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의 일부분 내용 누설 있습니다. 다만, 플롯 자체가 워낙 전형적으로 흘러가는 터라 치명적인 누설은 없는 편입니다. 본문에도 나오겠만, 독특하거나 참신하기 보다 뻔한 이야기를 진국으로 요리한 쪽에 속합니다.



인류는 2천년 동안 다양하게 싸웠습니다. 인류사를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렇죠. 사는 땅이 다르고, 민족이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기타 등등. 그런 분쟁은 끝나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죠. 그 상처가 또 다른 분쟁으로 번지고, 결국 공존할 수 없는 원수 관계로 고정됩니다. 간혹 평화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그 동안 갈라진 골짜기가 너무 깊어서 몇몇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죠. 그래서 오늘도 인류는 예전의 갈등을 이어가고, 아마 앞으로도 이런 대립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모 게임에도 나오듯이 전쟁, 그건 변함이 없죠. 소감에 앞서 이런 썰을 길게 푸는 이유는 영화가 바로 그런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은 전형적인 분쟁 구도입니다. (인류) 문명과 (유인원) 문명의 원한과 분쟁이요. 아예 종이 다르니, 갈등은 피할 수 없고, 몇몇 인물의 노력에도 비극으로 치닫죠.



인류는 실험을 하겠다며 그 동안 유인원을 괴롭혔습니다. 유인원이 퍼뜨린 바이러스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요. 인간들은 유인원을 질병덩어리 야만인으로 생각하고, 유인원은 인류가 난폭하다고 여깁니다. 여기서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와아아아아~ 전쟁!!'이죠. 동서고금 역사를 따져봐도 이런 상황에서 분쟁의 불꽃이 피는 걸 막기는 힘듭니다. 영화는 그런 갈등을 초반부터 조금씩 쌓아 놓습니다. 터질 듯, 터질 듯, 터지지 않게…. 뭔가 한방 날아갈 듯하면서 간신히 조화를 이룹니다. 하지만 아무리 잘 만든 건물도 자꾸 금이 가면 버틸 수 없겠죠. 처음에는 작은 금에 불과했던 것이 갈수록 커집니다. 그리고 중반부를 넘어서면 건드리지 않아도 저절로 깨집니다. 마침내 건물은 손쓸 수 없이 붕괴하고, 그 다음에는 아비규환만 남습니다. 이 영화의 긴장감은 대개 이런 터지지 않는 갈등에서 나옵니다. 전편이 주인공 시저의 감정 폭발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그게 유인원 전체로 퍼집니다. 그게 이 영화가 카타르시스를 부여하는 방식입니다.



당연히 갈등이 깨지지 않게 유지하는 인물들이 중요해집니다. 이런 인물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발에 땀 나도록 뛰는가에 따라 긴장감 형성이 달라지죠. 문명 대립을 다루는 창작물이 그렇듯, 전쟁을 막으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주인공들이 그런 역할이죠. 인류 쪽에서도, 유인원 무리에서도 그렇습니다. 양측 인물들은 자기 무리를 통제하고, 설득하고, 서로 교류하면서 어떻게든 평화를 이끌어내려 합니다. 서로 다른 두 존재가 미지와의 조우를 거쳐 일련의 사고를 겪고, 우정까지 회복하는 장면은 꽤나 마음을 울리게 합니다. 왜냐하면 두 인물이 비참한 '경계인'으로 떨어질 걸 예고하기 때문이겠죠. 유인원과 교류하는 인간, 인간의 편의를 봐주는 유인원. 두 존재가 설 곳은 없고, 자리가 아슬아슬하게 좁아집니다. 그런 아이러니가 두 인물의 우정을 보다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우정이 깊어질수록 어떤 비극이 벌어질지 슬슬 보여주죠.



특히 여러 주연들 중에서도 시저의 존재감이 압도적입니다. 사실 이 영화는 시저가 60%를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작이 '지도자의 성장 전기'였다면, 이번 작은 '지도자의 갈등과 귀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영화 자체가 대놓고 시저에게 의존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그런 무거운 짐도 가뿐하게 들고 갈 정도로 캐릭터 확립이 뚜렷합니다. 폭력적인 유인원 무리를 이끌지만, 그 자신은 줄곧 선하고 현명한 길을 걸으려는 의지 때문이겠죠. 자기 종이 사느냐 죽느냐 기로에 처했고, 그 자신의 지위도 위태롭습니다. 그러나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모두가 살길을 찾는 모습이 눈물겹더군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킹덤 오브 헤븐>의 살라딘이 떠올랐습니다. 전쟁의 광기에 휩싸인 무리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거든요. 역시 민중은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하는 법인가 봅니다. 비단 캐릭터 성향만 아니라 시각효과와 목소리 연기 또한 일품입니다. 특히 중요할 때마다 질러주는 그 고함은 남자가 봐도 반할 정도.



현명한 주인공이 존재하면, 그에 대립하는 인물이 있어줘야 분위기가 살죠. 이를 맡은 게 보노보 코바입니다. 아주 그냥 얼굴부터 험악하게 생긴 게 타고난 악역입니다. 전작에서도 인간들의 실험 때문에 한이 많았죠. 더군다나 이번에는 조직적으로 싸움이 번질 것 같으니, 아주 부채질을 팍팍 해댑니다. 뼛속까지 악당이라기보다 하도 당한 게 많아서 성격이 삐뚤어진 터라 씁쓸한 동정심도 자아내는 편입니다. 얼굴 생김새도 그렇고, 인간에게 잔인하게 보복하는 면도 그렇고, 나중에는 주화입마에 빠져 아예 자신을 주체 못합니다. 처음에는 그나마 분노를 숨겼지만, 한번 고삐가 풀리자 제어가 안 되는 게 오싹하더군요. 오로지 증오로 움직이는데, 코바가 광기에 빠지는 과정도 중요한 이야깃거리입니다. 시저가 차지한 60%에서 나머지 35%는 코바 몫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송곳니를 드러내고 쩌렁쩌렁 외치는 분노의 함성이 섬찟합니다. 다만, 시저에게 너무 무게를 쏟느라 코바는 조명을 못 받는 감도 있어요. 둘의 구도를 동등하게 다뤘으면 훨씬 그럴 듯했을 텐데.



유인원 사회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분명히 지능이 높고 뛰어나지만, 도구 수준은 거의 고대 문명 수준. 언어를 자유로이 사용하고, 자기 치장도 할 줄 알더군요. 뛰어난 지능과 조악한 기술 수준이 묘하게 엇갈리는 사회라고 할까요. <모로 박사의 섬>에서 그랬듯이, 이런 사회는 강력한 모토로 규합하죠. 몇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이 살인 금지입니다. 유인원은 서로를 죽여서 안 된다는 건데, 본작에서 여러 모로 잘 쓰이는 문구입니다. 분쟁의 불꽃을 틔우는 줄거리라서 그 자체로 상징하는 면도 크고요. 침팬지들 도구 수준은 낮지만, 일단 머리가 돌아가는 만큼, 학습 속도는 빨라서 인간의 무기를 자유자재로 다룹니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그렇지, 이 부분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군요. 기존 인간 사회에서 떨어져 나온 유인원은 그렇다 쳐도 나머지 무리들도 아무런 제한 없이 총기를 자유롭게 쓰니.



시각 효과는 잘 모르는 터라 자세하게 논하기가 좀 그렇습니다만. 어쨌든 그래픽 느낌은 거진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짜 침팬지나 보노보, 오랑우탄을 데려왔나 싶더라고요. 실제 유인원을 훈련시켜 촬영한 거라고 착각할 뻔했습니다. 그냥 그래픽이 뛰어난 게 아니라 동물 특유의 표정이나 손짓, 행동거지 등을 세세하게 반영했어요.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이 영화를 감상해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네요. 예전에 <쥬만지>가 나왔을 때 포유류는 털이 많아서 컴퓨터 작업이 힘들다는 말이 있었죠. 이 영화를 보면, 털 많은 포유류라고 해서 못 만들 게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도 그냥 때리고 부수는 게 아니라 능수능란한 연기까지 펼치니, 원. 전편을 볼 때도 시각효과다 대단하다고 느꼈는데, 이번에는 훨씬 더하네요. 게다가 이런 유인원들이 광대한 삼림과 어우러지는 장면은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삼림과 마을 디테일이 참 세세하더라고요. 폐허로 변한 도심지도 볼만 합니다.



인간측 캐릭터도 나쁘지 않지만, 시저와 코바가 너무 두드러집니다. 그래서 솔직히 인간 쪽은 그냥 무난하게 넘어갔네요. 그렇다고 캐릭터가 나쁘거나 연기를 못했다는 건 아닙니다. 애초에 유인원에게 기대는 구성이라 배우가 뭘 어떻게 해볼 수 없었겠죠. 인간측 주인공 말콤도 시저처럼 '경계인'이긴 한데, 그 때문에 갈등을 별로 겪지 않습니다. 유인원 사회의 분란은 자세히 주목하지만, 인간 쪽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어요. 아니,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유인원들이고, 인간은 찬조 출현했다 싶을 정도입니다. 여타 SF물은 인간이 주인공이고 대립 세력의 밀도가 떨어지죠. 그것과 정반대입니다. 지구를 침공하는 화성인이든,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외계 벌레든, 물밀듯이 밀려오는 좀비든, 판타지 세계의 오크든 간에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가죠. 하지만 여기서 인간은 화성인이나 오크 역할입니다. 기존의 인간 비중은 유인원이 가져갑니다. 그래서 '휴먼' 드라마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좀 엉뚱하게 보일 수도?



플롯 전개는 이런 부류의 줄거리를 그대로 따라갑니다. 이렇게 '문명 대립'과 '경계인'이 나오는 창작물을 본 사람이라면, 대략 예상할 수 있을 겁니다. 딱히 새로운 발상이나 전환점은 없습니다. 뭔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참신한 이야기를 바란 관객이라면, 살짝 실망할 수도 있겠어요. 즉, 완전히 새로운 메뉴는 아니라는 거죠. 다만, 인물 성향을 멋지게 짜냈고, 드라마는 밀도가 높고, 갈등을 쌓아가는 연출도 훌륭합니다. 실사 같은 시각효과는 덤입니다. 똑같은 메뉴라도 어떻게 요리하는가에 따라 훌륭한 진미가 나올 수 있죠. 이 영화는 그런 진미고요. 특히, 시저의 위압감을 보는 것만으로도 2시간이 꽉 찰 정도였습니다. 이만큼 존재감이 (소위) 쩔어주는 유인원 캐릭터도 찾기 힘들 듯하군요. 또한 전편이 그랬듯 갈등을 완전히 마무리하지 않습니다. 속편 떡밥을 깔아둔다는 것보다 한편으로 마무리하기 너무 커다란 주제라서 그렇겠죠. 그랬다가는 드라마도 무너질 테고.



전반적으로 보면, 이질적인 문명 대립이란 소재를 충실하게 풀어 나갑니다. 참신하고 신선한 면은 없지만, 캐릭터와 드라마 밀도, 시각효과 등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나왔네요. 혹시 관람 예정인데, 전작을 안 봤다면 꼭 보라고 권유합니다. 전작을 보면 감동이 2배로 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