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품 게시판 - 영화/애니/만화/소설/드라마/다큐멘터리
슈퍼 로봇 이야기, 괴수/괴인/초인 이야기 외에... 다양한 작품과 장르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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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한 대자연과 웅장한 구조물. <오블리비언>은 대략 이런 분위기입니다.]
영화 <오블리비언>은 멸망한 지구를 배경으로 아련한 기억과 배후의 음모를 쫓아가는 작품입니다. 대략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외계침공물과 우주탐사물을 조금 섞고, 사변적인 주제를 살짝 가미했다고 해야겠네요. 시대는 2070년, 지구는 커다란 전쟁을 겪고 풍비박산 난 지가 오래입니다. 정체 모를 약탈자들이 쳐들어와 달을 박살내고 지구까지 점령하려 했죠. 지구인들은 치열하게 저항하고 핵무기까지 써서 적을 격퇴했지만, 그 바람에 온 세상이 폐허로 바뀌고 방사능 낙진에 찌들었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외계로 대피를 고려하는 게 당연지사. 인류는 정든 고향을 등지고 타이탄 위성으로 이주합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떠나간 건 아니라서 일부는 우주 정거장에 머물며, 소수는 대기권 내부에 머뭅니다. 바다를 이용해 에너지를 채취하는데, 그러자면 누군가 시설물을 관리해야 하니까요. 더군다나 약탈자들도 완전히 멸망한 게 아니라 잔당이 설칩니다. 암울하면서도 모호한 환경에서 주인공 잭 하퍼는 기이한 의문을 품고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이야기를 시작하며 내세우는 첫째 미덕이라면, 장대한 스케일입니다. 달까지 파괴하는 엄청난 전쟁을 치렀고 다른 행성으로 대피까지 했으니, 그 규모가 오죽하겠습니까. 따라서 볼거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우선 문명의 멸망으로 인한 삭막함과 인적이 닿지 않은 자연의 광대함입니다. 과거 찬란했던 도시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으며, 영광스러운 랜드 마크만이 세월에 부스러져 그 흔적을 드러낼 따름입니다.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도시는 온데간데 없고, 텅 빈 대지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간신히 남은 고층빌딩들은 풍파에 시달려 예전 모습이 어땠는지 간신히 알아볼 뿐입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쓸쓸함과 적막함이 감돕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타 포스트 아포칼립스처럼 마냥 어둡고 우울한 건 아닙니다. 인류가 사라진 만큼, 자연은 그 위엄을 더욱 뽐내기 때문입니다. 눈이 시릴 정도로 새하얀 설원, 마음이 확 트이는 푸른 초원, 폭포가 시원스레 쏟아지는 골짜기와 아늑한 전원을 연상케 하는 호숫가까지 시종일관 아름다운 풍경에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이와 더불어 관객을 사로잡는 요소는 다양한 근미래 시설물과 장비들입니다. 대기권 내부에 머무는 인류는 고고도 높이에 기지를 세웠습니다. 일종의 관제탑인데, 하얀색과 크롬색이 모던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곳곳에 설치한 자동화 장치라든가, 일견 복잡하지만 직관적인 디스플레이, 채광을 한껏 살린 창문 등이 우아한 인상을 남깁니다. 창 밖으로 구름이 흘러가거나 밤하늘을 그대로 투영하는 장면은 정말 환상적입니다. 이 장면을 그대로 캡쳐해도 100점짜리 바탕화면이 될 정도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곡선미가 돋보이는 소형 항공기, 둥그스름하니 일견 귀엽게 보이는 무인 로봇, 직선미를 강조해 간결한 소총이나 권총 디자인 등 멋진 그림들이 쉴새 없이 흘러갑니다. 현란하거나 요란스러운 구석은 없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멸망한 세계와 더 맞아 떨어진 것 같습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어두움과는 한 발짝 멀지만, 완연히 밝지만은 않은 세계라고 할까요. 이러한 구도는 지상을 장엄하지만 고독한 곳으로, 창공을 활발하지만 인공적인 곳으로 대비시킵니다.
전작에서도 그랬듯이 감독은 볼거리와 디자인이라는 측면에서 자기 재주를 십분 발휘합니다. 예고편이 전부 아니냐는 걱정은 접어두어도 좋을 만큼, 2시간 동안 광활함에 빠져들게 합니다. 아마 작년에 개봉한 <프로메테우스>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은 듯하네요. 비주얼만 따지자면, 그에 못지 않으니까요.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자신만의 색체가 좀 부족합니다. 크고 멋있고 아름답긴 한데, 독특함이 떨어지는 편입니다. 걸작들은 으레 오리지널 디자인을 선보여 타 작품에도 영향을 끼치지 마련인데, <오블리비언>은 그런 독창성이 없이 담담하게 흘러가기만 합니다. 또한 톤이 일관된 편이라 나중에 가서는 약간 질리는 감도 없지 않습니다. 좀더 기괴하거나 톡톡 튀는 색조로 잠깐씩 분위기 전환을 해줬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은데, 작품의 통일성을 해칠 수도 있으니 일장일단이겠죠. 어쨌거나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만족스러운 수준이었고, 극장을 나와서도 영상이 눈 앞을 아른거렸습니다. 시각적인 체험을 중시하는 관객이라면 절대 극장 관람을 놓쳐서는 안 될 듯.
창공과 지상의 대비는 비단 디자인에서만 두드러지는 건 아닙니다. 주인공 잭 하퍼는 창공의 관제탑에 속한 인물이지만, 삭막하고 드넓은 지상에 호기심을 보입니다. 인류는 타이탄 위성에 거주하고, 잭 역시 그곳에서 왔습니다. 지구는 어디까지나 에너지를 채취하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일 따름이죠. 이 점은 관제사이자 연인인 빅토리아(애칭 비카)에게서 더 확연해집니다. 비카는 임무를 마치고 타이탄으로 돌아갈 날만을 학수고대하며, 자꾸만 대지를 활보하려는 잭을 만류합니다. 무엇보다 지상에는 수상쩍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약탈자 잔당이 활개치므로 자칫하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잭은 이 땅에 무언가가 남아있음을 느끼고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다. 한마디로 이런 종류의 SF물에서 흔히 보이는 ‘경계인’이라고 해야겠죠. 몸은 창공에 속했으나, 마음은 지상에 이끌리는 경계인이요. 그리고 경계인들이 항상 그렇듯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바로 이 선택의 순간이 갈등을 만들어내고, 극적 긴장감을 이끌어냅니다.
당연하겠지만, 이 영화는 잭이 자신의 위치를 결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장엄하고 압도적인 비주얼에 걸맞게 그 과정은 우직하고 느릿느릿합니다. 호흡이 가빠지는 부분이 좀 있긴 하나, 대부분은 미스터리를 차분하게 풀어나갑니다. 허나 그런 우직함이 쌓이고 쌓이기에 막판 전개는 훨씬 뭉클하고 가슴에 와 닿습니다. 속도감이나 박진감을 기대했다면 좀 갑갑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빠른 템포로 편집했으면 훨씬 혼란스러웠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인공 잭 본인이 상황 파악을 못하고 긴가민가하므로 영화 정서도 그에 맞춰주는 게 낫겠지요. 굳이 단점을 꼽자면, 간간이 나오는 액션 연출이 진부하다는 점입니다. 수수께끼가 풀리고 베일이 벗겨질수록 사건은 인류의 생존을 건 중차대한 싸움으로 발전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싸움치고는 좀 시시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네요. 전반부~중반부를 거치며 한껏 거대한 비주얼을 뽐내더니, 정작 중요한 단락에서는 어물쩍 넘어가는 느낌입니다.
제가 보기엔 감독의 연출이 비주얼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인상적인 풍경을 잡아낼 줄 안다고 꼭 연출까지 좋다는 법은 없거든요. 멋진 그림을 그렸으면, 그 그림들을 제대로 배치하고 이어나가야 하는데, 그런 실력은 아직 부족해 보입니다. 위에서 <프로메테우스>를 언급했는데, 리들리 스콧의 장점이 그거죠. 비주얼도 탁월하게 뽑을 뿐만 아니라, 그런 비주얼을 이용해 긴박감 넘치는 상황을 만들고, 주제를 부각할 줄 압니다. 조셉 코신스키는 아직 2편의 감독을 맡았을 뿐이니, 벌써부터 거장다운 솜씨를 기대하는 게 무리이긴 하지만요. 여하튼 연출이 떨어진다 해도 스토리 자체는 좋고,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과정도 무리가 없습니다. 감독의 전작 <트론> 때문에 스토리가 엉망이면 어쩌나 우려하는 관객도 많던데요. 그 점은 안심하고, 잭의 정체성 문제를 차분히 풀어가도 될 듯합니다. 감동적인 결말을 위해서 시나리오가 약간 허술한 구석도 있긴 한데, 이거야 이해할만한 합니다. 그렇게까지 사건 진행에 방해가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항간에는 영화 스토리를 두고, 짜집기라는 말도 많던데…. 으음, 이거야 관객마다 생각이 다르겠죠. 저는 짜집기나 표절까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보다 이것저것 익숙한 공식을 뒤섞어서 그렇게 보일 뿐이죠. 익숙한 공식들이 많기는 한데, 그걸 잘 조화(짬뽕)시켜서 풍부하고 묵직한 맛이 난다고 할까요. 다른 작품의 장점을 뽑아서 융합시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솜씨도 엄연히 실력입니다. 게다가 이 영화에 클리세가 많으므로 SF는 더 이상 발전이 없는 장르라고 평하기도 하던데요. 거대 자본을 투입한 상업영화니까 안전빵으로 나가는 거지, SF라는 장르적 문제가 아닙니다. 기실 소설이나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독립영화 등은 아직도 참신하고 개성적인 설정이 가득합니다. 왜 일부 블록버스터 SF만 가지고, 장르가 한계라는 둥, 더 이상 나올 게 없다는 둥 비판하는지 모르겠네요. 블록버스터 영화만 SF인가요. 영화의 접근성이 다른 매체보다 월등히 뛰어나긴 하나, 새로운 SF물이 보고 싶다면 소설이나 게임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배우 연기는 무난합니다. 지구 멸망 설정이라 등장인물은 그리 많지 않으며, 덕분에 잭 하퍼를 연기하는 톰 크루즈가 중점적으로 이끌어갑니다. 노련하고 관록 있는 배우답게 2시간이 넘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더군요. 그러나 배우의 재능을 극한으로 끌어내는 각본이 아닌지라 무난함에서 그쳤습니다. 안드레아 라이즈보로우는 아름답긴 했는데, 딱히 튈 만한 부분은 없었네요. 애초에 배역이 그랬으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 점은 올가 쿠리렌코도 마찬가지. 모건 프리먼은 언제나처럼 의혹이 있으면서도 안정적인 지도자상입니다.
결론을 내자면, <오블리비언>은 솔직히 걸작이나 수작은 아닙니다. 실험적이거나 독특한 해석으로 질주하는 신작도 아니고요. 하지만 풍미가 가득하고 여운이 남는 웰메이드임은 분명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뭔가 허전했던 마음 한 구석을 충만하게 채우고 나왔습니다. 특히, 경이롭고 거대한 볼거리에 흠뻑 빠지고픈 관객이라면 절대 지나치지 말아야 할 겁니다.
말씀하신 대로 익숙한 장면들이 많더군요. 드론은 '토탈 리콜' 리메이크에 나와도 될 것 같았습니다.
드론과 비행기의 추격 장면은 상당히 스피디하긴 하지만,
감독의 전작인 '트론 레거시'의 라이트제트 공중전 장면를 연상시켰습니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한 방을 터뜨리는 장면은 진짜 익숙하더군요.
그래도 만족스럽게 봤습니다. 인류가 사라진 광활한 자연 풍경은 고독한 느낌이 들면서도 시원스러웠습니다.
종반부에 잭과 빅토리아가 지구에 남게 된 진짜 이유가 밝혀지는 장면은 제법 인상적이었어요.
이야기와 연출에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이미지 구현에 있어 좀 더 독창적인 생각을 불어넣었다면 더 멋진 영화가 되었겠지만,
이만 하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트론 레거시에 비하면 일취월장했어요.
그러고 보니 음악이 좋던데요. 트론 레거시의 음악도 좋았는데, 오블리비언의 음악도 좋았습니다.
정말 'SF다운' 영화였습니다. 블록버스터 기대하고 가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요.
개인적으로는 프로메테우스보다 오블리비언이 더 좋았습니다. 참신함이 없다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신한 면도 많습니다. 특히 회전하는 비행체 조종석으로 뒤를 공격하는 장면이 일품인듯 하네요.