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품 게시판 - 영화/애니/만화/소설/드라마/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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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로봇 이야기, 괴수/괴인/초인 이야기 외에... 다양한 작품과 장르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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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엑스파일이 있었습니다.
다들 아시죠. 멀더와 스컬리 두 FBI 요원이서 온갖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조사하고 다니던 드라마. 국내에서도 당시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내면서 미국 드라마 열풍을 다시 불러왔지만, 제작지인 미국에서도 역시 이후 드라마들에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수사기관이 미스터리한 사건 조사한다는 설정을 그대로 갖다 쓴 물건들도 많이 나왔지만, 소위 스토리 아크(story arc) 개념을 다시 유행시키기 시작한 게 크죠.
즉, 그 시절 미국 TV 드라마라는 건 사람들이 채널 돌리다 막 보는 거니까 한 화 안에 완벽한 기승전결을 갖춰서 드라마 첫화부터 안 본 사람도 중간부터 우연히, 쉽게 볼 수 있게 하는 게 많았습니다. 물론 그만큼 보다가 이탈하기도 쉽다는 단점이 있었죠. 그래서 엑스파일은 에피소드마다 이어지는 큰 이야기(story arc)를 도입하고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떡밥으로 잔뜩 풀어서 궁금증을 유발하고 계속 보도록 유도한 겁니다. 그 이후로 로스트처럼 수많은 미국 드라마들이 사실 숨겨진 게 있지만 다음 화 봐야 알려주지! 라는 수법으로 수많은 시청자들을 낚았고 지금도 열심히 낚고 있죠. 이제는 DVD나 넷플릭스, 토렌트, DVR 등으로 쭉 이야기를 이어서 보기 훨씬 편해졌다는 것도 있고요.
물론 이런 수법은 1년마다 재계약을 하면서 중간에 시청률 낮으면 가차 없이 잘라버리는 미국 드라마 시즌 시스템에서는 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숨겨놓은 걸 공개하기 전에 그냥 잘려버려서 보는 사람 허탈하게 만들기도 하고, 혹은 잘려버릴 거라 생각하고 대충 분위기만 잡고 있었는데 의외로 안 잘리고 인기 드라마가 되면서 이야기를 늘리는 바람에 수습하기가 참 골치 아파지기도 하죠. 엑스파일 역시 결국엔 그래서 다 어떻게 되는 거야 하는 좀 애매한 부분들이 남겨졌고요.
프린지는 이러한 엑스파일의 요소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계승하고 있는 드라마입니다. FBI 내부의 작은 특수팀이 미스터리한 사건을 조사한다는 설정을 그대로 따왔고, 큰 스토리가 매우 중시되죠. 물론 단순한 아류는 확실히 아닙니다.
구성만 놓고 보자면 가장 큰 차이점은 소재부터가 미스터리인 척 하지만 사실 별로 그렇지는 않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에피소드별로 온갖 소재와 전개를 다 끌어대던 엑스파일과 달리, 여기서는 구성이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죠. 이상한 사건 터지고, 주인공들이 가서 조사하고, (늘 그렇지만) 전공이 뭔 분야인지 감도 안 잡힐 정도로 온갖 걸 다 알고 있는 천재 박사 한 명이 요상한 설명으로 끼워 맞추고, 해결합니다. 에피소드 끝.
이런 이야기가 원래 그런 거 아니라고 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문제는 미스터리 특유의 긴장감이란 게 그리 좋지 못하다는 거죠. 사건 자체도 그리 흥미롭지 않은데 어떻게든 한 에피소드 안에 해결하려 들고, 그 방법도 억지스러운 경우가 많으니까요.
특히 설명이라고 끼워 맞추는 건 거의 한심할 지경인데,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했던 예로는 죽지 않게 된 사람이 나오는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좀 있다가 그걸 그 사람이 번개에 맞았기 때문에 몸을 구성하는 분자들이 고도로 대전되어서 전기적 결합이 강화되어 불사신이 되었다는 걸로 설명합니다. 그 사람은 죽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죽으면 그 사람의 영혼이 천국으로 갈 때 자신도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동반자살을 자꾸 하고 돌아다닙니다. 결국에는 폭탄을 터뜨리는데 그 폭탄의 진동 주파수가 몸의 주파수하고 맞아서 죽을 수 있게 되요.
조금만 생각해봐도 대체 무슨 헛소리인가를 매우 진지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엑스파일은 신비한 분위기를 위해서 애초에 설명을 잘 안 하는 쪽이었고, 유레카 같은 거야 말이 좀 안 되도 열심히 설명해댔지만 그랬지만 그건 최소한 개그물이었고요, 진지한 표정으로 진지한 주인공들이 열성적으로 연기하는 드라마에서 이런 식으로 꾸준히 설명해댄다는 건 좀 어색하죠.
그럼 그러니 저처럼 까칠하고 삐딱한 양반은 좀 재미없게 봤겠다고요. 아뇨,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미스터리적 요소는 그럴듯하지도 신비하지도 않지만 시선을 조금 더 넓혀보면 드라마로서는 상당히 재밌습니다. 별 재미없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중요한 척 하지만 사실은 메인 스토리를 뒷받침하는 요소, 혹은 그냥 배경으로 존재하고, 그 위에서 각 에피소드들은 꾸준히 큰 스토리에 관련된 떡밥을 던집니다.
의외로 현대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원이동 같은 이야기를 들먹이며 제법 본격적인 SF의 느낌을 내기 시작합니다. 이에 관련해서 매 화마다 이런저런 사건 조사하는 동안 자잘한 떡밥 던지고, 등장인물 간의 관계 조금 더 진전시키고, 이전 떡밥 회수하고, 큰 이야기를 좀 진행시키고, 그리고 다음 에피소드에서도 반복하면서, 꾸준히 차근차근, 마치 계단 밟아 올라가는 느낌으로 이야기를 잘 이어나갑니다. 무리한 반전도 없고 에피소드별로 완성도가 크게 들쭉날쭉하지도 않지만, 꾸준히 차근차근 전개되는 이야기 구조는 보면 볼수록 어떻게 될지 끝까지 봐야만 한다는 기묘한 중독감을 제공하죠.
제작에 떡밥의 제왕 JJ 에이브럼스가 들어가는데, 의외로 매우 안정적으로 나가는 덕분에 완성도에서는 크게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게다가 주연 배우들도 상당히 실력이 좋습니다.
-가운데에는 더 퍼시픽에도 나왔던 여주인공 Anna Torv. 솔직히 국내 기준으로건 해외 기준으로건 미인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캐릭터라는 측면에서는 꽤 그럴듯합니다. 사진은 좀 잘 나온 편이고 개인적으론 드라마상에서 보면 볼수록 못생겼다는 생각이 들던데, 사실 FBI 요원이 너무 예뻐도 이상하기는 하죠.
-왼쪽의 남주인공 죠슈아 잭슨은 너무 훈남 스타일이긴 하군요.
-오른쪽이 천재 박사이자 살짝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남주인공의 아버지 역할의 존 노블. 어쩌면 이 사람이 주역일지도 모르겠다 할 정도로 정말 연기를 잘해줍니다. 베테랑 연극 배우 출신이라는데 짬밥이란 건 연예계에서도 무시할 수가 없는 거겠죠.
-다만...중간에 자동차 이름 대문짝만하게 잡아주는 걸 봅시다. 이 부분만 잘라서 TV 광고로 방영해도 될 것 같다 싶지 않나요. 노골적인 PPL이 많은데, 예산도 꽤 들인 것 같지만 특수효과나 분장은 가끔 이상하게 싼 티가 나거나 기묘한 전개가 있어서 좀 아쉬운 부분으로 남습니다.
가끔은 너무 뻔한 대사나 전개들을 던져대기도, 덕분에 뭔가 보다보면 고품격 SF 막장드라마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열심히 보고 싶어지기만 하면 사실 TV 드라마로서는 아주 좋은 물건이죠. 그리고 떡밥 잘 뿌리고 잘 수거해서 잘 끝내는 것만 해도 이런 류의 미국 드라마에서는 그리 흔한 일은 아니거든요. JJ의 전작들만 봐도 그렇고요. 완벽하게 다 수거해내지는 못하고, 마지막 시즌에서는 좀 이야기가 급작스럽게 전개되는 감이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잘 끝맺었다 싶어서 만족스러워지기도 하고요.
재밌었습니다.
태초에 엑스파일이 있었습니다.
다들 아시죠. 멀더와 스컬리 두 FBI 요원이서 온갖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조사하고 다니던 드라마. 국내에서도 당시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내면서 미국 드라마 열풍을 다시 불러왔지만, 제작지인 미국에서도 역시 이후 드라마들에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수사기관이 미스터리한 사건 조사한다는 설정을 그대로 갖다 쓴 물건들도 많이 나왔지만, 소위 스토리 아크(story arc) 개념을 다시 유행시키기 시작한 게 크죠.
즉, 그 시절 미국 TV 드라마라는 건 사람들이 채널 돌리다 막 보는 거니까 한 화 안에 완벽한 기승전결을 갖춰서 드라마 첫화부터 안 본 사람도 중간부터 우연히, 쉽게 볼 수 있게 하는 게 많았습니다. 물론 그만큼 보다가 이탈하기도 쉽다는 단점이 있었죠. 그래서 엑스파일은 에피소드마다 이어지는 큰 이야기(story arc)를 도입하고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떡밥으로 잔뜩 풀어서 궁금증을 유발하고 계속 보도록 유도한 겁니다. 그 이후로 로스트처럼 수많은 미국 드라마들이 사실 숨겨진 게 있지만 다음 화 봐야 알려주지! 라는 수법으로 수많은 시청자들을 낚았고 지금도 열심히 낚고 있죠. 이제는 DVD나 넷플릭스, 토렌트, DVR 등으로 쭉 이야기를 이어서 보기 훨씬 편해졌다는 것도 있고요.
물론 이런 수법은 1년마다 재계약을 하면서 중간에 시청률 낮으면 가차 없이 잘라버리는 미국 드라마 시즌 시스템에서는 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숨겨놓은 걸 공개하기 전에 그냥 잘려버려서 보는 사람 허탈하게 만들기도 하고, 혹은 잘려버릴 거라 생각하고 대충 분위기만 잡고 있었는데 의외로 안 잘리고 인기 드라마가 되면서 이야기를 늘리는 바람에 수습하기가 참 골치 아파지기도 하죠. 엑스파일 역시 결국엔 그래서 다 어떻게 되는 거야 하는 좀 애매한 부분들이 남겨졌고요.
프린지는 이러한 엑스파일의 요소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계승하고 있는 드라마입니다. FBI 내부의 작은 특수팀이 미스터리한 사건을 조사한다는 설정을 그대로 따왔고, 큰 스토리가 매우 중시되죠. 물론 단순한 아류는 확실히 아닙니다.
구성만 놓고 보자면 가장 큰 차이점은 소재부터가 미스터리인 척 하지만 사실 별로 그렇지는 않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에피소드별로 온갖 소재와 전개를 다 끌어대던 엑스파일과 달리, 여기서는 구성이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죠. 이상한 사건 터지고, 주인공들이 가서 조사하고, (늘 그렇지만) 전공이 뭔 분야인지 감도 안 잡힐 정도로 온갖 걸 다 알고 있는 천재 박사 한 명이 요상한 설명으로 끼워 맞추고, 해결합니다. 에피소드 끝.
이런 이야기가 원래 그런 거 아니라고 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문제는 미스터리 특유의 긴장감이란 게 그리 좋지 못하다는 거죠. 사건 자체도 그리 흥미롭지 않은데 어떻게든 한 에피소드 안에 해결하려 들고, 그 방법도 억지스러운 경우가 많으니까요.
특히 설명이라고 끼워 맞추는 건 거의 한심할 지경인데,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했던 예로는 죽지 않게 된 사람이 나오는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좀 있다가 그걸 그 사람이 번개에 맞았기 때문에 몸을 구성하는 분자들이 고도로 대전되어서 전기적 결합이 강화되어 불사신이 되었다는 걸로 설명합니다. 그 사람은 죽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죽으면 그 사람의 영혼이 천국으로 갈 때 자신도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동반자살을 자꾸 하고 돌아다닙니다. 결국에는 폭탄을 터뜨리는데 그 폭탄의 진동 주파수가 몸의 주파수하고 맞아서 죽을 수 있게 되요.
조금만 생각해봐도 대체 무슨 헛소리인가를 매우 진지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엑스파일은 신비한 분위기를 위해서 애초에 설명을 잘 안 하는 쪽이었고, 유레카 같은 거야 말이 좀 안 되도 열심히 설명해댔지만 그랬지만 그건 최소한 개그물이었고요, 진지한 표정으로 진지한 주인공들이 열성적으로 연기하는 드라마에서 이런 식으로 꾸준히 설명해댄다는 건 좀 어색하죠.
그럼 그러니 저처럼 까칠하고 삐딱한 양반은 좀 재미없게 봤겠다고요. 아뇨,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미스터리적 요소는 그럴듯하지도 신비하지도 않지만 시선을 조금 더 넓혀보면 드라마로서는 상당히 재밌습니다. 별 재미없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중요한 척 하지만 사실은 메인 스토리를 뒷받침하는 요소, 혹은 그냥 배경으로 존재하고, 그 위에서 각 에피소드들은 꾸준히 큰 스토리에 관련된 떡밥을 던집니다.
-인트로만 봐도 떡밥을 꽤 잘 뿌려댑니다. 그리고 꽤 차근차근 잘 수거해주죠.
-인트로가 몇 가지 버전이 있는데 개인적으론 이게 제일 멋지더군요. 작곡가들도 제가 좋아하는 마이클 지아키노에 크리스 틸튼이고.
의외로 현대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원이동 같은 이야기를 들먹이며 제법 본격적인 SF의 느낌을 내기 시작합니다. 이에 관련해서 매 화마다 이런저런 사건 조사하는 동안 자잘한 떡밥 던지고, 등장인물 간의 관계 조금 더 진전시키고, 이전 떡밥 회수하고, 큰 이야기를 좀 진행시키고, 그리고 다음 에피소드에서도 반복하면서, 꾸준히 차근차근, 마치 계단 밟아 올라가는 느낌으로 이야기를 잘 이어나갑니다. 무리한 반전도 없고 에피소드별로 완성도가 크게 들쭉날쭉하지도 않지만, 꾸준히 차근차근 전개되는 이야기 구조는 보면 볼수록 어떻게 될지 끝까지 봐야만 한다는 기묘한 중독감을 제공하죠.
제작에 떡밥의 제왕 JJ 에이브럼스가 들어가는데, 의외로 매우 안정적으로 나가는 덕분에 완성도에서는 크게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게다가 주연 배우들도 상당히 실력이 좋습니다.
-가운데에는 더 퍼시픽에도 나왔던 여주인공 Anna Torv. 솔직히 국내 기준으로건 해외 기준으로건 미인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캐릭터라는 측면에서는 꽤 그럴듯합니다. 사진은 좀 잘 나온 편이고 개인적으론 드라마상에서 보면 볼수록 못생겼다는 생각이 들던데, 사실 FBI 요원이 너무 예뻐도 이상하기는 하죠.
-왼쪽의 남주인공 죠슈아 잭슨은 너무 훈남 스타일이긴 하군요.
-오른쪽이 천재 박사이자 살짝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남주인공의 아버지 역할의 존 노블. 어쩌면 이 사람이 주역일지도 모르겠다 할 정도로 정말 연기를 잘해줍니다. 베테랑 연극 배우 출신이라는데 짬밥이란 건 연예계에서도 무시할 수가 없는 거겠죠.
가끔은 너무 뻔한 대사나 전개들을 던져대기도, 덕분에 뭔가 보다보면 고품격 SF 막장드라마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열심히 보고 싶어지기만 하면 사실 TV 드라마로서는 아주 좋은 물건이죠. 그리고 떡밥 잘 뿌리고 잘 수거해서 잘 끝내는 것만 해도 이런 류의 미국 드라마에서는 그리 흔한 일은 아니거든요. JJ의 전작들만 봐도 그렇고요. 완벽하게 다 수거해내지는 못하고, 마지막 시즌에서는 좀 이야기가 급작스럽게 전개되는 감이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잘 끝맺었다 싶어서 만족스러워지기도 하고요.
재밌었습니다.
Our last, best hope for 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