봇 애니를 사랑하고
또 스스로 거대 로봇물을 감독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지금 미대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전공 중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애니메이션 방영 목록을 보고 있으면 참 쓸쓸합니다.
예전의 그 넘치던 로봇 애니메이션들이 이제는... 거의 보이지를 안 거든요...
건담과 마크로스는 거대 로봇물이라기 보다는, 스스로 자청하듯 리얼 로봇물에 가깝고,
간혹 나오더라도 예전만큼의 위상이나 매력은 가지지 못한 경우가 많고요.

거대 로봇의 정의를 뭘로 내려야 하느냐... 라고 하면 조금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역시 '거대함'과 '특수함' 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거대 로봇물 자체가 고대 골렘 전설에 기원을 담고 있고, 거대 로봇이라는 상식과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소재를 다루기 위해서
자주 사용되는 기법은 거대 로봇의 희소성과 신비함을 강조하는 방법이지요. 현대 과학을 뛰어넘는 기술로 만들어 졌다거나
멸망한 초 인류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 것 등 말입니다.

( 거대 로봇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 http://lgaim.egloos.com/1335034 여기 백금기사 님의 블로그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어여간 이제는 시대가 변해서, 거대 로봇물은 너무 유치하고 예전의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제작비 같은 문제가 있거나, 예전의 명작들을 뛰어넘을 소재나 시나리오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인지...
제대로 된 거대 로봇 애니메이션은 이제 보기가 힘들어 졌습니다. 나오더라도 로봇의 전투나, 조종사와 로봇의 고난과
성장같은 전통적인 이야기가 아닌, 주 스토리의 곁다리로 등장하는 애니도 증가했고요.
(아이러니컬 하게도 헐리우드는 트랜스포머와 아이언 맨의 성공으로 비슷한 종류의 영화가 당분간 쏟아져 나올 듯 합니다.)

물론 로봇 애니메이션은 무조건 이래야 한다 라고 주장하는 극단적인 성격은 아닙니다만, 거대 로봇이 주가 되고, 거대 로봇이
모든 이야기의 끝과 시작이자, 용기와 로망 그리고 성장의 상징이던 애니를 좋아하던 올드 팬으로서는 참 씁씁할 따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에 등장했던 그레라간은 저에게 가뭄에 단비와 같은 애니였고, 간만에 매주 방영을 손꼽아 기다리며 즐거워하는
시간을 주었지만, 로봇 애니메이션의 붐을 다시 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듯 합니다. ( 재미있는 사실은 그렌라간이 방영하자
상당히 환호하는 애니 팬들이 많았다는 것이지요. 그렌라간이 로봇 애니메이션으로서의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매우 재미있는
애니여서 이기도 하겠지만, 저 처럼 정통에 가까운 로봇 애니를 그리워 하고 바라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는 증거이지도
않을까요 ^_^;;; )

이번 10월 분기에는 강철의 라인배럴이라는 로봇 애니메이션이 있습니다. 이미 만화책으로 6권까지 읽으며 메카 디자인에는
마음이 가 있는 상황이고, 제작사인 곤조에서 시도하는 3D 메카와 셀 애니메이션의 혼합을 기대하면서 지켜보는 중입니다만,
작품 자체가 거대 로봇물 보다는 리얼로봇 분위기에 가깝게 가려는 듯 하고, (사실 만화책 표지에서 이미 거대 리얼 로봇
애니메이션 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3D로 구현된 메카는 멋지지만, 셀 애니메이션과 조금 부조화를 이루는 데다가 무게감이
떨어져 보입니다. ( 그러고 보니 곤조는 초기에 높은 퀄리티와 완성도로 호평받던 제작사였는데, 지금은 용두 사미식 퀄리티와
지나친 3D 애니메이션의 강조, 그리고 '원작 파괴자' 라는 별명으로 욕을 먹고 있기도 합니다. -_-;;; 이번 작품에서 과연 만회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요.) 

언젠가는... 다시 거대 로봇 애니메이션의 시대가 돌아올 수 있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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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현실로 바꾸는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