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품 게시판 - 영화/애니/만화/소설/드라마/다큐멘터리
슈퍼 로봇 이야기, 괴수/괴인/초인 이야기 외에... 다양한 작품과 장르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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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엘리시움>의 일부 내용누설 있습니다. 클럽 분들이라면 대충 눈치채실 부분이라 누설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닐 블롬캄프가 만든 <디스트릭트 9>는 여러 모로 신선한 작품이었습니다. 인류가 외계 방문자를 관리한다는 역발상, 치졸하고 속물적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주인공, <플라이>를 보는 듯한 변신의 공포, 모던함과 미래지향을 동시에 갖춘 디자인, 막판에 화끈하게 펼쳐내는 강화복 액션, 외계인을 이용한 인종차별 풍자까지 골고루 갖췄죠. 초기작이 이런 만큼, 더불어 <헤일로> 실사판을 맡을 뻔했다는 사실 때문에 당연히 차기작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엘리시움>이 얼마 전 개봉했죠. 이번에는 주연으로 맷 데이먼을 내세우고, 제작비도 대거 들였다고 하더군요. (<디스트릭트 9>는 비교적 저예산이었다고 하죠.) 이번 작품의 무대는 인구 급증과 질병 악화로 폐허가 된 지구입니다. 부유층과 권력자들은 이런 세계를 버리고 대기권에 인공 낙원 엘리시움을 만들고 자기들끼리 웃고 즐기며 살아갑니다. 지상에 남은 사람들은 로봇을 통해 강제하며, 죽든 말든 신경 안 쓰고요.
이만한 설정이면 어떤 전개가 펼쳐질지 대략 감이 잡힙니다. 계급에 따라 낙원과 지옥이 엇갈린 작품은 이게 처음이 아니니까요. 아쉽게도 영화는 저런 감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무난하고 튀지 않게 흘러가요. 아무래도 감독의 전작과 비교를 안 할 수가 없는데, 기존에 참신하다고 여겼던 요소가 대폭 사라졌습니다. 일단 주인공부터가 그런데, 전작의 비커스는 영웅이랑 거리가 안드로메다급으로 먼 사람이었습니다. 낙하산 인사에다가 별 능력도 없고, 야심이라곤 쥐뿔도 없으며, 외계인의 권리 따윈 신경도 쓰지 않았죠. 그저 자기 앞가림만 하기 바쁠 뿐이고, 덕분에 여기저기 이용당하기만 합니다. 덕분에 인물의 성격 변화나 성장 과정이 두드러졌죠. 반면, 이번 작의 맥스는 초반부터 특별하고 영웅적이라는 걸 암시합니다. 쓰레기와 뒷골목에서 속물 냄새 풀풀 풍기는 캐릭터를 기대했다면, 벌써부터 엇나간 거죠. 그리고 이후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도 그리 자극적이지 않습니다. 비커스가 그토록 두려워한 건 죽음이 아니라 변화였습니다. 자신이 다른 무언가, 징그러운 무언가가 된다는 변화. 자기가 비웃고 멸시하던 자들처럼 타락할지 모른다는 가능성이었죠. 그래서 그걸 막기 위해 죽기 살기로 뜁니다. 설정만 그런 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꽤 끔찍했습니다. <플라이>가 절로 떠오르는 여러 장면들을 보다 보면, 동정심이 없더라도 비커스가 결국 어떻게 될지 궁금해지죠. 하지만 맥스에겐 그만한 자극이 없어요. 당장 숨이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는 건 알겠는데, 머리로만 이해할 뿐 심정적으로 동하지 않아요. 마음 깊숙한 곳을 불편하게 건드리는 소재가 아닐 뿐더러 시각적으로도 딱히 튀는 부분이 없거든요. 더군다나 무기 회사부터 용병, 깡패들, 언론까지 사방에서 주목하는 비커스와 달리 맥스가 상대할 세력은 단일체이기도 하고요.
비단 전작과 비교하지 않고, 독립된 작품으로 평가해도 진부함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낮은 신분으로 태어났으나 내면의 고귀함을 간직한 인물, 그런 인물이 시련을 이기고 빛과 희망을 가져다 준다는 줄거리야 너무 뻔하잖아요. 이렇게 말하면 내용 누설일지도 모르겠지만, 너무 평범하게 흘러가는지라 누설할 거리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자로 잰 듯이 딱딱 맞아떨어진다고 할까요. 한 번쯤 형식에서 벗어나 감정을 고조시키는 대목이 나올 법도 한데,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공장에서 잘 제련한 공산품이라고 해야 할까. 게다가 사건 전개에 아리송한 구석도 있고, 인물들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가기도 합니다. 특히 영화는 크게 두 인물, 맥스와 엘리시움 보안을 맡은 제시카 델라코트를 번갈아 보여주는데요. 맥스가 그나마 솔직한 인물인데 비해 제시카의 동기는 모호하고 사전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떠받치는 기둥은 두 개인데, 지붕은 한쪽으로 기울지는 듯했어요.
그래도 조디 포스터의 연기는 이런 상황에서도 어느 정도 빛났습니다. 명배우는 영화가 무르더라도 튀는 구석이 있다 싶었네요.
주제는 대략 빈곤 국가들의 의료 지원이나 복지 상태 풍자 같습니다. 부유층과 빈민층으로 계급 세계가 갈리긴 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가만히 보면, 작중에서 엘리시움에 가겠다고 강조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의료 지원을 받기 원합니다. 그저 신세계에 가서 잘 살아보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조연으로만 지나갈 뿐 집중해서 보여주지 않죠. 일단 주인공들부터가 다른 무엇도 아닌, 의료 지원이 목적이었고, 이후 전개도 그렇습니다. 아마 감독은 전작에서 인종차별을 주장한 것처럼 복지 상태를 말하고자 한 듯합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아 죽어가는 실정이니까요. 허나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그리 자세히 표현하지 않아서 주제를 드러낼 근거가 좀 부족했습니다. 이왕 의료 지원이 목적이라면, 병마에 신음하는 계층을 뚜렷이 보여줬으면 했습니다. 그랬다면 주인공의 활약이나 위기도 한층 동감했을 텐데요.
볼거리 역시 좀 실망스럽습니다. 일단 폭삭 무너지기 직전의 로스 엔젤레스 묘사는 참 좋았어요. 감독 양반이 이런 표현에는 재능을 발하는지라 디스토피아를 실감나게 그려 냅니다. 거기다 각종 비행 차량이나 로봇은 또 어떤가요. 골조만 남은 건물 사이를 차량들이 날아다니고, 허름한 빈곤층을 안드로이드가 제압하는데, 추레하면서도 꽤 조화로운 장면이었습니다. 로봇들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니는데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어요. 이는 단지 그래픽 효과가 좋아서만이 아니라 그만큼 연출과 디자인이 적재적소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다만, 로스 엔젤레스와 대비되는 엘리시움은 제목으로 쓰일 만큼 중요한 무대인데도 범상했습니다. 도넛 모양의 전형적인 궤도 식민지 형태로 그간 봐왔던 것들이랑 큰 차이는 없었네요. 그냥 딱 스탠포드 토루스라서요. 물론 이런 걸 큼지막한 영화에서 구현한 적은 없었으니 눈요기는 잘 했습니다. 저 먼 지평선에 링월드가 희미하게 올라가는 장면에서는 심장이 두근거렸죠. 허나 이왕이면 감독만의 개성을 추구했으면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기대했고, 그래서 가장 어깨가 처졌던 부분은 강화복 액션입니다. SF물에서 강화복은 빼놓을 수 없는 로망이지만, 제작상 어려움이 많아서 그런지 이를 제대로 표현한 실사 영화는 드뭅니다. 설사 표현했다 하더라도 소설이나 게임에 나온 것만큼 디자인, 성능, 설정 3박자가 명쾌히 맞물리는 게 거의 없다시피 하죠. 그런 점에서 <디스트릭트 9>에 나왔던 프론 강화복은 가히 눈 돌아가는 물건이었고, 이번에는 제작비도 많다고 하니, 그런 게 업그레이드해서 나올 줄 알았습니다. 포스터나 예고편에서는 근력 강화복만 나왔지만, 본편에서는 그보다 더 육중한 종류도 나올 거라 예상했어요. 하지만 다 보고 나니, 도대체 왜 굳이 포스터에 강화복을 강조하면서 그려놨는지 이해가 안 갔습니다. 싸움질하는 장면이야 많지만, 강화복만의 특징을 살린 액션이나 동선은 사실상 없다시피 합니다. 그냥 힘센 아저씨들이 투닥투닥 하는 거랑 다를 게 없어요. 아니, 이럴 거면 뭐 하러 거추장스럽게 복장을 입히나요.
이건 제가 너무 기대를 한 잘못도 있겠지만…. 전작에는 전신 강화복이 나왔으니, 이번에는 가히 스페이스 마린의 드레드노트에 근접하는 뭔가가 나오기를 바랐습니다. 군대가 그런 무지막지한 병기와 싸운다거나, 혹은 강화복 둘이서 박 터지게 붙거나. 아니면 마스터 치프의 묠니르 갑옷 같은 거라도요. 그래서 제임스 카메론이나 조지 루카스도 이루지 못한 강화복 묘사의 신기원을 열어주길 원했죠. 그러나 정작 나온 건 단순 근력 증진용 외골격일 따름입니다. 뭐, 외골격은 현실에서도 한창 연구 중이니까 근미래가 배경인 작품에 설득력을 더해주긴 합니다. 하지만 현실성보다는 로망을 우선하길 원했는데, 감독 생각은 그게 아니었나 보네요. 외골격만이 아니라 사용 장비도 그리 대단할 거 없습니다. 통쾌하게 돼지를 날려버렸던 중력 포대 같은 거 없습니다. 보호막이 좀 쓸만해 보이기는 했지만, 위력적이거나 독특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애초에 카타나 들고 설치는 와패니즈가 나온 시점에서 중력 포대의 로망을 바라는 게 무리였을지도.
주절주절 말이 많았는데, 결론적으로 감탄보다 아쉬움이 더 많이 남는 영화입니다. 전형적인 주인공과 뻔한 줄거리, 상투적인 결말입니다. 폐허가 된 대도시와 비행 탑승물, 각종 안드로이드 그리고 거대한 궤도 식민지는 좋았습니다. 그러나 로망과 액션을 집대성해야 할 강화복은 포스터에 나온 것이 민망할 정도로 비중이 없다시피 합니다. 올해 봄에 <아이언맨 3>를 보고 나서 ‘뭔가 진정한 강화복 액션 영화가 없을까’ 싶어서 9월을 기다렸건만. 으음, 집에서 블루레이로 프론 강화복이나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 밖에 안 나네요. 우웅.
■ 작중에 엘리시움의 경우는 인간의 병사가 전투강화복을 입고, 임무를 수행할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엘리시움 이전에 무슨 대전쟁이 발발을 하고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발생한것이 아니라 그냥 경제시스템의 모순으로 빈부의 격차가 극심해진 케이스 같아 보이니까요.
■ 전작인 디스트릭트9의 경우는 아마도 파워드슈츠마저 없으면 진짜로 영화 자체가 심심하게 진행됬을것 같은 느낌마저 들더군요.
■ 엘리시움의 경우도 심심하기는 마찮가지지만, 그래도 남미의 불법이민문제,미국의 의료보험제도의 모순,기득권의 추악한 모습등등 시사하는 봐가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 거기에 지구에서 대기권을 통과해서 우주선을 격추하는 씬은 충분히 상식을 깨면서도 그냥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에 더 놀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