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품 게시판 - 영화/애니/만화/소설/드라마/다큐멘터리
슈퍼 로봇 이야기, 괴수/괴인/초인 이야기 외에... 다양한 작품과 장르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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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듣자하니 마이클 베이는 밀덕이라고 하더라고요. 아뇨, 그냥 저도 들은 이야기니 확실히는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밀덕에도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국가간 정치질 좋아하는 밀덕이 있고 총이건 탱크건 장비를 좋아하는 경우, 혹은 고대건 현대건 전쟁사를 좋아하는 경우나 다양한 유형이 있습니다만 마이클 베이의 경우는 영웅으로서의 군인을 좋아하는 경우이라고 합니다. 원래 군인이 되고 싶었고 군인들에게 무료 상영회도 해준다고 합니다. 트랜스포머만 해도 외계 로봇들을 미군이 다 때려잡고 틈만 나면 성조기 펄럭거리는 장면 나오고 그랬지만 생각해보면 데뷔작인 더 록부터 군인들이 정말 폼나게 나오지 않습니까.
유명한 샤워실 장면. 애드 해리스와 마이클 빈, 두 폼나는 군바리들의 대결이죠.
소문에는 베이 본인도 블랙 호크 다운 풍의 진지한 실화 기반 밀리터리 영화를 만들 기회가 있었는데 놓쳐서 아쉬워했다고 합니다만, 뭐, 돈 잘 버는 감독이고 하니 원하는 영화 하나 못 만들겠어요. 그래서 2012년의 리비아 대사관 사태를 바탕으로 최근에 하나 찍은 게 13시간입니다. 원작 논픽션도 있고, 나름 좋아하는 분야 이야기 만든다고 해서 공 좀 들인 모양입니다. 물론 창작자가 관심 있는 분야라 공 들였다고 해서 꼭 결과가 좋다는 보장은 없긴 한데요...
그래서, 저도 군대 나오는 거라면 환장을 해서 액트 오브 밸러도 극장에서 봤고 배틀 로스 엔젤레스도 극장 가서 돈 주고 봤는데 마이클 베이 영화쯤이야 못 볼 이유 뭐가 있겠어요.
영화는 2012년에 리비아 벵가지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해당 사건을 다룬 논픽션이 있는데 그걸 기반으로 했고요, CIA 비밀 시설의 경호원으로 들어간 ‘용병’ 6사람이 9/11 테러 11주년에 맞춰 미 대사를 노리고 몰려든 테러리스트들하고 싸운 이야기죠.
미국에서는 하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나온 이 영화 덕분에 실제 사건에서의 힐러리 클린턴의 실책에 관련된 논란이 신나게 벌어졌고 국내에서는 또 훌륭한 미군들이 이슬람 테러리스트를 쏴죽이는 패권주의 영화 어쩌고 하는 평가가 나오는 모양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마이클 베이가 그딴 거 신경 쓸 능력이나 있는가도 의문입니다.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야 보는 사람 맘이지만 영화 자체는 그저 수염 기른 우락부락한 전직 특수부대원 6명이 적진 한복판에서 죽도록 고생하는 이야기일 뿐이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이 친구 영화에서 군인들이 폼나게 나오긴 해도 윗선들은 보통 꽉 막혀서 삽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도 하고 말예요. 어쨌건, 여기서는 윗선들을 인터뷰한 게 아니라 현장서 총 맞았던 사람들의 시각을 다루고 있으니까 말예요. 그런 맥락에서 영화의 관점은 객관적인 듯 하면서도 주인공들 빼고는 어째 다들 꽉 막힌 나쁜 놈들 취급을 하는 편향된 느낌이 강합니다만...어떤 의미에서는 그래서 더 현실적이기도 하죠.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중반쯤에서 딱 클라이맥스에 오른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류의 영화에서는 대부분 그렇지만 괜히 폼잡고 당시 역사적 배경들을 설명해주고, 나중에는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에 개성이 없어서 구별도 잘 안 되는 우리의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다양한 인간적인 면모가 있다는 걸 교과서적으로 강조해주려고 애쓰는 (그리고 실패하는) 초반부를 지나고 나면 드디어 ‘나쁜 놈’들이 대사관에 몰려오고 액션이 막 발동 걸리면서 정신없이 사건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꽉 조여오는 느낌이 상당히 좋습니다. 이성적으로야 영화화를 위해 이리저리 각색을 거쳤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실화입니다’라는 문구 하나 넣고 시작하면 왠지 사람 죽고 다치고 할 때마다 뭔가 뜨끔한 그런 게 있을 수밖에 없죠.
게다가 아시다시피 이 감독이 액션 좀 잘 터뜨립니까. 특유의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연출은 말도 안 통하는 남의 나라에 적진 한복판이긴 한데 앞에 있는 게 적인지도 아군인지도 알 수 없고 윗대가리들은 삽질만 하고 있는 난장판이란 영화의 설정과 기묘하게도 잘 맞아떨어지면서 긴장감을 팍팍 올려줍니다.
이후 영화 끝날 때까지 신나게 총질이 이어집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뒤로 갈수록 아드레날린은 날아가버리고 조금씩 피로해졌습니다. 여전히 이건 마이클 베이 영화거든요. 괜히 렌즈 플레어 시시때때로 잡고 카메라 이리저리 흔들어대면서 카 체이스 장면 찍고 장면마다 과장된 색감 집어넣고 하는 거, 중요하다 싶은 장면마다 슬로모션 찍어 넣는 거, 때맞춰서 한스 짐머/로렌 발프의 음악이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그러면 배우들이 연기를 잘 해주긴 해도(주인공을 미드 오피스에서 봤다는 걸 나중에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거기서는 그냥 평범남이었는데.) 깔끔한 맛은 없는, 뭔가 잘 가공되긴 했어도 진짜같진 않은 인스턴트 캔을 딴 듯한 그런 느낌이 들어요.
물론 감독 특유의 성향들은 그나마 좀 자제했고 역시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많이 나아진 편이긴 한데, 단점들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는 거죠. 실화 기반의 원작이 있어서 전체적인 이야기를 지탱해주기는 하지만 중간중간 이야기의 호흡이 미묘하게 안 맞고 캐릭터들의 감정선도 이리저리 오락가락합니다. 덕분에 결과물은 이야기를 끝까지 힘 있게 끌고간다기보다는 좀 루즈해진다는 느낌이라서, 감독의 의도대로 죽을 고생한 용병들을 조명하기 위한 실화에 진짜로 따라야 할 묵직함과 비장함은 그렇게까지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개인적 기준으로 따져보자면...굳이 비교하긴 그렇지만 론 서바이버보다는 낫다 싶네요. 허트 로커나 제로 다크 써티보다는 좀 딸리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많이 부족한 느낌은 안 듭니다.
Our last, best hope for peace.
저는 영화를 못 봤지만, <론 서바이버>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꼭 그렇지만도 않은가 보네요. 역시 직접 보고 판단해야 하나…. (<시카리오>도 꼭 보고 싶었는데 놓쳤고, 이것도 못 챙길 것 같아요. 뭐, <시카리오>는 밀리터리 쪽은 아니지만.)
다만, 후한부 피로는 거의 공통적인 의견이더군요. 아무래도 격렬한 액션 끝에는 뭔가 인간미를 자극하는 플롯이 나와야 하는데, 마이클 베이가 그런 쪽에는 좀 소질이 떨어지니까요. <더 록>에서 서정적인 '제이드' 테마를 배경으로 메이슨이 사라지는 장면은 퍽 인상적이었는데.
개인적으로 근래에 정말 밀덕질이 잘 된 영화가 <아메리칸 스나이퍼>라고 봅니다. (근래라고 하기는 좀 그런가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정말 총을 사랑(…)하는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단순히 총격전만 보여주지 않고, 총기를 이용해 어떤 액션을 펼칠 수 있는가, 얼마나 참신한 연출을 보여줄 수 있는가, 고민하는 듯했거든요. 하다못해 총기 파지 자세까지 뭔가 달라 보인다고 할까요. 이건 제가 밀리터리 지식이 없어서 그렇게 보였을 수 있겠지만요. 게다가 파견-일상-파견-일상-파견…이라는 플롯의 반복에도 긴장감이 팽팽하게 살아 있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캐릭터 확립도 좋았고.
물론 <제로 다크 서티>나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A++ 클래스입니다. 마이클 베이가 여기까지 올라가기에는 아직 무리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